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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2화 연기하지 마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윤 화백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일적으로 너한테 다시 연락할 일이 있을까? 나도 이제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그냥 쉬고 싶은 마음뿐이야.”

그의 말에 싱긋 웃던 소은정이 돌아섰지만 성큼성큼 다가온 박수혁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가지 마. 제발...”

애원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고개를 돌린 소은정의 눈동자는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

“이거 놔.”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건지 손에 꽉 주었던 힘이 스르륵 풀렸다.

“은정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이 입술 사이에서 소은정의 이름만 흘러나왔다.

‘이렇게 보낼 순 없어. 뭐라고 말할 자격도 없다는 거 알아. 그래도 무슨 해명이라도 하고 싶어... 널 향한 내 사랑이 그냥 가식이었다고 세상 사람들 다 그렇게 말해도 상관없는데... 너만큼은 그렇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내가 심했다는 거 알아. 그래도...’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박수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소은정은 이 상황 자체가 짜증 난다는 듯 팔짱을 낀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때 우연준이 다시 다가섰다.

“저기... 저희 대표님 지금 컨디션이 완벽히 정상은 아니십니다. 어서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셔야 해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이라는 단어와 달리 우연준의 말투는 강경했다.

그 동안 소은정을 곁에 모시며 우연준이 느낀 소은정은 쿨한 척 하지만 원한관계에 있어선 한없이 쪼잔해질 수 있다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다시 박수혁과 엮일 가능성은 0%, 그러니 우연준 입장에서도 더 이상 형식적인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연준의 말에 박수혁의 표정은 더 다급해졌다.

“다쳤어?”

하지만 그 초조함마저도 소은정은 웃길 따름이었다.

“그 상황에서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인데 뭐. 다친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날카로운 비수처럼 박수혁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곧이어 박수혁의 입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그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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