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주먹을 잡은 그의 손등 위로 핏줄이 잔뜩 섰다."나 말했어, 그 여자한테서 떨어지라고. 나중에 후회하지 마."그의 목소리는 마치 지옥의 목소리와도 같았다.하지만 안나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소은정을 따라 웃었다. 그 자연스럽지 못한 웃음은 오히려 더 섬뜩했다.박수혁은 안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한기를 내뿜었다."당신 아버지 내 손에 있어, 지금 수혁 씨가 제일 걱정하는 사람은 그 사람 아니야?"안나가 웃으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박수혁이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지만 반대편에서는 없는 번호라는 말만 반복했다.박봉원은 해외의 모든 회사에 머물렀었다. 하지만 한국에 오지 않는 이유는 어색하게 박수혁을 마주하기도 싫었고 만날 때마다 원망만 늘어놓는 이민혜도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그는 나름 괜찮은 생활을 이어왔다. 주변에는 늘 여자까지 있었기에 박대한도 그에 대해 묻지 않았다.큰 사고만 치지 않고 마음대로 살라는 뜻이기도 했다.그리고 박봉원이 떠나야만 박수혁의 자리가 더 안정적이었다.태한그룹은 한 사람의 말만 따라야 했기 때문이었다.박대한은 평범한 아들 대신 박수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박수혁을 본 안나가 웃으며 휴대폰 속에서 동영상 하나를 찾아 그의 앞에 내려놓고 재생했다.동영상속의 박봉원은 머리에 총구가 겨누어진 채 두려운 얼굴로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저, 저를 죽이지 마세요!"몇 십초의 동영상은 그렇게 끝이 났다.박수혁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감정이 없었지만 누구나 그의 머리 위에 올라타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안나는 휴대폰을 거두고 담담하게 웃었다."나 당신한테 거짓말한 거 아니야, 그럴 리도 없고. 당신도 알잖아, 내 능력에 당신 아버지 같은 인간 잡아들이는 거 식은 죽 먹기라는 거."안나의 말이 맞았다, 박봉원은 박수혁처럼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도, 경각심도 없었다. 그동안 다른 이에게 납치를 당하지 않았던 건 모두 태한그룹 덕분이기도 했고 경호
안나는 말을 하며 점점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마치 목적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박수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입에서 소은정이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부터 그의 표정은 더욱 굳었다.소은정은 그의 금기였다, 그 누구도 그 이름을 꺼낼 수 없었다.소은정처럼 단장을 한 안나는 보기에도 괴이했다. 마치 끈을 잃은 꼭두각시 같아 망가뜨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안나는 박수혁을 보며 점점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수혁 씨, 나는 당신을 위해서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이 될 수 있어, 그런 거 상관없어.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어, 당신이 내 것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안나가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박수혁은 여전히 차가웠다."그래? 내가 보기엔 착각 같은데.""당연히 착각이 아니지, 5년 전, 그 폭발사고에서 당신이 나랑 소은정을 살렸잖아. 당신이 살린 건 그냥 일반인이 아니야."안나의 말을 들은 박수혁의 안색이 보기 싫어졌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 계속 당신을 찾고 있었거든, 그래서 그 복싱 경기를 준비한 뒤에 당신이 지게 하고 부대에서 벗어나 완전히 내 걸로 만들려고 했어. 그런데 소은정이 내 모든 계획을 망치고 당신을 데리고 간 거야."안나의 말투 속에 원망과 분노가 담겨있었다."당신을 찾아가려고 했는데 아버지께서 우리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어서 끝까지 할 수 없다고 말씀하더라고, 그래서 반항할 능력이 없어서 당신이 떠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거야. 그런데 소은정 좋은 일만 해줬지, 당신이랑 결혼까지 했으니. 당신은 원래 내 것이어야 했어!"안나의 말은 조금 무서웠다."너는 나를 해치려고 했던 사람이고 소은정은 나를 살린 사람이야, 그러니까 나는 절대 너랑 같이 있지 않을 거야."5년 전의 폭발사고가 이렇게 많은 일을 끌어낼 수 있었다니.박수혁은 그저 그날, 자신과 전우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구했었다는 것만 기억
박수혁은 차가운 얼굴로 안나를 쏘아봤다.박수혁은 상사를 찾아갔었지만 상사도 어쩔 수가 없었다. 시체 하나 찾자고 더 많은 이들을 희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때, 그를 도와줄 수 있다고 다가온 무기상 하나가 바로 안진이었다.박수혁은 그녀를 믿지 않았지만 그녀는 해냈다.그녀는 완전한 시체를 박수혁의 앞에 데리고 왔다.박수혁이 그녀에게 무슨 조건이 있냐고 물었을 때, 안진은 아무것도 필요 없고 안진이라는 이름만 기억해 달라고 했었다.하지만 박수혁은 떠나기 전, 거액의 수표를 보수로 그녀에게 줬었다.그는 누구에게 빚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그 뒤, 시체를 데리고 돌아온 박수혁은 부대를 떠나 세력을 거머쥘 수 있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따라붙었다. 머지않아 그의 세력은 점점 더 강대해졌다.그리고 안진의 신분과, 무기상, 그들이 처해있는 세상까지 전부 다 알게 되었다.오늘의 박수혁은 그들을 내려다보며 심지어 그들을 휘두를 수 있는 지경에까지 올라섰다.그는 자신이 보호하고 싶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달려왔다."나는 너한테 빚진 거 없어, 내가 준 수표로 당지에서 용병 20명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을 거야."박수혁이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알아, 하지만 내가 가지고 싶은 건 돈이 아니라 당신이 날 기억하는 거였어."그녀는 돈 따위는 상관이 없었다, 그가 원하는 건 박수혁뿐이었다."처음에는 이렇게 급하지 않았거든, 소은정이랑 결혼을 했지만 좋아한 건 아니었잖아. 두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는 거 알고 마음을 놓았지, 그리고 소은정이 떠나기만을 기다렸어. 그런데 소은정이 떠나니까 수혁 씨가 그 여자를 신경 쓰기 시작했잖아. 그래서 이 방법으로 당신 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 당신만 허락하면 우리 함께 할 수 있어, 당신도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거고. 심지어 더 많은 사람들을 추월할 수 있을 거야. 당신을 위해서 SC그룹을 위협하는 것들 전부 없애줄 수도 있어."안나가 웃으며 말했다.그녀는 많은 것을 공부했기에 지금 태
박수혁의 말을 들은 안나의 표정이 굳었다. 한참을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다시 물었다."그러니까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거야?"박수혁이 담배를 끄더니 차가운 얼굴로 대답했다."응, 못 받아들여."박수혁의 말을 들은 안나가 일어서서 그를 바라보다 말없이 떠났다.사무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닫혔다.박수혁은 떠나는 안나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은연중에 일이 심각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곧이어 이한석이 어두운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대표님, 회장님께서 이미 3일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주위의 사람들도 어디로 간 건지 모르고요."예전이었다면 박수혁은 그저 자신의 아버지가 놀러나갔다고 생각해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제가 아는 무기상한테 좀 물어볼까요?"그들은 무기에 손을 대지 않았지만 업계의 많은 이들을 알고 있었다.태한그룹의 명성은 다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도 선호하는 파트너였다.이한석의 말을 들은 박수혁의 어두운 눈빛이 어느 한곳에 멈췄다."그럴 필요 없어, 사람은 저들 손에 있는 게 확실해."그런 자신이 없었다면 안나도 박수혁을 찾아와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 뒤의 배경이 사람을 속일 만큼 뻔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박수혁은 생각했다.다만…"그럼 이제 어떡하죠? 사람을 보내서 상대방이랑 얘기를 나눠보라고 할까요? 아니면 저 여자를 잡아올까요?"이한석이 박수혁을 바라보며 물었다."안진은 해외 무기상 도혁의 딸이야, 사람을 보내서 몰래 박봉원에 대해서 알아봐."박수혁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그 말을 들은 이한석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대표님, 안진이 회장님을 잡아간 사실을 도혁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그 말을 들은 박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도혁을 만난 적이 있거든, 국내에서 자기를 대신해 무기상 사업을 해달라고 했는데 내가 명확하게 거절해서 그 뒤로는 만나지 못했지. 안진도 단순한 인물은 아니야. 그래서 이들의 목적이 도
퇴근하려던 소은정이 건물을 나선 순간, 검은색 차 앞에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하루 종일 일에 치이느라 어두워졌던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 빛나며 빠르게 달려간다.“나 데리러 온 거예요? 사무실로 올라오지. 얼마나 기다린 거예요?”소은정을 바라보는 전동하의 눈에도 웃음기로 가득했다. 전동하가 손을 뻗었고 그의 큰 손과 소은정의 작은 손을 서로 맞받았다.그리고 손목에 살짝 힘을 준 전동하가 소은정을 자신의 품에 안았다.그렇게 두 사람은 침묵의 포옹을 이어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전동하에게서 풍겨오는 차분한 향기 때문인지 마음은 편안하기만 했다.전동하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온몸의 무게를 전부 그에게 쏟은 소은정이 감탄했다.“무슨 남자 허리가 이렇게 얇아요?”그녀의 말에 움찔하던 전동하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검은 눈동자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일렁거렸다.곧이어 소은정이 감탄을 이어갔다.“그런데 여자 허리랑은 달라요. 여자처럼 말랑한 느낌이 아니라 단단한 느낌이랄까? 만지기만 해도 힘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소은정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남자가 입꼬리를 씨익 올리더니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칭찬하는 거 맞아요? 아님 지금 신호 보내는 거예요?”순간 그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들은 소은정이 얼굴을 붉혔다.뭐야. 길가에서 별말을 다해.소은정은 바로 손에 힘을 풀려했지만 압도적인 힘 때문에 결국 다시 전동하의 품에 안기고 만다.그리고 전동하의 매력적인 웃음소리가 소은정의 귓가를 간지럽혔다.한편, 역시나 퇴근하려던 직원들은 이 광경을 발견하고 입을 떡 벌리고 만다.세상에, 뭐야? 드라마 촬영 중이야?“헐, 저 사람 우리 대표님 아니야?”“은정 대표님이랑 전동하 대표님이잖아. 두 사람 진짜 사귀는구나. 그냥 의심만 하고 있었는데 진짜 사귀고 있을 줄이야...”“헐, 난 우리 대표님만은 평생 솔로로 계실 줄 알았는데.”“왜? 전동하 대표님 좋은 분이잖아. 박수혁 대표보다 더 따뜻하고 자상하고 우리
한유라는 민하준과 죽도록 싸웠던 나날들, 민하준의 끔찍한 사기극에 절망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그럼에도 그녀가 민하준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건, 아니 떠나지 못했던 건 황당하지만 사랑 때문이었다.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콕 집어 이유를 말할 순 없었지만 언제부터인가 한유라는 왠지 이 관계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고 민하준에 대한 그 어떤 소식도 듣고 싶지 않았다.그리고 생일 파티를 나가는 순간, 한유라는 확신했다.아, 이제 이 관계도 끝이구나. 내 사랑은 이미 모두 불태웠구나.사랑이라는 필터가 걷히고 이성을 되찾고 나니 모든 게 뚜렷해졌다.그녀가 저지른 멍청한 짓 때문에 한유라는 체면도 잃었고 온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렸다.내가 왜 남자 때문에 내 모든 걸 버려야 해? 싫어. 이건 한유라답지 않아. 이 모든 게 민하준 그 남자 때문이라면 그 부분만 잘라내면 그만이야.대화를 나누던 소은정과 한유라가 자연스럽게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하지만 불안한 예감과 달리 가까이 가보니 식탁에는 나름 풍성한 한끼가 차려져있었다.“뭐야? 너 요리는 언제 배운 거야?”소은정의 눈이 커다래졌다.요리는커녕 평생 라면 한 번 자기 손으로 끓여본 적 없는 애가...그녀의 질문에 한유라가 턱을 살짝 치켜세웠다.“뭐 타고난 재능이랄까? 주방만 들어오면 마음이 편해져.”피식 웃음을 터트린 소은정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식탁을 바라보던 그때 전동하가 간식과 와인을 챙겨든 채 들어왔다.“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어머, 전 대표님. 오늘 두 사람 뜨밤 보내야 하는데 제가 방해된 거 맞죠? 그래도 저 너무 미워하진 말아주세요.”한유라의 농담에 전동하도 웃음을 터트렸다.“그럴 리가요. 유라 씨는 은정 씨 절친이잖아요. 제 험담이나 하지 말아주세요. 저 진짜 차일 수도 있으니까.”“와... 은정아, 난 진짜 모르겠다. 저렇게 착한 사람이 이 세상에 있긴 해? 뭐 더 이상한 결함 같은 거 있는 건 아니겠지?”
비록 요리 실력은 바닥이 드러났지만 비싼 레스토랑에 특별히 배달 서비스까지 부탁하느라 나름 거금을 치른 한유라는 전혀 부끄럽지 않다는 표정이었고 소은정도, 전동하도 지옥에서 온 요리보다 검증 받은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게 백 배 더 낫다고 생각했으므로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식사가 끝나고 와인을 몇 잔 들이킨 한유라는 이미 얼굴에 홍조가 피어오른 모습이었다.식탁 정리를 마친 전동하가 레스토랑 측에 전화를 걸고 아까 함께 챙겨온 간식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밥을 이미 잔뜩 먹었음에도 뭐가 허한지 바로 과자를 우걱우걱 먹는 한유라를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던 소은정이 조용히 전동하에게 눈치를 주었고 바로 그 뜻을 캐치한 전동하는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오늘은 나 혼자 자야겠구만...술기운 때문인지 눈물을 참는 건지 한유라의 눈동자가 빨갛게 부어오르고 소은정은 말없이 따뜻한 물수건을 건넸다.“그 사람... 어제는 전화 한 통도 안 하더니 오늘은 백 통 넘게 하는 거 있지? 진짜 웃기지 않아? 뭐, 내가 오늘쯤엔 또 속없이 실실거리며 다시 다가갈 줄 알았나? 미친 자식.”한유라의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가 실렸다.그런 그녀에게 따뜻한 꿀물을 건넨 소은정이 말했다.“이미 마음 정한 거면 더 이상 망설이지 마. 너도 할 만큼 했잖아. 그럼 아쉬움도 미련도 없는 거 아니야?”“알아. 나도 아는데... 그래도 왠지 억울해. 내가 그 자식한테 들인 시간이랑 정성만 생각하면... 진짜 내 인생을 갈아넣은 남자였거든? 그런데... 바뀐 게 하나도 없어. 왜 그러는 걸까? 내가 너무 좋아하는 티가 많이 났던 걸까? 그래서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나? 그날 그 사람이 내 뒤를 쫓아서 함께 나왔더라면... 아니. 그날 연락이라도 해서 사과를 했더라면 마음은 식었어도 이렇게 허무하진 않았을 것 같아. 그 사람의 침묵이 날 천하에 웃긴 여자로 만들었어.”너무나 지쳐보이는 한유라의 모습에 소은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사랑은 가끔씩
슬픔과 절박함, 초조함... 여러 표정이 담긴 민하준의 표정에도 소은정은 싱긋 미소만 지었다.“민 대표님,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유라랑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엔 없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돌아서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 했지만 이대로 물러설 민하준이 아니었다.분노 때문일까? 그 뒤를 바짝 쫓은 민하준의 이마 힘줄이 불끈 치솟았다.“나 유라랑 만나야 한다고요!”“그럼 전화하세요. 왜 저한테 이러시죠?”“내 전화는 안 받으니까요.”“전화를 안 받는다는 건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요. 하나는 당신이 직접 와서 사과하길 바란다는 것.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은 이만 포기하고 꺼지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유라 어디 있는지 모르시죠? 알려주지도 않았고요. 그럼 답은 하나네요. 두 번째 가능성.”마지막 희망까지 잃어버린 듯 절망스러운 민하준의 모습이 소은정은 웃기기만 했다.이때 역시 출근 중이던 우연준이 엘리베이터 앞에 펼쳐진 대치 상황을 발견하고 바로 경호원들을 호출했다.그리고 소은정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네, 우 비서님, 좋은 아침이에요.”소은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경호원들에게 끌려가는 순간에도 민하준은 그녀를 향해 절박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녀는 냉정하게 고개를 돌렸다.안타깝네... 유라는 모든 걸 버리고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 했는데... 이런 일로 마지막 믿음이 깨져버렸어...잠시 후, 소은정이 아침 조회를 마치고 회의실에서 나온 그때, 우연준이 그녀를 맞이했다.“대표님, 민 대표님이 계속 버티고 계시네요. 경호원들이 아무리 막아도 어떻게든 뚫고 들어오고 있다는데...”우연준이 말끝을 흐렸다.“잠시만요.”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이 한유라에게 문자를 보냈다.“민하준이 우리 회사로 찾아왔어.”“내가 어디 있는지 말하지 마.”“그래.”유라... 진짜 실망이 컸나 보네. 마지막 이별의 말도 하고 싶지 않을만큼...다른 사람이 볼 땐 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