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유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도 그만해. 내 말을 듣는 애였니? 아버님이 가장 아끼는 아이니까 쟤가 한 말이 아버님의 뜻이야.”“언니, 그게 무슨 뜻이야? 나랑 선이라도 긋겠다는 거야? 나 언니 동생이야!”조급해진 양수진이 다급히 말했다.“그냥 공개적인 자리에 참석하지 않는 것뿐이니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일 것 없어.”말을 마친 양유진도 걸음을 돌렸다.양수진은 끝까지 뒤쫓아가며 매달렸다.“그럼 양수 취직은 어떻게 되는 거야? 걔 강희 도우려고 일부러 해외에서 귀국했다고.”양유진의 얼굴에도 짜증이 치밀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너도 봤겠지만 지금 아버님은 강희만 믿잖아. 내 말은 듣지도 않아.”“그럼 우리 양수는 어떡해?”“일단 다시 해외로 돌려보내. 거기서 잘 지냈잖아. 왜 돌아온 거야?”양수진은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으로 언니를 바라보다가 걸음을 멈추었다.한편, 소은정은 전동하의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들고 그의 표정을 살폈다.그러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그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그렇게 좋아요?”전동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당연하죠. 너무 기분이 좋은걸요.”“욕을 먹고도 기분이 좋을 정도면 잘못 알아본 그 여자분이 꽤 마음에 들었나 봐요?”전동하는 눈을 깜빡이다가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그 여자는 잘 모르겠지만 은정 씨가 너무 사랑스러워서요.”그러자 소은정이 눈매를 치켜올렸다.“그래요?”“아까 은정 씨 화내는 모습 처음 봤어요. 너무 예쁘더라고요. 예뻐서 숨막힐 것 같았어요.”그의 부드러운 음성이 그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아닌 척하지만 어느새 소은정의 귓가가 빨갛게 상기되었다.“무슨 그런 말을 해요?”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걸음을 재촉했지만, 남자는 끈질기게 다가와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전동하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순간 소은정의 뇌리에 스치는 사람이 있었다.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
성태수가 두 사람을 보며 웃었다."은정이 너 안목이 좋구나. 전 대표님 잘생기고 능력도 출중하니 네 아버지께서 너무 좋아하겠는데."하지만 소은정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화제를 돌렸다. 소은정의 아버지께서 이 일을 알게 된다면 기뻐하기는커녕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뛸 것이 분명했다.소은정은 그 모습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성태수는 전동하에게 관심이 많은 듯 그를 붙잡고 한참이나 얘기를 하고 나서야 두 사람을 보내줬다.소은정은 사람들을 상대하기 짜증이 났기에 사람을 만나면 인사만 몇 마디 나누곤 자리를 떴다.결국 혼자 남겨진 전동하가 어색한 얼굴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야만 했다.그때 갑자기 나타난 한유라가 웃으며 소은정에게 다가왔다."전 대표님 저렇게 둘 거야? 다들 대표님한테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어떻게든 엮여보려고 해도 평소에는 만나기 힘든 분이잖아.""몰라, 혼자 알아서 하겠지. 나 따라다니는 게 전 대표님한테는 더 고역이야.""그런데 너 방금 내가 뭘 봤는지 알아?"소은정의 말을 들은 한유라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 말을 들은 소은정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고 한유라는 그녀를 끌고 조심스럽게 위층으로 올라갔다."가자, 네가 상상도 못할 장면 보여줄게."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상상도 못할 장면이라니?오늘 그녀가 본 진기한 광경은 이미 충분했다.한유라에게 이끌려 2층으로 올라간 소은정은 2층 난간 옆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거의 다 아래층에 있었기에 그곳의 대부분 자리는 비어있었다."저기 봐!"한유라의 손가락이 비교적 조용한 한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바로 방금 전, 소은정이 박수혁과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눴던 곳이었다.박수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연달아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하지만 맞은편의 이는 이미 바뀌었다.그이는 바로 임양수가 데리고 온 소은정을 빼다 박은 여자, 안나였다. 그녀는 몸매부터 분위기까지 소은정과
소은정은 안나의 신분이 가짜가 아니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민감한 신분을 지니지 않았다면 사소한 동작에 이렇게 빨리 눈치챌 수 있을 리 만무했다.안나와 눈이 마주친 소은정은 그 눈빛을 받아내다 담담하게 고개를 돌렸다.한유라는 휴대폰의 반대편에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소은정은 손가락으로 의자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위쪽의 상황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북적이는 소리는 음악소리를 압도할 정도였다.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다시 두 사람을 바라봤을 때, 안나의 눈이 다시 박수혁에게 향했다.박수혁은 여전히 술만 들이킬 뿐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이에게 관심을 주지도 않았다.다른 여자들도 그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의 반대편에 앉은 안나를 보곤 물러났다.하지만 한유라가 곧 놀란 얼굴로 말을 했다."세상에, 은정아. 저 여자 정말 무기상이었어, 오빠는 남아시아의 유명한 두목이고. 그런데 왜 여기까지 와서 너를 따라 하고 있는 거지?"한유라는 안나가 정말 무기상이라는 것이 무척 놀라운 듯했다."사진으로 보면 본인도 괜찮은 것 같은데 왜 굳이 너를 따라 하고 있는 거지? 가만, 이름도 안나가 아니라 안진이었어. 네 이름까지 훔친 걸 보니 너 때문에 여기에 왔다는 거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은데."곧이어 한유라가 간사하게 웃으며 말했다."기다려, 내가 좋은 구경시켜줄게."말을 마친 한유라가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더니 소은정에게 아래쪽을 보라고 했다.그리고 머지않아, 임양수가 화가 난 얼굴로 박수혁이 앉아있던 테이블로 다가갔다. "안나, 왜 여기에 있는 거야?"임양수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하지만 안나는 상관없다는 듯 임양수를 흘끔 보더니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대답했다."그냥 잠깐 앉아있는 거야."임양수는 그제야 박수혁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는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이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임양수는 그런 박수혁에게 감
박수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일어서더니 그곳을 떠나려고 했다.안나는 그런 박수혁을 보더니 그보다 먼저 앞장서서 그의 팔을 잡고 부축하려고 했다.하지만 박수혁은 안나의 손을 뿌리쳤다.안나도 물러서지 않고 다시 한번 박수혁의 팔을 잡았지만 박수혁은 다시 그녀를 뿌리쳤다.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나니 박수혁은 짜증이 났다. 곧이어 고개를 돌린 그가 안나에게 무언가를 말했고 안나는 굳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한편 2층에 있던 한유라와 소은정은 그 광경을 모두 목격하게 되었다.소은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생각에 잠긴 듯했다.결국 한유라가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떼었다."둘이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거 아니야? 박수혁이 저 여자를 너로 본 것 같지는 않은데 잘 아는 사이도 아닌 것 같고, 아무튼 두 사람 아는 사이인 것 같아."한유라는 한참을 기다렸지만 그녀의 말에 대답을 하는 이는 없었다. 의아해진 그녀가 다시 소은정을 바라봤다."내가 그걸 알 것 같아?"소은정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하긴, 박수혁 결혼도 몰래 한 사람이었지. 그런 걸 너한테 알려줄 리 없지."그 결혼식은 모두가 아는 허황한 일이었다.소은정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돌아갔다.다시 이 일을 꺼낸다고 해도 소은정은 그때처럼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지 않았다."방 잡을래?"문 앞의 박수혁이 차에 오르려던 순간, 안나가 그를 막아섰다."꺼져."박수혁은 다시 그녀를 밀어내고 차에 올라탔다.안나는 박수혁을 따라 차에 오르려고 했지만 옆에 있던 이한석이 그녀를 막더니 그녀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안나의 얼굴이 새파래졌고 굳은 얼굴로 이한석을 쏘아봤다.이한석은 두려웠지만 박수혁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곧이어 차 문이 닫혔고 안나는 그곳에 덩그러니 남겨졌다.안나는 다른 이들의 눈길도 상관하지 않은 채 멀어지는 박수혁의 차를 바라보다 금방 걱정으로 물든 표정을 지웠다.안나의 모습을 본 한유라가 혀를 찼
"싸웠다고?"소은정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응, 누구도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어. 민하준이 욕을 해서 한유라가 민하준을 때리기까지 했어, 지금 하늘이가 차 끌고 한유라를 쫓아간 상태고."소은정이 전동하에게서 떨어지더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민하준은?""민하준은 아직 거기 있어."그리고 성강희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소은정이 그가 있는 곳으로 갔다.곧이어 전동하도 그 뒤를 따라갔다.연회장 내에서 일어난 소란은 적지 않은 이들의 주의를 불러일으킨 듯했다.민하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여전히 문 어귀에 서있었지만 시선은 칠흑같이 어두운 바깥을 바라보며 화가 나기도 했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그의 옆에 서있던 스물이 채 안 되어 보이는 한 여자가 두려운 얼굴로 망설이다 입을 떼었다."오빠, 내가 말 잘못한 거야?"......민하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 소은정이 차가운 얼굴을 한 채 나타났다.하지만 소은정은 복잡한 얼굴로 민하준을 바라봤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지나쳐 한유라를 따라나서려고 했다.오히려 민하준이 먼저 소은정을 불러 세웠다."은정 씨, 유라 꼭 좀 찾아주세요. 걱정이 되어서."민하준의 말을 들은 소은정은 콧방귀를 뀌더니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차에 올라탔다.전동하도 그녀와 함께 가려고 했지만 소은정은 이미 차 문을 잠갔다."은정 씨…"그 모습을 본 전동하의 안색이 변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소은정을 불렀다.소은정은 차 창을 통해 그를 보며 대답했다."연회가 끝나면 동하 씨는 먼저 돌아가요, 유라 찾으면 제가 다시 전화할게요. 걱정하지 마요, 아무 일도 없을 거에요. 동하 씨가 같이 가면 유라가 불편해할 거예요."전동하는 홀로 한유라를 찾아 나서겠다는 소은정이 걱정되었지만 그녀의 마지막 말 한마디를 듣고 나니 마음이 놓였다.그 한 마디만으로 전동하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네, 그럼 조심해요."소은정은 전동하를 버리고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한유라의 생각이 지금은 더 중요했다.소은
김하늘의 말을 들은 소은정이 속도를 올렸다."너는 천천히 와, 내가 얼른 갈게. 유라 마음만 달래주면 돼."김하늘은 대충 몇 마디하곤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운전에 집중해야 했다.소은정은 얼른 핸들을 돌려 지름길로 들어서 한유라의 집으로 향했고 15분도 되지 않아 그녀의 집 아래에 도착했다.그곳은 지금 한유라가 민하준과 함께 살고 있는 아파트였다.소은정이 그녀의 집을 올려다보니 아직 한유라가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시간을 확인한 그녀가 전동하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던 찰나, 두 대의 차량이 동시에 도착했다.아파트는 조용하고 고급스러웠고 거의 모두가 단독주택의 형식으로 되어있었기에 다른 이는 쉽게 알아챌 수 없었다.머지않아 차에서 내린 한유라가 화가 난 얼굴로 아파트로 들어가려고 했고 소은정이 얼른 차에서 내려 그녀를 막았다."한유라!"소은정의 목소리를 들은 한유라가 놀라서 그녀를 바라봤다."네가 왜 여기 있어?"그때 김하늘이 뒤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나도 있어!"그 목소리를 들은 한유라의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그녀는 울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문을 열었다."일단 들어가자."한유라의 말을 들은 소은정과 김하늘이 서로를 한 눈 보더니 집안으로 들어섰다.김하늘은 조심스럽게 한유라를 바라보다 말을 걸려고 했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기에 소은정에게 눈짓을 했다. 결국 소은정이 입을 뗐다."한유라 씨, 왜 갑자기 화가 난 거야? 나 나올 때 너네 민하준이 너 좀 잘 봐달라고, 걱정된다고 하던데…"민하준의 이름을 들은 한유라는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눈을 부릅떴다."내 앞에서 그 인간 얘기 꺼내지 마. 걔는 그냥 쓰레기야, 나 민하준이랑 헤어질 거야, 내가 정신이 나갔었지, 그런 남자를 만났다니…"말을 하던 한유라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소은정이 김하늘을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방금 전까지 더 좋아하게 되었다고 했잖아, 일부러 우리 앞으로 불러와서 인사까지 하게 해놓고, 마음이
민하준이 이혼을 하고 다시 한유라를 찾아와 매달린 끝에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있었지만 한유라는 결혼을 허락하지는 않았다.민하준의 지나간 결혼생활은 그녀에게 있어서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역린과도 같았다.한유라는 결혼을 하지 않고 민하준의 가족과 친구, 비즈니스에 대해 그 어떠한 것도 묻지 않았다. 마치 연애만 하기 위해 만나는 사람처럼 말이다.그녀는 이렇게 하면 쭉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오늘 전까지는…한유라는 자신이 묻지 않는다고 그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민하준의 존재는 좋아질 수 없는 불화와도 같았다.......머지않아 세 사람은 짐 정리를 끝냈다. 한유라는 자신의 화장품과 가방들까지 전부 챙겨 그 어떠한 것도 남겨두지 않았다.소은정은 그런 한유라를 보며 그녀가 정말 민하준과 헤어지려 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했다."어머니한테 갈 거야? 아니면 네가 산 다른 집으로 갈 거야?"차에 오른 소은정이 물었다."우리 엄마한테 가서 욕이나 먹으라는 거야? 내 집도 안돼, 민하준이 다 알고 있으니까. 너희 집으로 갈 거야."그 말을 들은 소은정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우리 집?""너랑 같이 있으면 민하준이 막무가내로 하지 못할 테니까 네가 지금 살고 있는 데로 가."한유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그럼.""걱정하지 마, 민하준이랑 완전히 끝내고 우리 집으로 들어갈 테니까, 너무 오래 방해하지 않을게.""그냥 네가 지내고 싶을 때까지 있어, 정말 아예 끝내고 싶은 거면 틈 보여주지 마. 하지만 그냥 화가 난 거라면 여지 좀 남겨줘, 나중에 상황 어색하게 만들지 말고."소은정의 말을 들은 한유라가 입을 앙 다물더니 다시 말했다."이번에는 진짜야, 민하준 그 사람이 뭐라고."소은정은 흥분한 한유라를 보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소은정의 집에 도착한 뒤, 김하늘은 두 사람을 도와 한유라의 짐을 옮겨줬다. 소은정의 집은 2층으로 나누어져 넓고 아늑했다.한유라
김하늘이 술잔을 챙겨와 세 사람은 카펫 위에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한유라는 여전히 눈물을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오늘 그 자리에 누가 왔는지 알아?""아니, 민하준이 아는 사람이 온 거야?"소은정은 문득 민하준의 옆에 서있던 여자아이가 생각나 물었다."민하준 옆에 있던 여자애는 누구야?"그 말을 들은 한유라가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더니 말했다."민하준 와이프 동생, 어렸을 때부터 민하준 집에서 자랐대. 내가 민하준이랑 사람들한테 인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여자애가 달려와서 나를 보면서 뭐라고 한 줄 알아?"한유라가 콧방귀를 뀌더니 차가운 증오심을 드러냈다."불여우? 그래, 그건 괜찮아. 그런데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민하준이 먼저 아이랑 따질 필요 없다는 말을 하는 거야. 17살이 무슨 애야? 웃기지도 않지. 예전이었으면 17살에 애도 몇이나 낳았을 거야, 정말 걔네 가족들은 다 바보가 틀림없어."그 말을 들은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래, 그건 그렇다 쳐, 내가 그 아이를 무시하고 지나쳤는데 돌아갈 때, 두 사람이 나누는 얘기를 들은 거야. 글쎄 민하준 와이프가 아직 그 집에서 지내면서 사모님 행세를 하고 있다는 거야. 이혼은 아예 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럼 나는 뭐야? 세컨드? 불여우?"말을 하던 한유라가 다시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민하준은 그 여자애한테 입단속을 시키고 있더라고, 나한테 이 얘기를 절대 하지 말라고 하면서, 내가 찾아가서 소란을 피울까 봐 걱정이 된다고."한유라가 눈물과 함께 술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넘겼다."내가 소란을 피운다고? 내가 뭐 얼마나 바보 같아야 그런 짓을 하겠어? 민하준 와이프 찾아가서 사모님 자리 내놓으라고 할까 봐? 나를 뭘로 보고 있었던 건지.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왜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드는 거야? 나를 왜 남의 가정을 파탄 낸 그런 사람으로 만드는 거냐고? 분명 민하준이 이혼을 했다고 하면서 나를 찾아와서 다시 만나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