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라면 no people가 1위 차량을 추월하는 건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1위 차량 레이서도 드디어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기 시작했다.저 지구력과 스피드, 보통 내기가 아니네...다음 순간, 도로의 폭이 확 넓어지고 no people가 조용히 속도를 높였다.추월을 코앞에 둔 그때, 1위 차량이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no people기 왼쪽으로 움직이면 1위 차량도 왼쪽으로, no people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1위 차량도 오른쪽으로 향했다.AI 자율 주행의 가장 큰 장점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수치를 분석하고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 따른 최적의 결과값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하지만 얼핏 완벽해 보이는 AI에게도 아주 큰 단점이 있었다.바로 승부욕이 없다는 것이었다.계산 능력은 압도적이지만 적어도 현단계의 AI는 자주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즉, 운전을 하고 있지만 자신이 왜 운전을 하는지 왜 이겨야 하는지를 능동적으로 생각할 수 없으며 그저 닥친 상황에 따라 대응을 할 뿐이다.마지막 100m를 남겨두고 1위 차량은 드디어 미꾸라지식 주행을 멈추었다. 기회를 잡은 no people가 속도를 올리려던 그때, 1위 차량은 미친 듯이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목적지의 바로 앞쪽은 수백미터 낭떠러지인 벼랑, 결승선을 통과하기 위해 속도를 높여야 하면서도 떨어지지 않기 위해 감속할 준비도 충분히 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하지만 1위 차량은 마치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라는 듯, 오늘 대회의 우승만 거둘 수 있다면 저 벼랑 밑으로 추락해도 좋다는 듯 미친 듯이 질주를 이어갔다.드론을 통해 전달되는 영상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주먹을 꽉 쥐기 시작했다.1위 차량의 질주와 스킬은 레이싱 매니아들의 피를 뜨겁게 끓게 하기에 충분했고 그의 엔진 소리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신경을 흔들었다.1위로 결승점을 통과한 차량이 벼랑과 약 2m 정도 거리를 남겨두고 드디어 멈춰섰다.차량이 멈춰설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던 관객들이 다음 순간 미친 듯이 포효하기 시작했다.n
한편 회의실.임춘식이 초상 맞은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있다.“이럴 수가...”분명 그가 이길 수 있었다. 그 흰색 차량이 미친 듯이 달리지만 않았다면 분명 그의 승리였을 텐데...반면 소은정은 이 결과를 진작 예상하고 있었던지라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AI에게 자주적인 정신력을 부여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인간의 승부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극한의 환경에서 인간의 대뇌는 AI 시스템처럼 민첩한 반응은 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단 한 번의 경기 결과를 위해 모든 걸 내던질 수 있는 승부욕과 뜨거운 심장이 있다.커피를 한 모금 마신 소은정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2억. 입금하는 거 잊지 마요.”말을 마친 소은정이 핸드백을 챙기고 일어섰다.테스트는 나름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치렀다. 비록 레이싱에선 1위를 거두지 못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재미 요소를 위해 임시로 끼워넣은 것뿐.적어도 현단계 AI 자율 주행이 갖추어야 할 요소는 모두 갖추었으니 레이싱 경기에서 졌다고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임춘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대표님, 식사 같이 하시죠. 어차피 저도 곧 퇴근시간이고요.”그리고 고개를 돌린 임춘식이 박수혁을 향해 끊임없이 눈을 깜박였다.뭐 박수혁은 그런 임춘식의 호의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듯 여전히 무표정한 모습이었지만 말이다.소은정도 한 발 더 앞으로 나가며 손을 저었다.“아니에요. 전 집에 가서 먹으려고요.”한편, 임춘식은 꼼짝도 하지 않는 박수혁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아니,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고?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소은정의 손이 문고리에 닿으려던 순간, 지금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박수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내일 성 회장 생일 파티라던데. 너도 갈 거야?”오호... 한 수 남겨두고 있었던 거야?흥미진진한 상황에 임춘식이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박수혁의 질문에 소은정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가야지. 친할아버지 이상으로 가까운
두 사람의 묘한 스킨십을 바라보고 있자니 박수혁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질투라는 감정이 미친 듯이 치고 올라왔다.걷잡을 수 없이 몰려드는 어두운 면을 그저 개방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전동하를 죽여버릴까 생각도 했었다.그런데 그 다음엔?두 사람이 가장 사랑하고 가장 뜨거울 때 전동하를 제거한다면 전동하는 죽은 연인으로서 영원히 소은정의 가슴에 남게 될 것이다.그렇게 전동하가 영원히 소은정에게 특별한 존재로 남게 될 걸 생각하면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아니지... 널 그렇게 만들어줄 순 없어. 그거야말로 내 진정한 패배니까.......한편,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 동안 애정행각을 벌였고 만난 지 5분이 넘어서야 차량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소은정의 시야에 미칠 듯이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는 박수혁의 모습이 들어왔다.하지만 그녀가 의아함을 느끼기도 전, 입금 문자가 도착하고 방금 전 짧은 눈맞춤은 잊은 듯 소은정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오호, 생각보다 빠릿하게 움직여줬네?“뭐가 그렇게 좋아요?”그런 그녀를 힐끗 바라보던 전동하가 물었다.“돈 땄으니까 당연히 기쁘죠.”“누구 돈이요?”“임춘식 대표요.”“은정 씨가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거 보면 나름 꽤 많이 땄나 봐요?”“2억이요. 자, 우리 외식해요, 오늘!”“집에 밥 다 해놨단 말이에요. 다음에요.”전동하의 대답에 소은정이 눈이 커다래졌다.“그렇게나 빨리요? 회사로 간 거 아니었어요?”“별 큰일이 아니었거든요. 전화로 해결했고 난 바로 장 보러 갔었어요.”“와... 진짜 현모양처 그 자체네요.”소은정이 진심으로 감탄했다.그리고 조금 망설이던 소은정이 한 마디 덧붙였다.“마이크 키우면서 이렇게 된 거예요?”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장난기를 느낀 걸까?혀를 차던 전동하가 운전 중에 소은정을 힐끗 바라보았다.“놀리지 말아요. 오늘 저녁에 혼나고 싶지 않으면.”전동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지만 소은정도 쉽게 물러서는 사람이 아니었다.“본가로
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은 한유라뿐만이 아니었다.김하늘, 성강희, 박우혁까지 일렬로 서 있었다.역시 전동하가 문을 열 거라는 건 예상치 못했는지 다들 흠칫했고 그중에서 그나마 빨리 정신을 차린 김하늘이 안쪽으로 들어오며 입을 열었다.“전 대표님도 계셨어요? 그럴 줄 알았으면 안 오는 건데.”그 뒤를 따른 한유라도 거들었다.“그러게요.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반면 성강희는 그를 힐끗 바라보다 코웃음을 친 뒤 집안으로 들어갔다.죄책감은커녕 지금 이 장소에 전동하도 있다는 게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다.그리고 박우혁은 그를 한참 바라보다 성강희에게 속삭였다.“두 사람 아직 안 헤어졌어요?”그 질문에 성강희도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러니까. 아마 곧 헤어지지 않을까?”대놓고 앞담화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전동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다 들립니다.”“알아요.”성강희가 고개를 끄덕였다.난 우리 은정이 절친이자 한때 은정이를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기도 하다고. 전동하의 도발 따위 두렵지 않아.전동하 당신은 우리 은정이랑 헤어지면 남남이지? 난 평생 우리 은정이 친구일 거거든?박우혁이 가식적인 표정으로 전동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처음 댁에 찾아뵙는 건데 선물 하나 안 챙기고 죄송합니다.”하지만 말과 달리 안쪽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에는 죄책감 따위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당당했다.주위를 둘러보던 네 사람의 시야에 베란다에 있는 소은정의 모습이 들어오고 인기척을 느낀 소은정이 그들을 향해 식지를 내보였다.아, 일 얘기 중이구나.소은정의 제스처를 바로 캐치한 그들이 고분고분 식탁 앞에 앉았다.한편 이 상황에 가장 머리가 아픈 건 바로 전동하였다.휴, 어쩌겠어. 여친 절친은 달래라고 있는 존재인걸...그는 비서에게 식자재를 좀 더 구매하라고 분부한 뒤 술 냉장고에서 술 몇 병을 꺼냈다.순간 성강희의 눈이 반짝였다.“샤또 디켐이네요? 오,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술은 은정이한테도 아까워서 못 주는 거 아니에요?”
곧이어 소은정의 시선이 박우혁에게 향했다.김하늘, 성강희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박우혁은 일 때문에 바쁠 텐데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지?“대스타님, 요즘은 한가하신가 보네요.”소은정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박우혁이 싱긋 웃었다.“왜 안 바쁘겠어. 나 지금 제작자로 일하고 있는데... 연예계 바닥도 참... 답답하더라. 인기 많을 땐 다들 다가오더니 조금 시들해지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뒷담화나 하고 말이야.”“왜? 왜 널 욕하는데?”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말하자면 길어...”전동하를 도와 식탁에 음식을 내려놓던 김하늘이 싱긋 웃었다.“왜겠어. 우혁 씨가 출연 중인 예능에서 한 여자 연예이랑 비공식 커플 같은 관계로 있었다가 다른 여자 연예인을 병원에 데려다주는 사진이 찍혔거든. 지금 완전 바람둥이라고 욕 제대로 먹고 있지 뭐.”저번에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수척해진 얼굴의 박우혁이 고개를 저었다.“아니. 프로그램에서 서로 놀리고 장난치는 건데 그걸 진짜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진짜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난 그 여자랑 무슨 사이라고 단 한 번도 인정한 적 없어. 다들 그냥 스스로 상상해 낸 거라고.”팬들은 조금의 빌미만 보여도 사귀는 것 같다면서 온갖 증거를 짜깁기하는 능력이 아주 특출한 단체였다.그래서 요즘 남자 연예인들은 아무리 예능이라도 여자 연예인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관례처럼 전해지고 있었다.관객의 기대가 높아질 수록 리스크도 더 커지니까.반면, 박우혁과 엮인 그 여자 연예인은 신인이라 노출 포인트를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그래서 내키진 않았지만 다들 이 바닥에서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기에 침묵으로 묵인했다.그런데... 그저 몸이 불편한 다른 여자 연예인을 병원에 데려다주는 모습이 사진 찍히며 여론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거의 국민 바람남으로 낙인찍혀버린 박우혁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일낙천장.뭐라고 해명을 하려고 해도 그럼 왜 진작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냐며.지금 사고가 터지니
오히려 김하늘이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은정아, 너네 오빠가 그 말을 들었으면 연습 시간에 몰래 네 선물을 사러 갈까 말까 망설이지도 않았을 거야.”소은정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직도 망설이고 있다니!한편, 한유라가 간식을 챙겨오며 대화에 끼어들었다.“네 오빠 정도면 조건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지. 그때는 팬들이 지금처럼 변태스럽지도 않았고. 연예인의 사생활을 존중해 줬잖아. 사생활 때문에 연예인을 비난한 적도 없고. 지금처럼….”박우혁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자신이 시기를 잘못 타고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식사 준비를 마친 전동하가 사람들을 불렀다.“밥 드세요….”오늘 준비한 메뉴는 샤부샤부였다.그들은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이었다.카메라가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박우혁도 편하게 식사를 즐겼다.전동하는 잘 익은 소고기를 소은정의 접시에 담아주었지만 소은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별로 만족스럽지 않을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전동하는 그녀의 손을 다독이며 부드럽게 달랬다.“오후에 일본에서 금방 보내온 소고기예요. 스테이크로 안 만들어도 맛있어요. 한번 먹어볼래요?”거의 어린아이를 달래는 수준이었다.박우혁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사람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소은정은 디저트도 좋아하고 과일도 좋아하지만 유독 고기를 싫어했다.세 사람은 그녀가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다.그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소은정은 한참 고민하다가 작은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그들은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소은정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기를 삼키고는 말했다.“괜찮네요. 입에 살살 녹아요. 느끼하지도 않고 딱 좋아요.”전동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맛있으면 많이 먹어요.”그는 또 고기 몇 점을 집어 그녀의 접시에 놓아주었다.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격식 차릴 필요 없으니 많이 드세요….”격식을 차릴 생각도 없었지만 눈앞에서
소은정은 안간힘을 써서 한유라와 김하늘을 소파에 옮겼다.한유라는 취해서 깊게 잠들어 있었다.그나마 멀쩡한 김하늘도 혀 꼬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많이 마셨네. 이제 집에 갈래….”놀란 소은정은 다급히 그녀를 말렸다.“가긴 어딜 가? 이 꼴을 해서 보내면 나중에 우리 오빠한테 무슨 소리를 들으라고!”김하늘이 몽롱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아. 네 오빠한테 전화한다는 거 깜빡했어. 매일 밤 전화하기로 했는데….”말을 마친 그녀가 휴대폰을 꺼냈다.‘제대로 취했네.’소은해에게 전화를 건 김하늘은 오늘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했다.“오빠, 오늘 은정이네 집에서 술 마셨어요. 못 믿겠으면 은정이 바꿔줄까요?”소은정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아들었다.“내 선물 잊지 마! 안 그러면 얘 길바닥에 버릴 거야!”소은해가 콧방귀를 뀌더니 경고의 말투로 말했다.“그러기만 해봐? 절대 혼자 집에 보내지 마. 혼자 나가지 않게 네가 꼭 데리고 자라고. 알겠지?”전화를 끊은 소은정은 김하늘을 소파에 눕혔다.하나, 둘, 셋…한 명은 어디 갔지?놀란 그녀가 허둥지둥 거실을 두리번거렸다.“우혁 씨는요?”전동하는 자신의 팔에 동동 매달린 성강희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그가 아무리 밀어내도 상대는 껌딱지라도 된 것처럼 계속 들러붙었다.“조금 전까지 있었는데, 다른 방에 가 볼래요?”소은정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쥐어뜯으며 화장실로 갔지만 거기에도 없었다.그녀는 곧바로 서재로 갔지만 거기도 마찬가지였다.손님방까지 뒤졌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마지막으로 그녀는 침실 문을 열었다.박우혁은 그녀의 침대에서 이불을 덮고 깊게 자고 있었다.소은정은 한숨을 내쉬며 문을 닫았다.“찾았어요?”전동하가 성강희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물었다.소은정은 한숨을 쉬며 침실을 가리켰다.“침실에서 자고 있더라고요. 내일 사람을 시켜서 청소하죠?”아무리 전동하가 자상해도 다른 남자가 잤던 침대까지 청소할 것 같지는 않았다.전동하도 알겠다는 듯이 고
전동하는 오늘 밤 모임이 그녀의 남자친구로서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왜 그녀는 이토록 그와 밤을 같이 보낸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들킬까 봐 꺼리는 걸까?사람들에게 그들의 관계가 이 정도로 깊어졌다는 것은 알리기 싫었던 걸까?혹시 그녀는 언제든 이 관계를 끝낼 수 있게 방어선을 치고 있는 건 아닐까?소은정은 그제야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만약 그녀의 가족들 귀에 들어간다면 오빠들이 전동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 뻔했다.하지만 점점 빛을 잃어가는 전동하의 눈빛을 보자 너무 가슴이 아파서 안아주고 싶었다.그녀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전동하는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부드럽지만 해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쉬어요. 이만 올라갈게요.”여전히 담담하지만 공허한 말투가 소은정의 가슴을 찔렀다.냉랭하게 바뀐 그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소은정은 순간 당황했다.그가 이 문을 나서는 순간 두 사람의 관계가 끝나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그녀는 슬리퍼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달려가서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전동하가 멈칫하더니 뭔가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놔요.”소은정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고개를 흔들었다.많이 화가 났네.전동하는 그녀의 손을 다독이고는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올라가야 하니까 이거 놔요.”아까보다는 많이 화가 풀린 목소리였지만 소은정은 놓을 수 없었다.그녀는 등 뒤에서 그를 꽉 끌어안은 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싫다면요?”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지만 그래도 그에게 상처 주는 것보다는 나았다.그런 걱정 따위, 개나 주라지!전동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정말 안 놓을 거예요?”소은정은 더 힘을 주어 그를 끌어안을 뿐이었다.그 순간, 눈앞이 핑그르르 돌아가더니 전동하가 그녀의 허리를 잡아 들어 올렸다. 그는 약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돌아서서 그녀의 침실로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