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돌적이면서도 상처를 쓰다듬는 듯 부드러운 키스에 전동하는 정신이 아찔해졌다.전동하가 또다시 더 깊은 키스를 시작하려던 그때, 소은정이 그를 거칠게 밀어냈다.소은정이 바로 안전거리 밖으로 물러섰다.“선 지킨다고 했잖아요.”방금 전의 약속을 떠올리며 전동하는 이미 눈동자를 물들인 욕망을 지워내려고 애썼다.“그래요. 은정 씨 말대로 해요.”오랜만에 만나는 소은정의 모습, 커플들이 왜 찐득한 스킨십으로 사랑을 얘기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은 전동하였다.단순한 육체적인 욕구가 아니라 스킨십을 통해 영혼이 서로 통하는 느낌, 서로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얘기할 수 있는 방법이 스킨십 말고는 더 떠오르지 않았다.은정 씨는 알고 있을까? 저 미소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이 방에 나뿐이라서 다행이야. 저 미소는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지 않으니까.뜨거운 시선을 겨우 돌린 전동하가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떼어냈다.은정 씨가 좋다고 했으니까 당연히 가지고 가야겠지.그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소은정이 문득 물었다.“오늘 내가 올 줄 몰랐죠?”“저번에 통화할 때 미국에 들어올 거라고 했잖아요.”무덤덤한 그의 반응에 소은정이 입을 삐죽거렸다.“그래도 언제 온다곤 말 안 했잖아요. 어떻게 알았어요?”“은정 씨가 지분을 인수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예상하고 있었다고나 할까요?”예상치 못한 대답에 소은정이 고개를 들었다. 무거운 그림을 들어서인지 그의 탄탄한 팔 근육이 더 부각되었다.“지분을 인수한 주주들 중에 동하 씨 지지세력도 있었던 거예요?”“세력이라고 할 것까진 없고. 뭐... 전기섭한테 불만을 품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랄까요?”어쩐지...소은정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빈틈없는 계획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진작 알고 있었을 줄이야.“이호성 부대표... 쓸만한 사람인가요?”“가지고 있던 지분 10%, 은정 씨한테 전부 양도한 거 아니죠?”전동하가 고개를 돌렸다.“네. 다른 주주들은 높은 가격을 제시하니까 순순히 내놓았죠. 전인그룹이 곧 무너질
다음 순간, 전동하의 입가에 피어오른 미소가 완벽히 사라졌다.“웃기죠? 이거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거 처음이에요. 아마 아버지도... 제가 알고 있는 건 모를 걸요? 우리 엄마가 왜 완전히 미쳐버렸는 줄 알아요? 아버지가 절 없애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어요. 날 이용해서 아버지 마음을 돌릴 생각이었거든요. 마지막 희망까지 사라지니까 모든 걸 놓아버린 거죠.”이어지는 충겨적인 말에 소은정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가족들의 사랑 없이 자랐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기껏해야 구박데기 정도인 줄 알았다.그런데... 친아버지 손에 죽을 뻔했다니.특히 어두운 과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저 덤덤함에 가슴이 찢어질 듯했고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어떻게 저런 걸 다 견디면서 살아온 걸까? 언급하기 조차 힘든 잔인한 어린 시절을 겪으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바르게 자란 걸까?말없이 그를 바라보는 소은정은 복잡미묘한 감정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내 행운을 반 정도라도 나눠줄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마지막 그림까지 떼어내고 혹시나 망가질까 조심스럽게 바닥에 그림을 내려놓은 전동하가 고개를 돌렸다.고개를 돌린 그의 시야에 어두운 표정의 소은정의 얼굴이 들어왔다.그 모습에 오히려 더 당황하던 전동하가 부랴부랴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많이 놀랐어요? 미안요. 다시는... 이런 얘기 안 할게요.”여전히 그녀를 먼저 생각하는 전동하의 표정에 눈시울이 붉어진 소은정이 와락 그의 품에 안겼다.당황한 듯 움찔하던 전동하의 손이 천천히 그녀의 어깨에 닿았다.따뜻한 온기가 느껴졌지만 소은정의 기분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어도 이렇게 불행해질 수 있구나... 난 어떻게 저렇게 단단한 사람을 만나게 된 걸까? 역시 난 운이 좋은 것 같아.한동안 침묵이 이어지고 전동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괜찮아요. 이제 다 지난 일이에요.”소은정은 억지로 눈물을 참아냈다. 울지 마... 여기서 울면 동하 씨가 너무 비참해지잖아. 값싼 동정은 집어치워.하
한참이 지난 뒤에야 감정을 추스른 소은정이 고개를 들었다.하지만 여전히 빨간 그녀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던 전동하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귓볼을 만지작거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휴, 안 되겠다. 서프라이즈 선물 더 빨리 줘야겠네요.”전동하가 옆에 있던 가방에서 파일을 꺼내자 소은정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임영숙이 양도한 지분 20%잖아요?”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더 읽어봐요...”이에 아래 내용을 더 읽던 소은정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나한테 다시 넘긴다고요?”“사실... 은정 씨가 인수받은 지분이 모자라거나 전인국이 다른 주주들을 매수해서 은정 씨가 불리해질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미리 준비해 둔 거예요.”“아, 진짜... 서프라이즈 맞네요.”코를 훌쩍이던 소은정이 활짝 웃었다.“그런데 은정 씨가 준 서프라이즈가 더 컸죠. 정말 깜짝 놀랐어요.”묘한 미소를 짓는 그의 눈앞에 방금 전 회의장에서 소은정이 보여줬던 활약상이 펼쳐졌다.그의 생부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전동하를 욕하고 비난할 때 소은정만은 결연히 그의 편이 되어 주었다.오늘 이 은혜... 평생 내가 사랑으로 갚아줄게요.소은정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세웠다.“내가 동하 씨를 위해 쟁취한 것들이에요. 동하 씨는 그냥 안심하고 받으면 돼요.”하지만 전동하는 진심으로 별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그렇긴 한데... 난 이어받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전문 경영인한테 맡기는 것도 좋고요. 전인그룹... 몇 년 사이에 내리막길을 걷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눈독 들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누가 봐도 최적의 대표는 동하 씨예요. 애초에 동하 씨가 받았어야 하는 거니까.”하지만 전동하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저었다.“전 씨 일가의 그 어떤 것과도 엮이고 싶지 않아요.”하지만 소은정은 다시 그의 손을 잡았다.“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무너져가는 전인그룹, 인수해봤자 힘만 들고 좋은 소리도 못 듣겠죠. 하지만... 마이크 생각도 해야
소은정의 계획은 완벽했지만 전동하는 괜히 흙탕물에 발을 들이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의 망설임을 눈치챈 소은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동하 씨더러 전인그룹을 전성기 때로 돌려놓으라는 건 아니에요. 그냥 조금 볼 만한 정도면 돼요. 나도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어요. 사실 인수합병이 가장 간단한 거긴 하지만 몸집이 워낙 크잖아요? 여러 분야를 일일이 인수하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거예요. 잘 안 풀리면 SC그룹에도 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크고요. 그래서 일단 상황 지켜보려고요.”소은정의 설명에 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하지만 나도 그냥 한동안이 다예요. 대충 다 제자리로 돌아오면 전문 경연인한테 맡기려고요. 전 씨 집안을 위해 그렇게까지 많은 걸 해주고 싶진 않아요.”시간이 흘러 증오는 색이 바랬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니까.소은정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이 정도로 수용한 것만으로도 전동하 입장에서는 충분히 노력한 것이라는 걸 소은정도 알고 있었으니까.지금 이 상황을 정상으로 돌리려면 시간과 정성이 많이 필요해. 게다가 전인그룹의 상황에 대해 잘 아는 전문 경영인을 구하는 것도 어려울 테니까 그 동안만이라도 동하 씨가 맡아준다면 오히려 고마운 거지. 그리고 전인국도 당장 움직이기엔 힘들 테니까... 나도 마음을 좀 놔도 되겠어.그뒤로 소은정은 약속대로 전인그룹에 관한 업무를 하나둘씩 전동하에게 넘겼고 전동하도 100% 내키진 않았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전동하가 회사로 돌아오니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누군가는 전동하 역시 전 씨 일가의 사람이니 근본이 바뀐 것은 아니라고, 전동하가 경영을 맡는다 해도 위기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고 누군가는 전동하가 전 씨 일가 사람들과 사이가 남보다 못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뭔가 바뀌긴 할 거라고 확신했다.그리고 가장 많이 바뀐 건 전 씨 집안 사람이었다. 다들 문턱이 닳다시피 전동하를 만나러 왔고 혈연 등을 들먹이며 어떻
더 안 보내면 은정 씨 가족들이 내 의도를 의심하게 될지도 몰라.적어도 그녀의 가족들에게는 좋은 이미지를 남겨주고 싶으니 고분고분한 척이라도 할 수밖에.며칠 후 공항.체크인을 앞둔 소은정이 아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전동하의 팔을 끌어안았다.VIP 대기실이라서 망정이지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정말 기겁했을 것이다.소은정은 누가 봐도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고고한 이미지를 이어가고 있었다.그런데 이렇게 남자에게 매달리고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라니.도도한 여신, 남자의 마음을 후리는 팜므파탈이라는 대외적인 타이틀과는 완전히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바라보는 우연준이 고개를 저었다.세상에, 참 혼자 보기 아까운 광경이야.부러움과 조금의 한심스러움이 섞인 우연준과 달리 뒤에 서 있는 최성문의 무표정한 얼굴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지켰다.잠시 후, 세기의 이별을 마치고 드디어 비행기에 탄 소은정은 바로 잠을 청했다.난기류 때문에 비행기가 흔들리자 그제야 눈을 뜬 소은정은 스튜어디스에게 커피 한 잔을 청했다.그녀의 옆에 앉은 우연준이 참았던 질문을 조심스럽게 꺼냈다.“대표님, 얼마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전 대표님이 항상 곁에 계셔서 차마 묻지 못한 게 있습니다.”우연준을 힐끗 바라보던 소은정이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물어봐요.”소은정의 허락에도 한참 동안 입술을 달싹이던 우연준이 겨우 입을 열었다.“전기섭은 지금 사지가 마비된 상황이죠. 식물인간 상태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전인국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자의 세력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다시 복수를 해올 겁니다. 지금은 전동하 대표님이 전인국 회장을 병원에 가둬두고 있다곤 하지만... 장기적인 계획은 아니지 않나요? 전 대표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어느새 잠을 깬 소은정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왜요? 동하 씨가 마음이라도 약해져서 아버지를 풀어줄까 봐 걱정돼요?”“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어쨌든 대
“전동하 그 자식이 여자한테 미쳐선 내 등에 칼을 꽂았어! 배신자 새끼, 당장 전동하 불러와!”“소은정... 소은정 그 여자도 내가 가만히 안 둘 거야. 내가 여기서 나가기만 해봐. 바로 그 계집부터 죽여버릴 거라고.”“내가 여기서 무너질 줄 알아? 전인그룹은 내 거야. 전동하 그 자식이 뭔데 내 걸 빼앗아가는 건데!”아버지의 발악을 듣고 있던 전동하는 말없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소은정과 함께 있을 땐 단 한 번도 담배에 손을 대지 않았던 전동하였다.소은정이 담배 연기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하지만 이제 곁에 소은정도 없고... 혼자서 아버지를 마주하려니 왠지 지치고 힘이 풀렸다.담배가 거의 다 타들어갈 때쯤 의사가 병실에서 나오고 진정제라도 투여한 건지 광기 어린 욕설이 점점 잦아들고 있었다.“전 대표님?”그제야 의자에서 일어선 전동하가 힐끗 병실 안쪽을 들여다 보았다.“좀 괜찮아진 겁니까?”“네. 진정제를 투여했고 아마 곧 잠이 드실 겁니다. 이제 들어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고맙습니다.”전동하의 인사에 의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재벌가 자제임에도 조금의 거만함도 느껴지지 않는 전동하에게 병원 직원들 모두가 이미 푹 빠진 상태였다.잠시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간 전동하가 침대 쪽을 바라보았다.공허한 눈동자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전인국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반면 조용히 의자에 앉은 전동하는 평소 소은정에게는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어쩌면 그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르는 차가운 표정을 드러냈다.약 10초 정도가 흐른 뒤에야 전동하가 들어왔다는 걸 눈치챈 전인국은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약기운에 결국 다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전동하를 바라보는 전인국의 눈은 누가 봐도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눈빛은 아니었다.“이 배신자 새끼... 감히 날 병원에 가둬? 날 평생 이곳에 가둬둘 셈이야? 난 네 아버지야. 네가 인정하든 안 하든 네가 내 아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마지막 이성
의사가 병실을 나선 전동하를 맞이했다.“대화는 마치셨습니까?”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요양병원에 연락해 뒀습니다. 잠 들면 그쪽으로 이송하세요. 아, 전기섭도 그쪽으로 옮기시고요. 두 사람은 매일 면회 1시간 이 정도로 제한하는 게 좋겠습니다.”그의 말에 의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전 대표님은 그렇다 치더라도 회장님은 워낙 상대하기 힘들다 보니...”하지만 전동하의 서늘한 눈빛에 의사는 결국 말을 잇지 못했다.“그럼 전기섭 그 자식이라도 잘 감시하세요. 그리고 전인국 회장이 요양병원을 나서는 순간, 전기섭에 대한 치료는 중단될 거란 말도 잊지 마시고요.”전기섭은 현재 식물인간 상태, 식사, 배설까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여기서 약물 치료를 멈춘다는 건 죽이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으니 전인국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 전동하는 확신했다.워낙 아들 사랑은 각별하신 분이니까.“네, 알겠습니다.”의사가 먼저 자리를 뜨고 전동하도 곧 병원을 나섰다.미리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전인그룹 정리를... 이렇게나 서두르시는 이유는 하루빨리 귀국하여 소은정 대표님을 만나기 위함입니까?”비서의 질문에 전동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3초간의 침묵 끝에 비서가 화제를 바꾸었다.“전 회장님은 어떠십니까? 회사도 빼앗기시고 마음이 많이 헛헛하실 것 같은데.”그제야 전동하가 입을 열었다.“그 와중에도 전기섭 걱정은 끔찍하시더군요. 아무리 미워도 형이 아니냐면서 전기섭만큼은 내버려두라던데요? 참... 전기섭 그 자식... 눈 달리고 귀 달린 사람이라면 다들 구제불능 양아치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왜 아버지는... 전기섭 그 자식한테만 그렇게 끔찍하신 걸까요?”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해도 의아할 뿐인 질문이기도 했다.전인국은 뼛속까지 이기적인 인간이라 사생아인 그에게 차가운 건 충분히 이해가 갔다.아니, 어찌 보면 가장 떳떳한 아들인 마이크의 아버지에게도 그의 잔인함은 공평했다. 그런데 왜 전기섭한테만큼은
이에 전동하가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지금 미국은 아침이에요.”전동하의 말에 소은정이 이마를 탁 쳤다.아, 아직 잠이 덜 깼나 보다. 시차가 있다는 걸 깜박했네.“꽤 오래 잤네요? 배고프겠다. 얼른 내려가서 밥 먹어요.”전동하의 달콤한 목소리에 소은정은 처음으로 이런 기분이 들었다.아, 이 남자에게 의지하고 싶다.“동하 씨는 언제 귀국할 수 있어요?”“은정 씨가 준 미션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잖아요.”한숨을 쉬는 전동하를 향해 소은정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지금 후회해도 이미 늦은 거 맞죠?”“당연하죠.”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소은정은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었다.동하 씨한테 맡기지 말고 그냥 대충 아무한테나 맡길걸... 전인그룹이고 뭐고 그냥 다 때려치고 오라고 할걸...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소호랑이 두 발로 그녀의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꼬리를 흔들며 소은정의 발치에서 애교를 부렸다.잠시 후, 드디어 통화를 마친 소은정이 소호랑을 안고 1층으로 내려갔다.“아빠는 주무셔?”“아니요. 엄마가 뭐 먹는 거 보고 주무신댔어요.”소호랑의 말에 소은정이 발걸음을 재촉했다.역시나 소호랑의 말대로 소찬식, 소은호 모두 식탁 앞에 앉아있다.두 과묵한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왠지 주방 분위기가 축 처진 것처럼 보였다.“으아, 뭘 이렇게 많이 차렸어요. 저녁에 이렇게 많이 먹으면 살찌는데.”배가 고픈 건 맞았지만 소은정은 몸매 관리가 더 중요했다.그녀의 말에 소찬식이 눈을 흘겼다.“우리도 먹어야 할 거 아니야. 나랑 은호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 줄 알아? 무슨 잠을 그렇게 오래 자.”“그럼 깨우지 그러셨어요.”어깨를 으쓱하는 소은정을 향해 소은호도 한방 날렸다.“안 깨웠겠어?”뭐야. 깨웠는데 내가 못 들은 거야?이때 집사 아저씨도 다가왔다.“깨셨어요? 배고프시죠. 어서 식사하세요.”식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소은정은 주저없이 식탁 앞에 앉았다.그녀가 국부터 한 술 뜨려던 그때, 소찬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