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의 대답에 전동하도 살짝 안심하긴 했지만 왠지 찜찜함은 지울 수 없었다.어젯밤에는 분명 평소와 달랐단 말이야... 다른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뭐지?소은정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과 달리 전동하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음침했다.“은정 씨, 난 은정 씨가 물으면 뭐든 솔직하게 말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은정 씨도 나한테 그 무엇도 숨기지 말아줘요. 네?”전동하의 진지한 얼굴을 바라보던 소은정이 잠깐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술 취했는지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고요. 동하 씨가 파산 위기라는 소리도 그 인간한테서 들었고... 그렇게 힘든 상황이면서 나한테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동하 씨한테 왠지 심통이 났었나 봐요... 미안해요...”말을 하면 할 수록 소은정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전동하의 눈동자에도 죄책감이 서렸다.“미안해요. 내가 진작 말해 줬어야 하는 건데.”“솔직히 걱정보다는... 나한테 숨긴 게 괘씸해서 화냈던 거예요.”그녀의 잔머리를 넘겨주던 전동하의 손이 살짝 떨려왔다.“정말 걱정 안 했다고요? 나 파산하면... 은정 씨랑 결혼 못할 수도 있는데요?”어느새 장난스럽게 변한 전동하의 목소리가 소은정의 귀를 파고들고 그녀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심장아, 나대지마... 거리도 가까운데 진짜 들키면 어쩌려고.빨개진 귀를 괜히 만지작거리던 소은정이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누가 동하 씨랑 결혼해 준대요? 그리고... 최악의 경우 정말 동하 씨가 파산한다 해도 내가 동하 씨 하나 못 먹여 살릴까 봐요?”왜 이래 나 소은정이야. 내가 내 남자 한 명 못 케어할까 봐?소은정의 대답이 예상 밖이었는지 전동하가 웃음을 터트렸다.“아, 내가 깜박했네요. 은정 씨가 나보다 더 부자였죠? 말 하는 것만 봐서는 거의 세계 1위 부자인데요?”“세계 1위는 좀 오버죠...”...소은정은 두 시간 밖에 자지 못한 전동하가 쓰러질까 봐 얼른 쉬라며 등을 떠밀었지만 소은정의
전동하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이 영화는 이글 엔터가 투자한 작품으로 관객수는 그녀의 수익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다.그러니까 이 정도 연기의 구멍은 관객들이 너그러이 넘어가길 바랄 수밖에...“아, 뭐 주제는 신선했어요.”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전동하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풉, 지금 응원해 주는 건가? 귀엽네...영화를 다 보고 나니 어느새 오후 4시.시간을 확인한 소은정이 물었다.“정말 안 들어가봐도 돼요? 여기 며칠이나 있을 예정이야?”“내가 빨리 가길 바라요? 아니면 그 반대인가?”틈만 나면 그녀의 마음을 살랑이게 만드는 전동하의 여우짓과, 여우짓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항상 설레이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뒤이어 전동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아쉬워도 어쩔 수 없어요. 오늘 저녁 비행기로 바로 미국 들어갈 거예요. 한... 7시간 정도 남았네요.”미국이라는 단어에 소은정이 눈을 반짝였다.“미국이요? 전기섭 만나러 가는 거예요?”골치 아픈 듯 이마를 짚고 있던 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얼마나 의기양양해 하고 있는지 내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요.”이때 스마트 집사가 목소리를 냈다.“대표님, 문 밖에 약 181cm인 남성이 도착했습니다. 문 열까요?”이에 전동하가 소파에서 일어섰다.“내가 나가볼게요.”전동하가 문을 열고 곧 사람들의 발걸음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다.“대표님, 물건은 어디에 둘까요?”“현관에 둬요.”무슨 물건인가 싶어 현관으로 가보니 온갖 명품 브랜드 옷가지와 백이 현관을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채우고 있었다.끝도 없이 들어오는 물건들에 소은정의 입에 떡 벌어졌다.한참 뒤에야 물건을 모두 집에 들인 비서가 전동하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이게 마지막입니다. 그럼 이만.”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전동하가 소은정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마음에 들어요? 은정 씨가 적어준 물건들인데.”쇼핑백을 대충 흝어본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물건들 중 일부는 분명 그녀가 부
뭐야? 혼자 가버린 거야?휴대폰을 확인하려던 그때 소은정은 휴대폰 아래에서 쪽지 하나를 발견한다.“너무 곤히 자서 안 깨웠어요. 은정 씨가 잘 자는 게 나한테는 최고의 배웅이니까. 잘 자요.”쪽지 내용을 확인한 소은정은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휴대폰을 켜고 카톡을 켰더니 아침 5시 경 전동하에게서 문자가 와있었다.“도착했어요. 그쪽은 새벽이겠네요.”소은정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좋은 아침이에요.”전동하가 다녀간 뒤로 조금 우울했던 소은정의 기분은 다시 맑음으로 바뀌었다. 오늘도 회사로 나가지 않은 그녀는 전동하가 선물한 물건들을 하나둘씩 살펴보았다.유라랑 하늘이한테 선물로 줘야 하나...하늘이는 촬영 중이라고 했지...잠깐 생각하던 소은정이 옷과 백들을 전부 차로 옮겼다.참나, 안목이 좋았다 나빴다 할 수도 있는 거야?잠시 후, 촬영장.김하늘은 노점상에서 파는 물건처럼 대충 쌓아놓은 명품백들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아주 차에 집 한 채를 싣고 다니는구나...“지금 뭐 하는 거야? 돈 자랑?”소은정이 그녀를 흘겨보았다.“뭐래? 나 잘 사는 거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내가 왜 굳이 돈 자랑을 해?”조수석에 쌓아놓은 백을 가리키던 소은정이 말을 이어갔다.“어차피 내 방에도 다 못 둘 거 같고 촬영할 때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너한테 주려고. 직접 들든 뭘 하든 네가 알아서 해...”“네 옷방이 얼마나 큰 지 내가 다 아는데 뭔 소리야.”그냥 옷방에 두고 싶지 않은 거겠지...“아무튼 부탁 좀 하자... 응?”소은정이 애교를 부리며 웃자 김하늘은 결국 소품팀에게 전화를 걸었다.소품팀 스태프들도 차에 가득 쌓인 명품들을 보고 혹시 레플리카가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이것 좀 옮겨줘요. 배우들 필요한 씬에 적절하게 사용하든지 하고 남은 건 나눠서 가져요.”“아니... 이것들 다 레플리카 아니에요? 진짜 정품이랑 똑같네요.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 연락처 좀 주세요. 앞으로 필요하면 연락하게요.
태한그룹.박수혁 사무실의 분위기는 유난히 무거웠다.소은정과 어떻게 다시 잘해 보면 좋을까를 생각하는 요즘, 그녀와의 관계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하던 그의 기분은 이제 완벽한 저기압으로 변해 버렸다.온몸을 휘감는 차가운 분위기에 직원들은 물론이고 항상 옆에서 그를 모시는 이한석마저 숨소리 하나하나까지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우울함과 절망감에 휩싸인 박수혁과 그의 맞은편에 앉아 헤실헤실 웃고 있는 강서진.두 사람의 상태는 천국과 지옥을 지키는 신과도 같았다.오한진은 두 사람의 상태를 살피며 박수혁 사무실에 있는 물고기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그 동안 어찌나 먹여댔는지 수천만 원에 달하는 물고기 두 마리가 배가 불러 죽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박수혁은 아직 눈치를 못 챈 듯했지만...이때 강서진의 웃음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형, 이럴 때일수록 마음 급하게 먹어야 해. 여자한테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다니까. 추하나 좀 봐. 지금 고분고분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잖아?”그의 말에도 박수혁의 눈동자는 차갑기만 할 뿐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강서진이 승리의 기쁨을 공유하기 위해 억지로 사무실로 쳐들어 오지 않았더라면 박수혁도 그를 만나주지 않았을 것이다.속 시끄럽게 말이야...저번에 술에 취한 뒤 마음이 조급해져 그런 짓을 저지른 걸 생각하면 아직도 후회가 밀려왔다. 그의 추악한 마음을 엿보았는지 소은정에게서는 아직도 아무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그리고 조용할수록 그의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질 따름이었다.이한석에게 우연준에게 연락을 취해 보라고도 해보았다.공적인 일을 핑계로 대면 그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말이다.뭐 소은정은 결국 모든 걸 거절했지만.소은정이 그에게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는 걸 박수혁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다 강서진 저 자식 때문이야. 이상한 아이디어나 내고 말이야...여전히 침묵하는 박수혁의 눈치를 보던 오한진이 용기를 내 한 마디 물었다.“강 대표님, 사모님께서 임신하셨다면서요?”오한
오한진의 말을 들은 강서진이 흠칫하다 웃음을 터트렸다.커피잔을 내려놓는 그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형이 마음만 먹어봐. 증거를 남겨둘 리가 없잖아? 그리고 정말 소은정이 다른 남자 애를 가져봐. 전동하가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결국 떨어져나갈 거라고.”그의 말에 박수혁의 미간에 확 주름이 졌다. 그의 눈치를 살피던 오한진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소은정 대표님은 그렇게 순종적인 분이 아니세요. 정말 순종적인 분이셨다면 애초에 이혼도 안 하셨겠죠. 사모님은 성격도 훨씬 좋으시니까 가문 세력도 SC그룹보다 떨어지니 여러가지로 고민할 일이 많으시겠죠. 그리고 사모님께서 재결합을 허락하시긴 했지만 진심으로 대표님을 다시 사랑하게 된 건 아닐 수도 있잖아요...”오한진의 말에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오한진이 찬물을 끼얹으니 강서진의 표정 역시 어색하게 굳었다.강서진도 추하나가 진심으로 그를 다시 사랑하게 되어 돌아온 게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그가 장인어른의 사업체도 다시 세워주고 외할머니의 병원비에도 큰 보탬이 되어주니 현실적으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을 것이다.임신은 어떻게 보면... 마지막 결정타 그뿐이었다.비록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른 사람 입으로 들으니 기분이 언짢아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진심이 아니라고?강서진이 피식 웃었다.“진심? 그깟 건 아무 상관없어. 하나만 내 곁에 있다면 지금 마음이 어디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마음은 어차피 나한테 돌아오게 돼있어.”이에 오한진도 조용히 입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어쩌면 저렇게 뻔뻔할까... 우리 수혁 대표님은 저런 방법을 쓰시면 안 되는데...뭐 다행히 박수혁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기만 했지만 말이다.“형...”강서진이 또다시 세뇌 작업을 이어가려던 그때 박수혁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일어나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나 오늘 약속있어. 같이 갈래?”“누구랑 마시는 건데?”“한해그룹...”“아, 됐어, 안 가. 그 영감탱이 노망이 난 건지 굳이 자기 딸을 나한테
소은정을 바라보는 신지연의 눈동자는 마치 자신의 아이돌을 만난 팬처럼 반짝였다.그 뜨거운 눈빛에 부담스러울 정도였으니까.“그러게요. 우연이네요. 난 저기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럼 이만.”소은정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신지연이 또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언니 친구들이요? 우리 합석하면 안 돼요? 제 친구들도 다 언니 보고 싶다고 난리에요!”소은정의 입가에 피어오른 미소가 어색하게 굳었다.뭐 미성년자들이 이 바는 어떻게 들어온 건지 술은 마시는 건지는 딱히 궁금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싶진 않았다.왠지 범죄에 참여하는 기분이랄까?그녀가 자연스레 거절하려던 그때 자신의 친구를 발견한 신지연이 손을 저었다.“야, 나 은정 언니 만났다? 언니가 자기 룸으로 놀러오래. 같이 갈래?”신지연의 말에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내가 놀러오라고 했다고? 얘 좀 봐라. 거짓말 하면서 눈 하나 깜박 안 하네.뒤이어 신지연과 같은 그룹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비슷한 코디의 아이들 대여섯 명이 우르르 몰려왔다.역시... 이게 요즘 애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인 건가...?아이들의 성화에 소은정도 그들과 함께 룸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문을 여니 마이크를 쥔 채 노래실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 한유라와 귓구멍을 막고 있는 김하늘, 성강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다음 순간, 음악이 끊기고 그들의 시선이 문쪽으로 꽂혔다.화려하게 꾸민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룸으로 들어오는 모습에 세 사람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그리고 아이들의 뒤에는 얼굴이 차갑게 굳은 소은정이 서 있었다.“얘... 얘네들은 뭐야?”성강희의 질문에 어색하게 웃던 소은정이 신지연을 가리켰다.“여긴 한해그룹 신 회장님 딸 신지연 씨라고 해. 나랑은 오며 가며 알게 된 사이고 저 애들은 지연 씨 친구.”소은정의 질문에 세 사람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성강희가 재빠르게 소파에서 일어섰다.“아, 나 전화 좀 받고 올게.”스트레스 풀려고 온
신지연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니까요. 며칠 전에는 강서진이랑 선을 보라고 하지 않나. 어떻게 하나밖에 없는 딸을 바람둥이 이혼남이랑 엮을 수 있어요?”강서진?익숙한 이름에 소은정과 한유라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뭐 다행히 강서진 그 자식이 전 와이프랑 다시 재결합을 한다더라고요. 한 고비 넘겼죠 뭐.”신지연이 의기양양한 말투로 말했다.“회장님은 재혼 생각 완전히 접으신 거예요?”“윤시라 그 여자 때문에 소문 다 났는데 어쩔 수 없죠 뭐. 그리고 아빠 나이도 있고 초혼인 부잣집 딸들이 우리 아빠랑 결혼할 리가 없잖아요?”이때 불쑥 다가온 한유라가 신지연과 쥬스 잔을 부딪혔다.“이 바닥에 이혼하고 외로운 부자 과부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 사람들...”그녀가 말을 끝내기 전에 김하늘이 한유라의 손목을 잡았다.“애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잠시 후, 자기들끼리 좋다고 꺄르륵대던 아이들이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게임해요!”“게임?”“네, 카드 게임 어때요?”하, 카드 게임? 쟤네들이 큰일날 소리를 하네...하지만 그녀가 고개를 젓기도 전에 소녀들이 좋다고 박수를 치는 바람에 소은정 일행도 그들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저 세상 탠션인 그녀들 앞에서 왠지 모르게 기가 빨리는 것만 같았으니까...간단한 카드게임이 진행되고 소녀들은 자신만만하던 기세와 달리 연속 세 판이나 패배하고 말았다.으이구, 애송이들... 너희들이 요구르트나 먹을 때 언니들은 벌써 대학생들이었다고.웃음을 참던 한유라가 제안했다.“다들 아직 미성년자들이죠? 벌칙으로 술은 됐고 소원 들어주기로 하죠?”한유라의 제안에 신지연 일행들이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완벽한 패배였지만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지키려는 듯 신지연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그, 그래요. 소원이 뭔데요?”불안한데...소은정과 김하늘이 불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이미 게임에 완전히 몰입한 한유라가 여유롭게 소파에 기댔다.“이렇게 하죠. 아무
소은정이 여유롭게 뒤를 따르고 복도를 거닐던 신지연과 친구들은 가장 구석에 자리한 룸으로 다가갔다.장난기 가득 담긴 미소를 짓고 있는 한유라와 달리 룸으로 다가갈수록 소은정은 왠지 불안한 예감에 휩싸였다.곧이어 문을 벌컥 연 신지연 일행들이 사람들 앞에서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룸 안에 사람이 있었는지 문을 여는 순간 안쪽에서 소리가 쏟아지듯 흘러나왔다.그리고 잠시 후 잔뜩 화난 남자의 고함소리가 흘러나왔다.“신지연, 너 미쳤어?”소은정과 한유라가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이 목소리... 젊은 사람 목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게다가 신지연을 알고 있다는 건...뒤이어 신지연도 밀리지 않는 기세로 소리쳤다.“왜? 아빠는 괜찮고 나는 안 돼?”아빠...?“너랑 내가 같아. 어디서 여자애가 창피한 줄 모르고...”아빠라는 소리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역시나 방금 전 소리를 지른 남자는 신지연의 아버지 신호민 회장이었다.뒤이어 술잔들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룸안에 있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지연이 씩씩거리며 달려나왔다.“내가 가서 해명해 줄까요?”소은정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 우리가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속에 켕기는 게 있으니까 화부터 내는 거겠죠.”코웃음을 치던 신지연이 말을 이어갔다.“언니, 어차피 이 기분으로 더 놀기도 힘들 것 같고. 저 먼저 갈게요.”이 말을 마지막으로 신지연이 자리를 뜨고 어색해진 분위기에 그녀의 친구들도 슬그머니 바를 나섰다.소은정 일행이 다시 룸으로 돌아오고 한유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신지연 걔도 참 운이 나쁘다니까. 어쩌면 들어간 게 자기 아빠 방이냐.”“너 알고 있었어?”소은정의 질문에 한유라가 손사래를 쳤다.“아니. 대충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건 눈치챘는데 그 사람이 한해그룹 신 회장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소파에 기댄 한유라가 피식 웃었다.“여자애들도 옆에 끼고 노시는 것 같더라. 그게 아니면 그렇게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