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이 여유롭게 뒤를 따르고 복도를 거닐던 신지연과 친구들은 가장 구석에 자리한 룸으로 다가갔다.장난기 가득 담긴 미소를 짓고 있는 한유라와 달리 룸으로 다가갈수록 소은정은 왠지 불안한 예감에 휩싸였다.곧이어 문을 벌컥 연 신지연 일행들이 사람들 앞에서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룸 안에 사람이 있었는지 문을 여는 순간 안쪽에서 소리가 쏟아지듯 흘러나왔다.그리고 잠시 후 잔뜩 화난 남자의 고함소리가 흘러나왔다.“신지연, 너 미쳤어?”소은정과 한유라가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이 목소리... 젊은 사람 목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게다가 신지연을 알고 있다는 건...뒤이어 신지연도 밀리지 않는 기세로 소리쳤다.“왜? 아빠는 괜찮고 나는 안 돼?”아빠...?“너랑 내가 같아. 어디서 여자애가 창피한 줄 모르고...”아빠라는 소리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역시나 방금 전 소리를 지른 남자는 신지연의 아버지 신호민 회장이었다.뒤이어 술잔들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룸안에 있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지연이 씩씩거리며 달려나왔다.“내가 가서 해명해 줄까요?”소은정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 우리가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속에 켕기는 게 있으니까 화부터 내는 거겠죠.”코웃음을 치던 신지연이 말을 이어갔다.“언니, 어차피 이 기분으로 더 놀기도 힘들 것 같고. 저 먼저 갈게요.”이 말을 마지막으로 신지연이 자리를 뜨고 어색해진 분위기에 그녀의 친구들도 슬그머니 바를 나섰다.소은정 일행이 다시 룸으로 돌아오고 한유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신지연 걔도 참 운이 나쁘다니까. 어쩌면 들어간 게 자기 아빠 방이냐.”“너 알고 있었어?”소은정의 질문에 한유라가 손사래를 쳤다.“아니. 대충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건 눈치챘는데 그 사람이 한해그룹 신 회장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소파에 기댄 한유라가 피식 웃었다.“여자애들도 옆에 끼고 노시는 것 같더라. 그게 아니면 그렇게 화
유럽 프로젝트를 마친 전동하는 본진이 있는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 향하는 티켓을 끊었다.월가의 주가가 휘청이며 전동하가 파산할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미국에 있는 그의 부동산들도 경매를 시작했지만...오늘 갑자기 그에 관련한 소문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마치 누군가 일부러 소식을 통제하고 있는 듯 말이다,한편, 한국.소은정은 갑자기 중요한 회의가 잡혀 전동하를 마중나갈 수 없게 되었다.회의를 마친 그녀가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내렸겠네... 그래도 지금 가면 너무 늦겠지?망설이는 그녀 곁으로 우연준이 다가왔다.“대표님 지금 인터넷이 꽤 시끄러운데 확인해 보시겠습니까?”“무슨 일인데요?”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대표님이 가장 보고 싶어하시는 분에 관한 기사입니다.”우연준이 이렇게 말하는 건 처음이라 소은정은 왠지 모를 이상한 예감에 휩싸였다.“당장 보여줘요.”소파에 앉은 소은정은 커피 원두를 갈기 시작했다.우연준이 바로 컴퓨터에 라이브 방송 화면을 띄웠다.“대표님, 이번 유럽 전시회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역량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하나 있네요. 미국의 사업체를 접고 대한민국으로 본거지를 옮기실 생각이신가요?”“항간에 이런 소문이 돌고 있는데 정말 한국으로 사업체를 옮기시는 건가요?”“월가쪽에서 큰 사고가 있었다던데 사실인가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기자들의 목소리를 들은 소은정이 흠칫했다.기자들이 왜... 갑자기 공항까지 몰려든 거지?소은정이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체크무늬 정장을 입은 전동하는 무례한 기자들의 질문에도 온화한 미소로 응했다.물론 기자들은 이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어색한 기침을 하던 우연준이 설명했다.“전 세계가 이번 프로젝트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이런 먹잇감을 놓칠 리가 없죠. 그리고 대한민국이 해낸 성과를 미국에게 빼앗기는 게 아닐까 민감한 점도 많고요.”소은정은 걱정어린 시선으로 모니터 화면 속 전동하를
고개를 숙인 전동하가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경호원들도 도착했겠어.그가 기자들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여러분, 이 프로젝트로 인한 모든 성과는 연구진들과 회사 직원 모두의 몫입니다. 저 한 명의 명예가 아니란 말이죠. 이것은 인류 전체의 성장이며 저 한 사람만의 자랑이 아닙니다. 비록 전 미국에서 자랐지만 전 어디까지나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제 아들도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가 저희가 이룬 성과로 자랑스러워 할 거라 믿습니다...”전동하의 환한 미소에서는 그 어떤 짜증도 느껴지지 않았다.하지만 전동하의 말에서 느껴지는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에 기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전동하를 향하던 날카로운 기세도 조금 사그러들었다.바로 그때 전동하의 경호원들이 몰려와 길을 터주었고 기자들의 앞을 막아섰다.이 틈에 전동하가 빠르게 자리를 뜨고 라이브 방송은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종료되었다.담담한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보던 소은정도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전동하가 차에 탔을 무렵 소은정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전동하의 이름을 확인한 우연준이 한 마디 거들었다.“전 대표님... 이렇게 감기는 스타일이셨나요?”방금 전 공항에서 그런 일을 겪고 바로 소은정에게 전화를 걸다니... 일단 회사로 돌아가 대책 회의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우연준의 말에 소은정이 그를 슬쩍 흘겨보고 우연준은 눈치껏 사무실을 나섰다.여유롭게 전화를 받은 소은정의 귓가에 전동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여보세요? 은정 씨. 내가 지금 어딘지 알아요? 은정 씨를 위해 큰 서프라이즈 하나를 준비했는데 기대해요.”방금 전 기자들에게 시달림을 받은 사람이라곤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산뜻했다.“나 지금 회사에 있어요. 그럼 서프라이즈 기대할게요.”통화를 마치고 20분 뒤, 우연준이 사무실로 들어왔다.히죽히죽 웃고 있는 걸 보니 회사 일이 아닌 건 분명했다.“대표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만나실 건가요?”이에 눈썹을 치켜
참나, 다 좋은데 이 사람은 가끔씩 너무 뻔뻔하단 말이야...소은정이 소리없이 웃었다.“그럼 며칠 푹 쉬는 게 어때요? 휴가 좋잖아요.”여전히 그녀를 꼭 끌어안은 전동하가 대답했다.“글쎄요. 그건 안 될 것 같네요. 마지막 결전이 절 기다리고 있으니까.”소은정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그녀에게는 한없이 부드럽기만 하던 전동하의 눈동자에 매정함이 스치고 사라졌다.“요즘 전인그룹 적자가 더 심각해지고 있어요. 전기섭... 아마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것 같아요.”그의 말에 소은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이렇게 큰 일이 왜 소문 하나 안 난 거지?“동하 씨가 한 거예요?”“글쎄요. 전기섭이 먼저 나한테 함정을 판 거예요. 저가로 내가 보유 중인 주식을 전부 매수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수익을 전부 자기가 꿀꺽했어요. 뭐 마음이 급했나 보죠.”“동하 씨가 파산할 거란 사실이 헛소문이라는 게 밝혀지고 전기섭이 한방 먹었나봐요? 전인그룹도 입장이 곤란해졌고요.”전동하가 흐뭇한 시선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역시 똑똑하다니까. 내가 그래서 좋아하는 거긴 하지만.“파산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동안은 조금 힌들어질 거예요.”하긴, 미국에서 오랫동안 자리잡은 전인그룹이 주식 몇 주 때문에 무너질 일은 없겠지... 전기섭이 아무리 멍청하다 해도 그룹에 자기 편 몇몇은 있을 거야. 물론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무너지게 될 테지만.한참 뒤에야 소은정은 두 사람이 만나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포옹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사무실에 다른 사람이 없으니 망정이지...소은정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하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를 밀어낸 소은정이 소파에 앉았다.“집에 가서 쉬는 게 어때요?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아니에요. 은정 씨 얼굴 보니까 하나도 안 피곤해요.”싱긋 웃던 전동하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런데 아까는 왜 전혀 안 놀란 포정이었어요?”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달
대답을 마친 소은정은 큰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전동하와 함께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즐겁다.게다가 평생 연애만 할 수는 없을 테니...결혼, 동하 씨와의 결혼이라...전에는 결혼이라면 부정적인 감정만 앞섰지만 그 상대가 전동하라면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한편, 소은정이 망설이는 모습에 전동하 역시 혹시나 그녀가 거절하진 않을까 불안감에 휩싸였었다.하지만 소은정의 긍정적인 답을 듣는 순간, 눈부신 햇살이 두터운 구름을 뚫고 그를 비추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새삼스레 사랑받고 인정받고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감정이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라는 걸 느끼는 전동하였다.지금 이 순간, 이 기분은 아마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야.이때 휴대폰을 보던 소은정이 잠깐 망설이다 물었다.“지금 갈래요? 아빠한테 물고기 몇 마리 잡아두라고 할까요?”소은정의 질문에 항상 여유롭던 전동하의 표정이 긴장감으로 굳었다.쇠뿔도 단김에 빼는 게 좋다지만 이건 너무... 빠르잖아!“너무 급한 거 아니에요? 아직 제대로 준비도 안 끝났고...”소은정이 싱긋 웃었다.“장난이에요. 전에 약속했잖아요. 집안일 다 해결하면 그때 함께 가기로.”아, 농담이었구나...안도의 한숨을 내쉰 전동하가 그녀를 흘겨보았다.난 또 정말 지금 바로 전화라도 거는 줄 알았네...소은정은 소씨 일가 세 오빠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존재, 그들이 두렵다기 보단... 적어도 약점을 잡히지 않을 정도로는 준비를 마치고 싶었다.핸드백을 집은 소은정이 물었다.“나 배고파요. 같이 식사나 할래요?”“나야 영광이죠.”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손을 잡은 채 회사를 나섰고 회사 모든 이들이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회사 대표님의 연애라니! 지루한 직장생활에 이보다 더 화끈한 가십거리가 있을까?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우연준에게 직접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이도 있었다.“우 비서님, 아까 은정 대표님이랑 손 잡고 나간 사람 전 대표님 맞죠? 우리가 잘못 본 거 아
소은정과 전동하가 레스토랑에 도착하자마자 직원이 다가왔다.“소은정 대표님? 소 대표님이 룸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두 분과 합석을 원하시는 것 같은데요.”직원의 말에 소은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소 대표님? 누구지?전동하 얼굴 역시 긴장감으로 굳어버렸다.“아, 소은호 대표님이요.”소은정과 전동하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아니 많고 많은 레스토랑 중에 하필 오빠가 여기 있다고?소은호가 있는 룸은 마침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었고 두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들어오는 걸 본 그가 바로 직원을 시켜 두 사람을 초대한 것이었다.소은호의 맞은 편에 앉아있는 한시연이 고개를 저었다.“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 두 사람 편하게 식사하게 내버려두지...”“이렇게 만난 것도 우연인데 같이 먹으면 좋잖아?”“하, 여동생 주기 아까워서 그런 거 아니야? 설마... 질투하는 거야? 아가씨도 행복해지길 바라는 거 아니었어? 이제 겨우 새로운 연애 시작했는데 오빠 때문에 겁 먹고 도망치면 어쩌려고.”한시연의 말에 소은호가 픽 웃었다.“이 정도로 도망치면 겨우 그 정도 그릇이라는 거겠지.”아이고, 불쌍한 아가씨...바로 이때 누군가 룸 문을 두드렸다.소은호가 들어오라는 말을 하기 전에 소은정이 문을 벌컥 열었다.“하, 오빠도 데이트 중이었어? 우리가 눈치없이 낀 거 아니지?”그녀의 뒤를 따른 전동하가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아가씨,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고 오빠한테 한 마디 했더니 바로 직원한테 부탁해서 부르는 거 있죠. 두 사람 식사하는 데 내가 방해된 건 아니죠?”“에이, 언니도 참. 언니 부름이라면 언제든지 응해야죠.”두 여자의 가식적인 대화에 소은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이에 한시연과 소은정이 동시에 소은호를 흘겨보고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전동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그럼 실례하겠습니다.”“어서 앉으세요.”한시연이 우아한 손짓으로 전동하를 안내했다.잠시 후 두 커플이 마주앉고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았다.먼저 침묵을 깨
소은호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한시연은 소은정의 눈치를 살폈다.이것은 전동하에 대한 소은호 나름대로의 테스트라는 걸 두 여자 모두 눈치챘지만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소은호의 질문에 전동하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아마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을 테고 그것이 두렵지 않다면 그것도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곳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 제 사랑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요.”전동하의 돌직구에 소은호의 장난스러운 미소가 살짝 굳었다.한시연도 흠칫 놀란 표정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당돌한 고백에 이미 익숙해진 소은정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소은호 역시 소은정, 전동하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관계 변화를 느꼈지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식사 분위기는 나름 화목했지만 소은호와 전동하에 오가는 공적인 대화에 소은정은 도저히 식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이제 곧 끝나겠네...식사를 마친 소은정이 화장실로 향하고 한시연도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아가씨, 오빠도 아가씨 걱정돼서 저러는 거예요. 화내지 말아요...”“저도 알아요. 그리고 내가 어떻게 오빠한테 화를 내겠어요. 아빠도 은호 오빠 화내는 건 무섭다고 하더라니까요.”“전 대표님 좋은 사람처럼 보이긴 하는데... 그래도 좀 더 지켜봐요. 충동적인 결정으로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요.”“저도 알아요. 오빠도 언니도 제 걱정 많이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난 동하 씨 믿어요. 언니가 모든 걸 포기하고 오빠를 선택했던 것처럼 동하 씨도 그럴 수 있을 거예요.”소은정이 한시연을 향해 싱긋 웃고 한시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아가씨는 이미 결정을 내린 모양이네.한시연 역시 전동하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았지만 소은호는 이미 남자에게 한 번 데인 여동생이 상당히 걱정되는 모양이었다.소은정이 다시 룸으로 돌아왔을 때 소은호와 한시연은 이미 자리를 뜬 뒤였다.소은정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전동하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아까 긴장 많이 됐어요?”“견딜만 했어요.”
뒷좌석에 앉은 기사는 말 그대로 좌불안석이었다.운전은 원래 그의 일인데 그것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상석인 뒷좌석에 앉게 하다니.가시방석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싶었다.한편 전동하도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였다.사실 소은정이 기사를 돌려보내면 손이라도 잡고 가려고 한 건데...기사를 뒷좌석에 앉힐 줄이야.이럴 줄 알았으면 뒷좌석에 앉는 건데...잠시 후, 차량이 이글 엔터 건물 앞에 도착하고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소은정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도준호가 내려보낸 직원이 그녀를 맞이했고 소은정은 바로 대표 사무실로 향했다.소은정이 사무실로 들어오자 통화 중이던 도준호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손호영 씨에 관해 말씀드릴 게 있었는데 가시죠?”도준호가 그녀를 어딘가로 안내하고 소은정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성과요?”소은정의 질문에 도준호는 생각만 해도 기쁜지 헛웃음을 지었다.“며칠 전 바이올렛 잡지 편집장이 저희 쪽으로 연락을 줬었어요. 손호영 씨를 이번 달 잡지 모델로 쓰고 싶다더라고요.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전 세계 패션잡지들 중 불굴의 1위지 않습니까?”예상치 못한 좋은 소식에 소은정의 눈도 휘둥그레졌다.“정말요?”“사실 저도 처음엔 거짓말인 줄 알았다니까요. 얼마 전까지 가정폭력남 꼬리표를 달고 다녔던 손호영 씨에게 먼저 이런 제안이 올 줄이야. 하지만 워낙 좋은 기회이니 일단 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화보 촬영 중인데 같이 가보실래요?”소은해를 따라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에는 수없이 가보았지만 잡지 촬영현장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소은정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도준호의 안내로 소은정은 촬영 현장에 도착한다.시끌벅적한 드라마 촬영장과 달리 화보 촬영장은 수많은 직원들이 움직이고 있음에도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곧이어 셔터 소리가 촬영장을 가득 채웠다.“저기요. 너무 뻣뻣한 거 아닙니까?”“손호영 씨, 지금 장난해요?”“옷 좀 더 위로 올려요. 아니 팬티 라벨 드러내라니까. 아니 무슨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