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호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한시연은 소은정의 눈치를 살폈다.이것은 전동하에 대한 소은호 나름대로의 테스트라는 걸 두 여자 모두 눈치챘지만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소은호의 질문에 전동하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아마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을 테고 그것이 두렵지 않다면 그것도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곳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 제 사랑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요.”전동하의 돌직구에 소은호의 장난스러운 미소가 살짝 굳었다.한시연도 흠칫 놀란 표정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당돌한 고백에 이미 익숙해진 소은정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소은호 역시 소은정, 전동하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관계 변화를 느꼈지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식사 분위기는 나름 화목했지만 소은호와 전동하에 오가는 공적인 대화에 소은정은 도저히 식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이제 곧 끝나겠네...식사를 마친 소은정이 화장실로 향하고 한시연도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아가씨, 오빠도 아가씨 걱정돼서 저러는 거예요. 화내지 말아요...”“저도 알아요. 그리고 내가 어떻게 오빠한테 화를 내겠어요. 아빠도 은호 오빠 화내는 건 무섭다고 하더라니까요.”“전 대표님 좋은 사람처럼 보이긴 하는데... 그래도 좀 더 지켜봐요. 충동적인 결정으로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요.”“저도 알아요. 오빠도 언니도 제 걱정 많이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난 동하 씨 믿어요. 언니가 모든 걸 포기하고 오빠를 선택했던 것처럼 동하 씨도 그럴 수 있을 거예요.”소은정이 한시연을 향해 싱긋 웃고 한시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아가씨는 이미 결정을 내린 모양이네.한시연 역시 전동하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았지만 소은호는 이미 남자에게 한 번 데인 여동생이 상당히 걱정되는 모양이었다.소은정이 다시 룸으로 돌아왔을 때 소은호와 한시연은 이미 자리를 뜬 뒤였다.소은정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전동하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아까 긴장 많이 됐어요?”“견딜만 했어요.”
뒷좌석에 앉은 기사는 말 그대로 좌불안석이었다.운전은 원래 그의 일인데 그것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상석인 뒷좌석에 앉게 하다니.가시방석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싶었다.한편 전동하도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였다.사실 소은정이 기사를 돌려보내면 손이라도 잡고 가려고 한 건데...기사를 뒷좌석에 앉힐 줄이야.이럴 줄 알았으면 뒷좌석에 앉는 건데...잠시 후, 차량이 이글 엔터 건물 앞에 도착하고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소은정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도준호가 내려보낸 직원이 그녀를 맞이했고 소은정은 바로 대표 사무실로 향했다.소은정이 사무실로 들어오자 통화 중이던 도준호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손호영 씨에 관해 말씀드릴 게 있었는데 가시죠?”도준호가 그녀를 어딘가로 안내하고 소은정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성과요?”소은정의 질문에 도준호는 생각만 해도 기쁜지 헛웃음을 지었다.“며칠 전 바이올렛 잡지 편집장이 저희 쪽으로 연락을 줬었어요. 손호영 씨를 이번 달 잡지 모델로 쓰고 싶다더라고요.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전 세계 패션잡지들 중 불굴의 1위지 않습니까?”예상치 못한 좋은 소식에 소은정의 눈도 휘둥그레졌다.“정말요?”“사실 저도 처음엔 거짓말인 줄 알았다니까요. 얼마 전까지 가정폭력남 꼬리표를 달고 다녔던 손호영 씨에게 먼저 이런 제안이 올 줄이야. 하지만 워낙 좋은 기회이니 일단 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화보 촬영 중인데 같이 가보실래요?”소은해를 따라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에는 수없이 가보았지만 잡지 촬영현장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소은정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도준호의 안내로 소은정은 촬영 현장에 도착한다.시끌벅적한 드라마 촬영장과 달리 화보 촬영장은 수많은 직원들이 움직이고 있음에도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곧이어 셔터 소리가 촬영장을 가득 채웠다.“저기요. 너무 뻣뻣한 거 아닙니까?”“손호영 씨, 지금 장난해요?”“옷 좀 더 위로 올려요. 아니 팬티 라벨 드러내라니까. 아니 무슨
한편, 포토그래퍼는 도준호와 소은정의 안색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소은정의 뒤를 지키는 든든한 SC그룹도 무서웠지만 그녀의 셋째 오빠인 소은해는 연예계에서 말 그대로 절대신과 같은 존재, 괜히 건드렸다간 포토그래퍼로서의 인생이 끝날 수도 있으니 일단 굽히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소 대표님, 저희 쪽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적당한 압박은 모델이 빠르게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하지만 말도 안 되는 그의 변명이 소은정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글쎄요. 그렇다면 잡지를 보는 대중들의 입장에서 얘기하죠. 손호영 씨는 얼마 전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던졌죠. 이런 상황에서 노출 사진이 뜬다면 대중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건 그쪽이 더 잘 알 것 같은데요.”소은정의 날카로운 지적에 포토그래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전... 전 그게 아니라...”분위기가 어색해지자 편집장이 또각또각 걸어왔다. 잘 관리된 몸매에 세련된 옷차림, 성숙한 여인의 분위기가 인상적인 여자였다.“소은정 대표님? 여기 이세준 씨는 업계에서 알아주는 포토그래퍼예요. 수많은 대작들을 만들어냈죠. 모델로서 세준 씨 앞에 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영광입니다. 얼마나 많은 연예인들이 이 기회를 바라는지 아세요?”묘하게 변한 분위기에 도준호가 어색한 기침을 내뱉었다.“이쪽은 바이올렛 편집장 장고은 씨입니다. 손호영 씨를 표지 모델로 추천한 분이시기도 하죠.”소은정이 고개를 돌린 순간, 장고은은 자신의 눈동자에 저도 모르게 스치는 질투의 감정을 지워내기 위해 애를 쓸 수밖에 없었다.패션화보 편집장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연예인과 모델들을 만났지만 소은정의 몸매와 얼굴은 그리고 분위기는 가히 독보적이었다. 아마 연예인으로 데뷔했어도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게 분명할 터.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매력을 가진 여자.미모는 물론이고 지혜와 재력까지 모든 걸 가진 여자...저런 여자에게도 콤플렉스라는 게 있을까?이런
소은정의 목소리가 촬영장에 울려 퍼지고 직원들 중에는 쾌재를 부르는 이들도 꽤 있었다.바이올렛이 연예인들을 상대로 등급을 나눈다는 사실은 패션업계에서 다 알고 있는 비밀이나 마찬가지.하지만 매출이나 대중들의 반응이 워낙 좋다 보니 모델로 찍힌 연예인들도 순간적인 모욕감보다 인기를 선택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뒤에서 욕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바이올렛과 일하기 위해 편집장과 포토그래퍼의 눈치를 보는 것이 이 바닥의 룰이었다.하지만 추악한 그들의 밑낯을 포장하는 예쁜 포장지를 걷어낸 것이나 다름없는 소은정의 말에 장고은도 이세준도 조용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이 상황을 어떻게 넘어가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가만히 있던 도준호가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입을 열었다.“대표님, 바이올렛은 섹시 화보를 모토로 하는 패션잡지입니다. 촬영 중에 작은 트러블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다들 한 발씩 물러나는 게 어떨까요? 호영 씨 촬영은 계속 진행하되 노출 수위는 낮춰주세요. 손호영 씨는 곧 SC그룹의 신제품 모델을 맡게 될 사람입니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추구하는 SC그룹에게 손호영 씨의 노출사진은 결코 이득이 되지 않을 거예요. 만약 이 사진 때문에 SC그룹의 신제품 매출에 영향이 간다면... 손호영 씨는 물론이고 세준 씨, 고은 편집장님도 입장이 난처해지지 않겠어요?”도준호가 물꼬를 틀어주자 장고은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럼 도 대표님 말씀대로 진행하죠. 세준 씨, 잘 알아들었죠?”하지만 소은정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이번 촬영은 없었던 걸로 하죠. 다들 철수해 주세요.”소은정의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비록 바이올렛 쪽에서 먼저 촬영을 제안한 건 맞지만 손호영 정도 레벨의 연예인에게 바이올렛 화보 촬영은 하늘에서 내려준 기회 그 자체, 감지덕지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엎어버린다니...애써 미소를 유지하던 장고은의 표정도 어느새 굳고 말았다.“대표님, 사업만 하셔서 잘 모르나 본데 저
도준호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제 실수입니다. 대표님을 모시고 여기로 오는 게 아니었는데...”“아니요. 잘 하셨어요. 대표님 말씀이 맞아요. 손호영의 일거수일투족은 SC그룹의 이미지나 마찬가지예요. 그 어떤 부정적인 이미지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서 노출남 이미지까지 씌워지면 저희가 지금까지 들였던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되는 거예요.”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손호영이 그녀에게 다가왔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화보 촬영은 중단됐지만 앞으로도 연기 활동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요즘... 절 지켜보는 파파라치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이미지 관리 제대로 하겠습니다.”손호영의 대답에 소은정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좋아요. 화보 촬영건은...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 거니까.”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끝까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킨 손호영의 모습에 소은정도 속으로 꽤 감탄하고 있는 중이었다.명예와 돈 때문에 인격, 자존심 같은 건 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보니 손호영 같은 이들이 진흙속의 진주처럼 느껴졌다.손호형은 매니저와 함께 자리를 뜨고 소은정과 도준호도 세트장을 떠나 사무실로 돌아왔다.현장에 남겨진 스태프들이 그제야 참았던 감탄을 내뱉었다.“은정 대표님 진짜 너무 멋지시다. 아까 마녀랑 싸우는 거 봤어? 나 반하는 줄 알았잖아.”“하, 마녀 생각이야 뭐 뻔하지 뭐. 손호영 누드 사진으로 어떻게든 협박해서 더러운 짓거리를 하려는 거잖아. 하, 나이로 치면 자기 조카 뻘인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나 몰라. 그렇게 외로운가?”“은정 대표님이 와서 다행이었어. 손호영 씨가 안 벗겠다고 계속 고집을 부렸잖아. 진짜 큰일나는 거 아닌가 걱정했었는데...”“윽, 나도 이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럴 때마다 너무 현타 온다. 이렇게 마녀한테 이용 당하는 연예인들 한두번 보는 것도 아니고...”“어쨌든 오늘도 은정 대표님은 멋지셨어!”한편 도준호 대표의 사무실.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즐기는 소은정과
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이 물었다.“지금 패션업계에서 인기가 가장 많고 영향력이 가장 좋은 잡지사가 어디죠?”뜬금없는 질문에 도준호가 고개를 갸웃했다.“그건 왜 물으시는지?”여유롭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소은정이 대답했다.“이왕 찍으려면 최고의 잡지사에서 찍는 게 좋지 않겠어요?”SC그룹이라면 분명 최고의 잡지사 화보 촬영건을 따낼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최고의 잡지사가 흑역사를 가지고 있는 B급 연예인을 표지 모델로 쓰려고 할까?그쪽도 업계 1위로서 프라이드가 있을 텐데.도준호는 불가능하다고 확신했지만 답을 기다리고 있는 소은정의 표정에 솔직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잡지사는 미국 패션 잡지 입니다. 패션업계의 트렌드세터이기도 하고...”도준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그럼 거기로 하죠.”순간 도준호의 눈이 커다래졌다.“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도 대표님이 생각하는 그 뜻 맞아요. 정 안 되면 그 잡지사 저희가 인수할 겁니다.”“네?”금방이라도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도준호의 눈이 커다래졌다.하지만 소은정의 표정을 보아하니 이미 마음을 굳힌 듯했다.“아니, 조금 더 고민해 보시는 건 어떠실지. 사실 국내 잡지사도...”하지만 소은정은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아니요. VJ 그 잡지사로 해요. 다른 건 내가 싫어요.”말을 마친 소은정이 사무실을 나서고 허탈한 얼굴로 한참 앉아있던 도준호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멀리 해외에 있는 소은해에게 문자를 보냈다.“은해 씨 여동생 드디어 미쳤나 봐! 를 인수하겠대!”잠시 후, 소은해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은정이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둬.”도착한 그의 답장에 도준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미쳤어. 이 집안 사람들은 다 미쳤어...한편, 회사로 돌아온 소은정은 잠시 고민하다 김하늘에게 전화를 걸었다.김하늘은 패션업체 대표이니 이쪽으로는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통화연결음이 몇 번 울
한참 동안 기침을 하던 김하늘은 한참 뒤에야 말을 이어갔다.“야, 소은정 또 무슨 짓을 꾸미려는 거야. 너희 집안 돈 네가 다 말아먹겠다.”김하늘의 말에 소은정이 가소롭다는 듯 픽 웃었다.“뭐야? 너 나 지금 무시해? 아니면 VJ 잡지사가 그렇게 대단한 곳이야?”“뭐 그건 아니지만...”게다가 소은정이 마음을 먹은 이상 그녀의 가족들도 전력으로 응원해 줄 게 분명할 터...“그래도 인수는 너무 극단적이지 않아? 내가 사람 한 명 소개해 줄게. 아마 도움이 될 거야.”딱히 누군지는 말하지 않고 뜸을 들이는 김하늘의 모습에 소은정이 짜증스레 입을 열었다.“얼른 말하지 그래?”“동하 씨 말이야. 남자친구 두고 왜 엄한 돈을 써?”“동하 씨? 동하 씨가 연예인도 아니고 잡지사랑 얽힐 일이 있나?”“너 정말 네 남자친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겨우 물 한 모금을 마신 김하늘이 말을 이어갔다.“VJ 잡지는 연예인만 취급하는 곳이 아니야. 몇 년 전부터 전동하 대표에 관한 인터뷰를 싣고 싶다고 사정사정 한 것 같은데 다 사절한 것 같더라고. 그래도 그쪽 편집장이랑은 사이가 꽤 좋은가 봐. 같이 파티에도 참석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고. 나보다는 동하 씨한테 부탁하는 게 훨씬 더 빠를 것 같은데...”김하늘의 말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오케이. 고마워.”통화를 마친 소은정이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하고 마침 사무실로 들어온 우연준이 고개를 갸웃했다.“지금 가시는 겁니까?”“네. 드디어 퇴근이네요. 그럼 이만...”더 말을 걸 틈도 없이 사라지는 소은정을 바라보던 우연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아니, 오늘 사무실에 두 시간도 안 계셨으면서 드디어 퇴근이라니...소은정은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향해 음식들을 포장한 뒤 오피스텔로 돌아갔다.잠시 후, 전동하의 오피스텔 문 앞에 선 소은정은 손을 뻗었다가 다시 어색하게 거둬들였다.비밀번호는 이사 첫 날부터 전동하가 알려주어 알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말없이 들어가 본 적은 없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소은정이 입을 떡 벌렸다.“적당히 먹어요. 그러다가 체하면 어쩌려고...”마지막 반찬까지 집어먹은 전동하가 티슈로 손을 닦았다.“은정 씨 정성이 담긴 음식인데 하나라도 남기고 싶지 않아서요.”전동하도 워낙 자기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사람이라 이렇게까지 과식한 건 몇 년만에 처음이었지만 마음만은 달콤했다.마치 온 세계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랄까?두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마주치자 소은정이 먼저 싱긋 웃어보였다.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평소에는 느껴지지 않는 묘한 적극성에 전동하가 먼저 물었다.“혹시 부탁할 거 있어요?”소은정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바이올렛 장고은 편집장이 손호영 씨한테 누드 화보를 강요해서 제가 거절했거든요. 그쪽도 기분이 많이 상했을 테니까 가만히 있진 않을 테고 그래서 지금 바이올렛보다 영향력이 더 큰 잡지사 화보를 찍어야 하는 상황이에요. 미국 패션잡지 VJ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은해 오빠도 곁에 없고... 혹시 동하 씨가 아는 사람이면 다리 좀 놔줄 수 있어요?”소은정의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전동하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은정 씨가 먼저 나한테 부탁을 해줬어. 이런 기회는 절대 쉽게 오지 않는 건데... 어떻게 이용하면 좋을까...“안 될까요?”한참이 지나도 아무 대답 없는 전동하의 모습에 소은정이 다시 눈치를 살폈다.동하 씨도 안 되면... 은해 오빠한테 부탁할 수밖에...잠시 후 눈동자가 이쁘게 휘어지도록 웃던 전동하가 대답했다.“아니요. 무조건 도와야죠. 아니, 은정 씨를 도울 수 있어서 영광이에요.”바로 휴대폰을 꺼낸 전동하는 VJ 편집장에게 전화를 걸었다.소은정이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던 와중에 전화 연결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동하 씨?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다 했어요. 미국에는 언제 들어와요? 저번에 말했던 인터뷰...”수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목소리 톤을 보아하니 두 사람 사이 듣던대로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