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소은정이 입을 떡 벌렸다.“적당히 먹어요. 그러다가 체하면 어쩌려고...”마지막 반찬까지 집어먹은 전동하가 티슈로 손을 닦았다.“은정 씨 정성이 담긴 음식인데 하나라도 남기고 싶지 않아서요.”전동하도 워낙 자기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사람이라 이렇게까지 과식한 건 몇 년만에 처음이었지만 마음만은 달콤했다.마치 온 세계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랄까?두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마주치자 소은정이 먼저 싱긋 웃어보였다.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평소에는 느껴지지 않는 묘한 적극성에 전동하가 먼저 물었다.“혹시 부탁할 거 있어요?”소은정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바이올렛 장고은 편집장이 손호영 씨한테 누드 화보를 강요해서 제가 거절했거든요. 그쪽도 기분이 많이 상했을 테니까 가만히 있진 않을 테고 그래서 지금 바이올렛보다 영향력이 더 큰 잡지사 화보를 찍어야 하는 상황이에요. 미국 패션잡지 VJ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은해 오빠도 곁에 없고... 혹시 동하 씨가 아는 사람이면 다리 좀 놔줄 수 있어요?”소은정의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전동하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은정 씨가 먼저 나한테 부탁을 해줬어. 이런 기회는 절대 쉽게 오지 않는 건데... 어떻게 이용하면 좋을까...“안 될까요?”한참이 지나도 아무 대답 없는 전동하의 모습에 소은정이 다시 눈치를 살폈다.동하 씨도 안 되면... 은해 오빠한테 부탁할 수밖에...잠시 후 눈동자가 이쁘게 휘어지도록 웃던 전동하가 대답했다.“아니요. 무조건 도와야죠. 아니, 은정 씨를 도울 수 있어서 영광이에요.”바로 휴대폰을 꺼낸 전동하는 VJ 편집장에게 전화를 걸었다.소은정이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던 와중에 전화 연결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동하 씨?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다 했어요. 미국에는 언제 들어와요? 저번에 말했던 인터뷰...”수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목소리 톤을 보아하니 두 사람 사이 듣던대로
이어서 수화기를 통해 실리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미쳤나 봐...”전동하가 다시 실리아를 설득하려던 그때 소은정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은해 오빠.”이름을 확인한 소은정이 싱긋 웃었다.분명 도준호 대표한테서 뭔가 들었을 테고 이렇게 전화가 왔다는 건... 뭔가 방법이 있다는 뜻일 테니까.휴대폰을 가리킨 소은정이 베란다로 향했다.“어, 오빠.”평소 같지 않은 소은정의 달콤한 목소리에 소은해의 뒷덜미에 소름이 돋았다.“VJ 인수하겠다고 했다면서?”소은해의 단도적인 질문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우리가 직접 인수해서 내가 원하는 연예인 좀 쓰려고. 다른 잡지사들 눈치 보는 거 짜증 나.”“뭐 일리있는 말이네. 응원해.”한편 전동하는 통화 중인 소은정을 돌아보았다. 붉은 노을이 소은정을 비추고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모습에 전동하는 넋을 잃은 채 한참을 바라보았다.그의 감상을 방해한 건 바로 실리아의 목소리였다.“동하, 아까 그 여자 누구야? 뭔데 우리 VJ를 인수하겠다느니 그런 소리를 해?”실리아라는 여자는 지금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달려와 소은정과 한판 싸우려는 기세였다.“SC그룹 소은정 대표, 내 여자친구기도 하죠.”여자친구라고 당당히 말하는 전동하의 입가에 의기양양한 미소가 피어올랐다.SC그룹 대표라는 말에 놀란 것인지 전동하가 연애를 한다는 사실에 놀란 것인지 한참을 침묵하던 실리아가 훨씬 더 차분해진 목소리로 물었다.“진심이에요?”“뭐가요?”“VJ를 인수하겠다는 말, 사실이냐고요.”“물론이죠.”“사실... 몇 개월 전인가? 소은정 대표를 표지 모델로 쓰고 모시려고 했었거든요. 외모며 분위기며 워낙 완벽하니까. 그래서 회사로 정식으로 공문까지 보냈는데 미팅은커녕 바로 거절당했었죠.”그룹 대표가 연예인도 아니고 대단한 관종이 아닌 이상, 잡지 표지모델 제안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마 찾아보기가 힘들 것이다.특히 SC그룹처럼 이미 기반이 탄탄한 회사는 대표가 얼굴을 팔아서 홍보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어쩐지 잠결에 요리하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더라니 레스토랑에서 가지고 온 거였나?분명 그도 자주 가는 단골 레스토랑의 음식이었지만 소은정이 만들었다고 철석같이 믿어서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전동하였다.난 그것도 모르고 실컷 배부르게 먹었네.오해하고 있는 걸 알면서 끝까지 말하지 않은 소은정이 얄밉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 웃음이 몰래 피어올랐다.포장백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전동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 결국 뒷정리를 시작한다.잠시 후.전동하는 소은정에게 문자를 보냈다.“다음에는 다른 레스토랑으로 포장해 줘요.”“왜요? 실컷 맛있게 먹어놓고? 좋아하는 것 같던데?”소은정의 답장에 전동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좋아했다고? 그거야...“그건 은정 씨가 직접 만든 건 줄 알고 맛있게 먹은 거죠.”전동하의 해명에 집에 있던 소은정의 얼굴도 후끈 달아올랐다.“풉, 그래요. 오늘... 고마웠어요.”휴대폰을 내려놓은 소은정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다음 날 아침.따뜻한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스치기도 전, 우연준의 전화에 소은정은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우 비서님...”소은정은 목소리에 묻은 졸림을 억지로 털어냈다.“주무시는 데 죄송합니다. 바이올렛 쪽에서 새벽에 공문을 발표했습니다. 지금 손호영 씨가 바이올렛 표지 화면 화보를 펑크냈다는 사실이 기사로 쫙 깔렸어요. 바이올렛은 국내 최고 패션잡지 중 하나다 보니 기사를 내리기도 힘든 상황입니다...”우연준의 보고를 듣고 있던 소은정은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도준호 대표는 뭐래요?”“대표님 의견대로 움직이겠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일찍 전화드린 거기도 하고요.”우연준이 우물쭈물하며 말하자 소은정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하, 나한테 다 밀어버리고 자기는 발 빼시겠다? 차라리 대표고 뭐고 다 때려치지 그래?”이렇게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기분은 오랜만인 소은정이었다.어젯밤부터 분명 빌미가 있었을 텐데 이제야 그녀에게 알려주다니.도준호 때문에 여론을 제어할 가장
“가정 폭력건도 누군가 일부러 덮어준 거 아니야?”“바이올렛 표지 모델을 거부해? SC그룹 모델로 뽑혔다고 정말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아나 봐?”“앞으로 패션 화보는 다시 못 찍겠네.”“난 일단 중립 기어 박는다.”...피식 웃음을 터트린 소은정은 바로 바이올렛이 발표한 입장문을 살펴보았다.손호영 씨와의 일방적인 계약 불이행으로 이번 잡지 표지 모델은 유준열 씨로 교체합니다. 기대해 주세요.갑질이라는 단어는 워낙 예민하다 보니 대중들은 다들 바이올렛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점심쯤.손호영 측에서는 아무 소식도 들리지 않았고 소은정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각 지사 이사장들과 화상 회의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지금쯤 소은정의 화가 극에 달했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도준호는 차마 그녀에게 직접 연락은 못하고 죽어라 우연준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우 비서, 대표님 지금 뭐 하셔?”“우 비서, 대표님 지금 어디셔?”“우 비서...”오늘따라 통화가 잦은 것 같은 기분에 소은정이 우 비서를 힐끗 바라보던 그때, 우연준이 내뱉은 마지막 단어에 소은정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피어올랐다.“네, 도 대표님.”“그래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긴 한가 보죠?”“도 대표님이 그 동안 손호영 씨에게 쏟은 돈이 한, 두 푼이 아닙니다. 이대로 적자가 날까 봐 걱정되시는 모양이에요.”단번에 핵심을 짚은 우연준의 말에 소은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 다시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그날 오후.기사의 화제성은 어느 정도 떨어진 상태였지만 댓글 상황을 보아하니 손호영이 바이올렛 잡지를 상대로 갑질을 했다는 게 이미 기정사실화 된 듯했다.표진아를 포함해 갑질 연예인들이 연예계에서 퇴출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 손호영과 작품을 함께 하기로 한 촬영팀에서도 몰래 입장문을 준비하고 있었다.오후 3시.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은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은정아, 얘기 다 끝냈어. VJ쪽 사람들이 곧 너한테 연락할 거야.”하루종일
급하게 전화를 끊은 소은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일 친했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친여동생이라니… 당연히 이 두 명 중 선택하라고 한다면 소은정이다. 이글 엔터 사무실도준호가 갑자기 재채기하였다. 누가 내 욕하나?전화를 끊고 잠시 앉아있던 소은정에게 이내 전동하의 전화가 걸려 왔다. “오늘 기분 좀 풀렸어요?”“기분 안 좋았는데 동하 씨 전화 받고 괜찮아졌어요.”이것은 연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내막을 모르는 전동하는 헤헤 웃으면서 말했다.“제가 이렇게 매력 있는 사람이었나요? 영광이네요.”소은정은 전동하가 자신을 위해 많이 애써줬다는 것을 알고는 고마워하는 것일 뿐이다. 전동하가 다정하게 말했다.“맞다, 좋은 소식이 있어요. 빨리 VJ 매거진에 사람을 보내 협상하세요. 완전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2%의 지분을 허락한다고 했어요.”소은정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고작 2%요?”전동하가 웃으면서 말했다.“이 회사는 여론의 통제를 위해 0.7% 이상의 지분을 허락하지 않는데 2%가 제가 노력할 수 있는 최대치에요.”소은정이 놀란 듯 입을 벌렸다.하긴 승승장구하는 주식이라 누구든 한입 베어 물려고 작정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2%도 만족스러운 지분이다. “근데 2%도 제가 갖고 싶다고 하면 가질 수 있는 거예요?”소은정이 조용히 물었다. 전동하는 그런 소은정이 귀여운지 혼자 웃음을 터트렸다. “회사의 결정권에 참여할 수 있는 지분은 아니지만 우리 쪽 사람을 표지 모델로 되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예요.”전동하의 말을 들은 소은정이 밝게 웃었다. “그래요. 바로 우연준씨한테 얘기할게요.”소은정은 웃으면서 전화를 끊고 우연준에게 얘기를 전했다 우연준은 놀라서 말도 하지 못했다. 소은정이 지나가는 얘기로 했던 말을 전동하가 해결해주다니?“빨리 가서 협상해주세요.”“알겠습니다, 대표님. 하지만 현재 인터넷에서의 여론이… 저희가 이 소식을 내보내서 잠시 다른 곳으로 주목을 끌게 할까요?”소은정이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소은정이 멈칫하더니 위로 올려다보았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외국인이었다. 어제 전동하와 통화할 때 쉴 새 없이 욕을 내뱉던 그 실리아?실리아도 소은정을 보고는 눈을 끔벅이고 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소은정대표님.”소은정은 웃으면서 악수하였다. “직접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랐는데요, 어제 저희같이 통화했잖아요.”실리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떼면서 말했다. “네, 맞습니다. 어제 통화를 끊자마자 한국으로 오는 티켓을 예약해 날아왔습니다. 누가 VJ를 노리나 했는데 소은정 대표님이라니, 소은정 대표님과 같은 신분과 지위라면 저희는 감지덕지합니다.”소은정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삼키려 애썼다. 힘없는 늙은이가 입만 살았다.보아하니 대략적인 조건은 우 비서와 협상을 보았고 본인의 체면을 살리려 온 것이다.소은정은 웃으면서 우연준에게 눈길을 보냈다. 우연준은 바로 나가 SC그룹의 변호사를 불러왔고 빠른 속도로 계약서를 작성하였다. 실리아는 눈썹을 어루만지더니 말했다. “어머, 이런 조건이라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하지만 먼저 반드시 대표님에게 전해야 할 말이 있어요.”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의 말에 경청하였다. “대표님이 추천해주신 그 연예인 말인데요, 품행에 문제가 있어 저희 잡지에 실린다고 해도 이미지가 달라진다는 보장도 없고 저희 잡지사에서는 애프터 케어는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VJ는 패션 잡지인데 그는 아무런 패션 브랜드의 홍보도 받지 못했고 패션 소질도 없습니다. 얼굴 하나만으로는 저희 잡지의 표지 모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잡지 안의 아주 작은 파트로 손호영을 소개할 수는 있습니다만…”실리아는 손으로 아주 작은 파트라고 가리켰다. 정말 작긴 하다. 하지만 손호영에게는 이 기회도 흔치 않은 기회다. 실리아의 말에 소은정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조용히 앉아있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이 요구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표지가 아니라면 소은정이
“저한테 맡겨주시죠. 제가 해결할 겁니다.”소은정이 확신에 찬 눈빛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만약 세미를 설득하기만 하면 되는 말이죠.”실리아가 멈칫하였다. 소은정이 장난하는 줄 알았으나 확신에 찬 그녀의 눈빛을 보고 흠칫하였다. 어제 소은정이 전화기 너머에서 VJ를 매입한다고 했을 때도 우스갯소리를 하는 줄 알았으나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손에 넣었다. “소 대표님, 제가 다시 한번 확인해도 될까요? 지금 대표님이 얘기하신 세미가 할리우드 6년 연속 여우주연상과 세미뷰티 브랜드 창립자인 세미 맞습니까?”실리아는 아직도 믿지 못하였다. 세미는 미국의 연예계에서도 신과 같은 존재였다. 성격이 제멋대로라는 소문은 있었다. 하지만 6년 연속 여우주연상을 받은 그녀의 지위와 명예는 아무도 따라갈 수 없었고 그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많은 부자가 많은 돈을 제시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공식 석상 외에는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그녀의 스케줄도 아주 신비스러웠다. 하루는 하와이에서 목격되고 하루 뒤에는 알래스카에서 목격되었다. 아무도 그의 정확한 스케줄을 알 수 없었다. 팬들은 이런 세미에 열광했다. 만약 세미가 정말 표지에 서 준다면…소은정이 웃으면서 상대를 억누르는 듯한 어투로 얘기했다.“그럼 또 다른 세미가 더 있어요?”실리아는 이내 정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만약 세미가 파트너로 함께 나온다면 이번 시즌 표지에 손호영을 올리겠습니다.”소은정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고 옆의 우연준을 바라보았다. 우연준은 준비해온 계약서를 소은정에게 전해주었다. “대표님, 계약서입니다.”계약서를 건네받은 소은정이 잠깐 살펴보더니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실리아에게 넘겨주었다. 변호사 출신인 실리아는 꼼꼼하게 계약서를 살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소은정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녀의 카리스마는 어제의 그 오만한 여자와는 연결 짓기가 어려웠다.문제없는 것을 확인한 실리아는 사인하고 펜 뚜껑을 닫아 자신의 옷 주머니에 넣고 의
소은정과 실리가 식당에 도착했을 때 전동하가 이미 와 있었다. 그를 본 실리아는 오랜 옛사랑이라도 만난 것처럼 기뻐했다. 보자마자 전동하를 끌어안았다. “이게 얼마 만이예요. 한국에 잠깐 머물다가 미국으로 돌아온다더니 대체 언제 와요?”전동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오랜만이네요…”말을 마친 전동하는 이내 소은정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소은정은 웃으면서 동하의 손을 잡아 주었고 전동하는 엄지로 그녀의 손등을 살짝 어루만졌다. 작은 스킨십이였지만 다정하고 사랑이 넘쳤다. 그녀의 마음도 깃털이 손등에 스쳐 지나간 것마냥 설렜다.고개를 돌려 전동하를 쳐다보았다. 아름다운 선으로 그려진 동양화처럼 날렵하고 아름다웠다. 실리아는 먼저 예약했던 룸으로 들어가고 전동하는 소은정의 손을 살짝 끌어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전동하가 갑자기 다가오더니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계약은 잘 마쳤어요? 늙은이가 꼰대 짓 안 했어요?”전동하는 언제나 소은정 생각밖에 없는 듯했다. 소은정은 어떻게 이렇게 착하고 멋진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지 감동하여 눈가에 눈물이 맺힐뻔한 것을 간신히 참으면서 입을 열었다.“아니, 근데 2% 지분 말이에요, 동하씨의 지분을 저를 준거에요?”전동하가 멈칫하더니 이내 낯빛이 어두워졌다. “저 늙은이가 그걸 당신한테 얘기했어요?”소은정은 못 말린다는 듯 전동하를 쳐다보았다.“동하씨 지분인 걸 알았다면…”전동하는 웃으면서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었다.“신경 쓰지 마요 제 것이나 은정 씨 거나 다 똑같아요.”“어떻게 같아요? 저는 그냥 조금 더 편한 길을 찾으려 한 것뿐인데. 이렇게 되면 제가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전동하가 멈칫하더니 따듯한 손길로 그녀의 귓가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은정씨가 말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바랐던 거 아니에요?”소은정이 멈칫했다. 내가 이렇게 오만했던가.“빨리 들어와요, 동하씨, 오랜만에 봤는데 저 안 보고 싶었어요?”실리아가 그들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