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징인은 미소를 지었다. “부부는 원래 한 나무에 깃드는 새와 같다고들 하죠. 하지만 부 대표님도 아실 겁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결혼은 사랑보다는 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요.” “게다가, 이런 일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니까요.” ...과거에도, 정규인은 다른 여자와의 사진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허징인은 그 뉴스를 보고 충격으로 멍해졌다. 남편은 술에 취한 채 집에 돌아왔고, 지친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정말로 술에 취해 작업 당한 거야. 그 여자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어. 제발 날 용서해줘, 여보.” 허징인은 한때 분노로 집 안의 모든 것을 부수며 울부짖었다. “처음 만났을 때 약속했잖아. 평생 나만 사랑해준다고!” 정규인은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너한테 잘해주려고 노력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남자와 여자의 문제는, 특히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피하기 어렵다는 걸 이해해줘.” 그의 목소리에는 죄책감과 함께 야망이 스며들어 있었다. 결국 정규인은 다시 허징인에게 애원했다. “미안해, 여보. 정말 미안해.” 허징인은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만, 뒤에는 가족과 양가 부모님들이 있었다. 그녀는 이혼이라는 선택지를 쉽게 꺼낼 수 없었다. 며칠 뒤, 정규인은 어렵게 말을 꺼냈다. “하나만 부탁하자. 내일 기자회견에 나와서 이 일을 해명해줬으면 해. DL그룹 본사에서도 이 사안을 설명해야 해.” 그는 체면이 필요했고, 허징인은 처음으로 남편의 불륜 문제를 공개적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그 일이 시작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이후로도 정규인의 불륜 사건은 계속 이어졌고, 다만 언론이 아닌 그녀의 핸드폰 알림으로 조용히 찾아왔다. ...허징인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부대표님께 솔직히 말씀드리죠. 저는 정규인과 젊은 시절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우리 둘 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함께 DL그룹에 들어가 미래를 꿈꾸며 나아갔죠. 결혼 후 저는 가정을 위해 한 발 물러섰고, 남편은 앞에서 능숙
“부 대표님, 부 대표님이 방금 말씀하신 대로라면, 유혹과 남자가 바람을 피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하셨죠. 그럼 대표님은요? 혹시 그런 적 있으신가요?” 뜻밖의 질문이었다. 허징인은 나이가 더 많았지만, 상혁 앞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존댓말을 썼다. 상혁은 미동도 없이 대답했다. “제 마음은 이미 ‘주인’이 있습니다.” 즉, 자신은 절대 바람을 피우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 “정규인도 저와 결혼할 때 사랑한다고 말했었죠.” ‘하지만 그 후 10여 년의 결혼 생활은 완전히 엉망이었어.’ ...지금 차 문은 열려 있었고, 바깥에서 들리는 똑딱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하연이 일을 마치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상혁은 그녀를 힐끔 바라보았다. 문서를 들고 걸어오는 하연은 여전히 소녀와 여인의 매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참으로 매혹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문득 말을 꺼냈다. “만약 최악의 상황에서 제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됐다고 하면, 그때 제가 누군가와 바람을 피운다면, 그 상대는 반드시 최하연일 거예요.” 허징인은 입을 떼려다 멈췄다. 상혁의 말투는 단호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요즘 들어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부상혁과 최하연은 다시 화해했고, 곧 다시 함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상혁도 이 사실을 전혀 숨기려 하지 않았다. ...하연이 차에 다가왔을 때, 허징인은 이미 떠난 뒤였다. 하연은 문서를 덮으며 물었다. “무슨 얘기 했어요?” 상혁은 직접적인 대답 대신 그녀를 반쯤 안으며 말했다. “문서를 보면서 걸으면 어떻게 해. 잘 못해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우리 회사 쪽에서 급하게 처리 일이 들어와서 어쩔 수 없었어요.” 하연은 그의 무릎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드레스는 살짝 가슴선을 드러냈고, 상혁은 장난스레 물었다. “색깔은?” 하연은 얼굴이 빨개지며 그의 손을 쳐냈다. “안 입었어요!” 상혁은 웃음을 터뜨렸다
상혁과 하연의 약혼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최씨 가문과 부씨 가문은 모두 명망 높은 집안이었다. 약혼이 결정된 이상, 번복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씨 가문에서도 반대 의견은 없었고, 어쩌면 감히 반대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저녁 식탁에서 상혁이 드물게 자리를 함께했다.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 저와 하연이 약혼하게 되었습니다.”순간 식탁 위의 젓가락들이 멈췄다. 송혜선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갑작스럽네요. 둘이 헤어졌다고 들었는데요?” 상혁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천천히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 “아... 외부 소문을 들으셨나 봅니다.” “그런 뜻이 아니야. 네가 가정을 이루고 자리 잡는 건 좋은 일이지. 그런데 네 어머님 쪽도 이미 알고 계셔? 최씨 가문에서도 반대는 없었고?” 부동건은 식탁에 앉아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하연이는 진숙이가 키운 아이야. 진숙이도 기뻐할 일이지 반대할 일은 없을 거야. 다만 최씨 가문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거야. 그 가문은 과거에도 항상 자신들의 가문이 주도권을 잡아오면서 살아왔지. 지금도 하민과 하연이 이끌면서 더 번창하고 있다. 네가 이런 관계를 잘 조율할 수 있겠니?”부동건은 하연에 대해 별다른 반대는 없었다. 하연은 반쯤 자신의 딸처럼 여겨졌고, 과거 두 사람을 반대한 이유는 상혁의 일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장애물이 사라졌다면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상혁은 단호히 말했다. “제가 하연이하고 약혼하려고 하는 건, 저희 관계가 더 나아가고 가까워지고 싶어서이지, 가문 간의 관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송혜선은 약간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그 관계는 불가피하게 얽히게 될거야.” 상혁은 차분히 송혜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지금 저희 약혼에 의견이 있으신가요?” 송혜선의 뒤에 서 있던 조봉규가 송혜선의 팔을 살짝 건드렸다. 그녀는 곧바로 표정을
“모르겠어요! 고나희가 우리와 관련된 많은 일을 알고 있었잖아요. 혹시 모든 내용들을 기록해둔 건 아닐까요? 그런 것들이 남아 있다면 우린 큰일 날 겁니다.” 정규인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동안 둘이 손을 잡고 DL 그룹에서 상당한 부당한 이익을 취했고, 그 외에도 수많은 불법적인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그 흔적들이 한순간에 빛을 보게 된다면, 그들에겐 끝없는 나락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상무님, 잊지 마세요. 고나희의 죽음은...” “그만해요!” 남준은 거칠게 말을 끊었다. 그의 눈에는 불꽃 같은 분노가 번뜩였고, 목소리는 한층 낮아지며 날카로워졌다. “지금 상황이 충분히 복잡합니다. 정 사장님,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싶습니까? 부상혁이 곧 최씨 가문의 지지를 받아 약혼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DL 그룹의 미래 실권자가 되는 건 이제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보아하니, 이제 우리에게는 승산이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정규인은 그 말을 듣고 크게 숨을 들이쉬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의 입술이 떨리고 있었고, 두 눈에는 불안이 가득했다. “저도 더 이상 도박할 수 없어요. 최근에 제 모든 일이 폭로된 건 부상혁이 우리를 견제하려는 신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무님, 혹시 부상혁이 이미 우리가 계획했던 모든 걸 알고 있는 게 아닐까요?” 부남준은 정규인을 쏘아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차가운 시선은 마치 단검처럼 날카롭게 빛났고, 얼굴에는 혐오와 피로가 가득 서려 있었다. “정 사장님, 그 입 잠시만이라도 좀 닫아 주실래요. 지금 우리 그렇게 여유롭게 추측이나 할 시간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남준의 말에 정규인은 입술을 꾹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은 날이 선 유리처럼 위태로웠고, 조금만 건드려도 산산이 부서질 듯했다....한낮의 겨울 햇살 아래, 남준이 흔들의자에 누워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바로 정다영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부남준의 약혼식은 대단히 성대했다. 정씨 가문은 이 결혼을 매우 중시했기에 준비에도 열과 성을 다했다. 송혜선은 원래 약혼식에 직접 참석하려 했으나, 출발 전 넘어지는 바람에 큰 위기를 겪었다. 만약 조봉규가 곁에 없었다면 태아를 잃을 뻔했다. 부동건은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당신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집에서 태교나 해.” “남준이 약혼식인 큰 행사인데, 어머니로서 참석하지 않으면 말이 안 되잖아요!” 송혜선은 억울한 듯 반박했지만, 부동건은 사적인 의도가 있는 듯 대답을 피했다. “예법은 모두 갖췄어. 집사가 경험도 풍부하니 걱정하지 마. 이 정도 일은 실수 없이 처리할 거야.” 송혜선은 분노로 인해 어지러움에 휩싸일 지경이었다. 정신을 다잡은 그녀는 조봉규에게 화를 쏟아냈다. “내가 넘어진 거, 당신이 밀어서 넘어진 거 아니야?” 조봉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으로 급히 부인했다. “내가? 말도 안 돼! 내가 왜 당신한테 그런 짓을 해?” 송혜선은 이를 악물며 낮게 중얼거렸다. “참나! 그럼 분명히 누군가가 날 해하려고 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지금은 증거가 없지만 난 절대 이대로 당하지 않을 거야!”...정씨 가문에 예물을 전달하러 갔을 때, 예법은 철저히 갖춰졌지만 부씨 가문의 두 어른은 참석하지 않았다. 정지철 부부는 속으로 불만을 품고 있었다. “남준이, 네가 아무리 DL그룹 이사회에서 하위권에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건 우리를 너무 가볍게 보는 게 아니냐?” 정다영의 어머니 하미주는 불만을 숨기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남준은 얕은 미소를 지었을 뿐 대답하지 않았고, 그의 곁에 있던 집사가 대신 나섰다. “사모님께서는 태교 중이시고, 부 회장님께서는 중요한 일로 인해 참석하지 못하셨습니다. 대신 저를 통해 예를 갖추셨습니다. 결혼식 때는 꼭 참석하시겠다고 전하셨습니다.” 하미주의 불만을 눈치챈 정다영이 바로 나서서 분위기를 풀었다. “엄마, 남준 씨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줄지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상혁은 나가기 전, 노크하듯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남준, 축하한다. 약혼, 행복하길.” 남준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앉은 채로 고개를 들어 상혁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상혁은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모든 것을 손아귀에 쥔 듯한 모습이었다. “형은 언제 형수님 댁으로 예물을 보내나요?” “다음 달. 약혼식도 다음 달로 잡았다. 그때 제수씨 데리고 와서 축하해줘.” 남준은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짧게 대답했다. “네 물론 그렇게 해야죠.” 남준의 사무실에서, 정규인은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수천억의 구멍을 제가 어떻게 메우라는 겁니까? 도대체 회장님께서 어디서 이런 소식을 들으신 거죠?” 남준은 피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정 사장님 주변에 배신자가 있다는 뜻이에요.” 정규인은 충격에 휩싸여 잠시 말을 잃었다. “제 주변에요?”...DS그룹 쪽에서는 하연은 요즘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손이현과 자주 부딪쳤다. 늘 일부러 피했지만,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이현은 먼지를 뒤집어쓴 듯 급히 찾아왔고, 정태훈이 이현을 막아섰다. “한 상무님, 여기서 뭘 하십니까?” 이현은 급하게 들고 온 재킷을 벗어 손에 쥔 채,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하연을 향해 물었다. “하연 씨, 제가 들었는데, 약혼한다면서요?” 하연은 순간 멍해졌지만, 숨길 이유는 없었다. “네, 부상혁하고요.”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이현은 거의 좌절한 표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왜 저를 기다려주지 않은 거죠? 저도 충분히 하연 씨한테 어울 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데요.” 하연은 천천히 걸어가 그를 마주 보며 말했다. “무얼요? 부상혁과 같은 위치에 서는 걸요?” “하지만 사랑이란 건 저울과 같잖아요.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버렸어요.”
“당신!!!” 정규인은 이를 악물고 상혁을 노려보았지만, 결국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표님, 정말 이렇게까지 하셔야만 합니까?” 정규인의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섞여 있었다. 상혁은 태연하게 무시하며 차분히 말했다. “정 사장님,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상혁의 기세도 날카롭고 위압적이며 가벼운 미소를 띠며 돌아서서 차가운 뒷모습을 남겼다. 오늘 정규인의 협력 논의는 완전히 결렬되었고, 수천억의 손실은 이제 발 빠르게 처리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정규인의 다리가 휘청거렸고, 굵은 땀방울이 이마에서 떨어졌다. 비서가 급히 달려와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정규인은 손으로 땀을 닦아내며 상혁이 사라진 방향을 노려보았다. “내가 시킨 일은 어떻게 됐어?” “이미 사람을 보내 확인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감시해. 누가 배신했는지 밝혀내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바쁜 하루를 마친 하연은 회사 밖으로 나왔다. 멀리서 익숙한 남자의 모습을 발견하자 놀란 눈빛이 잠시 스쳤다. 곧바로 미소를 띤 하연은 기쁘게 뛰어가 남자의 품에 안겼다. 상혁은 하연을 받아들이며 힘껏 안아주었다. “어쩐 일이에요?” “내 약혼녀를 데리러 왔지!” 상혁의 입에서 나온 ‘약혼녀’라는 말에 하연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오래 기다렸어요? 왜 미리 전화 안 했어요?” “바쁜 것 같아서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 상혁은 하연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고 차로 향했다. 차 안은 히터가 켜져 있어 따뜻했고, 하연은 외투를 벗으며 환히 웃으며 말했다. “하경 오빠가 말하길, 크리스마스에 아린 씨에게 청혼할 계획이라던데, 우리도 축하하러 가요.” “그래.”상혁은 짧게 대답하며 바로 동의했다. 기쁨에 휩싸인 하연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상혁의 눈은 점점 깊어졌다. “자기야...” 갑자기 그는 하연을 품에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청혼에 아린은 순간 멍해졌다. 한참 동안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서서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눈앞에 무릎을 꿇고 진심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 아린의 마음속에 어느새 깊이 자리 잡은 하경이었다. 아린의 눈가에 서서히 미소가 번졌고, 이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 “좋아요. 나도 하경 씨와 결혼하고 싶어요...”그 확실한 대답은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하경은 천천히 반지를 아린의 약지에 끼워 주었다. 자세히 보면, 평소 차분하고 냉정한 하경의 손마저 긴장으로 땀에 젖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아린을 바라보며 진중하게 약속했다. “평생 아린 씨만 사랑할게요.”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입을 맞추었다. 하연은 이 감동적인 청혼 영상을 ‘미녀4총사’ 단톡방에 올리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우리 오빠가 이러다니! 우리 오빠가 이러다니! 난생처음 보는 모습이야! 우리 오빠가 이렇게 로맨틱하고 다정한 사람일 줄이야!] 채팅방은 곧 들썩였다. 신가흔은 가장 먼저 반응했다. [최하경이 청혼을 했다니? 너무 빠른 거 아니야? 너희 집안 진짜 축제 분위기네.] 정예나도 장난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 맞아! 우리 집안 요즘 축제 분위기인데, 너희 둘도 얼른 이 기운 받아서 빨리 결혼들 해라.]하연이 바로 답장이 올렸다.뒤이어 다양한 반응들이 이어졌다. [최하연, 설마 네가 우리한테 결혼 압박 넣는 거야?][이 제안, 난 정중히 거절한다.] [나도.] [그리고 나도.][결혼 안 해.]하연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머리를 저었다. 하경의 청혼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아린을 품에 안았고, 집 안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하경의 친구들은 그를 둘러싸며 떠들썩하게 축하했다. “하경아, 청혼 성공했으니 결혼식 준비는 서둘러야지.” “우린 벌써부터 축배 들 준비가 돼 있어!” 하경은 아린을 살짝 끌어안으며
하연은 당황한 표정으로 상혁을 밀어내고, 재빨리 욕실 문을 닫으며 소리쳤다. “나, 드레스 때문에 이모랑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어제 말했잖아요.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늦는다고요!” ...F국에서 가장 비싼 상업지구에 위치한 맞춤형 웨딩숍. 조진숙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잡지를 넘기며 커피를 음미하던 그녀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이모!” 하연은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조진숙에게 뛰어왔고, 조금 미안한 듯 웃으며 말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조진숙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따뜻한 손길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늦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 말 안 해도 돼.” 하연의 손을 꼭 잡고 그녀를 끌어안으며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둘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뒤따라온 상혁은 아예 잊은 듯했다. 매장 직원이 다가와 공손히 인사했다. “여사님!” 조진숙은 하연을 보며 말했다. “하연아, 얼른 드레스 입어보고 수정할 곳이 있는지 확인해보자. 연말 전에 디자이너가 휴가를 간다고 하니 그 전에 확정해야 하잖니. 너희 약혼식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되지.” 이 드레스는 조진숙이 친구를 통해 특별히 의뢰한 독점 디자이너의 하이엔드 맞춤 드레스였다. 전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작품이었다. 하연의 치수에 맞춰 이미 조정된 상태로 항공 배송된 것이다. 하연이 피팅룸에서 드레스를 입고 나오자,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오늘 하연은 옅은 핑크빛 립스틱을 발랐고, 골드 톤의 오프숄더 롱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섬세한 어깨와 매끈한 종아리가 드러나는 독특한 디자인이었다. 10cm의 은빛 하이힐을 신은 하연은 완벽하게 안정된 모습이었다. “어머, 하연아! 정말 너무 아름답구나!” 조진숙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그리고 곁에 있는 상혁을 힐끔 보며 덧붙였다. “아들아, 너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하연이 같은 이렇게 아름다운 신부를 얻다니, 정말 복 받았구나.”상혁은 하
상혁은 자연스럽게 하연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귀 가까이에서 낮고 깊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를 기다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오래든 상관없어.” 하연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 “부 대표님, 참을성 하나는 최고네요.” “그건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지.” 상혁은 미소를 띠며 차 문을 열어 주었다. 그의 커다란 손이 하연을 향해 내밀었고, 눈앞에 화려한 붉은 장미 꽃다발이 나타났다. 하연의 눈이 반짝였다. “인터넷에서 봤는데, 여자들은 꽃을 좋아해서, 꽃을 자주 선물해주면 서로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진다더군.” 그래서 부상혁도 한 번 두 사람의 사랑이 더 깊어질 수 있도록 시도해 보기로 했다. 하연의 뺨이 분홍빛으로 물들었고, 긴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급히 꽃다발을 받아 들고 장미 향을 맡았다. 향긋한 꽃내음이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하연은 웃으며 말했다. “부 대표님, 이제는 인터넷으로 공부도 하시네요?” 상혁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톡 건드렸다. “네 반응을 보니, 공부한 보람이 있군.” “맞아요, 부 대표님. 앞으로도 쭉 이렇게 해주세요.” 둘은 눈을 맞추며 미소를 나눴다. ...돌아가는 길, 차 안의 분위기는 한층 더 부드러웠다. 하루 종일 일한 하연은 피로에 지쳐 있었고, 차 안에서 연신 하품을 했다. 상혁은 그녀의 피곤한 얼굴을 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졸리면 잠깐 눈 좀 붙여. 도착하면 내가 깨워줄게.” 하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다 잠들기 전,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나지막이 말했다. “진숙이 이모가 오후에 전화했어요. 맞춤 제작한 드레스가 항공편으로 도착했다고 하셨어요. 내일 오전에 우리 같이 보러 가요.” “그래, 알겠으니까 일단 좀 자.” 상혁의 대답을 듣고 하연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어찌 된 일인지, 하연은 요즘 들어 눈에 띄게 더 많이 자는 듯했다. 그녀는 해가
상혁은 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 “물론이지.” 확고한 대답에 연지는 속으로 환호하며 입가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고, 기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제가 반드시 두 배로 열심히 일해서 꼭 대표님께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상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를 지었지만, 그 웃음은 눈까지는 미치지 않았다. “그래, 황 비서의 능력을 믿어.” 확신의 말을 듣고 연지는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하지만 곧이어 상혁이 말의 방향을 틀었다. “다만, 그전에 황 비서가 내게 작은 일을 하나 도와줬으면 좋겠어.” 말이 끝나자 연지의 얼굴에 스친 미소가 살짝 굳으며 가슴이 쿵쾅거리며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작은 일’이 결코 단순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하지만 만약 그녀가 이 일을 거절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연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어떤 일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넓은 사무실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으며 적막감이 감돌았다. 연지는 사무실에 겨우 15분 정도 머물렀고, 바로 서둘러 나갔다. 그녀가 나가자마자, 원신민이 커다란 장미 꽃다발을 들고 들어왔다. “대표님, 주문하신 꽃다발이 방금 도착했습니다.” 상혁의 시선이 꽃다발로 향했다. 한겨울에도 장미는 탐스럽게 피어 있었고, 햇살 아래 더욱 화사하고 매혹적으로 보였다. “대표님, 이렇게 예쁜 꽃이라면 최 사장님께서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응.”부상혁은 가벼운 소리로 답하며, 마치 하연이 꽃다발을 들고 기뻐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그냥 거기에 놔둬. 퇴근할 때 가져갈게.” “알겠습니다.” 원신민은 꽃다발을 책상 한쪽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나서 문서 정리를 하며 상혁의 지시를 기다렸다. 그러다 방금 연지가 떠날
다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없이 도시락을 내려놓았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국자를 들고 국 한 그릇을 떠내어 남준에게 내밀었다. “제 음식 손맛이 어떤지 한 번 봐주세요.” 다영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몇 시간이나 끓인 거예요. 제 체면 좀 살려주세요.” 남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담담히 말했다. “그냥 놔두세요. 나중에 먹을게요.” 하지만 다영은 물러서지 않았고, 남준의 팔을 당기며 말했다. “안 돼요. 국은 식으면 맛이 없어요.” 둘 사이에 잠시 신경전이 오갔는데, 결국 남준은 소파에 앉아 국을 받아 들었다. 그는 한 모금 떠먹으며 살짝 맛을 보았다. “어때요? 맛있죠?” 다영은 남준의 팔에 팔짱을 끼며 애교 섞인 미소를 지었다. 둘은 매우 가까이 있었다. 서로의 숨소리마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남준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런 일은 아줌마에게 맡겨요. 다영 씨가 직접 할 필요 없어요.” “괜찮아요. 어차피 한가하기도 하고 남준 씨한테 직접 해주고 싶었어요.” 다영은 남준을 바라보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속삭였다. “그리고요, 남준 씨에게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건 제겐 행복한 일이에요.” 남준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깊고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영 씨, 나는 다영 씨가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없어요...” 다영은 남준의 말을 가로막으며 손으로 그의 입을 덮었다. 다영의 손바닥은 따뜻했고, 은은한 꽃 향기가 풍겼다.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제가 결정할 일이에요.”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남준 씨, 이건 제 선택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갈비탕을 끓이는 게 나에겐 분명 기쁨이었어.' ‘그리고 내가 남준 씨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이 정도뿐인 건 아니잖아.'“남준 씨,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뭐든지 도와줄게요. 그게... DL그룹 전체라 해도
[상무님, 저 감옥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정규인은 완전히 방향을 잃은 채 안절부절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말했다. [제가 감옥에 들어가면 이번 생은 끝입니다. 상무님, 어떻게든 이번에 저를 도와주셔야 해요. 이 고비만 넘기게 해 주세요.]“내가 무슨 수로...!” 남준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전에 경고했었잖아요. 적당히 하고 그만두라고... 내 말을 들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진 않았을 겁니다.” 정규인도 그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이 한 번 자극되면 멈추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부상혁이 이렇게까지 무자비하게 나올 줄 몰랐어요... 명백히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다른 야심 있는 자들을 철저히 제거하려는 거예요. 심지어 상무님까지 뿌리째 뽑아버리려는 걸 보면 말이에요.”정규인은 다급히 대답하며 남준의 도움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남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지금 정 사장님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자금 부족을 메우는 게 우선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나도 도와줄 수 없어요.” 이 말에 정규인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상무님, 그 말은 저를 돕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정규인은 초조하게 말했다. [제가 돈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끌지 않았겠죠. 이미 집이며 주식이며 팔아도 절반에도 못 미치는 돈밖에 없습니다. 결국 감옥으로 가라는 건가요?]그는 이를 갈며 마음속으로 부정했다. ‘안 돼. 난 감옥에 갈 순 없어.' [상무님, 잊지 마세요. 우리 둘은 같은 배를 탄 사이입니다.] 정규인은 바보가 아니었다. 남준이 이 시점에서 거리를 두려 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제가 감옥에 들어가면, 상무님도 혼자 깨끗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남준은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지며, 그의 시선은 점점 차가워졌다. “정 사장님, 지금 그 말은 무슨 뜻으로 하시는 거죠?”정규인은 감추고 있던 ‘비상카드’를 꺼내듯 천천히
부씨 가문 본가.부동건은 동남아시아쪽 소식을 듣고 난 뒤 서재에서 한참 동안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었다. “남준이... 이 놈의 자식, 감히 이렇게 큰일을 나한테 보고도 안하고 멋대로 처리를 해.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 송혜선이 갓 우려낸 최고급 녹차를 들고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그녀가 본 것은 온몸에 분노를 두른 부동건이었다. 요 며칠 동안 컨디션을 잘 관리한 덕분에 송혜선의 안색은 한결 좋아 보였다.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화를 내는 거예요?” 살짝 걱정 섞인 그녀의 물음이었다. 평소 같았다면 송혜선의 이런 부드러운 태도는 거친 감정을 진정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이미 화가 극에 달한 부동건은 송혜선의 얼굴을 보자마자 더욱 불같이 타올랐다. “누가 들어오래?” 분노를 삼킨 낮은 목소리였다. 송혜선은 순간적으로 멈칫했지만,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 불룩한 배를 이끌며 그의 앞에 다가가 차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아주머님한테 부탁해서 회장님을 위해 우려낸 차예요. 따뜻할 때 드세요.” “나가!” 그녀의 손이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회장님, 왜 이러시는 거예요? 회사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탁자 위로 부동건의 손이 강하게 내려치며 큰 소리를 냈다. 그 충격에 송혜선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부동건은 냉소를 머금고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그녀에게 던졌다. “네 훌륭한 아들이 한 짓을 직접 확인해 봐!” 송혜선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고, 서류가 바닥에 흩어지며 떨어졌다. 부동건은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움켜쥐며 문을 세게 닫으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부동건의 새로운 비서는 이미 저택 아래서 부동건을 기다리고 있었고, 부동건이 내려오자 비서는 주눅 든 얼굴로 다가갔다. “회장님!” “30분 안에 모두에게 모이라고 전해. 긴급회의 할 거라고.” 그날의 폭풍은 DL그룹 전체를 강타했고, 회의는 무려 여섯 시간 동안 이
원신민의 업무 처리 속도는 매우 빨랐다. 30분도 지나지 않아 모든 CCTV 자료가 상혁의 이메일로 전달되었다. 상혁은 사무실 소파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날카로운 윤곽선을 가진 그의 얼굴은 석고상처럼 굳어 있었고, 어둠 속에 잠겨 표정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한쪽에 서 있던 원신민이 보고를 시작했다. “대표님, 지시하신 대로 처리 완료했습니다.” 어제 모임과 관련된 인물들... 예외 없이, 모두 응당한 대가를 치렀다. 어젯밤, F국은 그야말로 피바람이 몰아치는 혼돈의 밤이었다. 밤 11시를 막 넘긴 시각, 전씨 가문 산하의 기업들이 일제히 해커들의 공격을 받았다. 내부 시스템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고위층의 기밀 자료들이 모조리 유출되었다. 단 한순간에, 전씨 가문은 상업계의 집중 표적이 되어버렸다.전영철은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서 화가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한밤중에 무슨 일이길래 전화를 하는 거야! 내일 말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 그러나 전화기 너머에서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큰일났습니다. 회사가 곧 망하게 생겼습니다!] 이 말에 전영철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라고?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대표님, 당장 인터넷을 확인해 보세요! 대표님 과거의 모든 비리 자료가 전부 까발려졌고, 심지어 경찰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전영철의 손은 떨리기 시작하며 마음속은 공포로 가득 찼다. 그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서 서둘러 전화를 끊고 웹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전영철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십여 년 전에 묻어두었던 과거의 일이 모두 드러난 것이다. [대표님, 경찰이 지금 대표님 댁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어서 도망치셔야 합니다!]‘도망?’ ‘맞아! 지금 내가 도망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어!’ 전영철은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려 했지만, 다리가 풀려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의 눈에는
사교 자리를 한 바퀴 돈 뒤, 하연은 약간 피로함을 느껴서 틈을 타 조용히 옥상으로 올라가 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곳에서 주슬기를 마주쳤다. 주슬기는 오늘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다. 난간에 기대어 있던 주슬기는 하연을 본 순간 자세를 약간 바로잡았다. “주 대표님, 여기 혼자 계셨군요.” 하연은 주슬기를 유심히 살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술 때문인지, 아니면 자존심 때문인지, 주슬기는 솔직한 말투로 한마디 내뱉었다. “제가 이렇게까지 해서 최 사장님을 피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이지 않나요? 최 사장님이 정말 그걸 모르시는 건 아니시죠?” 슬기는 살짝 입술을 깨물며,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최 사장님과 부상혁 대표님이 너무 잘 어울려서요. 솔직히 보는 게 좀 거북하더군요.” ‘이렇게 대놓고 말하다니...’ 하연은 잠시 놀란 듯했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렇게 신경 쓰시면 앞으로는 더 피곤할 텐데요.”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며 묘한 긴장감이 공기 중에 떠돌았다. 슬기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하연 씨, 마치 지금 자신이 승자라고 저한테 자랑이라도 하는 건가요? 그럴 필요 없어요. 애초에 우리는 제대로 경쟁조차 해본 적 없으니까요.” ‘부상혁의 마음은 처음부터 최하연에게 기울어 있었어. 경쟁이라고 하기에도 웃긴 거지, 내 완패일 뿐이니까.’ “최하연 씨, 당신 정말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나요?” 이번엔 주슬기가 하연의 이름을 직접 불렀다. 두 사람은 정면으로 마주 섰고, 주슬기는 자기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질문을 꺼냈다. “최하연 씨도 잘 알잖아요. 최하연 씨와 그 사람이 함께하면 온갖 소문이 뒤따를 거라는 걸... 그런 말들을 어떻게 막을 건데요?” ...차 안. 하연의 표정은 한껏 무거워 보였고,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주슬기와의 대화에 머물러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해?” 상혁이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질문의 화살은 주슬기에게로 향했다. 전서나는 마치 이미 답을 확신한 듯 여유로워 보였다. 그러나 주슬기가 입을 열기도 전에, 갑자기 다른 한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저 사람 DL그룹의 부상혁 대표님 아니야? 오늘 여기에 있었던 거야?” 사람들 틈에서 한 남자의 길고 우아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이 남자는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과 압도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은 부상혁이라는 남자만의 독특한 아우라였다. ‘부상혁...’ 주슬기는 입을 열려다 멈췄고, 상혁의 존재가 그녀의 시선을 끌어당겼고, 주변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빛을 잃은 듯했다. 서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주 대표님, 무슨 말이라도 하셔야죠. 모두 우리를 보고 있잖아요.” 서나의 말의 그제서야 주슬기가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눈길은 여전히 자신도 모르게 부상혁을 따라갔다. 상혁은 사람을 가로질러 하연의 앞으로 다가갔다. 둘은 마주 보고 미소를 주고받았고, 하연은 자연스럽게 상혁의 팔짱을 끼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요?” 상혁의 눈빛에는 따뜻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고,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깊은 연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마침 이 근처에서 협상할 일이 있었는데 방금 협상이 끝났거든 그래서 네가 여기에 있다고 해서 들른 거야.” 하연은 그의 말을 듣고 피식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내가 알기로는 방금 당신이 있던 곳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완전히 반대던데요. 여기가 근처라니, 그게 말이 돼요?”말하면서 그녀는 작은 손으로 상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부상혁 대표님, 당신의 속마음은 너무 뻔히 보이는걸요.” 둘의 자연스러운 연인의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을 찌르듯 강렬했다. 특히나 주슬기에게는 더욱 그랬다. 그녀는 얼른 시선을 돌렸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묘한 질투심이 솟구쳐 올랐다. 서나도 당연히 부상혁을 알고 있었다. 부상혁은 사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과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