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하연이 하루아침에 갑부의 손녀가 되자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연의 환심을 사려고 먼저 다가가 아부하고 있다.이 모습을 보니 유진은 배알이 꼬였다.“작은고모, 혹시 한서영이 왜 A국으로 쫓겨난 줄 아세요?”한설매는 결혼을 한 뒤 본가의 일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아 서영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그저 A국으로 유학을 보냈다는 이수애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그런데 A국이 어떤 곳인가? 한씨 가문이 설사 망했다 할지라도 자식을 A국으로 유학 보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한설매는 내막을 모르기에 궁금한 듯 되물었다.“무슨 속사정이라도 있는 거야?”유진은 이내 사람들에게 둘러 싸인 하연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이유라 할 게 있겠어요? 다 최하연 때문이죠.”“최하연? 최하연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유진은 하연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는 눈빛으로 한설매를 바라봤다.“전에 둘째 숙모와 한서영이 최하연을 어떻게 괴롭혔는지 잊었어요? 최하연은 그걸 복수하려고 때를 기다린 거예요. 그리고 하루아침에 한서영한테 그 본대를 보여줬잖아요. 서준이 직접 명령을 내렸대요. 남은 평생 한서영이 귀국하지 못하도록.”그 말을 들은 한설매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최하연이 그 정도로 뒤끝이 있다고?”돌이켜 보면 한설매도 하연을 남자 덕에 팔자 폈다고 종종 모욕했었다. 그러니 하연이 만약 그때 일을 복수한다면 한설매는 분명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작은고모가 몰라서 그렇지 이번 일로 피해 본 사람 한서영뿐만이 아니에요. 둘째 숙모도 당했거든요.”“뭐? 둘째 언니는 그래도 최하연 시어머니였잖아, 게다가 어르신이고! 그런데 어떻게 감히! 이젠 위아래도 없다 이거야?”유진은 한참 부채질하다가 기회를 보더니 마지막 한마디를 투척했다.“두 사람 지금은 이혼했잖아요. 그러니 둘째 숙모도 이제는 시어머니가 아니죠. 그래서 저렇게 거리낄 게 없는 거고. 그러니 작은고모한테는 어떻게 대하겠어요.”그 순간, 한설매는 덜컥 겁이 났다.한설매가 결혼한
모든 사람이 하연의 주위에 모여들어 떠받드는 걸 보자 강영숙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반해 거실 구석에 앉아 있는 이수애는 속에서 열불이 났다.이 사람들이 권세에 빌붙으려 한다는 건 이미 익히 알고 있었다.예전에 이수애가 잘나갈 때는 하나같이 그녀를 추켜세우며 빌붙으려 하던 사람들이니. 하지만 지금 그 태도가 180도로 변해 모두 하연에게 몰려들었다.이 사실을 인지한 순간 이수애는 딸 서영이 더 그리웠다.지금 서영은 A국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하연은 너무 잘나가고 있었으니 속이 말이 아니었다.“어머님, 최하연은 이제 우리 집 식구도 아닌데, 왜 초대했어요?”그 말에 강영숙은 이내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하연은 내가 초대한 손님이다. 내 손님에 네가 왜 토를 달지? 그럴 시간이 있으면 주방에서 일이나 좀 거들어라. 여기서 방해하지 말고.”강영숙의 강경한 태도에 이수애는 마지못해 입을 다물더니 곧장 뒤돌아 주방으로 걸어갔다.그제야 강영숙이 손을 뻗어 아픈 가슴께를 꾹꾹 눌렀다. ‘고질병이 또 도졌나 보네.’강영숙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리고 그때.“하연 씨.”유진이 사람들을 가로 지나 하연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연은 그나마 유진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그도 그럴 게, 서준의 사촌 누나인 유진은 다른 식구들처럼 하연을 괴롭힌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유진 언니.”“하연 씨, 너무 많이 변해서 몰라보겠네요.”유진은 싱긋 웃으며 말을 걸어오자 하연 역시 웃음으로 화답했다.“언니야말로 점점 예뻐지네요.”그때 유진이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말을 보탰다.“방금 할머니가 몸이 편찮아 보이던데, 또 고질병이 도진 것 같아요.”강영숙이 편찮다는 말에 하연은 이내 걱정했다.“할머님은 괜찮으세요?”그 말에 유진은 주위를 빙 둘러보며 무심코 말했다.“어? 이상하다? 위층에 올라간 지 한참이 되는데 왜 안 돌아오셨지?”하연은 순간 걱정이 한층 더해졌다. 하지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서로 대화하는 손
“지금 여기서 뭐 해?”문 앞에 서 있는 서준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심지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더니 하연의 손을 확 낚아챘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연은 서준에게 끌려 방을 나섰다.“방금 그거 뭐야?”믿을 수 없다는 듯 묻는 하연의 질문에 서준은 눈살을 찌푸릴 뿐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뭘 봤든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하연의 의심은 더해져만 갔다.심지어 이곳에 남모를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건 너무 이상하잖아.”하연은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방금 본 걸 떠올리더니 결국 서준을 보며 물었다.“왜 서준 씨 흑백 사진이 벽에 걸려 있어? 뭐 귀신이라도 돼?”그 말에 서준은 버럭 화냈다.“헛소리하지 마. 잘못 본 거야.”“전말?”재차 질문하던 하연은 그제야 서준이 제 손목을 잡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는 이내 손을 뿌리쳤다.“생일 연회 이제 곧 시작해. 내려가자.”서준은 텅 빈 손을 바라보며 인내심 있게 말했다.하연은 아직 의심이 가시지 않았지만 이내 본인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라고 결론 지었다.‘한서준이 내 앞에 이렇게 있잖아. 그러니 그럴 리 없어.’“할머님은 어떠셔? 괜찮아?”“뭐라고?”“할머님이 편찮으시다고 해서 올라와 본 거야.”서준은 방금 전 상황을 설명하는 하연을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할머니는 괜찮아. 다음에 다시는 여기 오지 마.”“응.”하연은 눈을 내길 깔고 짤막하게 대답했다.두 사람이 앞뒤로 나란히 서서 계단 입구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정체 모를 물건이 하연을 향해 날아왔다.“조심해.”무의식적으로 반응한 서준은 하연의 팔을 잡아당기며 제 몸으로 무거운 물건을 막아냈다.그리고 다음 순간, ‘쿵’하는 소리와 함께 물건이 서준의 등에 떨어지더니 옷이 얼룩덜룩한 물감으로 완전히 뒤덮여 처참한 몰골이 되어버렸다.주위의 시선은 순간 서준에게 모였다. 다들 의아한 눈빛으로 처참한 몰골의 서준을 바라봤다.
“난 최하연만 있으면 돼.”그 말에 하연은 화가 치밀었다.“그건 안 될 것 같은데.”하연의 거절에 서준의 표정을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렇다고 사람들 앞에서 하연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기에 결국은 유진을 따라 자리를 피했다.두 사람이 떠나자 강영숙이 얼른 다가와 하연을 걱정했다.“하연아, 괜찮니?”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연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몸은 괜찮으세요?”“나는 괜찮다. 늘 있는 일이라.”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설매가 7살 정도 되는 남자애의 귀를 잡아당기며 아래로 내려왔다. 그 아이의 옷 역시 얼룩덜룩한 물감이 묻었고, 손에 붓 두개를 든 채 눈물범벅이 되어 울고 있었다.“네가 한 짓 똑똑히 봐!”남자애는 꾸중을 듣자 지붕이 떠나갈 것처럼 엉엉 울었다.그걸 본 강영숙이 언짢은 표정으로 호통쳤다.“그만 해라. 창피한줄도 모르고.”이건 분명 하연을 겨냥했던 일인데, 왜 서준이 엉망이 되었는지 한설매는 의문이었다.심지어 서준이 이 일을 알게 되면 제 아들을 혼낼지도 모르기에 먼저 나서서 사과했다.“엄마, 죄송해요. 애가 철이 없어서 서준을 저렇게 만들 줄 누가 알았겠어요. 너그러이 용서해 줘요. 내가 이미 심하게 혼쭐냈으니.”어두운 표정의 강영숙은 한설매를 무시하며 하연을 제 쪽으로 끌어왔다.“가자, 하연아.”그 시각, 하연의 눈은 어두워졌다.심지어 마음속 한구석이 왠지 자꾸만 불안했다.한편, 방에 도착한 유진이 하인들을 쫓아내는 바람에 서준과 단둘이 남게 되었다.등을 돌리고 있는 탓에 유진이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걸 모르는 서준은 곧바로 외투를 벗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하연이 그에게 달려들었다.“서준아, 내가 도와줄게.”유진의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심지어 동작도 어찌나 빠른지 서준이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그의 외투를 벗겼다.이에 서준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치며 눈살을 찌푸리더니 의아한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봤다.“누나도 그만 나가 봐. 나 혼자 할 수 있으니까.”서준이 거절 의사를 밝혔
유진은 도망치듯 저에게서 멀어지는 서준을 보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그제야 정신이 든 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주먹을 그러쥐었다.거절당했다는 분노를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낸 유진은 방금 전 계단 입구에서 하연을 감싸주던 서준의 모습을 떠올렸다.‘이미 이혼한 거 아니었어? 왜 아직도 애매하게 구는 건데?’유진의 눈동자는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매서운 빛이 언뜻 지나갔다....샤워를 하고 옷을 새로 갈아입은 서준은 거실에 도착하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며 하연을 찾았지만, 하연의 그림자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그때 서준을 발견한 강영숙이 낮은 한숨을 쉬며 귀띔했다.“하연은 이미 떠났어.”그 말에 살짝 놀란 서준은 원망하는 투로 되물었다.“왜 붙잡지 않았어요?”“너 이 할미한테 솔직히 말해 봐. 대체 뭐하고 싶어?”강영숙의 말투는 매우 퉁명스러웠다.“여자도 아직 해결하지 않았으면서. 내 기억이 맞는다면, 네가 바람피워 그 계집 임신까지 시켰잖아.”지난 일을 언급하자 서준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강영숙은 평소에 서준을 아끼지만 이 일에서만큼은 서준을 지지할 수 없었다.“한번 배신하면 그 고통은 영원해. 하연이 너를 용서하면 남은 평생 후회하며 잘해줘야 할 거지만, 만약 하연이 이 일을 놓지 못한다면 절대 강요하지 마라. 두 사람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뜻일 테니.”서준은 강영숙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심지어 연회장에 남아 있을 기분이 사라져 곧장 제 방으로 돌아갔다.잠시 뒤, 서준의 방 베란다는 연기가 자욱했고, 바닥에는 온통 담배꽁초가 널렸다.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서준은 끝내 핸드폰을 꺼내 해외로 전화했다.“내가 조사하라던 건 어떻게 됐어?”상대방이 뭐라 말했는지 서준은 곧장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꺼버렸다.“알았어. 내가 바로 갈게.”이윽고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그날 바로 해외로 떠났다....한씨 고택을 나온 하연은 곧바로 회사로 돌아가는 대신 브랜드 디자이너 브랜드숍으로 향했다.한동안 오지 않았는데, 이곳의 장사는 여
“참, 네가 오니까 갑자기 생각났는데.”예나가 갑자기 하연의 생각을 끊으며 말을 이었다.“전에 어떤 고객님이 너를 콕 집어서 드레스 디자인해달라고 하더라고.”“무슨 디자인인데?”예나는 얼른 카운터에 보관하고 있던 고객 리스트를 하연에게 건넸다.“가격을 6억이나 제시했어. 시간도 빠듯한 게 아니고. 반년 내로 네가 시간 날 때 언제든 만들어만 주면 된다던데.”하연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리스트를 건네받았다.리스트에는 고객의 상세한 정보 대신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혀 있었다.“뭐야? 신비주의 컨셉이래? 드레스에 대한 요구는 없고?”“말 안 하던데? 네가 시간 날 때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싶대. 받을 거야?”하연은 이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예쁜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받아야지. 안 받을 이유가 없잖아. 우리 가게에 들어온 큰 주문인데. 이건 나한테 맡겨, 회사 일만 처리하면 내가 직접 연락할게.”“그래, 나야 당연히 네 의견에 찬성이지.”...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온 월요일.아침 일찍 회사에 도착한 하연은 공교롭게도 1층 로비에서 운석과 마주쳤다. 운석은 슈트 차림에 평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하연을 본 순간 이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하이, 여신님!”싱글벙글 웃으며 하연에게 인사하는 운석의 모습은 다정한 미남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매너를 지키려는 듯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하연 씨도 회의에 참석하러 왔어요?”“네.”그 말에 운석의 미소는 더 짙어졌다.관계에 따르면 DS 그룹은 매주 월요일 정기적으로 회의를 하는데, 하연은 지금껏 거의 참석한 적이 없다. 때문에 하연이 참석하는 게 의외라고 느껴졌다.“오늘 회의에서 주로 D시 프로젝트에 관해 다루잖아요. 아마 최종 예산안을 확정하고 내일 바로 입찰 진행할 거예요.”하연은 운석의 업무 능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게, 운석은 일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하니까.하지만 이번 입찰이 중요한 건이다 끝내 보니 참지 못 하고
나운석의 프로젝트는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회의가 끝난 뒤 하연은 먼저 회의실에 나왔고, 태훈이 그녀와 약 반 발짝 떨어진 거리를 우유지하며 업무를 보고했다.그러다 두 사람이 이제 막 사무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하연 씨!”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더니 유진이 웃는 얼굴로 하연에게 걸어왔다.유진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하연은 놀랍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게, 서준과 이혼하고 난 뒤 한씨 집안 식구들과는 깨끗하게 관계를 정리하여 친척들과는 한 번도 왕래한 적이 없다.‘여기는 갑자기 왜 왔지?’하연은 의문이 앞섰지만 예의를 지키며 인사했다.“유진 언니,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그 말에 유진이 손에 들고 있던 보온병을 건넸다.“할머니가 나한테 삼계탕 심부름시키더라고. 하연 씨 가져다주라고.”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류를 덮어 이내 태훈에게 건넸다.“방금 말한 대로 진행해.”“네, 사장님.”태훈이 떠나자 하연은 그제야 시선을 유진에게 옮겼다.“들어와서 앉아요.”유진은 하연의 초대에 응하고는 이내 그녀 뒤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솔직히 유진은 180도로 변한 하연의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예전에는 항상 저자세로 순종적인 모습만 보였었는데, DS 그룹 대표가 된 지금은 오히려 유진을 누르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다.하연에게 압도당한다는 느낌은 전에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데 말이다.“하연 씨, 참 많이 변했네요.”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유진은 감탄했다.“아니에요, 일할 때만 이래요.”하연은 겸손하게 대답했다.“앉아요.”소파에 앉은 유진은 이내 손에 들고 있던 보온병을 하연에게 건넸다.“먹어 봐요. 할머니가 특별히 부탁한 거니까.”이에 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거리감 느껴지는 말투로 대답했다.“할머님께 고맙다고 전해줘요. 이렇게까지 마음 쓰실 줄 몰랐는데.”그러자 유진은 싱긋 웃었다.“고맙긴요. 할머니한테 하연 씨는 친손녀나 다름없는데요. 서준과 이혼했어도, 그건 변함없어요.”하연은 그 말에 표정을 가다듬으며 아무
“하연 씨가 서준과 재결합하지 않아도 나한테는 영원한 동생이나 마찬가지예요.”유진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사무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하연은 손에 들고 있던 그릇을 내려놓고 티슈로 입을 닦고 나서야 대답했다.“들어와요.”그 말이 떨어지자 운석은 서류뭉치를 안은 채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다른 손님이 있는 걸 발견하자 사뭇 진지한 태도로 변했다.“최 사장님, 말씀하신 서류예요. 확인 부탁드립니다.”보기 드문 운석의 진지한 태도에 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테이블 위에 올려 둬요.”“그래요.”하지만 그때, 운석을 본 유진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나운석, 네가 왜 여기 있어?”그 말에 운석 역시 고개를 들어 유진을 바라봤다. 서준의 오랜 친구로서 운석은 당연히 유진을 알고 있다.그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유진에 관한 비밀도 알고 있다.하지만 유진을 본 운석은 그저 겉웃음만 지어 보였다.“나 DS 그룹에서 일해.”그 말에 유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NW그룹 후계자가 남의 밑에서, 그것도 DS 그룹에서 일을 하다니.유진은 더 묻고 싶었지만 운석은 그럴 기회도 주지 않은 채 하연을 보며 말했다.“최 사장님,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그래요.”운석이 떠나자 유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심지어 은연중에 운석의 태도가 예전처럼 살갑지 않다는 것도 어느 정도 느꼈다.“유진 언니, 왜 그래요?”유진이 수저를 내려놓으며 묻자 유진은 다급히 대답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다 마셨어요? 저 잠깐 설거지하러 갔다 올게요.”“아니에요. 제가 할게요.”하연은 그릇과 보온병을 들고 사무실을 나가자 커다란 사무실 안에 일순 유진만 남게 되었다.그 틈에 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연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 운석이 방금 가져온 서류를 확인했다.그리고 그걸 확인하는 순간 눈에 흥분의 빛이 언뜻 지나갔다.유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핸드폰을 꺼내 서류를 한 장 한 장 펼치며 사진을 찍어 대더니 하연이 돌아오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