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대현이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쫓아왔다.“부 대표님, 이 프로젝트에 저희는 충분한 준비를 했고, 이미 많은 자금도 투자했습니다. 만약 지금 DS그룹이 저희와 협업하지 않는다면, 저희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입니다. 그러니 제발 부 대표님, 저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십시오.”상혁과 하연은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류대현은 이미 그 어떤 변명의 말도 할 수 없었다. “부 대표님, 최 대표님! 저는 여전히 우리가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합니다. 이번 돌발사태에 대해서는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협업을 하다가도 이런 일이 종종...”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하연과 상혁이 걸어 들어갔다.“류 대표님, 그냥 돌아가세요!”이 말을 들은 류대현은 자포자기한 상태가 되었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그때 서준이 구동후와 함께 다가왔다. “류 대표님!”류대현은 얼른 정신을 차렸고 서준을 보고 약간의 희망을 가졌다. “한 대표님,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서준이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오늘은 견문을 넓힌 셈 치겠습니다. 하지만 류 대표님, 앞으로 이런 식의 우스운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대부분 같은 곳에서 경영하는 사람들인데 소문나서 좋을 것이 없어요.”류대현은 안타까워서 속이 타들어 갔다.“한 대표님, 더 이상 방법이 없겠습니까?”서준이 그에게 좋은 제안을 했다.“류 대표님, 사람을 잘 알고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은 그룹 대표인 우리의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입니다. 이 정도는 제가 가르쳐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류대현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서준이 한 말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이해했다.모두가 떠난 후 류대현은 구완선을 사무실로 불렀다. “류 대표님, 제가...” 구완선이 막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즉시 상대편에서 날아온 손바닥이 그녀의 빰을 때려 얼떨떨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뺨을 감쌌고,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려
“그래도 오빠 덕분에 나노기술에 대한 자료를 먼저 살펴봐서 대비할 수 있었어요.” 하연이 미리 자료를 보지 않았다면, 정말 구완선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회의에서 망신을 당할 수도 있었다. “오빠, 그럼 우리 이 프로젝트를 계속 TY그룹과 협업하는 거예요?” 상혁은 손을 뻗어 하연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눈빛이 마치 사랑하는 보물을 보는 듯 부드러웠다.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협업은 협업이고 사적인 원한은 사적인 원한이죠! 공과 사는 분리해야 해요.” 그러자 상혁이 가볍게 대답했다. “그래! 협업이 가능할지는 TY그룹의 성의를 한번 보자. 그건 그렇고 하연이 네게 한 가지 할 얘기가 있어.” 하연이 눈을 들어 상혁을 올려다보았다. 하연의 눈은 마치 바닥이 보이는 연못처럼 맑았고 그 눈을 바라보는 상혁은 자신의 심장이 심하게 뛰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 할 말은 해야 지!’ “네가 앞으로 날 부르는 호칭을 바꿔주면 좋겠어!” 하연의 표정이 잠시 멍해졌고 이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상혁이 계속 말했다. “앞으로 나를 그냥 상혁이라고 불렀으면 좋겠어. 말도 편하게 놓고.” 하연의 눈빛이 빛나며 의아해했다. “상혁?” 상혁은 하연이 부르는 호칭에 만족했다. “응, 그렇게.” 하연은 잘 적응이 안 됐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지만 오빠라는 호칭과 말투가 이미 습관화되어 뼛속 깊이 새겨져 있어서 한순간에 바꾸기 어려웠다. “그런데 적응이 안 돼.” “그럼 천천히 적응하려고 해 봐. 언젠가 습관이 될 거야.” 그러자 상혁은 후련한 듯 표정이 펴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상혁이 먼저 하연의 손을 잡았다. 하연은 상혁의 손이 매우 크고 따뜻하다고 느꼈지만, 한편으로 서준의 것과 달라 무의식적으로 손을 빼려 했다. 하지만 상혁은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렇게 떠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멀지 않은 곳에서 바라보던 서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의 온몸에서 풍겨 나오는 차가운 기운이 옆에 있던
“아무리 최 사장님이라 해도 분명 대표님 일에는 신경 쓰실 거예요.”예전의 하연이라면 분명 서준의 일에 질투하고 화도 내겠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바뀐 것만 같았다.서준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리고 방금 전의 의기소침한 모습을 모두 숨긴 채 말했다.“가자, 구 실장.”서준은 이미 발걸음을 내디뎠다....DS 그룹으로 돌아온 하연은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불청객을 맞게 되었다. 이미 DS 그룹과 TY 그룹의 합작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호현욱은 기쁜 마음에 하연의 사무실로 달려와 시비를 걸었다.“최 사장님, 며칠 못 본 사이에 많이 초췌해지신 것 같네요. 그동안 일 때문에 많이 힘드셨나 봐요.”호현욱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 하연은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말했다.“호 이사님은 정말 한가하신가 보네요. 저한테 따로 찾아와서 할 말이 고작 그거였다니.”호현욱은 가식적인 미소를 지은 채 사무실 책상 앞으로 다가가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젊은이들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문제에요! 계약은 하루 이틀에 해결할 만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래도 TY 그룹과의 합작이 무산되어 아쉽긴 하네요.”하연은 하던 일을 멈추더니 서류를 닫은 후 천천히 고개를 들어 호현욱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호 이사님은 정말 소식이 빠르시네요. 하지만 기뻐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나요?”호현욱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최 사장님의 말이 맞습니다. 저희가 약속한 시간은 1년이니 벌써부터 걱정하긴 너무 이른 것 같네요. 전 그저 최 사장님과 DS 그룹이 걱정되었던 것이니 제 말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셨으면 좋겠네요.”“30%의 업적은 그리 쉽게 완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안 좋은 일을 겪을 수도 있죠. 전 그저 최 사장님께 건의를 한 것뿐입니다.”호현욱은 여전히 하연을 얕보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의 슈트를 정리하며 계속 말했다.“젊은 분들은 경험을 많이 쌓는 것이 더 중요하죠. 이번 일로 저희 최 사장님이
정기태는 계약서를 하연에게 보여주며 말했다.“그럼요, 이것 보세요.”하연은 TY 그룹이 이렇게 성의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일단은 계약서에 적힌 내용대로 하죠. 구체적인 계약 사항은 다음 회의에 정하는 걸로 합시다.”“네, 사장님.”계약이 성사되자 하연은 그제야 긴장되었던 마음이 풀려 정신을 가다듬고 계속해서 서류를 보았다.일에만 몰두하던 하연은 누군가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예나는 눈앞의 하연을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일에 이렇게까지 몰두할 줄은 몰랐네.’예나는 사무실 책상 앞으로 가서 손을 내밀어 책상을 두드렸지만 하연은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말했다.“정 비서님, 커피 한 잔 타오세요.”예나는 말문이 막혔다. 하연은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하자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예나야, 네가 왜 여기 있어?”예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럼 나 말고 누군 줄 알았어?”하연은 얼른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예나의 팔을 붙잡았다.“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어. 난 정 비서님인 줄 알았지.”예나는 두 손을 벌린 채 말했다.“전화했는데 아무도 안 받아서 온 거야.”하연은 그제야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여러 개의 부재중 전화를 보자 하연은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미안해! 핸드폰을 무음으로 설정해 놔서 전화 온 줄 몰랐어.”이를 본 예나는 더 이상 하연을 탓하지 않았다.“됐어, 이 일벌레야! 도대체 얼마나 바쁘길래 그동안 가게에 한번 와보지도 않았던 거야!”하연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미안해, 예나야...”하연의 초췌한 안색을 본 예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됐어, 이만 용서해 줄게. 요즘 피부가 왜 이렇게 나빠진 거야? 나랑 같이 미용실에 가지 않을래?”하연은 이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최근에 피부 관리를 거의 하지 않아 피부가 나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래, 피부 관리 좀 해야겠어.”하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채 예나와 함께 부근
“참, 듣자니 며느리분께서 옷 가게를 열었다던데 옷 디자인들이 매우 참신해서 장사가 엄청 잘 된다면서요.”“사모님, 며느리한테 옷 구경하러 갈 테니 손님들 돌려보내달라고 부탁해 주시면 안 돼요?”...이수애는 여자들의 말을 듣자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전에 그녀는 줄곧 하연을 무시하며 하연에게 지나친 행동을 보이며 자신의 아들과 이혼하게 만들었다.그런데 하서의 진짜 신분이 세계 최고 부자의 손녀라니.이수애는 전에 했던 행동들이 미친 듯이 후회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하연에게 분명 잘해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사모님, 말씀 좀 하시지요? 된다면 제가 친구들을 더 불러 며느리분의 장사를 돌봐드릴게요.”이수애는 가볍게 기침하며 난처한 표정을 숨겼다.“전 애들 일에 참견하지 않기로 했거든요...”“아이고, 그래도 사모님의 며느리신데 말만 한마디 하시면 뭐든 동의하지 않겠어요?”“며느리는 그래도 어머니의 체면은 세워주겠죠, 안 그래요? 설마 며느리조차 어려워하시는 거예요?”여자들은 모두 이수애의 자존심을 짓밟으려고 안달이 났다. 만약 이 여자들과 사이가 틀어진다면 앞으로 이수애는 친구조차 없게 될 것이다.이수애는 웃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무리 그래도 시어머니의 말은 들어야죠. 가게에 가보고 싶다는 거죠? 제가 시간을 마련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시죠.”“사모님, 며느리분이 꽤나 실력 있는 디자이너라고 들었는데 절 위해 옷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도 될까요?”이수애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물론이죠, 직접 디자인하라고 제가 말해놓을 게요.”“역시 사모님이에요. 그렇다면 며느리와 사이가 엄청 좋으신가 봐요?”이에 이수애는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줄곧 친구들 앞에서 하연을 욕했었는데 지금 하연이 없는 틈을 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그럼요, 저랑 며느리는 항상 사이가 좋았어요. 제가 늘 친딸처럼 아꼈었거든요.”이 말을 듣자 예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정말 파렴치한 인간이야. 예전에 너한테 그
“하연 씨도 여기 계셨네요?”그중 한 여자가 하연을 보자 눈을 반짝이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저희는 하연 씨의 시어머니와 함께 관리받으러 왔거든요. 방금 하연 씨의 가게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중이었어요.”하연은 앞에 있는 여자가 누군지 알고 있다. 여자는 허씨 가문의 사모님이다.“사모님께서 저희 가게에 와주시는 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하지만 이수애 씨는 이제 더 이상 제 시어머니가 아닌 데다가 저희 사이가 그렇게 좋진 않습니다.”하연은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이 말은 이수애의 체면을 잃게 만들었다. 그녀가 방금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이 들통났기 때문이다.여자는 하연의 말에 곧 사과하며 말했다.“참, 제가 깜빡했었네요. 하연 씨, 실례를 범하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여자는 매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하연이가 훨씬 어렸지만 여자는 줄곧 하연의 앞에서 예의를 갖추었다.나머지 여자들도 하연에게 아부하기 위하여 겸손한 모습을 보이며 이수애와의 관계를 내팽개쳤다.“하연 씨, 저희도 한씨네 사모님과 우연히 만난 거예요. 절대 친한 사이는 아닙니다.”“앞으로 저희는 절대 한씨네 사모님과 가까이하지 않을 생각입니다.”“한씨네 사모님이 줄곧 하연 씨를 괴롭혀 왔으니 이건 업보일 뿐입니다.”...이수애는 화가 치밀어 올라 여자들을 노려보았다.“하연 씨, 저희는 따로 볼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네요.”몇몇 부인들은 가려고 몸을 돌렸는데 이때 하연이가 그녀들을 불러 세웠다.“잠깐만요.”여자들은 서로 쳐다본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하연 씨, 또 무슨 일 있나요?”하연은 어두운 안색을 보인 이수애를 보자 기분이 매우 통쾌했다. 이건 모두 눈앞의 여자들 덕분이다.하연은 눈썹을 찡긋거리며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사모님들이 제 가게의 옷을 좋아하신다면 언제든지 찾아주셔도 됩니다. 오시면 제가 따로 할인을 해드릴게요.”“정말요?”여자들은 모두 눈을 반짝였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자기들에게 주어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하연은 긍정적인 대
“하연아.”이수애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예전의 일들은 모두 내 잘못이야. 내가 사과할게, 정말 미안해. 하지만 서준이는 아무 잘못 없어. 서준이는 아직도 널 마음에 품고 있을 거야. 혹시 우리 서준이랑 다시 만나볼 생각은 없어? 이번엔 내가 절대 두 사람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을 게!”“정말 뻔뻔하시네요.”예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채 말했다.“전 세계의 남자가 모두 죽었다고 해도 저희 하연이는 당신 아들과 안 만날 겁니다. 그러니 다신 이런 말씀 꺼내지 마세요.”하연은 이 말을 듣자 몰래 예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사모님, 오늘 하신 말씀은 우스갯소리로 넘어갈게요. 그러니 다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마세요.”이수애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겸손한 태도를 보였는데도 하연이가 이렇게 대답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연의 모습은 예전과 너무 달랐다.이수애는 매우 기분이 불쾌했다. 그녀는 몰래 손을 가방에 넣은 후 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준에게 하연의 진짜 모습을 똑똑히 보여주려는 것이다.“최하연, 넌 정말 우리 서준에게 아무런 마음도 없는 거야?”이수애는 포기하지 않고 한마디 물었는데 그녀는 아직도 하연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지난 3년간, 하연이가 서준을 위해 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서준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절대로 한순간에 식어버릴 마음이 아니었다.하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도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예전에는 서준을 떠올리면 늘 감정 기복이 심했다. 서준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연의 심장은 여전히 서준을 떠올리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서준을 떠올리면 그냥 낯선 사람을 떠올 리 듯이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사모님, 사람은 모두 변하는 법이에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전 절대 제 선택에 회하지 않습니다.”하연은 매우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서준 씨는 당신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들이겠지만 저한
“아들 넌 엄마 편이어야 해! 아들... 여보세요? 엄마 말 듣고 있어?”전화는 이수애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끊겨버렸다. 화가 잔뜩 난 이수애는 곧바로 핸드폰을 땅바닥에 집어던졌다.“최하연, 이 여우 년!”이수애는 화가 난 마음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주위의 사람들은 이를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수애는 부끄러운 마음에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다.“사모님...”바로 이때 임서희가 하이힐을 신고 나타나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이수애는 낯선 얼굴에 입꼬리를 움직이며 물었다.“누구시죠?”“제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최하연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하연을 언급하자 이수애는 경계하는 표정으로 차갑게 물었다.“최하연 그 여우 년과 아는 사이에요?”그러자 임서희가 말했다.“사모님께서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전 사모님과 차라도 한잔하며 최하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데 혹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임서희가 수상해 보였지만 이수애는 하연을 혼내주고 싶다는 생각에 바로 동의했다.“좋아요, 어디로 갈까요?”임서희는 장소를 고른 뒤 이수애를 데리고 떠났다....미용실에서 나온 하연은 기분이 매우 상쾌했다. 이전에 하연은 서준을 위해 늘 참고 양보했었지만 이번엔 자기만을 위해 당당하게 나섰다.회사로 돌아온 하연은 계속 바삐 일하다가 퇴근시간이 되여서야 손에 든 서류를 모두 확인하였다.“정 비서님, 이 자료들을 각 부서에 나누어 주세요. 내일 아침 회의에 사용할 자료들입니다.”하연은 지시를 내린 후에야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오늘 또 다른 일이 있으신가요?”최근 하연은 줄곧 야근을 했기에 눈 밑엔 다크서클이 짙어졌다. 정기태는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자 입을 열었다.“사장님, 회사 일은 이만 내려놓으시고 집에 가서 푹 쉬세요.”“괜찮아요, 마저 처리하고 돌아가도 늦지 않아요.”정기태는 결국 하연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남은 서류들을 보관하였다.하연이가 모든 일을
“이 한 잔을 사과의 의미로 받아 주세요.” 다영은 그렇게 말하며 먼저 잔을 비웠다. “아주버님, 형님.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세요.” 여자의 말은 매끄러웠고, 태도 역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하연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두 사람이 자리를 떠난 후. 다영은 더 이상 긴장을 숨길 수 없었다. ‘끝까지 침착해야 해. 실수는 절대 용납되지 않아.’ 손의 떨림을 억지로 참아내며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은 후, 급하게 잔을 채우고 나서 단숨에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녀는 자신의 이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었다.그리고, 이 한 걸음을 내디딘 이상,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한편, 상혁은 한쪽 팔로 하연을 살며시 감싸 안았다. 하연은 의아한 눈길로 상혁을 올려다보았다. “왜 그래요?” 그러자, 상혁은 하연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 순간, 하연의 얼굴이 단숨에 굳어졌다. “정말이에요?” 상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여 여자의 시선을 가리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연의 잔과 자신의 잔을 교체했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그 한마디에, 하연은 비로소 안도한 듯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어디선가 강렬한 시선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둘은 자연스럽게 눈빛을 교환하며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다. ...다영은 정신을 가다듬고, 조용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두 눈으로 목격했다. 즉, 하연이 아무런 의심 없이 잔을 들어, 그 안의 음료를 마시는 순간을. 그 순간, 다영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됐다...!’ 이제, 하연의 뱃속 아이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니까. ‘길어야 3일... 그 안에 반드시 아이를 잃게 될 거야.’ ‘하지만
“그러고 보니, 연지 씨가 부상혁 대표 곁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사실상 부 대표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던데... 그런데 지금은 부남준 상무를 위해 일하고 있네.”“내가 좀 궁금해서 그러는데, 어떻게 그렇게 부씨 가문의 두 형제 사이를 능숙하게 오갈 수 있는 거지?” 세븐이 입을 열자, 연지는 본능적으로 미간을 좁혔다. 그 말투와 어조가 거슬려 저도 모르게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다. “부상혁 대표는 원래 이런 말투로 말하지 않아.” “그리고 쓸데없는 일에는 관심 끄시지.” 그리고 이어서 단호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일이나 제대로 신경 쓰는 게 좋을 거야. 괜히 약점 보였다가 후회하지 말고.”그러나 세븐은 개의치 않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연지 씨, 정말 부상혁 대표에 대해 꽤 잘 아는 것 같단 말이야?” “그건 당신이 궁금해할 필요 없고.” 연지는 냉랭하게 받아쳤다. 오늘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면, 세븐은커녕 이 공간에 발 들이는 것조차 끔찍했을 것이다.“그리고 부남준 상무님이 하신 말씀 잊지 마. 본인이 할 일이나 제대로 해.” 세븐은 의미심장하게 눈썹을 살짝 올렸을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지는 손목시계를 올려다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곧 예식이 시작돼. 모든 건 계획대로 진행하면 돼.” “걱정 마. 발목 잡을 일은 없을 테니까.” 그 대답은 나쁘지 않았다. “차 안에서 얌전히 있어. 내 연락 기다려.” 마지막으로 단단히 일러둔 후, 연지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호텔 안. 비록 약혼식이지만, 최씨 가문과 부씨 가문 이들 모두 이를 굉장히 중시했다. 사소한 부분까지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로비의 장식만 봐도, 백 명이 넘는 직원들이 작년부터 준비해 온 결과물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홀 중앙에는 은하수처럼 쏟아지는 샹들리에가 빛을 발하고 있었고, 대리석 바닥에 비친 금빛 패턴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장관을 이루었다. 하객들은 이미 자리를
“네 아버지를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네가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려 있어.” 다영은 원래 조금 망설였지만, 그 말을 듣자 마음속에서 은근히 결심이 섰다. ‘반드시 아버지를 구해야 해.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 “어머님, 걱정 마세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습니다.” 송혜선은 다영의 대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면 충분해. 나를 실망시키지 않길 바랄게.” ...대기실 밖. 상혁은 잘 맞춘 정장을 입고 서 있었다. 훤칠한 체격에 비율까지 완벽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하성은 장난스럽게 상혁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자, 한번 말해 봐. 지금 기분이 어때?” 상혁은 거울을 가볍게 흘깃 쳐다보았다. 비록 자신은 전날 밤 한숨도 못 잤지만,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들떠 있었다. 오히려 얼굴엔 생기가 돌았고, 눈빛도 반짝였다. 그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음, 좋아.” “이렇게 오랜 시간 기다렸는데, 고작 ‘좋아’ 한마디?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니야?” 하성은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저었지만, 이내 진지한 얼굴로 덧붙였다. “어쨌든, 우리 하연이한테 잘해. 만약 조금이라도 속상하게 하면, 우리 집안에서 널 가만 안 둘 거야.” 상혁은 가볍게 주먹을 쥐어 친구의 가슴팍을 툭 쳤다. “그 말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몰라. 이제 외울 지경이라고.” 그러다 갑자기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걱정 마. 그런 일은 없을 거니까.” 하성은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그럼 됐다.” ...대기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서여은과 정예나는 상혁을 보자마자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물러나, 둘만의 시간을 남겨 주었다. 하연은 거울 앞에 앉아 조심스럽게 눈썹을 그리며 메이크업을 손보고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진숙아,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니? 이제 아무나 이런 자리에 낄 수 있는 거야?”서해정은 앞을 손으로 휘저으며,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냈다.“누군가 했더니. 요즘은 첩들도 이런 곳을 이렇게 당당하게 오나 보네?”그 말이 떨어지자,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소리 없이 속삭이는 중에도, 누구나 비웃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했다.송혜선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그러나 기어코 분노를 삼켰다.‘이 여자, 서해정...’조진숙의 절친이자, 상류층 사모 모임에서도 영향력이 큰 인물.그리고 서해정의 시댁을 건드렸다간 큰일 나는 상대였다.송혜선은 감히 덤빌 수 없었다.서해정은 코웃음을 치며, 조진숙의 손에 들린 붉은 봉투를 단숨에 낚아챈 후, 아무렇지도 않게 송혜선의 품에 던져버렸다.“우리도 선물을 받을 때, 가리는 건 가려야지. 네 손에서 나온 건, 왠지 더러워서 받기가 싫네?”“당신...!”송혜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분노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더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그녀는 손으로 배를 감싸며 한 걸음 물러났다.그러자 서해정은 일부러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의도적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어머, 뭐야. 설마 지금 나한테 시비 걸려고? 이런 짓 나한테는 안 통해.”송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입술을 깨물며 억지로 분노를 삼켰다.“서 여사님, 아무리 그래도 제게 어느 정도 예의는 좀 지켜 주시죠.”그러나 서해정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진숙의 팔짱을 끼고 돌아섰다.“진숙아, 우리 가자. 오늘은 상혁이의 중요한 날인데, 괜히 재수 없게 만들 필요 없잖아.”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조진숙의 눈에는 어딘가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이렇게까지 망신을 줘도 괜찮을까...?’‘만약 이대로 가버린다면, 송혜선이 부동건에게 이를 고하면 오히려 내가 나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은데...’친구의 망설임을 읽은 듯, 서해정이 조용히 속삭였다.“그 인간도 네 체면은 안중에도 없이 저 여자를 여기에 데리고
호텔 로비에는 이미 많은 하객들이 모여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그러나 그때, 송혜선이 부동건의 팔짱을 끼고 등장하자, 순간적으로 홀 전체가 술렁였다.“저거... 부 회장의 정부 아니야? 어떻게 저 여자가 여기가 어디라고 저렇게 당당히 나타난 거지?”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리자, 그 말이 그대로 서해정의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서해정은 코웃음을 치며 가시 돋힌 말을 내뱉었다.“이런 자리에까지 기어들어올 정도로 정말 뻔뻔하네. 부동건도 정말 갈수록 가관이야.”조진숙과 오랜 친분을 쌓아온 찬구인 서해정은 부동건의 이런 행동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몰랐어?”옆에 있던 하객 하나가 서해정의 소매를 살짝 잡으며 조용히 속삭였다.“부 회장이 이번에 송혜선을 정식 부인으로 올릴 생각이라던데?”서해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뭐라고? 진심이야?”“처음엔 그냥 뜬소문인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까 꽤 가능성이 있어 보여.”서해정은 입술을 삐죽이며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우리 진숙이 불쌍해서 어쩌나...’이어서 송혜선을 향한 시선이 더욱 싸늘해졌다.“결국 첩은 첩일 뿐이야. 설령 정식 부인이 된다고 해도, 그 꼬리표는 절대 떼지 못할걸?”...사실, 부동건은 애초에 송혜선을 이 자리에 데려올 생각이 없었다.그러나 출발 직전, 그녀가 다가와 어리광을 부렸다.그 순간부터, 부동건의 얼굴에는 미묘한 불쾌감이 감돌았다.“오늘은 상혁이의 약혼식이야. 네가 따라올 이유가 없잖아.”그러나 송혜선은 환하게 웃으며 태연하게 말했다.“상혁이의 경사스러운 날인데, 당연히 축하하러 가야죠. 저도 기분 좋은 일에 함께하고 싶어요.”부동건은 눈살을 찌푸렸다.“네 상태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어. 집에서 푹 쉬어야 할 때야. 괜히 사람들 많은 곳에서 불편하게 굴지 마.”하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걱정 마세요, 회장님. 다영이가 저랑 같이 있을 거예요. 문제될 거 없어
‘정말... 부 대표님을 대신할 수 있을까?’연지는 눈에 의심과 불안이 섞인 채 남준을 바라봤다.“상무님,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계신 겁니까?”여자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남준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 웃음은 마치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불길한 유성처럼 섬뜩했다.그 순간, 연지의 등줄기를 싸늘한 한기가 훑고 지나갔다.조명이 비친 남자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듯했다.남준은 천천히 몸을 돌려, 테이블 위에 놓인 술병을 집어 들었다. 유려한 손길로 술을 술잔에 가득 따라낸 후, 한 잔을 연지 앞으로 내밀었다.“내일이 무슨 날인지는 알지?”‘내일?’연지는 본능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곧 깨달았다.“내일은 약혼식... 부 대표님과 하연 씨의 약혼식 날입니다.”남준은 손목을 살짝 돌리며, 술잔 속 액체를 천천히 흔들었다.술이 잔 속에서 부드럽게 회전했다.그는 반쯤 눈을 가늘게 뜨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모든 것이 남준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듯이.“오래 기다렸지. 드디어 그날이 왔군.”연지는 흐름을 감지하며 조심스레 물었다.“설마... 상무님, 약혼식을 망치시려는 건가요?”남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며 잔을 비웠다.남자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도 명확했다.연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만약 이 약혼식이 깨진다면... 나도 손해 볼 건 없지.’남준은 조용히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최씨 가문과 부씨 가문의 결합은 단순한 약혼이 아니다. 이 약혼식에는 양가의 주요 인물들이 총출동해. 사람이 많다는 건, 우리에게 기회가 많다는 뜻이겠지.”연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입을 열었다.“제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남준은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가볍게 던졌다. 유리가 바닥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눈앞의 남자는 상혁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거의 판박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닮은 눈매, 흡사한 이목구비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얼굴에 자리하고 있었다.순간적으로 하연은 착각할 뻔했다.‘세상에 이렇게까지 닮은 사람이 있을 수가 있나?’그때, 남자의 시선이 하연에게 닿았다. 그리고 눈빛에는 짧은 순간 놀라움과 흥미가 스쳤고, 곧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예쁜 분이 밤에 혼자 노시는 건가요? 연락처라도 하나 주고 가는 게 어때요?”이 남자는 상혁과 외모만 닮았을 뿐, 막상 입을 여는 순간 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단순한 생김새를 넘어,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그 차이는 너무도 확연했다.“죄송하지만, 관심 없어요.”하연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단 한 치의 여지도 남기지 않았다.남자는 눈썹을 살짝 올렸지만, 전혀 불쾌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지갑에서 금빛 명함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그럼 그냥 친구로라도. 이 정도도 안되나요?”고급스러운 금박이 감도는 종이 위에 큼직하게 적힌 영문 이름.[세븐]하연은 그 명함을 받지 않았다. 그 대신 자연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겼고, 그 순간 그녀의 약지에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선명하게 드러났다.“미안하지만, 안 돼요.”남자의 반응을 기다릴 것도 없이, 하연은 가볍게 몸을 틀어 걸음을 옮겼다.남자는 하연이 멀어지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여유롭게 입꼬리를 올렸다....VIP룸 안.남준은 가죽 소파에 느긋하게 몸을 기댄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연기가 폐 깊숙이 들어갔다가 천천히 뿜어져 나오는 동안,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공허했다.그때, 문이 열리며 황연지가 들어왔다.그녀는 성큼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했다.“오셨습니까?”남준은 담배를 비벼 끄고, 재떨이에 던졌다.“왔군.”연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상무님, 절 찾으셨다면서요.”남준은 얕게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새해를 맞아 너한테 특별한 선물을 하나 주
하연은 파티 장소를 한 고급 프라이빗 클럽으로 정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곳이라,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재력가나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밤이 깊어지자, 화려한 조명이 반짝이는 공간에서 단순한 싱글파티라기보다는 절친들끼리의 조촐한 모임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급스러운 좌석에 앉아 몇 잔 가볍게 마시던 중, 하연은 임신 중이라 과일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그때, 예나가 다가와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너도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됐구나. 네 상혁 오빠랑 드디어 정식으로 부부가 되다니, 정말 부럽다.”그녀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덧붙였다.“반면에 나는 아직도 싱글이야.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혼자라니, 가끔은 나도 좀 서글프다.”여은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받아쳤다.“네가 서글픈 게 아니라, 애초에 연애할 마음이 없는 거겠지.”“내가 들었는데, 요즘 너네 가게에 어떤 남자가 매일같이 찾아온다며? 혹시 마음이 좀 움직인 거 아냐?”예나는 당황하며 급히 말을 잘랐다.“그럴 리가! 그냥 친한 친구일 뿐이야.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절대 아니야.”여은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키득거렸다.“진짜? 근데 왜 이렇게 부정하는데?”예나는 반박하려다 결국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 애 나보다 어리잖아. 그리고... 나 연하남이 별로야.”절친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하연은 흥미가 동했다.‘뭔가 재미있는 얘기가 나올 것 같은데?’“연하남? 이거 뭔가 숨겨진 이야기 있는 거 아니야?”여은은 재빠르게 하연에게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너 F국에 있어서 몰랐지? 이 둘, B시에서 꽤 핫했어.”그리고는 짧게 요점을 정리해서 들려주었다.“03년생 남자야. 올해 딱 스물두 살! 나이에 비해 성숙하더라구. 우리 예나, 아주 귀여운 연하남한테 꽂혔나 봐.”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예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헛소리하지 마!”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눈빛에
다영은 온몸이 떨렸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간절하게 답했다.“정말 아무것도 듣지 않았어요...”“정말이요?”남준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다영은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질 듯했지만, 입술을 꽉 악물고 끝까지 버텼다.“정말이에요.”남준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아까의 위압적인 분위기가 사라지며,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리고는 큰 손으로 여자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마치 겁에 질린 새끼 고양이를 달래듯 말했다.“긴장할 필요 없어요. 그냥 가볍게 물어본 거예요.”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영은 몸은 여전히 뻣뻣하게 긴장한 채로 있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남준을 살폈다.남자가 예전과 다를 바 없이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자, 그녀는 간신히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큰일 날 뻔했어...’“그리고 남준 씨, 원래라면 설날연휴에는 나랑 같이 어머님께 인사드리러 가야 하는데...”그러자 남준은 흔쾌히 수락했다.“네... 당연히 그래야죠. 우리는 곧 부부가 될 사이잖아요. 원래 부부는 한몸이잖아요.”남준은 자연스럽게 말하며 그녀를 바라봤다.다영이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남준의 대답에 다영은 순간 놀란 듯 그를 다시 바라봤다.“남준 씨... 아직도 저랑 결혼할 생각이세요?”남준은 그녀를 당연하다는 듯 품에 끌어안았다.그리고는 여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나지막이 말했다.“당연하죠. 제가 당신을 두고 다른 사람을 선택할 것 같아요?”그 확고한 대답에 정다영은 가슴이 벅차올랐다.“난 그냥...”“그냥 뭐요?”남준이 여자의 말을 끊었다.“혹시 파혼이라도 할까 봐요?”“네.”다영은 작게 하고 끄덕였다.그러자 남준은 단호하게 말했다.“그럴 일 없어요.”그 말에 다영의 눈가가 붉어졌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남자의 품에 파고들었다.그리고 남준을 꼭 끌어안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역시... 남준 씨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아요.”남준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부드럽게 웃었다.남자의 손이 다영의 귀 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