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또 뭐라고 하셨는데요?”하연의 이런 태도는 서준을 화나게 만들었다. 이전의 하연은 줄곧 연약한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엄청 차가운 모습이다. 어쩌면 지금 모습이 진짜 하연의 모습일지도 모른다.“하연아, 내가 DS 그룹에 관한 소문을 들었어. 지금 네 실적을 높여야 한다고 들었는데 네가 필요하다면 HT 그룹은 얼마든지 널 도와줄 수 있어.”서준은 분명 하연에게 호의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괜찮아요.”하연은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다른 일 없으시다면 이만 비켜주시죠.”서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하연에게 물었다.“넌 지게 될지라도 내 도움은 절대 안 받겠다는 거야?”‘오늘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지게 되다뇨? 전 절대로 지지 않을 겁니다. 한서준 씨, 저흰 이미 이혼한 사이고 HT 그룹과 DS 그룹은 경쟁 관계이니 굳이 절 도와주려고 하실 필요 없습니다.”“넌 아직도 고집이 엄청 세네.”하연은 더 이상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 엑셀을 힘껏 밟았다. 서준은 깜짝 놀랐다. 차창을 사이에 두고 본 하연의 차가운 얼굴은 엄청나게 낯설었다.“최하연, 너 지금 뭐 하는 거야?”서준이가 입을 열었다.“비키세요.”서준이가 비켜주지 않자 하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채 서준의 람보르기니를 들이박았다. 쾅-커다란 충돌 소리와 함께 서준의 몸은 세게 흔들렸고 람보르기니에는 깊은 자국이 생겼다.“최하연, 너 정말 미쳤어?”서준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연을 향해 소리쳤다. 이에 하연은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한 번만 더 제 차를 막으신다면 더 세게 박을 겁니다.”하연은 입꼬리를 씩 올린 후 서준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핸들을 꺾고 엑셀을 밟아 주차장을 나섰다.이건 분명 도발이다.서준은 화가 난 마음에 핸들을 돌려 쫓아가려고 했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최하연, 정말 독한 여자야.”백미러를 통해 점점 사라지는 서준을 보자 하연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녀조차도 왜 그렇게 충동적인 행동을 한 것인지 알 수
공항 출구.운석은 하연이가 도착하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반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하연의 차가 천천히 공항 출구로 들어왔다. 운석은 흥분된 마음에 하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연의 차는 그의 앞에 멈추었다.“여신님, 드디어 오셨군요.”하연은 피곤한 마음을 숨긴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운석은 차 문을 열고 차에 오른 후 환하게 웃었다.“아니에요, 여신님을 위해 힘쓸 수 있는 것은 제 영광입니다.”하연은 차의 시동을 걸며 물었다.“집으로 데려다 드릴까요?”“먼저 밥 먹으러 갑시다. 여신님과 함께 밥 먹을 수 있다면 너무 기쁠 것 같아요.”하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먹고 싶은 메뉴라도 있나요?”운석은 입맛이 전혀 까다롭지 않았다.“여신님, 전 뭐든 주시는 대로 다 먹을 수 있으니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됩니다.”하연은 말문이 막혔다. 이때 운석은 가방에서 정교하게 포장된 선물을 꺼내 하연에게 건네주었다.“여신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에요.”하연은 매우 의아했다.“이게 뭐예요?”운석은 신비로운 모습으로 말했다.“열어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하지만 지금 말고 돌아가신 후 열어보세요!”하연은 갑작스러운 선물에 어리둥절했다.“엄청 비밀스러운 선물인가 봐요?”운석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그럼요.”하연은 한 중식당을 찾은 다음 차를 주차한 뒤 운석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운석은 수다쟁이처럼 걸으면서 하연에게 그동안 F국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하연은 이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그동안 엄청 풍부한 생활을 하셨네요.”운석은 조급해하며 대답했다.“여신님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전 그냥 친구들과 함께 휴식한 것뿐이에요.”“알아요.”운석은 의심스러워하는 하연의 표정을 보자 서둘러 해명했다.“여신님, 걱정 마세요. 전 여신님을 만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다른 여자들과 가까이한 적 없어요! 여신님을 향한 제 마음은 언제나 진심이에요.”운석의 진지한
반면 서영과 서영의 친구들은 매일 집안의 돈으로 놀고먹기만 했다.집안에서는 모두 그녀들더러 하연을 따라배워 가문의 기업들을 경영해 나가라고 했기에 그녀들은 모두 하연을 우상으로 받들었다.“안 되겠어. 당장 우상님과 사진이라도 찍어야겠어! 우상님과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 줄 거야.”“난 사인이나 받으러 가야겠어! 우상 님의 사인은 우리 집안의 거실에 모셔놓을 거야!”“서영아, 우리랑 같이 가지 않을래?”서영은 말문이 막혔다. 새로 사귄 친구들이 모두 하연을 우상으로 받들다니.“아니, 너희들...”서영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녀의 친구들은 하연에게 달려갔다.“하연 씨, 저랑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하연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연은 낯선 여자들을 보며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죄송하지만, 사진은 곤란할 것 같네요.”몇 명의 아가씨들은 모두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전 정말 하연 씨를 엄청 좋아하고 있는데 사인 좀 해주시면 안 돼요?”하연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매우 어리둥절했다.“죄송하지만, 전 연예인이 아니어서 사인을 해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하지만 하연 씨는 저희 우상이에요!”“맞아요, 우상이에요! 제발 부탁드릴 게요!”...하연은 자기가 우상이 되었다는 말에 어리둥절했다, 이때 서영은 하이힐을 신은 채 하연의 앞으로 다가와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최하연, 기분 좋나 봐?”서영의 말투는 건방졌다. 이에 그녀의 친구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서영아, 너 하연 씨랑 아는 사이야?”서영은 콧방귀를 뀌며 차갑게 말했다.“아주 잘 아는 사이지. 너희들은 뉴스도 안 보고 살아? 최하연은 예전에 내 형수였지만 지금은 우리 집에서 쫓겨난 것도 모자라 우리 오빠랑 이혼했거든.”서영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하연을 쳐다보았다. 서영은 친구들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분명 하연을 더 이상 우상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두 눈 뜨고 똑바로 봐,
서영은 손을 내밀어 하연의 뺨을 때리려 했으나 운석이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손대기만 해 봐!”서영은 아무리 힘을 줘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최하연, 당장 이거 놓으라고 해.”하연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차가운 눈빛으로 날뛰는 서영을 지켜보았다. 서영의 친구들은 이 상황을 보자 모두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서영을 쳐다보았다. 원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서영은 지금 더 꼴 보기 싫어졌다.“어떻게 우리 우상님한테 이런 짓을 할 수 있지? 앞으로 다신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우리 우상님은 네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말 좀 가리면서 하지?”“안 그래도 소문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역시 소문들이 모두 사실인가 봐.”...몇몇 아가씨들은 모두 서영과 거리를 두었다. 이에 서영은 화가 나다 못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너희들! 내가 준 선물을 받을 땐 가만히 있더니 이제 와서 이딴 말을 해?”“그딴 걸 선물이라고 준 것도 참 웃기네. 그 물건들은 벌써 우리 집 아주머니한테 줬어.”“맞아, 고작 그딴 걸로 우리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던 거야?”“그까짓 게 얼마나 한다고 잘난 척하는 거야? 얼마짜리인지 말하면 돈으로 돌려줄게. 더 이상 아는 척하지 마.”하연은 자리에 앉아 여자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서영이가 친구들에게 버림받게 되자 하연은 기분이 매우 통쾌했다.“여신님,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길까요? 정말 입맛이 떨어지네요.”운석은 서영의 팔을 놓은 뒤 물티슈로 손을 닦았다. 마치 서영이가 더럽기라도 하다는 듯이 불쾌하다는 눈빛을 보이기도 했다.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요, 정말 입맛이 떨어지긴 하네요.”하연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몇몇 아가씨들은 하연에게 또다시 부탁하였다.“우상님, 제발 사인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맞아요, 우상님. 제발 사진 한 장만 함께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서영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하연을 보자 화가 미친 듯이 치밀어 올랐지만 그 장면을 지켜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이 말을 들은 기자는 갑자기 흥미진진해하며 물었다.[어떤 분의 사진인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미리 준비를 하도록 하죠.]이에 서영은 느릿느릿하게 말했다.“연예인이 아니라 DS 그룹의 최하연 사장의 사진입니다. 저한테 최하연이 남자를 가지고 노는 사진이 있거든요.”이 말을 들은 기자는 순식간에 어두운 표정을 보였다. B시에서는 아무도 하연의 프라이버시를 멋대로 폭로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래요? 어떤 사진인 거죠?]상대방은 이미 흥미를 잃었지만 서영은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서영은 이번 기회에 하연의 진짜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려고 했다.“사진을 메일로 보내드릴 테니 꼭 뉴스에 올리셔야 합니다.”[그래요.]상대방이 얼버무리며 대답했지만 서영은 매우 흥분된 마음으로 사진을 보냈다. 서영은 내일 하연에 관한 뉴스가 퍼지게 될 것을 떠올리자 매우 기뻤지만 일주일을 기다려도 뉴스가 터지지 않았다. 그 기자는 심지어 서영의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최하연, 네가 기자랑 손을 잡았을 줄은 몰랐네.”서영은 매우 화가 났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기자 쪽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차라리 서준에게 하연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서영은 화를 가라앉히지 않은 채 HT 그룹으로 달려가 서준의 사무실을 찾았다.“오빠, 이것 좀 봐. 최하연 그년은 우리 집에서 나간 다음 계속 남자들을 꼬시고 있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하연의 이름을 듣자 사무실의 분위기가 매우 차가워졌지만 서영은 여전히 말을 멈추지 않은 채 핸드폰 속의 사진을 서준에게 보여주었다.서준은 핸드폰 속의 사진을 보자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최하연과 나운석이 이렇게 친하다니? 나운석은 정말 내 전체한테 들이대고 있는 거야?’지난번 하연과 싸웠던 일을 떠올리자 서준은 차갑게 웃기만 했다.“너 요즘 시간이 남아도나 봐?”서영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오빠, 왜 그래?”서준은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요즘 용돈을 너무 많이 줘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나 봐?”용돈
“오늘 한 말 꼭 기억해. 안 그러면 정말 널 A국에 보내버릴지도 몰라.” 서영은 또다시 약속한 다음 사무실을 떠났다. 서영이가 떠난 후 서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는 구동후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기만 했다.“대표님, 괜찮으세요?”서준은 그제야 눈길을 거두었다.“무슨 일이야?”구동후가 사실대로 말했다.“최근 누군가가 저희 회사의 주식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쩌면 상대가 악의적으로 저희 회사의 주식을 구매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뭐 알아낸 거라도 있어?”“상대가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어서 아직 실마리를 잡아내진 못했지만, 상대가 또다시 행동을 개시하면 분명 뭔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그래,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조심히 행동해.’“네, 알겠습니다.”두 사람이 일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후 서준이가 말머리를 돌렸다.“이전에 하연이가 우리 회사에서 출근할 때 친하게 지내던 동료는 없어?”구동후는 서준을 한번 쳐다본 후 말했다.“최 비서님은 항상 엄밀하고 착실하게 일하시는 데다가 동료 관계를 아주 잘 처리하셨는데 특별히 친하게 지내던 동료는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서준은 좀 아쉬운 눈치였다.“그래, 이만 나가 봐.”구동훈은 서준의 마음을 알 수 없었지만 최근 서준이가 다시 하연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이와 동시에.DS 그룹의 꼭대기 사무실에서 하연이가 다국적 재벌들과의 화상회의를 마치자마자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들어오세요.”말을 마치자마자 운석이가 웃는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여신님, 여기 사인해야 할 서류가 두 개 있습니다.”하연은 머리가 매우 아팠다. 이미 여러 번 호칭을 바로잡았지만 운석은 여전히 제멋대로였다.“회사에선 호칭을 바꾸시면 안 될까요?”운석은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여신님께서 저와 주말에 함께 영화를 봐주신다면 호칭을 바꿀게요!
“여신님, 예전엔 제가 잘못했어요. 저랑 혼인을 할 사람이 여신님이라는 걸 알았다면 절대 거절하지 않았을 거예요. 전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저희 두 사람 다 만나는 상대가 없으니 여신님만 받으주신다면 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운석이는 말을 마친 후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 이때 하연이가 그를 불러 세웠다.“나운석 씨는 분명 저보다 더 좋은 분을 만나시게 될 거예요. 그러니 저한테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요.”“제 마음속엔 여신님이 최고예요. 여신님은 저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건 제 마음일 뿐이니 절 선택할지 말지는 여신님의 자유예요. 결과가 어떻든 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어요.”운석은 이 말을 마친 후 사무실에서 물러났다. 하연은 오히려 그의 말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이 심란했다.하연에게 있어서 운석은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운석은 마치 소처럼 고집이 세서 하연의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하연은 한숨을 내쉰 뒤 애써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힌 뒤 또다시 바삐 일하기 시작했다. 곧 퇴근하려고 할 때 조진숙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이모!”조진숙은 핸드폰을 사이 두고도 하연의 피곤한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하연아, 일 때문에 많이 피곤하지?]하연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이모.”조진숙은 하연과 자신의 아들 부상혁이 모두 일벌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일을 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돌볼 겨를이 없었다.[저녁에 우리 집으로 와. 이모가 네가 좋아하는 갈비를 준비했어.]“좋아요! 안 그래도 이모가 해주신 밥이 너무 그리웠거든요. 벌써 군침이 도는 것 같아요!”[너도 참 일만 하지 말고 생활을 즐길 줄도 알아야지! 이모가 상혁이더러 마중하러 가라고 했으니 지금쯤 너희 회사 밑에 도착했을 거야.]하연은 좀 놀란 눈치였다.“상혁 오빠가 절 데리러 왔다고요?”[아마 지금쯤 도착했을 거야.]하연은 말하면서 창문을 통해 사무실 밖의 상혁을 발견했다. 하
하연은 눈썹을 찡긋거리며 서희와 악수했다.“안녕하세요, 전 최하연입니다.”“부 대표님한테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하연 씨는 소문처럼 예쁠 뿐만 아니라 성격도 좋으시네요.”서희는 말을 매우 듣기 좋게 했다. 이 말을 들은 하연은 고개를 돌려 상혁에게 말했다.“상혁 오빠 눈에 내 장점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네.”이에 상혁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말했다.“모두 사실이잖아.”하연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됐어, 이만 돌아가자! 나 배고파 죽겠어!”“그래.”상혁은 피식 웃으며 하연을 쳐다보았다. 세 사람은 함께 회사에서 나와 차에 올랐다. 서희는 당연히 운전석에 앉았다.“임 비서, 부씨 주택으로 가.”서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네, 대표님.”차창 밖의 건물들을 내다보던 하연은 입을 열었다.“오빠 덕분에 TY 그룹과의 계약을 따낸 것 같아. 이틀 후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야.”이에 상혁은 가볍게 응했다.“그건 정말 좋은 프로젝트야. 초기엔 좀 고생해야겠지만 나중엔 많이 좋아질 거야.”“모두 오빠가 도와준 덕분에 일이 잘 풀린 거야! 정말 고마워, 오빠.”하연은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이 말을 들은 상혁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우리 사이에 그런 말 할 필요 없어.”하연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알았어, 다음부턴 안 할게.”서희는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상혁이가 하연을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했다는 것에 그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매우 질투가 났다.“대표님, 앞쪽 가게에 사모님께서 좋아하시는 케이크가 있는데 잠깐 차 세울까요?”조진숙이 한 번 언급했었기에 상혁도 그 가게를 알고 있었다.“그래, 잠깐 차 세워. 내가 사러 갈게.”서희가 차를 가까운 주차장에 세우자 하연이가 얼른 말했다.“나도 함께 가!”“괜찮아, 금방 다녀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 하연은 어쩔 수 없이 상혁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혁이가 떠난 후 서희가 입을 열었다.“사모님께서 이 가게의
하연은 파티 장소를 한 고급 프라이빗 클럽으로 정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곳이라,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재력가나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밤이 깊어지자, 화려한 조명이 반짝이는 공간에서 단순한 싱글파티라기보다는 절친들끼리의 조촐한 모임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급스러운 좌석에 앉아 몇 잔 가볍게 마시던 중, 하연은 임신 중이라 과일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그때, 예나가 다가와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너도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됐구나. 네 상혁 오빠랑 드디어 정식으로 부부가 되다니, 정말 부럽다.”그녀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덧붙였다.“반면에 나는 아직도 싱글이야.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혼자라니, 가끔은 나도 좀 서글프다.”여은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받아쳤다.“네가 서글픈 게 아니라, 애초에 연애할 마음이 없는 거겠지.”“내가 들었는데, 요즘 너네 가게에 어떤 남자가 매일같이 찾아온다며? 혹시 마음이 좀 움직인 거 아냐?”예나는 당황하며 급히 말을 잘랐다.“그럴 리가! 그냥 친한 친구일 뿐이야.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절대 아니야.”여은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키득거렸다.“진짜? 근데 왜 이렇게 부정하는데?”예나는 반박하려다 결국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 애 나보다 어리잖아. 그리고... 나 연하남이 별로야.”절친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하연은 흥미가 동했다.‘뭔가 재미있는 얘기가 나올 것 같은데?’“연하남? 이거 뭔가 숨겨진 이야기 있는 거 아니야?”여은은 재빠르게 하연에게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너 F국에 있어서 몰랐지? 이 둘, B시에서 꽤 핫했어.”그리고는 짧게 요점을 정리해서 들려주었다.“03년생 남자야. 올해 딱 스물두 살! 나이에 비해 성숙하더라구. 우리 예나, 아주 귀여운 연하남한테 꽂혔나 봐.”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예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헛소리하지 마!”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눈빛에
다영은 온몸이 떨렸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간절하게 답했다.“정말 아무것도 듣지 않았어요...”“정말이요?”남준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다영은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질 듯했지만, 입술을 꽉 악물고 끝까지 버텼다.“정말이에요.”남준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아까의 위압적인 분위기가 사라지며,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리고는 큰 손으로 여자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마치 겁에 질린 새끼 고양이를 달래듯 말했다.“긴장할 필요 없어요. 그냥 가볍게 물어본 거예요.”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영은 몸은 여전히 뻣뻣하게 긴장한 채로 있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남준을 살폈다.남자가 예전과 다를 바 없이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자, 그녀는 간신히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큰일 날 뻔했어...’“그리고 남준 씨, 원래라면 설날연휴에는 나랑 같이 어머님께 인사드리러 가야 하는데...”그러자 남준은 흔쾌히 수락했다.“네... 당연히 그래야죠. 우리는 곧 부부가 될 사이잖아요. 원래 부부는 한몸이잖아요.”남준은 자연스럽게 말하며 그녀를 바라봤다.다영이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남준의 대답에 다영은 순간 놀란 듯 그를 다시 바라봤다.“남준 씨... 아직도 저랑 결혼할 생각이세요?”남준은 그녀를 당연하다는 듯 품에 끌어안았다.그리고는 여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나지막이 말했다.“당연하죠. 제가 당신을 두고 다른 사람을 선택할 것 같아요?”그 확고한 대답에 정다영은 가슴이 벅차올랐다.“난 그냥...”“그냥 뭐요?”남준이 여자의 말을 끊었다.“혹시 파혼이라도 할까 봐요?”“네.”다영은 작게 하고 끄덕였다.그러자 남준은 단호하게 말했다.“그럴 일 없어요.”그 말에 다영의 눈가가 붉어졌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남자의 품에 파고들었다.그리고 남준을 꼭 끌어안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역시... 남준 씨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아요.”남준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부드럽게 웃었다.남자의 손이 다영의 귀 옆
허징인이 상혁을 찾았다는 소식은 남준에게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두 사람이 만나지는 않은 것 같아. 물론 앞으로도 절대 마주할 일이 없을 테니까 별문제는 생기지 않을 거야.’남준은 마음을 다잡았지만, 속내에서는 의문이 피어올랐다.‘내가 오래 지켜본 부상혁이라면, 이유 없이 움직일 리가 없는데...’하지만 상혁이 허징인을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았다.남준은 조용히 시선을 들어 상혁을 바라보았다. 상혁은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을 뿐인데, 그 자체로 압도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왕좌에 앉은 자처럼, 이 남자의 존재만으로도 숨이 막힐 듯한 위압감이 느껴졌다.‘혹시... 무언가 알고 있는 건가?’의심이 한 번 피어나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다. 그러나 남준이가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급히 뛰어 들어온 부하가 숨을 헐떡이며 보고했다.“상무님, 교도소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남준은 정다영의 집에 인사를 가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옷깃을 정리하던 손이 멈춰 섰고, 표정이 굳어졌다.“무슨 일인데 그래?”부하는 다급한 얼굴로 모든 걸 털어놓았다.“정규인이 교도소에서 난동을 부렸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변호사를 불러서 항소재판을 열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남준의 표정이 급격히 변했다. 순식간에 부하의 멱살을 움켜쥐며 낮은 목소리로 윽박질렀다.“잘 갇혀 있던 놈이 왜 갑자기 그러는 건데?”부하는 당황하여 중얼거렸다.“혹시... 어쩌면 허징인과 그 아들...”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준이 단칼에 잘라버렸다.“말도 안 돼. 이 일은 우리 쪽만 알고 있어. 교도소 안에 있는 정규인이 대체 어떻게 알겠어?”부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맞습니다. 우리 쪽에서 철저히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가 외부와 접촉할 방법은 없습니다.”그러나 의구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정규인,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남준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멱살을 놓았다.‘이상한 일이 벌어지면 반드시
하미주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다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뭔가 수상했는데,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얼굴의 표정에서 서서히 미소가 사라졌다. 어떤 상황이든, 그녀가 원하는 건 단 하나였다. 딸이 후회하지 않는 길을 가는 것. “다영아, 너는 마음이 너무 순진해. 제발,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구나.” 그러나 다영은 마치 그 말이 기분 나쁘다는 듯, 휙 손을 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엄마, 그런 말씀 이제 그만하세요.” 다영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내 선택을 믿어요. 그리고 엄마도 나를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만약 아직도 의심이 된다면, 내일 남준 씨가 오면 직접 물어보세요.” 하미주가 무슨 말을 더 하기 전에, 다영은 그대로 돌아서서 방을 나가버렸다. 딸이 사라진 자리에서, 하미주는 그저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설날 다음 날.아침부터 집사는 현관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곧장 앞으로 다가가 공손히 인사했다. “부 대표님.” 상혁은 무심하게 손목을 들어 올려, 소매 끝을 단정히 정리했다. 우아하면서도 여유로운 움직임.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목소리. “어제 맡긴 일, 확인했나요?” 집사는 목소리를 낮추며 조용히 보고했다. “후원 CCTV를 확인한 결과, 어젯밤 그곳에 있던 사람은 남준 도련님이었습니다.” 상혁의 손이 멈추지 않았다. 그저 차분하게 마지막 단추를 여미고, 시계를 찬 후 말했다. “알았어요. 나가봐요.” 집사가 조용히 퇴장하자, 상혁은 변함없는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이미 남준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형,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상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했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서로 마주 앉아 있었지만, 그 사이에 감도는 공기는 묘한 정적으로 가득 차 있었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서둘러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정신을 바짝 차리며 정다영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엄마, 남준 씨가 아마 많이 바쁜가 봐요. 일 끝나면 꼭 세배하러 올 거예요.” 하지만 하미주는 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은 눈이 멀지 않은 이상, 최근의 분위기를 못 느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요즘 들어 사람들의 태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똑똑히 보고 있었다.지금 자신마저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힘이 빠진다면, 언제든 등을 돌릴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세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초에 하미주는 딸과 남준의 결혼 자체를 반대한 사람이었다. 하미주가 보기엔, 아무리 돈이 많고, 외형적으로 그럴듯해 보여도, 남준은 결국 ‘첩’의 자식이었다. 그런 가정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자랐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다영은 기어코 남준을 붙잡겠다고 난리였다. 그것도 마치, 그 남자가 아니면 죽기라도 할 것처럼. 결국 정지철이 남준을 높게 평가하자, 하미주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거였다. 그래서 약혼까지는 허락했는데 예전엔 그럭저럭 신경을 써주던 남준이, 이제는 대놓고 얼굴도 안 비췄다. 하미주는 아주 불만이 많았다.‘명절에 처가집 한 번 들를 생각도 없는 사위가 과연 제대로 가정을 꾸릴 생각이 있을까? 말 다 했지.' 이렇게 생각하자 그녀는 딸의 손을 잡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다영아, 엄마가 하는 말 기분 나빠하지 말고 잘 들어. 이제 네 아버지가 그런 상황이니, 우리 집도 예전 같지 않아.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도 너도 잘 알고 있지?” 다영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녀는 당연히 알았다. 아니,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은 더욱 필사적으로 버텨야 한다고 결심했다. 이 기회에 확실히 자리 잡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건 시간 문제일 테니까. “엄마, 집안 사정이랑 내 결혼은 상관없는 일이에요.” 하미주는 깊은 한숨을 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
상혁은 풍등을 들고 하연과 함께 마당으로 나왔다. 타이밍 좋게 하인이 라이터를 건네주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멀지 않은 곳에서 부남준이 조용히 고개를 내밀었다. 몰래 지켜보던 그는,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풍등을 펼치는 모습을 바라봤다. 상혁이 직접 가운데 심지에 불을 붙였다. 뜨거운 열기가 천천히 풍등을 부풀게 만들었고, 풍등은 두 사람 앞에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연아, 빨리 소원 빌어!” 하연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간절히 소원을 빌었다. 상혁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또 다른 소원을 빌었다. ‘언제나 우리 둘이 해마다, 해마다, 서로를 마주할 수 있기를.' “다 됐어요.” 하연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 눈빛에는 반짝이는 빛이 서려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서서히 손을 놓았다. 풍등은 하늘을 향해 천천히 날아올랐고, 점점 멀어지더니 마침내 한 점이 되어 사라졌다. “어떤 소원 빌었어?” 상혁이 손끝으로 하연의 귓불을 살짝 어루만지며 물었다. 하연은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깜빡이며 말했다. “소원은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대요.” “그래? 그럼, 네 소원이 꼭 이루어지길 바랄게.” 두 사람은 다시 눈을 마주쳤다. 상혁의 숨소리가 깊어졌다. 그는 하연의 턱을 살며시 잡고,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을 맞췄다. 조심스러웠던 키스는 점점 더 깊어져 갔다. 하연은 숨이 가빠졌다. 상혁을 밀어보려 했지만, 오히려 더 깊이 끌어안겼다. 여자의 허리는 유연하게 휘어졌고, 상혁의 등은 팽팽한 활처럼 긴장됐다. 결국, 하연도 상혁의 목을 감싸 안고, 키스에 응답했다. 그러나 그 순간, 불청객 같은 전화벨 소리가 분위기를 깨뜨렸다. 하연은 화들짝 놀라며, 급하게 상혁을 밀어냈다.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익은 사과처럼 새빨개졌다. “전화 울리는데요?” 하연의 목소리는 한층 낮아져 있었다. 묘하게 사람을 간지럽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상혁은
다른 곳에서 있던 조봉규가 소란이 일자마자 급히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송혜선에게 다가가며 다급히 말했다. “설날인데, 뭐하러 이렇게 화를 내...” 조봉규가 입을 여는 순간, 남준의 온몸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남준의 시선이 날카롭게 쏘아붙었고, 조봉규는 본능적으로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애써 태연한 척하며 한 발 다가섰다. 송혜선의 팔을 조심스레 부축하며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건강이 우선입니다.” ‘건강?’남준은 손에 쥔 염주를 힘껏 움켜쥐었다. 힘이 들어간 손등에는 핏대가 서고, 눈빛은 살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리고 시선은 서로 닿아 있는 두 사람의 손목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입가에 엷은 조소가 떠올랐다. “조 선생님, 참으로 열정적인 분이시군요. 설날에도 근무 태세를 유지하시다니.” 조봉규는 눈치가 빠른 인물이었다. 당연히 그의 말 속에 담긴 조롱을 알아챘다. 그러나 겉으로는 한껏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머리를 숙였다. “별말씀을요. 환자의 곁을 지키는 게 제 본분입니다.” 남준은 가만히 조봉규를 노려보다가, 짧고 날 선 경고를 던졌다. “그렇다면 본분에만 충실하시죠. 여긴 부씨 가문의 본가이니까.”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남준아!” 송혜선이 다급히 나섰다. 남준을 나무라는 말투였지만, 그 속에는 조봉규를 감싸려는 의도가 분명히 깔려 있었다. 남준의 눈빛은 더욱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송혜선은 오히려 기세를 올려 쏟아내듯 말했다. “네가 좀 더 나서서 잘했더라면, 부상혁한테 밀릴 일도 없었어! 내가 왜 조진숙한테 설날마다 굽신거려야 하냐고?” “지금, 어머니는 나를 원망하시는 겁니까?”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남준의 손에서 염주의 한 알이 ‘탁' 하고 부서졌다. “남준아!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송혜선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염주는 영적인 기운이 깃든 물건이야. 함부로 부수면 불길한 일이 생길
부동건의 말은 송혜선을 전적인 신뢰를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면, 과연 부동건은 스스로를 어떻게 납득할까?’ ‘결국 속아서 살아온 날이 우스운 바보일 뿐...’ 조진숙은 아무 말 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애틋한 사랑인데,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까?”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 서류들, 가져가.” “나 다른 뜻은 없어.” 부동건은 조진숙의 단호한 태도에 살짝 주춤했지만, 곧장 다시 설득을 시도했다. “네가 아직 날 원망하고 있다는 거 알아. 그동안... 혹시 네가...” “착각하지 마.” 조진숙은 부동건의 말을 끊었다. 더 이상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부동건은 한 발 더 다가섰다. “하지만 네가 이걸 받지 않는다면, 결국 날 아직도 원망하고 있다는 뜻 아니야?” 조진숙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가슴 깊숙이 가라앉은 감정이 불쑥 떠오르는 듯했다. 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며 감정을 정리한 뒤,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부동건은 말없이 서류를 정리하더니, 숙련된 손놀림으로 만년필을 열어 조진숙 앞에 내밀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대답이었다. “후회할 거였으면, 애초에 여기 오지도 않았어.” 이번엔 조진숙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펜을 들어, 서류 맨 아래에 단호한 필체로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부디 이 선택을 후회하는 날이 오지 않길 바라.” 부동건은 서류를 덮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마음속에 짓눌려 있던 무언가가 비로소 내려앉는 듯했다. 그는 문득 나직이 말했다. “이제야... 후회한들, 이제 돌아갈 길도 없어.” 조진숙은 그 말에 가슴이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끝내 시선을 돌렸다. 담담한 표정 속에 모든 감정을 삼키며, 단 한마디만 남겼다. “이건... 다 정해진 운명이야.” ‘운명의 장난...’ ‘어쩔 수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제 뜻대로 하게 해주십시오.” 부동건의 태도가 단호했다. 이를 지켜보던 부해철이 더 이상의 말은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미 네가 마음을 정했다면, 내가 더 이상 뭐라 할 수도 없지. 다만, 앞으로 그 여자를 내 앞에 데려오지는 마라. 네가 어떻게 살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 “그리고...” 부동건이 무슨 말을 더 하려 했지만, 부해철은 손을 휘저으며 등을 돌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지는 뒷모습만이 남았다. ‘그렇게까지 반대할 줄은 몰랐네...’ 부동건은 묘한 기분으로 그 자리에 멈춰섰다. ...설날 온 나라가 한 해의 끝을 보내고,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 예전에는 늘 조진숙과 상혁 모자가 함께 보내던 명절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달랐다. 최씨 가문과 부씨 가문의 본가가 가까운 데다, 명절이 지나면 하연과 상혁의 약혼식이 있을 예정이었다.그래서 조진숙이 제안했고, 양가 가족들이 함께 부씨 가문에서 설날 저녁을 보내기로 했다. 그 덕분에 조진숙은 하루 종일 분주하게 준비에 매진했다. 그러나 제사가 끝나자마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진숙아, 새해 복 많이 받아.” 부동건이 어색한 미소를 띠며 낮은 자세로 인사를 건넸다. 평소 같았으면 송혜선과 함께 명절을 보낼 사람이, 오늘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조진숙에게는 뜻밖이었다.그녀는 담담한 얼굴로 물었다. “여긴 웬일이죠?” “잠깐 들렀어, 당신한테 할 말도 있고 해서.” 조진숙은 그의 시선을 따라 문득 집안 분위기를 둘러보았다. 송혜선이 이곳에 들어온 이후, 부씨 가문 본가는 한 지붕 아래에서도 철저하게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있었다.그 경계는 뚜렷했고, 불필요한 마주침은 없었다. 부동건이 송혜선과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이후, 둘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만약 이번 일이 없었다면, 조진숙 역시 이미 오래전에 이 집을 떠났을 터였다.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