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 씨도 여기 계셨네요?”그중 한 여자가 하연을 보자 눈을 반짝이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저희는 하연 씨의 시어머니와 함께 관리받으러 왔거든요. 방금 하연 씨의 가게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중이었어요.”하연은 앞에 있는 여자가 누군지 알고 있다. 여자는 허씨 가문의 사모님이다.“사모님께서 저희 가게에 와주시는 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하지만 이수애 씨는 이제 더 이상 제 시어머니가 아닌 데다가 저희 사이가 그렇게 좋진 않습니다.”하연은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이 말은 이수애의 체면을 잃게 만들었다. 그녀가 방금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이 들통났기 때문이다.여자는 하연의 말에 곧 사과하며 말했다.“참, 제가 깜빡했었네요. 하연 씨, 실례를 범하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여자는 매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하연이가 훨씬 어렸지만 여자는 줄곧 하연의 앞에서 예의를 갖추었다.나머지 여자들도 하연에게 아부하기 위하여 겸손한 모습을 보이며 이수애와의 관계를 내팽개쳤다.“하연 씨, 저희도 한씨네 사모님과 우연히 만난 거예요. 절대 친한 사이는 아닙니다.”“앞으로 저희는 절대 한씨네 사모님과 가까이하지 않을 생각입니다.”“한씨네 사모님이 줄곧 하연 씨를 괴롭혀 왔으니 이건 업보일 뿐입니다.”...이수애는 화가 치밀어 올라 여자들을 노려보았다.“하연 씨, 저희는 따로 볼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네요.”몇몇 부인들은 가려고 몸을 돌렸는데 이때 하연이가 그녀들을 불러 세웠다.“잠깐만요.”여자들은 서로 쳐다본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하연 씨, 또 무슨 일 있나요?”하연은 어두운 안색을 보인 이수애를 보자 기분이 매우 통쾌했다. 이건 모두 눈앞의 여자들 덕분이다.하연은 눈썹을 찡긋거리며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사모님들이 제 가게의 옷을 좋아하신다면 언제든지 찾아주셔도 됩니다. 오시면 제가 따로 할인을 해드릴게요.”“정말요?”여자들은 모두 눈을 반짝였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자기들에게 주어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하연은 긍정적인 대
“하연아.”이수애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예전의 일들은 모두 내 잘못이야. 내가 사과할게, 정말 미안해. 하지만 서준이는 아무 잘못 없어. 서준이는 아직도 널 마음에 품고 있을 거야. 혹시 우리 서준이랑 다시 만나볼 생각은 없어? 이번엔 내가 절대 두 사람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을 게!”“정말 뻔뻔하시네요.”예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채 말했다.“전 세계의 남자가 모두 죽었다고 해도 저희 하연이는 당신 아들과 안 만날 겁니다. 그러니 다신 이런 말씀 꺼내지 마세요.”하연은 이 말을 듣자 몰래 예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사모님, 오늘 하신 말씀은 우스갯소리로 넘어갈게요. 그러니 다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마세요.”이수애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겸손한 태도를 보였는데도 하연이가 이렇게 대답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연의 모습은 예전과 너무 달랐다.이수애는 매우 기분이 불쾌했다. 그녀는 몰래 손을 가방에 넣은 후 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준에게 하연의 진짜 모습을 똑똑히 보여주려는 것이다.“최하연, 넌 정말 우리 서준에게 아무런 마음도 없는 거야?”이수애는 포기하지 않고 한마디 물었는데 그녀는 아직도 하연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지난 3년간, 하연이가 서준을 위해 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서준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절대로 한순간에 식어버릴 마음이 아니었다.하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도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예전에는 서준을 떠올리면 늘 감정 기복이 심했다. 서준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연의 심장은 여전히 서준을 떠올리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서준을 떠올리면 그냥 낯선 사람을 떠올 리 듯이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사모님, 사람은 모두 변하는 법이에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전 절대 제 선택에 회하지 않습니다.”하연은 매우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서준 씨는 당신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들이겠지만 저한
“아들 넌 엄마 편이어야 해! 아들... 여보세요? 엄마 말 듣고 있어?”전화는 이수애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끊겨버렸다. 화가 잔뜩 난 이수애는 곧바로 핸드폰을 땅바닥에 집어던졌다.“최하연, 이 여우 년!”이수애는 화가 난 마음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주위의 사람들은 이를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수애는 부끄러운 마음에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다.“사모님...”바로 이때 임서희가 하이힐을 신고 나타나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이수애는 낯선 얼굴에 입꼬리를 움직이며 물었다.“누구시죠?”“제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최하연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하연을 언급하자 이수애는 경계하는 표정으로 차갑게 물었다.“최하연 그 여우 년과 아는 사이에요?”그러자 임서희가 말했다.“사모님께서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전 사모님과 차라도 한잔하며 최하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데 혹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임서희가 수상해 보였지만 이수애는 하연을 혼내주고 싶다는 생각에 바로 동의했다.“좋아요, 어디로 갈까요?”임서희는 장소를 고른 뒤 이수애를 데리고 떠났다....미용실에서 나온 하연은 기분이 매우 상쾌했다. 이전에 하연은 서준을 위해 늘 참고 양보했었지만 이번엔 자기만을 위해 당당하게 나섰다.회사로 돌아온 하연은 계속 바삐 일하다가 퇴근시간이 되여서야 손에 든 서류를 모두 확인하였다.“정 비서님, 이 자료들을 각 부서에 나누어 주세요. 내일 아침 회의에 사용할 자료들입니다.”하연은 지시를 내린 후에야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오늘 또 다른 일이 있으신가요?”최근 하연은 줄곧 야근을 했기에 눈 밑엔 다크서클이 짙어졌다. 정기태는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자 입을 열었다.“사장님, 회사 일은 이만 내려놓으시고 집에 가서 푹 쉬세요.”“괜찮아요, 마저 처리하고 돌아가도 늦지 않아요.”정기태는 결국 하연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남은 서류들을 보관하였다.하연이가 모든 일을
“그래요? 또 뭐라고 하셨는데요?”하연의 이런 태도는 서준을 화나게 만들었다. 이전의 하연은 줄곧 연약한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엄청 차가운 모습이다. 어쩌면 지금 모습이 진짜 하연의 모습일지도 모른다.“하연아, 내가 DS 그룹에 관한 소문을 들었어. 지금 네 실적을 높여야 한다고 들었는데 네가 필요하다면 HT 그룹은 얼마든지 널 도와줄 수 있어.”서준은 분명 하연에게 호의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괜찮아요.”하연은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다른 일 없으시다면 이만 비켜주시죠.”서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하연에게 물었다.“넌 지게 될지라도 내 도움은 절대 안 받겠다는 거야?”‘오늘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지게 되다뇨? 전 절대로 지지 않을 겁니다. 한서준 씨, 저흰 이미 이혼한 사이고 HT 그룹과 DS 그룹은 경쟁 관계이니 굳이 절 도와주려고 하실 필요 없습니다.”“넌 아직도 고집이 엄청 세네.”하연은 더 이상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 엑셀을 힘껏 밟았다. 서준은 깜짝 놀랐다. 차창을 사이에 두고 본 하연의 차가운 얼굴은 엄청나게 낯설었다.“최하연, 너 지금 뭐 하는 거야?”서준이가 입을 열었다.“비키세요.”서준이가 비켜주지 않자 하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채 서준의 람보르기니를 들이박았다. 쾅-커다란 충돌 소리와 함께 서준의 몸은 세게 흔들렸고 람보르기니에는 깊은 자국이 생겼다.“최하연, 너 정말 미쳤어?”서준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연을 향해 소리쳤다. 이에 하연은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한 번만 더 제 차를 막으신다면 더 세게 박을 겁니다.”하연은 입꼬리를 씩 올린 후 서준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핸들을 꺾고 엑셀을 밟아 주차장을 나섰다.이건 분명 도발이다.서준은 화가 난 마음에 핸들을 돌려 쫓아가려고 했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최하연, 정말 독한 여자야.”백미러를 통해 점점 사라지는 서준을 보자 하연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녀조차도 왜 그렇게 충동적인 행동을 한 것인지 알 수
공항 출구.운석은 하연이가 도착하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반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하연의 차가 천천히 공항 출구로 들어왔다. 운석은 흥분된 마음에 하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연의 차는 그의 앞에 멈추었다.“여신님, 드디어 오셨군요.”하연은 피곤한 마음을 숨긴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운석은 차 문을 열고 차에 오른 후 환하게 웃었다.“아니에요, 여신님을 위해 힘쓸 수 있는 것은 제 영광입니다.”하연은 차의 시동을 걸며 물었다.“집으로 데려다 드릴까요?”“먼저 밥 먹으러 갑시다. 여신님과 함께 밥 먹을 수 있다면 너무 기쁠 것 같아요.”하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먹고 싶은 메뉴라도 있나요?”운석은 입맛이 전혀 까다롭지 않았다.“여신님, 전 뭐든 주시는 대로 다 먹을 수 있으니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됩니다.”하연은 말문이 막혔다. 이때 운석은 가방에서 정교하게 포장된 선물을 꺼내 하연에게 건네주었다.“여신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에요.”하연은 매우 의아했다.“이게 뭐예요?”운석은 신비로운 모습으로 말했다.“열어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하지만 지금 말고 돌아가신 후 열어보세요!”하연은 갑작스러운 선물에 어리둥절했다.“엄청 비밀스러운 선물인가 봐요?”운석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그럼요.”하연은 한 중식당을 찾은 다음 차를 주차한 뒤 운석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운석은 수다쟁이처럼 걸으면서 하연에게 그동안 F국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하연은 이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그동안 엄청 풍부한 생활을 하셨네요.”운석은 조급해하며 대답했다.“여신님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전 그냥 친구들과 함께 휴식한 것뿐이에요.”“알아요.”운석은 의심스러워하는 하연의 표정을 보자 서둘러 해명했다.“여신님, 걱정 마세요. 전 여신님을 만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다른 여자들과 가까이한 적 없어요! 여신님을 향한 제 마음은 언제나 진심이에요.”운석의 진지한
반면 서영과 서영의 친구들은 매일 집안의 돈으로 놀고먹기만 했다.집안에서는 모두 그녀들더러 하연을 따라배워 가문의 기업들을 경영해 나가라고 했기에 그녀들은 모두 하연을 우상으로 받들었다.“안 되겠어. 당장 우상님과 사진이라도 찍어야겠어! 우상님과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 줄 거야.”“난 사인이나 받으러 가야겠어! 우상 님의 사인은 우리 집안의 거실에 모셔놓을 거야!”“서영아, 우리랑 같이 가지 않을래?”서영은 말문이 막혔다. 새로 사귄 친구들이 모두 하연을 우상으로 받들다니.“아니, 너희들...”서영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녀의 친구들은 하연에게 달려갔다.“하연 씨, 저랑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하연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연은 낯선 여자들을 보며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죄송하지만, 사진은 곤란할 것 같네요.”몇 명의 아가씨들은 모두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전 정말 하연 씨를 엄청 좋아하고 있는데 사인 좀 해주시면 안 돼요?”하연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매우 어리둥절했다.“죄송하지만, 전 연예인이 아니어서 사인을 해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하지만 하연 씨는 저희 우상이에요!”“맞아요, 우상이에요! 제발 부탁드릴 게요!”...하연은 자기가 우상이 되었다는 말에 어리둥절했다, 이때 서영은 하이힐을 신은 채 하연의 앞으로 다가와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최하연, 기분 좋나 봐?”서영의 말투는 건방졌다. 이에 그녀의 친구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서영아, 너 하연 씨랑 아는 사이야?”서영은 콧방귀를 뀌며 차갑게 말했다.“아주 잘 아는 사이지. 너희들은 뉴스도 안 보고 살아? 최하연은 예전에 내 형수였지만 지금은 우리 집에서 쫓겨난 것도 모자라 우리 오빠랑 이혼했거든.”서영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하연을 쳐다보았다. 서영은 친구들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분명 하연을 더 이상 우상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두 눈 뜨고 똑바로 봐,
서영은 손을 내밀어 하연의 뺨을 때리려 했으나 운석이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손대기만 해 봐!”서영은 아무리 힘을 줘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최하연, 당장 이거 놓으라고 해.”하연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차가운 눈빛으로 날뛰는 서영을 지켜보았다. 서영의 친구들은 이 상황을 보자 모두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서영을 쳐다보았다. 원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서영은 지금 더 꼴 보기 싫어졌다.“어떻게 우리 우상님한테 이런 짓을 할 수 있지? 앞으로 다신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우리 우상님은 네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말 좀 가리면서 하지?”“안 그래도 소문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역시 소문들이 모두 사실인가 봐.”...몇몇 아가씨들은 모두 서영과 거리를 두었다. 이에 서영은 화가 나다 못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너희들! 내가 준 선물을 받을 땐 가만히 있더니 이제 와서 이딴 말을 해?”“그딴 걸 선물이라고 준 것도 참 웃기네. 그 물건들은 벌써 우리 집 아주머니한테 줬어.”“맞아, 고작 그딴 걸로 우리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던 거야?”“그까짓 게 얼마나 한다고 잘난 척하는 거야? 얼마짜리인지 말하면 돈으로 돌려줄게. 더 이상 아는 척하지 마.”하연은 자리에 앉아 여자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서영이가 친구들에게 버림받게 되자 하연은 기분이 매우 통쾌했다.“여신님,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길까요? 정말 입맛이 떨어지네요.”운석은 서영의 팔을 놓은 뒤 물티슈로 손을 닦았다. 마치 서영이가 더럽기라도 하다는 듯이 불쾌하다는 눈빛을 보이기도 했다.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요, 정말 입맛이 떨어지긴 하네요.”하연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몇몇 아가씨들은 하연에게 또다시 부탁하였다.“우상님, 제발 사인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맞아요, 우상님. 제발 사진 한 장만 함께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서영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하연을 보자 화가 미친 듯이 치밀어 올랐지만 그 장면을 지켜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이 말을 들은 기자는 갑자기 흥미진진해하며 물었다.[어떤 분의 사진인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미리 준비를 하도록 하죠.]이에 서영은 느릿느릿하게 말했다.“연예인이 아니라 DS 그룹의 최하연 사장의 사진입니다. 저한테 최하연이 남자를 가지고 노는 사진이 있거든요.”이 말을 들은 기자는 순식간에 어두운 표정을 보였다. B시에서는 아무도 하연의 프라이버시를 멋대로 폭로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래요? 어떤 사진인 거죠?]상대방은 이미 흥미를 잃었지만 서영은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서영은 이번 기회에 하연의 진짜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려고 했다.“사진을 메일로 보내드릴 테니 꼭 뉴스에 올리셔야 합니다.”[그래요.]상대방이 얼버무리며 대답했지만 서영은 매우 흥분된 마음으로 사진을 보냈다. 서영은 내일 하연에 관한 뉴스가 퍼지게 될 것을 떠올리자 매우 기뻤지만 일주일을 기다려도 뉴스가 터지지 않았다. 그 기자는 심지어 서영의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최하연, 네가 기자랑 손을 잡았을 줄은 몰랐네.”서영은 매우 화가 났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기자 쪽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차라리 서준에게 하연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서영은 화를 가라앉히지 않은 채 HT 그룹으로 달려가 서준의 사무실을 찾았다.“오빠, 이것 좀 봐. 최하연 그년은 우리 집에서 나간 다음 계속 남자들을 꼬시고 있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하연의 이름을 듣자 사무실의 분위기가 매우 차가워졌지만 서영은 여전히 말을 멈추지 않은 채 핸드폰 속의 사진을 서준에게 보여주었다.서준은 핸드폰 속의 사진을 보자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최하연과 나운석이 이렇게 친하다니? 나운석은 정말 내 전체한테 들이대고 있는 거야?’지난번 하연과 싸웠던 일을 떠올리자 서준은 차갑게 웃기만 했다.“너 요즘 시간이 남아도나 봐?”서영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오빠, 왜 그래?”서준은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요즘 용돈을 너무 많이 줘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나 봐?”용돈
하연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이현의 말이 그동안 떠돌던 소문을 확인해 주는 듯했다. “갑자기 왜 그런 결정을 내렸어요?” 이현은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머금고, 감회가 어린 듯 말했다. “예전엔 내가 사업에서도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국 나 자신을 과대평가했던 거죠.” 그는 눈을 들어 하연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말하는 게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겠지.’ 그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듯한 이 말들 속에는,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체면을 지키면서도 이별의 뜻이 담겨 있는 방식이었다. 이현은 한때 상혁과 정면 승부를 벌이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하연을 자신의 곁으로 다시 두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이현과 하연을 번번이 엇갈리게 만들었고, 끝없이 스쳐 지나가게 했다. 이현의 모든 집착과 미련은, 하연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마치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게 하연이 선택한 행복이라면, 이현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조용히 축복해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애초에 이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게 나았을지도 몰라요. 차라리 계속 가게 운영하는 게 더 어울렸을 텐데...” “그래도 다행이죠. 너무 늦기 전에 깨달았으니까. 이제라도 진짜 의미 있는 일을 찾아야겠어요.” 하연은 조용히 남자의 말을 들으며, 친구로서 진심을 담아 말했다. “어쩌면 새로운 곳에서 당신만의 행복을 찾을 수도 있을 거예요.” 이현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아요.” 그 순간, 오랫동안 이현의 마음속에 얹혀 있던 무거운 돌덩이가 스르르 사라지는 기분이들었다. 심지어 그 한때의 집착과 미련도 함께 흩어져 갔다. 그는 가볍게 몸을 돌려 준비해 온 선물 상자를 꺼내며 말했다. “새해가 지나면 하연 씨 약혼식이 있을 테니, 나는 참석하지 않겠지만, 이 약혼 선물만큼은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약혼 선물’이라는 말이 하연의 귀에 맴돌았다. 이것이 하연이 이현과 함께 들려온 남
“하연이, 집에서 지내는 게 더 편할 거예요. 저는 상관없습니다.” “너는 항상 우리 하연이만 생각하는구나.” 최동신은 농담 섞인 말투였지만, 어딘가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그래.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긴 하지. 집안 가정부들은 어릴 때부터 하연이를 봐왔으니, 생활 습관을 잘 알고 있고 이곳이 하연이가 편하긴 할 거야.” “아침부터 나갔다던데, 너랑 같이 있던 게 아니었어? 그럼 얘가 어디 간 거지?” 최동신은 가정부를 불러 말했다. “하연 아가씨한테 전화 좀 걸어보게.” “어르신, 이미 전화드렸는데 받지 않으십니다.” 최동신은 미간을 좁혔다. “무음으로 해놔서 못 들었나...” 하지만 최동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혁의 주머니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문자 메시지였다. 상혁은 화면을 열어 확인하는 순간, 눈빛이 짙어졌다. 최동신은 미묘한 변화를 감지했다. “상혁아,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야?” 상혁은 잠시 멈칫했지만, 다시금 평정을 찾고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업무 관련한 일이라서요.” 최동신은 배려 깊게 말했다. “일이 우선이지. 얼른 가봐라.” 최씨 가문의 본가를 나서며, 상혁은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문자 메시지 하단에 찍힌 ‘TW카페’ 네 글자가 유독 선명했다. ...평일 오전의 TW 카페는 한산했다. 한 시간 전. 다시 ‘한명준’이 된 손이현은 급히 카페로 향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창가 소파에 앉아 있는 하연이 눈에 들어왔다.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여자에게 내려앉아,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을 자아냈다. 이현의 발걸음도 순간 멈췄다. 그는 한동안 하연을 바라보며 흐트러진 숨을 고르던 중, 직원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손님, 몇 분이세요?” 이현은 가볍게 손짓했다. “약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하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다리게 했나요?” 하연은 시선을 들어 평온한 표정으로
“이게 뭐야?” 송혜선은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시선만큼은 솔직했다. 하지만 사진 속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의 눈빛이 확연히 달라지면서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사진을 낚아채고 하나하나 넘겨봤다. 사진마다 담긴 장면이 송혜선을 점점 흥분하게 만들었다. ‘흥, 최씨 가문의 귀한 딸이 두 남자를 동시에 만나고 있다니, 이거 재미있어지겠는데?’ 사진 속 남자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고고한 분위기, 남다른 기품까지...비록 사진에는 전부 뒷모습만 담겨 있었지만, 남자가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송혜선은 미간을 살짝 좁히며 모든 사진을 훑어본 뒤 나지막이 말했다. “이 정도는 그냥 친한 남녀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일 아닐까? 선을 넘은 정황은 없잖아. 겉보기엔 별 문제 없어 보이는데?” 하지만 정다영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그녀는 오래전부터 하연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설 탐정을 통해 추적해왔다. 그리고 사진 속 ‘한명준’이라는 남자와 하연 이 둘 사이에는 단순한 친분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어머님, 이 남자가 누군지 아세요?” 다영의 목소리는 은근한 흥분을 담고 있었다. “바로 B시 한씨 가문의 사람이란다.” “B시 한씨 가문?” 송혜선은 순간적으로 하연의 전 남편이 한씨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자신이 분명 들은 바에 따르면 한씨 가문은 이미 몰락한 상태였다. “최하연의 전남편은 감옥에 간 걸로 아는데, 또 다른 한씨 가문 사람이 나타났다는 거예요?” “하여튼 복잡한 사연이 많았어.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단다.” 다영은 하연과 ‘한명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건, 이 일을 이용하는 것이었으니까.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죠. 중요한 건, 우리가 부상혁에게 무엇을 보여주느냐는 겁니다.” ‘남자
배가 항구에 서서히 가까워질 때, 허징인은 저 멀리 보이는 부두를 응시하면서 머릿속에서 끔찍했던 기억들이 마치 영화처럼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날의 비명, 피 냄새, 그리고 민찬의 얼굴...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는 참았던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숨을 깊게 들이쉬며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난간을 꽉 잡은 여자의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하얀 손등에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허징인의 떨리는 손끝은 마음속 분노와 슬픔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상혁이 조용히 허징인 곁에 다가왔다. 남자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바닷바람에 섞여 들려왔다. “배에서 내리면, 제 부하들이 안전한 곳으로 허징인 씨를 모실 겁니다.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마세요.” 허징인은 거센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차가운 눈빛과 함께 낮고 냉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 대표님, 하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한겨울의 서리처럼 차가웠다. “제 남편이 부남준 밑에서 오랜 시간 일을 했어요. 물론, 제 남편도 깨끗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저와 민찬이를 지키기 위해 부남준의 죄를 대신 뒤집어쓴 적도 많았어요.” 잠시 말을 멈춘 허징인은 숨을 고르며 상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금 제 남편은 민찬이의 죽음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동안 자신과 부남준 사이에 있었던 모든 부정한 거래를 실토할 겁니다.”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부 대표님께서 제 남편에게 이 소식을 전할 방법을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허징인의 목적은 단순했다. ‘정규인을 이용해 부남준을 무너뜨릴 단서를 만들어야 해. 민찬이의 억울한 죽음을, 그리고 수많은 희생자들의 한을 풀기 위해!’ 상혁은 잠시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이윽고, 그의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상혁의 원래 무심하던 표정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그가 감정적으로 흔들렸다는 건 분명했다. 상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담배 한 갑을 꺼내 들었다. 남자의 길고 날렵한 손가락이 담배 한 개비를 집어 들고는 정확히 입술 끝에 물었다. 그다음엔 상혁은 침착하게 라이터를 켜고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그는 담배를 깊이 들이마신 뒤, 한순간 숨을 멈췄다가 연기를 천천히 내뱉었다. 연기 사이로 보이는 남자의 눈빛은 이전보다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이 판이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어.’ 그러나 허징인은 자신의 분노에 사로잡혀, 상혁의 변화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 “부남준은 제가 가진 증거를 빼앗으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겠죠. 그래서 절 죽이고 모든 걸 덮으려 했던 거고요. 정말 어리석은 꿈을 꾼 거죠.” 허징인의 목소리는 점점 격앙되었다. 감정이 폭발하면서 그녀는 마치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듯 말을 쏟아냈다. “부남준도 설마 이런 상황까지는 생각 못 했겠죠. 제가 이런 처지에 놓일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 못 했을 거예요. 하지만 증거를 손에 넣는 순간부터 전 모든 걸 철저히 준비해 뒀어요. 단 한 치의 빈틈도 없도록 말이에요.” 상혁은 담배를 쥔 손을 잠시 멈추고, 허징인을 바라봤다. 남자의 눈빛엔 전에 없던 흥미와 약간의 감탄이 섞여 있었다. “허징인 씨, 오늘 정말 날 실망시키지 않는군요.” 허징인은 상혁의 반응에 반응하지 않았고, 대신 스스로를 비웃듯 쓴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처음엔 그저 제 아들과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 그 사람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둔다면, 제가 가진 증거는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졌을 겁니다.” 그녀는 한순간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음 순간, 허징인의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며,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폭발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에요. 그놈이 제 아들을... 민찬이를 죽였어요! 제 손으로 지켜야 했던
금발 남자의 얼굴엔 잔인한 기색이 스쳤다. 허징인과 민찬에게 단 한 줌의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저년의 입과 코를 꽁꽁 막아. 빈틈 하나도 남기지 말고.” 허징인은 절망에 빠진 눈으로 민찬을 바라보았다. ‘내 아들... 우리 민찬이...!’ 울부짖는 어린 민찬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가운데, 그녀는 거대한 배의 20미터 높이의 갑판에서 차갑고 무자비하게 바다로 내던져졌다. 얼음처럼 차가운 바닷물이 온몸을 감싸고, 숨을 쉴 수 없는 답답함이 허징인을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의식은 멀어지고, 그녀의 몸은 깊고 어두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여기서 이렇게 끝나는 건가...?’ 그러나 의식이 다시 돌아왔을 때, 허징인은 머리가 지끈거리고 무겁게 아파왔다. ‘아... 여긴 어디지?’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머리를 눌러본 뒤에야, 그녀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낯선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나는 바다에 던져졌는데... 대체 여긴 어디지?’ 그리고 그녀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 민찬. ‘민찬? 설마... 설마 내 아들...!’ 그 순간, 절망감이 몰려오며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문이 거칠게 열렸다. 허징인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뒷걸음질쳤다. ‘누구야? 또다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부상혁 대표님...?”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허징인 씨, 오랜만이네요.” 상혁 곁에 있던 원신민은 눈치를 보며 조용히 방을 나가고, 문을 닫았다. 허징인은 불신과 놀라움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상혁을 바라보았다. “부 대표님, 어떻게... 어떻게 여기에...?” 여자의 목소리는 떨리고, 대답을 기다리며 불안감이 가득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허징인은 곧 머리를 굴렸다. ‘설마... 나를 구한 사
“조사가 끝났습니다.” 원신민은 망설임 없이 지도를 꺼내 상혁의 앞에 펼쳐 놓았다. “이 배는 F국 항구에서 출발해 서해안을 따라 항해한 후, 이 항로를 통해 태평양을 건너 L국의 T시 항구에 도착...” 원신민의 손가락이 지도 위를 천천히 움직이며 항로를 또렷하게 그려냈다. “대표님, 우리가 이 사람을 빼돌릴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은 오늘 밤입니다. 배가 F국 영해를 벗어나면 일이 훨씬 까다로워질 겁니다.” 상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긴 손가락 끝으로 지도 위 특정 지점을 톡 건드렸다. ‘역시 냉철해.’ 원신민은 눈치를 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굵직한 뱃고동 소리가 항구를 울렸다. 거대한 배는 서서히 항구를 떠나 물결을 헤치며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이 배는 15층짜리 대형 크루즈로, 가장 아래층은 화물칸으로 쓰이고, 그 위로는 승객의 숙소, 식당, 그리고 각종 오락 시설이 층층이 자리 잡고 있었다. 허징인과 아들 민찬은 가장 아래층의 음침하고 습한 방에 배치되었다. 방에는 좁은 창문 하나만 달려 있어 바깥의 희미한 빛이 들어오는 것이 전부였다. “엄마, 무서워요!” 민찬은 허징인의 품에 파고들며 온몸을 덜덜 떨었다. 허징인은 아들을 꼭 끌어안으며 본능적으로 달랬다. “괜찮아, 민찬아. 엄마가 있잖아.”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문이 거칠게 열렸다. 낯선 남자들이 순식간에 방으로 들이닥치며 좁은 공간을 가득 메웠다. 허징인은 경악하며 외쳤다. “당신들 누구야? 뭐 하려는 거야?” 이 사람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이었다. 그는 거대한 체구와 빽빽이 자란 턱수염을 가졌고, 강렬한 눈빛으로 허징인을 꿰뚫듯 쳐다보았다. 이어서 다소 서툴지만 알아듣기 쉬운 F국말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바로 남준이 말한 여자인가?” 그는 허징인의 얼굴을 훑어보더니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저 여자일 뿐인데, 너무 똑똑하면 손해만 볼 뿐이에요.” 남준이 허징인에게 다가가며, 몸을 숙여 그녀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기까지 왔으니, 내가 원하는 걸 이제 줘야 하지 않겠어요?” 허징인은 차갑게 비웃으며 얼굴을 굳혔다. “뭐가 그렇게 겁나십니까, 상무님? 제가 약속을 어길까 봐요? 아니면... 그 물건들이 엉뚱한 사람 손에 들어갈까 봐요?” “그건 사모님이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죠.” 남준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허징인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쥐었고, 속으로는 분이 차올랐지만, 상황을 감안해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어. 지금은 일단 물러서는 게 최선이야.’ “걱정하지 마세요, 상무님. 이미 약속한 이상, 전 제 말을 반드시 지킬 겁니다.” 허징인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며 남준과 눈을 맞췄다. “상무님도 본인의 약속을 지키길 바랍니다.” 남준은 가볍게 손을 펼치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허징인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작전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제가 반은 먼저 드리고, 나머지는 우리가 안전한 곳에 도착하면 드릴게요.” “안 돼요!” 남준이 단호히 그 제안을 거절했다. “지금 사모님한테는 조건을 제시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안 그래요?” 허징인은 눈을 감고 결연한 태도로 말했다. “그럼 차라리 지금 절 죽이세요. 하지만 제가 죽으면 그 물건들이 공개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알아두세요.” “엄마!” 곁에 있던 민찬이 울먹이며 그녀의 다리에 매달렸다. “엄마, 무서워요!” 허징인은 민찬을 꼭 안으며 남준을 노려보았다. ‘이 상황에서 물러서면 끝장이야. 적어도 내 아이는 지켜야 해.’ “상무님, 선택은 당신 몫입니다.” 남준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침묵했다. 남자의 눈빛은 한층 더 날카로워졌고, 어금니를 악물더니 잠시 후 말했다. “죽음도 불사하다니, 사모님의 배짱은 보통이 아니
집에 돌아온 하연은 좀처럼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침실 안. 은은한 조명이 켜진 방에서, 하연은 소파에 몸을 웅크린 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대표님...” 가정부가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조심스레 부르며 방으로 들어왔다. 상혁은 문틈 사이로 방 안의 하연을 흘깃 바라보며 손으로 가정부를 막았다. “내가 할게요.” 가정부가 물러난 뒤, 상혁은 바로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벽에 기대어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상혁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는데, 원신민에게서 온 메시지였다.그 내용은 간단했다. 하지만 상혁은 짧은 문장을 확인한 뒤, 입가에 가볍게 조소를 띄우며 휴대폰 화면을 껐다. 마치 모든 걸 손아귀에 쥐고 있는 사람의 태도였다. 그는 이내 천천히 방의 문을 열었다. “하연아.” 남자의 차분한 목소리에 하연은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상혁을 바라보며 조금 의아한 듯 물었다. “언제 들어왔어요?” 상혁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우유를 하연의 손에 쥐어주었다. “따뜻할 때 마셔.” 남자의 부드러운 말에 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곧 우유를 들고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잠시 후, 컵이 바닥을 드러냈다. “잠깐 회사에 좀 다녀올게. 집에서 푹 쉬고 있어.” 상혁은 하연이가 들고 있던 유리잔을 받아들며 말했다. “이 밤중에요? 무슨 일 있는 거예요?” 하연은 살짝 의아해했다.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아마 늦을 거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남자는 고개를 숙여 하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지금 이 순간이 난 참 행복해.” 상혁의 눈에는 하연이가 자신의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이 행복이 오래가길, 조금이라도 더 오래가길...’ 하연은 상혁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의 품에 안기며 살짝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도요. 정말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