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아.”이수애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예전의 일들은 모두 내 잘못이야. 내가 사과할게, 정말 미안해. 하지만 서준이는 아무 잘못 없어. 서준이는 아직도 널 마음에 품고 있을 거야. 혹시 우리 서준이랑 다시 만나볼 생각은 없어? 이번엔 내가 절대 두 사람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을 게!”“정말 뻔뻔하시네요.”예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채 말했다.“전 세계의 남자가 모두 죽었다고 해도 저희 하연이는 당신 아들과 안 만날 겁니다. 그러니 다신 이런 말씀 꺼내지 마세요.”하연은 이 말을 듣자 몰래 예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사모님, 오늘 하신 말씀은 우스갯소리로 넘어갈게요. 그러니 다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마세요.”이수애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겸손한 태도를 보였는데도 하연이가 이렇게 대답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연의 모습은 예전과 너무 달랐다.이수애는 매우 기분이 불쾌했다. 그녀는 몰래 손을 가방에 넣은 후 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준에게 하연의 진짜 모습을 똑똑히 보여주려는 것이다.“최하연, 넌 정말 우리 서준에게 아무런 마음도 없는 거야?”이수애는 포기하지 않고 한마디 물었는데 그녀는 아직도 하연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지난 3년간, 하연이가 서준을 위해 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서준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절대로 한순간에 식어버릴 마음이 아니었다.하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도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예전에는 서준을 떠올리면 늘 감정 기복이 심했다. 서준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연의 심장은 여전히 서준을 떠올리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서준을 떠올리면 그냥 낯선 사람을 떠올 리 듯이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사모님, 사람은 모두 변하는 법이에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전 절대 제 선택에 회하지 않습니다.”하연은 매우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서준 씨는 당신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들이겠지만 저한
“아들 넌 엄마 편이어야 해! 아들... 여보세요? 엄마 말 듣고 있어?”전화는 이수애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끊겨버렸다. 화가 잔뜩 난 이수애는 곧바로 핸드폰을 땅바닥에 집어던졌다.“최하연, 이 여우 년!”이수애는 화가 난 마음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주위의 사람들은 이를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수애는 부끄러운 마음에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다.“사모님...”바로 이때 임서희가 하이힐을 신고 나타나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이수애는 낯선 얼굴에 입꼬리를 움직이며 물었다.“누구시죠?”“제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최하연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하연을 언급하자 이수애는 경계하는 표정으로 차갑게 물었다.“최하연 그 여우 년과 아는 사이에요?”그러자 임서희가 말했다.“사모님께서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전 사모님과 차라도 한잔하며 최하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데 혹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임서희가 수상해 보였지만 이수애는 하연을 혼내주고 싶다는 생각에 바로 동의했다.“좋아요, 어디로 갈까요?”임서희는 장소를 고른 뒤 이수애를 데리고 떠났다....미용실에서 나온 하연은 기분이 매우 상쾌했다. 이전에 하연은 서준을 위해 늘 참고 양보했었지만 이번엔 자기만을 위해 당당하게 나섰다.회사로 돌아온 하연은 계속 바삐 일하다가 퇴근시간이 되여서야 손에 든 서류를 모두 확인하였다.“정 비서님, 이 자료들을 각 부서에 나누어 주세요. 내일 아침 회의에 사용할 자료들입니다.”하연은 지시를 내린 후에야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오늘 또 다른 일이 있으신가요?”최근 하연은 줄곧 야근을 했기에 눈 밑엔 다크서클이 짙어졌다. 정기태는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자 입을 열었다.“사장님, 회사 일은 이만 내려놓으시고 집에 가서 푹 쉬세요.”“괜찮아요, 마저 처리하고 돌아가도 늦지 않아요.”정기태는 결국 하연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남은 서류들을 보관하였다.하연이가 모든 일을
“그래요? 또 뭐라고 하셨는데요?”하연의 이런 태도는 서준을 화나게 만들었다. 이전의 하연은 줄곧 연약한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엄청 차가운 모습이다. 어쩌면 지금 모습이 진짜 하연의 모습일지도 모른다.“하연아, 내가 DS 그룹에 관한 소문을 들었어. 지금 네 실적을 높여야 한다고 들었는데 네가 필요하다면 HT 그룹은 얼마든지 널 도와줄 수 있어.”서준은 분명 하연에게 호의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괜찮아요.”하연은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다른 일 없으시다면 이만 비켜주시죠.”서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하연에게 물었다.“넌 지게 될지라도 내 도움은 절대 안 받겠다는 거야?”‘오늘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지게 되다뇨? 전 절대로 지지 않을 겁니다. 한서준 씨, 저흰 이미 이혼한 사이고 HT 그룹과 DS 그룹은 경쟁 관계이니 굳이 절 도와주려고 하실 필요 없습니다.”“넌 아직도 고집이 엄청 세네.”하연은 더 이상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 엑셀을 힘껏 밟았다. 서준은 깜짝 놀랐다. 차창을 사이에 두고 본 하연의 차가운 얼굴은 엄청나게 낯설었다.“최하연, 너 지금 뭐 하는 거야?”서준이가 입을 열었다.“비키세요.”서준이가 비켜주지 않자 하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채 서준의 람보르기니를 들이박았다. 쾅-커다란 충돌 소리와 함께 서준의 몸은 세게 흔들렸고 람보르기니에는 깊은 자국이 생겼다.“최하연, 너 정말 미쳤어?”서준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연을 향해 소리쳤다. 이에 하연은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한 번만 더 제 차를 막으신다면 더 세게 박을 겁니다.”하연은 입꼬리를 씩 올린 후 서준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핸들을 꺾고 엑셀을 밟아 주차장을 나섰다.이건 분명 도발이다.서준은 화가 난 마음에 핸들을 돌려 쫓아가려고 했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최하연, 정말 독한 여자야.”백미러를 통해 점점 사라지는 서준을 보자 하연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녀조차도 왜 그렇게 충동적인 행동을 한 것인지 알 수
공항 출구.운석은 하연이가 도착하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반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하연의 차가 천천히 공항 출구로 들어왔다. 운석은 흥분된 마음에 하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연의 차는 그의 앞에 멈추었다.“여신님, 드디어 오셨군요.”하연은 피곤한 마음을 숨긴 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운석은 차 문을 열고 차에 오른 후 환하게 웃었다.“아니에요, 여신님을 위해 힘쓸 수 있는 것은 제 영광입니다.”하연은 차의 시동을 걸며 물었다.“집으로 데려다 드릴까요?”“먼저 밥 먹으러 갑시다. 여신님과 함께 밥 먹을 수 있다면 너무 기쁠 것 같아요.”하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먹고 싶은 메뉴라도 있나요?”운석은 입맛이 전혀 까다롭지 않았다.“여신님, 전 뭐든 주시는 대로 다 먹을 수 있으니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됩니다.”하연은 말문이 막혔다. 이때 운석은 가방에서 정교하게 포장된 선물을 꺼내 하연에게 건네주었다.“여신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에요.”하연은 매우 의아했다.“이게 뭐예요?”운석은 신비로운 모습으로 말했다.“열어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하지만 지금 말고 돌아가신 후 열어보세요!”하연은 갑작스러운 선물에 어리둥절했다.“엄청 비밀스러운 선물인가 봐요?”운석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그럼요.”하연은 한 중식당을 찾은 다음 차를 주차한 뒤 운석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운석은 수다쟁이처럼 걸으면서 하연에게 그동안 F국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하연은 이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그동안 엄청 풍부한 생활을 하셨네요.”운석은 조급해하며 대답했다.“여신님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전 그냥 친구들과 함께 휴식한 것뿐이에요.”“알아요.”운석은 의심스러워하는 하연의 표정을 보자 서둘러 해명했다.“여신님, 걱정 마세요. 전 여신님을 만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다른 여자들과 가까이한 적 없어요! 여신님을 향한 제 마음은 언제나 진심이에요.”운석의 진지한
반면 서영과 서영의 친구들은 매일 집안의 돈으로 놀고먹기만 했다.집안에서는 모두 그녀들더러 하연을 따라배워 가문의 기업들을 경영해 나가라고 했기에 그녀들은 모두 하연을 우상으로 받들었다.“안 되겠어. 당장 우상님과 사진이라도 찍어야겠어! 우상님과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 줄 거야.”“난 사인이나 받으러 가야겠어! 우상 님의 사인은 우리 집안의 거실에 모셔놓을 거야!”“서영아, 우리랑 같이 가지 않을래?”서영은 말문이 막혔다. 새로 사귄 친구들이 모두 하연을 우상으로 받들다니.“아니, 너희들...”서영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녀의 친구들은 하연에게 달려갔다.“하연 씨, 저랑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하연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연은 낯선 여자들을 보며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죄송하지만, 사진은 곤란할 것 같네요.”몇 명의 아가씨들은 모두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전 정말 하연 씨를 엄청 좋아하고 있는데 사인 좀 해주시면 안 돼요?”하연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매우 어리둥절했다.“죄송하지만, 전 연예인이 아니어서 사인을 해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하지만 하연 씨는 저희 우상이에요!”“맞아요, 우상이에요! 제발 부탁드릴 게요!”...하연은 자기가 우상이 되었다는 말에 어리둥절했다, 이때 서영은 하이힐을 신은 채 하연의 앞으로 다가와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최하연, 기분 좋나 봐?”서영의 말투는 건방졌다. 이에 그녀의 친구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서영아, 너 하연 씨랑 아는 사이야?”서영은 콧방귀를 뀌며 차갑게 말했다.“아주 잘 아는 사이지. 너희들은 뉴스도 안 보고 살아? 최하연은 예전에 내 형수였지만 지금은 우리 집에서 쫓겨난 것도 모자라 우리 오빠랑 이혼했거든.”서영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하연을 쳐다보았다. 서영은 친구들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분명 하연을 더 이상 우상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두 눈 뜨고 똑바로 봐,
서영은 손을 내밀어 하연의 뺨을 때리려 했으나 운석이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손대기만 해 봐!”서영은 아무리 힘을 줘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최하연, 당장 이거 놓으라고 해.”하연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차가운 눈빛으로 날뛰는 서영을 지켜보았다. 서영의 친구들은 이 상황을 보자 모두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서영을 쳐다보았다. 원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서영은 지금 더 꼴 보기 싫어졌다.“어떻게 우리 우상님한테 이런 짓을 할 수 있지? 앞으로 다신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우리 우상님은 네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말 좀 가리면서 하지?”“안 그래도 소문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역시 소문들이 모두 사실인가 봐.”...몇몇 아가씨들은 모두 서영과 거리를 두었다. 이에 서영은 화가 나다 못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너희들! 내가 준 선물을 받을 땐 가만히 있더니 이제 와서 이딴 말을 해?”“그딴 걸 선물이라고 준 것도 참 웃기네. 그 물건들은 벌써 우리 집 아주머니한테 줬어.”“맞아, 고작 그딴 걸로 우리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던 거야?”“그까짓 게 얼마나 한다고 잘난 척하는 거야? 얼마짜리인지 말하면 돈으로 돌려줄게. 더 이상 아는 척하지 마.”하연은 자리에 앉아 여자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서영이가 친구들에게 버림받게 되자 하연은 기분이 매우 통쾌했다.“여신님,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길까요? 정말 입맛이 떨어지네요.”운석은 서영의 팔을 놓은 뒤 물티슈로 손을 닦았다. 마치 서영이가 더럽기라도 하다는 듯이 불쾌하다는 눈빛을 보이기도 했다.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요, 정말 입맛이 떨어지긴 하네요.”하연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몇몇 아가씨들은 하연에게 또다시 부탁하였다.“우상님, 제발 사인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맞아요, 우상님. 제발 사진 한 장만 함께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서영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하연을 보자 화가 미친 듯이 치밀어 올랐지만 그 장면을 지켜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이 말을 들은 기자는 갑자기 흥미진진해하며 물었다.[어떤 분의 사진인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미리 준비를 하도록 하죠.]이에 서영은 느릿느릿하게 말했다.“연예인이 아니라 DS 그룹의 최하연 사장의 사진입니다. 저한테 최하연이 남자를 가지고 노는 사진이 있거든요.”이 말을 들은 기자는 순식간에 어두운 표정을 보였다. B시에서는 아무도 하연의 프라이버시를 멋대로 폭로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래요? 어떤 사진인 거죠?]상대방은 이미 흥미를 잃었지만 서영은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서영은 이번 기회에 하연의 진짜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려고 했다.“사진을 메일로 보내드릴 테니 꼭 뉴스에 올리셔야 합니다.”[그래요.]상대방이 얼버무리며 대답했지만 서영은 매우 흥분된 마음으로 사진을 보냈다. 서영은 내일 하연에 관한 뉴스가 퍼지게 될 것을 떠올리자 매우 기뻤지만 일주일을 기다려도 뉴스가 터지지 않았다. 그 기자는 심지어 서영의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최하연, 네가 기자랑 손을 잡았을 줄은 몰랐네.”서영은 매우 화가 났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기자 쪽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차라리 서준에게 하연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서영은 화를 가라앉히지 않은 채 HT 그룹으로 달려가 서준의 사무실을 찾았다.“오빠, 이것 좀 봐. 최하연 그년은 우리 집에서 나간 다음 계속 남자들을 꼬시고 있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하연의 이름을 듣자 사무실의 분위기가 매우 차가워졌지만 서영은 여전히 말을 멈추지 않은 채 핸드폰 속의 사진을 서준에게 보여주었다.서준은 핸드폰 속의 사진을 보자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최하연과 나운석이 이렇게 친하다니? 나운석은 정말 내 전체한테 들이대고 있는 거야?’지난번 하연과 싸웠던 일을 떠올리자 서준은 차갑게 웃기만 했다.“너 요즘 시간이 남아도나 봐?”서영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오빠, 왜 그래?”서준은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요즘 용돈을 너무 많이 줘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나 봐?”용돈
“오늘 한 말 꼭 기억해. 안 그러면 정말 널 A국에 보내버릴지도 몰라.” 서영은 또다시 약속한 다음 사무실을 떠났다. 서영이가 떠난 후 서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는 구동후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기만 했다.“대표님, 괜찮으세요?”서준은 그제야 눈길을 거두었다.“무슨 일이야?”구동후가 사실대로 말했다.“최근 누군가가 저희 회사의 주식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쩌면 상대가 악의적으로 저희 회사의 주식을 구매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뭐 알아낸 거라도 있어?”“상대가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어서 아직 실마리를 잡아내진 못했지만, 상대가 또다시 행동을 개시하면 분명 뭔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그래,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조심히 행동해.’“네, 알겠습니다.”두 사람이 일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후 서준이가 말머리를 돌렸다.“이전에 하연이가 우리 회사에서 출근할 때 친하게 지내던 동료는 없어?”구동후는 서준을 한번 쳐다본 후 말했다.“최 비서님은 항상 엄밀하고 착실하게 일하시는 데다가 동료 관계를 아주 잘 처리하셨는데 특별히 친하게 지내던 동료는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서준은 좀 아쉬운 눈치였다.“그래, 이만 나가 봐.”구동훈은 서준의 마음을 알 수 없었지만 최근 서준이가 다시 하연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이와 동시에.DS 그룹의 꼭대기 사무실에서 하연이가 다국적 재벌들과의 화상회의를 마치자마자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들어오세요.”말을 마치자마자 운석이가 웃는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여신님, 여기 사인해야 할 서류가 두 개 있습니다.”하연은 머리가 매우 아팠다. 이미 여러 번 호칭을 바로잡았지만 운석은 여전히 제멋대로였다.“회사에선 호칭을 바꾸시면 안 될까요?”운석은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여신님께서 저와 주말에 함께 영화를 봐주신다면 호칭을 바꿀게요!
전용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문이 천천히 열리자마자 주슬기가 눈에 들어왔다.“부 대표님.” 슬기는 공손하게 인사하며 미소를 띠고 다가갔다.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들러봤는데, 이렇게 마주치다니 운이 좋네요.”상혁은 코트를 들고 약간 무심한 태도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나요?”“원래는 없었는데요... 지금은 저녁 식사나 함께할까 해서요. 몇 가지 상의할 일이 있거든요.” 슬기는 재빠르게 대답하면서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상혁은 본능적으로 거절하려다가 잠시 생각한 뒤, 뜻밖에도 승낙했다.“좋아요, 장소는 제가 정하죠.”슬기는 의아했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네, 좋아요.”곧 원신민이 급하게 와서 상혁의 지시를 받았다. “오늘 당장 시내에서 가장 큰 식당에 방을 예약해.”그곳의 방은 최소한 3일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기에, 원신민은 바쁘게 움직였다. 슬기는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의할 게 큰일은 아닌데, 이렇게 정식으로 예약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상혁은 태연하게 말했다. “업무 관련된 일이라면 허술하게 할 수 없죠.”상혁은 대수롭지 않게 밖으로 나갔고, 그가 탄 엘리베이터와는 다른 엘리베이터가 마침 내려오고 있었다.“부 대표님의 비서가 낯이 익어요. 어디서 본 적 있죠?” 슬기가 호기심을 보였다.이 업계에서, 특히 이사급의 비서라면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원신민은 과거에 이씨 가문의 장남을 도와주면서 정계와 조직폭력배 쪽 모두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방을 예약하는 것은 그에게 쉬운 일이었다.그 식당의 매니저가 직접 나와 원신민을 맞이했다. “원 비서님, 이렇게 갑자기 방문해 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방을 예약하신다고요? 1층과 2층은 이미 만석이지만, 최상층에 있는 방은 아직 비어있습니다. 그곳을 부 대표님께 해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원신민은 상혁이 슬기와의 식사에 그렇게 화려한 공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손으로 테
이현의 말을 듣고 옆에 있던 양국성도 조금 의외였다.경쟁이 격해지는 상황은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양국성은 이현의 제안에 맞장구를 치며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오늘은 제가 한턱 낼게요.”사실 이현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미 소문이 퍼져 있었고, 양국성도 ‘한명준’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게다가 이번에 오기 전, 정태산에게도 은밀히 말을 들은 터라, 양국성은 자신의 권한 내에서 최대한 ‘한명준’을 도우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현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양국성도 이미 자신을 설득하기 시작했으니 하연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현을 한 번 쳐다보고 나서 대답했다. “좋습니다.” 차 안에서, 정태훈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분명히 가기 싫어하셨잖아요.” 하연이 대답했다. “한명준이 이 사업을 맡게 된 건 예측했지만, 남산을 선택할 줄은 몰랐어. 만약 내가 그때 남산 땅을 받아들였더라면, 이 사람이 어디를 선택했을지 궁금해.” 하연은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이건 혹시 속내를 감추기 위한 선전술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하연이도 이현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이현은 손을 뒤로 살짝 뻗어 그녀를 가볍게 받쳐주었다. “이모가 이번 사업을 저한테 맡기면서, 사업하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거예요. 이제 저도 더 이상 가게만 운영하던 ‘손이현’이 아니에요.” 하연은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이미 알고 있어요. 다시 상기시킬 필요는 없어요.” 이현은 깊은 눈빛으로 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연 씨가 기억하는 손이현은 더 이상 없어요. 이제부터 돌아온 건 과거의 한명준만 있어요.” 그제야 하연이 그를 흘깃 쳐다보며 쏘아붙였다. “과거의 한명준은 의기양양하고 당당한 청년이었죠. 지금 당신의 모습이 그 당당한 청년과 닮은 게 뭐가 있어요?” 그녀가 기분이 나쁘면 말이
하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원 비서한테 우유로 바꾸라고 했어용!” 상혁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졌지만, 하연은 능숙하게 일어섰다. “나도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먼저 가야 해요. 커피는 더 이상 마시면 안 돼요. 저녁에 또 올게요.” 상혁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저녁이면 이미 퇴근했을 텐데.” “그럴 리가 있나요? 나 원 비서한테 물어봤는데... 당신은 요즘 새벽까지 매일 야근한다면서?” 하연이 문가에 서서 농담처럼 말했다. “부 대표님, 총책임자가 하는 일 정말 쉽지 않죠?” 상혁은 얼굴을 돌리며 미소를 숨겼다. “내일 당장 원신민 해고해야겠군.” ‘원 비서 감히 이렇게 빨리 날 배신했더니...’하연은 오늘도 신에너지와 관련된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번에는 B시에서 온 조사팀과의 회의였다. 제대로 된 홍보팀이 없는 상황이라, 하연은 CS그룹의 몇몇 직원을 빌려와 회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저녁 만찬에서 성공적으로 계약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국장님,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오늘 낮잠은 잘 주무셨나요? 방은 만족하셨는지요?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제가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하연 웃으며 인사하며 방으로 들어섰다. 양국성은 친근하게 하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최 사장님께서 세심하게 신경 써주신 덕분에 일이 아주 순조로웠어요. 그리고 정태산 지사님께서도 최 사장님께 안부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한 마지막 말은 하연에게 작게 속삭였다. 하연의 얼굴에 잠시 어두운 기색이 스쳤고, 정태산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지사님께 제 안부 전해주시고, 부상혁 대표님께서도 잘 지낸다고 말씀드려주세요.” “부상혁 대표님이요?” 양국성이 놀라며 물었다. “아, 최 사장님께서 오해하신 것 같네요. 그날 제가 보고하러 갔을 때 한 검사장님도 계셨거든요. 그분이 최 사장님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한창명? 의외의 인물이었
하연은 말한 대로 다음 날 아침, 집에서 일하는 요리사에게 부탁해 위장에 좋은 닭죽을 끓였다. 요리사는 하연이가 이렇게 식단에 신경 쓰는 걸 처음 본 듯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가씨, 이걸 회사에 가져가실 건가요?” 하연은 조금 머쓱해하며 말했다. “내가 먹는 게 아니에요.” 요리사는 놀란 듯 물었다. “아가씨, 남에게 주는 거면, 직접 요리해 보시는 게 어때요? 남자가 감동할 거예요.” 하연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알아요. 근데, 시간이 좀 필요해요.” 그녀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손에 들린 수프 냄비를 들고 바로 DL그룹으로 향했다. 마치 비밀 작전을 수행하듯, 하연은 원신민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한테 들키지 않게 해줘요.” 원신민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긁적이며 말했다. “최 사장님, 부 대표님은 아직 회의 중이신데요.” “언제 끝나요?” “아마도 두 시간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하연 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제 점심시간이 다 됐잖아요. 이렇게 직원들까지 압박하는 거 아니에요?” 원신민은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회사 일이니까요.” 하연 한참을 생각하다가 손짓하며 말했다. “내가 너희 대표님은 밥을 먹게 할 방법이 있는데, 들어볼래요?” 원신민은 귀를 기울였다.5분 후, 비서가 회의실로 들어와서 말했다. “대표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상혁은 불쾌해하며 말했다. “바로 말해.” “대표님 책상 위에 있는 백란화에 뱀이 말려들었습니다...” 회의실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고, 몇몇이 외쳤다. “그런 건 부하 직원들이 처리하면 되지 않나? 굳이 부 대표님께서 나설 일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상혁의 안색은 오히려 좋지 않았다. 부동건은 난초를 매우 사랑했고, 그 백란화는 상혁이 부동건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것이었다. 백란화를 돌보는 일은 상혁이 DL그룹을 물려받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져 오던 상혁은 잠시 쉬기로 결심하며
하연은 잠깐 당황했지만 곧바로 상혁의 귀에 속삭이듯 다가가며 말했다. “아직도 반응이 있네, 부 대표님은 아무나 거절하지 않는 건가요? 오늘 만약 다른 여자가 여기 앉아 있었다면...” 그녀의 농담과 향기가 귀를 간지럽히자, 상혁은 잠시 고개를 돌려 미묘하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다른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럼 나만?” 하연의 말에 상혁은 약간 무너지는 듯했지만 이내 그녀를 밀어내며 대꾸했다. “나의 의미는, 너도 아니야.” 하연의 얼굴에 순간 실망이 떠올랐다. 그녀는 입술을 내밀며 차 안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상혁은 잠시 침묵하며 그가 느끼던 생리적 반응이 가라앉길 기다린 후 차분히 말했다. “내려.” “당신은 의사한테 가는데, 내가 왜 내려야 해요?” “다시 붕대 싸매.” 상혁은 이 말을 던지며 차에서 내렸다. 하연도 그제야 그 의미를 깨닫고는 피식 웃으며 따라나섰다.F국에 돌아온 후 상혁의 위장병이 계속 재발하고 있었다. 불규칙한 생활과 식사가 병을 악화시켰고, 의사는 그의 상태를 보고 좋지 않은 얼굴을 했다. “부 대표님, 몸이 재산입니다. 이렇게 무리하다가는 일이 끝나기도 전에 몸이 망가집니다.” 하연은 밖에서 간호사가 다시 붕대를 감아주는 동안 그 말을 들었다. 상혁은 숨을 고르며 가볍게 대답했다. “제 몸 상태는 제가 잘 알아요. 약만 먹으면 돼요.”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계속 잔소리를 했다. “위장은 쉬게 해야 하는데, 아플 때 약을 먹는 건 이미 늦은 겁니다. 평소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혹시 비서도 없으십니까?” 상혁도 많은 비서가 있긴 했지만, 바쁜 스케줄 때문에 제대로 된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비서가 가져다준 음식은 몇 시간 동안 방치되곤 했다. 오늘도 병원에 온 것은 원신민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의사가 잔소리를 멈추자, 상혁은 미세하게 당황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의사는 밖을 힐끗 보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밖에 계신 아가씨는 대표님의..
“이 정도의 약점을 부남준이 쉽게 너를 놓아줄 하연 없을 텐데?” “그건 제 추측일 뿐이에요!” 연지는 급히 상혁의 다리를 붙잡고 말했다. “그 재무 보고서에는 부남준과 다른 이사들, 특히 정규인과의 결탁을 증명할 수 있는 많은 세부 사항이 있어요.” 상혁은 정규인의 이름이 나오자 살짝 눈을 들었다. “어디에 있지?” “제 금고 안에 있어요.” “원신민.” 원신민이 재빨리 다가와 연지를 일으켜 세웠다. “내가 같이 가서 가져오지.” “대표님...” 상혁은 허락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연지의 머리카락을 살짝 잡아들며 라이터를 켰다. 불길이 일면서 머리카락이 재가 되어 날아갔고, 연지는 공포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신민이 연지의 입을 재빨리 막아 그녀가 소리 지르지 못하게 했다. 다행히 머리카락은 한 움큼만 탔을 뿐이었다. “알다시피, 황연지, 날 배신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겠지.” 연지는 공포에 질린 눈물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하연은 다영과 헤어진 뒤 자신의 차로 걸어가던 중, 갑자기 한 차량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한 발짝 물러섰다. 마치 상혁이 항상 타고 다니고 있는 차였다. 하연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차 문이 열리자 운전기사가 내려왔다. “부상혁 대표님께서 모시길 원하십니다.” 하연이 입술을 굳게 다문 채로 검게 칠해진 방탄유리를 바라보았는데, 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 안은 향이 피워져 있었고, 정신을 안정시키는 듯한 상쾌한 향이었다. 남자는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며, 그의 잘생긴 얼굴이 희미한 조명 속에서도 돋보였다.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하연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다음 순간, 손목이 붙잡혔고, 그녀는 한순간에 상혁의 품에 안겨버렸다. 남자의 강한 향이 공기 중에 가득 퍼졌다. 그러자마자 차가 출발하면서 뒤로 밀리는 힘 때문에 하연은 더욱 상혁의 가슴에 밀착되었다. 상혁은 하연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눈을 떴다. “내 회사
하연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다영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최씨 가문은 혼인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후손들이 영원히 번영할 수 있는 가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상혁도 역시 그런 혼인의 필요가 없었다. 부남준은 달랐다. 그는 차남이었고, 어머니 집안의 지원이 없었기에 혼인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다영에게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최하연 씨, 만약에 남준 씨를 좋아하지 않으신다면 거리를 두세요. 괜한 오해를 피하려면 말이에요.” ‘이미 오해는 깊어진 것 같아.’하연은 무력하게 생각했다. ‘내가 지금의 문제는 부남준이 나랑 거리를 두지 않으려 한다고 말할 수도 없잖아.’“정다영 씨의 뜻은 이해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으니, 조언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미래는 정다영 씨가 스스로 잘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하연이 최대한 체면을 유지하며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부남준은 그렇게 겉보기만큼 단순한 사람이 아닙니다.” “단순하지 않다면 오히려 더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여자들은 강한 남자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부남준의 성격을 마주할 때마다, 다영 역시 어느새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다.둘은 주차장의 동남쪽 모퉁이에서 발생한 작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여자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목에는 끔찍할 정도로 붉게 번진 화상 자국이 있었다. 남자는 차 안 뒷좌석에 앉아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그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너를 시켜서 덫을 놓았냐?” “아무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황연지가 흐느끼며 대답했다. “저는 그저 대표님과 최 사장님의 소문을 들었고, 오랫동안 지시를 받지 못해 불만이 쌓였을 뿐이에요. 그래서 일부러 덫을 놓고 복수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를 듣고 상혁은 고개를 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하연의 몸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서로의 체온이 맞닿았고, 한쪽은 차갑고, 다른 쪽은 뜨거웠다. 하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남자야, 네 그림과는 전혀 상관없어.” “그리기가 두려운 거야?” 남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그림 쪽으로 밀어붙였다. “그리기 두려우면, 내가 대신 그려줄까?” “날 놔!” 하연은 힘을 주어 저항하다가 잉크병을 쳐서 넘어뜨렸고, 남준은 즉각 그녀를 보호하려 하며 둘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잉크는 그의 옷에 쏟아졌다. 하늘이 깜짝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 “상무님...” 그와 동시에, 문밖에서 낮은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연은 본능적으로 돌아보았고, 그곳에 서 있는 정다영을 보았다. 정다영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남준 씨...” 남준은 다영을 보자마자 안색이 순간에 어두워졌다. “다영 씨는 여기 왜 왔어요?” 그는 마치 무언가 방해받은 것처럼 짜증이 난 표정이었다. 다영은 선물을 들고 있었다. “이거 몸에 좋다고 우리 어머니가 남준 씨도 드셔보라고 하셨어요.”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그녀가 조심스레 선물을 내밀었다.사실 이 핑계는 다영이가 둘만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준비된 것이었지만, 자신이 들어왔을 때 다른 여자가 남준과 친밀한 화면을 목격한 것을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필요 없어요. 그냥 돌아가요. 이 비서, 정다영 씨를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려.” “저... 남준 씨...” 다영은 말끝을 흐리며 떠나기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남준 씨, 이분은 누구세요?” 하연은 남준과 엮이기 싫어 얼른 그를 밀어내고는 빠르게 나와서 말했다. “정다영 씨, 우리 나중에 개인적으로 이야기하자.” 하연이는 다영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지만, 다영은 움직이려 하지 않고 눈물을 글썽이며 남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준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도 이따가 회의가 있어요. 먼저 옷을 갈아입고 갈
부남준은 하연을 사무실로 끌어들인 뒤, 하연이가 믿기 힘들다는 듯 물었다. “왜 황연지를 해고한 거야?” 남준은 느긋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화상 입었잖아.” “내가 원하는 건 공평하고 공정한 처리야. 너의 독단적인 행동을 원한 게 아니라고.” “지금 상황에서 네 신분이 이미 밝혀졌는데, 그 사람들이 여전히 공평함을 믿을 것 같아?” 남준은 말하면서도 한 손으로는 비서에게 약상자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는 면봉을 꺼내 하연에게 약을 발라주려고 해서 하연의 손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말이야, 최 사장님이 손을 다쳤다면, 황연지 한 명 해고하는 걸로 충분히 배상이 될 것 같아?” 하연 남준의 농담을 무시하며 말했다. “나도 일부러 황연지에게 부딪힌 게 아니야. 첫째로, 동기도 없었고, 둘째로, 내가 굳이 적을 죽이려다 내 몸도 해치는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누가 더 잘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자면, 하연이 당연히 연지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총애받았을 것이다.“바로 그 동기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네가 직원을 괴롭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거야.” 남준은 하연의 손에 약을 발라주며, 신중하게 말했다. “보통 사람들의 부유층에 대한 반감을 과소평가하지 마.” 하연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손을 빼려 했지만, 남준은 계속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듣기로는 DS그룹의 성적이 꽤 좋은데, 최 사장님의 정신이 이런 사소한 일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다니. 가족들은 확실히 너를 너무도 잘 보호했나 보군.” 하연은 그가 비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비웃지 마.” 그녀는 대답하면서 손을 뺐다. “그러니까 왜 날 찾아왔어?”남준은 물었다.“그냥 길 지나가다가 목말라서 물 한 잔 마시러 들렀어.” 하연은 억지로 핑계를 댔지만, 남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웃으며 면봉을 던지고 화장실로 손을 씻으러 갔다.하연의 시선은 남준의 비서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