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므로 호룡각이 망가지면 그 영향은 엄청나게 크게 될 거라는 거야.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나는 우리가 이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유진우가 말했다.“연경에 있으면서 4대 왕족인데 어떻게 제 몸만 사릴 수 있겠어? 이 풍파는 피할 수 없게 됐어.”조무진은 고개를 저었다.호룡각이 그렇게나 큰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데 무너진다면 세상은 큰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강력한 우두머리가 없는 상황에서 각 세력과 군벌들은 서로 우두머리가 되려고 세력다툼을 하게 될 것이다.그때가 되면 왕족인 조씨 가문은 당연히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다.“세상 이치가 그렇잖아요. 분열이 오래되면 반드시 결합이 이뤄질 것이고 통일이 오래되면 반드시 분열이 이뤄지는 거죠. 호룡각이 오랫동안 왕 노릇을 했는데 얼마나 많은 신하의 불만을 샀는지 몰라요. 명령을 듣지 않거나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세력이 생기면 뿌리를 뽑아버렸죠. 오늘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은 다 하늘의 뜻이에요!”조홍연이 쌀쌀하게 말했다.그해 자금성 변고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던가? 그중에는 유진우의 어머니 진소연도 포함되었다.조홍연에게 진소연은 아주 선량하고 부드러운 여인이었다. 평소에도 남을 돕는 것을 즐겨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했는지 모른다. 거지한테도 진소연은 예의를 갖추어 상대했다.그런데 이렇게 좋은 사람이 호룡각의 음모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그녀와 함께 목숨을 잃은 사람 중에는 나라를 위해 온 힘을 다했던 충신들도 있었다.이런 조직은 언제가 됐든 반드시 멸망하게 될 것이다.“호룡각은 무너졌다고 해도 잔여세력이 꼭 있을 거야. 그 사람들은 여전히 무시하면 안 될 세력이지. 나는 계속해서 추적할 거야.”유진우가 엄숙하게 말했다.이원무가 죽었고 호룡각의 절반이나 되는 중요한 인물들이 백준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부자는 망해도 삼 년 먹을 것이 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호룡각의 세력은 뿌리가 깊어 짧은 시간 안에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은 불가
어둠이 내려앉고 유진우는 드디어 연경 남부의 별장으로 돌아왔다.조홍연, 조무진과 황은아 등 사람들도 모두 돌아갔고 앞으로 일어날 혼란에 대비할 준비를 했다. 오늘 진산으로의 여정에서 많은 일이 발생했다.진실을 알게 되고 호룡각도 무너뜨렸지만, 백준의 죽음은 그의 마음을 힘들게 했다.지금의 그는 몸이고 마음이고 깊은 피로감에 휩싸였다.유진우는 잠을 푹 자고 싶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깰 때까지 쭉 숙면하고 싶었다. 어쩌면 내일이면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차는 별장 앞에 멈췄고 유진우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차에서 내렸다.대문을 열자마자 거실에 새하얀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는 얼굴에 흰 망사를 두른 여자가 보였다.여자는 몸매가 아주 아름다웠고 특별한 향을 가졌다.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청성 씨?”유진우는 단번에 소파에 있는 여자를 알아보았다. 이 차림새, 이 분위기, 그리고 독특한 향까지 기억에서 잊히기는 어려웠다.“진우 형님, 돌아오셨어요?”왕현은 차를 내려서 테이블에 놓고 유진우의 앞에 서서 말했다.“이청성 씨가 또 형님을 찾으러 왔어요. 이번에는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요. 근데 매번 신비롭게 하고 오니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먼저 들어가 쉬세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왕현에게 방으로 돌아가라고 한 뒤 곁에 있는 소파에 앉아 담담하게 말했다.“청성 씨, 이렇게 늦은 밤에 무슨 일이십니까?”“오늘 진산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이청성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그래서요?”유진우는 전혀 의외가 아니라는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이청성은 보통 사람이 아닌 게 분명했다. 큰 확률로 황실의 사람일 수 있는데 오늘의 일에 대해서 안다고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그리고 그녀는 친제감의 제자여서 점을 치는 것에 능하니 당연히 황실의 다른 제자들보다 많은 것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백준이 용맥을 끊은 것은 용국의 국운에 큰 영
“대단한 인물이요? 누구요?”유진우가 되물었다.“지금의 천자요!”이청성은 깜짝 놀랄만한 말을 했다.“네?”유진우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의아해했다.‘지금 폐하는 중병에 들어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호룡각의 일 때문인가? 아니면 용맥의 일 때문인가? 이렇게 따라가면 위험하지 않을까? 자금성 안에 매복해있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을까?’“허튼 생각하지 말아요.”뭔가 눈치를 챈 듯 이청성이 담담하게 말했다.“천자가 당신을 해치고 싶다면 저를 보내서 데리고 오라고 할 게 아니라 고수거나 금위군을 보냈겠죠. 지금 당신의 몸 상태로는 반항할 수 있을까요?”이 말을 들은 유진우는 살짝 긴장을 풀었다. 이청성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만약 천자가 정말 자신을 해치려고 한다면 여자 한 명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그리고 지금의 형세로 보면 천자가 멍청하지 않은 이상 불난 집에 부채질은 하지 않을 것이다.아무래도 호룡각이 무너졌으니 지금 황실에 제일 중요한 것은 집권하는 일이다. 만약 그가 연경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모순을 격화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서경의 군대들이 쳐들어올 것이고 황실을 놓고 말할 때 이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물론 이러한 이치가 맞긴 하지만 경계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되니 상황을 잘 물어봐야 했다.“이청성 씨, 폐하께서 무슨 일로 이 밤에 저를 부르는 것입니까?”유진우가 떠보듯이 물었다.“잘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일이 있다고만 하셨습니다.이청성은 아주 모호하게 대답했다.“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다면 저도 가지 않겠습니다.상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하자 유진우는 아예 고집을 부릴 생각이다.“당신...”이청성은 화가 난 듯했지만, 상황을 고려해서 성질을 죽이고 대답했다.“구체적인 상황은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마도 진우 씨랑 나랏일에 관해서 얘기하려는 듯합니다. 황권의 교체라든지, 변방의 안정이라든지 같은 것들 말이에요.”“그렇군요.”유진우는 생각에 잠긴
깊은 밤 자금성의 양심전에서는 몸이 굽은 백발노인이 세심하게 상소문을 읽고 있었다.노인은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앉아 이따금 격렬하게 기침을 하기도 했다.기침하고 나서 하얀 손수건을 떼어내면 거기에는 핏자국이 선명했다.이 노인이 바로 지금의 천자인 이성민이었다.“폐하, 병이 아직 완쾌되지 않으셨습니다. 부디 휴식을 취하시길 바랍니다. 용체 보존이 제일 중요합니다!”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환관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폐하가 병에 든 이유는 과로 때문에 몸에 무리가 가서였다.하지만 며칠 누워있는 것 같더니 조금 회복하자 다시 밤낮없이 상소문을 보고 업무를 처리했다. 여전히 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몸이 견디지 못할 것이다.“괜찮아. 좀 있으면 다 끝나.”이성민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다시 업무에 몰두했다.용맥이 끊어진 후, 조정이 뒤흔들리고 각종 소문이 파다하였다.이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는 어쩔 수 없이 대외적으로 병이 다 나았고 몸이 건강하다고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이렇게 하여야만 야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억제할 수 있었다.그러나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걸 이성민도 잘 알고 있었다. 조정의 상황을 안정시키려면 반드시 빠르게 조치를 대서 일찍 후계자를 정해야 했다.“아이고...”환관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팠다. 폐하는 국가를 사랑하고 백성들을 사랑해서 온 힘을 다해 현명한 정치를 하려고 하지만 과로한 탓에 몸이 점점 못해지고 있다. 몇 명 있는 아들들도 하나같이 속을 썩여서 폐하를 위해 근심을 나눌만한 사람이 없었다.“폐하...”이때, 다른 한 명이 환관이 조용히 들어와서 작은 목소리로 보고했다.“안락공주께서 도착하셨습니다.”“청성이 왔어? 얼른 들어오라고 해.”이성민은 드디어 상소문을 내려놓고 자신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활력 있게 보이게 옷매무새를 다듬었다.환관을 따라 이청성과 유진우 두 사람은 빠르게 양심전으로 들어갔다.사람들의 눈을
눈앞에 있는 이성민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정말 천지 차이였다. 10년 전의 이성민은 풍채가 대단했고 활력이 넘쳤으며 한 나라의 군주로서 위엄이 가득했다.하지만 지금의 이성민은 힘없이 축 처졌고 몸이 허약했다. 그리고 무척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거의 목숨을 다해가는 노인 같았다.그런데 이성민은 이제 쉰이 넘은 나이밖에 되지 않았다.이 나이라면 지금 이 시대에 건장할 나이인데 왜 이렇게 나이가 든 건지 모르겠다.“너 이 자식 언제부터 그렇게 아부를 떠는 법을 배운 거야?”이성민은 허허 웃음을 터뜨렸다.“이러는 것도 좋네. 날이 서 있던 모습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차분해졌어. 더 성숙해진 거야.”유진우는 고개를 살짝 숙였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그해 학살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두 가문은 관계가 좋았다. 자신의 아버지는 이성민과 형, 동생 하는 사이였고 못하는 말이 없었다.그러나 지금에는 모든 게 변했다.학살사건은 호룡각에서 주도한 것이지만 황실에서도 거기에 참여했다는 것은 배제하지 않는다.그래서 지금 유진우가 이성민을 대하는 태도는 모호했다.만약 이성민이 진심으로 대한다면 두 사람은 계속해서 얘기를 나눌 수 있고 만약 상대방이 계속 쓸데없는 얘기만 늘어놓는다면 오늘의 만남은 의미가 없게 된다.“진우야, 오늘 내가 왜 너를 비밀리에 만나려고 하는지 궁금하지?”이성민의 화제가 갑자기 변했다.“폐하께서는 어떤 분부가 있으신지요?”유진우는 물러서지 않고 물었다.“내가 너를 찾은 것은 한편으로는 그해의 원한을 풀려고 하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부탁할 일이 있어서야.”이성민은 숨김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오늘 서하사로 다녀오면서 너도 진실을 알았다고 생각해. 천자로서 나는 당당하게 보이지만 사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일이 있었단다. 그해 너희가 습격을 당했을 때 나는 온 힘을 다해 도움을 주고 네 아버지와 함께 호룡각에 맞서야 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무서웠어. 이 일은 한이 되어 내 마음속에 남아있단다. 10년 동안 밤낮없이
“폐하께서 충고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호룡각이 저를 찾지 않는다고 해도 제가 찾아갈 것입니다. 호룡각이 멸망할 때까지 저도 절대 그만두지 않겠습니다.”“그 각오는 정말 대단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는 너를 무조건 지지하고 네가 필요한 것은 뭐든 제공할 수 있어.”이성민이 진지하게 말했다.“감사합니다, 폐하.”유진우는 거절하지 않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예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든 간에 적어도 지금 양측은 모두 같은 적이 있으므로 잠시 협력할 수 있다.그리고 앞으로는 서로 갈 길을 가게 될 것이다.“진우야, 네 마음속에 아직도 의문이 남아있다는 것을 안다. 네가 묻기만 한다면 다 대답해줄 수 있다고 약속할게.”이성민이 말했다.“폐하께 묻고 싶은 의문이 있기는 합니다.”유진우는 뭔가 생각난 듯 갑자기 말했다.“폐하께서는 송원호의 구체적인 소식을 알고 계십니까?”호룡각이 무너지긴 했지만, 그해의 일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전에 임강왕은 서경왕부에서 배신자가 있다고 말했는데 바로 서경의 장군인 송원호였다.이 사람은 문무를 겸비했고 전쟁에서 세운 공도 많았으며 아버지와 막역한 사이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인재가 왜 서경을 배신하고 호룡각을 위해 일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반드시 이에 대해 제대로 알아봐야 했고 그해의 사건을 위해 피의 복수를 해야 했다.“송원호?”이성민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이 사람은 보통이 아니야. 그해 학살 사건은 모두 이 사람이 책략을 세운 거야. 이후에 죽은 척을 해서 도망가서는 새로운 신분으로 계속 살고 있대. 아주 파악하기 힘든 사람이야.”“그 말은 폐하께서 송원호의 소식을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까?”유진우는 살짝 미간을 치켜들었다.“송원호가 어디 있는지 구체적으로는 아직 잘 몰라. 하지만 그 사람이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신분은 알고 있어.”이성민이 말했다.“그래요? 지금 그 사람은
“잘됐네요. 마침 제가 직접 복수할 수 있겠네요. 송원호와 호룡각의 잔여세력들을 한 방에 없애버릴 겁니다.”유진우는 살기등등하게 말했다.“이 일은 서두르면 안 되고 멀리 봐야 해. 송원호 이 사람은 머리가 좋고 계략이 많아. 만약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쉽게 함정에 빠질 수 있어.”이성민이 근엄하게 말했다.이 말을 들은 유진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음속의 분노를 억눌렀다.그는 분노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송원호 같은 늙은 여우를 잡으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진우야, 송원호와 호룡각의 소식은 내가 항상 주의해서 봐줄게. 무슨 소식이 있기만 하면 빠르게 너한테 얘기할게.”이성민은 약속했다.“감사합니다, 폐하.”유진우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이성민은 10년 동안 와신상담하면서 반드시 거대한 세력을 모았을 것이다. 특히 호룡각이 무너지고 나서 그는 용국의 진정한 왕이 되었다.만약 이성민이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면 송원호를 잡고 호룡각을 말살시키는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진우야, 만약 다른 의문이 없다면 미래에 관해 얘기해볼까?”이성민은 화제를 돌렸다.“폐하께서 무슨 말씀이신지요?”유진우는 정신을 가다듬었다.“진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니까 사실대로 말할게. 사실 나는 중병이 들어 남아있는 날이 많지 않단다.”“아바마마...”이청성은 깜짝 놀라 뭐라고 얘기하려고 했지만, 이성민이 그녀를 제지했다.“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이미 비밀리에 궁 안의 어의한테 보였는데 다들 속수무책이라고 해. 내가 소식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긴 했지만 얼마나 숨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나는 내가 갑자기 죽기라도 한다면 이제 안정되어가고 있는 조정이 또다시 혼란이 일어날까 봐 걱정돼. 그때가 되면 불행한 것은 무고한 백성들이야. 그래서 나를 한번 도와줬으면 해.”“폐하께서는 저한테 병을 보이시려는 겁니까?”유진우가 물었다. 유진우의 실력으로는 이성민이 천인오쇠하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아낼 수
유진우는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대답했다.“폐하, 저는 황자들을 본적이 없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그러니 평가를 할 수 없으니 양해를 구하겠습니다.”“몰라서 괜찮아. 내가 자세하게 얘기해줄게.”이성민은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내 큰아들은 성격이 듬직해. 어렸을 때부터 나를 따라 공부를 했고 영토를 넓히는 일에는 부족할 수 있지만, 영토를 지키는 데는 충분해. 그런데 아쉽게도 몸이 약해서 앓는 일이 많아 군주가 되기는 적합하지 않아.”마지막 말을 하면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자신의 큰아들은 성군이 될 수 있지만 그럴 운명을 타고나지 못했다.예전에 용한 점쟁이한테 본 점괘에서 얘기하길 큰아들은 서른여섯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다. 만약 자리를 큰아들한테 넘겨준다면 힘들게 살다가 얼마를 못가 수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큰 황자 전하께서는 적합하지 않다면 둘째 황자 전하는요?”유진우가 되물었다.“둘째 아들은 건강하고 튼튼하지만, 너무 용맹해. 지나치게 용맹하면 누구도 눈에 들지 않게 되어 성군이라고 할 수 없어.”이성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둘째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무술을 배워 용맹하기는 했지만, 머리가 좋지 않았고 무척 충동적이었다. 장군이 되는 건 문제없지만 제왕이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셋째 황자 전하께서는 문무를 겸비하셨다고 들었는데 적합하지 않겠습니까?”유진우가 또 물었다.“그래. 많은 사람이 다 그렇게 얘기를 하지.”이성민은 한숨을 내쉬었다.“셋째는 머리가 좋고 계략도 많아. 여러모로 봤을 때 제일 적합한 후계자야. 그러나 유일하게 나를 머리 아프게 하는 점은 셋째가 그릇이 작아. 이런 사람은 좋은 군주가 될 수 없어.”셋째 아들은 문무를 겸비했지만, 속이 좁아 질투가 많고 의심이 많았다.이런 사람들은 좋은 소리를 듣기 좋아하고 나쁜 소리는 듣기 싫어한다. 그렇게 되면 아부를 잘하는 사람을 쓰게 되고 진정한 인재는 용납하지 못하게 된다.오래도록 그렇게 나아가다가 용국은 쇠퇴하게 될 것이다.하
한참 동안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비록 유만수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무엇보다 이제 겨우 내우외환을 해결했는데, 유만수가 자리를 넘겨준다고 하니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여보,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요?”옆에 있던 이의진이 권유했다.“그러니까요. 위왕 님, 아직 몸도 정정하시고 지금은 백세시대인데 어찌 이렇게 일찍 자리를 넘겨줄 생각을 하십니까?”장범규는 정직하고 솔직하게 물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묻고 싶었지만, 감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만약 누군가 나서서 유만수를 설득한다면 새로운 위왕 님의 미움을 살 수도 있으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조용하게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여러분, 제 몸은 제가 잘 압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마침 여러분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후사를 미리 안배하는 것도 제 소원을 이루는 셈입니다.”유만수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여보...”이의진이 뭔가를 말하려는데 유만수가 손을 들어 제재하며 말했다.“그만. 난 이미 결정했으니 더 이상 설득할 필요 없어.”유만수는 다시 모든 사람을 향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여러분, 저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선정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 사람의 손에 미래 서경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이 일은 저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에는 누가 미래의 서경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그건...”유만수의 말에 사람들은 더욱 당황했다. 형세를 보아하니 유만수는 내부 투표를 통해 지지자가 많은 사람한테 서경을 맡길 생각인 것 같았다.그러니 문제는 유진우를 선택할 것인가 유천우를 선택한 것인가였다.재능과 능력 면에서 보면 당연히 유진우가 한 수 위이지만 집안 내력과 배후 세력으로 판단하면 유천우가 한 수 위였다.유천우는 최근 몇 년 동안 전쟁에서 매우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미래가 기대된다는
보물 지도를 나눈 뒤 유진우는 사람을 안배해 호룡각의 기지를 다시 한번 정리했다. 이곳은 위치가 은밀하여 수비는 쉬우나 공격하기는 아주 어려웠고 또한 두 나라의 국경 지대에 놓여있었다.그러니 이곳을 군사 요새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만약 앞으로 서방 제국과 충돌이 생긴다면 이곳이 중요 군사 지점이 될 것이고 여기서 출병한다면 반드시 예상치 못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지금 당장은 쓸모가 없겠지만 미리 준비해 둔다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해당 건을 해결한 뒤 유진우는 사람들을 데리고 서경왕부로 돌아갔다.이번에 유진우가 서경의 복병을 해결하고 대승을 거두었기에 유만수는 서경의 왕으로서 특별히 부내에서 연회를 열어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이번 사건에 공로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초청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한동안 왕부 안팎은 매우 시끌벅적했다.유만수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한테 매우 기쁜 소식이었고 호룡각을 멸한 건 더욱 기쁜 일이니 축하할 이유가 충분했다.밤이 되자 왕부 안은 이미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서경에 있는 모든 사람이 거의 다 모인 것 같았다.각 고급 장교, 각 고위 간부, 그리고 각 방면의 거물들이 모두 왕부에 모여 술을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여러분, 후배인 제가 먼저 몇 마디 하겠습니다.”연회에서 유천우는 먼저 일어나 손에 잔을 들고 큰 소리로 말했다.“이번에 왕부가 위기를 맞았었지만, 여러분은 떠나지 않고 앞다투어 왕부의 근심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자, 제가 먼저 여러분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말을 마친 유천우는 고개를 번쩍 들고 잔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도련님이 너무 겸손하네. 우리는 서경의 신하로서 당연히 왕부와 함께해야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별거 아니야.”평양 제후 장범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맞는 말이야. 오랜 시간을 위왕 님과 함께 보냈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늘 같이했으니, 왕부가 곤경에 처했다면 당연히 전폭적으로 도와야지. 나라를 위해서
“맞아요. 길이라는 건 한번 잘못 들어서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죠. 사철수의 모든 행동은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가 없어요. 누구처럼 죄를 공으로 대처할 기회조차 없죠.”유천우는 유태범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유태범이 셋째 삼촌이 아니고 아버지의 인자함이 없었다면, 그뿐만 아니라 형제의 상잔을 원하지 않았고 손실이 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역모는 열 번 죽어도 모자란 죄였다.“흠 흠.”유천우의 눈빛에 유태범은 괜히 마음에 찔려 화제를 돌렸다.“장혁아, 세 개의 보물 창고를 모두 합치면 가치가 엄청날 텐데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당연히 전부 서경으로 가져가야죠. 설마 그 잡놈들한테 남겨두기라도 하겠다는 거예요?”유천우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세 개의 보물 창고를 우리가 전부 독차지할 수는 없어.”유진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우리만의 힘으로 호룡각을 멸망시킨 건 아니잖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야. 그러니 보물 창고도 공평하게 함께 나눠야지.”“공평하게 나눈다고? 장혁아, 장난이지?”유태범은 어리둥절해서 격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방금 사철수의 말을 들었잖아. 호룡각의 보물 창고는 수십 년 동안 축적해 온 것들이고 그 수가 엄청날 텐데, 그걸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나눈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이번에 호룡각을 소탕하는 데 유태범은 뛰어난 공을 세웠으니, 나중에 또 다른 표창을 받을 수도 있었다.다시 말해, 서경왕부가 더 많은 보물을 얻어야만 유태범의 이익도 더 많아지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보물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보물도 좋지만, 도의도 지켜야죠. 사람들이 멀리서 우리를 도와주러 왔는데, 우리가 보물을 독차지한다면 그건 배은망덕한 사람이죠.”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그건 그렇지만 굳이 똑같이 나눌 필요는 없잖아. 적당하게 성의를 보여주면 되는 거지.”유태범이 말했다.“저는 이미 마음먹었어요. 제 결정이 불만스럽다면 유만수에게 일러바쳐서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사철수 씨, 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예요? 사진이라도 찍어줘요? 빨리 보물 지도를 찾아내세요.”불만으로 꼴 독 찼던 유태범은 못마땅한 얼굴로 사철수에게 화풀이했다.“알겠어요. 서두를게요.”유태범의 말에 사철수는 즉시 합금으로 되어 있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 채원진의 부러진 손을 들어 중간 부분에 있는 감응 위치를 살짝 눌렀다.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터운 대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리자, 금속으로 만든 금고가 드러났다.금고는 약 33제곱미터 정도의 크기였고 한가운데에는 골드바가 사람의 키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다.골드바 외에도 그 주변에는 다양하면서도 진기한 보물들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싸고 귀중한 물건들이었다.“이곳은 채원진의 개인 금고예요. 채원진은 마음에 드는 모든 물건을 전부 이곳에 수집했어요.”사철수가 설명했다.“보물들이 어마어마하네요.”유천우는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했다.“이것들을 전부 가지고 나가면 성을 하나 사고도 남겠네요.”“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호룡각의 다른 세 보물 창고에 비하면 눈앞에 있는 것들은 새 발의 피죠.”사철수가 설명했다.“정말이에요?”유천우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당신 말대로라면 호룡각의 보물을 전부 모으면 산더미가 되겠는데요?”“제가 직접 본건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쌓아왔으니, 산더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예요.”사철수는 진지하게 말했다.“좋아요. 아주 좋아요! 빨리 모든 보물을 긁어모으고 싶네요.”유천우는 정신이 번쩍 들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보물 지도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유태범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있어요.”사철수는 맨 안쪽 선반으로 가서 위에 놓여있는 정교한 박달나무 상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유진우에게 건넸다.유진우가 열어보니 안에는 양피지 3장이 들어있었다. 모든 양피지에는 상세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지도 중앙에는 보물 창고의 위치가 금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보물 지도가 진짜라면, 지도에 그려져 있는
“보물 지도는 어디 있나요?”유진우가 추궁했다.“채원진의 지하 밀실에 있어요. 내가 직접 세자 전하를 모시지요.”사철수가 말했다.“지하 밀실?”유천우는 실눈을 뜨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속으로 다른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니죠? 나중에 나를 악랄하다고 탓하기 싫으면 그런 생각은 빨리 접는 게 좋을 거예요.”밀실 같은 건물에는 함정과 암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유천우는 사철수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저는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아닙니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사철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앞서서 안내하세요.”유진우가 두 근위병에게 눈치를 주자 근위병 두 명이 와서 사철수를 일으켜 세웠다.“잠깐만요. 밀실에 있는 보물 상자를 열려면 채원진의 손이 필요해요.”사철수가 갑자기 말했다.“그건 쉽죠.”유천우는 즉시 칼을 빼 들어 채원진의 오른손을 잘라 사철수에게 건네며 말했다.“자. 선물이에요.”사철수는 징그러웠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채원진의 손을 받아 들고 앞장섰다.유진우와 몇몇 사람은 사철수를 따라 기지로 들어갔고 마침내 지휘실 입구까지 도착했다.사철수는 문을 열고 벽 쪽으로 다가간 다음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를 떼어냈다.그림 뒤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알아차리기 어려운 하나의 버튼이 있었다.사철수가 손을 내밀어 버튼을 누르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벽 전체가 갑자기 양쪽으로 열리더니 안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드러났다.사철수가 유진우를 포함한 몇 명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올라탄 뒤 스위치를 누르자 문이 닫히더니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반 시간 남짓 지나자 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유진우와 몇 명 사람들의 눈에는 넓고 호화로운 지하 밀실이 들어왔다.말이 밀실이지 사실 호화 저택에 가까웠다. 안에는 없는 것 없이 다양한 생활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고, 많은 물과 식량도 수집되어 있었는데 수십 년 동안 혼자 생활하기에는 충분한 수량이었다.“핵 방지
“유진우?”무릎을 꿇은 채 냉정한 표정을 한 유진우를 바라보는 사철수의 얼굴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놀라움과 기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더욱 컸다.흑용군이 매복되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철수는 이미 호룡각의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아차렸다.아니나 다를까 호룡각의 기지는 파괴되었고 채원진은 목숨을 잃었으며 사철수는 유진우한테 체포되었다. 하지만 사철수는 어쩌면 이게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비록 사철수가 호룡각의 사람이긴 했지만, 서경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서경은 이미 사철수한테는 고향 같은 곳이었고 주변에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사철수가 저질렀던 많은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했던 거라 마음이 늘 불편했었다.오늘,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도 모두 사철수의 업보였고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였다.“아저씨,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채원진이 패했으니, 당신도 패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제 와서 더 할말이 남았나요?”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도적이 되는 법이지요. 세자 전하께서 죽이시든 벌을 주든 저는 다 괜찮습니다. 다만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사철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했다.“당신이 지금 나한테 그런 조건을 내세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유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세자 전하, 죄인인 저는 죽어도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 아내와 딸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용서해 주십시오.”사철수는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으며 유진우에게 절을 올렸다.“당신 말대로 그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못난 남편과 아비 때문에 그들도 죄인이 된 겁니다. 설마 당신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큰 죄를 지어 놓고 가족은 아무 일 없이 무사할 거로 생각한 겁니까?”유진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세자 전하, 공을 세우는 거로 저의 죄를 보상하면 안 될까요? 세자 전하께서 소가 되라면 소가 될 것이고 말이 되라면 말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때 조무진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무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자 완전 무장을 한 군부가 보였는데 족히 수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검은 갑옷을 입고 긴 칼을 허리에 찬 병사들은 기세가 매우 위풍당당했다.얼핏 보면 마치 강철로 되어 있는 호수 같았는데 멀리서부터 강한 압박감을 주는 이 부대는 바로 서경의 최강 정예 부대 흑용군이었다.“보아하니 사철수는 이미 체포된 것 같네요.”이청성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 흥용군의 리더는 바로 유천우였다.당시 유천우는 명령에 따라 천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호룡각의 정예 부대를 미리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만든 뒤 절대적인 병력 우세로 오천여 명의 적을 죽이고 나머지는 모두 포로로 체포했다.쿵 쿵 쿵!수만 명의 흑용군이 가까워질수록 그 압박감은 점점 더 강해졌다. 성벽 위에 있던 백호군들도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소문에 의하면 흑용군은 용국의 최강 군부로서 창시 이래 백전백승을 이뤘고 여러 차례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 어떠한 군부도 흑용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없다고 했다.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그 소문은 거짓이 아닌듯했다. 흑용군의 강렬함과 살벌함은 충분히 다른 군부를 경시할 만했다.“형! 임무를 완성했어요. 호룡각의 남은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잡아들였어요.”유천우가 먼저 앞으로 다가와 보고했다.“잘했어.”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쪽은 어떻게 됐어요? 채원진은 죽었어요?”유천우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말했다.“머리가 잘렸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조무진은 발로 채원진의 머리를 슬쩍 건드리며 말했다.채원진의 머리는 축구공처럼 땅바닥에서 굴러 유천우의 발밑에 멈추었다.“뭐야! 이렇게 못생겼다고? 어쩐지 맨날 가면을 쓰고 다니더라니.”유천우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하고 서경을 해친 놈을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채원진은 이미 죽었고 밑에 있던 정예들은 모두 체포되었으니, 호룡각은 이제 완전히 멸망한 셈이에요.
채원진은 죽고 호룡각 기지는 함락되었다. 이로써 호룡각은 조직 전체가 완전히 멸망했고 남은 사람이라고는 흩어져 있는 병사들뿐이라 크게 위험이 되지는 않았다.하지만 유진우는 방심하지 않고 호룡각이 관련된 모든 사람은 전부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다. 만약 그들이 자진해서 항복한다면 죽음을 면할 수 있지만 끝까지 저항한다면 남은길은 죽음뿐이었다.“형, 드디어 이 재앙 같았던 놈을 처리했네. 축하해!”조무진은 앞으로 걸어가 채원진의 시신을 발로 차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다 네 덕분이야. 네가 20만 명의 백호군을 데리고 채원진의 퇴로를 끊어놓지 않았다면 채원진은 또 다른 기회를 찾아 연명했을지도 몰라.”유진우가 말했다. 그는 채원진을 죽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다. 결국 채원진은 죽었고 그는 승리했다.“난 별로 한 게 없어. 고마워할 거면 공주마마께 고마워해야지.”조무진은 고개를 돌려 뒤에 서있는 이청성을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공주마마께서 형을 돕는다고 엄청 바쁘셨어.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독촉하느라 발등에 불이 붙을 뻔했다니까.”“조무진 씨!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이청성은 앞으로 걸어 나오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공주마마께서 학식과 도리가 깊고 외모와 지혜가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있었어요.”조무진은 아첨하며 웃음을 지었다.“흥!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네요.”이청성은 조무진을 흘겨보며 말했다.“공주마마, 감사합니다.”유진우는 공수하며 말했다.“뭘 그렇게 예의를 갖춰요?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끝까지 도와줬을 뿐이에요.”이청성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게다가 채원진은 우리 공공의 적이잖아요. 유진우 씨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전체적으로 보면 백성을 위해 나쁜 놈을 제거 한 거죠.”“공주마마의 대의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이 얘기는 그만하죠. 비록 채원진이 죽었다고 하
반면 채원진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십여 미터나 날아가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팔 전체가 파열되었고 용담적염창도 튕겨 나갔으며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바닥에 누워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도련님, 괜찮으십니까?”홍복홍은 재빨리 달려가 떨고 있는 유진우를 부축했다.“괜찮아요.”유진우는 몸에 기혈이 들끓고 팔이 저리고 검도 제대로 잡지 못할 것 같았다.비록 채원진이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방금 전력으로 내뿜은 일격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고 결국 유진우도 피를 토하고 말았다.채원진의 몸에 있는 멸신독이 퍼지지 않았다면 오늘 그를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다.“왜? 이럴 수 없어. 절대 이럴 수는 없어...”땅에 엎드려 맥 빠진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채원진의 두 손은 긴 손가락 자국을 남긴 채 땅바닥에 푹 꺼져 있었다.안 그래도 흉측하던 얼굴이 더욱 흉측해 보였다.“남길 유언이라도 있나?”유진우는 창궁검을 손에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채원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한 세대의 효웅이었던 채원진은 마치 죽음을 앞둔 늙은 개처럼 낭패와 처참함 그리고 빨리 죽기 위해 발악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유진우! 이 비열한 새끼야! 네가 이런 모함을 꾸미지 않았다면 내가 패할 가능성은 절대 없었고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을 거야. 인정 못 해. 죽어도 인정 못 해!”채원진은 미친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그의 상대는 용국의 지존인 서경 왕 유만수처럼 천하를 뒤흔든 거물이었는데, 젖비린내 나는 아이들 몇 명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채원진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비열?”유진우는 콧방귀를 뀌고 말을 이었다.“이런 단어가 네 입에서 나오니까 정말 어이없구나. 사람을 시켜서 내 아버지를 암살하고 이간질로 삼촌을 유혹하여 반역을 도모해 서경을 혼란에 빠뜨리고. 네가 했던 일 중에 어느 하나 비열하지 않은 일이 없어. 죽을 때가 되니 이제 와서 도리를 따지는 거야? 쪽팔리지도 않아? 그리고 네가 인정하든 못하든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