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 검이 갑옷 사천삼백을 부숴버렸다. 천지가 흔들리자 북방 오랑캐 십만 대군이 줄행랑을 쳤다. 그때부터 변방의 작은 성은 한서 성이란 이름을 얻었고 한서는 성주가 됐다. 지금까지도 한서성 백성들은 안락하게 살고 있고 감히 덤비는 자가 없다. 백준은 일찍 유명해졌지만 십 년을 숨어 살아서 예전의 날카로움은 사라졌다. 반면 한서는 딱 반대로 지금이 전성기고 점점 더 강해지는 중이다. 그래서 이번 승부는 누가 이길지 모른다.“강호인은 결국 강호인이라 큰 그림은 모르는군. 그렇게 허세 부리고 싶다면 실력이 어느 정돈지 보여주시지.” 반유림이 눈을 가늘게 뜨며 음침한 표정을 지었다. 한서의 생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백준의 기력을 최대한 소진시킬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물론 둘 다 크게 다치면 그게 최고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불가능에 가까웠다. 백준과 싸워보지 않은 자는 그 절대적인 강함을 절대 알 수 없다.대결 전에는 백준과 백 수는 겨룰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결과는 세 수도 버티지 못했다. 둘 다 경천 랭킹의 고수인데 이 실력 차는 너무 심했다. 한서가 대단하긴 해도 결국 8위에 불과해서 3위인 백준과는 아직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결심했다. 진짜로 구경만 하고 있진 않을 거였다. 백준에게 치명타를 날릴 기회만 오면 주저 없이 움직일 것이다.“백준, 이 검은 천외 한철로 만들었다. 추성이란 이름인데 길이가 4척 3촌 폭이 2촌이며 천하 고수들의 피를 마신 검이다.” 한서가 보검을 꺼내 모두 앞에 보여주었다. 푸른 빛을 내는 검이었고 검신이 길고 예리했으며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훌륭한 검이군.” 백준이 저절로 감탄하고는 한 손을 들어 자신의 검을 가슴 앞에 들며 말했다. “이 검은 용작이라 하지. 나와 20년을 함께했는데 뚫지 못할 것도 깨지 못할 것도 없어.” “천하제일의 명검이 역시 소문대로군.”한서가 천천히 추성검을 들어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쾅!엄청난 소리와 함께 한서의 추성검이 용작검과 격렬하게 맞부딪쳤다. 두 검 끝이 맞닿자 무시무시한 에너지 파장이 일어났고 마치 바다가 뒤집히듯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지나가는 곳마다 바위가 부서지고 큰 나무들이 쓰러졌다. 멀리 서하사의 담장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절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때 산기슭에서는.모두가 머리 위에서 천둥이 치듯 한 소리를 듣고 올려다보니 하늘에서 빛의 파동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하늘을 가득 메워 별들과 구름이 흩어졌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모두가 무서운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산 정상에서 싸운 게 천만다행이었다.이런 일격이 사람들 사이에서 터졌다면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을 것이다. 한 검이 지나가자 한서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즉시 격렬한 공격을 시작했다. 첫 검은 단순한 탐색이었고 이제부터가 진짜 검술 실력을 겨루는 싸움이었다.한서는 한 손으로 검을 쥐고 끊임없이 공격했는데 검을 쓰는 속도가 너무 빨라 잔영만 보일 뿐 움직임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반유림과 고혼도 눈앞이 아찔할 정도였다. 한서의 검법은 너무 빠르고 교묘해서 도저히 방어가 불가능했다. 한 번 찌르는 검에 수백 가지 변화가 있었다. 검법이 완전히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 보통의 대종사였다면 한서의 맹렬한 공격에 벌써 패배했을 것이다.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서의 상대는 명성 높은 검선 백준이었다. 한서가 어떻게 공격해도 백준의 용작검은 손쉽게 막아냈다. 가장 중요한 건 백준이 처음부터 끝까지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검술만으로 용작검을 원격 조종해 한서의 공격을 막아낸다는 점이었다. 누가 강하고 약한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젠장! 백준이 10년이나 묻혀있었는데도 검술이 이렇게 강하다니 한서가 큰일 났군.” 고혼이 음산하게 말했다.“혼자 싸우면 안 된다고 했는데 고집을 부리더니 이제 진퇴양난이군. 어떻게 마무리할지 보자고.” 반유림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백준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니 전혀 진심을 보이지 않고 있
윙!굉음이 울렸다. 육망성진의 정중앙에서 거대한 얼음 검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 얼음 검은 길이가 사장 너비가 오척으로 사람의 심장을 얼어붙게 하는 극한의 한기를 띠고 있어 마치 지옥에서 뽑아낸 듯했다. 한기가 빠르게 퍼져나가 순식간에 수백 미터 밖까지 뻗어갔고 지나가는 곳마다 만물이 얼어붙었다. 반유림과 고혼 같은 강자들도 한기에 침습 당하자 저도 모르게 전율했다. “이게 무슨 검법이지? 이런 건 처음 보는군!” 반유림이 눈을 크게 떴다. 한서의 얼음 검은 강기로 만든 게 아니라 진법으로 불러낸 것이라 위력이 백배는 더 강했다. 그 안에는 천지를 멸할 듯한 힘이 담겨있었다.이 검이 나가면 검선 백준도 막아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 검의 이름은 멸세라고 하지. 내가 극한의 땅에서 꼬박 8년을 보냈는데 바로 언젠가 너를 이기기 위해서였어. 이 검은 단 한 번의 공격만 가능하고 그 후엔 완전히 부서질 것이야.” “백준 내 이 일격을 받아낼 수 있겠나?”한서가 거대한 검 자루를 양손으로 잡자 검 안에 담긴 무시무시한 힘에 그의 두 손이 저도 모르게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일격은 이미 그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 도저히 제어할 수 없었다. 한 번 찌르면 성공하거나 목숨을 걸어야 했다. “받아낼 수 있는지 없는지는 네가 찔러봐야 알 수 있지 않겠나?” 백준이 담담히 말했다. “좋다. 그럼 이 멸세검의 위력을 한번 맛보거라.”한서가 고함을 지르며 온몸의 강기를 남김없이 뿜어내어 멸세검에 불어넣었다. 그러고는 양발로 세게 땅을 박차자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바위 지면에 구덩이가 생겼다. 한서는 거대한 멸세검을 밀며 백준을 향해 세차게 돌진했다.검날이 지나가는 곳마다 만물이 정적에 빠졌다. 화초와 나무는 물론 천지의 영기까지 모조리 얼어붙었다.공격의 표적이 된 백준은 멸세검이 접근하기도 전에 무형의 압박감을 느꼈다. 이런 일은 오래간만이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서의 이 일격은 자신이 진심을 보여야 할
폭발 직후 아수라장이 된 산 아래와는 달리 산 정상은 조용하였다. 폭발의 파장이 그치자 마치 강풍이 휘몰아친 것처럼 황지로 되어버린 진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서하사는 폐허로 되었고 그 많던 초목도 전부 뿌리째로 사라졌다. 관전하던 반유림과 고혼조차 폭발의 여파에 100여 미터나 뒤로 물러났다. 그 시각 산 정상에서 백준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었다. 용작검이 그의 앞에서 이따금 금광을 뿜어냈다. 10여 미터밖에 푸른색의 추성검이 땅바닥에 꽂혀있었고 한서의 안색은 어두웠다. 엄지와 검지 사이가 찢어져 새빨간 피가 바위 우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의 팔은 희미하게 떨고 있었다. “한서, 네가 졌다.” 백준이 입을 열었다. “너의 검술은 대단하나 아쉽게도 조금 부족해.” “누가 졌다고 그래?” 한서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결의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직 시도하지 않은 검법이 하나 남았어. 만약 이것도 막을 수 있다면 난 이후 검에서 손을 뗄게!”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백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넌 아직 젊어. 기회가 넘치는데 왜 굳이 자기 자신한테 못되게 구는 거야?” “만약 천하의 일인자가 될 수 없다면 내 삶은 의미가 없어!” 한서는 더는 말을 하지 않고 땅 위에 꽂혀있는 추성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찔렀다. 그가 공격하는 순간 그의 몸 표면에서 농후한 피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강대한 힘이 들어있는 피안개는 주위의 천지 영기를 끊임없이 빨아들였다. 순간 한서의 분위기가 돌변하였다. 속도와 힘도 눈에 띄게 강해졌고 강기의 두터움도 한층 더 높은 수준을 보였다. 마치 경계를 타파한 듯하였다. “세상에! 한서 이거 목숨을 걸었네!” 이 장면에 고혼의 입이 떡 벌어졌다. “고혼! 준비해, 우리의 기회가 왔어!” 반유림은 놀라워하는 대신 기쁨에 흥분하였다. 백준과 정면승부하여 그를 이기기는 너무나 힘들다. 그러기에 그들은 반드시 기습하는 수단으로 그한테 치명타를 주어야만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
두 검날이 부딪친 순간 한서의 혈색 장검이 터지면서 피안개로 변하여 소실되었다. 인검합일에 이른 한서는 그와 동시에 튕겨 나갔다. 안색은 창백하였고 뜨거운 피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용작검도 10여 미터 바깥으로 튕겨 나가 챙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바위에 꽂혔다. “좋은 기회다! 지금이야!” 용작검이 잠시 공제를 잃은 모습에 반유림의 눈이 번쩍였다. 그는 두말하지 않고 공격에 나섰다. 그는 얼른 활을 겨눈 뒤 온몸의 강기를 이용하여 기운이 일렁이는 검은 화살을 만들어내었다. 검은 화살은 광택이 일렁이었고 차가운 기운이 내뿜어져 나왔다. 그는 재빠르게 활을 겨눠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검은 빛으로 변화하여 순식간에 백준의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이 화살은 빠르고 날쌔서 아무런 징조도 없었거니와 시기도 딱 알맞았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기습이었다. “네가 이러고도 안 죽나 보자!” 반유림의 입가에는 음습한 미소가 어렸다. 백준의 어검술은 대단하나 한 가지 큰 약점이 있다. 바로 근전싸움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방금의 충격에 용작검이 잠깐 공제를 잃었다. 백준의 손에 아무런 무기도 없어 그의 전투력도 따라서 많이 줄어들었다. 반유림은 바로 그걸 노려서 한방에 백준을 무너뜨릴 생각이다! “스스스...”반유림이 기습을 하자 고혼도 손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는 검은 안개로 변하더니 땅 밑으로 스며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는 이미 백준의 뒤에 위치하였다. 검은 안개 속에서 날카로운 강철 발톱이 백준의 등을 할퀴였다. 소리 소문 없으나 살기로 충만하였다. “쉬익!” 검은 화살이 백준의 가슴에 꽂히려는 찰나 백준이 갑자기 두 손가락으로 그 화살을 가볍게 집었다. “윙!” 거대한 힘을 가진 검은 화살은 순식간에 그대로 멈추었다. 화살 뒤의 깃털은 요란하게 요동치었으나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손가락으로 검은 화살을 집은 동시에 백준은 몸을 돌려 고혼이 휘두르는 강철 발톱도 잡았다. 이 둘이 앞뒤로
“이원무?” 하늘에서 내려오는 붉은 창을 바라보고 백준은 곧이어 누구지 알아맞혔다. 창이 내리꽂히는 속도가 너무도 빨랐기에 백준은 용작검을 미처 소환하지 못하였다. 그는 검 대신 손가락으로 그 창을 막아 나섰다. “펑!” 굉음이 울려 퍼졌다. 백준의 손가락과 창이 맞닿으면서 공포의 에너지 파장이 일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곧이어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백준은 팔을 든 자세를 유지하였고 그의 손끝에는 검 모양의 금빛 파문이 생겼다. 그 금빛 파문은 붉은 창과 서로 저항하며 서로 부딪혀 금광과 홍광으로 이루어진 파문이 끊임없이 퍼져 나왔다. 이 시각 창의 끝부분에는 어느 순간 백발홍안의 노인이 나타났다. 차가운 기색의 노인은 창의 끝부분에 선 채 차가운 눈길로 백준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천하를 내려다보는 신 같았다. 그가 바로 호룡각의 각주이자 경천 랭킹 2위의 강자인 이원무이다! “이 각주?” 이원무를 본 반유림의 안색이 환해졌다! 용호산의 그 분이 개입하지 않는 이상 호룡각 각주 이원무는 그야말로 진정한 천하 제일인이다! 비록 같은 경천 랭킹중의 강자지만 이원무와 그들은 하늘과 땅 차이다. 백준조차 상대하지 못하는데 실력이 더 강한 이원무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다행인 것은 그들은 이원무와 같은 편이라는 것이다. 이원무가 이곳에 이르렀으니 형세가 뒤바뀌었다 볼 수 있다. 백준이 아무리 강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한들 살아남기는 힘들 것이다. “얼른 오길 잘했네, 하마터면 골치 아플 뻔했어!” 검은 안개 중에 숨어 있는 고혼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안도감이 느껴졌다. “이 늙은 괴물도 올 줄은 몰랐네.” 한서는 멀리 떨어져 바라보면서 얼굴빛이 약간 굳어졌다. 입가의 붉은 피는 여전히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방금의 싸움을 통해 그는 자신이 백준의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실감하였다. 이젠 이원무와 백준이 서로 우열을 가릴 차례이다. “이원무, 아무리 그래도 이름 있는 명인인데 기습하다니, 다른 사람들한테 웃음거리가 될
그는 발끝으로 창의 손잡이를 차고는 뒤로 빠져 후퇴하였다. 용담적염창도 이 발힘에 의해 가로로 내려앉아 마침 공중의 용작검과 부딪혔다. “펑!” 폭발음과 함께 눈 부신 빛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두 무기는 부딪힌 즉시 이내 각자 제 주인의 손으로 돌아갔다. 그 둘은 실력이 막상막하였다. “이원무, 넌 날 이길 기회를 날려 먹었어.” 용작검을 손에 든 백준의 기세는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만약 네가 계속 공격하였다면 내가 죽진 않더라도 크게 상했을 텐데. 아쉽게도 네가 겁을 먹었어. 혹시나 다칠지 아니면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두려워했지. 그러니 네가 모험하지 못하는 거야, 이게 바로 너의 제일 큰 약점이야.” 늙을수록 죽는 것을 두려워하다니. 폐관 수련한지 수년이 된 이원무는 강자의 마음을 잃은 지 오래라고 백준은 생각하였다. 천지를 뒤흔드는 수행이 있을지언정 그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니 말이다. “흥! 내가 널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인 것을. 내가 왜 굳이 모험해야 하지?” 이원무가 창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그럼 내가 호룡각 각주의 실력을 제대로 시험해 보지!” 백준은 쓸데없는 말을 거두고 용작검을 손에 들고 먼저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필경 그는 고군분투하는 중이니 시간을 끌수록 그한테 불리해진다. 이원무도 모습을 드러냈으니 아마 호룡각의 다른 고수들도 지금 이곳으로 몰려오는 중일 것이다. 아직 포위되기 전에 얼른 싸움을 끝내야 한다. 크게 다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이원무를 물리쳐야 한다! “큰소리치기는!” 검을 빼든 백준의 모습에 이원무도 창을 들고 맞섰다. 두 절세의 강자는 얼마 안 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원무의 창은 그 기세가 드높고 강렬하였다. 공격과 수비가 가능하였고 무찌르고 가르는데도 능하여 그다음 동작이 예측 불가하였다! 공포스러운 실력에 절묘한 창법이 곁들어지니, 마치 신이 강림한 듯 그 기세가 대단하였다. 백준은 매서운 검법에 민첩함과 교묘함이 어우러졌다. 그는 싸울 때 우세와 열세를
“죽으려고!” 부규환의 득의양양한 모습에 유진우는 이를를 빠득빠득 갈며 온 얼굴이 충혈되었다. 이 시각 그는 더 이상 아무런 고려도 없이 온몸의 혈 자리를 열고 술법을 강제적으로 펼쳤다. 펑, 펑, 펑...폭발 소리와 함께 유진우의 몸 곳곳에 갑자기 한 개 한 개의 구멍이 생겨났다. 눈 깜짝할 새에 그는 온몸이 피로 흥건하였다. 유씨 가문 술법은 실력을 증진할 수 있으나 동시에 엄중한 부작용도 있다. 특히 체력 부진일 때 강제적으로 술법을 사용한다면 상처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까딱 잘못하면 몸이 폭발하여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유진우는 이미 죽을 각오를 한 것이다. “미친놈! 설마 죽어도 나랑 같이 죽겠단 거야?” 이 모습에 부규환의 낯빛이 변하고 득의양양하던 표정은 당혹감으로 가득하였다. 유씨 가문 술법은 목숨을 대가로 하는, 적을 죽일 수는 있지만 사용자도 크게 다치는 그런 술법이다. 죽을 각오를 하지 않은 이상 좀처럼 쓰려고 하지 않는 술법이다. 유진우가 이리 독한 줄 알았으면 방금 그한테 깐족대지 않는 것인데. 그저 시간을 끌기만 하여도 저절로 힘에 부쳐 죽었을 거다.“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랑 같이 죽겠다!” 유진우는 소름 끼치게 웃었고 그의 두 눈은 시뻘겋게 빛났다. 공포스러운 힘이 그의 몸 곳곳에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윙!유진우가 들고 있던가 들고있던 창공검이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하였다. 강렬한 검기가 부규환을 보호하고 있는 금종을 끊임없이 공격하였다. 공격하는 힘의 크기는 점점 더 커졌고 공격의 기세도 점점 거세졌다. 쩍, 쩍, 쩍...단단하기 그지없던 금종은 창공검의 공격하에 갈라지면서 하나하나의 금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뭐?” 부규환의 동공이 순식간에 흔들리면서 곧이어 온몸의 강기를 이용하여 금종을 보강하였다. 유진우의 마지막 공격을 막지 못하면 죽지 않아도 크게 다칠 거란 것을 부규환은 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균열은 점점 많아졌고 부규환이 아무리 보강하거나 강기를 주입하여도 금종은 복원되
소창명과 안송진이 침묵했다. 두 사람은 죄책감에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흘렸다.언제부터인가 그들은 권력과 부귀영화에 눈이 멀어있었다. 큰 권력을 쥐고 세상을 좌지우지할 때 그들은 본래의 뜻을 잊고 자신들이 한때 가장 혐오했던 모습으로 타락해버렸다.후회하는가? 물론이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다. 어떤 일은 한번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는 법이니까.“소창명, 안송진, 이런 큰 죄를 지은 자네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유만수가 문득 물었다.“소인은 죄가 깊음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죽음으로 죄를 갚겠습니다. 다만 어르신께서 소씨 가문만은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소창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무고한 이들은 추궁하지 않겠다. 하지만 악행을 저지른 자는 죽어 마땅해.” 유만수가 등을 돌렸다.“어르신의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소창명은 간신히 미소를 지으며 다시 엎드려 공손히 세 번 절을 했다. “어르신을 모시게 된 것은 평생의 영광이었습니다. 다음 생에는 반드시 떳떳하게 살겠습니다!”“어르신께서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소인은 이제 속죄하러 가겠습니다!”말이 끝나자마자 소창명은 친위병의 칼을 빼앗아 자신의 목을 그었다. 순식간에 대청에 피가 튀었고 소창명은 해방된 듯한 표정으로 뒤로 쓰러졌다.“소 대인!”소창명이 이렇게 과감할 줄은 몰랐던 안송진은 깜짝 놀랐다. 자결을 말하자마자 실행에 옮기다니,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무관이 아닌 문관이었고 전장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당연히 죽음을 각오할 수 없었다. 소창명처럼 한마디에 자결하는 건 그로서는 정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한 배짱이 없었으니까.“꽤 체면 있게 갔군.”유만수는 한숨을 쉬며 복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옛 부하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오늘 또 한 명이 가니 슬픔을 금할 수 없었다.“안송진, 이제 자네 차례야.”유만수의 시선이 온몸을 떨고 있는 안송진에게로 향했다.“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안송진은 겁에 질려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소인은
‘참수형에 처하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안송진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이 순간에야 그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달았다. 보통의 죄라면 기껏해야 연봉을 깎거나 꾸지람을 듣는 정도였을 것이고 조금 더 심해봐야 강등이나 권한 축소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도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순무직인 그를 어찌 이리 쉽게 처형한단 말인가?“어르신! 어르신, 억울하옵니다!”잡혀갈 위기에 처하자 안송진은 당황한 나머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했다. “비록 제가 관리를 제대로 못 한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목숨까지 바쳐야 할 만큼 큰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관리를 제대로 못 했다고? 흥! 너무 가볍게 말하는 것 아닌가?” 유만수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어르신! 소인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토록 진노하시는 것입니까?” 안송진이 울상을 지었다.“이 여러 해 동안 자네가 저지른 추잡한 짓들, 설마 잊진 않았겠지?”유만수가 따져 물었다.“소인은 정말 모르겠습니다. 어르신께서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안송진은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좋다! 그럼 알려주지!”유만수는 책상 위에서 편지 뭉치를 집어 들어 다시 안송진의 발치에 던지며 차갑게 말했다. “이것들은 모두 내가 밀사들을 통해 수집한 증거야. 자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 자네 가문이 도대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안송진이 편지들을 주워 읽어보더니 순식간에 안색이 창백해졌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그는 죄목이 하나뿐일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유만수가 이렇게나 많은 증거를 모아놓았던 것이다.이 확실한 증거들을 보며 안송진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어르신! 소인이 어리석었습니다! 소인이 죽어 마땅합니다! 하오나 소인이 수년간 어르신을 충심으로 모셨던 정을 보아 목숨만은 살려주시옵소서!” 안송진은 이제 더 이상의 고집 없이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은덕을 베풀어 주소서!”소창명 역시 지지 않고 머
중앙 대청에 들어서자마자 안송진은 눈앞의 광경에 얼어붙었다. 서경왕 유만수는 두 손을 등 뒤로 모은 채 서 있었고 그의 표정은 매우 불쾌해 보였다. 왕비는 한쪽에 서서 엄중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인도살자 홍복홍은 비록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친위대장 석태혁은 더욱 심각했는데 허리에 찬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린 채 언제든 검을 뽑을 태세였다.물론 가장 놀라운 것은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소창명이었다. 그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계속해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는데 큰 재앙이 닥친 듯한 모습이었다.“왕께 인사를 올립니다!”잠시 멈칫한 후, 안송진은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즉시 무릎을 꿇고 공손히 절을 올렸다. 보통 때라면 유만수가 일어나라고 했겠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안 가주, 내가 왜 한밤중에 자네를 불렀는지 아는가?”유만수는 똑같은 말로 운을 뗐다.“모르옵니다. 어르신께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안송진은 침을 꿀꺽 삼키며 왠지 모를 긴장감을 느꼈다.“모른다면 직접 보게!” 유만수는 더 말하지 않고 책상 위에서 편지 한 통을 골라 안송진의 발치에 던졌다.안송진이 자세히 보더니 순간 안색이 변했다.“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안송진은 편지를 들고 바로 억울함을 호소했는데 마치 큰 억울함을 당한 듯한 모습이었다. “어르신, 이 고발장은 절대 위조된 것입니다! 분명 누군가가 고의로 저를 모함한 것입니다! 부디 자세히 살피시옵소서!”이 말을 들은 옆에서 무릎 꿇고 있던 소창명의 눈가가 씰룩거렸다.‘이봐, 그 수법은 내가 이미 써봤는데 전혀 통하지 않아. 차라리 다른 말을 해보지 그래.’“위조라고? 모함이라고?”유만수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보아하니 자네도 소창명과 마찬가지로 관 뚜껑이 닫혀야 정신을 차리겠군.”“어르신! 제 자식이 비록 쓸모없긴 하지만 절대로 이런 죄를 짓지는 않았을 것이며 더군다나 무슨 영웅회 같은 패거리를 만들 리도 없습니다. 분명 무슨 오해가 있을 것입니다.” 안송진
갑자기 격노한 유만수를 보며 소창명은 거의 실금을 쌀 뻔했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기억 속에서 유만수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오늘처럼 크게 진노하는 모습은 전례가 없었다. 자신의 아들이 그저 평범한 여자 하나를 욕보였을 뿐인데 이 정도까지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어르신, 아들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만약 그 녀석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면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소창명은 땅에 엎드려 정의로운 듯한 모습을 보였다.“책임을 진다고? 자네가 질 수 있을 것 같나?” 유만수가 갑자기 책상 위의 편지들을 한 움큼 집어 소창명의 얼굴에 내리쳤다. 엄청난 힘에 소창명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고 얼굴이 화끈거렸다.“이건 무엇입니까?” 소창명은 약간 멍한 채로 바닥에 떨어진 편지들을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볼수록 소창명의 안색은 더욱 당황스러워졌고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으며 공포 때문에 그의 몸이 멈추지 않고 떨렸다.“어떻게 이럴 수가... 아니... 불가능합니다!” 소창명은 계속해서 고개를 저으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편지들에는 소씨 가문의 모든 죄상이 열거되어 있었다. 아들 소현무뿐만 아니라 소씨 집안의 많은 핵심 인물들, 심지어 자신의 죄상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작게는 횡령과 뇌물수수부터 크게는 살인과 방화까지 모든 죄상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자신도 잊어버린 많은 일들이 이제 유만수의 책상 위에 놓여 있다니.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유만수가 왜 갑자기 밀사를 동원해 소씨 가문을 조사한 것일까? 최근에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던가?“소창명! 이제 똑똑히 보았나? 아직도 할 말이 있나?” 유만수가 호통을 쳤다.“어르신,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소창명은 꿈에서 깨어난 듯 당황하며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을 구걸했다. 머리가 바닥에 부딪혀 ‘쿵쿵’ 소리가 나고 피가 흘러도 멈추지 않았다. 이제야 그는 왜 유만수가 진노
“네가 안송진과 친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오늘 이 일은 절대 순순히 넘어갈 수 없을 거야.”유만수가 차갑게 경고했다.“천자라도 법을 어기면 서민과 같은 죄를 받아야 하듯 소씨와 안씨 두 가문이 저지른 많은 악행은 마땅히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이의진이 정의롭게 말했다. 그녀는 유만수가 진심으로 분노했다는 것을 간파했다. 이런 때 사정하는 것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화를 자초할 수 있었다. 그녀는 영리한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네가 그걸 안다니 다행이구나.”유만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고, 이때 한 친위가 갑자기 들어와 허리를 굽혀 보고했다.“소창명 대인이 도착했습니다.”“흥! 들여보내라!”유만수가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네.”친위는 대답하고 곧바로 물러났다.얼마 지나지 않아 소창명이 벌벌 떨며 친위의 안내를 받아 들어왔다. 이의진과 홍복홍 두 사람을 보자 그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고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의진은 왕비로서 평소에는 서경의 군무에 관여하지 않았고 인도살자 홍복홍은 왕부의 형벌을 담당하는 자로 모든 이가 만나기를 꺼리는 흉신이었다.“왕께 절을 올립니다.” 소창명은 마음속 불안을 누르며 즉시 땅에 무릎을 꿇고 공손히 절을 올렸다.“내가 왜 이 늦은 밤에 자네를 부른 줄 아는가?”유만수가 차갑게 입을 열었는데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모르옵니다. 왕께서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소창명은 고개를 깊이 숙인 채 마음속 불안감이 더욱 커져갔다.“직접 보게!”유만수는 더 말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편지 한 통을 소창명의 발치에 던졌다.소창명이 편지를 집어 들어 자세히 보더니 순간 안색이 변했다.“억울하옵니다!”소창명은 즉시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 이, 이것은... 분명 누군가의 모함일 것입니다. 제 아들은 성품이 선량한 아이입니다. 어찌 이런 강간과 납치 같은 일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새벽 다섯 시, 서경왕부의 중앙 대청에서 유만수는 용포를 걸치고 중앙에 앉아 있었다.왼편에는 친위대장 석태혁이, 오른편에는 ‘인간 도살자’라는 흉명으로 널리 알려진 홍복홍이 서 있었다.밝은 등불 아래에서 유만수는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편지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이 편지들은 모두 왕부의 밀사들이 조사해서 얻어낸 결과물이었다.각각의 편지는 하나의 살인 사건을 의미했고, 책상 위에 쌓인 편지는 수백 통에 달했는데 그중 절반은 소씨 집안의 죄상이고 나머지 절반은 안씨 가문의 죄상이었다.두 대가문은 범죄 면에서 거의 막상막하였다.유만수는 편지를 읽으면서 눈살을 찌푸렸다.조사하기 전에는 몰랐지만 조사해보니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관할 구역에 이토록 사람 목숨을 경시하는 탐관오리들이 있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이 누적된 죄상들은 분명 하루 이틀에 저질러진 것이 아니었다.“어르신, 잠시 쉬시는 게 어떨까요? 건강이 우선이십니다.”이때 고개를 숙이고 있던 홍복홍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이런 일이 있는데 어떻게 쉴 수가 있나?”유만수는 분노로 책상을 내리치며 음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소창명과 안송진 놈들, 정말 간덩이가 부었어! 자기들한테 권세가 있다고 온갖 횡포를 부리고 심지어 내 눈앞에서 이런 짓을 하다니, 나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던 거야!”“어르신, 무슨 일로 그리 크게 화를 내시나요?”이때 화려한 옷차림의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 우아하게 걸어 들어왔다.바로 서경왕비 이의진이었다.“직접 보게!”유만수는 손에 든 편지를 옆으로 던졌다.이의진은 편지를 집어 들고 보더니 동공이 미세하게 수축되며 놀란 기색을 보였다.“이게 소 대인의 죄상인가요?” 이의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소창명뿐만이 아니야, 안송진도 마찬가지지!”유만수는 산더미처럼 쌓인 편지들을 모두 이의진 앞으로 밀어놓으며 차갑게 말했다. “이 두 놈은 탐관오리에 사람 목숨을 경시하고 자식들의 범행을 비호했으니 악행이 가득 차 있어! 네가 보는 이것들은 그저
“주인님, 셋째 도련님이십니다!” 집사가 문 밖에서 대답했다.“준석이라고?” 안송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녀석이 또 무슨 사고를 친 거냐?” 세 아들 중에서 안준석이 가장 다루기 힘들었다.“사고가 아니라 셋째 도련님이 폭행을 당하셨습니다!”집사가 급히 설명했다.“뭐라고? 맞았다고?”이 말을 듣자마자 안송진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다그쳤다. “어떻게 된 거야? 누가 감히 내 아들을 때렸어?!”아들이 사고를 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맞았다는 건 참을 수 없었다.“누군지는 아직 모릅니다. 방금 차 한 대가 셋째 도련님을 대문 앞에 버리고 갔는데, 저희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도련님이 중상을 입으신 상태였고 범인은 도망간 뒤였습니다.”집사가 답했다.“가자! 준석이를 봐야겠어!”안송진은 아들이 걱정되어 겉옷도 걸치지 않은 채 급하게 방을 뛰쳐나갔다.집사를 따라 저택 내 의료실에 도착했을 때 그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병상에 누워있는 안준석은 거의 죽어가는 상태였다. 얼굴은 창백하고 온몸이 피투성이였으며 전신의 뼈가 반 이상 부서졌고 사지는 모두 꼬여 있어 처참한 모습이었다.“준석아! 준석아!”이 광경을 본 안송진의 눈에서 순간 눈물이 흘러내렸다. 처음에는 단순한 싸움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심하게 다쳐있을 줄은 몰랐다.“주인님, 방금 의사가 진찰해 보니 도련님이 중상을 입으셨지만 당장 생명의 위험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도련님을 때린 사람이 어느 정도 치료도 해준 것 같습니다.” 집사가 말했다.“어떻게 이럴 수가... 준석이가 어떻게 이렇게 됐지? 도대체 누가 이런 건가?”안송진은 붉어진 눈으로 분노에 차 외쳤다.“이미 사람들을 보내서 조사하고 있습니다.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집사가 말했다.“감히 내 아들을 다치게 해? 그 누구라도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당장 인원을 소집해. 언제든 체포할 수 있게 준비하라고!” 안송진이 엄한 목소리로 명령했다.“네!”집사는 즉시 대답하고 서둘러 준비를 시작했다.
“모르겠어요. 그 남자는 본 적이 없어요.” 소현무는 창백한 얼굴로 힘겹게 대답했다. “근데 분명히 유씨 가문과 관련이 있어요. 이번에 나를 이렇게 만든 이유가 유희주라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서였어요.” “유씨 가문? 유희주?” 소창명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뒤를 돌아 명령을 내렸다. “한 시간 내로 유희주와 그 가족을 전부 잡아 오도록 해라. 반드시 그놈의 정체를 밝혀내야 한다!” “예!” 소씨 가문의 부하들이 힘차게 대답하며 사방으로 흩어져갔다. 소씨 가문은 왕성 서경에서 세력이 막강했다. 가문이 번창했을 뿐만 아니라 소창명은 만 명 이상의 병력을 지휘하는 서경의 총병으로서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셈이었다. 이번에 소현무가 이렇게 심각한 피해를 보았으니 소창명이 쉽게 넘어갈 리 없었다. 범인은 물론이고 이 사건과 연관된 사람들은 모두 죽음의 운명이었다. “현무야! 걱정하지 말아라.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든 난 그들에게 반드시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소창명은 단호하게 약속했다. 바로 그때 전화가 울렸다. 전화 화면을 확인한 소창명은 표정이 순간 심각해졌다. 그는 의료진에게 손짓으로 소현무를 병실로 옮기라고 지시한 후 급히 구석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 가주님, 도련님께서 저택으로 오라 하십니다.” “도련님께서요?” 소창명은 눈가가 미세하게 떨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석 장군님, 이 늦은 밤중에 도련님께서 저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도련님의 뜻을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서둘러 주십시오. 도련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십시오.”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는 바로 끊어졌다. 질문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소창명은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이마를 찌푸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최근 도련님은 외출도 극도로 드물게 하며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는데 왜 갑자기 나를 부르셨을까?’‘혹시 내가 실수라도
...깊은 밤 소씨 가문 저택 앞. 검은색 비즈니스 차 한 대가 갑자기 멈춰 섰다. 이어 차 문이 열리더니 커다란 마포 자루 하나가 길바닥에 던져졌다. 마포 자루는 피가 가득 묻어 있었고 안에는 분명 사람이 들어 있는 듯했다. “이봐! 너희들 뭐 하는 짓이야!” 문을 지키고 있던 소씨 가문의 경비원 몇 명이 이상함을 감지하고 소리쳐 제지했다. 그러나 검은색 차량은 엔진을 거칠게 울리며 그대로 사라졌다. 경비원들은 조심스레 자루에 다가가 발끝으로 살짝 다쳐봤다. 자루가 움직이더니 안에서 피투성이 얼굴 하나가 삐져나왔다. 다름 아닌 급소를 절단당하고 이미 반쯤 죽어 있는 소현무였다. “살... 살려줘... 제발.” 소현무는 미약한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경비원들은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경악했다. “도련님이다! 빨리! 도련님을 병원으로 모셔야 해!”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중상을 입은 소현무를 급히 병원으로 데려갔다. 곧이어 소씨 가문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새벽 왕성 지역 병원. 몇 시간의 수술 끝에 소현무는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수술실에서 밖으로 실려 나왔다. 이때 수술실 밖에는 이미 사람들이 빼곡히 서 있었다. 소씨 가문의 족장 소창명은 집안의 고위 인사들을 이끌고 수술실 밖에서 서성이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됐어요? 내 아들은 괜찮은 겁니까?” 소현무가 수술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소창명이 달려와 물었다. “소 가주님, 저희가 최선을 다해 응급조치를 한 결과 다행히 아드님의 생명은 건졌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뭐요?” 간신히 안도했던 소창명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아드님의 생식 기관이 심각하게 손상되었습니다. 앞으로 정상적인 부부 생활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고요? 그럼 고자란 말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