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규환이 안에 금오란갑을 입음을 인제야 모든 이들이 발견하였다. 비록 그 금오란갑이 이미 망가졌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유진우의 치명적인 한방을 막아내 부규환의 목숨을 구했다. “콜록...”부규환은 피를 토하며 부들부들 일어섰다. 대라금강공을 수련하고 일반인을 초과하는 신체 능력에 금오란갑의 보호, 이중 어느 것 하나 부족하였다면 그 누구든 방금 유진우의 공격에서 살아남지 못할 거다. 지금 비록 목숨만은 건졌으나 크게 다친 건 변하지 않은 사실이다. 계속 싸워나가면 승산이 없다. “죽어라!” 유진우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재차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움직이자마자 그는 다리가 후들거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였다. 칼로 땅을 지탱하여서야 겨우 온몸의 평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방금 그 한 방이 온몸의 힘을 다 소진해 버렸다. 유씨 가문 밀법의 후유증이 지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지금의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도 없으니 추격할 힘은 더욱 말할 필요도 없다. 이 모습에 부규환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크게 웃었다. “유진우야, 유진우. 난 또 네가 얼마나 대단한 줄 알았더니 겨우 이 정도야? 어때? 지금 일어서기도 힘들지?” 유진우는 이를 악물고 몸을 부들부들 떨며 조금씩 일어섰다. “하하...유씨 가문 밀법이 강하긴 하지만 그 후유증 또한 어마어마하지. 내 예상이 맞다면 넌 지금 한계에 도달했어. 내가 손 쓰지 않아도 얼마 가지 않아 너 스스로 못 버티고 죽어버릴 거야.” 부규환이 음흉하게 웃었다. 비록 그도 큰 상처를 입었지만 유진우에 비하면 나은 축이었다. 중요한 건 상대방이 이미 발톱 빠진 호랑이 신세로 도망칠 능력조차 없다는 거다. 산 정상의 싸움이 끝나면 그들이 나설 차례이다. “흥! 기뻐하긴 아직 일러! 나도 여기 있거든!” 황은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꼬마야, 센 척 그만해. 넌 상처도 입었고 독약도 다 써버렸잖아. 우린 여기에 몇만 개의 병마가 있는데 네가 강하다 한들 이들 중 몇을 죽일 수
쉬익검날이 아무런 징조도 없이 부규환의 목을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모든 사람이 미처 반응하지 못하였다. “억...”부규환의 몸은 잠시 떨리더니 마치 돌이라도 된 듯 제자리에 굳었다. 홍군림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에는 의아함과 두려움으로 가득하였다. 그는 홍군림이 삽시에 자신을 공격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목이 베인 현재도 그는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우린 한편인데 왜지? 서로 원한도 없거니와 서로 동맹을 맺은 사이인데 왜 홍군림이 나를 죽이는 거지? 혹시 몇 마디 재촉하였다고? 성깔이 이리도 더럽다고?’ 부규환이 생각했다. 퉁!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부규환의 머리가 그의 목에서부터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그의 눈에는 믿기 힘든 기색이 역력하였다. 이런 결말을 맞이할 줄은 그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유진우의 손에서 겨우 살아남아 승리를 거머쥐어졌다고 여겼을 때 홍군림에 의해 목이 댕강 잘리다니.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말이 맞는 듯싶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부 대인님께서... 죽으셨어?” 단칼에 목이 잘린 부규환의 모습에 모두가 넋을 잃고 입을 떡 벌린 채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홍군림의 등장이 그들에게 희망인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절망으로 변하였다. 경천 랭킹 제10위가 이렇게 단칼에 목숨을 잃다니 모두가 꿈을 꾸는듯한 허망함을 느꼈다. “어떻게 ... 어떻게 이런 일이?” 문관옥은 소름이 돋았고 두려움에 말조차 더듬었다. 부규환은 대내의 일인자이자 호룡각의 성원이다. 능력과 배경을 겸비한 인물이란 말이다. 그런데 홍군림이 두말없이 그의 머리를 베어버리다니 제 정신인 건가? “아저씨... 제가 제대로 본 거 맞겠죠? 저 사람이 부규환을 죽였어요?” 황은아는 너무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손안의 독약을 땅에 떨굴 뻔하였다. 그녀는 방금 일어난 일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 둘은 같은 편이지 않나? 왜 갑자기 팀킬 하는 거지? 혹시나 둘 사이에 원한이 있는 건가?’
단 한방 만에 하마터면 문관옥의 명줄을 끊어놓을 뻔하였다. “뭐?” 이 장면에 모든 사람이 다시 패닉에 빠졌다. 홍군림이 부규환을 죽인 것이 상대방이 반응하기 전에 공격해서 죽이는 데 성공한 것이라 하면 방금은 진정한 압도적인 실력 차이다. 연경 4대 도련님 중 한 명이자 최강 군신으로 불리는 문관옥이 홍군림의 한 검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다니. 둘의 실력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사람들은 그제야 평소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검종의 제자 홍군림이야 말로 연경 4대 도련님 중 제일 센 인물임을 알아차렸다. “이젠 그만 다 꺼져라.” 홍군림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곳곳에 울려 퍼졌다. 몇몇 통령들은 서로 쳐다보며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졌다. 하나의 요녀도 상대하기에 벅찬데 홍군림까지 합세하니 그들의 승산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군령이 떨어진 이상 이대로 물러선다면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안 꺼져? 그럼 죽어.” 더 크고 길고 날카로운 검빛이 순식간에 튕겨 나와 살기를 담고 그들을 향해 날아갔다. 삽시간에 붉은 피가 튕기며 비명이 울려 퍼졌다. 원래 사람들로 빼곡하던 곳은 반경 수백 미터의 무인지대로 되었다. 그곳에는 몸이 반으로 잘린 시체들이 가득하였고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간단해 보이는 검빛 하나만으로 천여 명의 사람을 죽이다니. 그 공포스러운 실력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간담이 서늘해지게 하였다. “꺼져!” 홍군림이 소리쳤다. 공포스러운 기세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왔다. 삽시간에 광풍이 일고 모래가 날려 모든 이가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후퇴! 얼른 후퇴해!” 여덟 명의 통령들이 겁에 질려 각자의 병마를 지휘하며 허둥지둥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홍군림의 검빛의 기운이 너무도 공포스러워 만약 여기에 남아있다간 전부 다 죽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돌아가서 벌을 받으니 여기서 목숨을 잃는 것보단 낫다고 여겼다. 부규환이 죽은 뒤 나머지 몇만의 병사는 홍군림의 협박하에 급급히 도망쳤다. “고... 고마워
마치 유진우의 의문을 보아내기라도 한 듯 홍군림이 설명하였다. “이모는 당시 집안과 모순이 생긴 뒤 가출하여 집안과 인연을 끊었어요. 이모께서 돌아가신 뒤 저와 저의 엄마는 서경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이모부한테 신분을 밝혔어요.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이모부께서 이 사실을 형한테 알리지 않은 듯하네요.” “내가 집으로 안 돌아간 지도 어언 10년이 되어가.” 유진우의 안색이 복잡해 보였다. 엄마가 왜서 이제껏 친정으로 안 돌아가나 했더니 이런 일이 있었구나. 그는 이번 일이 끝나고 아직 살아있으면 돌아가서 엄마한테 제대로 제사를 지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검이 좋아 보이는데 저한테 줄 수 있어요?” 홍군림이 갑자기 물었다. “어?” 유진우는 당혹함을 숨기지 못했다. “안되나 보네요.” 홍군림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럼 이후에 좋은 기회를 찾아서 제대로 겨뤄봐요. 형이 지면 저한테 검을 주고 이기면 제 검을 형한테 줄게요.”“...”유진우는 어이가 없었다. 이 자식의 생각을 알아차릴 수 없다. 분명 조금 전까지 가족 상봉을 하더니 갑자기 대결을 하자니! “걱정하지 마세요. 전 비열하게 다친 사람과 대결하지 않아요. 언제 상처가 나으면 그때 같이 대결해요.” 홍군림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가 말할 때 창공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그가 검을 향한 사랑은 모든 것을 능가할 정도로 그는 검에 미쳤다. 그한테 최상품 보검은 절세미인이나 다름없었고 게다가 그가 검을 많이 소유할수록 그의 실력도 강해진다. 그래서 매번 그가 보검을 볼 때면 보검을 향한 열정을 감추지 못하였다. 전에 백준의 길을 막아섰던 것도 그의 용작검에 눈독을 들여서였다. 아쉽게도 이기지 못했지만 말이다. 펑!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진산의 산꼭대기에서 커다란 소리가 전해졌다. 굉음 이후 대량의 돌덩어리들이 산 정상에서 굴러떨어졌다. 군사들이 이미 후퇴하여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또 커다란 인명피해가 발생할 뻔하였다. “응?” 소리를 듣고 세 사람은 이내 고개를 들어 올려
“백준 아저씨가 이겼으면 좋겠어요.” 황은아가 묵묵히 기도하였다. 이 시각 산꼭대기에서 용담적염창을 손에 든 이원무는 머릿결이 뻗기고 동공에는 붉은빛이 이글거렸다. 공포스러운 강기가 체내에서 뿜어져 나오면서 창마저 조금씩 휘어들고 끝부분이 미친 듯이 진동하였다. 한 손에 검을 들고 있는 백준도 온몸에 금빛이 진동하며 용작검과 혼연일체를 이뤘다. 그들 모두 전신의 힘을 짜내며 결투에 임했다. 이번 대결에서 실수하는 자가 바로 패자일 것을 이 둘 다 알고 있었다. 윙!창과 검이 끊임없이 맞부딪혀 강렬한 파장이 계속 일어났다. 현란한 광파에는 무도 마스터를 손쉽게 죽일 수 있는 강렬한 힘이 들어있다! 3분 정도의 힘겨루기 이후 이원무가 용담적염창으로 슬슬 밀어붙이기 시작하였다. 수행을 비교했을 때 이원무가 확실히 더 강하다. “백준! 넌 내 예상보다 강하지만 그렇다 한들 넌 여전히 내 상대가 안 돼!” 이원무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너의 강기가 소진되면서 넌 허약해질 거지만 너와 달리 난 대기운을 지니고 있어 용맥이 날 지켜주고 있지. 연경성 내에서 난 지하 용맥의 영기로 강기를 보충할 수 있어.” “난 강기가 소진될가 봐 두려워할 필요 없이 싸울수록 기운이 날 거야. 이게 바로 너와 나의 차이다! 설사 용호산의 장선기가 나와 싸운다 해도 날 이길 수 없을 거야!” 그는 호룡각 각주로 있으면서 수년간 폐관 수련하여 그의 몸과 용맥은 이미 공명을 이루었다. 설사 백 리 바깥에 있더라도 그는 용맥의 영기를 흡수할 수 있게 되었다. 연경 내에서 그가 천하무적의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행만 비긴다면 확실히 난 너보다 못해. 하지만 네가 나보다 부족한 한 가지가 있어.” 백준이 차갑게 말했다.“뭔데?” 이원무가 물었다. “난 죽을 각오를 하고 싸우지만 넌 죽기를 두려워하지.” 말함과 동시에 백준이 두 눈을 감고 몸을 떨자 곧이어 기괴한 한 장면이 발생했다. 반투명한 허영이 그의 몸에서 서서히 벗겨져 나왔다. 백준과 닮은 그 허영
지금 이 순간 이원무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놀라웠고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때 그의 머릿속을 꽉 채운 생각은 두려움이었다.그는 백준이 어떻게 원신을 몸 밖으로 내보냈는지는 몰랐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술법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그것은 일종 실체와 강기 그리고 모든 방어를 무효화시켜 영혼에 직접 작용하는 기이한 술법이었다.막으려야 막을 수 없는 아주 무서운 술법이다.지금 천하에 이 술법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장선기뿐이었다.백준이 원신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동시에 그의 몸에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그의 눈코 입과 귀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피부는 여러 갈래로 찢어지기 시작했다.이 변화는 원신을 몸 밖으로 내보낸 후유증이었다.신선의 경지에 발을 내딛지 못하고 이런 공격수단을 쓴다면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된다.운이 좋으면 원기가 크게 다치는 것으로 끝나고 손상이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이것이 바로 백준이 왜 마지막에서야 이 술법을 사용한 원인이었다.이 술법은 백준이 목숨을 걸고 시도해보는 필살기였다.“이원무, 너의 독단적인 행동이 백성에게 화를 입혔어! 오늘이 바로 너의 제삿날이 될 것이야.”백준이 몸 밖으로 내보낸 원신은 이원무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원신이 지나가는 곳마다 폭주하던 에너지파들이 금세 잠잠해졌다. 용작검과 용담적염창도 움직임을 멈추고 공중에 조용히 떠 있었다.주위에 있는 먼지 낙엽 그리고 바람까지 모두 멈춰버린 이 순간 시간마저 멎어버린 듯 했다.‘안돼! 하지 마! 하지 마!’이원무는 마음속에서 외치며 발버둥을 쳤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손과 발 그리고 몸뿐만 아니라 오관마저 제멋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그는 백준의 원신이 서서히 다가와 그를 심연으로 끌어내려 가는 것을 눈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두려움이 신속하게 온몸에 퍼졌다.그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속박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난생 느껴본 적이 없
운 좋게 목숨은 부지했지만 영혼이 크게 상한 뒤에 남은 고통이 이원무를 괴롭혔다.특히 죽음 앞에서 느낀 절망과 공포감이 영혼에 새겨진 것처럼 쉬이 가시지 않았다.“이 각주님, 괜찮으세요?”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반유림이 이원무 곁으로 쏜살같이 다가가서는 그의 안전을 지켜주었다.“나 아직 살아있는 거야?”이원무는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진 채 뭐라 중얼거렸다.그는 백준이 원신을 몸에서 내보낼 때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줄 알았는데 목숨을 건질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내가 바로 선택받은 사람이야!’“이 각주님, 아까 제가 백준 그놈에게 화살을 쏘아서 각주님을 저승에서 구해왔습니다.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반유림이 이원무에게 공로를 알리기 시작했다.그 말을 들은 이원무는 백준을 바라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백준은 기력이 쇠약해져 이리저리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런 백준을 발견한 이원무는 기분이 좋아 큰소리로 웃었다.“하하하. 좋아 좋아. 아주 잘했어. 오늘부터 너를 호용각의 장로로 임명하겠어.”“감사합니다. 각주님.”반유림은 그 말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추며 감사 인사를 했다.“백준, 이렇게 될 줄 생각하지 못했지?”이원무는 백준을 아래 우로 훑어보며 기쁨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인정해줄게. 너는 확실히 강해. 아까 그 술법은 나도 막을 방법이 없었어. 하지만 내가 살아있다니 참 안타깝게 됐네.”백준은 입을 굳게 다물고 기침을 심하게 하며 휘청거렸다.“비겁한 놈들!”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한양은 굳어진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반유림의 기습공격만 아니었으면 이 결투의 승자는 백준이였다.이런 절세 강자들의 목숨을 건 싸움은 반드시 자신의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가려야 마땅했다.역사에 남을 수도 있었던 싸움이었는데 반유림의 기습공격이 모든 것을 망쳐버렸으니 마지막에 호용각이 이겼다고 해도 그들은 머리를 쳐들 수 없었다.“백준, 더는 반항하지마. 어서
“어서 도망쳐!”온몸이 전기로 휩싸인 채 기운이 점점 강해지는 백준을 바라보며 이원무는 간이 콩알만 해져서 맞서 싸울 용기를 잃고 줄행랑을 놓았다.원신을 내보낸 것은 백준이 목숨을 걸고 비법으로 사용한 필살기였다.하지만 지금 백준은 진정한 강자가 되고 있다. 그는 지금 대 마스터로부터 신선의 경지에 발을 들이밀고 있다.신선의 경지에 이른다면 작은 공격이라도 천지를 파괴할만한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이원무가 상처를 입지 않았고 용맥의 힘을 빌린다고 하더라도 신선의 경지와 맞서 싸울 수 없었다.지금 제일 좋은 방법은 멀리 피하는 것이다.이원무는 백준이 잠시나마 신선의 경지에 도착한 뒤 꼭 경지가 떨어지리라 믿고 있었다. 그리고 백준은 반드시 강제로 경지를 올린 대가를 치를 것이다.그때가 되면 백준은 아무런 반항도 할수 없게 된다.“감히 내 앞에서 경지를 뚫고 올라가려 하다니.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구나.”반유림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기습공격을 하던 때처럼 활에 온몸의 기운을 넣어 검을 색 화살을 만들어 냈다.그리고 백준의 가슴을 향해 활을 쏘았다.슛!검은 화살이 검은빛으로 변해 백준의 가슴에 박히는 순간 보라색 번개가 그의 몸속에서 빠져나왔다. 그 번개는 검은 화살을 순식간에 파괴해 버리고 반유림의 몸을 파고 들어갔다.펑!귀청을 찌르는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반유림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온몸이 시커멓게 타고 경맥이 끊어진 반유림은 산꼭대기에서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그는 생사 불명이었다.이 장면을 목격한 고혼은 너무 놀라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그는 한줄기 검은 안개로 변해 귀신에게 쫓기듯 허둥지둥 이곳을 떠났다.“생명의 대가로 하늘의 번개를 몸에 유인해 강제로 경지를 높이다니. 참 미친 사람이군요.”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한서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놀라움이 가신 뒤에는 목숨을 바친 백준이 존경스러웠다.생명의 대가로 신선의 경지에 이르는 행위는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성공하든 실패하든 그에
그러다가 친위대가 완전히 모이자 자객은 갑자기 놀라운 실력을 드러냈다.이렇게 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의 친위대를 유인하여 주변 방어력을 약화시키고 더 쉽게 암살하기 위해서였다.“X발, 정말 간사하고 교활한 놈이군. 어서 철수해.”친위대가 제때 복귀할 수 없다는 걸 안 진승민은 그제야 당황하며 옆에 있는 장교들과 함께 철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최적의 철수 시기를 놓쳤다.자객의 공격 속도는 그들의 철수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단 2분 만에 양측의 거리는 20m도 채 남지 않았다.“제후님, 저희가 자객을 막을 테니 먼저 피하십시오.”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몇 명의 장교들은 망설임 없이 칼을 뽑아 들고 자객을 향해 돌격했다. 하지만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모두 패배했다.“X발, 절대 가만 안 둬!”강윤기가 분노를 터트리면서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강 제후님, 흥분하면 안 됩니다.”진승민이 급히 말렸지만 이미 늦었다.앞으로 달려나간 강윤기가 자객의 목을 베려던 순간 자객이 검날을 덥석 잡더니 강윤기의 어깨를 찔러버렸다.“너 대체 누구야?”강윤기는 신음을 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자객은 아무 말 없이 갑자기 강윤기의 옷깃을 잡고 하늘로 내던졌다.휙.강윤기는 마치 발사된 포탄처럼 수백 미터 날아가 왕부 대문을 넘은 후 마당에 떨어졌다.쿵.곧이어 굉음이 울렸다. 강윤기의 몸이 땅에 떨어지면서 구멍이 생겼고 피를 토하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온몸의 뼈가 얼마나 부러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강윤기.”대문을 지키고 있던 이의진은 급히 몸을 돌려 검을 강윤기의 목에 겨누고 외쳤다.“지금 당장 병사들한테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명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내 손에 죽을 것이다.”...왕부 밖.강윤기가 날아가는 것을 본 진승민은 깜짝 놀라 잠시 멍해졌다가 곧바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그는 그제야 후회했다. 만약 자객이 이렇게 강하다는 걸 알았다면 노정한과 하원휘처럼 빨리 도망쳤을 것이다.
하원휘는 매우 현명했다. 자객의 기세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바로 친위대를 지휘하여 뒤로 물러섰다.푸른 산이 남아 있으면 땔나무 걱정은 없다고 자객을 잠시 피했다가 체력이 고갈될 때 대군들이 포위해서 죽이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다.“진 제후님, 하 제후님 말이 맞습니다. 안전이 우선이니 저도 뒤로 가서 잠시 피해있겠습니다.”하원휘가 철수하자 노정한도 더는 지체하지 않고 친위대의 보호를 받으며 천천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흥, 겁쟁이들.”진승민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불만을 드러냈다가 강윤기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강 제후님은 용맹한 분이니 저 두 분처럼 겁먹고 물러나지는 않겠죠?”“당연히 물러나지 않죠.”강윤기가 몸을 풀면서 싸늘하게 웃었다.“자객 한 명뿐이지 않습니까? 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습니다.”제후가 된 그는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살아남았다. 큰 전투도 겪은 그가 작은 자객 하나에 겁을 먹을 리는 없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저 자객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봅시다.”진승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크게 휘둘렀다.“진을 치고 자객을 잡아라.”“알겠습니다.”그의 말에 친위대 수백 명이 바로 칼을 뽑아 들고 자객을 향해 공격하려 했다.“자객을 잡아라.”강윤기도 지지 않고 칼을 뽑아 들고 자신의 친위대를 지휘하며 다른 방향에서 공격을 펼쳤다.그들의 친위대는 정예 중의 정예였다. 혼자서 백 명을 손쉽게 해결할 정도로 일반 병사들보다 훨씬 강했다.자객의 실력이 대단하긴 해도 수많은 병사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는 건 아직 진짜 정예병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그들의 친위대가 투입되면 지금처럼 휘젓고 다니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아니나 다를까 두 제후의 친위대가 투입되자 자객의 돌격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친위대는 실력, 장비, 전투 경험 모두 일반 병사보다 훨씬 뛰어났다. 최고의 강자들을 상대할 수는 없었지만 제한하는 역할은 할 수 있었다.또한 일반 병사는 일반 철 갑옷을 입었으나
옆에 있던 하원휘가 말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해지더니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저기 좀 봐요. 저게 대체 뭔가요?”사람들이 하원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하늘에서 한 줄기의 검은 빛이 내려오더니 대군들 속에 떨어졌다.쾅.엄청난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고 먼지가 피어올랐다.강력한 충격파는 마치 해일처럼 충돌 지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충격파가 지나간 곳마다 사람이 나가떨어졌고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단 한 번의 충격으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X발, 대체 뭐야?”진승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먼지가 너무 심해서 방금 떨어진 게 무엇인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혹시 운석 조각 같은 건 아닐까요?”노정한이 의아해하며 말했다.“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졌다고요? 그런 우연이 있을 리가요.”강윤기는 전혀 믿지 않았다.“제가 봤어요. 사람이었어요.”눈치 빠른 하원휘가 떨어진 지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저자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먼지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오더니 4대 제후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그 사람은 검은 검을 들고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는데 지나가는 곳마다 병사들이 맥없이 쓰러졌고 아무도 막지 못했다. 무장병사들은 그의 앞에서 맥없이 쓰러졌다.순식간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자객이다. 어서 막아라!”하원휘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급히 군사를 모아 갑자기 튀어나온 자객을 공격하려 했다.“흥, 그래봤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입니다. 우리한테는 대군이 수만 명이 있어요. 저자가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저 많은 병사를 뚫고 우리의 목을 벤다는 건 불가능합니다.”진승민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비록 적을 잡으려면 우두머리를 먼저 잡으라고 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대부분은 암살로 우두머리를 제거했다.이렇게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우두머리를 죽이려는 행위는 그야말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왜냐하
“이것들이 죽으려고.”몰려드는 무장병사들을 보며 유천우는 순식간에 분노를 터트렸다.그는 더 이상 자비를 베풀지 않고 칼을 들고 인파 속으로 돌진했다.지금의 그는 이미 무도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랐고 게다가 수년간 전장을 누빈 덕에 쌓은 전투 경험 또한 풍부했다.혼자서 적진을 누비는데도 아무도 막지 못할 정도로 용맹했다.“도련님을 지키고 놈들을 죽여라!”이의진이 검을 하늘 높이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 있던 유만군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다.“전부 죽여버려.”석태혁이 장검을 휘두르며 백여 명의 유만군을 이끌고 적진으로 돌격했다.유만군의 수는 적었지만 모두 엄청난 실력을 지닌 고수였고 게다가 훈련도 잘되어 있었다.무도 마스터인 석태혁의 지휘 아래 그들은 파죽지세로 적진을 휘저으며 나아갔다.백여 명의 부대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수만 명에 달하는 대군의 심장을 찔러 가차 없이 죽여버렸다.혹시라도 암살당할까 봐 4대 제후는 친위대의 보호 아래 즉시 전장에서 멀리 도망쳤다.“왕부 안에 저런 정예 부대가 숨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가차 없이 적을 베어버리는 유만군을 보며 진승민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다행히 백여 명밖에 안 되는군요. 수가 적어서 망정이지, 안 그러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노정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추측건대 저들이 바로 유만군일 겁니다. 유만수가 흑용군의 정예 병력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고수들을 뽑아 만든 부대인데 전부 뛰어난 실력을 지녔습니다.”강윤기가 말했다.“그렇군요. 어쩐지 엄청 대단하더라니.”하원휘가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숫자가 적어서 우리한테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해요. 지금은 용맹해 보이지만 체력이 고갈되면 목숨을 내놓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진승민이 말을 이었다.“혹시 무슨 변수가 생기진 않겠죠?”노정한이 갑자기 물었다.“무슨 변수요? 왕부가 포위된 이상 함락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왕성 밖에도 우리 대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면 즉시 알아차릴 수 있어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걸 본 이의진은 반가워하다가 이내 다시 표정이 굳어졌다.왜냐하면 아들이 갈 때와 마찬가지로 몇 명만 왔을 뿐 군대는 한 명도 데려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혹시 실패했어?”마음이 무거워진 이의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들의 유일한 희망이 바로 남쪽 4대 제후를 설득하여 북쪽 4대 제후와 맞서는 것인데 지금 상황을 봐서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듯했다.“간덩이가 부은 것들! 감히 왕부로 쳐들어와? 모두 죽고 싶어?”유천우가 호통쳤다. 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마치 천둥처럼 현장 전체가 크게 울렸다.4대 제후의 수만 병사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도련님께서 돌아오셨군요.”진승민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희 4대 제후는 왕부 안에 진범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위왕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부득이하게 들어가서 수색해야 하니 길을 비켜주십시오.”“수색은 무슨 수색.”유천우가 냉담하게 외쳤다.“왕부가 어떤 곳인데 함부로 수색하겠다고 난리야? 저리 썩 꺼지지 못해?”“도련님, 저희는 진심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움직이는데 이렇게 계속해서 방해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진승민이 태연하게 물었다.“흥. 내 앞에서 가식 떨지 마! 너희들의 속셈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없어.”유천우가 차갑게 말했다.“도련님, 당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진승민이 말했다.“진승민, 한 번만 기회를 줄게. 만약 지금이라도 떠난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 너희들은 여전히 서경 제후이고 여전히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다.”유천우는 말하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하지만 만약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반역을 하려 한다면 내가 장담하는데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도련님, 저희는 대국을 생각해서 이러는 것이니 부디 길을 비켜주십시오.”진승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나머지 세 사람 역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노려보며 조금도 물러설 기색이 없어 보였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그들은 물러설 이유가
“그럼 왕부에 들어가기 전에 나부터 죽이고 가!”이의진은 검을 든 채 꼿꼿이 서서 강력한 기세로 홀로 대문을 지켰다.그녀의 무공은 그리 강하지 않았고 고작 선천 무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뿜어내는 기세는 무도 마스터보다 훨씬 강했다.일반 병사들은 물론이고 진승민조차도 압도되어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다른 세 제후에게 눈짓을 보낼 뿐이었다.위협은 위협이고 압박은 압박이지만 적어도 명분은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천하의 조롱을 받고 만민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다.그들은 살인범을 추적한다는 명분으로 왕부를 포위했다. 비록 행동이 과격하긴 하지만 나중에 슬픔에 북받쳐 잠시 이성을 잃은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었다.하지만 압박 과정에서 왕비를 죽인다면 아무리 변명하고 이유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다.그때가 되면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그뿐만 아니라 서경 각지의 세력들이 동요할 것이고 심지어 연경에서도 군사를 보내 진압할 것이다.어찌 됐든 이의진은 서경 왕비이자 용국의 공주이기도 하니까.그런 신분을 가진 그녀 앞에서 그들은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간단히 말해 왕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일 수 있어도 이의진만은 절대 건드려선 안 되었다. 하여 이의진이 함께 죽자는 듯한 태도를 보인 순간 오히려 그들이 당황했던 것이었다.“세 분,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요?”진승민은 옆에 선 세 제후를 보며 낮게 물었다.“이미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이유가 없죠.”노정한이 차갑게 말했다.“맞습니다. 이제 한 걸음만 더 가면 성공인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강윤기가 맞장구를 쳤다.“물론 압니다. 제 말은 왕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겁니다.”진승민이 낮게 말했다.“왕비의 목숨만 해치지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하원휘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제후님 뜻은... 묶어놓자는 말입니까?”진승민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다른 방법이 있나요?”하원
무거운 왕부 대문이 쿵쾅거리면서 진동했다.매번 쿵쾅거릴 때마다 마치 거대한 망치가 심장을 강타하는 듯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문 열어.”이의진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치면서 사람들에게 대문을 열라고 명령했다.그녀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대문을 부수고 들어오려던 병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이런 상황에서는 대문을 굳게 닫고 방어에 힘써야 하는 거 아니야? 근데 알아서 문을 열어? 어떻게 된 거지? 혹시 다른 함정이라도 있나?’“진승민, 노정한, 강윤기, 하원휘. 나와!”이의진이 칼을 든 채 꼿꼿이 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강렬한 기세에 문밖의 병사들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그녀가 부른 네 명은 북쪽 4대 제후이자 이번 반란의 주요 세력들이었다.“뭐야? 일을 저질러 놓고 이제 와서 숨으려고? 4대 제후라는 사람들이 모두 쥐새끼처럼 숨어다니는 졸개들이야?”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이의진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차고 힘찬지 왕부 안팎으로 울려 퍼졌다.잠시 후 왕부 앞에 있던 병사들이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넓은 길을 터주었다.곧이어 갑옷을 입고 망토를 걸친 각기 다른 모습의 중년 남자 네 명이 나란히 걸어왔다. 그들이 바로 북쪽 4대 제후였다.“진승민,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노정한,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강윤기,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하원휘, 왕비님께 문안드립니다.”네 사람은 문 앞으로 다가가더니 동시에 몸을 숙여 예를 올렸다.“흥, 너희들 눈에 내가 왕비로 보이긴 하느냐?”이의진이 싸늘하게 말했다.“왕비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루 왕비는 영원한 왕비십니다.”진승민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만약 너희들이 나를 왕비로 생각했다면 반란을 일으키지도 않았겠지.”이의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왕비님, 오해하셨습니다. 저희는 반란을 일으킨 게 아니라 왕실을 구원하러 온 것입니다.”진승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습니다.”옆에 있던 노정한
깊은 밤, 서경왕부 대문 앞.수많은 무장병사들이 거대한 왕부를 물샐틈없이 에워쌌다. 멀리서 바라보면 검은 무리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는데 그 수가 자그마치 수만 명에 달했다.이들은 단지 선봉 부대일 뿐이었고 사실 왕성 밖에는 북쪽 4대 제후의 군대와 유태범의 친위대까지 위장한 채 주둔하고 있었다.그 시각 왕부 안.이의진은 상복을 입은 채 차가운 표정으로 살기등등하게 대문 앞에 서 있었다.손에 날카로운 검을 들고 있었는데 온몸에서 풍기는 위엄과 살기는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왕부의 생사가 위기에 처하자 왕비인 이의진은 망설임 없이 맨 앞에 나섰다. 그녀의 뒤에는 석태혁과 갑옷을 입은 유만군이 서 있었다.그 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왕부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이었다.유만군의 뒤에는 왕부의 병사들과 식솔들이 서 있었다.병사들은 칼을 들었고 식솔들은 몽둥이를 들었다. 그들은 죽음을 각오한 듯 굳건한 자세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그리고 뒤쪽 내원으로 들어가면 왕부의 노약자와 부녀자들이 상복을 입고 무기를 든 채 멀리 떨어진 대문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만약 유만군이 쓰러지고 병사들과 식솔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들 역시 망설임 없이 달려나가 왕부와 함께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아빠... 엄마... 무서워요...”열 살 남짓한 한 소년이 두 손에 칼을 들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온 소년이 언제 이런 끔찍한 상황을 겪어봤겠는가.왕부가 포위당하고 밖에 수만 명의 대군이 매복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소년은 왕부의 운명이 다했고 오늘 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걸 직감했다.“쓸모없는 녀석.”한 중년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소년에게 호통쳤다.“우리 유씨 가문의 사나이는 전장을 누비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어. 겁쟁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네가 오늘 한 발짝이라도 물러선다면 네놈을 먼저 베어버리는 수가 있어.”“아빠...”겁에 질린 소년은 덜덜 떨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울
“그건...”유진우는 망설이면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세자 전하.”은성종이 갑자기 두 손을 맞잡고 예를 표하면서 말했다.“제가 재주는 부족하지만 세자 전하를 위해 가시밭길이라도 기꺼이 헤쳐나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만약 절 믿어주신다면 이 일은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제가 은밀히 충신들한테 연락하여 빠르게 힘을 모으겠습니다. 때가 되어 세자 전하께서 신호만 주신다면 반드시 성공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제후님은 역시 의로운 분이시네요. 정말 진심으로 존경합니다.”유천우가 진심으로 감탄했다.“그렇다면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유진우도 두 손을 맞잡고 공손하게 인사했다.“세자 전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건 저의 영광입니다.”은성종이 말했다.“제후님, 큰일 났습니다.”그때 한 병사가 문을 벌컥 열고 뛰어 들어와 당황한 기색으로 말했다.“방금 들어온 소식인데 서경왕부가 대군에 포위당해서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합니다.”“뭐? 포위당했다고?”이 말을 들은 순간 유진우와 유천우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들이 떠난 지 이틀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변고가 닥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자세히 말해봐.”유천우가 다급하게 물었다. 병사는 은성종의 눈치를 살피더니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북쪽의 4대 제후들이 정예 부대를 이끌고 어젯밤 몰래 왕성에 잠입했는데 왕성 호위대의 장교급 군관들이 모두 인질로 잡힌 바람에 군 전체가 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 틈에 북쪽의 4대 제후들이 왕실을 구원한다는 명분으로 왕부를 포위했어요. 겉으로는 간신배들을 처단하고 서경왕의 복수를 하겠다고 하지만 실상은 군사를 일으켜 권력을 빼앗으려는 겁니다.”쾅.유천우가 화를 내면서 상을 세게 내리쳤다. “이것들이 아주 제대로 미쳤구나. 감히 서경왕부를 포위해?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절대 이럴 수가 없어.”그는 설령 4대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키더라도 기껏해야 성문 앞에 병력을 주둔시켜서 압박을 가하는 정도일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