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방 만에 하마터면 문관옥의 명줄을 끊어놓을 뻔하였다. “뭐?” 이 장면에 모든 사람이 다시 패닉에 빠졌다. 홍군림이 부규환을 죽인 것이 상대방이 반응하기 전에 공격해서 죽이는 데 성공한 것이라 하면 방금은 진정한 압도적인 실력 차이다. 연경 4대 도련님 중 한 명이자 최강 군신으로 불리는 문관옥이 홍군림의 한 검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다니. 둘의 실력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사람들은 그제야 평소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검종의 제자 홍군림이야 말로 연경 4대 도련님 중 제일 센 인물임을 알아차렸다. “이젠 그만 다 꺼져라.” 홍군림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곳곳에 울려 퍼졌다. 몇몇 통령들은 서로 쳐다보며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졌다. 하나의 요녀도 상대하기에 벅찬데 홍군림까지 합세하니 그들의 승산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군령이 떨어진 이상 이대로 물러선다면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안 꺼져? 그럼 죽어.” 더 크고 길고 날카로운 검빛이 순식간에 튕겨 나와 살기를 담고 그들을 향해 날아갔다. 삽시간에 붉은 피가 튕기며 비명이 울려 퍼졌다. 원래 사람들로 빼곡하던 곳은 반경 수백 미터의 무인지대로 되었다. 그곳에는 몸이 반으로 잘린 시체들이 가득하였고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간단해 보이는 검빛 하나만으로 천여 명의 사람을 죽이다니. 그 공포스러운 실력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간담이 서늘해지게 하였다. “꺼져!” 홍군림이 소리쳤다. 공포스러운 기세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왔다. 삽시간에 광풍이 일고 모래가 날려 모든 이가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후퇴! 얼른 후퇴해!” 여덟 명의 통령들이 겁에 질려 각자의 병마를 지휘하며 허둥지둥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홍군림의 검빛의 기운이 너무도 공포스러워 만약 여기에 남아있다간 전부 다 죽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돌아가서 벌을 받으니 여기서 목숨을 잃는 것보단 낫다고 여겼다. 부규환이 죽은 뒤 나머지 몇만의 병사는 홍군림의 협박하에 급급히 도망쳤다. “고... 고마워
마치 유진우의 의문을 보아내기라도 한 듯 홍군림이 설명하였다. “이모는 당시 집안과 모순이 생긴 뒤 가출하여 집안과 인연을 끊었어요. 이모께서 돌아가신 뒤 저와 저의 엄마는 서경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이모부한테 신분을 밝혔어요.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이모부께서 이 사실을 형한테 알리지 않은 듯하네요.” “내가 집으로 안 돌아간 지도 어언 10년이 되어가.” 유진우의 안색이 복잡해 보였다. 엄마가 왜서 이제껏 친정으로 안 돌아가나 했더니 이런 일이 있었구나. 그는 이번 일이 끝나고 아직 살아있으면 돌아가서 엄마한테 제대로 제사를 지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검이 좋아 보이는데 저한테 줄 수 있어요?” 홍군림이 갑자기 물었다. “어?” 유진우는 당혹함을 숨기지 못했다. “안되나 보네요.” 홍군림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럼 이후에 좋은 기회를 찾아서 제대로 겨뤄봐요. 형이 지면 저한테 검을 주고 이기면 제 검을 형한테 줄게요.”“...”유진우는 어이가 없었다. 이 자식의 생각을 알아차릴 수 없다. 분명 조금 전까지 가족 상봉을 하더니 갑자기 대결을 하자니! “걱정하지 마세요. 전 비열하게 다친 사람과 대결하지 않아요. 언제 상처가 나으면 그때 같이 대결해요.” 홍군림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가 말할 때 창공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그가 검을 향한 사랑은 모든 것을 능가할 정도로 그는 검에 미쳤다. 그한테 최상품 보검은 절세미인이나 다름없었고 게다가 그가 검을 많이 소유할수록 그의 실력도 강해진다. 그래서 매번 그가 보검을 볼 때면 보검을 향한 열정을 감추지 못하였다. 전에 백준의 길을 막아섰던 것도 그의 용작검에 눈독을 들여서였다. 아쉽게도 이기지 못했지만 말이다. 펑!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진산의 산꼭대기에서 커다란 소리가 전해졌다. 굉음 이후 대량의 돌덩어리들이 산 정상에서 굴러떨어졌다. 군사들이 이미 후퇴하여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또 커다란 인명피해가 발생할 뻔하였다. “응?” 소리를 듣고 세 사람은 이내 고개를 들어 올려
“백준 아저씨가 이겼으면 좋겠어요.” 황은아가 묵묵히 기도하였다. 이 시각 산꼭대기에서 용담적염창을 손에 든 이원무는 머릿결이 뻗기고 동공에는 붉은빛이 이글거렸다. 공포스러운 강기가 체내에서 뿜어져 나오면서 창마저 조금씩 휘어들고 끝부분이 미친 듯이 진동하였다. 한 손에 검을 들고 있는 백준도 온몸에 금빛이 진동하며 용작검과 혼연일체를 이뤘다. 그들 모두 전신의 힘을 짜내며 결투에 임했다. 이번 대결에서 실수하는 자가 바로 패자일 것을 이 둘 다 알고 있었다. 윙!창과 검이 끊임없이 맞부딪혀 강렬한 파장이 계속 일어났다. 현란한 광파에는 무도 마스터를 손쉽게 죽일 수 있는 강렬한 힘이 들어있다! 3분 정도의 힘겨루기 이후 이원무가 용담적염창으로 슬슬 밀어붙이기 시작하였다. 수행을 비교했을 때 이원무가 확실히 더 강하다. “백준! 넌 내 예상보다 강하지만 그렇다 한들 넌 여전히 내 상대가 안 돼!” 이원무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너의 강기가 소진되면서 넌 허약해질 거지만 너와 달리 난 대기운을 지니고 있어 용맥이 날 지켜주고 있지. 연경성 내에서 난 지하 용맥의 영기로 강기를 보충할 수 있어.” “난 강기가 소진될가 봐 두려워할 필요 없이 싸울수록 기운이 날 거야. 이게 바로 너와 나의 차이다! 설사 용호산의 장선기가 나와 싸운다 해도 날 이길 수 없을 거야!” 그는 호룡각 각주로 있으면서 수년간 폐관 수련하여 그의 몸과 용맥은 이미 공명을 이루었다. 설사 백 리 바깥에 있더라도 그는 용맥의 영기를 흡수할 수 있게 되었다. 연경 내에서 그가 천하무적의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행만 비긴다면 확실히 난 너보다 못해. 하지만 네가 나보다 부족한 한 가지가 있어.” 백준이 차갑게 말했다.“뭔데?” 이원무가 물었다. “난 죽을 각오를 하고 싸우지만 넌 죽기를 두려워하지.” 말함과 동시에 백준이 두 눈을 감고 몸을 떨자 곧이어 기괴한 한 장면이 발생했다. 반투명한 허영이 그의 몸에서 서서히 벗겨져 나왔다. 백준과 닮은 그 허영
지금 이 순간 이원무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놀라웠고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때 그의 머릿속을 꽉 채운 생각은 두려움이었다.그는 백준이 어떻게 원신을 몸 밖으로 내보냈는지는 몰랐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술법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그것은 일종 실체와 강기 그리고 모든 방어를 무효화시켜 영혼에 직접 작용하는 기이한 술법이었다.막으려야 막을 수 없는 아주 무서운 술법이다.지금 천하에 이 술법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장선기뿐이었다.백준이 원신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동시에 그의 몸에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그의 눈코 입과 귀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피부는 여러 갈래로 찢어지기 시작했다.이 변화는 원신을 몸 밖으로 내보낸 후유증이었다.신선의 경지에 발을 내딛지 못하고 이런 공격수단을 쓴다면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된다.운이 좋으면 원기가 크게 다치는 것으로 끝나고 손상이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이것이 바로 백준이 왜 마지막에서야 이 술법을 사용한 원인이었다.이 술법은 백준이 목숨을 걸고 시도해보는 필살기였다.“이원무, 너의 독단적인 행동이 백성에게 화를 입혔어! 오늘이 바로 너의 제삿날이 될 것이야.”백준이 몸 밖으로 내보낸 원신은 이원무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원신이 지나가는 곳마다 폭주하던 에너지파들이 금세 잠잠해졌다. 용작검과 용담적염창도 움직임을 멈추고 공중에 조용히 떠 있었다.주위에 있는 먼지 낙엽 그리고 바람까지 모두 멈춰버린 이 순간 시간마저 멎어버린 듯 했다.‘안돼! 하지 마! 하지 마!’이원무는 마음속에서 외치며 발버둥을 쳤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손과 발 그리고 몸뿐만 아니라 오관마저 제멋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그는 백준의 원신이 서서히 다가와 그를 심연으로 끌어내려 가는 것을 눈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두려움이 신속하게 온몸에 퍼졌다.그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속박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난생 느껴본 적이 없
운 좋게 목숨은 부지했지만 영혼이 크게 상한 뒤에 남은 고통이 이원무를 괴롭혔다.특히 죽음 앞에서 느낀 절망과 공포감이 영혼에 새겨진 것처럼 쉬이 가시지 않았다.“이 각주님, 괜찮으세요?”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반유림이 이원무 곁으로 쏜살같이 다가가서는 그의 안전을 지켜주었다.“나 아직 살아있는 거야?”이원무는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진 채 뭐라 중얼거렸다.그는 백준이 원신을 몸에서 내보낼 때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줄 알았는데 목숨을 건질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내가 바로 선택받은 사람이야!’“이 각주님, 아까 제가 백준 그놈에게 화살을 쏘아서 각주님을 저승에서 구해왔습니다.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반유림이 이원무에게 공로를 알리기 시작했다.그 말을 들은 이원무는 백준을 바라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백준은 기력이 쇠약해져 이리저리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런 백준을 발견한 이원무는 기분이 좋아 큰소리로 웃었다.“하하하. 좋아 좋아. 아주 잘했어. 오늘부터 너를 호용각의 장로로 임명하겠어.”“감사합니다. 각주님.”반유림은 그 말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추며 감사 인사를 했다.“백준, 이렇게 될 줄 생각하지 못했지?”이원무는 백준을 아래 우로 훑어보며 기쁨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인정해줄게. 너는 확실히 강해. 아까 그 술법은 나도 막을 방법이 없었어. 하지만 내가 살아있다니 참 안타깝게 됐네.”백준은 입을 굳게 다물고 기침을 심하게 하며 휘청거렸다.“비겁한 놈들!”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한양은 굳어진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반유림의 기습공격만 아니었으면 이 결투의 승자는 백준이였다.이런 절세 강자들의 목숨을 건 싸움은 반드시 자신의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가려야 마땅했다.역사에 남을 수도 있었던 싸움이었는데 반유림의 기습공격이 모든 것을 망쳐버렸으니 마지막에 호용각이 이겼다고 해도 그들은 머리를 쳐들 수 없었다.“백준, 더는 반항하지마. 어서
“어서 도망쳐!”온몸이 전기로 휩싸인 채 기운이 점점 강해지는 백준을 바라보며 이원무는 간이 콩알만 해져서 맞서 싸울 용기를 잃고 줄행랑을 놓았다.원신을 내보낸 것은 백준이 목숨을 걸고 비법으로 사용한 필살기였다.하지만 지금 백준은 진정한 강자가 되고 있다. 그는 지금 대 마스터로부터 신선의 경지에 발을 들이밀고 있다.신선의 경지에 이른다면 작은 공격이라도 천지를 파괴할만한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이원무가 상처를 입지 않았고 용맥의 힘을 빌린다고 하더라도 신선의 경지와 맞서 싸울 수 없었다.지금 제일 좋은 방법은 멀리 피하는 것이다.이원무는 백준이 잠시나마 신선의 경지에 도착한 뒤 꼭 경지가 떨어지리라 믿고 있었다. 그리고 백준은 반드시 강제로 경지를 올린 대가를 치를 것이다.그때가 되면 백준은 아무런 반항도 할수 없게 된다.“감히 내 앞에서 경지를 뚫고 올라가려 하다니.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구나.”반유림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기습공격을 하던 때처럼 활에 온몸의 기운을 넣어 검을 색 화살을 만들어 냈다.그리고 백준의 가슴을 향해 활을 쏘았다.슛!검은 화살이 검은빛으로 변해 백준의 가슴에 박히는 순간 보라색 번개가 그의 몸속에서 빠져나왔다. 그 번개는 검은 화살을 순식간에 파괴해 버리고 반유림의 몸을 파고 들어갔다.펑!귀청을 찌르는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반유림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온몸이 시커멓게 타고 경맥이 끊어진 반유림은 산꼭대기에서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그는 생사 불명이었다.이 장면을 목격한 고혼은 너무 놀라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그는 한줄기 검은 안개로 변해 귀신에게 쫓기듯 허둥지둥 이곳을 떠났다.“생명의 대가로 하늘의 번개를 몸에 유인해 강제로 경지를 높이다니. 참 미친 사람이군요.”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한서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놀라움이 가신 뒤에는 목숨을 바친 백준이 존경스러웠다.생명의 대가로 신선의 경지에 이르는 행위는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성공하든 실패하든 그에
슉!검을 휘두르는 순간 보라색 칼날이 나타나더니 아주 빠른 속도로 연경 쪽으로 날아갔다.보라색 칼날은 원래 석 자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앞으로 날아가면 갈수록 커졌다.몇 초 만에 칼날의 길이는 십여 미터 정도로 커졌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계속 커지고 있었다.칼날이 지나는 곳마다 천지가 울부짖었고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하늘에 모여있던 먹구름이 칼날에 베여 두 동강이 났고 베인 자리는 거울처럼 매끈해서 오랫동안 닫히지 않았다.보라색 칼날은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점점 커졌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천지개벽을 하는 것 같아서 보기만 해도 무서웠다.백준이 검을 휘두를 때 이원무는 이미 심리 밖으로 피신해 있었다.경천 랭킹 2위인 강자가 지금 당황해서 땀범벅이 된 채 줄행랑을 놓고 있었다.“미친놈. 미친놈.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신선의 경지에 오르려 하다니. 난 너랑 더 놀아줄 생각이 없어.”이원무는 욕바가지를 퍼부으면서 쏜살같이 호용각으로 향했다. 그곳은 용맥의 보호와 포메이션이 있었기에 돌아가서 법진을 연다면 백준이 그 아무리 신선의 경지에 오른다고 하더라도 수를 쓰지 못할 것이다.그곳에 있는 포메이션은 이원무가 장선기를 막기 위해 반평생동안 심혈을 기울여 연구해 낸 것이었는데 오늘 미리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이때 슉하는 소리가 뒤로부터 들려왔다.무언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 이원무가 뒤를 돌아보고는 귀신이라도 만난 것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백미터정도 길이의 거대한 보라색 칼날이 파죽지세로 모든 것을 베어가며 다가오고 있었다.칼날이 닿는 곳에 있는 산과 돌들은 산산조각이 나서 이리저리 튕겨나갔고 풀과 나무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제일 중요한 것은 칼날이 이원무의 뒤를 바싹 쫓고 있었기에 도망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어떻게! 이럴 수가!”눈을 커다랗게 뜬 이원무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칼날이 코앞까지 다가온 위기의 순간 이원무는 용담적염창을 들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두꺼운 붉은색 장벽을 쌓아
이원무는 황량한 교외에서 목숨을 잃었다.들개들이 그의 시체에서 풍겨 나온 피 냄새를 맡고 찾아와서 시체를 먹어버렸다.경천 랭킹 2위인 강자 호용각의 각주가 들개의 뱃속에서 생을 마감하며 시신조차 남기지 못할 줄이야!같은 시각 호용각안에서는 긴급회의가 한창이었다. 제단사부터 장로와 집사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각주 이원무가 출관한 뒤로 두 시진이 지났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이토록 걱정할 필요가 없었는데 이원무가 이번에 맞설 상대는 검선 백준이였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모두 절세 강자였기 때문에 실력이 막상막하였다. 만약 1대1로 싸운다면 이원무가 이길 확률이 더 높았지만 서경광부에서 다른 꼼수를 쓸 수도 있었으니 승부를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어때? 각주님 소식이 있어?”흰 수염의 장로가 말을 하며 황급히 회의실로 들어왔다. 넓은 회의실 안은 이미 이삼십 명이 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이 사람들은 모두 호용각의 고위 핵심 간부들이어서 조정의 대권을 손에 쥐고 있었다. 황실의 혈족들은 꼭두각시 같은 존재였고 그들이야말로 용국의 지배자였다.“이미 사람들을 파견해서 각주님을 찾고 있지만 소식이 없습니다.”어떤 집사가 대답했다.“어떻게 된 일이야! 각주님을 혼자 위험에 빠져있게 하다니. 각주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네놈들이 책임질 것이냐?”흰 수염의 장로가 호통을 쳤다.“황 장로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각주님은 압도적인 실력뿐만 아니라 용맥을 지니고 있잖아요. 장선기 그 괴물만 아니라면 각주님은 무사하실 거예요.”“만약 서경왕부의 삼대 고수들이 함께 나타난다면 각주님이 위험해지실 거야.”흰 수염의 장로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호용각이 서경왕부를 지금까지 봐주고 있는 원인은 두 가지가 있었다.하나는 50만 흑용군때문이였고 다른 하나는 서경왕부의 삼대 고수가 걱정되서였다.검선, 술광, 인도.이 세 사람은 모두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세 사람이 함께 뭉친다면 그들을 대적할만한 자가 없었기에 더욱 근심되었다.“황
한참 동안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비록 유만수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몇 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무엇보다 이제 겨우 내우외환을 해결했는데, 유만수가 자리를 넘겨준다고 하니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여보,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요?”옆에 있던 이의진이 권유했다.“그러니까요. 위왕 님, 아직 몸도 정정하시고 지금은 백세시대인데 어찌 이렇게 일찍 자리를 넘겨줄 생각을 하십니까?”장범규는 정직하고 솔직하게 물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묻고 싶었지만, 감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만약 누군가 나서서 유만수를 설득한다면 새로운 위왕 님의 미움을 살 수도 있으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조용하게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여러분, 제 몸은 제가 잘 압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마침 여러분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후사를 미리 안배하는 것도 제 소원을 이루는 셈입니다.”유만수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여보...”이의진이 뭔가를 말하려는데 유만수가 손을 들어 제재하며 말했다.“그만. 난 이미 결정했으니 더 이상 설득할 필요 없어.”유만수는 다시 모든 사람을 향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여러분, 저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선정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 사람의 손에 미래 서경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이 일은 저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에는 누가 미래의 서경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그건...”유만수의 말에 사람들은 더욱 당황했다. 형세를 보아하니 유만수는 내부 투표를 통해 지지자가 많은 사람한테 서경을 맡길 생각인 것 같았다.그러니 문제는 유진우를 선택할 것인가 유천우를 선택한 것인가였다.재능과 능력 면에서 보면 당연히 유진우가 한 수 위이지만 집안 내력과 배후 세력으로 판단하면 유천우가 한 수 위였다.유천우는 최근 몇 년 동안 전쟁에서 매우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미래가 기대된다는
보물 지도를 나눈 뒤 유진우는 사람을 안배해 호룡각의 기지를 다시 한번 정리했다. 이곳은 위치가 은밀하여 수비는 쉬우나 공격하기는 아주 어려웠고 또한 두 나라의 국경 지대에 놓여있었다.그러니 이곳을 군사 요새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만약 앞으로 서방 제국과 충돌이 생긴다면 이곳이 중요 군사 지점이 될 것이고 여기서 출병한다면 반드시 예상치 못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지금 당장은 쓸모가 없겠지만 미리 준비해 둔다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해당 건을 해결한 뒤 유진우는 사람들을 데리고 서경왕부로 돌아갔다.이번에 유진우가 서경의 복병을 해결하고 대승을 거두었기에 유만수는 서경의 왕으로서 특별히 부내에서 연회를 열어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이번 사건에 공로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초청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한동안 왕부 안팎은 매우 시끌벅적했다.유만수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한테 매우 기쁜 소식이었고 호룡각을 멸한 건 더욱 기쁜 일이니 축하할 이유가 충분했다.밤이 되자 왕부 안은 이미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서경에 있는 모든 사람이 거의 다 모인 것 같았다.각 고급 장교, 각 고위 간부, 그리고 각 방면의 거물들이 모두 왕부에 모여 술을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여러분, 후배인 제가 먼저 몇 마디 하겠습니다.”연회에서 유천우는 먼저 일어나 손에 잔을 들고 큰 소리로 말했다.“이번에 왕부가 위기를 맞았었지만, 여러분은 떠나지 않고 앞다투어 왕부의 근심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자, 제가 먼저 여러분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말을 마친 유천우는 고개를 번쩍 들고 잔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도련님이 너무 겸손하네. 우리는 서경의 신하로서 당연히 왕부와 함께해야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별거 아니야.”평양 제후 장범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맞는 말이야. 오랜 시간을 위왕 님과 함께 보냈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늘 같이했으니, 왕부가 곤경에 처했다면 당연히 전폭적으로 도와야지. 나라를 위해서
“맞아요. 길이라는 건 한번 잘못 들어서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죠. 사철수의 모든 행동은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가 없어요. 누구처럼 죄를 공으로 대처할 기회조차 없죠.”유천우는 유태범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유태범이 셋째 삼촌이 아니고 아버지의 인자함이 없었다면, 그뿐만 아니라 형제의 상잔을 원하지 않았고 손실이 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역모는 열 번 죽어도 모자란 죄였다.“흠 흠.”유천우의 눈빛에 유태범은 괜히 마음에 찔려 화제를 돌렸다.“장혁아, 세 개의 보물 창고를 모두 합치면 가치가 엄청날 텐데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당연히 전부 서경으로 가져가야죠. 설마 그 잡놈들한테 남겨두기라도 하겠다는 거예요?”유천우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세 개의 보물 창고를 우리가 전부 독차지할 수는 없어.”유진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우리만의 힘으로 호룡각을 멸망시킨 건 아니잖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야. 그러니 보물 창고도 공평하게 함께 나눠야지.”“공평하게 나눈다고? 장혁아, 장난이지?”유태범은 어리둥절해서 격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방금 사철수의 말을 들었잖아. 호룡각의 보물 창고는 수십 년 동안 축적해 온 것들이고 그 수가 엄청날 텐데, 그걸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나눈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이번에 호룡각을 소탕하는 데 유태범은 뛰어난 공을 세웠으니, 나중에 또 다른 표창을 받을 수도 있었다.다시 말해, 서경왕부가 더 많은 보물을 얻어야만 유태범의 이익도 더 많아지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보물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보물도 좋지만, 도의도 지켜야죠. 사람들이 멀리서 우리를 도와주러 왔는데, 우리가 보물을 독차지한다면 그건 배은망덕한 사람이죠.”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그건 그렇지만 굳이 똑같이 나눌 필요는 없잖아. 적당하게 성의를 보여주면 되는 거지.”유태범이 말했다.“저는 이미 마음먹었어요. 제 결정이 불만스럽다면 유만수에게 일러바쳐서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사철수 씨, 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예요? 사진이라도 찍어줘요? 빨리 보물 지도를 찾아내세요.”불만으로 꼴 독 찼던 유태범은 못마땅한 얼굴로 사철수에게 화풀이했다.“알겠어요. 서두를게요.”유태범의 말에 사철수는 즉시 합금으로 되어 있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 채원진의 부러진 손을 들어 중간 부분에 있는 감응 위치를 살짝 눌렀다.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터운 대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리자, 금속으로 만든 금고가 드러났다.금고는 약 33제곱미터 정도의 크기였고 한가운데에는 골드바가 사람의 키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다.골드바 외에도 그 주변에는 다양하면서도 진기한 보물들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싸고 귀중한 물건들이었다.“이곳은 채원진의 개인 금고예요. 채원진은 마음에 드는 모든 물건을 전부 이곳에 수집했어요.”사철수가 설명했다.“보물들이 어마어마하네요.”유천우는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했다.“이것들을 전부 가지고 나가면 성을 하나 사고도 남겠네요.”“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호룡각의 다른 세 보물 창고에 비하면 눈앞에 있는 것들은 새 발의 피죠.”사철수가 설명했다.“정말이에요?”유천우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당신 말대로라면 호룡각의 보물을 전부 모으면 산더미가 되겠는데요?”“제가 직접 본건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쌓아왔으니, 산더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예요.”사철수는 진지하게 말했다.“좋아요. 아주 좋아요! 빨리 모든 보물을 긁어모으고 싶네요.”유천우는 정신이 번쩍 들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보물 지도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유태범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있어요.”사철수는 맨 안쪽 선반으로 가서 위에 놓여있는 정교한 박달나무 상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유진우에게 건넸다.유진우가 열어보니 안에는 양피지 3장이 들어있었다. 모든 양피지에는 상세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지도 중앙에는 보물 창고의 위치가 금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보물 지도가 진짜라면, 지도에 그려져 있는
“보물 지도는 어디 있나요?”유진우가 추궁했다.“채원진의 지하 밀실에 있어요. 내가 직접 세자 전하를 모시지요.”사철수가 말했다.“지하 밀실?”유천우는 실눈을 뜨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속으로 다른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니죠? 나중에 나를 악랄하다고 탓하기 싫으면 그런 생각은 빨리 접는 게 좋을 거예요.”밀실 같은 건물에는 함정과 암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유천우는 사철수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저는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아닙니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사철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앞서서 안내하세요.”유진우가 두 근위병에게 눈치를 주자 근위병 두 명이 와서 사철수를 일으켜 세웠다.“잠깐만요. 밀실에 있는 보물 상자를 열려면 채원진의 손이 필요해요.”사철수가 갑자기 말했다.“그건 쉽죠.”유천우는 즉시 칼을 빼 들어 채원진의 오른손을 잘라 사철수에게 건네며 말했다.“자. 선물이에요.”사철수는 징그러웠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채원진의 손을 받아 들고 앞장섰다.유진우와 몇몇 사람은 사철수를 따라 기지로 들어갔고 마침내 지휘실 입구까지 도착했다.사철수는 문을 열고 벽 쪽으로 다가간 다음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를 떼어냈다.그림 뒤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알아차리기 어려운 하나의 버튼이 있었다.사철수가 손을 내밀어 버튼을 누르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벽 전체가 갑자기 양쪽으로 열리더니 안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드러났다.사철수가 유진우를 포함한 몇 명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올라탄 뒤 스위치를 누르자 문이 닫히더니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반 시간 남짓 지나자 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유진우와 몇 명 사람들의 눈에는 넓고 호화로운 지하 밀실이 들어왔다.말이 밀실이지 사실 호화 저택에 가까웠다. 안에는 없는 것 없이 다양한 생활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고, 많은 물과 식량도 수집되어 있었는데 수십 년 동안 혼자 생활하기에는 충분한 수량이었다.“핵 방지
“유진우?”무릎을 꿇은 채 냉정한 표정을 한 유진우를 바라보는 사철수의 얼굴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놀라움과 기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더욱 컸다.흑용군이 매복되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철수는 이미 호룡각의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아차렸다.아니나 다를까 호룡각의 기지는 파괴되었고 채원진은 목숨을 잃었으며 사철수는 유진우한테 체포되었다. 하지만 사철수는 어쩌면 이게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비록 사철수가 호룡각의 사람이긴 했지만, 서경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서경은 이미 사철수한테는 고향 같은 곳이었고 주변에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사철수가 저질렀던 많은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했던 거라 마음이 늘 불편했었다.오늘,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도 모두 사철수의 업보였고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였다.“아저씨,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채원진이 패했으니, 당신도 패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제 와서 더 할말이 남았나요?”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도적이 되는 법이지요. 세자 전하께서 죽이시든 벌을 주든 저는 다 괜찮습니다. 다만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사철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했다.“당신이 지금 나한테 그런 조건을 내세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유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세자 전하, 죄인인 저는 죽어도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 아내와 딸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용서해 주십시오.”사철수는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으며 유진우에게 절을 올렸다.“당신 말대로 그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못난 남편과 아비 때문에 그들도 죄인이 된 겁니다. 설마 당신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큰 죄를 지어 놓고 가족은 아무 일 없이 무사할 거로 생각한 겁니까?”유진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세자 전하, 공을 세우는 거로 저의 죄를 보상하면 안 될까요? 세자 전하께서 소가 되라면 소가 될 것이고 말이 되라면 말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때 조무진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무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자 완전 무장을 한 군부가 보였는데 족히 수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검은 갑옷을 입고 긴 칼을 허리에 찬 병사들은 기세가 매우 위풍당당했다.얼핏 보면 마치 강철로 되어 있는 호수 같았는데 멀리서부터 강한 압박감을 주는 이 부대는 바로 서경의 최강 정예 부대 흑용군이었다.“보아하니 사철수는 이미 체포된 것 같네요.”이청성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 흥용군의 리더는 바로 유천우였다.당시 유천우는 명령에 따라 천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호룡각의 정예 부대를 미리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만든 뒤 절대적인 병력 우세로 오천여 명의 적을 죽이고 나머지는 모두 포로로 체포했다.쿵 쿵 쿵!수만 명의 흑용군이 가까워질수록 그 압박감은 점점 더 강해졌다. 성벽 위에 있던 백호군들도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소문에 의하면 흑용군은 용국의 최강 군부로서 창시 이래 백전백승을 이뤘고 여러 차례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 어떠한 군부도 흑용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없다고 했다.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그 소문은 거짓이 아닌듯했다. 흑용군의 강렬함과 살벌함은 충분히 다른 군부를 경시할 만했다.“형! 임무를 완성했어요. 호룡각의 남은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잡아들였어요.”유천우가 먼저 앞으로 다가와 보고했다.“잘했어.”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쪽은 어떻게 됐어요? 채원진은 죽었어요?”유천우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말했다.“머리가 잘렸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조무진은 발로 채원진의 머리를 슬쩍 건드리며 말했다.채원진의 머리는 축구공처럼 땅바닥에서 굴러 유천우의 발밑에 멈추었다.“뭐야! 이렇게 못생겼다고? 어쩐지 맨날 가면을 쓰고 다니더라니.”유천우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하고 서경을 해친 놈을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채원진은 이미 죽었고 밑에 있던 정예들은 모두 체포되었으니, 호룡각은 이제 완전히 멸망한 셈이에요.
채원진은 죽고 호룡각 기지는 함락되었다. 이로써 호룡각은 조직 전체가 완전히 멸망했고 남은 사람이라고는 흩어져 있는 병사들뿐이라 크게 위험이 되지는 않았다.하지만 유진우는 방심하지 않고 호룡각이 관련된 모든 사람은 전부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다. 만약 그들이 자진해서 항복한다면 죽음을 면할 수 있지만 끝까지 저항한다면 남은길은 죽음뿐이었다.“형, 드디어 이 재앙 같았던 놈을 처리했네. 축하해!”조무진은 앞으로 걸어가 채원진의 시신을 발로 차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다 네 덕분이야. 네가 20만 명의 백호군을 데리고 채원진의 퇴로를 끊어놓지 않았다면 채원진은 또 다른 기회를 찾아 연명했을지도 몰라.”유진우가 말했다. 그는 채원진을 죽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다. 결국 채원진은 죽었고 그는 승리했다.“난 별로 한 게 없어. 고마워할 거면 공주마마께 고마워해야지.”조무진은 고개를 돌려 뒤에 서있는 이청성을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공주마마께서 형을 돕는다고 엄청 바쁘셨어.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독촉하느라 발등에 불이 붙을 뻔했다니까.”“조무진 씨!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이청성은 앞으로 걸어 나오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공주마마께서 학식과 도리가 깊고 외모와 지혜가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있었어요.”조무진은 아첨하며 웃음을 지었다.“흥!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네요.”이청성은 조무진을 흘겨보며 말했다.“공주마마, 감사합니다.”유진우는 공수하며 말했다.“뭘 그렇게 예의를 갖춰요?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끝까지 도와줬을 뿐이에요.”이청성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게다가 채원진은 우리 공공의 적이잖아요. 유진우 씨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전체적으로 보면 백성을 위해 나쁜 놈을 제거 한 거죠.”“공주마마의 대의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이 얘기는 그만하죠. 비록 채원진이 죽었다고 하
반면 채원진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십여 미터나 날아가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팔 전체가 파열되었고 용담적염창도 튕겨 나갔으며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바닥에 누워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도련님, 괜찮으십니까?”홍복홍은 재빨리 달려가 떨고 있는 유진우를 부축했다.“괜찮아요.”유진우는 몸에 기혈이 들끓고 팔이 저리고 검도 제대로 잡지 못할 것 같았다.비록 채원진이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방금 전력으로 내뿜은 일격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고 결국 유진우도 피를 토하고 말았다.채원진의 몸에 있는 멸신독이 퍼지지 않았다면 오늘 그를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다.“왜? 이럴 수 없어. 절대 이럴 수는 없어...”땅에 엎드려 맥 빠진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채원진의 두 손은 긴 손가락 자국을 남긴 채 땅바닥에 푹 꺼져 있었다.안 그래도 흉측하던 얼굴이 더욱 흉측해 보였다.“남길 유언이라도 있나?”유진우는 창궁검을 손에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채원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한 세대의 효웅이었던 채원진은 마치 죽음을 앞둔 늙은 개처럼 낭패와 처참함 그리고 빨리 죽기 위해 발악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유진우! 이 비열한 새끼야! 네가 이런 모함을 꾸미지 않았다면 내가 패할 가능성은 절대 없었고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을 거야. 인정 못 해. 죽어도 인정 못 해!”채원진은 미친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그의 상대는 용국의 지존인 서경 왕 유만수처럼 천하를 뒤흔든 거물이었는데, 젖비린내 나는 아이들 몇 명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채원진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비열?”유진우는 콧방귀를 뀌고 말을 이었다.“이런 단어가 네 입에서 나오니까 정말 어이없구나. 사람을 시켜서 내 아버지를 암살하고 이간질로 삼촌을 유혹하여 반역을 도모해 서경을 혼란에 빠뜨리고. 네가 했던 일 중에 어느 하나 비열하지 않은 일이 없어. 죽을 때가 되니 이제 와서 도리를 따지는 거야? 쪽팔리지도 않아? 그리고 네가 인정하든 못하든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