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우는 거침없이 진산 꼭대기까지 올라가 결국 절 정문 앞에 이르렀다.문 위에는 현판 하나가 걸려있었는데‘서하사'라는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서하사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평범한 절이었고, 겉모습을 보니 꽤 오래된 듯 여러 곳이 낡아 있었다.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한때 세상을 주름잡던 임강왕이 이런 작은 절에 몸을 숨기고 있을 줄을.유진우는 앞으로 다가가 절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잠시 후 조금 더 힘주어 두드렸다.“예, 갑니다.”절 안에서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곧이어 절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일고여덟 살 정도의 동자승이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유진우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며 물었다. “시주님, 무슨 일이 신가요?”“산에서 길을 잃었는데 마침 절이 있어서 물 한 잔 청하러 왔습니다. 괜찮을까요?” 유진우는 거짓말을 지어냈다.“얼마든지요, 시주님. 이리 들어오세요.”동자승은 아무런 의심 없이 절 문을 열어 유진우를 안으로 들였다.오랜만에 외부인을 보아서인지 동자승은 무척 신이 난 듯 재잘재잘 끊임없이 물었다. “시주님은 어디서 오셨어요?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죠? 진산엔 맹수들이 많아서 다행히 낮에 길을 잃으셨네요. 밤이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아, 그리고요. 길을 잘 모르시면 제가 나중에 산 아래까지 모셔다드릴게요.”“고맙습니다.” 유진우는 미소를 살짝 지었다.‘이 동자승이 꽤 재미있는 녀석이네.’“당연한 일이에요.”동자승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출가한 사람은 자비를 품어야 하니 누군가 어려움에 부닥쳤다면 도울 수 있을 때 도와야 한다고 하셨어요. 한 생명을 구하는 게 7층 탑을 짓는 것보다 낫다고 하셨거든요.”“실례지만 한 가지 여쭤볼게요. 서하사에는 모두 몇 분이나 계신가요?” 유진우가 화제를 돌렸다.“몇 분이냐고요?”어린 스님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세더니 말했다. “우리 서하사에는 주지스님이 계시고, 제 스승님, 그리고 두 분의 사숙님들, 거
“누구시길래 여기까지 오신 거요?”두 스님은 즉시 자리를 바꾸어 앞뒤로 유진우의 진퇴로를 막아섰다.두 사람의 눈빛은 매섭게 경계하며 날카롭게 주시했다.그들은 이곳에서 여러 해를 은거하며 세상과 단절한 채 외부인과 거의 접촉하지 않았다.갑자기 낯선 사람이 나타나 왕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만나자 하니 분명 의도가 순수하지 않았다.“저는 유장혁이라고 합니다. 임강왕을 뵈러 왔으니 길을 비켜주시면 좋겠습니다.”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유장혁이라고?”두 스님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더욱 놀란 표정이었다.“유 시주님, 이곳은 절입니다. 임강왕이란 분은 계시지 않으니 돌아가십시오.”둥근 얼굴의 스님이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두 스님, 멀리서 왔으니 진심을 담아 뵙고 싶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한 번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유진우는 예를 갖춰 합장하며 인사했다.“유 시주님, 난처하게 하지 마십시오. 우리 절은 너무 작아서 시주님 같은 귀한 분은 모시기가 힘듭니다.”둥근 얼굴의 스님이 말했다.“부처님께서는 인과를 말씀하셨죠. 각진 스님께서 10년 전에 뿌린 씨앗, 이제는 거둬들일 때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피해 숨기만 하는 건 자신을 속이는 일일 뿐입니다.” 유진우가 당당하게 말했다.“무슨 말씀인지 이해할 수 없군요.” 둥근 얼굴의 스님이 냉랭하게 말했다. “유 시주님,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만 주지 스님은 참선 중이시라 외부인은 만나지 않으십니다. 돌아가십시오!”“좋게 말씀드렸는데 굳이 막으시겠다면 강제로라도 들어가야겠습니다.” 유진우의 표정이 점점 차가워졌다.어떻게든 오늘은 이만기를 만나야만 했다.“유 시주님! 법당은 성스러운 곳인데 어찌 이리 난동을 부리려 하십니까?!" 둥근 얼굴의 스님이 호통쳤다.“더 이상 떠나지 않으시면 몽둥이로 쫓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스님이 짜증난 듯 말했다.“한번 해보시죠.”유진우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법당으로 들어가려 했다."방자하도다!"두 스님은 이를
서하사의 법당은 크지 않았고 금빛 화려한 장식도 없었으며, 정면에는 단지 3-4미터 높이의 석가모니 불상 하나만 모셔져 있었다.소박한 모습이었지만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불상 주변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불상 앞 방석 위에는 마른 체형의 중년 스님이 앉아 있었다.황적색 가사를 입고 눈을 감은 채 한 손으로는 목어를 두드리고 다른 손은 입 아래에 둔 채 경문을 읊고 있었다.매우 신실한 모습이었다.“주지 스님, 유 시주님이 와계십니다.”가사 입은 스님이 앞으로 나아가 조용히 전했다.이 말에 주지 각진 스님은 드디어 손의 움직임을 멈추고 천천히 일어나 유진우에게 합장하며 말했다. “나무아미타불 유 시주님, 오래간만입니다.”“그러게요,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지금 각진 스님이라 불러야 할까요, 아니면 임강왕 전하라고 불러야 할까요?”“저는 이미 세속의 인연을 끊고 법호를 각진이라 하오니, 그저 각진이라 부르시면 됩니다.”각진 스님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알겠습니다.”유진우는 담담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각진 스님, 제가 오늘 갑자기 찾아온 것은 주로 몇 가지 의문점을 해소하고 싶어서입니다.”“유 시주님께서 물으시려는 것은 10년 전의 일들이겠지요?” 각진 스님은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맞습니다.” 유진우는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각진 스님, 10년 전 당신은 아직 출가하지 않으셨고 자금성에서 막강한 권력을 쥐고 계셨죠. 당연히 내막을 알고 계실 텐데, 숨김없이 진실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유 시주님, 지난 일은 모두 지나갔는데 왜 과거에 매달리시나요?” 각진 스님이 심란한 표정으로 말했다."지나간 일이라도 없었던 일이 되진 않습니다. 전 단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인데, 그게 잘못된 걸까요?" 유진우가 반문했다.“어떤 진실은 모르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알게 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요.” 각진 스님이 조심스레 경고했다.“저는 이미
“좋습니다!”각진 스님의 말을 듣자, 유진우는 돌려 말하지 않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각진 스님, 저는 단 한 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당시 우리를 암살하려 계획했던 배후의 주동자가 도대체 누구입니까? ”“역시 그것이었군요.”각진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뻔히 예상했다는 듯, 바로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유 시주님, 호룡각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호룡각이요?”유진우는 눈을 살짝 좁히며 말했다. “유만준에게서 몇 마디 들은 적은 있지만, 잘은 모릅니다.”“모르신다면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각진 스님은 숙연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호룡각은 나라가 세워질 때 만들어져 황제의 권력 위에 존재하던 기구였습니다. 그곳의 구성원들은 모두가 최정상급 고수들이었죠.그중 누구 하나만 뽑아도 수많은 군사와 맞먹을 만큼 강했습니다.특히 호룡각의 수장인 이원무의 능력은 더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온 천하를 통틀어 용호산의 속세를 떠난 도사 외에는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사람이 없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현 황제가 이원무의 도움으로 즉위했다는 점이었다.어떻게 보면 황제라는 존재는 이원무가 마음대로 조종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황제의 권력과 자리는 그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이런 자가 바로 이원무였다. 이른바 호룡각의 본모습이었다.말을 끝맺으며 각진 스님의 눈에 분개의 기색이 스쳤으나, 더 깊은 것은 무력감이었다.황실의 혈족이자 황제의 아우로서, 그는 호룡각의 진정한 공포를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이원무는 말할 것도 없고 평범한 호룡각 구성원 하나도 황제 권력을 쥐고 마음대로 농락할 수 있었다.더욱 서글픈 것은 그들에게 저항할 어떤 수단도 없었다는 점이었다.반기를 든 자들은 모두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으니까.호룡각은 겉으로는 보호를 위한 조직이었으나, 실제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무법천지가 되어버렸다. 전후로 얼마나 많은 천리를 어기는 일을 저질렀는지 모를 정도였다.더욱 절망적인 것은 누구도 그들을 관리할 수도, 감히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죽도록 애쓰는 걸 원하지 않았다. 이만기도 그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했을 뿐이었기에 사실 이만기도 잘못한 것은 없었다.“장혁 씨 아버님께서도 여러 번 저를 구해 주셨고 또 저를 그렇게 신뢰해 주셨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정말 부끄럽습니다.”각진이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만약 유진우가 그를 꾸짖거나 때렸다면 오히려 마음이 더 편했을 것이다.하지만 눈앞에 서 있는 유진우는 전혀 그를 탓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각진으로 더욱 하여금 죄책감에 빠지게 했다.“각진 스님,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희는 호룡각과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왜 저희를 암살하려 했던 걸까요?”유진우가 다시 물었다.“장혁 씨가 한 일들이 호룡각에게 위협을 줬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경고의 의미로 보낸 듯합니다.”각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십 년 전, 장혁 씨네 서경왕부는 권세가 막강했고 명성이 자자했어요. 황제의 권위마저도 능가하는 듯했죠. 호룡각은 서경왕부의 존재가 그들의 지위를 위협했다고 생각했겠죠. 그래서 그저 넘어갈 수는 없었던 거예요.”“고작 그런 이유로 제거하려 했다고요?“유진우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의 눈빛에 냉기가 흘렀다.“장혁 씨, 서경왕부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영향력이 크답니다.”각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장혁 씨 아버님께서 훌륭하신 것뿐이라면 호룡각은 참고 넘어갔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장혁 씨네 가족은 다들 지나치게 좋은 유전자를 가졌잖아요.”“장혁 씨 아버님인 육만군 씨는 잘생기신 데다가 재능도 뛰어나신 분이었죠. 수십 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셨고요. 그는 왕에 준하는 분이셨고 오십만 정예 군을 지휘했었죠.”“장혁 씨 어머님이신 진소연 씨도 대단한 사람이셨어요. 삼십 대 초반에 이미 무도 미스터로 되신 독보적인 분이셨죠.”“그리고 장혁 씨도 예사로운 분은 아니시잖아요. 태어날 때부터 신의 보호를 받은 분이시니까요. 열다섯 살에 마스터 경지에 도달
“배신자라고요?”그 말을 들은 유진우가 미간을 찡그렸다.그는 어딘가에서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임강왕이 이렇게 말한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각진 스님, 그럼 그 배신자가 도대체 누구인지 알 수 있나요?”유진우가 다시 물었다.“그 사람은 바로 장혁 씨 아버지의 부하였던 송원호입니다.”각진이 말했다.“원호 삼촌이라고요? 그럴 리가요. 원호 삼촌은 이미 전사하지 않았나요?”유진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유진우도 알다시피 송원호는 아버지가 신임하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형제처럼 여겼고 동고동락하며 오랜 시간을 함께한 동료였다.십 년 전, 송원호가 호위 팀장의 역할을 맡아 그들 가족을 연경으로 호송하던 때였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는 여러 명의 암살자를 처치했다.특히 자금성에서의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송원호는 위험을 무릅쓰고 어머니를 호위하여 성을 빠져나가다 전사했다.‘그런 사람이 어떻게 배신자일 수 있다는 거지?’“이 소식을 들었을 때 저도 많이 놀랐어요. 그래서 다시 한번 조사했지만 단서들은 모두 송원호 씨를 가리키고 있었죠.”“저도 송원호 씨가 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협박을 받았을 수도 있고 배반을 당했을 수도 있지만 이 사건이 그와 관련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어요.”“장혁 씨가 말한 죽음은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사람을 보내서 확인했거든요. 송원호 씨는 죽지 않았어요. 시신은 사람을 찾아서 위장한 것입니다.”각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원호 삼촌이 바로 그 배신자라고요?”유진우는 눈살을 찌푸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애써 참아보려는 듯했다.그는 계략을 당하거나 암살당하는 것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가까운 사람들의 배신은 참을 수 없었다.송원호는 유진우에게 놓고 말해서 반쯤 스승 같은 존재였고 예전에는 무술에 대해 가르침을 받은 적도 있었다. 게다가 군을 이끄는 경험마저도 송원호에게서 전수 받은
류현은 뭐라 더 말하려 했으나 각진이 손을 휘저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더 말할 필요 없어. 내 말대로 해.”“네.”류현은 유진우를 한 번 노려보고는 급히 밖으로 나갔다.“재원아, 너는 유 시주님을 데리고 뒷산으로 가. 꼭 시주님을 안전하게 잘 모셔야 해.”각진이 다시 말했다.“그럼 주지스님은 어떡하나요?”명재원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명재원은 임강왕의 호위 팀장이었기에 항상 그를 호위해 왔었다.이제 와서 왕이 아닌 다른 사람을 호위하라고 하니 약간의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지훈이랑 현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는 괜찮아. 빨리 가 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각진이 이렇게 말했다.“네.”명재원은 두 손을 모으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유진우를 데리고 나가 버렸다.나가기 전에 유진우는 뒤를 돌아 각진을 한 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다시 명상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유 시주님, 이쪽으로 오세요.”명재원은 유진우를 데리고 서하사 뒤쪽으로 갔다. 그리고는 숨겨져 있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안은 생각보다 어두컴컴했다. 손을 뻗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하지만 명재원은 이 길을 잘 알았다. 그는 성냥을 꺼내어 불을 붙였다. 그 불빛은 길을 환히 밝혀주었다.유진우는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이 길은 산에서 내려가는 비밀 통로임을 알게 되었다.통로는 매우 길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 데다가 좁아서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한 공간이었다.“유 시주님, 이 길은 산기슭까지 이어집니다. 비밀리에 만들어진 거라서 외부인들은 모르는 길이죠. 시주님은 제가 안전하게 돌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다시는 오지 마세요.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명재원이 길을 안내하며 이렇게 말했다.“감사합니다.”유진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오늘 방문한 것으로 의문은 다 풀렸어요. 그러니까 다시는 오지 않을게요. 더 이상 여러분을 방해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쿵!”문이 닫히는 순간, 유진우의 이마가 세게 찌푸려졌다.두려워서가 아니라 명재원의 행동이 불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임강왕이 명재원에게 유진우를 안전하게 산기슭으로 내려보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킬러들이 매복하고 있는 곳으로 데려갔기 때문이었다.이건 그저 상관없는 일인 척 옆에서 구경하는 것보다 더 얄미운 일이었다.“유장혁, 아무리 둘러봐도 소용없어. 아무도 널 도와주지 않을 거야. 오늘이 네 제삿날이거든.”어떤 늑대 무늬가 새겨진 마스크를 쓴 남자가 사람들 사이로 걸어 나오더니 굵은 목소리로 거침없이 말했다.“문관옥, 왜 가면을 쓰고 있는 거야? 차마 얼굴을 들고 나올 수 없는 일이라도 있어서 그래?”유진우가 차갑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그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마스크를 벗으며 얼굴을 드러냈다. 유진우의 예상대로 그는 문관옥이 맞았다.“변장했는데도 알아본다고? 예상 밖이네.”문관옥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기운도 숨기고 목소리도 바꾼 상태인데 알아봤다고? 쉽지 않네.’“기운이든 목소리든 다 바꿀 수 있지만 너한테서 나는 그 역겨운 냄새는 숨길 수 없거든.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어.”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당장 죽게 될 놈이 입은 잘 놀리네!”문관옥은 어두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유장혁, 넌 우리한테 포위당했어. 도망치려고 해도 쉽지 않을 거야. 그래도 우리 구면이긴 하잖아? 그러니까 옛정을 생각해서 너한테 자살할 수 있는 기회 정도는 줄 수 있어. 죽는다고 해도 체면을 지키면서 죽는 게 좋지 않겠어?.”유진우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비웃으면서 입을 열었다.“도망친다고? 너희들이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예전에 옥면 산장에서 소란이 일어났을 때, 문관옥의 부하들을 살려준 건 문설봉의 체면을 봐서였다.하지만 이젠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기에 더 이상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부하들까지 데리고 공격하러 온 더 이상 아무런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그때, 문관옥이 냉
“휭!”강렬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위력이 놀라운 창궁검은 결국 유태범의 머리 위에 멈췄다. 사람과 검의 거리는 불과 몇 센티미터.유태범은 그 검에서 퍼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을 뚜렷이 느끼며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등 뒤에는 차가운 땀이 흘렀다. “이리 와!” 유진우는 검을 다시 당겼고 날아간 창궁검이 ‘훅’하는 소리를 내며 다시 검은 빛으로 변해 그의 손에 돌아왔다. “삼촌이 졌어요.” 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유태범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든 깊은 상실감이 떠올랐다.그는 어릴 때부터 무공을 익혔고 날마다 꾸준히 노력해 왔다.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게다가 그는 수련에 대한 타고난 재능이 뛰어나 마흔이 넘은 나이에 이미 마스터 경지에 이르렀다. 서경 전역을 보더라도 그의 실력은 으뜸가는 존재였다.그는 자신이 깊은 내공과 풍부한 전투 경험으로 충분히 안정적으로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조금 전 유장혁의 세 번의 검을 보고 그는 두 사람 간의 실력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비록 그는 목숨을 걸고 유씨 가문의 술법을 사용했지만 유장혁에게 한 점의 상처도 입힐 수 없었고 오히려 상대에게 손쉽게 무너졌다. 이 충격은 그에게 너무나 큰 타격이었다. 그가 자랑스럽게 여겼던 천부적인 재능이 유장혁 앞에서는 그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삼촌의 실력은 이미 대단하셔요. 서경뿐만 아니라 용국 전체를 봐도 삼촌을 이길 사람은 많지 않아요.”유진우가 조용히 말했다. “위로는 필요 없다. 졌으면 졌다고 인정하는 수밖에. 아직 지면 안 되는 정도까지는 안 왔어.” 유태범은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삼촌, 우리 사이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해요. 그저 저한테 진신을 말해 주시고 호룡각의 잔존 세력이 어디에 있는지만 알려주시면 더 이상 난처하게 하지 않을게요.”유진우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유태범은 아무 말 없이 유
유진우는 천천히 창궁검을 들어 검끝을 바로 앞에 있는 유태범을 향해 겨눴다. “두 번째 검, 파군!” 말이 끝나자마자 유진우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사람과 검이 하나가 되어 검은 빛의 일격으로 변하며 유태범에게로 급격하게 돌진했다. 이번 검은 천지를 흔들지도 사람의 마음을 얼어붙게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지도 않았다. 다만 유일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바로 빠르다는 것. 극단적인 속도였다. 눈 깜짝할 사이 검은빛은 수십 미터의 거리를 단숨에 가로질러 유태범의 가슴 바로 앞에 나타났다. “뭐지?” 유태범은 순간적으로 눈이 커지며 반응할 새도 없이 본능적으로 호체 강기를 일으켰다.“펑!” 폭발적인 소리가 울려 퍼지며 검은빛은 유태범의 방호막에 강하게 부딪혔다. 그 속에 숨어 있던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순식간에 폭발했다. 원래는 무적 같았던 방호막이 지금은 유리처럼 순식간에 터지며 아무 저항도 하지 못했다.방호막이 산산조각 나고 검은빛은 그 세력을 멈추지 않고 유태범의 금갑에 강하게 충격을 가했다. 현금으로 만들어진 갑옷은 그 충격에 의해 깊게 움푹 들어갔다. 엄청난 충격에 유태범은 마치 폭탄처럼 하늘로 튕겨 나가며 백 미터 이상 날아가 왕부 입구의 석사자와 강하게 부딪혔다. 몇 톤이나 되는 석사자는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유태범은 입과 코에서 피를 쏟으며 얼굴은 창백해지고 전신이 부서진 것처럼 땅에 쓰러져 꼼짝하지 못했다. 이 장면을 본 모든 이들은 모두 놀라움에 휩싸였다. 진지해진 유진우가 이렇게나 강력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술법을 쓰는 유태범조차 그에게 맞설 수 없었고 단 두 방에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두 사람 사이의 실력 차이는 말 그대로 어마어마했다. “세자 전하께서 이렇게 강하셨나요? 표기대장군조차 상대가 안 된다니.” “유씨 가문의 천재라더니 정말 말 그대로군요. 이런 천재야말로 세상을 제패할 자격이 있는 것 같네요.” “대장군도 참 운이 없으셨네요. 이렇게 괴
이 순간 폭발로 생겨난 구덩이 속에서 유태범은 여전히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방호막은 점점 불안정해지며 희미하게 깜빡였고 여기저기 수많은 균열이 생겨 빠르게 번져 나갔다. 그의 머리 위로 떠 있는 거대 검은 미세하게 진동하며 계속해서 아래로 눌러대고 있었다.유태범은 마치 거대한 산이 자신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 엄청난 힘에 그의 두 손은 떨렸고 두 무릎은 점점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티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 위의 거대한 검이 내려오기만 하면 그는 분명 즉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제야 그는 유진우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깨닫게 되었다. 알고 보니 상대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았었다. 상대가 이제 제대로 나서기 시작하자 그는 그 힘을 감당하기조차 버거웠다.“악!” 죽음의 위협을 느낀 유태범이 귀를 찢는 듯한 분노의 외침을 내질렀다. 그의 몸속에서 강기가 파도처럼 뿜어져 나와 끊임없이 방호막을 강화하려 했지만 아무리 힘을 쏟아부어도 방호막의 균열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젠장! 죽기 살기로 해보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깨달은 유태범은 묵직한 소리로 외치더니 곧바로 유씨 가문의 술법을 사용했다. 순간 그의 두 눈이 새빨갛게 변했고 온몸의 근육이 순식간에 한층 더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사방팔방에서 폭발하듯 거대한 에너지가 사정없이 뿜어져 나왔다. 유씨 가문의 술법은 짧은 시간 안에 신체의 잠재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전투력을 강화하고 심지어 경계를 돌파할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다. 생사를 가르는 위기 상황에서 목숨을 구하고 적을 섬멸할 수 있는 신묘한 기술이라 불린다. 하지만 이처럼 강력한 술법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효과가 사라진 뒤 신체가 극도로 허약해진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이 술법을 사용하는 자가 제한된 시간 안에 적을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남아 있는 건 단 하나 오직 죽음의 길뿐이었다. 유태범은
“삼촌, 제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어요. 도대체 언제 대답할 건가요?”유진우의 얼굴이 점점 차가워졌다.“네 조건을 받아들일 수는 있어. 하지만 너는 나를 정당하게 이겨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유태범이 호통쳤다.서경에서 시체와 피바다를 뚫고 성장해 온 대장군으로서 그는 실력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강자가 존경받으려면 실력이 강해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었다.약자는 논리를 논할 자격조차 없었다.“좋아요. 삼촌이 승부를 꼭 내자고 하시니 들어드리죠.”유진우가 오만한 어조로 말했다.“세 번만 휘두르겠습니다. 삼촌이 모두 막아낸다면 제가 진 걸로 하죠!”“오만한 놈! 큰코다칠 것이다!”유태범은 자신이 무시당한 듯한 기분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더욱 맹렬한 공격을 쏘아부었다.하늘을 가르는 칼 빛은 마치 폭풍과 비처럼 유진우를 향해 맹렬히 몰아쳤다.유진우는 한 발 내딛고 바로 땅을 박차며 100미터 상공으로 뛰어올랐다.“첫 번째 검, 칠살!”공중에서 잠시 멈춘 유진우는 방향을 돌리며 한 손으로 검을 쥐고 머리를 아래로 발을 위로 하고 검을 강하게 내리찍었다.순식간에 창궁검에서 거대한 검은 빛이 폭발하며 쏟아져 나왔다.검은빛은 빠르게 퍼지며 금세 10미터 길이의 거대한 검을 형성했다.그 검은 차가운 살기를 내뿜으며 마치 모든 것을 삼킬 듯이 땅에 있는 유태범을 향해 내리쳤다.“응?”거대한 검에서 나오는 끔찍한 기운을 느낀 유태범의 얼굴이 굳어졌다.생각할 틈도 없이 그는 즉시 양손으로 칼을 쥐고 온몸에 강기를 두른 채 검은 하늘로 향해 맞서 쳐냈다.슉!한 줄기 금빛 검광이 번개처럼 빠르게 튕겨 나가며 거대한 검은 검광과 강하게 부딪쳤다.쾅!굉음이 울렸다.유태범의 검광은 거대한 검광에 닿자마자 폭발하며 충격파를 일으켜 사방으로 흩어졌다.반면 검은 검광은 여전히 기세가 꺾이지 않고 유태범을 향해 무겁게 내리쳤다.“뭐라고?”깜짝 놀란 유태범이 바로 검을 들고 강기를 둘러 몸에 두꺼운 방어막을 형성해 유
“조 장군님 생각은 어떠십니까?”고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망설임이 담겨 있었다.고원은 유태범의 편에 서긴 했지만 서경왕 유만수에 대한 존경심은 대단했다.유만수가 정말 죽었다면 그는 주저 없이 유태범을 따르며 반란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유만수가 살아있으니 상황은 전혀 달라졌고 그는 그 결과를 신중히 고려해야 했다.제갈영군의 말처럼 자신을 고려할 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더 신중해야 했다.“고원 장군,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어요. 유장혁의 싸움에서는 저는 대장군 쪽을 더 믿습니다. 대장군이 이길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조군영의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맞아요. 맞습니다! 대장군의 실력은 세상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어요. 유장혁 따위가 대장군의 상대가 될 수 있겠습니까?”고원이 맞장구를 쳤다.“무릉 제후, 이제 군심을 흔들지 마십시오.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승패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만약 예상 밖의 일이 생기면 당신도 혼자 살아남을 수 없을 겁니다.”조군영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는 그저 좋은 마음에 일깨워드렸을 뿐입니다. 두 분께서 제 충고를 듣지 않으신다면 저도 어쩔 수 없지요.”제갈영군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그는 더 이상 두 사람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었고 그다음이 권력과 부였다. 그 외의 것은 모두 버릴 수 있었다.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전장에서의 형세가 급변했다.유태범의 공격은 눈에 띄게 둔화하였고 유진우는 여전히 활기찬 모습으로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사실 그는 전력을 다하지 않고 유태범이 공격하도록 내버려두고 있었다.한편으로는 그를 시험하고 있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조심하고 있었다.만약 유태범이 정말 호룡각과 관련이 있다면 그의 주변에는 분명 호룡각 사람들이 숨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호룡각의 고수들이 주변에 매복해 있을 가능성도 있었고
“당연히 없죠.”은성종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사실 경천 랭킹에는 불문율이 있어요. 황실 고위 관료는 랭킹에 오를 수 없습니다.”“그러면 유태범은 경천 랭킹에 오를 수 없는 건가요? 아니면 실력 부족인가요?”장범규가 물었다.“둘 다입니다. 올라갈 수도 없고 실력도 부족합니다.”“그럼 안심되네요.”장범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경천 랭킹이 틀리지 않았다면 전하의 실력은 분명 유태범보다 강할 겁니다. 적어도 방심하지 않는다면 확실히 이길 수 있을 거예요.”주한휘가 분석했다.“그렇긴 해도 여전히 조심해야 합니다.”이의진이 중얼거리며 말했다.그녀는 유장혁의 뛰어남에 대해 마음이 복잡했다.한편으로는 유장혁이 이겨서 왕부의 체면을 세우길 바랐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이 생겼다. 만약 유장혁이 왕이 된다면 유태범처럼 그녀의 아들에게도 해를 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유천우는 유장혁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고 의지까지 하고 있었다.만약 유장혁이 마음만 먹는다면 유천우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모르고 죽을 것이었다.그 시각 유진우와 유태범은 점점 더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두 사람의 속도는 너무 빨라 보통의 장교들은 두 개의 흐릿한 그림자가 서로 교차하는 모습을 겨우 볼 수 있을 뿐이었고 때때로 나는 폭발적인 소리를 듣고 강한 충격파를 느낄 수 있었다.“벌써 이렇게 오랫동안 싸웠는데, 대장군의 실력으로는 벌써 이겨야 하는데 왜 아직도 승패가 나지 않는 걸까요?”제갈영군은 눈을 좁히며 전황을 조용히 살폈다.표면상으로는 유태범이 계속해서 공격을 주도하고 유장혁은 방어에 몰두하는 모습이었다.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유태범의 공세로 3분 안에 상대를 처리할 수 있어야 했다.하지만 지금은 여유롭게 차 한 잔 마실 정도로 시간이 지났음에도 승패가 나지 않아 정말 이상했다.“유장혁도 대 마스터 급 강자니까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죠. 대장군님도 이기려면 아마 전력을 다해야 할 겁니다.”조군영이 말했다.“지금 상황에서 전력
“왕비님 말씀이 맞습니다. 비록 세자 전하께서 뛰어나다고는 하시지만 너무 젊으셔서 유태범과 같은 노련한 상대에게는 승산이 낮죠.”한참을 생각하던 장범규가 말했다.유장혁은 천재 중의 천재였지만 유태범도 단순한 인물이 아니었다.20여 년간 더 수련했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더 컸다.그래서 누가 승기를 거머쥘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저는 다른 의견이네요.”은성종이 다시 입을 열었다.“은 제후는 세자 전하 승산이 더 높다고 생각하시나요?”주한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맞습니다.”은성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왕께서는 함부로 내기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이 상황을 예상하시고 대비를 하신 분인데 100%의 확률이 없다면 내기도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러니 저희는 왕의 판단을 믿어야 합니다.”“그렇다고는 해도 무력 대결에서는 변수가 많습니다. 특히 동급의 강자들 사이에서는 작은 실수 하나로도 전세를 뒤집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는 누구도 승패를 예측할 수 없죠.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그것까지는 예상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장범규가 반박했다.“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단순히 왕 때문만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은성종이 말했다.“그렇습니까? 어떤 이유가 있죠?”장범규가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혹시 경천 랭킹에 대하여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은성종이 갑자기 되물었다.“못 들어봤네요.”장범규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장범규는 비록 군사 경험은 풍부했지만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알고 있습니다.”주한휘가 갑자기 끼어들었다.“경천 랭킹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제일 권위 있는 랭킹이잖아요. 거기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모두 최강의 무공을 지닌 인물들이잖아요. 제가 알기로는 경천 랭킹 상위 3명은 용호산 장선기, 용각 각주 이원무 그리고 서경 검선 백준이라고 알고 있어요.”“뭐라고요? 검선 백준이 겨우 3위에요?”장범규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그의 눈에 백준은 단지 서경의
“건방지구나!”유태범이 눈을 치켜떴다.“같은 대 마스터 급의 강자인데 내가 몇십 년간 쌓아온 것이 젊은 네 놈에게 비길 수 없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삼촌께서 이렇게 고집을 부리시니 저도 더 이상 예의를 차릴 수 없겠네요. 그럼 시작하시죠.”유진우는 한 손을 내밀며 초대하는 듯한 제스처를 했다.“받아라!”유태범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발을 구르며 몸을 날려 강력한 공격을 시작했다.유태범의 칼법은 빠르고 강력했다. 그의 모든 칼은 치명적이며 모두 주요 부위를 겨누고 있었다.비록 화려한 기술은 없지만 실용적이고 빈틈이 없었다.유태범은 타고난 천재성을 바탕으로 오랜 전장의 경험과 여러 가지 정교한 칼법을 융합했다.지금의 그는 수많은 기법을 받아들여 단점을 극복해 가며 자신의 독창적인 칼법을 창조했다.그 칼법으로 그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람을 공격했다.속도는 빨랐고 공격은 정확했으며 흉포하고 당할 수 없는 기세를 내뿜었다.유태범의 강력한 공세에 유진우는 빠르게 피하며 움직였다.그는 마치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불규칙하게 이동하며 상대를 뚫을 기회를 엿봤다.두 사람은 공격을 주고받으며 치열한 공방을 이어갔다.주위 사람들은 눈을 떼지 못하고 그들의 싸움을 놀라운 시선으로 지켜봤다.전투가 너무 치열하여 사람들은 다치지 않기 위해 모두 거리를 두고 넓은 공간을 남겨두었다.두 사람은 모두 대 마스터 급의 강자였으니 한 번의 타격으로도 산을 깎거나 바위를 쪼갤 수 있었다.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건 고사하고라도 싸움의 여파만으로도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다.“유태범의 실력이 이렇게 강한 줄은 몰랐네요. 대 마스터의 수준에 도달하고 전투 경험도 풍부하니 진우도 어려운 싸움이 되겠어요.”이의진은 눈을 좁히며 전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했다.그녀는 자신의 실력으로 겨우 두 사람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두 사람의 움직임은 너무 빨라서 따라잡기가 거의 불가능했다.“유태범 저 개자식, 정말 실력을 숨겨 놓고 있었네. 10년 전만 해도 우리와
“나쁜 놈! 돌아왔으면서 계속 숨어 있다니. 내가 이렇게 너를 끌어내 오지 않았다면 네가 모습이나 드러냈겠어?”유만수가 툴툴거리며 말했다.“됐어요.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시고 죽은 척한 것도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지금은 먼저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하죠.”유진우의 날카로운 시선이 유태범을 빠르게 스쳤다.유만수는 호룡각의 잔당에게 암살을 당했고 유태범은 즉시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빼앗으려 했었다. 그래서 그는 유태범이 호룡각의 잔당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반란이든 호룡각 잔당과의 결탁이든 그의 눈에는 모두 큰 죄였다.“유장혁!”충격을 받은 유태범의 얼굴은 곧 음침하게 변했다.그는 갑자기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다.유만수는 분명히 유장혁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아까 그렇게 쉽게 승낙한 이유도 유장혁의 실력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유태범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비록 10년 만에 다시 만나지만 유장혁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뛰어난 존재로 성장했다.제갈영군을 물리친 것만 봐도 그의 실력이 평범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제갈영군의 실력은 이미 대 마스터에 근접해 있었고 전체 서경을 놓고 보더라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였다.하여 그가 제갈영군을 물리친 것만 봐도 그의 실력이 대 마스터 수준에 가까운 것을 알 수 있었다.‘20대의 나이에 대 마스터라니... 정말 무서운 재능이야.’‘오늘 유장혁을 처리하지 않으면 계속 성장할 거야. 내가 서경왕이 되어도 매일 두려움에 떨며 살게 되겠지.’대 마스터 급의 강자는 살해에 실패하더라도 쉽게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삼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습니까?”유진우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니 네가 이렇게 성장할 줄은 몰랐다. 그냥 봤으면 못 알아볼 뻔했어.”유태범은 눈매를 좁히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삼촌, 그만두세요.”유진우가 담담히 말했다.“삼촌께서 정말 뉘우치신다면 어른인 점을 고려해서 유만수에게 부탁해서 죽음만은 면하게 해드릴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