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우가 진지하게 말했다.“보성 씨, 서혼공으로 빠르게 실력을 늘릴 수는 있지만 정말 더는 갈 길이 없는 사람만이 수련하는 무공이에요. 계속 이대로 수련했다간 언젠가는 죽는다고요.”“죽기는 개뿔! 나 지금 몸이 엄청 좋아. 전보다도 훨씬 강해졌다고. 천군만마가 내 앞에 있어도 전혀 겁먹지 않아.”남궁보성이 어깨를 쫙 펴고 말했다.“겉으로 그렇게 보일 뿐 사실 속은 이미 다 문드러졌어요. 계속 수련한다면 자신을 해치는 건 물론이고 남한테도 피해를 준다고요.”유진우가 경고했다. 서혼공을 수련하여 자폭하는 게 오히려 더 좋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무서운 건 나중에 주화입마에 빠져서 가족도 못 알아보고 사람만 보면 마구 학살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봉변을 당할 사람은 바로 가족과 친구들이다. 어쩌면 어느 날 남궁보성이 남궁은설을 죽일지도 모른다.“인마, 말이면 다인 줄 알아? 오늘 아무리 뭐라 해도 절대 가만 안 둬!”남궁보성은 다시 한번 손을 뻗어 잡으려 했다. 유진우가 어두운 표정으로 반격하려던 그때 문밖에서 총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탕!총소리에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동작을 멈췄다.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우람한 체격의 한 백발노인이 부하들과 함께 위풍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사각형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했고 온몸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무척이나 압도적이었다. 이 분위기는 오랫동안 전쟁터를 누빈 사람만이 갖고 있는 그런 살기였다.슬쩍 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 그 노인이 바로 용국의 장군 남궁을용이었다.“아버지?”남궁을용을 보자마자 조금 전까지 화내던 남궁보성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옆에서 깍듯하게 인사했다.“대체 무슨 일이야? 집에서 소란 피운다는 소문이 퍼져나가기라도 하면 남들이 웃을까 두렵지도 않아?”남궁을용이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이 자식이 유나를 다치게 해서 지금 죄를 묻고 있던 참이었어요.”남궁보성이 고개를 숙이고 보고했다.“그래?”남궁을용의 시선이 유진우에게 머물
남궁을용의 열정적인 초대에 유진우는 결국 고풍적인 서재로 들어갔다. 차가 테이블 위에 놓이고 두 사람도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진우 씨, 내가 말 놓아도 될까?”“네, 그러세요.”유진우도 흔쾌히 동의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10년이 지났지? 예전보다 환골탈태한 것 같아.”남궁을용은 유진우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10년 전 유진우는 용국의 천재라 불렸고 나이가 어려 성격도 거칠고 버릇이 없었다. 그런데 이젠 실력까지 숨기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버렸다.“10년이 지났는데도 장군님은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치시네요.”유진우가 깍듯하게 말했다.“하하... 곧 관에 들어갈 나이인데 카리스마는 무슨.”남궁을용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진우 씨가 일없이 찾아오지는 않았을 테고. 갑자기 무슨 일로 왔어?”“역시 장군님이시네요. 장군님을 만나 뵙는 것도 만나 뵙는 거지만 다른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유진우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미리 준비한 선물을 상 위에 올려놓았다.“그래? 말해봐 봐.”남궁을용은 웃으면서 차를 홀짝였다.“누가 장군님께 칠색 영지를 선물했다고 들었습니다. 저한테는 아주 중요한 물건이니 혹시 제게 파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아까우시더라도 제가 고가에 사겠으니 부디 양보해 주셨으면 합니다.”유진우가 예의를 갖추면서 말했다.“칠색 영지?”남궁을용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웃었다.“벌써 알고 있을 줄은 몰랐네. 하지만 칠색 영지는 아주 귀하고 드문 보물인데 무엇으로 바꿀 건가?”“필요한 게 있으시면 무엇이든지 말씀하세요.”유진우가 말했다.“진우 씨 결혼했어?”남궁을용이 웃으며 물었다.“했었는데 이혼했어요.”유진우는 뭔가 이상했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대답했다.“그래? 아주 잘됐네.”남궁을용이 수염을 어루만지면서 웃었다.“우리 은설이 어떤가?”“은설 씨요?”유진우는 순간 멈칫했다.“참 좋은 사람이죠. 성격도 착하고 의리도 있고요.”“그렇게 생각한다니 정말 다행이야.”남궁을용이 활짝
부하는 바로 알아듣고 움직였다. 잠시 후 다시 들어왔는데 손에 정교한 나무 상자를 들고 있었다.“칠색 영지는 선물로 줄게.”남궁을용은 나무 상자를 받아 유진우에게 건넸다. 유진우가 나무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자 이상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나무 상자 안에 알록달록한 영지가 있었는데 손바닥만 한 크기에 어찌나 예쁜지 완벽한 예술작품 같았다. 조명에 비친 영지는 눈부시게 반짝였고 일곱 가지 색깔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칠색 영지 맞아요!”유진우의 안색이 환해지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남궁을용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이 귀한 걸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장군님. 정말 감사합니다.”“내가 갖고 있어봤자 쓸 일도 없으니 필요한 사람한테 주는 게 낫지.”남궁을용은 무척이나 아량이 넓은 모습을 보였다.“장군님의 은혜 꼭 갚겠습니다. 나중에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유진우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맞잡고 예를 표했다. 이리도 귀한 칠색 영지를 두말없이 넘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됐어, 그런 소리 그만하고 이따가 나랑 술이나 마시자고.”남궁을용은 조금도 마음에 담아 두지 않는 것 같았다.“네, 오늘 저랑 마음껏 마시죠.”활짝 웃던 유진우는 뭔가 떠오른 듯 불쑥 말했다.“아 참, 장군님, 하나 귀띔할 게 있어요. 최근에 들은 정보인데 장군님 생신날에 아무래도 누군가 수작을 부릴 것 같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전에 황성태에게서 들은 정보인데 오늘 직접 온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이젠 뭐 그런가 보다 해. 매년 갖은 방법으로 날 귀찮게 해서 진작 적응했어.”남궁을용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용국을 지키는 장군인 그는 오랫동안 전쟁터를 누비면서 수많은 적과 싸웠다. 전 세계에 남궁을용이 죽길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각종 암살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게 없는 그는 두려움이라곤 없었다.“장군님 알고 계셨다면 됐어요.”유진우는 고개만 까딱일 뿐 더는
그 시각 장군 저택의 어느 한 고급 정원.화려한 복장 차림에 몸이 왜소한 한 젊은 남자가 남궁보성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도련님, 이번에는 무슨 일로 이렇게 친히 오신 거죠?”남궁보성은 웃으면서 젊은 남자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주었다.“고마워요.”서문천명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어르신의 명성을 오래전부터 들었습니다. 오늘은 그저 어르신과 친구가 되고 싶어서 이렇게 불쑥 찾아왔습니다.”용국말이긴 했지만 어조가 조금 이상했다.“천명 도련님, 본심은 그게 아닌 것 같은데요?”남궁보성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할 얘기 있으면 바로 하세요. 툭 털어놓고 얘기하자고요.”“어르신 역시 시원시원하네요.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겠습니다.”서문천명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맞잡고 말했다.“오늘은 사실 장군님을 뵈러 왔어요. 그런데 장군님이 하도 바쁘셔서 만날 시간이 없다고 하더군요. 가능하다면 어르신께서 저 대신 말 좀 잘해주시겠습니까?”그가 손을 흔들자 부하가 긴 나무 상자를 가져왔다. 대략 130cm 정도 되는 길이였는데 열어보니 외관이 화려한 다치였다.서문천명은 다치를 꺼내 남궁보성에게 공손하게 건네며 말했다.“어르신, 이건 우리 금오국의 10대 명도 중 하나인 뇌절입니다. 강철도 아주 쉽게 벨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운 칼인데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어요. 칼을 한번 휘두르면 위력이 어마어마해서 우리 금오국의 많은 무사들이 꿈에 그리는 보물이랍니다. 물론 이런 명도는 당연히 어르신 같은 영웅께만 어울리죠. 약소하지만 받아주세요.”서문천명이 건넨 칼을 보자 남궁보성의 두 눈이 번쩍 뜨였고 호흡마저 가빠졌다.뇌절이라는 이름을 오래전부터 들어본 적이 있었다. 금오국의 명도인 뇌절은 그 가치가 돈을 주고 살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서혼공을 수련한 후로 남궁보성의 실력이 수직상승했고 마침 이런 무기가 필요했다. 참으로 알 맞춤한 타이밍에 나타났다.“도련님도 참, 뭘 이런 걸 다... 이리 귀한 걸 제가 어찌 덥석 받겠어요.”
“장군님께서 칠색 영지를 이미 다른 사람한테 선물했답니다.”주씨 아주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다른 사람한테 선물했다고? 누구?”남궁보성의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졌다.“유진우라는 젊은이에게 줬답니다.”주씨 아주머니가 사실대로 말했다.“뭐? 그 자식한테 줬다고?”남궁보성이 눈살을 찌푸렸고 안색이 훨씬 어두워졌다.‘칠색 영지 같은 귀한 보물을 그런 놈한테 줬다고? 우리 아버지 노망나셨나? 아무리 은설이 목숨을 구해줬다고 해도 그렇지, 이미 돈 다 줬는데 이렇게까지 잘해줄 필요 있어?’“다시 가져올 수 있겠어?”남궁보성은 내키지 않았다. 조금 전 서문천명 앞에서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만만하게 얘기했는데 이렇게 빨리 문제가 생길 줄은 몰랐다.“장군님 성격 아시잖아요. 이미 준 물건은 절대 다시 달라는 분이 아니라는 거요.”주씨 아주머니가 부정했다.“X발, 그 자식 대체 무슨 재주로 그 귀한 보물을 얻었대?”남궁보성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어르신, 유진우가 누굽니까? 누구이기에 장군님께서 이리도 중히 여기시는 거죠?”서문천명이 떠보듯 물었다.“아무 이름 없는 놈인데 내 딸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거든요. 그때부터 아버지가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남궁보성이 설명했다.“그렇다면 전 칠색 영지와는 인연이 없는 건가요?”서문천명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꼭 그런 건 아니지만...”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남궁보성이 눈알을 굴리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대놓고 가져올 수 없다면 뒤에서 몰래 빼앗으면 되죠. 유진우 그 자식 별거 아니니까 서문 가문이라면 칠색 영지를 빼앗아오는 것쯤은 어렵지 않을 거예요.”“빼앗는다고요?”서문천명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장군님과 돈독한 사이라면서요? 제가 그런 짓을 하면 장군님께 밉보이는 게 되지 않을까요?”“우리 둘만 입 다물면 누가 안다고요.”남궁보성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그리고 우리 아버지도 잠깐 이러실 거예요. 빈털터리 하나 때문에 야단법석을 떨진 않을 거니까 도련님도 걱정
이튿날 아침.유진우는 풍우 산장의 일을 간단하게 안배한 후 차를 타고 강능으로 향했다.칠색 영지까지 손에 넣었으니 영약을 전부 다 구했다. 이젠 모든 준비가 끝났다.주정뱅이 영감이 하루하루 못해져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여 하루빨리 수명단을 만들어서 마음의 걱정거리를 덜어야 했다.차를 한참 동안 타고 나서야 드디어 평안 의원에 도착했다.그 시각 의원은 평소처럼 아주 조용했다. 주정뱅이 영감은 술에 잔뜩 취한 채 술 냄새를 풍기면서 의자에 누워있었다.임윤아는 여전히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고 여기저기 닦거나 빨래도 하고 밥도 했다. 임윤아의 손길이 닿은 의원은 깔끔 그 자체였다.검밖에 모르는 왕현은 마당에서 검을 훈련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예전에는 빠른 검을 훈련했다면 이젠 늦은 검을 훈련했다. 보기에는 평범한 검법이었지만 사실은 실력을 감춘 어마어마한 검법이었다. 전보다 완전히 달리진 모습이었고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정도로 강해졌다. 그동안 왕현의 실력이 아주 많이 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슉!왕현이 검 훈련에 몰두하고 있던 그때 은침 하나가 날아와 그의 가슴팍을 찌르려 했다. 왕현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검을 휘둘러 은침 끝을 정확하게 가격했다.쨍!은침이 순식간에 날아가 바닥에 꽂혀 종적을 감추었다.“누구야? 나와!”왕현이 장검을 들고 나무 한 그루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허허, 몇 달 사이에 실력이 아주 많이 늘었군요.”유진우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나무 뒤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리 선천무사라도 그의 은침을 가격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진우 형님?”왕현은 순간 멈칫했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하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그러더니 장검을 휙 던지고 유진우를 와락 끌어안았다.“됐어요. 남자 둘이 이렇게 안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유진우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윤아야, 누가 왔는지 얼른 나와봐.”왕현이 집 안을 향해 소리쳤다.“유 선생님!”임윤아는 놀란 얼굴로 달
웃을 듯 말 듯 하는 유진우의 얼굴을 본 후에야 술광은 정신을 차리고 툴툴거렸다.“인마! 그렇게 할 짓이 없어? 저리 썩 꺼져.”그러고는 다시 의자에 드러누워 자려 했다.“그만 자고 일어나요. 할 얘기 있어요.”유진우는 나무 상자 두 개를 꺼내 상 위에 내려놓았다. 나무 상자 안에 천년 청련과 칠색 영지가 고이 담겨 있었다.“이번에 서울에서 수확이 꽤 컸어요. 마지막 두 영약을 다 구했거든요. 인제 수명단을 제조할 수 있어요.”“그래? 이렇게나 빨리?”술광은 느긋하게 허리를 펴고 앉았다.“며칠 남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그 귀한 영약들을 다 구할 줄은 몰랐어. 넌 정말 운도 좋단 말이지.”“쓸데없는 얘기 그만하고 전에 줬던 영약이나 다 꺼내요.”유진우가 다그쳤다.“알았어, 찾을 시간 좀 줘.”술광은 기지개를 켜더니 수납장을 이리저리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실랑이 끝에 영약들을 전부 다 찾아냈다.“왕현 씨, 문 잘 지켜요. 아무도 들여선 안 돼요.”유진우가 돌아보며 분부했다.“네.”대답을 마친 왕현은 의자를 가져와 문 앞에 자리 잡고 앉더니 두 손으로 검을 짚으면서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윤아야, 가서 약재 좀 사다 줘.”유진우는 처방전을 적어 임윤아에게 건넸다. 평안 의원은 다 좋은데 환자가 많지 않아 약재가 매우 적다는 게 흠이었다.“네!”임윤아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빨리 자리를 비웠다. 잠시 후 양손에 여러 가지 약재를 잔뜩 들고 헐레벌떡 뛰어왔다.“난 지금부터 폐관에 들어갈 건데 얼마나 걸릴지 몰라. 내가 나오기 전까지 아무도 방해해선 안 돼.”유진우는 당부의 말을 남긴 후 약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바로 수명단 제조를 시작한 게 아니라 고대 서적 한 권을 꺼내 꼼꼼히 연구하기 시작했다.수명단의 정식 명칭은 구전수명금단이다. 고대 서적의 기록에 따르면 환골탈태하고 기사회생하는 효과가 있으며 특히 오쇠 증상이 나타난 사람에게는 유일한 약이라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백
“응?”폭발해버린 단로를 본 유진우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성공할 수 있었는데 대체 왜 갑자기 폭발한 걸까? 그동안의 고생이 전부 헛되이 됐단 말인가?“말... 말도 안 돼!”유진우가 고개를 내젓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실패했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유진우는 깨진 단로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흔적과 약 찌꺼기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모습은 굶주린 늑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미치광이가 따로 없었다.한참 뒤지던 유진우가 갑자기 멈칫했다. 약 찌꺼기 맨 밑에 반짝이는 금색이 쓱 스쳤다. 주변의 약 찌꺼기와 비교해볼 때 그야말로 어두운 밤 속의 한 줄기 빛 같았고 무척이나 빛났다.유진우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손을 내밀어 금색 주변의 약 찌꺼기를 조심스럽게 털었다. 긴장한 마음을 안고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모든 약 찌꺼기를 털어냈다.드디어 완벽한 금색 단약 한 알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롱하고 동글동글한 금색 단약은 마치 황금처럼 빛이 났고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속 깊이 스며들 정도의 약 향기가 풍겼다.“성... 성공했어?”유진우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하하... 성공했어! 제조에 성공했어.”그는 한껏 흥분한 얼굴로 크게 웃었다.조금 전 단로가 폭발하여 절망에 빠질 뻔했지만 이런 결과가 펼쳐질 줄은 몰랐다. 마지막 순간에 수명단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동안 귀한 영약을 힘들게 찾아다닌 보람이 있었다.“영감님!”유진우는 약실 문을 발로 걷어차고는 수명단을 두 손으로 받들고 신바람 나게 걸어 나갔다.“이거 와서 봐봐요.”인기척에 술병을 안고 비틀거리던 술광이 고개를 돌렸다. 술광도 놀란 나머지 입을 쩍 벌렸다.“대박! 진짜로 성공했어? 사실 나 장난인 줄 알았어, 믿지 않았다고.”고대 서적에 수명단이 천인오쇠 증상을 치료할 수 있다고 적혀있었지만 그 또한 전설일 뿐이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