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건은 놀랍게도 이영의 제의를 거절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내디뎠다.유연서는 파트너로서 더욱 입을 열 권리가 없었다.윤이건이 자신의 의견을 따르자 이영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보아하니 윤이건의 맘속에 이진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만약 윤이건이 이진을 정말 아낀다면 어떻게 이진을 혼자 두고 그녀와 함께 가겠어?사실 윤이건은 일부러 이렇게 행동한 거였다.첫째, 그는 이진이 모진호를 보러 가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이 일이 이진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단 걸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둘째, 그는 이기태와 이영이 어떤 수법을 사용할지 지켜보기 위해서였다.이영을 따라가기 전 윤이건은 몸을 돌려 이진을 한번 보았는데 마치 그녀를 걱정하는 것 같았다.그는 방금 이진이 상처받은 표정을 하고 있는 걸 보았는데 만약 그들이 좀 더 심한 말을 했더라면 그녀는 전에 받았던 문자 때문에 더 이상 혼란스러워하진 않을 거다.이진은 모진호의 자료를 들고 그곳에 서서 해설원이 허풍을 떠는 것을 들었는데 참으로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이 프로젝트에 대해 그녀는 이미 현지 고찰을 마쳤기에 그중의 수로 회로에 대해 모두 훤히 알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 온 것은 그저 예상했던 수치와 비슷한지 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녀는 이기태의 얼굴을 다신 보고 싶지 않았다.“이 대표님께선 이기태 이사, 그리고 이영 씨와 가족이 아닌가요? 왜 이렇게 사이가 안 좋으신 거예요?”임만만은 방금 보았던 이진의 모습은 그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기에 그녀의 굳센 모습 속에 어떤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 건지 궁금해났다.임만만은 종래로 가십을 떠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이진을 따라다니기 시작한 후부터 그녀는 완전히 이진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막 졸업한 대학생으로서 그녀는 정말 대단한 인물들을 알아가고 싶거나 그들을 우상으로 여기고 싶었다.“언제부터 가십거리에 관심이 생긴 거야?”임만만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이진은 다소 의아했지만 나
윤이건의 시선이 여전히 환청에 머물러 있자 이기태는 몇 초 동안 망설이더니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얼른 앞으로 나가 두 손을 비비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었다. 손에 식은땀이 가득하자 그는 미끄러워진 두 손을 맞잡을 수 없어 더욱 초조해졌다.“윤 대표…….”이기태는 너무 긴장되어 더 이상 친한 척을 하지 않고는 오히려 호칭을 바꾸었다.“혹시 정말 환청에 관심 있는 건가? 환청은 얼마 전에 우리 회사에서 이미 사람을 파견하여 현지 고찰을 마쳤었어.”“그래요?”침묵하던 윤이건이 갑자기 입을 열자 이기태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정말이지. 하지만 우리가 발견한 환청의 실제 상황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차이가 있더라고.”이기태는 윤이건의 뒤로 한걸음 물러서더니 그가 보지 못하는 위치에서 이마의 식은땀을 슬쩍 닦았다.“차이가 있는 게 정상이 아닌가요?”윤이건이 말을 하다가 갑자기 몸을 돌렸는데 이기태가 몰래 한숨을 쉬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그는 마음속으로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그는 오히려 자신의 장인이라고 자칭하는 이기태가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보려고 했다. 이런 사람이 이진의 아버지라니 참으로 웃긴 일이었다.이진이 생각나자 윤이건은 걱정되어 그쪽을 바라보았는데 이때 또 말소리가 들려왔다.“조금 차이가 있는 건 정상이지만 환청 프로젝트의 차이는 엄청나거든.”이기태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그는 윤이건이 이 프로젝트에 투자하도록 내버려 둬선 안 되기에 어떻게든 그를 막아야 했다.그리고 옆에 있던 이영은 이기태의 말을 듣자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는 얼른 윤이건의 곁으로 가서 이기태를 도와 함께 설득하기 시작했다.“이건 오빠, 환청 프로젝트는 정말 별로라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다른 프로젝트를 보러 가볼까요?”아예 부녀가 함께 나서기 시작했다.윤이건은 그들의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해 입꼬리를 올렸지만 눈빛은 그대로였다.한편 이영이 합류하자 윤이견의 곁에 서 있던 유연서의 자리가 없어져 버렸다
몇 분 후, 윤이건은 사람들 속에서 유연서가 자신의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어디 다녀온 거야?”유연서가 그의 곁에 도착하자마자 윤이건이 묻자 유연서는 마음이 따뜻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나한테 관심이 있긴 한 가봐.’“그냥 좀 돌아보고 있었어, 걱정시켜 미안해 이건 오빠.”윤이건은 유연서를 보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보았더니 구석에서 매서운 눈빛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그 눈빛은 유호진이 보내온 것인데 그가 유연서를 데리고 걸어온 거였다. 하지만 유연서의 신분 때문에 그는 가까이 다가오진 않았다.시간이 지날수록 쌓인 원한과 분노가 넘쳐났기에 윤이건을 보자 그는 앞으로 나가 그와 한판 뜨고 싶었다.바로 이때 경매장 사방에서 경매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 오래 기다리게 해 죄송합니다. 지금 경매가 정식으로 시작됩니다.”윤이건은 이 말을 듣자 더 이상 유호진을 쳐다보지 않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모든 그룹의 책임자들은 메인 연회장으로 돌아와 다시 원래의 자리에 착석했다. 모든 사람이 자리에 앉은 걸 경매사가 일일이 확인한 후에야 경매는 비로소 정식으로 시작되었다.모든 경매의 방법과 절차는 기본적으로 모두 같았으면 관계 측조차도 이상한 점이 없었다.처음에는 작은 프로젝트나 비교적 인기 없는 구역들이었지만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있었고 그것들은 대략 두세 번 가격을 부른 후 바로 낙찰되었다.대략 한 시간 정도 지난 후에야 모진호 프로젝트의 경매가 시작되었다.모진호는 이번 공식 경매에서 핫한 프로젝트였고 규모가 비교적 큰 경매라고 할 수 있었다. 모진호 프로젝트에 감히 투자하려는 사람은 몇 명 없는 데다가 경매를 하려는 사람들은 보통 협력을 하기로 했다.심지어 어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이 돈을 더 쓰는 걸 보고 싶어 했다.모진호 프로젝트에서 제시한 첫 가격은 이전 프로젝트의 가격보다 두 배 더 많았다.원래 관심 있던 사람
그가 숨어서 가격을 부르는 것을 보자 이진은 눈살을 찌푸렸다.모든 사람들은 궁금해서 고개를 돌려 그 룸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그곳은 잘 가려져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그리고 얼마 후 그들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남자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가격 인상.”또 한 라운드가 지나자 이진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였다.“룸에 계신 분께서 또 가격을 인상하셨는데, GN 그룹에선 계속 가격을 인상하실 건가요?”경매사는 경매 방망이를 든 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인상.”이진은 다시 한번 팻말을 들고는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그 익숙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200만 원 인상.”3라운드가 지난 후 이진은 기분이 약간 불쾌했다. 그녀는 이 사람이 마치 일부러 자기한테 도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녀가 가격을 인상할 때마다 이 사람은 매번 그녀보다 200만 원만 더 불렀다.“뭐지…….”이진은 이를 악물더니 저도 모르게 조바심을 드러냈다.지나치게 집중한 이진은 한쪽에 앉은 임만만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사실 이진이 가격을 부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임만만은 줄곧 그녀의 표정을 살펴보더니 1분 간격으로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편집해 누군가에게 보냈다.사실 초조한 사람은 이진만이 아니었다. 뒤에 앉아있던 이기태도 불안해 미칠 것만 같았다. 이기태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얼굴이 몹시 흉해 보였다.“빌어먹을,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놈이야.”이기태는 이진이 계속 팻말을 드는 것을 보고는 분명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마지막에 이진이 이 프로젝트를 따낸 다면 그 돈들은 모두 그의 것이 될 거다.하지만 계속 이대로라면 모를 일이었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기절했을 거다.장면은 순식간에 과열되어 구경하던 책임자들도 숨을 죽이고 지켜보기만 했다.경매사가 낙찰을 부르려고 한 찰나 자리에서 또 누군가가 팻말을 들었다.“가격 인상.”이진이 고개를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모진호 프로젝트의 최종 소득자입니다.”경매사의 소리와 함께 모진호 프로젝트의 경매는 마침내 끝났다.이로써 이번 모진호 프로젝트 경매의 최종 낙찰 가격은 올해 들어 가장 높은 가격이었다.그녀는 당황하는 것보다 의심스러운 느낌이 더 들었다.‘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사람이기에 아무런 징조가 없었을까?’방금 그 사람이 가격을 부르는 말투는 마치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얼마를 써서라도 반드시 얻으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그녀는 그 사람이 가격을 부르는 소리를 떠올리며 고개를 숙이고는 손에 든 경매 팻말을 가지고 놀았는데 여전히 의혹스러웠다.이진과는 달리 이기태 일행은 완전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이미 다 계산해 놓은 일에 갑자기 이상한 놈이 나타나다니.’심지어 그는 별 공을 들이지도 않은 채 모진호 프로젝트를 빼앗아 갔다.그러나 아직 환청 프로젝트가 시작되지 않아 그들은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화가 미친 듯이 치밀어 올랐지만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다.주위에는 많은 기자들이 앉아있었는데 모두 이상한 눈빛으로 룸 안을 지켜보았고 모두 자리에 앉아있기 힘들어 보였다.경매장에 말도 안 될 만큼 돈 많은 놈이 갑자기 나타났기에 그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이때 현장의 사회자는 프로젝트 간판을 그에게 건네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얼른 달려들어 그를 취재했다. 그러나 사회자는 간판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 룸에 들어서더니 몇 초 안되어 다시 되돌아왔다.사회자는 손에 간판을 들고 있었고 얼굴은 온통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이번에는 이진뿐만 아니라 윤이건도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눈앞에서 일어난 일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갈피를 못 잡게 했다.사회자는 다시 경매장으로 돌아오더니 바로 무대 위로 올라가 경매사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했다. 그러자 경매사도 사회자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경매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마이크를 쥐고는 가볍게 기침을 했다. 그는 그제야 입을 열었는데 여전히 뭔가 확실해 보이지 않았다.“방금 그
임만만이 정신을 차렸을 때 이진은 이미 각종 계약에 서명을 마쳤다.이진은 무대에서 내려온 후 손에 든 계약서를 보더니 방금 발생한 모든 것들이 꿈만 같다고 느꼈다.원래 큰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도 투자하지 않은 채 이런 큰 선물을 받게 되다니.사실대로 말하자면 이진은 마음이 불안하기만 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받은 이상 분명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그녀는 마치 알 수 없는 무언가에게 묶인 것 같았고 벗어날 방법조차 없었다.“대표님…….”다시 자리에 앉자 임만만이 생각에 빠진 이진을 불렀다.“왜?”이진은 아마 임만만도 모든 게 꿈만 같다고 생각하고는 흥분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임만만은 신비로운 표정을 짓더니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대표님께 말씀드려야 할 게 있어요.”‘뭐지?’이진은 이 말을 듣고 멍하니 있다가 임만만을 훑어보며 되물었다.“급한 일이야? 아니라면 회사에 돌아간 후 다시 얘기해.”이진은 말을 마치고는 임만만의 머리카락을 만지더니 그제야 불안한 생각을 억누를 수 있었다.이때 이진의 옆에 앉아있던 윤이건의 표정은 좀 어두웠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건지 알 수 없었다. 신비로운 이미지를 한 건 둘째치고는 분명 GN 그룹과 관련이 있는 사람일 거다.신비로운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유독 GN 그룹과 관련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머리가 복잡했다.옆을 돌아보니 똑같이 의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이진을 볼 수 있었는데 분명 그녀도 누구인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윤이건의 복잡한 마음과는 달리 유연서는 이진이 너무 부러웠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는 둘째치고 이렇게 목숨을 걸고 모진호 프로젝트를 손에 넣고는 이진에게 양도하다니.이 점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질투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유연서는 윤이건의 비서이자 파트너로서 그저 묵묵히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행동도 해서는 안 됐다.하지만 이영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이진은 GN 그룹의 대표가
모두 GN 그룹에서 이 돈을 감당하지 못하더라도 이진의 배후에는 AMC가 버팀목으로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들은 모두 빈틈을 파고들 생각을 하며 이진이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포기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은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지금 그녀는 GN 그룹의 대표로 나선 것이 아니었기에 자금이 보장되진 않았다. 이진은 이 모든 것들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계속 가격을 높였다. 누가 봐도 그녀는 오직 이기태를 무난하게 만들기 위해 가격을 부르는 것이었다.이기태는 이를 악물고 있었는데 그의 마음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아빠, 괜찮겠어? 정 안 되면 그만해, 혹시라도…….”이영은 상황을 지켜보더니 손바닥엔 땀이 가득했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녀는 이기태가 환청 프로젝트를 인수하려는 가격이 얼마인지 알고 있었는데 이미 예상한 금액을 너무 많이 넘어서 다 못해 예상했던 금액의 두 배 남짓했다.만약 정말 GN 그룹을 떠나 이 프로젝트를 쟁탈하려 한다면 분명 모든 것을 잃게 될 거다. 이영이 어쩌다가 정신을 차려 말리기 시작했는데 애석하게도 그의 아버지는 이미 눈이 돌아갔다. 그는 이영의 말을 전혀 듣지 못했는데, 만약 들었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 도리어 그녀를 혼냈을 거다.지금 이기태는 이진의 뒷모습만 봐도 치가 떨렸다. 심지어 이기태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이 불효한 X, 감히 친아버지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니!”그녀를 욕하는 목소리는 낮았고 온통 심한 말들만 가득한 데다가 이기태의 이마에는 핏줄이 돌출되여 매우 험상궂었다.10여 라운드가 지나자 가격을 부르는 사람은 이진과 이기태 둘뿐이었다.모든 사람들은 재밌는 연극이라도 보는 듯했다.부녀 지간에 한 프로젝트를 가지고 쟁탈하는 것을 보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이기태 씨께서 또 천만 원을 추가하셨습니다. 이진 아가씨 께서도 더 추가하실 건가요?”윤이건은 다리를 꼰 채 계속 이진의 옆모습
경매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이진이 경매 도중에 떠나는 것을 알아차렸다.일부 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에 의혹스러워했지만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오늘 경매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프로젝트를 손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무료로 받기까지 했으니 더 이상 경매장에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을 거다.자리에 앉아 있던 윤이건은 이진이 떠나는 것을 보더니 그녀를 따라 경매장을 나섰다.만약 이진이 이번 경매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윤이건도 참가하지 않았을 거다. 그가 오늘 온 것은 이진이 모진호 프로젝트를 얻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이게 바로 그가 방금 경매에 참여한 이유다. 한 걸음 물러서서 말하자면, 그가 모진호 프로젝트를 손에 넣었다고 해도 나중에 방법을 써서 이진에게 넘길 것이다.다들 윤이건과 이진의 사이가 좋지 않은 걸로 알고 있었기에 지금 그들의 모습에 다소 의아했다.“윤 대표님께선 이진 씨를 싫어하신다고 하지 않았어? 왜 따라가 신 건지…….”말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주인공들은 이미 경매장을 떠났다.이때 이진은 이미 경매장 바깥으로 나와 지하 주차장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아마도 본능 때문인지 그동안의 경험 때문인지 그녀는 온몸에 닭살이 돋기 시작했는데 마치 뒤에서 누군가 그녀를 따라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옆에서 그녀를 따르던 임만만은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한 채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안달이었다.“대표님…….”임만만은 말을 하더니 이진의 손을 덥석 잡았다.이진은 그제야 임만만이 경매장에서 자신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참, 방금 경매장에서 뭐 말하려고 하지 않았어?”이 말을 듣자 임만만은 눈을 가늘게 뜨며 싱글벙글 웃기 시작했다.“네, 대표님께선 그 신비한 경매인이 누군지 궁금하진 않으세요?”임만만의 갑작스러운 말에 이진의 방금 불안했던 마음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말았다.이진은 눈을 크게 뜨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임만만한테 진지하게 물었다.“그 사람이 누군지 아는 거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사실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