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 내내 유연서는 밥이 코로 넘어가는 기분이었다.분명 평소에는 먹기도 어려운 귀한 음식들이었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고무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그리고 겨우 식사가 끝나자 유연서는 윤이건을 따라 2층 서재로 향했다.이진도 마침 휴식할 생각에 위층으로 올라갔지만 도중에 하필이면 유연서와 마주치게 되었다. 마치 주권이라도 행다하는 듯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며 경계하는 유연서를 보자 그녀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대체 정신 연령에 어느 단계에 멈췄는지 의문이었다.한편, 서재. 테이블 앞에 앉아 유연서를 빤히 쳐다보는 윤이건의 표정은 약간 멍해있다.유연서의 화상이 그저 뜨거운 물에 데인 상처라는 걸 안 순간부터 유연서에 대한 그의 마음은 조금씩 변했다.“이건 오빠, 전에 나 회사 출근하라고 하던 건 어떻게 됐어? 나 앞으로 무슨 일하면 돼?”유연서의 말에 윤이건은 흠칫 놀랐다.그때 그가 이 요구를 동의한 건 그저 이진을 얼른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뇌를 거치지도 않고 한 약속이었다.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확실히 너무 뜬금없는 부탁에 동의했다 싶었다.“내가 내일 인사팀에 얘기해 놓을게. 잠시 동안은 먼저 비서 일을 맡으면 돼.”그 말에 유연서는 기분이 날아갈 듯 기뻤다. 비서는 아무래도 윤이건의 옆에 붙어있기에 그를 매일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그러면 오늘 시간도 늦었는데…….”“응, 내가 기사님한테 말해뒀어. 너 안전하게 집까지 모시라고.”솔직히 오늘 밤 집에 머물고 싶다는 뜻으로 말을 꺼낸 거였는데 윤이건은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못 알아들은 척하는 건지 너무나 당연하다는 말투였다.그리고 곧바로 비서를 불러오는 걸 보자 유연서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음날, 유연서가 YS 그룹에 출근도장을 찍은 뒤 신입 비서가 왔다는 소문이 인사팀에서부터 회사 전체에 퍼졌다.“갑자기 회사에 사람을 꽂는 일이 흔하긴 하지만 처음부터 비서직은 처음 있는 일 아니에요?”“그것뿐인 줄 알아요? 그 유연서라는 신입 회사 출근할 때도
대답 대신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케빈을 보자 이진은 가볍게 웃으며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그녀가 향한 곳은 당연히 YS 그룹이었다.솔직히 웃긴 건, 일적으로도 사적으로도 그녀가 YS 그룹에 발을 들여놓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때 마침 유연서는 서류 뭉치를 들고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윤이건을 찾으러 가려던 그때 마침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부탁 좀 할게요. 혹시 프로젝트 매니저님께 연락해 줄 수 있어요? 일적으로 얘기할 게 있어서요.”가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진이었다.그녀는 그 시각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프런트 데스크 직원과 얘기하고 있었다.“이진 씨?”이진이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려 할 때 이 비서가 마침 그녀에게 다가왔다.“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혹시 윤 대표님 찾으러 오셨어요? 제가 보고드릴까요?”비서가 당연하다는 듯 꺼낸 윤이건의 이름을 듣자 이진은 잠시 동안 머뭇거렸다.그녀가 오늘 YS 그룹에 온 건 일 때문이지 다른 목적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윤이건이 그녀가 이곳에 왔다는 것마저 모르길 바랐다.하지만 거절의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비서는 당연히 그녀가 동의한 줄 알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났다.하지만 윤이건에게 보고하려고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 쪽으로 다가갔을 그때, 그 앞에서 유연서와 마주치게 되었다.“이 비서님, 방금 보니 이진 언니가 온 것 같던데 혹시 이건 오빠 찾으러 왔대요? 저 마침 이건 오빠 찾으러 가던 참이었는데 제가 대신 보고드릴까요?”잠시 망설이며 난처해하는 이 비서를 보자 유연서는 낯빛이 확 변하더니 날카로운 말투로 따져 물었다.“왜요? 혹시 제가 그렇게 간단한 일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그 말에 이 비서는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그는 윤이건과 가장 가까이에서 지내온 부하이기에 당연히 유연서가 자기 대표한테 어떤 사람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때문에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거절하지 못했다.“
직원의 말에 이진은 화가 나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솔직히 말해서 이 회사에 좋은 분위기랄 것도 없어 보이는데요?”이진은 화를 참을 생각이 없었다. 참아야 할 이유도 없었고.눈썹을 치켜뜬 채 빤히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거절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듯했다.그 아우라만으로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이미 잔뜩 겁을 먹고 유연서를 바라봤다.그리고 상대의 눈빛을 받은 유연서는 그녀를 속으로 쓸모없는 년이라고 욕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어째 됐건 이런 상황에서 좋은 사람인 척 분위기를 풀어야 했으니 말이다.“이진 씨, 프런트 데스크 직원과 이렇게 싸울 필요는 없지 않나요? 속이 너무 좁은 거 아니에요?”“그렇다면 유연서 씨 뜻은 같 잖은 사람한테 무시 당해도 그저 웃어넘겨야 한다 그 말이에요?”이진의 눈빛은 유연서의 웃는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하지만 그 가식적인 웃음만 보면 온몸에 소름 돋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이진 씨, 그건 너무 억지 아니에요? 여기 YS 그룹이에요.”“그래서요?”이진은 이를 갈며 겨우겨우 잇새로 한 마디를 토해냈다. 마지막 남은 인내심도 이젠 모두 바닥났다.“그러니 윤 대표님 마음 하나 돌리겠다고 이렇게 찾아와 직원에게 진상 부리는 짓은 삼가 주셨으면 해서요.”‘돌고 돌아 또 윤이건이었어?’이진은 너무 어이없이 이젠 체념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유연서의 일편단심에 감탄했다.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귀찮아 방금 꺼내다 만 명함을 다시 꺼내 프런트 데스크 위에 올려놓았다.“저 AMC 대표 이진입니다. YS 그룹에 찾아온 건 프로젝트 매니저님을 찾아온 거고요.”이진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홀에 있는 프런트 직원들은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하나둘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유연서의 낯빛도 이미 새하얗게 질렸다.‘저 여자 의사 아니었어? 그런데 그 베일에 싸인 회사 대표라니?’하지만 이내 주먹을 힘껏 그러쥐며 마음속 분노를 가라앉히더니 다시 입꼬리를 올렸다.“이진 씨, 명함은 진
회사 대표의 말에 의심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아무리 아니라고 한들 대표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높은 분을 몰라뵙고…….”방금까지 큰소리치던 직원은 이미 얼굴이 잿빛이 되어 목소리마저 떨렸다.하지만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을 때, 이진이 계약서를 다시 손에 들며 입을 열었다.“황 매니저님…….”담담한 한마디에 깃든 뜻은 아주 명확했다.이진의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와 싸늘한 눈빛을 보자 윤이건의 눈에는 일순 감탄의 빛이 언뜻 지나갔다.하지만 눈빛이 황 매니저를 향했을 때 미간에는 싸늘한 기색이 맴돌았다.“잔금 모두 메워요.”이진은 윤이건을 힐끗 바라봤다. ‘뭐 아예 쓸모없지는 않네.’지금껏 그렇게 오랫동안 돌아다닌 걸 생각하면 차라리 대표실로 직접 찾아가 직접 해결하는 게 더 효율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홀에는 일순 침묵이 흘렀다.옆에서 구경하던 직원들은 윤이건을 보자 하나둘 제 자리로 돌아갔다. 대표님에게 찍혀 보너스를 받지 못하면 안 되니까.하지만 황 매니저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자 이진은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보아하니 이번 사태가 간단한 건 아닌 듯싶었다.역시나 황 매니저가 휘청거리더니 기어들어갈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게, 돈이 모자랍니다…….”“뭐라고요?”매니저의 말에 윤이건은 화가 난 듯 언성을 높였고 이진은 곧바로 계약서를 덮었다.이것도 사실 예상했던 일이었다.그렇지 않다면 YS 그룹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계약금을 연체할 배짱이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대표님, 죄송합니다. 이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몇 분 전만 해도 위세를 떨던 매니저는 고양이 앞에 놓인 쥐처럼 벌벌 떨었다.더욱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굴었다.“인사팀에 가서 퇴사 수속 밟으세요! 앞으로 YS 그룹의 그 어떤 계열사도 들어갈 수 없을 겁니다!”그 결정에 황 매니저는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물론 업계에서 매장된 수준은 아
“이번 일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에요?”YS 사무실 내에서 이진은 소파에 앉아 담담한 눈빛으로 윤이건을 바라봤다.“프로젝트 매니저 건은 빠른 시간 내에 조사해 볼 거고 연체된 비용은 즉시 보충할게.”이에 윤이건은 차 두 잔을 따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이진을 슬쩍 훑었다.처음 보는 이진의 오피스룩 차림에 윤이건은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약간의 카리스마가 섞여 있는 동시 여전히 아름다움을 겸비하고 있었다.“좋아요. 그러면 소식 기다릴게요.”하지만 이진은 윤이건이 건넨 찻잔 둘레를 슬쩍 만지더니 입에는 대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윤이건은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서서더니 아쉬운 듯 입을 열었다.“점심 같이할래?”“윤 대표님, 우리처럼 작은 회사의 돈도 연체했으면서 밥얘기가 나오나요? 저는 돈이 없을뿐더러 먹고 싶은 마음까지 없어서요.”이진의 이 한마디 덕에 이틀 뒤 이 일은 그나마 해결되었다.이진은 사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고 있을 그때, 케빈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왜 그래? 복권이라도 주웠어? 아니면 여자 친구를 주었나?”케빈이 그 자리에 굳는 모습에 이진은 피식 웃었다.“보스는 항상 보면 저만 놀린다니가요!”말하는 동시 케빈은 손에 든 계약서와 수표 한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보스, 그 프로젝트 매니저는 이미 감방 갔대요. 투자 비용을 글쎄 개인 용도로 감춰놨더라고요. 그리고 나머지는 여기에 있어요.”하지만 수표를 힐끗 보니 연체된 금액보다 돈이 더 많은 게 아니겠는가?그리고 고개를 들어 케빈을 보는 순간 그가 오늘 왜 유독 기뻐하는지 알아차렸다.“나머지 연체 금액은 윤 대표님이 다 메웠어요. 그리고 전에 계속 돈을 연체해 프로젝트에 지장을 줬다고 조금 더 보내줬어요.”‘일 처리 하난 참 빠르단 말이지.’수표를 손에 쥔 이진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다.‘오늘 저녁 고기 국수나 해줄까? 이젠 파트너 관계도 됐겠다 너무 싸늘하게 대할 필요는 없으니까.’“아 참, 이
윤이건도 민시우가 자기를 비꼰다는 걸 알아챘지만 그도 사실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이건 뭐 이진이 지금껏 너무 꽁꽁 숨긴 걸 탓할 수도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자기를 탓할 수밖에 없었으니.“내가 언제 솔로였던 적 있어?”오히려 되돌아온 윤이건의 공격에 민시우는 정색한 얼굴로 맞받아치며 불만을 토로했다.민시우는 이 바닥에서 윤이건이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엔터 회사 대표이고 평소에 점잖지 못한 것 같지만 막상 진지해지면 그의 능력과 총명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아마 업계가 달라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민시우 곁에는 그의 말처럼 여자가 끊였던 적이 없다. 하지만 그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 또한 없다.그의 말대로라면 한 번뿐인 인생 즐기면서 살기 위해 태어났다고 하는데, 윤이건은 그의 그런 생각에 한 번도 뭐라 한 적도 뭐라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그의 사전에서 연애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 해야 하는 거였으니.그 생각을 하다 보니 그의 눈빛은 저도 모르게 이진을 향했다.이진은 다른 회사 대표들과 사업적인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살짝 쳐든 턱,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오늘의 스타일까지 더해지자 마치 우아한 흑조 같았다.그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던 유연서는 마침 윤이건이 자기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다는 걸 발견하고는 총총걸음으로 달려왔다.하지만 뭐라 말하려던 찰나 어딘가를 보고 있는 듯한 윤이건의 시선을 따라 봤더니 그 시선의 끝에는 이진이 서있었다.순간 밀려오는 질투에 유연서는 이를 악물었다.오늘 윤이건이 그녀를 파티장에 데려오긴 했지만 들어서는 순간부터 두 사람은 거의 교류가 없었다.그녀는 손에 든 술잔을 꽉 움켜쥐었다. 솔직히 사람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었지만 생소한 단어들이 오가는 대화에 도무지 낄 틈이 보이지 않았다.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때, 유연서는 갑자기 속으로 냉소하더니 이진을 향해 걸어갔다.“이진 씨…….”그 시각 이진은 마침 다른 회사 대표와 협력에 대한 얘기
민시우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는 윤이건이 유연서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보자 원래 놀기를 좋아하던 마음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민시우는 이진이 한 그룹 회장과 담화를 마치자 얼른 틈을 타 그녀한테 다가갔다. “이 대표님, 저는 화오엔터 대표 민시우입니다. 이 대표님에 대해 많이 들어왔는데 오늘 이렇게 만나 뵐수 있어서 영광입니다.”민시우의 입에 발린 안부를 듣고 이진은 마음속으로 쓴 웃음을 쳤다. 비록 그의 얼굴은 봐줄만 하지만. “이 대표님, 오늘 혼자 오셨나요? 좋은 비지니스가 있는데 잠시 장소를 옮겨서 단둘이 대화를 나누는 건 어떨가요?”민시우는 이렇게 가까이서 이진을 본적이 없었다.지금 반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이진을 마주하고 있으니 민시우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이진이 엄청 화려하게 예쁘거나 한 건 아니지만 뭔가 특별한 분위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이 파티장 안에서, 더 나아가 전체 도시 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함 이었다. 사실 민시우의 비주얼도 두말할것 없이 우월한 편이다.연예계 생활을 많이 해서 그런지 윤이건처럼 딱딱한 느낌보다는 뭔가 스무스하고 원활해보였다. 특히 민시우의 매력적인 봉안으로 아까 멘트까지 추가하면 수많은 여성들을 홀릴수 있었다.그러나 이진한테는 예외였다. 그녀는 여지없는 철벽 그 자체였다.“미안해요, 민 대표님, 제가 관심이 없어서.”밀당을 하는건지 아님 거절인지 민시우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이진의 은은한 웃음기에 민시우는 김 빠지듯 웃어버렸다.“이 대표님, 다시 한번 소개할게요. 민시우라고 하고요, 윤 대표 친구입니다. 아까 기분 나쁘셨다면 용서해주세요.”민시우의 갑작스런 태도와 말투 변화에 이진은 오히려 흥미를 느꼈다.“윤 대표님이 이런 성격의 사람인 줄 젼혀 몰랐네요. 주변에 친구도 있고.” “이 대표님 그 말씀은 윤 대표를 저격 한건가요? 아님 저?”민시우의 기분은 드디어 편한 상태로 돌아왔고 표정도 보기 좋아졌다. 민시우의 말에 이진은 눈살을 살짝
이기태는 말을 이어가면서 최현을 끌고 파티장 뒷편 화원으로 갔다.두 사람이 한동안 밀담을 나눴는데, 어떤 내용 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비밀스런 이야기가 끝나고 이기태는 다시 인파속에 묻혔고 최현은 곧추 이진한테 다가갔다.“이 대표님, 반갑습니다.”눈앞에 나타난 최현을 보고 이진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이진이 케빈을 바라보자 케빈도 고개를 저으며 누군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최현도 이진의 속마음을 알아챈 듯 크게 웃어보이며 어색한 분위기를 만회하려 했다.그러고 보니 이 장면도 우습다.둘 다 대표지만 거의 반백이 넘은 사람이 스무살 남짓한 여자 아이를 마주하면서 주눅이 들어있는 것이다.“이 대표님이 저를 모르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전에 GN그룹이랑 협력 할때는 부친이 대표 자리에 계셨어서요."이진은 이 말이 웃겼다.‘이건 또 뭐지? 그럼 나한테서 아버님이란 소리 라도 듣고 싶은 건가? 그러기엔 아쉽게도 처음부터 호칭을 잘못 불렀어.’“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이진은 술잔을 케빈한테 건네며 말했다.만약 최현이 직접 이름을 말한다면 그녀는 이 만남을 끝낼 예정이었다.한편 최현은 양복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네주었다.“사실은 GN그룹하고 다시 한번 새로운 협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기대하고 있습니다.”“최 대표님께서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너무 기대가 되네요.”이진은 더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아 마무리 멘트를 던졌다. 이렇게 되면 최현도 할말이 없어지니까.케빈이 눈치 채고 얼른 핑계를 둘러 대고는 이진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보스, 이 사람 뭐에요? 보스 앞에서 본인이 부친과 협력했던 사람이라뇨.”“세상은 넓고 별의별 사람 다 있으니까.”이진은 케빈의 손에 있던 반잔 남은 샴페인을 원샷하고 명함을 케빈의 손에 쑤셔넣으며 말했다.한 시간 쯤 지나고 파티도 막바지에 이르렀다.이진은 수없이 많은 명함을 받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구석진 곳으로 가 있었지만 여전히 피하기 어려웠다.“보스, 휴가를 가지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