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저편은 잠시 동안 침묵하고 있었고, 이진은 이 침묵에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그리고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바로 전화를 끊었다.이기태가 이 지경인데도 그녀랑 이런 게임을 한다는 것이 우스웠다.그리고 이쪽 편에서 한참 멍하고 있었던 이기태는 전화가 끊겨버린 것을 알았다.아까 이진의 태도를 생각하면 정말 뺨 한대 맞은 기분이다.“뭐야!”마음속의 분함을 참지 못하고 이기태는 크게 소리쳤다. 이때 마침 이영이가 돌아왔다.“잘 진행되지 않은 것 같은데요.”이영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분노인지 조롱인지 알 수 없었다.이 말을 듣고 이기태는 이영을 한번 보고 화내며 침대에 앉아 입을 다물었다.두 사람의 침묵은 이렇게 이어졌다.그리고 이기태의 기분이 나아진 다음 이영이가 말을 꺼냈다.“뭐라고 해도 자식인데, 이건 부정할 수 없는 거예요.”“무슨 뜻이야.”이기태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보였다.“제 뜻은 전화로 말이 통하지 않으면 직접 가서 얘기해도 된다는 말이에요. 그렇다고 우리를 쫓기라도 하겠나요.”이영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이기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묵인하는 태도이다.두 사람은 GN 그룹의 아는 사람에게 연락하였다.헛걸음하지 않게 이진이 회사에 있을 때 알려달라고 하였다.결국 이틀 뒤 아침 이기태는 그자의 전화를 받았다.“대표님 출근하셨습니다.”이 말을 듣고 이기태는 번쩍 정신을 차리고 이영과 함께 회사로 향했다.문을 나서기 전 이영은 불룩한 가방을 메고 나갔다.GN 그룹 대표 사무실.이진은 오늘 그냥 형식적으로 출근한 척하였다. 아무래도 오래동안 얼굴을 보이지 않았으니 또 날뛰는 자들이 있을 가봐 온 것이다.이렇게 지난주 보고를 보고 있었는데 1시간도 안 지나 프런트에서 소식이 왔다.“누가 왔다고?”이진이 프런트의 소녀를 보고 눈썹을 치켜세우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이 소녀가 습관적으로 이 대표와 이 지배인이라고 그들을 불렀다.비록 요구한
사람이 그 어떤 곤경에 빠지게 되면 무슨 짓이던 할 수 있었다.비록 이진이 보기에 이기태는 매사마다 그 추태의 극지를 보였지만 지금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이영의 손에 놓인 유물들을 보면서 이진은 심장이 찌른 듯한 고통을 느꼈다.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그녀의 기억은 흐리멍덩하지만 어릴 때 어머니가 그 장신구를 꺼내고 그녀가 혼인 시 줄 것이라고 말한 것이 기억났다.만약 이기태와 이영이가 그 장신구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이진은 아마 그들의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그러나 장신구와 그 몇 마디 말이 이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할 말 다 했나요? 볼 일도 다 봤고?”말하며 이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기태와 이영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할 말 다 했으면 나가주세요.”“이진!”이진의 말이 이기태의 분노를 돋우어 줬다.오래된 스트레스와 쌓인 분노에 이기태는 앞에 다가가 이진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왜요? 화났어요? 나이도 많은 분이 유치하기는 하네요.”이진은 눈을 깜빡거렸다.원래 담담했던 분위기도 이진의 기세에 눌려 긴장해졌다.“너 잊지 마! 뭐라 해도 난 네 아버지고 넌 내 딸리야!”이진의 기세에 이기태도 겁을 먹고 뒤로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입은 계속 놀리고 있었다.이런 도덕적인 납치도 이진의 귀에는 아주 우습게 들렸다. “이보세요. 혈연관계로 모두 것을 해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이진의 물음에 이기태는 입을 우물거리며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만약 정말 그렇다면 이영은 왜 다르죠?”말하며 테이블을 뒤에서 이기태 앞으로 걸어 나왔다.담담한 눈길로 이영을 보고서 계속 말했다.“같은 딸인데 왜 이영은 아버지 곁에서 클 수 있지만 나는 안 되죠?”이진은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마다 힘을 주어 말했다.“그런 말은 꿈에서나 하세요.”이기태의 말문이 막힌 모습을 보고 이진의 마음도 사실 너무 편한 것은 아니다.뭐라 해도 자기 아버지인데 누가 아버지 사랑을 받고
임만만이 탕비실에 가서 커피를 타오자 백윤정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백윤정은 이진이 자기를 협박할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백윤정은 고개를 숙여 손에 든 액세서리를 보더니 마음 같아선 당장 그것을 깨뜨리고 싶었다.그러나 그녀는 그럴 배짱이 없었다.이진이 GN 그룹의 대표이기에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백윤정은 물론 이기태도 충분히 이곳에서 쫓아낼 수 있다.백윤정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는 협상을 하기로 했다.백윤정은 얼른 손을 뻗어 자신의 허벅지를 세게 꼬집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이진아, 나는…… 정말 우리 사이가 이렇게 나빠질 줄은 몰랐어.”갑자기 느닷없이 눈물을 흘리자 이진은커녕 이기태조차도 멈칫했다.모두 백윤정이 우는 척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백윤정이 두 방울의 눈물을 짜내자 이진을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뻔뻔할 수 있지?’그러자 한쪽에서 지켜보던 이기태마저 바닥에 주저앉으며 울분을 토했다.이진은 가능한 한 그들을 무시하며 커피를 천천히 마셨다.그러나 두 사람은 이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뻔뻔했다.5분이나 지났는데 그들은 전혀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고 심지어 더 큰 소리로 소란을 피웠다.이진은 커피를 다 마셨는데도 그들이 계속 시끄럽게 굴자 이를 악물고는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좀 조용히 하시죠!”이기태와 백윤정은 깜짝 놀라더니 입을 다물었다. 뒤이어 그들은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서로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이때 사무실 안은 매우 조용했는데 이진은 곧 임만만을 보며 말했다.“GN 그룹이 매입한 가게 목록을 가져와.”임만만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2분도 안 되어 문건 하나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왔다.“대표님, 모두 이 안에 있어요.”이진은 서류를 건네받고는 천천히 살펴보았다.이기태와 백윤정은 마음이 근질근질했지만 티를 내지 않은 채 그저 서있기만 했다.이진은 한번 훑어본 후 임만만에게 말했다.“이 두 항목을 이기태 씨에게 넘기도록 해. 차질이
이기태와 백윤정은 GN 그룹을 떠난 후 친척 집으로 돌아갔다.그들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진이 준 계약서를 꺼내 보았다.빠르게 훑어보니 계약서에 적힌 이름은 이기태가 맞지만 또 하나의 큰 문제가 있었다.“이 두 가게는 모두 교외에 있는 가게 아니야? 전에 자금 회전에 썼던 가게들이잖아.”백윤정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기태를 보았다. ‘그 계집애가 우리에게 고작 이 딴 걸 주다니.’이기태는 다시 한번 훑어보더니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백윤정이 말했듯이 이 두 가게는 위치가 좋지 않아 거의 돈을 벌지 못하는 가게였다.‘가게를 내놓아도 쓸 사람이 없을 건데 이걸로 돈을 어떻게 벌지?’“이 나쁜 계집애!”백윤정은 화가 난 마음에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는 두 손 모두 주먹을 쥐었는데 목에는 핏줄이 튀어나왔다.“그러게 뭔가 이상하다 했어. 그 계집애가 우리에게 좋은 걸 줄리가 없지!”백윤정은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욕설을 퍼부었다.“정말 이씨네 착한 딸이네. 이젠 친아빠마저 가지고 노는 거야?”이기태는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놓인 계약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이기태는 이진의 행동에 화가 나는 것보다 허탈함과 후회가 가득했다.‘처음부터 이진과 싸우지 않았다면 일이 이 지경으로 되진 않았을 텐데.’그가 조금이라도 빨리 알아차렸다면 이런 꼴이 되진 않았을 거다.“됐어, 이미 끝난 일이니 그냥 주는 대로 받자고. 괜히 불평을 제기했다간 이 두 가게마저 빼앗겨 버릴 지도 몰라.”욕을 하고 있던 백윤정은 이기태의 말을 듣자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자기가 잘못 들은 것이라고 생각했다.“당신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어?”“우린 더 이상 이진과 싸울 능력이 없어. 계속 싸우려고 덤비면 더 비참해질 수밖에 없을 거야.”이기태는 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비록 좋은 가게는 아니지만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시간을 들여 제대로 꾸려 나간다면 그래도 돈을 어느 정도 벌 수는 있을 거다.그러나 이기태가 방을 나서기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한 후 문이 열리자 이진은 이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이영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진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오늘 차라리 AMC에 있을걸…….’프런트에 도착하자 아니나 다를까 이영이 팔짱을 낀 채 직원과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내가 왜 못 들어가는 데? 난 이씨 가문의 아가씨야. 너 눈이 멀기라도 한 거야?”그 직원은 이영의 말을 듣자 얼굴이 빨개지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영은 그 직원이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는 계속 직원에게 화풀이를 하려고 했다.그러나 그녀는 말을 하기 전에 얼핏 사무실에서 내려온 이진을 보게 되었다.“이영. 넌 그럼 집에서 아가씨 노릇이나 할 것이지 왜 여기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는 건데?”이진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편안한 모습으로 말했다.이때 이진의 편안한 모습과 이영의 조급한 모습은 엄청나게 대비되었다.“내가 왜 여기까지 찾아왔겠어? GN 그룹은 이씨 가문의 것이야. 근데 이씨 가문도 아닌 네가 무슨 자격으로 이곳에 있는 거야?”“내가 GN 그룹을 인수했을 때 너도 현장에 있었잖아? 왜 이제 와서 난리인데?”이진은 콧방귀를 뀌며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네가 이씨라고 해서 회사도 네 것인 줄 아나 봐? 이 회사는 내가 인수했으니까 너랑은 이젠 상관없는 곳이야.”“어차피 너도 이씨잖아. 그러니까 회사도 여전히 우리 회사야.”이영의 말을 듣자 이진의 뒤에 서 있던 임만만조차도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했다.한편 이진은 동정심이 섞인 눈빛으로 이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영아, 미안. 난 너랑은 한 식구 아니야.”이영이 계속 따지려고 하자 이진은 마지막 인내심으로 말했다.“내가 경고하는데 계속 떠들어댄다면 방금 줬던 두 가게도 모두 회수할 거야.”욕설을 퍼부으려던 이영은 가게를 회수한다는 말을 듣자 바로 입을 다물었다.그녀가 가만있는 틈을 타 이진은 입구의 경호원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이 경호원들은 모두 이진이 새로 고용한 사람들이다.이진은 자
“대표님, 이걸…….”한쪽에 앉아 컴퓨터를 조종하던 경호원이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는데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이진이 분명히 이영을 들이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이영이 대놓고 옆문으로 들어오자 경호원은 무서워 죽을 지경이었다.이진은 팔짱을 낀 채 CCTV로 잘난 체하며 들어오는 이영을 보고 있었다.사실 이영 덕분에 회사 내부에 자기 편이 아닌 사람을 찾아낼 수 있어 이진은 내심 고맙기도 했다.“만만아.”임만만은 이진의 곁에 서있었는데 이진이 자기를 부르자 얼른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유 과장의 서류를 정리해서 오늘 인사부에게 알리도록 해. 내일부터 유 과장은 출근하러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네.”임만만은 재빨리 대답하고는 몸을 돌려 인사부로 갔다.옆에 있던 경호원은 너무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한편 이영은 유 과장을 따라 로비에 들어섰는데 유 과장이 갑자기 인사부로 호출을 받게 되었다.갑작스러운 호출에 유 과장은 당황스러웠지만 이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유 과장이 떠난 후 이영은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표 사무실로 가려고 했다.이때 마침 이진이 로비 옆에 있던 보안실에서 걸어 나왔다.“또 볼일 있어?”이영은 이진이 왜 보안실에서 나온 건지, 왜 갑자기 태도가 달라진 건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다.그러나 이게 기회인 것은 확실하기에 이영은 얼른 입을 열었다.“물론 있지! 방금 그 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진 너…….”이영이 한참 화를 내며 말하려 하자 이진이 입을 열었다.“할 말이 있다면 사무실에 가서 얘기해. 더 이상 여기서 소란 피우지 말고.”이진은 말을 마친 후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이영은 이진의 말을 듣자 내심 기뻐했다.‘역시 이렇게 나오면 이진이 타협할 줄 알았어.’이영은 이진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오른 후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이영은 이진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소파 위에 털썩 앉아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이진아, 그래도…….”이영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이진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오자 이영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보았다.이때 임만만이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이 두 경호원은 바로 방금 이영을 쫓아냈던 그 두 사람이다.“이 아가씨를 내보내.”이진은 말을 하며 책상을 돌아 의자에 편히 앉았다.그리고 두 경호원은 임만만의 눈빛을 보고는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그들은 이영이 아무리 발버둥 치고 반항해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이때 엘리베이터에서 로비에 이르기까지 이영의 고함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데스크에 도착하자 이영은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이거 놔! 나 혼자 걸을 거야!”두 경호원은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문을 나서고는 서로 마주 본 뒤 이영을 밖으로 던졌다.GN 빌딩은 도심 번화가에 있어서 출퇴근 시간이 아니어도 사람이 엄청 많았다.이영이 갑자기 GN 빌딩 안에서 내던져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았다.그 사람들은 이영을 곁눈질하고는 낮은 소리로 의논하기 시작했다.평생 이런 일을 당해 본 적이 없는 이영은 땅에서 일어나 이를 악물었다.지금 그녀는 너무 창피해 몸에서 전해온 통증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그녀는 빠르게 차로 달려가 엑셀을 밟고 집으로 돌아갔다.백윤정은 모든 희망을 이영에게 걸었는데 이영이 집으로 들어선 후의 표정을 보더니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두 사람은 서로 껴안은 채 계속 입을 놀리며 이진을 욕했다.그녀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젠 정말 방법이 없었다.이영은 기분이 안 좋아 일찍 자신의 객실로 돌아갔다.그러나 저녁 8시쯤 되었을 때 이영은 베란다에 앉아 와인을 마시다가 갑자기 볼이 가려워지는 것을 느꼈다.이영은 그저 밤공기 중에 먼지가 흩날리거나 알코올 알레르기라도 생긴 줄 알았다.그러나 두 번 긁자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가려워졌다.그녀 손에 든 술잔은 그대로 엎어졌고 곧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이영은 두 손으로 얼굴을 긁었는데 전혀 멈출 수 없었다. 심지어 얼굴에는
이진은 제대로 멈춰 서지 못해 갑자기 들어온 윤이건과 정면으로 부딪쳤다.“어떻게 오셨어요?”이진은 눈살을 찌푸렸는데 손에 든 약병 안의 가루가 조금 밖으로 새고 말았다.“데리러 왔어.”윤이건이 자연스럽게 말하자 이진은 오히려 어색해 입을 움직였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윤이건은 방금 그 가루에 인해 자기도 모르게 가볍게 기침을 했다. 고개를 숙이고 보니 그저 약병이라 별로 신경 쓰진 않았다.“무슨 약이야?”“좋은 물건은 아니에요.”이진은 가볍게 입을 열고는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는데 딱히 알리고 싶진 않았다.이진은 윤이건을 스쳐지나 비상구로 가서 약병을 큰 쓰레기통에 버렸다.그리고 사무실로 되돌아가 물건을 간단히 정리한 후 윤이건과 함께 별장으로 돌아갔다.윤이건은 이진이 경력 있는 의사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저 이상한 가루는 분명 이진이 혼자서 만들어 낸 거겠지.’윤이건은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결국 물어보진 않았다.이튿날, 윤이건은 협력했던 회사에서 축제를 열기로 해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했다.소문이라는 것은 참으로 빨리 돌기도 했다.저녁에 별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운전하고 있던 이 비서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대표님, 이영 씨에 관한 소문들을 아시나요?”“넌 또 어디에서 그런 가십거리들을 알아낸 거야?”뒷좌석에 앉아 있던 윤이건은 눈을 지그시 떴는데 담담한 말투는 마치 엄청 피곤해 보였다.윤이건의 말을 듣자 이 비서는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더니 가볍게 기침을 했다.“대표님, 이 일은 제가 일부러 알아본 것이 아니라 어쩌다가 듣게 된 거예요.”하지만 윤이건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윤이건은 이씨 가문을 통틀어 오직 자신의 별장에 있는 이진한테만 관심이 있었다.나머지 사람들이 어떤 일이 생긴다고 해도 그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차를 몰던 이 비서는 윤이건이 여전히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를 악물고는 큰 소식을 전했다.“대표님, 이번 일은 이진 씨와 연관 있는 일이에요.” 이 비서가 말을 마치자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