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도 마찬가지로 한시혁은 직접 이진을 찾아와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이진은 무슨 중요한 결정이라도 내리기 위해 온 건 줄 알았지만 그저 디자인 원고를 고르는 것뿐이었다. 심지어 한시혁은 몇 개의 디자인을 이리저리 골라보더니 결국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됐어, 나중에 천천히 결정 내리자.”한시혁은 고개를 숙이고 시간을 본 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는데 점심이나 먹으러 갈래? 근처에 새로 생긴 음식점이 있다고 들었어.”“한시혁…….”한시혁이 이미 일어나 외투를 입을 준비를 하는 것을 보자 이진은 얼른 입을 열어 그에게 말했다.이진이 갑자기 진지하게 말을 하자 한시혁은 하던 동작을 멈추고는 의자에 단정하게 앉아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이진을 바라보았다.“할 말 있어?”이진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시선을 돌려 플랫폼 위의 꽃을 보았다. 그 꽃은 오늘 한시혁이 가져온 것인데 위에는 여전히 노란색과 연분홍색의 꽃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날 윤이건이 했던 말을 떠올렸는데 저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났다.“한시혁, 전에 내가 외국에서 공부할 때 분명 너한테 똑똑히 내 생각에 대해 말했었잖아. 그러니까 너도 알 거 아니야?”“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이야.”한시혁은 여전히 평소 같은 말투였지만 눈빛엔 약간 초조함이 더해져 있었다.“그럼 다시 한번 얘기할게. 넌 정말 좋은 친구고 난 정말 너를 그저 친구로 생각할 뿐이야.”결국 그때의 말을 다시 한번 말한 거나 마찬가지다.사실 이진이 이 말을 꺼내는 것도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거절하는 것이 쉬울 리는 없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한시혁이 영원히 그녀를 평범한 친구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고개를 숙이고는 손가락은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나와 윤이건 씨는 부부인 걸 너도 잘 알잖아. 난 이미 결혼했어.”한시혁도 이 일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던 이진은 귀국 후 그렇게 빨리 결혼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또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이진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손잡이를 잡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혹시라도 윤이건을 더 화나게 한다면 생명에 위협이라도 생길까 봐 그녀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윤이건이 차를 별장 입구에 세우자 이진은 그제야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은 함께 차에서 내렸고 이진은 일부러 윤이건을 조금 기다렸다. 윤이건의 안색이 여전히 어두운 걸 보자 그녀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그녀는 별장에 들어선 후 바로 2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계단 손잡이를 잡은 채 잠깐 발걸음을 멈추더니 입꼬리를 오므렸다. 이진은 그가 도대체 왜 그러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뒤에 있던 남자가 먼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이진.”그녀가 몸을 돌리자 윤이건은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듯이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왜, 왜 그러세요…….”“우린 계약했었으니까 아직 부부잖아? 안 그래?”윤이건의 목소리가 차갑진 않았지만 매우 감정적이었다. 그러자 이진은 더욱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그가 이 문제를 이렇게 직설적으로 꺼낼 줄은 몰랐던 데다가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확실히 그의 말이 맞기에 이진은 입가를 오므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진이 영리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자 윤이건의 표정은 오히려 좀 나아졌다. 윤이건은 약간 주춤거리다가 가볍게 입을 열었는데 명령인지 부탁인지 애매한 말투였다.“그럼 이렇게 된 이상, 한시혁이라는 놈과 너무 가까이 지내지 않으면 안 될까?”이진은 그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는데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럼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한 게 한시혁 때문인 거야? 질투라도 한 거야?’윤이건의 진지하고 엄숙한 모습을 보자 이진은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가볍게 웃었다. 그의 이런 행동이 싫진 않았지만 좀 신기했다.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계단에서 내려오더니 말했다.“나랑 한시혁은 윤 대표님이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저희는 단지 협력 관계일 뿐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넓은 사무실에서 울려 퍼졌다.‘굳이 연기를 한다면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한시혁은 이런 생각을 하더니 망설이지 않고 즉시 컴퓨터를 켰다. 그는 순조롭게 시스템의 백그라운드로 들어가 YS 그룹의 자료들을 찾기 시작했다.이진이 외국에 있던 몇 년 동안 한시혁은 거의 그녀와 붙어 다닌 데다가 그의 해킹 능력은 이진 못지않았다.지금 상황으로는 굳이 윤이건을 무너뜨릴 필요는 없지만 그는 이진 앞에서 윤이건을 망신 줄 수만 있다면 상황이 뒤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전에 이진이 윤이건과 상업적인 협력을 했었다고 말했었기에 한시혁은 이것을 목표로 빠르게 찾고 있었다. 윤이건의 컴퓨터 시스템이므로 해킹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다행히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서류에 서명된 이름을 보자 한시혁은 저도 모르게 냉소를 지었다. 그는 위의 내용을 거의 고치지 않고는 파일을 직접 파괴하여 프로그램을 열 수 없게 만들었다.‘이 정도면 됐어.’제대로 파괴된 건지 확인하고 나서야 한시혁은 만족스러워하며 컴퓨터를 껐다.이튿날, 윤이건이 회사에 도착하자 자신의 컴퓨터 프로그램에 오류가 생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그는 컴퓨터를 보자 무척 놀랐는데 그의 컴퓨터를 해킹할 수 있는 사람이 절대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윤이건은 피식 웃으며 컴퓨터 안의 파일들을 대충 열어보았는데 대수롭지 않은 자료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비교적 중요한 자료들은 모두 오류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사라져 버린 자료들도 있었다.“빌어먹을…….”윤이건은 조용히 컴퓨터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윤이건이 컴퓨터가 해킹당했다고 말하자 비서는 심지어 우스갯소리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어떤 놈이 겁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인 거야.’비서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은 채 전화를 걸어 YS 그룹의 기술부 총괄을 직접 불러왔다. “윤 대표님.”기술부 총괄은 무척이나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들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거의 회사 동료들과 마주치지
IP 주소를 보고 다른 컴퓨터로 빠르게 검색해 보니 정말 일치했다.‘윤이건의 컴퓨터가 해킹당하다니? 왜 이렇게 소름 끼치지?’이진은 가볍게 웃으며 혀끝으로 살짝 이빨을 스쳤는데 눈빛 속에는 약간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이 임무를 완성해야 하지만 대놓고 그녀의 컴퓨터로 했다간 IP 주소가 남아있을 거다.이진은 비록 자신의 기술에는 매우 자신이 있었지만 윤이건이 갑자기 철저히 조사라도 하진 않을지는 보장할 수 없었다.사실 그녀는 아직 윤이건에게 자신의 해커 신분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가 알아도 달라질 건 없지만 아직 그에게 자신에 관한 일들을 너무 많이 알려주고 싶진 않았다.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이진은 사이트에서 나온 뒤 책상 위의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순간 임만만이 다른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대표님, 어디 가세요?”“PC 방.”그녀는 말을 하면서 임만만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임만만은 이진이 떠날 때까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대표님께서는 이 나이에 PC 방에 가신다고? 게다가 회사에 컴퓨터가 이렇게나 많이 있는데 굳이 나가서 놀 필요가 있을까?’이진은 GN 그룹에서 나온 뒤 꽤 좋아 보이는 PC 방을 찾았다. 그녀는 PC 방에 들어선 후 가장 안쪽을 자리를 고르고는 바로 사이트에 접속했다.사실 많은 해커들은 이 임무를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이 임무가 어떻게 해결될지 그들 모두 궁금했기 때문이다.이진이 해커 K로 접속하자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해커 K 님이야. 정말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셨어.”“일단 어떻게 해결하실지 구경부터 해보자고.”해커들은 채팅방에서 모두 오랜만에 나타난 K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이진도 그저 인사만 했을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건 윤이건의 일이기에 시간을 오래 지체한다면 분명 큰 손실을 입게 될 거다.이진은 정신을 가다듬고는 현란한 기술을 사용하며 빠르게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는데 총 30분 정도 지나자 컴퓨
YS 그룹에서 일한 지 오래되었지만 기술 부문에서는 종래로 이런 임무를 맡은 적이 없었다.비록 좀 당황스러웠지만 윤이건의 명령적인 말투에 그들은 두려우면서도 한편 거대한 임무를 받기라도 한 것처럼 큰 사명감을 가졌다. “대표님, 걱정 마세요. 제가 반드시 이 해커를 찾아낼게요.”이 말을 듣자 윤이건는 그제야 미소를 짓더니 총괄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몸을 돌려 기술 부문을 떠났다.이와 동시에 한시혁은 윤이건의 컴퓨터를 들볶은 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가 윤이건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파괴한 것은 일종의 경고와 교훈일 뿐이다.그러나 이런 짓을 벌여도 이진이 자신에 대한 감정은 여전히 그대로일 것이다. 만약 매일 그녀의 회사에 가는 것을 꺼려 한다면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이런 생각에 한시혁은 다시 컴퓨터를 켜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채 자신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접속했다. 그는 이진의 아이디를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줄곧 서로를 팔로우 하진 않았다.이진의 계정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가끔 발표되는 것은 시스템이 엉망으로 만들어낸 광고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시혁은 이진의 계정을 팔로우 했다.그는 인기 많은 가수로써 늘 많은 팬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그러나 그의 이런 사소한 행동에 팬들은 발칵 뒤집혔다.그들의 우상이 갑자기 아무 내용도 발표하지 않은 계정을 팔로우 하다니?한 무리의 팬들은 채팅방에서 이 일에 대해 열렬히 토론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팬들은 한시혁이 실수로 누른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몇 분 지나지도 않아 한시혁이 올린 글은 그들의 생각을 발칵 뒤집었다.[이렇게 오래 지났지만 여전히 잊을 수 없네.]한시혁처럼 차가운 사람이 뜻밖에도 자신의 계정에 글을 발표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일 외에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게다가 그는 이 글을 발표하면서 이진의 계정을 언급했다.아까부터 난리 났던 팬들은 완전히 들끓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윤이건은 방금까지만 해도 화가 나 미칠 것만 같았는데 이진을 본 순간 방금 느꼈던 분노가 절반이나 가라앉은 것 같았다.“인스타그램 봤어?”윤이건이 이렇게 늘 밑도 끝도 없이 말을 하는 것에 대해 이진은 이미 익숙했다. 그러기에 그녀도 별로 반감하지 않은 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눈살을 찌푸리는 윤이건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그녀가 인스타그램을 가입한 것은 케빈이 하도 강요해서 가입한 거였다. 나중에 회사의 소식들을 발표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가입한 거였는데 그녀의 대표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 케빈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이진이 고개를 저은 것을 보자 윤이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이진은 분명히 모르는 일이었다. 모두 한시혁 그놈이 멋대로 행동한 것이다.윤이건이 혼자 생각을 하고 있자 이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텔레비전의 리모컨을 들고 드라마를 계속 재생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리모컨을 빼앗겼다.“왜 이러세요? 이젠 텔레비전도 못 보게 하는 거예요?”이진은 화가 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는데, 보아하니 윤이건이 또 뭔가 충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네?”윤이건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자 이진은 그제야 자기가 잘못 듣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얼른 소파 위에서 일어나 뒤로 숨으려고 했다,‘미치려면 혼자 미치지 왜 나까지 끌어당기려는 거야?’그러나 그녀는 아무리 반항해도 윤이건의 힘을 견뎌낼 수 없었다. 게다가 윤이건은 매우 감정적이라 호르몬이 빠르게 치솟았다.윤이건은 이진을 품에 안은 뒤 핸드폰을 들고 연속적으로 사진을 찍어댔다.이진이 그의 품에서 벗어나기 전에 윤이건은 이미 성공적으로 10여 장의 사진을 찍었다.이진은 본인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윤이건이 강요하자 짜증이 나 원래 화를 내려고 했는데 그가 고개를 숙이고 유난히 기뻐하며 사진을 고르는 모습을 보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이건은 결국
‘두 회의를 미룰 만큼 급한 일이 집에 돌아가 이진 그 여자와 함께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거야?’강한 질투심과 증오심은 유연서의 이마에 있는 핏줄을 돋보이게 했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그녀는 몇 번의 사건을 통해 윤이건을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윤이건과 오랫동안 함께 지내왔기에 이진은 그저 윤이건이 잠깐 가지고 노는 여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이런 생각이 점점 사라진 데다가 방금 그 게시글은 더 이상 그녀를 가만있지 못하게 만들었다.그녀는 더 이상 윤이건이 이진 그 천한 여자와 사이가 좋아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바닥에 산산조각 난 핸드폰 조각을 보자 유연서는 다시 힘껏 이를 악물었다.그녀는 반드시 다시 손을 써서 이진 그 천한 여자를 해결할 것이다.그러나 손을 대기 전에 유연서는 일찌감치 윤이건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출근 시간에 유연서는 홀 입구에 서서 기다리더니 윤이건의 차를 보자마자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가 기다리는 척을 했다.몇 분 후,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자 유연서는 고개를 돌렸는데 윤이건이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기쁜 마음에 얼른 앞으로 나가 인사를 했다.“이건 오빠, 일찍 왔네.”“응.”윤이건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바로 돌렸다. 그러자 유연서는 포기하지 않고는 계속 말을 하려고 했는데 윤이건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참, 이따가 내 사무실로 와. 너한테 할 말이 있어.”윤이건은 말을 마치고는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유연서는 원래 그와 함께 올라가려 했지만 엘리베이터의 층수가 올라가는 것을 보자 이미 늦었다는 것을 발견했다.‘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유연서는 마음속으로 흐뭇해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요즘 나한테 너무 소홀한 것 같아 단둘이 이야기라도 나누려는 건가?’유연서는 이런 생각에 알 수
이런 생각에 유연서는 재빨리 침실로 돌아가 구석에 몰래 숨겨둔 금고를 열었다.요 몇 년 동안 윤이건은 자주 그녀에게 수표를 주고 계좌이체를 해주었다. 그녀는 사치품을 좋아하지만 윤이건의 앞에서 영리하고 철이 든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자주 사진 않았다.지금 뜻밖에도 그녀는 이 돈들을 결정적인 순간에 쓰게 되었다.유연서는 수표와 카드를 꺼낸 후 대충 계산한 후 미소를 지었다.‘이 돈이면 충분히 유호진 대신 손써줄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거야.’다만 유연서가 몰랐던 것은 그녀가 다시 손을 쓸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 이진도 이미 철저히 준비를 마쳤다는 것이다. 지난번의 납치 사건을 겪은 후 이진은 상당히 조심하게 되었다.원래 그녀는 케빈에게 이 일을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곁에 임만만이 있었기에 숨기기 쉽지 않았다.케빈은 임만만과 제법 친해진 데다가 눈치가 빨라 이진이 아무리 깊이 숨겨도 임만만과 두세 마디 얘기를 나누고는 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두 사람이 납치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케빈은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보스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어쨌든 큰일 없이 해결되어서 다행이지 케빈은 너무 놀라 하마터면 수명이 줄어들 뻔했다.“이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지금 내가 멀쩡하게 네 앞에 앉아 있잖아?”이진은 케빈이 매우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자 울지도 웃지도 못했지만 마음은 무척 따뜻했다.“보스!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정말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했다면 제 앞에 앉아계실 수 없었을 거예요.”케빈은 사무실 안을 왔다 갔다 하며 긴장을 풀지 못했다.“보스, 그건 진짜 총이잖아요! 하마터면 죽을 뻔하셨어요.”임만만은 한쪽에 서서 케빈의 긴장된 모습을 보며 감동적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충성스러운 비서는 어디에서도 쉽게 찾지 못할 것이다.“보스, 그러지 마시고 이번에는 꼭 제 말을 들으세요.”이진은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만년필을 능숙하게 돌리면서 케빈을 보며 가볍게 웃더니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케빈이 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