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들은 깔끔하게 거래를 하는 데다가 실력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원래 그들이 의뢰를 받았을 때 유연서가 자기 남편을 꼬드긴 제3자를 혼내는 건 줄 알았는데 이진의 반응을 보자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렸다.그녀들 사이에 서로 트러블이 있긴 하지만 눈앞의 이 여자는 절대로 남의 남자한테 손댈 사람은 아니었다.그들은 바닥에 놓인 수표를 보더니 고개를 돌려 서로 마주 보며 곧 결심을 내렸다.“한 여자가 엄청난 돈을 들여 당신을 납치하려고 저희를 고용했어요. 그 여자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저희도 잘 몰라요.”그의 말을 듣자 이진은 눈썹을 찌푸렸는데 분명 그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거다.“참! 이름은 모르지만 성은 알아요. 그 여자는 의뢰를 할 때 자신의 성씨를 말했었는데 유씨 였어요.”만약 흔한 성씨였다면 이진은 좀 더 추측했을 것인데 유연서의 성씨는 결코 흔한 성씨가 아니었다.이진은 그의 말을 듣자 팔짱을 끼더니 웃기 시작했다.“좋아, 만족스러운 대답이에요.”그녀는 말을 하며 경호원들한테 눈치를 주고는 그들을 모두 풀어주었다.그들이 대낮부터 납치를 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그 정도로 똑똑했기 때문이기에 그들도 지금 상황이 그들에게 상당히 불리하다는 걸 눈치채 풀린 후에도 조용히 제자리에 서있기만 했다.“당신들 중에 그 여자의 연락처를 가지고 계신 분이 있나요? 잠시 핸드폰을 빌려도 될까요?”이진은 예의를 갖추며 말을 건넸지만 사실 명령이나 마찬가지였다.우두머리인 납치범은 멍하니 있다가 핸드폰을 이진의 손에 공손하게 쥐여주었다.이진은 핸드폰을 건네받은 후 최근 연락한 번호들을 찾아보았는데 역시 유연서의 전화번호였다.납치범이 유연서라는 사실은 그녀를 별로 놀라게 하진 않았다.다만 이진은 이 여자가 이렇게 미친 짓을 벌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두 번이나 납치한 이유가 뭘까? 윤이건을 독차지하고 싶어서?’이진은 이런 생각을 하며 이를 갈았다.‘이 여우 년이 내가 죽기를 원한다면 나도 나만의 방법으로 싸워 줘야지.’이진은 생각을 하더니 핸
“너희들 말 좀 해 봐! 귀먹은 거야?”아무도 말을 하지 않자 유연서는 더욱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이 폐공장은 매우 커서 그녀가 소리를 지르자 메아리를 일으켰다.몇 초 후 바닥에 엎드린 유연서는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하이힐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유연서는 온몸에 닭살이 돋았는데 얼른 고개를 돌려 그 여자가 누군지 보려고 했지만 전혀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일으켜 세워.”뒤에서 갑자기 소리가 들려왔는데 유연서는 그 목소리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이, 이진…….”“유연서 씨, 제가 이런 곳에서 당신을 만나게 될 거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네요.”이진이 말을 하는 도중에 두 납치범은 유연서를 부축하였다. 사실 부축하였다기보단 그냥 그녀를 든 거나 마찬가지다.팔에서 전해온 통증에 유연서는 저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청난 두려움이 그녀의 온몸에 전해지고 말았다.유연서는 이진이 점차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자 말하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말았다.“이 말, 지금 저한테 묻는 거예요? 아니면, 혹시 절 대신해 물으시는 건가요?” 이진이 가볍게 말을 건네자 유연서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디. 그녀는 엄청난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인해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유연서의 이런 모습에 이진은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그 웃음은 분명 유연서를 향한 비웃음이었다.“참,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솔직하게 말할게요.”이진은 말을 하면서 앞으로 한걸음 나아갔는데 그녀의 이런 행동에 유연서는 더 놀라 엄청난 압박감을 받았었다.“말해봐요, 왜 자꾸 저를 납치하지 못해 안달인 거예요?”유연서는 그녀의 말을 듣자 저도 모르게 온몸을 떨더니 힘껏 몸을 흔들어 납치범의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납치범은 그녀를 더 꽉 잡고 말았다.“지,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진 씨, 이거 당장 놔요!”“그래요? 그럼 다시 한번 물어볼게요. 절 여러 번 납
그녀의 말을 듣자 이진은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유연서를 미워해야 할지 동정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진짜 나 때문인가? 나 아니어도 3년 동안 윤이건과 붙어있었을 때 충분히 기회 있었잖아?’다만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의미 없다고 느껴 입을 오므렸다. 한편 유연서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가능한 한 긴장된 마음을 진정시켰다.하지만 칼이 목에 닿아있는 상황에 정말 긴장을 풀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을 거다.상황이 지체되고 있을 때 폐공장의 문이 다시 열렸다. 그들은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돌렸는데 윤이건이 안으로 걸어들어왔다.윤이건이 이렇게 빨리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이진이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다.이진은 그저 윤이건에게 이 여우 년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진이 잠깐 멍을 때리고 있었을 때 윤이건은 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진아! 그만해!”윤이건은 말을 하면서 이진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가 쥐고 있던 칼을 빼앗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황이 뒤바뀐 것 같았다.유연서는 칼을 치워버린 데다가 윤이건이 나타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온몸이 편안해진 느낌에다가 윤이건이 나타나 마음이 든든하기까지 했다.유연서는 윤이건의 방금 모습은 분명히 자신을 걱정한 것이라고 생각해 떳떳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이건 오빠, 오빠가 빨리 와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나는…….”유연서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이진은 원래 윤이건에게 이 일의 경과를 똑똑히 설명하려고 했지만 유연서가 연기하는 것을 보자 웃기 시작했다.‘역시 여우 년이라고 부르기 딱 적합한 여자야.’유연서는 분명 방금까지 모두 이진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인 거라고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는 윤이건이 나타나자 자기가 피해자라도 된 것 마냥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다.이때 이진이 데리고 온 경호원들은 이미 납치범들을 붙잡고 공장을 나섰다. 그래서 한동안 폐공장 안에는 이 세 사람만 있었다.유연서는
윤이건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진은 조금 실망스러운 데다가 상처받은 기분이 들었다. 상처받았다고 하기보다는 최근 윤이건과 함께 지내면서 그나마 그가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실망스러운 거였다.보아하니, 그녀는 윤이건을 애초부터 믿지 말았어야 했다.이진은 이를 악물며 유연서가 허약한 모습으로 윤이건의 품에 기대는 것을 보자 구역질이 날 뻔했다. 하지만 그녀는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숨겨두기만 했다.“이진 씨.”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이진이 고개를 돌리자 경찰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공교롭게도 지난번과 같은 경찰들이 나타난 거였다.그녀는 대장을 보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밖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인가요? 그들은 저희가 이미 심문을 마쳤어요.”대장은 엄숙하게 입을 연 뒤 천천히 유연서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경찰이 나타나자 유연서는 거의 윤이건의 뒤에 숨어 있었다. 분명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이다. 그녀는 몸을 감추고 있었지만 계속 그들을 훑어보고 있었다.이때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자 유연서는 다리가 나른해져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이진은 콧방귀를 뀌며 입구의 경호원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경호원들은 그녀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납치범들을 순순히 경찰에게 넘겼다.“이진 씨, 혹시 다치진 않으셨나요? 저희와 함께 경찰서로 가서 제대로 검사해 봅시다.”대장은 유연서를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았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어 유연서는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고마워요, 다치진 않았지만 이번 일에 대해 제대로 조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이진을 말을 하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는데 분명히 자리를 비키는 것이었다.그러자 유연서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것 같았다.이진이 뒤로 한 발 더 물러서려고 하자 대장이 직접 입을 열었다.“유연서 씨.”“네.”유연서는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는데 그녀는 이렇게 시원스럽게 대답을 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방금 저희가 납치범들을 심문할 때 그들이 당신의 이
이 말을 듣자 유연서는 너무 놀라 멍하니 서있고 말았다. 그녀의 두 손은 허공에 그대로 멈춰 있었지만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랐다.윤이건의 곁에서 이렇게 오래 함께해 왔지만 그녀는 종래로 이렇게 엄한 말투로 혼난 적이 없었다.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긴장되어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윤이건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자 눈을 가늘게 뜨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몸을 돌려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유연서가 정신을 차리자 윤이건은 이미 경찰서에서 나왔다.“유연서 씨, 앞으론 적당히 하시죠.”방금 그 대장이 걸어 나오더니 무덤덤하게 이 말을 건넸는데 유연서는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방금 이건 오빠는 경찰을 찾아가 나를 풀어준 거야?’분명 좋은 일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마음이 복잡한 데다가 조금도 편안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묵묵히 윤이건을 따라 경찰서에서 나온 후 그의 차에 올라 그곳을 떠났다.한편 이진은 폐공장을 떠날 때 의도적으로 경호원 한 명을 윤이건의 곁에 두었다. 그들을 추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혹시라도 그녀가 다시 나서야 할 상황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윤이건이 유연서를 경찰서에서 구해준 것도 모자라 그녀를 데려다주기까지 하자 이 경호원은 바로 이진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에 대해 보고했다.이때 이진은 GN 그룹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이 소식을 듣자 바로 운전기사더러 AMC로 가도록 방향을 바꾸었다.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보던 이진은 이를 악물고 있었는데 그녀의 눈빛에는 온통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였다. 그녀는 윤이건의 이런 행동에 정말 기분이 나빴다.그래서 GN 그룹으로 돌아가 대표 행세를 하고 싶지 않았고 윤이건의 별장엔 더더욱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AMC로 돌아가고 나서 좀 쉬기 시작했는데 지금의 그녀는 몸과 마음이 무척이나 지쳐있었다.AMC의 대표 사무실에는 작은 휴게실이 하나 있었다.이진이 침대에 눕자 그녀의 눈앞에는 방금 윤이건이 유연서를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GN 그룹에서 높은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라 단기적인 프로젝트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지난번 경매에서 크게 소란을 일으켰던 프로젝트가 바로 모진호이기에 다들 다음으로 진행될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다만 이진이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내자 모두들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보통 회사에서 공식적인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면 한 달 정도 준비하고는 결정을 내리는데 이진은 보름 정도밖에 안 된 지금 이미 결정을 내렸다.“대표님, 이, 이렇게 빨리…….”마케팅 부의 책임자가 천천히 손을 내밀어 모두가 궁금해하던 질문을 하려고 했다.이진은 그저 싱긋 웃더니 대답했다.“여러분들께서 전체적인 구성을 보시면 알 겁니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나중에 천천히 조정하면 될 겁니다.”이영은 비록 전체 프로젝트의 기획을 맡았지만 전체적인 구성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이영은 자신이 엄청난 공을 세운건 줄 알았는데 손에 놓인 구성 표를 보더니 너무 놀라 멍을 때리고 말았다.그녀가 책임질 범위는 이 프로젝트 중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했다.이진은 가장자리에 앉아 각 부서의 책임자들이 구성 표를 자세히 보는 것을 보며 담담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시간이 얼마 정도 지났는데 그 정도 시간은 충분히 그들이 의견 있는 부분을 찾기엔 충분했지만 아무도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GN 그룹의 각 부서 책임자들은 이사들과 달리 이진에 대해 날카롭거나 대립적인 태도를 갖추진 않았다. 반면 그들은 놀란 나머지 약간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데이터가 모든 것을 증명한 데다가 이진이 GN 그룹의 대표를 맡은 후부터 회사의 매출은 줄곧 상승한 데다가 직원들의 보너스마저 많아졌다.“모두들 말씀 없으신 거 보시면 구성에는 문제가 없나 봐요?”이진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훑어보았는데 오직 이영의 안색만이 어두웠다.“그럼 이만 제 자리로 돌아가 맡은 내용을 잘 살펴보도록 하세요. 혹시라도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제때에 연락하시는 걸 잊지
사실 이진이 이렇게까지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오늘 푹 자고 나서 내일 깨어난 후 바로 출발해도 되었는데 그녀는 지금 윤이건을 보고 싶지 않아 윤이건이 집에 없을 이 시간에 돌아가 짐을 쌌다.물건을 모두 정리한 후 이진은 차를 몰고 출발했는데 먼저 임만만을 데리러 갔었다.모진호를 향해 달려가던 참에 이진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핸드폰 위에 적힌 이름을 보자 이진은 미소를 짓더니 바로 전화를 받았다.전화를 받고 귀에 대자마자 전화 쪽에서는 원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이진! 넌 정말 양심조차 없는 여자야! 나 보러 안 오는 건 그렇다 쳐도 오늘 퇴원하는 데 어떻게 전화조차 안 할 수 있어?”정희가 소리를 지르자 이진은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그녀는 요즘 회사 일에 바빠 전화는 자주 했지만 정희를 보러 직접 가진 못했다. 정희는 이곳에선 친구가 별로 없었기에 확실히 그녀가 소홀한 것이다.“정희야, 내가 미안해. 나 지금 출장 가는 길인데 돌아오고 나서 제대로 보상해 주면 안 될까?”운전을 하던 임만만은 이진이 이런 말투로 사람을 달래는 것을 듣자 의외라고 생각했다. 임만만은 저도 모르게 그녀와 전화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났다.사실 정희도 화가 났다기보단 병원에 너무 오래 있어서 심심했을 뿐이다. 정희는 퇴원 수속을 기다리던 도중에 심심해서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녀가 출장을 간다는 말을 듣자 눈을 갑자기 번쩍였다.“어디로 가는데? 나도 데리고 가면 안 돼? 나 마침 기분 전환이 너무 하고 싶어.”정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이진이 동의하지 않을까 봐 계속해서 말했다.“나 데려가면 안 돼? 네가 날 소홀한 벌칙과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이진은 어쩔 수 없이 피식 웃더니 전화를 끊고 임만만더러 방향을 돌려 병원으로 차를 몰라고 했다.병원 앞에 도착하자 정희는 이미 그곳에 서 있었는데 엄청 조급해하는 모습이었다. 차에서 임만만과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정희는 계속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는데 이진은 한 쪽에
이진은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정희가 민시우에 대한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그녀 역시 민시우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그녀는 첫인상을 무척 중요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이런 생각에 이진은 숙이던 고개를 들어 두 마디 설득하려고 했는데 정희의 모습을 보더니 깜짝 놀라고 말았다.“너, 너 왜 눈을 그렇게 뜨고 있는 거야?”이때 차는 이미 멈춘 상태였고 정희는 여전히 이진의 뒤에 있는 창문 유리를 보며 눈을 깜박이지도 않았다.“이봐! 무슨 후유증이라도 생긴 거야?”이진은 말을 하면서 손을 뻗어 정희의 눈앞에서 흔들거렸는데 정희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이진은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는데 한시혁이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너…….”이진은 눈썹을 찡긋거리고는 정희를 보더니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었다.결국 그들 뿐이라 편이를 위해 이진은 차 한 대로 이동하려고 한시혁을 데리러 갔다. 그러나 뜻밖의 수확을 거두게 된 거였다.“너, 이진아, 너 혹시 저분이랑 아는 사이야?”사람은 흥분할 때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는데 정희의 목소리는 심지어 100미터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컸다.“응, 내 친구이자 이번 프로젝트 협력 파트너야.”이진은 이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귀를 막았는데 역시나 옳은 행동이었다.이때 한시혁은 이미 조수석에 올라탔고 정희는 너무 놀라 몸 전체가 그대로 굳어버렸다.“한. 한시혁 씨!”한시혁은 정희를 보자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는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그녀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깜짝 놀랐다.“한시혁 씨, 안녕하세요! 전 이진의 베프인 정희라고 해요. 전 당신의 오랜 팬이에요!”이 말을 듣자 이진은 몸을 살짝 뒤로 기대어 웃음을 참지 못했다.뜻밖에도 이런 우연의 일치로 차 안은 팬미팅 현장이 되어버렸다. ‘이번 여행은 지루하지 않겠네.’그들은 매우 즐거운 상황이었지만 윤이건 쪽은 완전히 달랐다.이진은 출장 간다는 걸 그에게 알려주지도 않았는데다가 그가 퇴근해서 돌아와보니 이진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