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이마를 다쳐 출혈이 심했을 뿐입니다.”이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슴 아파하였다.정희는 그녀의 몇 명 안 되는 친구 중의 하나라 목숨을 바친다해도 두말없는 그런 사이이다.근데 지금 어이없는 오해 하나로 수술실에 들어가다니.“환자 상처는 이미 봉합하였고, 충분히 안정을 취한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아마도 긴강을 오래하였는지라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서 긴장이 풀렸는지 이진은 바로 어지러움을 느꼈다.윤이건은 휘청거리는 이진을 보고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그럼 이제 들어가봐도 되는 겁니까?”의사 선생님은 윤이건을 보며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다친 부위가 머리라서 오래는 머물지 마세요. 환자분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감사합니다.”의사 선생님은 향해 윤이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이진의 허리를 감싸고 기다렸다.지금까지 계속 침묵하고 있었던 민시우는 마음의 자책뿐만 아니라 자기도 모를 이상한 감정까지 느꼈다.한참 후, 간호사는 정희를 수술실에서 밀어내고 병실로 옮겼다. 세 사람도 같이 뒤따라갔다.“정희가 나한테 연락하라고 한 거예요?”병실로 따라가던 민시우가 이 말을 듣고 멍하니 고개를 들고보니 이진의 계속 화난 모습이 보였다.“응, 병원 오는 길에서.”민시우는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다른 말은 없었다.솔직히 말해 그 동안 술집, 나이트클럽을 다니면서 이런일을 수없이도 보았다.하지만 어느 날 자기 곁에, 자기 친구한테, 자기가 아끼는 사람한테 일어나니 모든 게 달라진 것 같았다.고개를 들어 병상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정희를 보며 민시우는 자기도 모를 감정을 느꼈다.병실에서 의사 선샌님과 간호사는 또 이진에게 일부 주의사항을 알리고 떠났다.병실에는 결국 몇 명만 남았고 이때 마침 정희도 눈을 떴다.마취약때문인지 눈빛이 약간 흐려져 있지만 너무 나쁜 상태는 아니다.“나, 나 입원 서류 챙기고 올게.”정희 눈빛과 마주친 민시우는 약간 당환한지 핑게를 대고 급히 나갔다.윤
윤이건이 이렇게 말할 줄은 그 누구도 생각 못했다. 특히 이진은 더욱 그러하다.이때 이진은 이 사람의 옆모습을 살펴보며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괜찮은데, 관건적인 순간 말은 제대로 하네.’이에 민시우는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말을 삼켰다.말하자면, 그는 도망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가장 먼저 정희에게 사과하고 싶을 뿐이다.그가 없었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고개를 숙이고 반쯤 망설인 후에야 윤의건 뒤에서 정희 앞에 나섰다.지금 정희도 민시우의 얼굴을 보고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다소 고민하고 있었다.그리고 고민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침묵하는 것이다.정희는 평소 이진처럼 자신의 옷차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평일에도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다.그러나 평소의 그 붉은 볼에 비해 지금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다.더우기 이마 위의 거즈까지 합쳐 더욱 초췌해 보였다.민시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꺼내기가 더욱 힘들었다.“정희, 너, 너 걱정 안해도 돼, 이번 일은 내가 잘 처리할게, 너를 다치게 한 사람들 내가 가만두지 않을거야.”말이 끝나고 정희를 깊이 보고는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떠났다.정희는 민시우의 떠나는 시선을 몇 초 바라본 후 다시 시선을 돌렸다.병실 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렸고, 이진도 한참 후에야 다시 윤이건을 보고 말했다.“윤이건 씨도 얼른 돌아가세요. 오늘 수고 많았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처리할 게요.”아까 그 말 덕분에 이진은 말하는 태도를 바꿨다. 그전의 냉냉한 말투보다 지금 이진의 목소리는 더욱 온화해졌다.어쨌든 이 여자도 오늘 납치를 당했으니까그러나 지금 그가 여기에 남아 있는 것도 확실히 적합하지 않기에 후방 지원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이렇게 생각하고는 의자 위에 놓인 외투를 들고 정희를 향해 인사를 하였다.“그럼 푹 쉬세요.”“네, 감사합니다.”정희는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가볍게 입을 열어 고맙다고 말했다.윤이건의 시선은 다시 이진으로 향했다.“너도 감기 걸
이튿날 아침, 두 사람은 잠에서 깨여난지 얼마 안되어 누군가 병실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세면하고 있던 이진은 소리를 듣고 급히 걸어 나왔다.문을 열고 보니 민시우가 문 앞에 서 있고 뒤에 한 여자가 뒤따르고 있었다.더 이상 물어볼 필요도 없다. 정희를 다치게 한 그 여자가 틀림없었다.민시우는 이진을 보고 그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여친의 팔을 잡고 들어왔다.방금 잠에서 깬 정희는 이마를 다친 때문인지 머리가 좀 어질어질 했다.하여 갑자기 튀어나온 민시우 때문에 깜짝 놀랐다.뭐라고 한마디 투덜대려다가 그 뒤에 서 있는 여자를 보고 얼굴이 굳어졌다. “정희야…….”민시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여자친구를 바라보았다.“어제 일, 정희한테 사과하기로 약속했잖아, 얼른 사과해.”이진은 문을 닫고 그들을 햐해 걸어왔다. 그리고 두 팔을 안고 벽에 기대어 구경하고 있었다.그 여자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정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원한을 품고 있다.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비틀거리며 시선을 한 바퀴 돌린 후에야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정희 씨,어제 일은 제가 잘못했어요. ”옆에 서있던 민시우는 이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뒤에 말이 또 바뀌어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근데 말하자면 불빛 어두운 곳에 남자랑 여자 둘만이 같이 있는데, 이건 그 누구도 오해할 만한 상황 아닌가.”눈을 깜빡이며 말하는 그 모습, 분명히 말 속에 다른 뜻을 담고 있었다.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뜻이다.“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건데?”정희는 어지러움을 참으며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옆에 서있던 이진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사실 이진은 마음속으로 정희를 걱정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도와줄 일이 아니기에 나서지 않았다. 정희 그녀의 자손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아무 뜻도 없는데.”정희의 말대꾸에 여자도 목청을 높였다. “내가 널 다치게 한 것은 인정해, 근데 네가 그런 오해할 만한 짓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
이진을 말을 듣고 멍해진 민시우는 결국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그로 인해 정희가 다쳤고, 이 일로 그는 이미 충분히 양심의 가책을 느겼다. 그러나 이 시각에 여친이 불을 부치는 행동은 아무래도 용납할 수 없었다.법정이라는 말에 여자는 어디서 난 힘인지 민시우의 손을 뿌리치고 손바닥에서 벗어났다.“법정이라고? 너 지금 나를 겁주는 거니? 똑똑히 알려주지! 나 주씨 가문의 첫 째 딸이야!”“주씨 가문이라고?”이 반문은 이진이가 일부러 한 것이 아니라 정말 이 가문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다소 곤혹한 시선이 여자의 눈에는 두 여자가 세상 물정 모르는 것으로 보여졌다.“허, JS 들어본 적 있어? 우린 주얼리 장사를 하는 기업이야. 난 그 가문의 고명딸이고! ”민시우는 옆에 서서 여친 대신 더 조마조마하고 있었다.“오, 주씨네...”이진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는 웃음기가 돌았다. 이 여자 정말 웃긴 여자이다.“어때? 두려워? 두려운 것을 알았으니 이 일은…….”우쭐거리며 말하고 있는 여자를 그대로 무시하고 이진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팔장 껴고 옆에 서있던 민시우는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케빈.”이진은 전화를 걸고 명을 내렸고, 무표정으로 여자의 다소 의아한 얼굴에 시선을 멈추었다.“지금 당장, JS 회사 알아봐, 이쪽에서 주얼리 장사를 하고 있대.”이진의 말을 들으며 여자는 더욱더 의혹해 했다.“알아냈어? 좋아.”말하던 이진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에는 전혀 웃음기가 없었다.“이 회사에 소식을 보내, 바로 인수한다고.”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은 이진은 아무렇지도 않는 표정을 지었다.여자의 가슴은 덜컹하였고, 손바닥에서 식은땀이 났다.가슴은 두근거리고, 얼굴을 하얗게 질려있었지만 여전히 억지로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너 지금 그거 허세지? 누가 못해? 내가 너라면 좀 더 닮은 척 하겠어. 내가…….”이진을 향해 뭐라고 말하던 참에 핸드폰이 울렸다.어머니의 전화인 것을
정희는 이진의 능력을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 몇 분도 안되는 사이에 역전한 것은 정말 그녀를 놀라게 하였다.정희는 병상에 앉아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 여자를 보았다. 마음이 놓인다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그리고 소리를 듣고 이진과 민시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특히 민시우의 그 표정…….정희는 눈썹을 살짝 치켜 올렸다.사과는 받았고, 그녀에게 병원비도 부족하지도 않고, 따지고 보면 원래 사과를 원하였던건데 지금 이 상황도 사건완료된 것과 마찬가지이다.“데리고 나가.”정희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약간 허무하고 가벼운 목소리이다.민시우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말은 해야 하지만, 지금 해야 할 말은 아니다.두 사람이 떠난 후 이진은 정희의 상처를 보고 무심한 척하며 입을 열었다.“혹시 이 일, 너 시우 씨를 탓하니?”정희는 이 말을 듣고 멍하니 있다가 이진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뭘 알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내 앞에서 이러면…….”이 말에 이진은 정희를 흘겨보았고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잠시 후 병실 문이 다시 열렸고, 소리를 향해 몸을 돌린 두 사람은 문어귀에서 윤이건을 보았다.“어떻게 왔어요? 오늘 회사 출근 안했나요?”“그냥 왔어.”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윤의건의 눈빛은 계속 이진을 따라다녔다.침대 옆에 걸어가 정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외투를 이진에게 건네주었다.“오늘 날씨가 좀 추운 것 같아서 옷 한 벌 챙겨왔어.”아주 일상적인 일이라 오히려 이진이가 거북실스러움을 느겼다.입을 놀리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까놓고 말하지 않았다.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간호사가 마침 들어와서 정희에게 약을 바꿔주려고 하였다.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신입이라 움직임에서 긴장함을 보이더니 덜렁거리기 시작하였다.알코올 솜덩이를 들고 소독을 준비하던 중 손등이 무균반에 부딪혔다.동작은 민첩하지만 몸의 한쪽 중심이 좀 불안정해서 곧 뒤로 넘어질 듯 하였다.하지만 어린 간호사의 민첩한 동작에 비해 윤이건
‘유연서?’윤이건은 정희가 이 이름을 꺼낼 줄을 예상하지 못했다.몇 년 전, 그는 유연서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고 많은 배려도 하였다. 그것은 유연서가 일부 소란을 피우는 사람과 달리 조용하고 얌전하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유연서를 그때 자신을 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 당시 그 화재에서 자신을 살린 생명의 은인.그러나 지금은 확실한 증거는 없으나, 이미 드러난 것만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현재 윤이건은 자신을 구한 그 사람이 이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연서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기만에 진실까지 더하고 나면 친구처럼 그녀를 대하는 방식이 그에게는 최선이다.지금까지 허비해온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최대한 보상하고 싶었다.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윤이건은 결국 병상옆의 의자에 앉아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다시 폈다.“그래서 말인데 대표님에 대해 유연서 씨는 그냥 오랜 친구라는 거죠?”윤이건이 자신의 일부 감정에 대한 이해를 말하는 것을 듣고 정희는 어색하기만 하였다.비록 이전 윤이건과 접촉한 적은 없으나 기업권 가문의 사람으로서 이 도련님을 누가 모를가?하지만 이진을 위해 그녀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윤이건은 이 문제에 답하지 않고 정희는 이런 침묵을 묵인이라고 인정하였다.이 문제를 발견하고 그녀는 뜻밖에도 약간의 기쁨을 느꼈다.“대표님이 말대로 유연서 씨와 오랜 친구라면 이진은 대표님에 대해 어떤 사람이죠?”정희가 말을 듣고 유이건의 가슴은 덜컥 하였다.그 어떤 감정이 정체를 드러날 것 같았지만 결국 목이 메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정희는 윤이건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이 사람의 표정을 보니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호기심에 정희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윤이건을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의 눈에서 교활함이 묻어났다.“대표님, 왜 말을 안 하세요? 어려운 질문은 아닌 것 같은데요. 대표님…….”끝까지 물어보려 했는데 뜻밖에도 병실문이 열리면서 이진이가 들어왔다.“너, 왜 이렇게 빨라?”정희
윤이건의 낮은 목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충격적인 내용의 말을 들어서인지 이진의 손 힘은 풀리고, 베개는 땅에 떨어지고, 그녀는 눈을 깜빡거리며 아직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하였다.“그 말 무슨 뜻이예요?”비록 지금 윤이건과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만 아까 이 사람의 말과 그 말투, 웬지 이상하고, 심지어 섬뜩하기도 하였다.윤이건을 보고, 또 정희를 보았다. 모두 그녀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이진은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베개를 주워 두드리며 감정을 숨기려 했다.“먼저 돌아가세요. 저는 정희를 돌봐야 해서요.”“아니야, 필요없어. 게다가 방금 간호원까지 불렀잖아. 걱정 마.”정희의 말에 이진은 이 계집애가 도대체 누구 편의 사람인지 의심하였다.“니가 계속 여기에 있으면 정희 씨도 아마 제대로 쉴 수 없을 거야.”윤이건이 이렇게 말할 줄을 생각지 못한 정희는 그 자리에서 웃어버렸다.그리고 이진은 그닥 좋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윤이건 씨, 그 말 무슨 뜻이죠…….”“아무것도 아니야, 너 지난번 나랑 결혼얘기 하려던거 아니였어?”이유를 듣고 이진은 안심해졌다.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이유이기 때문이다.옷을 대충 정리한 후에 떠날 준비를 할 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은 이진은 정희에게 주의해야 할 것들을 반복하였다.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이에 정희도 어처구니없어 하였다.그리고 그 동안 윤이건은 계속 옆에 서 있었다.귀찮아 하지 않고 계속 되풀이하는 이진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눈동자는 점차 따뜻해졌다.이진의 그 메시지, 그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조금 신경쓰이기도 하였다.아마도 원래 위엄있고, 또 온윤해야 하는 그녀가 그런 필연적인 복수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생각치 못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점점 알아갈 수록 이해도 쉬워졌다.그 복수에는 아마 전제가 있을 것이다. 상처를 입었거나 많이 다쳤거나.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비서가 운전하고, 윤이건은 뒤좌석에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고 있
이진은 몸을 가볍게 흔들며 등을 살짝 곧게 펴고 흥미진진하게 윤이건을 바라보았다.“이 일을 해명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럼 잘 알았어요.”이 사람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모르나 윤이건의 말을 듣고 속이 후련해졌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하지만 그의 그럴듯하게 구는 모습은 당연히 뒷말이 있는게 분명하다.이진이 제대로 들어줄 표현에 윤이건의 표정도 점점 온화해졌다.이 사람의 몸에서 시선을 돌려 빈 찻잔을 보고 한창 후 가볍게 입을 열었다.“그리고 우리 둘 결혼 이제 곧 끝나지만 이 일은 이대로 끝내서는 안돼.”완전히 예상치 못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윤이건이 말을 듣고 이진은 여전히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윤이건의 엄숙한 표정이 아니었더라면 이진은 아마 이 사람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줄로 알았을 것이다.“대표님, 지금 저한테 무슨 농담을 하시는 겁니까? 우리 결혼 계약은 3년이고 지금도 지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나도 알아,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거, 사실상 아무런 근거나 도리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이진은 인정하는 듯 눈썹을 치켜세웠고 윤이건의 마음도 뒤죽박죽이다.지금 생각하면 마치 누군가 몰래 그를 벌하는 것 같았다.지난 3년 동안, 이 사람이 매일 같이 자기 눈앞에 있을 때 그는 모르는 사람처럼 무시하였다. 그리고 잡고 싶을 이제,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당황하다. 아까 해명하는 것보다 더욱 당황한 느낌이였고, 한 번도 체험해본 적인 없었다. 이 모든 감정이 비록 그를 불안하게 하였지만 분명한 것은 눈앞의 이 여자를 놓칠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핑계도 아닌 핑계를 대더라도 말이다.무릎 위에 늘어진 손바닥으로 주먹을 살짝 쥐고 유인건은 속으로 이런 자신을 비웃었다.“그때 나랑 계약을 맺었던 이유 아직 기억해?”앞뒤도 없는 갑작스러운 말에 이진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급한 김에 3년이라고 말했지만 어르신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어.”“그그그, 그게 무슨 말이예요…….”윤이건의 말 듯을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