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건의 낮은 목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충격적인 내용의 말을 들어서인지 이진의 손 힘은 풀리고, 베개는 땅에 떨어지고, 그녀는 눈을 깜빡거리며 아직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하였다.“그 말 무슨 뜻이예요?”비록 지금 윤이건과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만 아까 이 사람의 말과 그 말투, 웬지 이상하고, 심지어 섬뜩하기도 하였다.윤이건을 보고, 또 정희를 보았다. 모두 그녀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이진은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베개를 주워 두드리며 감정을 숨기려 했다.“먼저 돌아가세요. 저는 정희를 돌봐야 해서요.”“아니야, 필요없어. 게다가 방금 간호원까지 불렀잖아. 걱정 마.”정희의 말에 이진은 이 계집애가 도대체 누구 편의 사람인지 의심하였다.“니가 계속 여기에 있으면 정희 씨도 아마 제대로 쉴 수 없을 거야.”윤이건이 이렇게 말할 줄을 생각지 못한 정희는 그 자리에서 웃어버렸다.그리고 이진은 그닥 좋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윤이건 씨, 그 말 무슨 뜻이죠…….”“아무것도 아니야, 너 지난번 나랑 결혼얘기 하려던거 아니였어?”이유를 듣고 이진은 안심해졌다.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이유이기 때문이다.옷을 대충 정리한 후에 떠날 준비를 할 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은 이진은 정희에게 주의해야 할 것들을 반복하였다.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이에 정희도 어처구니없어 하였다.그리고 그 동안 윤이건은 계속 옆에 서 있었다.귀찮아 하지 않고 계속 되풀이하는 이진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눈동자는 점차 따뜻해졌다.이진의 그 메시지, 그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조금 신경쓰이기도 하였다.아마도 원래 위엄있고, 또 온윤해야 하는 그녀가 그런 필연적인 복수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생각치 못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점점 알아갈 수록 이해도 쉬워졌다.그 복수에는 아마 전제가 있을 것이다. 상처를 입었거나 많이 다쳤거나.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비서가 운전하고, 윤이건은 뒤좌석에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고 있
이진은 몸을 가볍게 흔들며 등을 살짝 곧게 펴고 흥미진진하게 윤이건을 바라보았다.“이 일을 해명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럼 잘 알았어요.”이 사람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모르나 윤이건의 말을 듣고 속이 후련해졌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하지만 그의 그럴듯하게 구는 모습은 당연히 뒷말이 있는게 분명하다.이진이 제대로 들어줄 표현에 윤이건의 표정도 점점 온화해졌다.이 사람의 몸에서 시선을 돌려 빈 찻잔을 보고 한창 후 가볍게 입을 열었다.“그리고 우리 둘 결혼 이제 곧 끝나지만 이 일은 이대로 끝내서는 안돼.”완전히 예상치 못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윤이건이 말을 듣고 이진은 여전히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윤이건의 엄숙한 표정이 아니었더라면 이진은 아마 이 사람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줄로 알았을 것이다.“대표님, 지금 저한테 무슨 농담을 하시는 겁니까? 우리 결혼 계약은 3년이고 지금도 지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나도 알아,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거, 사실상 아무런 근거나 도리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이진은 인정하는 듯 눈썹을 치켜세웠고 윤이건의 마음도 뒤죽박죽이다.지금 생각하면 마치 누군가 몰래 그를 벌하는 것 같았다.지난 3년 동안, 이 사람이 매일 같이 자기 눈앞에 있을 때 그는 모르는 사람처럼 무시하였다. 그리고 잡고 싶을 이제,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당황하다. 아까 해명하는 것보다 더욱 당황한 느낌이였고, 한 번도 체험해본 적인 없었다. 이 모든 감정이 비록 그를 불안하게 하였지만 분명한 것은 눈앞의 이 여자를 놓칠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핑계도 아닌 핑계를 대더라도 말이다.무릎 위에 늘어진 손바닥으로 주먹을 살짝 쥐고 유인건은 속으로 이런 자신을 비웃었다.“그때 나랑 계약을 맺었던 이유 아직 기억해?”앞뒤도 없는 갑작스러운 말에 이진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급한 김에 3년이라고 말했지만 어르신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어.”“그그그, 그게 무슨 말이예요…….”윤이건의 말 듯을
계약 일이 끝난 뒤어야 윤이건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마음을 정했으니 남은 것은 쟁취 뿐이다. 그리고 이 결정이 초래한 결과는 바로 윤이건의 각종 호의이다.다만 어처구니없을 때가 많다.어느날 아침, 두 사람은 식탁에서 아침을 먹은 뒤 이진은 외투와 서류를 가지러 방으로 돌아갔다.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 윤이건은 보이지 않았다.원래 이진은 윤이건이 회사에 갔을 거라고 생각하고 외투를 입고 밖으로 나갔는데 문을 열자 생각밖으로 거기에 윤이건이 서 있었다.옷차림을 단정히 한 뒤 반쪽 몸을 차에 기대고 머리를 숙여 소매 단추를 묶고 있었다.“여기서 뭐하는 거예요?”“태워다 줄게.”윤이건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눈빛에는 웃음기를 띠었다.“태, 태워다 준다구요?”이진은 천천히 그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하였다. 그녀에게는 이 소식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어젯밤 입구에 배달된 사과, 오늘 아침에는 계란버터를 썰어주고, 지금은 운전기사?’ “그래, 왜? 자격미달이야?”그럴듯 고개를 끄덕이며 재삼 확인하는 윤이건을 보고 이진은 바로 웃어버렸다.“제가 어찌 감히, 그저 좀 당황해서요. 오늘 아침 길은 천금가치이네요.”윤이건은 이진이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들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반대로 말해 이전 이진은 냉냉한 태도에 비해 지금은 농담도 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말하는 사이에 윤이건은 이미 조수석의 위치로 돌아가 허리를 살짝 굽혀 차문을 열었다.입가에 웃음기를 띠고 말없이 팔을 구부려 초대하는 자세를 취했다.지금 이진은 온 몸에 닭살 돋은 기분이다.만약 회사 대표의 이런 모습을 YS 그룹 직원들이 보았다면 아마 반년차 병가도 가능할지 모른다.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이 남자의 이런 모습은 그녀를 위한 것이고 결혼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조수석으로 앉은 이진의 표정은 약간 복잡했다.윤이건도 이진의 다소 복잡한 눈빛에 주의를 기울였다.낯설음과 갈등은 하루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윤이건도 잘 알
“이진!”두 사람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이기태는 더는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지금이 바로 출근 시간이라 GN 그룹 직원들도 많이 드나들었다. 하여 다들 이 상황을 지켜 보고 있다.이진은 눈살을 찌푸리고 거짓 웃음을 터뜨렸다.“무슨 일이세요?”윤이건은 고소의 멀지 않은 곳에 서서 팔장을 끼고 있었지만 앞으로 나아가려고는 하지 않았다.비록 두 사람은 지금까지 이씨 가문에 대해 얘기한 적은 없지만 이진이가 그를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이 말을 들은 이기태는 윤이건을 힐끗 보았고, 그가 입을 열지 않은것을 본 다음에야 마음을 놓았다. “이진! 대답해! 왜 회사에 들어갈 수 없지? 니가 한 짓이야?”“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 아직 어려서 청력은 좋아요.”이진은 어쩔 수 없다는 뜻으로 말했다.뒤에 서있던 윤이건은 이 말에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웃었고, 이기태는 화가 나 얼굴이 붉어졌다.“이런 짓 그만하고 내 말에 답해. 네가 지시한 거야?” “네, 저 말고 또 누가 이사님의 출입을 막을 수 있겠어요?” 다행히 이기태 몸이 괜찮아 이진의 말을 듣고 쓰러지지는 않았다.“나 정말, 너 같은 얘를 낳아서!불효자식이야! 불효자식! ”“네, 네, 저도 20여 년 동안 줄곧 이 문제를 생각하여 왔어요.”이진는 여전히 경멸의 웃음을 띠고 호통을 들으면서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이사님, 그럼 그 문제 답은 찾았나요? 찾았으며 저에게 알려주세요.”만약 정말 서로 맞서게 된다면 그래도 한마디 답할 수 있지만 이진이 이렇게 나오면 그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왜, 말해봐! 왜 회사에 못 들어오게 했어!”이기태의 질문에 이진은 생각하는 티를 내며 고민하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딱히 말하자면, 정말 별다른 원인은 없네요.”“그런데 왜……."“뭐 그냥 GN 그룹 대표라서, 당신을 들어보내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거죠.”이 말을 하며 이진은 턱을 살짝 들어올렸는데 그 도도한 자태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적어
경비원도 이기태를 알기에 두 사람을 잡아당길 때 감히 손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기태는 화를 냈다.GN 그룹 전 대표이자 지금의 대주주인 자신이 아침부터 회사 문을 들어갈 수 없고, 지금은 또 경비원에게 밀치다니.그의 신분은 마치 길거리를 떠도는 양아치처럼 추락했다.이기태는 분노에 몸 전체가 굳어버릴 것만 같았고 머리가 어지러워졌다.그는 이를 악물고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이성이 곧 사라질 것만 같았다.그러나 윤이건이 자기와 1메터도 안되는 곳에 서있다. 이 사람에 대해 이기태는 두려움을 참을 수가 없다.실력으로 봐서도 이 사람의 수단을 봐서도.GN 그룹 대표라도 할말이 없는데 하물며 지금이라.비록 뱃속에 분노가 가득하지만 결국 한마디도 못하고 스스로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 비해 더 많은 것은 호기심이다.‘이 남자 언제 이진이랑 이렇게 사이가 좋았지? 아침 같이 회사에 온 것도 모자라 걔를 위해 나서다니.’윤이건은 그렇게 이진 앞에 꼿꼿이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또 무슨 일 있으세요?”경비원이 가볍게 입을 열었다. 이기태는 이 말에 생각을 가다듬었다.윤이건의 어깨를 넘어 이진을 볼 수도 없어 분에 이를 악물고 결곡 부어오른 손목으로 기가 죽어서 떠났다.이기태의 떠나는 모습을 보고 이진은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비록 부친과 겨루는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그가 기가 죽어 떠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시선은 다시 윤이건의 뒷모습으로 향하고 이진의 웃음은 더욱 깊어졌다. 오늘 이 사람이 공이 제일 크다.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몸을 돌려 윤이건 앞으로 걸어갔고 얼굴에 있던 웃음도 숨겼다.눈치가 빠른 경비원도 일찍 자리를 비웠다.“오늘 이 일은 고마워요.”이진은 고개를 들어 윤이건을 바라보았다. 그의 미간 속에 담긴 포악한 기운은 점차 사라지고 평화로운 상태로 회복되였다.“그냥 이렇게? 말로만?”예상치 못한 답이다. 이진의 미간을 찌프리고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이 사람을 바라보았다.“그럼
문소리에 찻잔을 들고 있는 이진의 손도 가볍게 움직였다.막 입을 열고 대답하려고 했는데 사무실 문이 밖에서 열렸다.이영이다. 그녀는 손에 서류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사실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는 질투도 있고 분노도 있다.이진에게 당한 이기태는 지금 그룹 이사로서 회사문도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이 소식이 누군가에게 알려지기만 하면 바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오늘 그녀가 여기에 온 것도 이기태를 위한 것이다.그러나 사무실에 들어온 후 뜻밖에도 이진과 윤이건이 다정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을 보았다.순간 그녀의 표정은 굳어지고 마음속의 질투는 더욱 불타 올랐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표정관리 하고, 입가에 부드럽고 감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이건 오빠, 아침부터 오빠 얼굴 보네요.”“이진이 출근길 바래다주려구요.”윤이건은 찻잔을 손에 놓고 일상이라는 뜻으로 가볍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이영의 웃음이 굳어졌다.‘다 이혼한 사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 게다가 출근을 바래다주는 것은 이혼이 아니라 신혼일 때도 없었던 일이다.그러나 이진은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을 오래 주지 않았다.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린 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침부터 잠을 덜 깼니? 그리고 내 사무실에 들어올 때 노크해야 한다고 말한 것 같은데.”윤이건 앞에서 자기 일부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한참을 참은 이진은 결국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무슨 일이야?”아직 기분이 괜찮은 이진은 이런 좋은 기분을 이 두 부녀에 의해 망쳐지고 싶지 않았다.원래 이영은 일때문에 이진을 찾아왔는데 윤이건이 있는 것을 보고 딴 궁리를 한다.“언니, 방금 회사 앞에서 정말 아버지를 쫓아냈어?”이 말을 들은 이진은 눈을 희번덕이고 아무 대답도 하기 싫었다.“언니, 어떻게 그래요? 아버지한테 잘 말씀하지 않은것도 모자라 쫓아 내기까지 한거예요?”말하면서 그녀의 정서는 점차 높아졌다.“어쨌든
이영은 윤이건의 눈빛이 계속 이진에게 있는 것을 주의하고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하여 윤이건 앞에서 자신을 보이려고 이영은 가볍게 기침을 한 후 입을 열었다.“보고서에는 이미 준비해야 할 것과 협의 내용들을 표시했어.”이영은 가능한 상세하게 보고하려고 하지만 몇 마디 말하고는 다시 윤이건 얼굴에 시건을 돌렸다.이렇게 거기에 서서 보고하며 윤이건을 훑어보았다.그리고 윤이건의 입가에 웃음기가 번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들떴다.사실 윤이건도 이진이가 발견한 문제를 찾아냈다.윤이건은 한쪽 의자를 잡아당겨 이진의 곁에 앉아 그녀를 향해 손가락을 꼬았다.그리고 이영은 이 행동들을 윤이건이 자기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윤이건이 내가 작성한 보고에 관심 있어 자세히 보려고 하는 것일 거야.’이는 이영에게 있어서 흥분제를 복용한 것보다 더 흥분되는 일이다.목구멍이 말라 타오르지만 더욱 열심히 말하고 있다.“서류에 일부 컬러로 표시한 지부 구역은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야. 컬러마다 서로 다른 작업 구역을 대표하고 있어.”“전기의 포석 개발, 뒤의 개방식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과도적인 계단을 세울 수 있어.”말할 수록 신이 난 이영은 자신도 그 흥분을 참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가 신이 나서 말하고 있을 때, 테이블 뒤 두 사람의 주의력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테이블과 서류의 가림막으로 윤이건과 이진은 지금 ‘사랑싸움’을 하고 있다.원래 윤이건의 갑작스러운 접근에 이진은 다소 적응이 안 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윤이건은 데이터 오류를 정확히 짚어내고 이진은 그의 전문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인정하였다. 또 모진호도 기밀성이 많은 프로젝트가 아니기에 말리지는 않았다.이영이가 한 마디 한 마디 해석하는 듣고 이진은 그래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근데 몇 초 지나 손등에서 가벼운 촉감을 느꼈다.원래 서류 종이장이라고 생각하고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몇 초가 지나 그 촉감이 커졌다.그은 느
윤이건은 이진이 눈을 부릅뜨는 것을 보자 더욱 억울했다.‘이건 또 뭐야…….’오늘 그들은 꽤 사이좋게 지낸 데다가 그는 이진을 구해주기까지 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워지자 윤이건이 서류를 보던 눈빛은 다소 흔들렸다. 좋아하는 사람이 곁에 앉아있기에 그는 도저히 침착할 수가 없었다.셔츠 위에서 전해진 느낌에 윤이건이 정신을 차리자 이영이 그의 셔츠를 닦아주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막 입을 열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누군가가 이영의 팔을 잡아당겼다. 윤이건이 고개를 돌리자 이진이 불쾌한 표정으로 이영의 팔을 잡고 있었다.“너 지금 뭐 하는 거야.”이진은 이를 악물며 이영을 쳐다보았는데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매우 차가웠다.“안 보여? 이건 오빠 옷 닦아주고 있잖아. 방금 그거 뜨거운 차야.”이영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꺼냈지만 이진에게 붙잡힌 팔이 갑자기 아파 중심을 잃을 뻔했다. 다행히도 제때에 책상을 붙잡아 그녀는 넘어지진 않았다.이영은 매우 화가 나 입을 열려고 했는데 이때 이진이 서류를 책상 위에 세게 내리박았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이영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있었다.“서류를 엄청 빨리 제출했던데, 2차 검사는 제대로 한 거야?”이진은 말을 하면서 가능한 한 자신의 화를 가라앉히려고했는데 모두 헛수고였다.‘방금 뭐 하는 짓이지? 내가 죽은 줄 아나 봐?’이영은 그녀가 갑자기 화를 낸 이유가 질투 때문인 줄 알았는데 일 때문이라고 하자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보더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이진은 이영이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더니 피식 웃고는 손가락으로 예산 액수를 가리키며 이영을 쳐다보며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여기, 자세한 액수를 적어 두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네가 몰래 무슨 짓거리를 벌였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이 말을 듣자 이영은 가슴이 쿵 내려앉은 것 같았는데 곧바로 이진의 손에서 서류를 가져갔다.확실히 그녀는 2차 검사를 하지 않았고 예산은 유동자금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