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두 사람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이기태는 더는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지금이 바로 출근 시간이라 GN 그룹 직원들도 많이 드나들었다. 하여 다들 이 상황을 지켜 보고 있다.이진은 눈살을 찌푸리고 거짓 웃음을 터뜨렸다.“무슨 일이세요?”윤이건은 고소의 멀지 않은 곳에 서서 팔장을 끼고 있었지만 앞으로 나아가려고는 하지 않았다.비록 두 사람은 지금까지 이씨 가문에 대해 얘기한 적은 없지만 이진이가 그를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이 말을 들은 이기태는 윤이건을 힐끗 보았고, 그가 입을 열지 않은것을 본 다음에야 마음을 놓았다. “이진! 대답해! 왜 회사에 들어갈 수 없지? 니가 한 짓이야?”“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 아직 어려서 청력은 좋아요.”이진은 어쩔 수 없다는 뜻으로 말했다.뒤에 서있던 윤이건은 이 말에 고개를 숙이고 가볍게 웃었고, 이기태는 화가 나 얼굴이 붉어졌다.“이런 짓 그만하고 내 말에 답해. 네가 지시한 거야?” “네, 저 말고 또 누가 이사님의 출입을 막을 수 있겠어요?” 다행히 이기태 몸이 괜찮아 이진의 말을 듣고 쓰러지지는 않았다.“나 정말, 너 같은 얘를 낳아서!불효자식이야! 불효자식! ”“네, 네, 저도 20여 년 동안 줄곧 이 문제를 생각하여 왔어요.”이진는 여전히 경멸의 웃음을 띠고 호통을 들으면서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이사님, 그럼 그 문제 답은 찾았나요? 찾았으며 저에게 알려주세요.”만약 정말 서로 맞서게 된다면 그래도 한마디 답할 수 있지만 이진이 이렇게 나오면 그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왜, 말해봐! 왜 회사에 못 들어오게 했어!”이기태의 질문에 이진은 생각하는 티를 내며 고민하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딱히 말하자면, 정말 별다른 원인은 없네요.”“그런데 왜……."“뭐 그냥 GN 그룹 대표라서, 당신을 들어보내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거죠.”이 말을 하며 이진은 턱을 살짝 들어올렸는데 그 도도한 자태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적어
경비원도 이기태를 알기에 두 사람을 잡아당길 때 감히 손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기태는 화를 냈다.GN 그룹 전 대표이자 지금의 대주주인 자신이 아침부터 회사 문을 들어갈 수 없고, 지금은 또 경비원에게 밀치다니.그의 신분은 마치 길거리를 떠도는 양아치처럼 추락했다.이기태는 분노에 몸 전체가 굳어버릴 것만 같았고 머리가 어지러워졌다.그는 이를 악물고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이성이 곧 사라질 것만 같았다.그러나 윤이건이 자기와 1메터도 안되는 곳에 서있다. 이 사람에 대해 이기태는 두려움을 참을 수가 없다.실력으로 봐서도 이 사람의 수단을 봐서도.GN 그룹 대표라도 할말이 없는데 하물며 지금이라.비록 뱃속에 분노가 가득하지만 결국 한마디도 못하고 스스로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 비해 더 많은 것은 호기심이다.‘이 남자 언제 이진이랑 이렇게 사이가 좋았지? 아침 같이 회사에 온 것도 모자라 걔를 위해 나서다니.’윤이건은 그렇게 이진 앞에 꼿꼿이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또 무슨 일 있으세요?”경비원이 가볍게 입을 열었다. 이기태는 이 말에 생각을 가다듬었다.윤이건의 어깨를 넘어 이진을 볼 수도 없어 분에 이를 악물고 결곡 부어오른 손목으로 기가 죽어서 떠났다.이기태의 떠나는 모습을 보고 이진은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비록 부친과 겨루는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그가 기가 죽어 떠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시선은 다시 윤이건의 뒷모습으로 향하고 이진의 웃음은 더욱 깊어졌다. 오늘 이 사람이 공이 제일 크다.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몸을 돌려 윤이건 앞으로 걸어갔고 얼굴에 있던 웃음도 숨겼다.눈치가 빠른 경비원도 일찍 자리를 비웠다.“오늘 이 일은 고마워요.”이진은 고개를 들어 윤이건을 바라보았다. 그의 미간 속에 담긴 포악한 기운은 점차 사라지고 평화로운 상태로 회복되였다.“그냥 이렇게? 말로만?”예상치 못한 답이다. 이진의 미간을 찌프리고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이 사람을 바라보았다.“그럼
문소리에 찻잔을 들고 있는 이진의 손도 가볍게 움직였다.막 입을 열고 대답하려고 했는데 사무실 문이 밖에서 열렸다.이영이다. 그녀는 손에 서류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사실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는 질투도 있고 분노도 있다.이진에게 당한 이기태는 지금 그룹 이사로서 회사문도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이 소식이 누군가에게 알려지기만 하면 바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오늘 그녀가 여기에 온 것도 이기태를 위한 것이다.그러나 사무실에 들어온 후 뜻밖에도 이진과 윤이건이 다정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을 보았다.순간 그녀의 표정은 굳어지고 마음속의 질투는 더욱 불타 올랐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표정관리 하고, 입가에 부드럽고 감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이건 오빠, 아침부터 오빠 얼굴 보네요.”“이진이 출근길 바래다주려구요.”윤이건은 찻잔을 손에 놓고 일상이라는 뜻으로 가볍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이영의 웃음이 굳어졌다.‘다 이혼한 사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 게다가 출근을 바래다주는 것은 이혼이 아니라 신혼일 때도 없었던 일이다.그러나 이진은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을 오래 주지 않았다.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린 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침부터 잠을 덜 깼니? 그리고 내 사무실에 들어올 때 노크해야 한다고 말한 것 같은데.”윤이건 앞에서 자기 일부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한참을 참은 이진은 결국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무슨 일이야?”아직 기분이 괜찮은 이진은 이런 좋은 기분을 이 두 부녀에 의해 망쳐지고 싶지 않았다.원래 이영은 일때문에 이진을 찾아왔는데 윤이건이 있는 것을 보고 딴 궁리를 한다.“언니, 방금 회사 앞에서 정말 아버지를 쫓아냈어?”이 말을 들은 이진은 눈을 희번덕이고 아무 대답도 하기 싫었다.“언니, 어떻게 그래요? 아버지한테 잘 말씀하지 않은것도 모자라 쫓아 내기까지 한거예요?”말하면서 그녀의 정서는 점차 높아졌다.“어쨌든
이영은 윤이건의 눈빛이 계속 이진에게 있는 것을 주의하고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하여 윤이건 앞에서 자신을 보이려고 이영은 가볍게 기침을 한 후 입을 열었다.“보고서에는 이미 준비해야 할 것과 협의 내용들을 표시했어.”이영은 가능한 상세하게 보고하려고 하지만 몇 마디 말하고는 다시 윤이건 얼굴에 시건을 돌렸다.이렇게 거기에 서서 보고하며 윤이건을 훑어보았다.그리고 윤이건의 입가에 웃음기가 번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들떴다.사실 윤이건도 이진이가 발견한 문제를 찾아냈다.윤이건은 한쪽 의자를 잡아당겨 이진의 곁에 앉아 그녀를 향해 손가락을 꼬았다.그리고 이영은 이 행동들을 윤이건이 자기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윤이건이 내가 작성한 보고에 관심 있어 자세히 보려고 하는 것일 거야.’이는 이영에게 있어서 흥분제를 복용한 것보다 더 흥분되는 일이다.목구멍이 말라 타오르지만 더욱 열심히 말하고 있다.“서류에 일부 컬러로 표시한 지부 구역은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야. 컬러마다 서로 다른 작업 구역을 대표하고 있어.”“전기의 포석 개발, 뒤의 개방식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과도적인 계단을 세울 수 있어.”말할 수록 신이 난 이영은 자신도 그 흥분을 참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가 신이 나서 말하고 있을 때, 테이블 뒤 두 사람의 주의력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테이블과 서류의 가림막으로 윤이건과 이진은 지금 ‘사랑싸움’을 하고 있다.원래 윤이건의 갑작스러운 접근에 이진은 다소 적응이 안 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윤이건은 데이터 오류를 정확히 짚어내고 이진은 그의 전문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인정하였다. 또 모진호도 기밀성이 많은 프로젝트가 아니기에 말리지는 않았다.이영이가 한 마디 한 마디 해석하는 듣고 이진은 그래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근데 몇 초 지나 손등에서 가벼운 촉감을 느꼈다.원래 서류 종이장이라고 생각하고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몇 초가 지나 그 촉감이 커졌다.그은 느
윤이건은 이진이 눈을 부릅뜨는 것을 보자 더욱 억울했다.‘이건 또 뭐야…….’오늘 그들은 꽤 사이좋게 지낸 데다가 그는 이진을 구해주기까지 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워지자 윤이건이 서류를 보던 눈빛은 다소 흔들렸다. 좋아하는 사람이 곁에 앉아있기에 그는 도저히 침착할 수가 없었다.셔츠 위에서 전해진 느낌에 윤이건이 정신을 차리자 이영이 그의 셔츠를 닦아주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막 입을 열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누군가가 이영의 팔을 잡아당겼다. 윤이건이 고개를 돌리자 이진이 불쾌한 표정으로 이영의 팔을 잡고 있었다.“너 지금 뭐 하는 거야.”이진은 이를 악물며 이영을 쳐다보았는데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매우 차가웠다.“안 보여? 이건 오빠 옷 닦아주고 있잖아. 방금 그거 뜨거운 차야.”이영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꺼냈지만 이진에게 붙잡힌 팔이 갑자기 아파 중심을 잃을 뻔했다. 다행히도 제때에 책상을 붙잡아 그녀는 넘어지진 않았다.이영은 매우 화가 나 입을 열려고 했는데 이때 이진이 서류를 책상 위에 세게 내리박았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이영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있었다.“서류를 엄청 빨리 제출했던데, 2차 검사는 제대로 한 거야?”이진은 말을 하면서 가능한 한 자신의 화를 가라앉히려고했는데 모두 헛수고였다.‘방금 뭐 하는 짓이지? 내가 죽은 줄 아나 봐?’이영은 그녀가 갑자기 화를 낸 이유가 질투 때문인 줄 알았는데 일 때문이라고 하자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보더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이진은 이영이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더니 피식 웃고는 손가락으로 예산 액수를 가리키며 이영을 쳐다보며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여기, 자세한 액수를 적어 두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네가 몰래 무슨 짓거리를 벌였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이 말을 듣자 이영은 가슴이 쿵 내려앉은 것 같았는데 곧바로 이진의 손에서 서류를 가져갔다.확실히 그녀는 2차 검사를 하지 않았고 예산은 유동자금
이진은 다시 사무실로 되돌아가 임만만에게 업무상의 일을 당부했다.그녀가 한시혁의 사람이라는 일에 대해 이진이 묻지 않았기에 그녀도 이 얘기를 굳이 꺼내진 않았다.아마도 그녀들 서로에게만 보이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어떤 일들은 서로 잘 알기만 하면 될 뿐 굳이 다시 입 밖에 꺼낼 필요는 없다.게다가 이전에 납치되었을 때 이진이 목숨을 걸고 그녀를 구했기에 그 정도면 충분했다.“몸이 아프다면 며칠 쉬는 게 어때? 아직 프로젝트는 시작되지도 않았어.”이진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그러자 임만만은 고개를 저으며 이미 정리된 지난주 업무 보고서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그럼 대표님, 저는 먼저 다른 일을 처리하러 가볼게요.”이진은 대충 보고서를 훑어보았는데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녀는 칭찬하는 듯한 눈빛으로 임만만을 보고는 그녀더러 나가보라고 했다.임만만은 사무실에서 나온 후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한시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한 대표님, 제가 방금 대표님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윤 대표님이 사무실에 계셨는데 라이벌을 조심해야겠어요.]임만만은 메시지를 보낼 때 마음속으로 다소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그녀는 이진의 사적인 일에는 관여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진심으로 이진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게다가 이미 그녀는 한시혁한테서 윤이건과 이진에 관한 일을 들은 적이 있었다.‘정말 그들 사이에 감정이 있다면 어떻게 3년이 지나도록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어? 얼마나 더 지나야 그들 사이에 진전이 생기겠어? 3년 혹은 그 이상?’임만만은 그런 생각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고 핸드폰을 쥐고 있던 손은 하얗게 짓눌렸다.이때 그녀의 핸드폰엔 한시혁이 보내온 메시지가 도착했다.[걱정 마.]한시혁은 자신감이 매우 넘친 데다가 윤이건은 전혀 자신의 적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그가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건 아마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우월한 조건과 몇 년 동안 해온 일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 이진은 정말 머리가 아파 미칠 지경이었다.현재 그녀는 매일 출퇴근을 윤이건과 함께 해왔는데 윤이건은 아침에 그녀를 회사까지 데려다주고 저녁에는 회사 앞까지 마중 왔다.그래서 그녀는 늘 퇴근하기 전에 한시혁이 가져온 꽃을 휴게실에 두었다.비록 이렇게 처리하는 게 이상하진 않다고 그녀 스스로도 생각했지만 그녀는 분명히 한시혁이 보낸 꽃다발들을 윤이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거다.그러다 어느 날, 이진은 오후 회의를 막 마쳤는데 이때 퇴근 시간까지 한 시간 남짓했다. 그래서 그녀는 좀 쉬었다가 뭘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의자에 앉자마자 누군가가 그녀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그녀는 당연히 임만만인 줄 알고는 별생각 없이 밖에 있는 사람더러 들어오라고 했는데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윤이건 이였다.“윤, 윤 대표님께선 이 시간에 어쩐 일로?”반쯤 가늘게 뜨고 있던 이진의 눈은 순식간에 동그래졌는데 그녀는 언뜻 플랫폼 위에 놓인 꽃다발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회사 쪽에 별일 없어서 너와 함께 있으려고 좀 일찍 왔어.”윤이건은 부드럽게 말했는데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옆에 놓인 큰 꽃다발을 보았다.대표 사무실에 꽃다발 같은 것이 있는 것도 특별히 기괴한 일은 아니라 윤이건은 별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단지 눈앞의 이 여자의 행동이 정말 이상한 데다가 분명히 긴장한 게 티가 났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계속 무언가를 가리려고 했다.그러자 윤이건은 뭔가를 눈치챈 듯 눈살을 찌푸리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심지어 이진이 눈치채기도 전에 그는 꽃다발 위의 카드를 꺼냈다.카드 위에는 평범한 내용들만 적혀 있었는데 밑에는 한시혁의 이름이 써져있어 그것을 본 윤이건은 이를 악물었다. ‘한시혁, 전엔 모진호 트로젝트를 이진에게 주고 이진을 멋대로 데려간 데다가 이제 와서 대놓고 꽃다발을 선물한다고?’“윤이건 씨.”이진은 윤이건의 얼굴이 심하게 구겨진 것을 보고 입을 열었는데 한동안 무
이날도 마찬가지로 한시혁은 직접 이진을 찾아와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이진은 무슨 중요한 결정이라도 내리기 위해 온 건 줄 알았지만 그저 디자인 원고를 고르는 것뿐이었다. 심지어 한시혁은 몇 개의 디자인을 이리저리 골라보더니 결국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됐어, 나중에 천천히 결정 내리자.”한시혁은 고개를 숙이고 시간을 본 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는데 점심이나 먹으러 갈래? 근처에 새로 생긴 음식점이 있다고 들었어.”“한시혁…….”한시혁이 이미 일어나 외투를 입을 준비를 하는 것을 보자 이진은 얼른 입을 열어 그에게 말했다.이진이 갑자기 진지하게 말을 하자 한시혁은 하던 동작을 멈추고는 의자에 단정하게 앉아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이진을 바라보았다.“할 말 있어?”이진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시선을 돌려 플랫폼 위의 꽃을 보았다. 그 꽃은 오늘 한시혁이 가져온 것인데 위에는 여전히 노란색과 연분홍색의 꽃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날 윤이건이 했던 말을 떠올렸는데 저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났다.“한시혁, 전에 내가 외국에서 공부할 때 분명 너한테 똑똑히 내 생각에 대해 말했었잖아. 그러니까 너도 알 거 아니야?”“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이야.”한시혁은 여전히 평소 같은 말투였지만 눈빛엔 약간 초조함이 더해져 있었다.“그럼 다시 한번 얘기할게. 넌 정말 좋은 친구고 난 정말 너를 그저 친구로 생각할 뿐이야.”결국 그때의 말을 다시 한번 말한 거나 마찬가지다.사실 이진이 이 말을 꺼내는 것도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거절하는 것이 쉬울 리는 없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한시혁이 영원히 그녀를 평범한 친구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고개를 숙이고는 손가락은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나와 윤이건 씨는 부부인 걸 너도 잘 알잖아. 난 이미 결혼했어.”한시혁도 이 일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던 이진은 귀국 후 그렇게 빨리 결혼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