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이 끝나는 순간, 이우범은 아마 내 말에 화가 난 듯 보였고 얼굴에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분노가 보였다.하지만 나를 향해 화를 내지는 않았고, 단지 주먹을 꽉 쥔 채 인내심 있게 나를 바라보았다.“오늘 인호네로 갔죠?”갑자기 이우범이 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네.”나는 부인하지 않았고, 왜 갔는지도 굳이 해명하지 않았다. 만약 이 타이밍에 이우범이 나를 오해라도 하면 더 좋고 말이다. 내가 배인호를 놓지 못했으니, 그더러 마음 접게 하기 딱 좋은 찬스이다.역시나 이우범의 눈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을 베어버릴 수 있는듯한 날카로운 칼날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하지만 나는 겁나지 않았다. 한번 제대로 폭발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아마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내가 인호보다 못한 게 대체 뭔데요. 걔가 줄 수 있는 거, 나는 더 많이 줄 수 있다고요!”이우범은 다소 격앙된 듯했고, 이미 오랫동안 참아왔다는 거 또한 잘 알고 있다.나는 그의 감정에 기복이 생긴 걸 보고는 오히려 평온해지기 시작했고, 말투도 많이 차분해졌다.“배인호 씨보다 못한 게 아니라 도무지 이우범 씨를 사랑할 수 없다고요.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랑 강박으로 나날을 보내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우범 씨도 잘 알잖아요?”전에 도시아와 약혼하라고 강요당할시, 이우범은 아마 도시아에게 관심이 없어 눈길조차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그도 그런 기분을 알기에 내 문제에 대해 답할 수 없었고, 눈에는 실망감과 아쉬움이 강렬했다.그 눈빛은 나도 전생에 봤었고, 나에게 서란이 자신을 않는다고 했을 때 그의 눈빛은 지금처럼 이랬다.하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내가 두 번째 서란이 되었고 그가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된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그가 진짜 사랑해서 때문인지 아니면 삐뚤어진 승리욕 때문인지 가늠이 안 갈 지경까지 다다랐다.우리 둘의 목소리가 조금 컸던 탓인지 엄마는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엄마는 이우범
내 말을 듣고 있던 그녀는 한참 동안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녀가 내 말에 답하고 싶지 않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울먹이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내 앞에서 처음으로 우는지라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 내 앞에서 배인호에게 기회 한 번만 더 주라고 할 때도 이렇게 울지는 않으셨다.“지영아, 우리 배 씨네 집안에서 너한테 너무 미안하다. 그래서 너의 그 5년이란 시간을 괜히 낭비하게 만든 것만 같구나. 그리고 그 아이도 원래는 건강하게 태어나서 잘 자랐을 건데 인호 그놈 때문에 애도 잃고 말이야. 그래서 그 아이도 우리 배씨 집안과 인연이 없게 된 거잖아. 이런 일들이 있는데 너 같으면 괜찮겠니?”그녀는 눈물을 흘렸고, 옆에 있던 휴지로 가볍게 눈가를 닦았다.그 일들에서 나는 이미 완전히 벗어나고 잊어 버렸는데, 그녀는 아직도 거기에 빠져 고통과 아쉬움에 찌들어져 있으니 어떻게 답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아주머니, 그 일은 이미 지난 지 꽤 됐잖아요. 지금 빈이도 있고 얼마나 좋아요? 어떤 일은 하늘에서 이미 정해진 거라 강요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한참 뒤에야 나는 몇 마디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 마음의 병을 이미 배인호한테서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정서를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그녀는 낮은 소리로 울기 시작하는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엄청 속상했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한참 뒤, 그녀가 고개를 들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지영아, 내 마음속에서 너는 여전히 내 며느리야. 네가 이우범 씨랑 이미 같이 한 거 아는데 그래도 난 왠지 네가 자꾸 나랑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인호한테도 네가 제일 잘 어울리고 말이야!”나와 배인호가 이혼한 지 이미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나를 자기 며느리로 여겼다. 나는 감동을 하였다고 해야 할지 어색하다고 해야 할지 형용하기 어려웠다.“아주머니, 지금 인호 씨한테는 민설아 씨와 빈이 있잖아요. 게다가 저와
“지금 무슨 말인지 저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네요!”나는 얼른 마음을 진정시켰고, 여기서 당황하는 순간 더 쉽게 이상함을 눈치챌 것 같았다.배인호는 내 핸드폰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으며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네가 봤을 때는 뭐인 거 같은데? 허지영. 너 나 피하려고 고생 많이 했네. 우범이와 결혼했다는 일도 다 꾸며내고 말이야. 근데 난 이게 가짜라는 걸 알았을 때 기분 좋았어.”이틀 전에 엄마가 나더러 이우범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할 때, 배인호가 언젠가는 가짜 결혼 사실을 알 거라고 말했는데 그게 오늘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나는 머리가 혼란스러웠고,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저 만들어낸 적 없어요. 저와 그 사람 확실히 결혼했으니까요. 비록 그 사람한테 사랑 감정은 없지만 아이를 생각해서 그 사람과 같이하기로 했어요. 뭐가 문제인 거죠?”아이의 말이 나오자, 배인호의 얼굴색은 급격히 어두워졌다.“허지영, 아이의 일은 좋기는 사실대로 말해야 할 거야. 만약 그거까지 거짓말한 거면 그 그 결과는 네가 알아서 책임져야 할 거야.”배인호의 협박에 대해 마음속으로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이 일은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인데 이렇게 빨리 알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로아와 승현이는 아직 어린아이인데, 만약 진짜 빼앗기라도 한다면 그 아이들에게 상처라도 줄까 봐 겁이 났다.“배인호 씨. 저는 거짓말한 거 없어요. 이우범 씨와 결혼한 거 맞고요,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리고 친한 지인들끼리만 조촐하게 진행한 거고 그거면 충분해요. 아이에 대해서는 친자확인 결과 봤죠? 굳이 스스로 굴욕감을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나는 일부러 배인호의 두 눈을 보려고 노력했고, 전혀 찔리지 않은 것처럼 노력했다.그의 눈빛은 아주 날카로웠고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와 눈빛이라도 마주하려면 어느 정도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이미 여우 같은 사람들도 많이 봐온지라 조
“아빠가 동의했어요?”내가 더 의외였던 건 아빠가 연락도 없는 데다가 나와 이우범의 일에 대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엄마는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모습으로 차갑게 답했다.“나랑 네 아빠는 말할 거 다 말하고, 할 거도 다 했어. 네가 우범이랑 만나는 게 싫다는데 우리도 뭔 방법이 있겠어?”나는 현재의 심정이 기쁘다고 해야 할지 슬프다고 해야 할지 표현하기 어려웠다. 엄마와 아빠가 이우범의 일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니 나에게 있어서 심리적 압박은 사라졌는데, 그들이 나에 대해 실망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엄마는 말을 마친 뒤 방으로 쉬러 가셨다. 나는 더는 엄마를 불러세우지 않고 샤워를 마친 뒤 아이들과 잠에 들었다.나는 엄마가 떠나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이튿날 아침 일어나보니, 희선 언니가 나보고 이미 가셨다고 한다.“사모님은 아침 일찍 출발하셨어요. 그러고는 저더러 아가씨 도와서 아이들 잘 돌보라고 하셨고요.”그녀는 아침 식사를 차리며 나에게 말했다.엄마가 나에게 말 한마디도 없이 갔다는 걸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나는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을 보며 엄마에게 전화해 물어보려 했지만 결국은 참았다. 현재 엄마의 마음속에서는 나에 대한 화가 아직 남아있을 테니 따로 떨어져 시간 좀 가지는 거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이때, 갑자기 나의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해 보니, 배인호의 엄마 김미애였다.나는 내 기분을 다스린 뒤 전화를 받았다.“지영아, 어제저녁은 진짜 미안하구나. 빈이가 갑자기 집에서 나 찾는다고 해서 일단 돌아갔어. 그 뒤에 인호가 너 집까지 데려다줬지?”그녀는 미안하다는 듯 나에게 말했다.“저를 집까지 데려다줬어요, 아주머니.”내가 답했다. “그러면 다행이네. 근데 어제 저녁내가 물어봐도 말은 안 해주더라고. 게다가 그 기사한테 월급도 올려주고 말이야. 아마 많이 취해서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아. 너한테 기분 나쁠 만한 소리 한 건 없지?”그녀는 이런
“네가 여기 나타나면 안 되지, 배인호.”이우범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말투는 무척 차가웠고, 눈에 적개심도 전혀 숨김없이 드러났다.배인호는 승현이를 안고 서성이며 담담하게 되물었다.“내가 왜 여기 나타나면 안 되는 건데? 이 사람은 내 전 와이프고, 결혼도 하기 전인데 충분히 만날 수 있는 거 아니겠어?”결혼하지 않았다는 그 말에 나도 삽시간에 당황스러웠다.역시나 이우범의 얼굴빛도 급격히 변했고 곧바로 불신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설마 내가 배인호에게 말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배인호 씨, 헛소리 그만해요!”나는 배인호의 말을 제지했다. 나는 이우범과 함께하긴 싫지만, 지금은 그걸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헛소리? 너희들 혼인신고 안 했잖아. 그러면 나에게 있어 너희들이 부부는 아닌 거지.”배인호는 저런 말로 이우범을 자극했고, 승현이를 유모차에 눕힌 뒤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의 말투는 느긋했고, 내가 한 말은 아예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배인호처럼 소유욕이 강한 남자는 백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제멋대로 할 사람이다.하지만 대체 왜 나와 이우범의 혼인상태에 관해 조사해 봤을까?“지영 씨가 알려줬어요?”이우범은 실망한 듯 나를 향해 물었다.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며칠 전 그와 싸우면서 그렇게 모진 말도 많이 했고, 차라리 배인호와 얽히는 게 더 나으니 그와 함께하고 싶지 않다고 한 적 있는지라 내가 고개를 저어도 별 큰 효과는 없을 것이다.이우범은 그 순간 사람 자체가 엄청나게 어두워졌고, 상처받은 듯한 눈빛으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나는 로아를 안고 있었고 그 순간은 혹시라도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 무서웠다. “이우범 씨, 우리 사이에 아이도 있잖아요. 사실 혼인인데 그깟 혼인신고서가 중요한가요?”나는 바로 입을 열어 해명했고 그건 이우범을 안심시킴과 동시에 배인호가 아이들과 나에 대한 의심도 떨쳐버리기 위함이었다.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두 사람 얼굴색에는 변화가 생겼다.이우
“감사합니다, 아가씨. 저녁에 창문 단속 잘하고 주무세요. 집 근처에서 살인 사건이 났대요. 살인범은 도망쳤는데 아직 제주도에서 탈출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꼭 조심하세요.”전화를 끊기 전에 희선 언니가 내게 당부했다.나는 요즘 엄마와 말다툼하느라 뉴스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못했는데 희선 언니의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네, 알겠어요.”나는 대답했다.전화를 끊은 뒤 바로 몸을 일으켜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을 한 번 둘러본 뒤 창문들이 잘 닫혀 있는지 한 번씩 다시 검사했다. 확실히 다 잠겨 있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혼자 있으니 밥 생각이 별로 없었다. 로아와 승현이를 샤워시킨 뒤 도저를 정원에 풀어 놓고 아이들과 정원에서 놀게 했다. 점점 커지는 도저의 모습을 보며 갑자기 배인호의 생각이 이해되었다.티베탄 마스티프 한 마리를 키우는 건 안전을 위해서라고 했었다.이때 나의 핸드폰이 울렸다. 정아에게서 온 전화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정아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영아, 노성민 그 개자식 목 졸라 죽여 버리고 싶어. 나 정말 화가 나서 미치겠어.”“왜 그래?”나는 깜짝 놀랐다. 정아의 전화를 받다가 어느 날엔가 고막이 터져버릴 것 같아 걱정되었다.“그 자식이 사람을 시켜서 나하고 애들 사진을 몰래 찍었어.”정아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웃음을 터트렸다.“그놈이 나한테 내가 애들을 안 보여줘서 그랬대. 애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아주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지난번 노성민이 나에게 자기가 애들을 만날 수 있게 정아를 설득해 달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난 대답하지 않았다. 그 멍청한 놈이 이런 잔머리를 썼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나는 노성민을 바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아이들을 너무 사랑한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정아는 반나절 동안 내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다가 화제를 바꾸어 세희 얘기를 했다.“세희 돌아왔어. 근데 내가 보기엔 세희 멘탈이 많이 안 좋아 보여. 매일 죽어라 일만 해.
약 5분 후 미간을 찌푸린 채 거실에서 나오는 배인호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이우범’은 찾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걱정되는 것은 그가 모르는 남자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아무도 없었어요?”나는 걱정하며 물었다. 배인호가 아무도 찾지 못한 최악의 결과가 벌어졌다. 조금 있다가 그가 떠나고 나면 나 혼자서 침입자를 찾아야 하나?분명 집에 누군가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배인호도 자세하게 집을 수색하진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의 말대로 이우범이 우리 집에 있다면 이렇게 숨어 있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없어, 이우범도 너희 집에 없어. 근데 넌 뭘 그렇게 긴장해?”배인호는 의심스럽게 내게 물었다.“난...”그에게 근처에 살인범이 도망 다니는데 우리 집에 숨어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또 그런 말을 하는 건 부적절한 것 같아 망설여졌다. 아까 내가 먼저 그에게 들어와서 차를 마시라고 했었는데 또 집까지 수색해 달라고 하는 것은 의도가 너무 명확해 보였다.만약 배인호가 내가 자기를 해치고 싶어 한다는 오해라도 하면...하지만 나 혼자서 애들을 데리고 있는 집에 무슨 일이라도 멀어진다면 결과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배인호가 내게 나쁘다고 비난하더라도 말해야겠다.“희선 언니도 오늘 집에 없어요. 저녁쯤에 전화가 와서 근처에...”말을 꺼내려고 하는데 배인호의 핸드폰이 울렸다.나는 무의식적으로 입을 닫았다. 그는 화면을 한 번 보더니 내게 눈짓을 한 뒤 전화를 받았다.통화 내용을 들으니 민설아의 전화인 것 같았다. 빈이가 또 몰래 나갔는데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금방 갈게.”배인호는 바로 대답했다. 늦은 밤에 아이 혼자서 밖에 나가는 것은 아주 위험했다. 빈이가 어린아이가 왜 그렇게 용감한지 모르겠다.나는 방금 말을 이어서 하려고 했지만 배인호는 서둘러 떠났고 내게 마저 말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이는 그가 얼마나 빈이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정원의 문이 다시 닫히는 걸
그 순간 나는 마치 저승사자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내가 아무리 간이 커도 사람을 죽여 본 적도 없었고 이렇게 피가 낭자한 장면을 본 적도 없었다. 손에 들고 있던 전기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난 이미 3명이나 죽였어. 너 하나 죽인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지. 감히 전기톱으로 내 몸을 자르려고? 간땡이가 부었나 보네.”살인범은 이미 눈을 붉히며 손을 들어 때리려는 제스처를 취하며 나를 겁 주었다.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무서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나에게 일이 생긴다면 두 아이는 끝장이다.“돈을 원한다면 말해요. 얼마든지 줄 테니까. 하지만 조건은 내가 다치지 않는 거예요.”나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했다.“지금 경찰들이 그 쪽에게 공개 수배령을 내렸어요. 도망치려면 돈이 필요할 테고, 마침 나는 돈이 좀 있어요. 당신을 제주도에서 빼내 줄 수도 있고요. 심지어 당신을 외국으로 보내줄 수도 있어요. 고민해 봐요.”내 말들이 이 살인범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명중했을 것이다. 그는 일단 잡히기만 하면 사형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돈을 주고 수배를 피해 외국으로 도망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이 상황에서 이런 유혹에 과연 그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그는 눈을 굴리더니 의심스러워하며 물었다.“당신을 내가 믿어도 되는 사람인지 어떻게 증명할 건데?”“내 핸드폰 그 쪽한테 있죠? 그거 주세요. 내가 내 재산 명세서 보여줄 테니까.”나는 살인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침착하게 말했다.살인범은 신중하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결국 핸드폰을 꺼냈다. 하지만 내게 주지 않고 얼굴인식으로 잠금을 해제했다. 그런 다음 자기가 내 핸드폰 안의 정보들을 찾아보았다.하지만 난 중요한 앱에 따로 비밀번호를 걸어두었다. 하나씩 풀어야 했다. 결국 살인범은 핸드폰을 내게 건네주며 비밀번호를 풀라고 했다.나는 핸드폰을 받자마자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지만 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