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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3화 자고 가다

순간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배인호를 밀쳤다.

“할 말 다 했으니까 이제 돌아가요.”

“언제 다 했다고 그래?”

배인호의 눈은 이우범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지만, 입은 나의 말에 대답하고 있었다.

이우범이 거실 쪽으로 걸어 들어오면서 현관문을 닫았다.

크지 않은 거실에 배인호와 이우범이 모이자 좁은 느낌이 들었다.

“인호야, 왜 자꾸 내 여자 친구 못살게 구는 거야?”

이우범이 차갑게 물었다. 말투에서 화가 느껴졌다.

“나는 전처랑 빨리 회복하려고 노력 중일 뿐이야.”

배인호의 대답은 너무나 파렴치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여자 친구야. 넌 이미 지나간 과거고. 남자라면 쿨하게 놓아줄 줄도 알아야지. 이렇게 뒤에서 자꾸 못살게 굴지 말고.”

이우범이 얼굴을 굳히고 배인호를 쳐다봤다.

“이 말 너한테 질리게 했어. 지영 씨랑 이혼한다 했을 때도 이미 귀띔했었고.”

배인호가 콧방귀를 끼더니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맞아. 그때 귀띔한 것도 나한테서 확답을 얻고 지영이한테 구애하려고 한 거 아니야? 근데, 내가 죽지 않는 한 과거형은 없어. 오히려 너, 나랑 그렇게 오래 좋은 친구로 있었는데 결국엔 나를 이렇게 대하네.”

어찌 되었든 간에 이 일에서는 이우범이 논리가 딸렸다.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에 여자들이 다 죽었다 해도 자신의 제일 좋은 친구의 전처랑 사귀면 안 되는 거다.

이우범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복잡한 눈빛에서 죄책감이 묻어났다. 이우범은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침묵 속에서 그와 눈을 마주쳤다. 사실 난 이미 많은 일들을 내려놓은 터라 만약 이우범이 부담을 못 이겨 헤어지자고 해도 나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두 번의 삶을 살면서 나는 적지 않은 좌절을 겪으면서 이 모든 걸 감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이 일은 내가 잘못한 거 맞아. 빚진 걸로 할게. 뒤에 기회 되면 꼭 보상할게.”

이우범이 이렇게 설명했다.

배인호의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빚질 필요 없고 보상할 필요도 없어. 그냥 지영이랑 헤어지면 돼.”

“그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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