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지방 출장을 가셨기에 연락할 수가 없었다. 나는 먼저 정아에게 연락했다.“정아야, 너 어디야?”난 침대에 누워 혼미한 정신으로 물었다.“나 병원에 있어. 아야! 너무 아파! 노성민 너, 이 나쁜 놈아, 나 안 낳을 거야!”정아는 전화는 받았지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지금 병원에서 출산 준비를 하는 것일까?노성민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옆에서 말했다.“알았어. 알았어. 모두 내 잘못이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아프면 날 때려. 자, 여기 내 얼굴!”아직 출산예정일이 아니어서 정아가 아이를 놓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프던 몸이 갑자기 들떠 정신이 들었다.“정아야, 너 어느 병원이야?”“아... 나... 지영아 너 오지 마. 지금 여기 너무 많은 사람이 날 둘러싸고 있어. 민정이하고 세희한테도 말하지 않았어. 아파 죽을 것 같아 나...”정아는 신음하다가도 진통이 멈추면 빠르게 말했다.“너 요즘 너무 바쁘잖아. 네가 걱정할까 봐 다 낳고 알리려고 했어. 너 큰 선물이나 준비해 둬!”나는 머리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가려고 해도 운전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정아는 노씨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돌봐주고 있을 것이다.“그래, 나 지금 열 나서 약 먹고 괜찮아지면 바로 갈게!”나는 대답했다.“그래, 그래... 아파! 노성민 왜 네가 낳지 않는 거야!”정아는 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세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출장 중이었다. 민정이에게 전화해도 장유성의 부모님과 식사하고 있다고 했다.다들 중요한 일이라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우범에게 전화했다.잠시 연결음이 울리더니 전화를 받았다. 나는 힘없이 말했다.“우범 씨, 지금 시간 있어요?”“미안하지만 우범 씨 지금 샤워 중이에요.”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는 깜짝 놀라 바로 화면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우범이 틀림없는데 왜
나는 원래 배인호를 초대해 같이 식사할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배인호가 이미 젓가락을 든 이상 나도 말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배인호는 오늘 나를 도우러 온 건 사실이었고 마음을 담아 풍성한 요리까지 시켜주었다.나는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밥을 먹는 데에만 집중했고 최대한 배인호의 존재를 무시하려 했다. 배인호는 식사할 때 말을 별로 안 하는 편이기에 우리는 아주 조용한 분위기에서 밥을 먹었다.절반 정도 먹었는데 배인호의 핸드폰이 “딩동딩동” 울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누군가 그에게 여러 통의 문자를 한 듯싶었다.핸드폰을 확인한 그의 얼굴에서 짜증이 묻어났다. 아마도 서란이거나 기예은일 것이라고 나는 추측했다.“인호 씨, 바쁘면 일 보러 가요.”내가 이 기회를 틈타서 말했다.“바쁜 거 아니야. 먹자.”배인호가 새우를 하나 까서 내 접시에 올려주며 담담하게 말했다.나는 접시에 놓인 새하얀 새우를 보고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지금 나와 그의 사이는 이렇게 핑크빛이 돌 사이가 아니었다.내가 그 새우를 배인호에게 다시 집어 주자 배인호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내가 까준 게 싫어?”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정했다.“아니요. 그냥 새우가 별로 안 땡겨서요.”그는 내가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는지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새우를 먹어버렸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배인호의 핸드폰이 다시 울려왔다. 이번에는 전화를 걸어 온 것이었다. 나는 자기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이 향했고 “트러블메이커”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트러블메이커, 나는 갑자기 이 호칭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서란은 절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배인호가 휴대폰을 한번 힐끔 보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시선을 거두고 조용하게 밥을 먹었다.“내가 정리할게요.”배인호가 테이블을 정리하려 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몸이 아까보다는 많이 개운해진 걸 보니 열이 내린 듯했다.“내가 할게.”배인호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남은 음
그냥 이우범과 간단하게 식사하면서 오늘 복잡했던 기분을 좀 달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우범 씨, 여기서 밥 먹어요?”한 여자가 우리의 테이블 곁으로 걸어왔다. 나보다 나이가 어려 보였는데 갸름한 얼굴이 부드러운 아우라를 더 자아내게 했다.이 목소리는 오전에 이우범을 대신해 전화를 받은 그 여자의 목소리 같았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우범을 쳐다보았다.이우범은 먼저 나의 반응을 살피더니 내가 아무런 이상이 없자 시름을 놓는 듯 보였다. 그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네, 여자 친구랑 밥 먹고 있어요.”여자가 바로 나를 다시 스캔하더니 나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허지영 씨인가 보네요. 너무 미인이시다. 그러니까 우범 씨가 그렇게 좋아하지.”“안녕하세요.”나는 예의상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저는 도시아라고 해요. 오늘 오전에 우범 씨 찾으러 갔다가 전화 온 거 대신 받아줬는데 지영씨 전화였더라고요. 죄송해요. 용서해 주세요.”여자의 눈빛이 가식적이지 않고 진지해 보였다.이렇게 부드럽고 진지한 태도로 사과하자 나도 더 이상 의심하기가 그래서 머리만 끄덕였다.“괜찮아요. 우범 씨가 다 설명해 줬어요. 저는 우범 씨 믿어요.”도시아가 기쁘다는 듯 답했다.“그러면 다행이네요. 오해할까 봐 걱정했어요.”말하면서 그녀는 이우범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그 한 번의 눈길만으로 나는 그녀가 이우범을 향한 감정이 친구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눈빛을 잘 숨겼고 이우범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것처럼 보였다.도시아가 가고 나는 농담조로 물었다.“도시아 씨 우범 씨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아니에요.”이우범이 빠르게 부정했다. 내가 이 화제를 계속하는 게 싫은 듯한 눈치였다.나는 그것을 눈치챘고 머리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이번 식사는 기분 좋은 식사는 아니었다. 식사가 끝나고 나는 이우범과 인사하고는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간병인이 있어서 내가 그렇
“닥쳐! 진짜 귀찮게 한다!”배인호가 뒤를 보며 짜증을 냈다.냥이가 어깨를 들썩이더니 말했다.“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래요. 빙산 씨한테만 그러는 거지.”다시 생각해도 냥이한테 배인호의 전화번호를 준 건 잘한 일이었다. 그녀는 서란 보다 배인호의 마음을 잡을 줄 안다.나는 둘이 서로 티격태격하는 걸 뒤로 한 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거실로 향했고 현관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소파에 바로 뻗어버렸다.핸드폰이 울렸다. 배인호가 걸려 온 전화였고 나는 바로 끊어버렸다.어느샌가 나는 소파에서 잠이 들었고 다시 일어났을 땐 7시가 넘어 있었다. 나는 대충 아침을 챙겨 먹고 회사로 향했다.며칠 뒤 나는 그 매장 업체와의 협력을 위해 출장을 떠난다. 그러니 요 며칠 회사 일을 잘 처리하고 엄마 쪽 문제도 잘 해결해야 한다.차를 운전해 배인호의 집 앞을 지나는데 냥이가 하품하며 그 집에서 나왔다. 그녀는 까만색 청재킷에 청 나팔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기지개를 켜자 잘록한 허리가 드러났다.‘벌써 집에 밤을 보내는 건가? 대단하네.’나는 마음속의 일부 감정을 무시한 채 운전을 계속했다.“허지영 씨, 시시티브이 영상 나왔습니다. 언제 병원으로 한번 와주시죠.”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의 연락을 받았다.“점심에 갈게요.”내가 대답했다.점심이 되자 나는 밥도 먹지 않은 채 병원으로 향했다. 곧이어 나는 엄마가 습격당한 날의 시시티브이를 볼 수 있었다.체구가 통통한 남자가 캡과 마스크를 쓴 채 신속하게 엄마의 병실로 들어갔고 2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나왔다.나는 그가 범인이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상에서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대략적인 체형만 보였다.나는 이 영상을 가지고 바로 신고했다.아빠가 돌아오신 후 이 일을 전해 듣고 매우 분노하셨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경찰의 조사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아빠, 저 이사 갈래요.”내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왜, 배인호가 귀찮게 하는 거야?”아빠가 바로 물어왔다.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순간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배인호를 밀쳤다.“할 말 다 했으니까 이제 돌아가요.”“언제 다 했다고 그래?”배인호의 눈은 이우범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지만, 입은 나의 말에 대답하고 있었다.이우범이 거실 쪽으로 걸어 들어오면서 현관문을 닫았다.크지 않은 거실에 배인호와 이우범이 모이자 좁은 느낌이 들었다.“인호야, 왜 자꾸 내 여자 친구 못살게 구는 거야?”이우범이 차갑게 물었다. 말투에서 화가 느껴졌다.“나는 전처랑 빨리 회복하려고 노력 중일 뿐이야.”배인호의 대답은 너무나 파렴치했다.“하지만 지금은 내 여자 친구야. 넌 이미 지나간 과거고. 남자라면 쿨하게 놓아줄 줄도 알아야지. 이렇게 뒤에서 자꾸 못살게 굴지 말고.”이우범이 얼굴을 굳히고 배인호를 쳐다봤다.“이 말 너한테 질리게 했어. 지영 씨랑 이혼한다 했을 때도 이미 귀띔했었고.”배인호가 콧방귀를 끼더니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맞아. 그때 귀띔한 것도 나한테서 확답을 얻고 지영이한테 구애하려고 한 거 아니야? 근데, 내가 죽지 않는 한 과거형은 없어. 오히려 너, 나랑 그렇게 오래 좋은 친구로 있었는데 결국엔 나를 이렇게 대하네.”어찌 되었든 간에 이 일에서는 이우범이 논리가 딸렸다.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에 여자들이 다 죽었다 해도 자신의 제일 좋은 친구의 전처랑 사귀면 안 되는 거다.이우범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복잡한 눈빛에서 죄책감이 묻어났다. 이우범은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침묵 속에서 그와 눈을 마주쳤다. 사실 난 이미 많은 일들을 내려놓은 터라 만약 이우범이 부담을 못 이겨 헤어지자고 해도 나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두 번의 삶을 살면서 나는 적지 않은 좌절을 겪으면서 이 모든 걸 감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이 일은 내가 잘못한 거 맞아. 빚진 걸로 할게. 뒤에 기회 되면 꼭 보상할게.”이우범이 이렇게 설명했다.배인호의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빚질 필요 없고 보상할 필요도 없어. 그냥 지영이랑 헤어지면 돼.”“그건 안 돼!
이미 늦은 시간이라 집에 손님이 왔다 해도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게다가 이우범은 늘 혼자 밖에서 지내다 주말에만 집에 돌아가곤 했다.나는 나한테 말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그래요. 비 많이 오는데 운전 조심해요.”나는 펴다 만 이불을 보며 괜찮은 척 말했다.“이불도 안 깔아도 되고 오히려 잘됐네요.”이우범이 눈에 미안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 그가 걸어와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미안해요.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다음에 더 많이 같이 있어 줄게요.”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품에 안겨 머리만 끄덕였다.이우범은 비를 뚫고 차를 운전해 단지를 떠났다. 나는 그를 배웅하지는 않았다. 그저 게스트룸에 펴놓았던 이불을 다시 정리해 먼지가 쌓이지 않게 다시 넣어두었다.사실 이우범이 왜 돌아갔는지는 짐작이 갔다. 아마도 이우범의 부모님이 그가 우리 집에 있음을 알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협박했을 것이다. 이우범이 우리 집에 있다는 건 아마도 배인호가 이우범 부모님에게 얘기했을 것이다.하지만 난 배인호를 탓하진 않았다. 이우범 집안의 반대가 반드시 일어날 일이라면 빨리 부딪치는 게 좋다. 빨리 시작되면 빨리 해결할 수 있으니 말이다.이튿날 아침, 몇 시간 밖에 못 잔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대구로 출장을 떠났다. 동행한 사람은 기사와 비서였다.대구에 도착하자 일단 호텔을 찾아 체크인했다.“이렇게 마주치네요?”체크인을 마쳤는데 서란이 귀신처럼 내 뒤에서 나타났다.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끔 보고는 카드키를 받아 들고 기사랑 비서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서란도 체크인을 마치고 걸어오며 물었다.“지영 언니, 인사했는데 못 들었어요?”“사장님, 엘리베이터 도착했습니다.”비서가 나한테 말했다.나는 머리를 끄덕이고는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여전히 서란은 무시한 채 말이다.하지만 나는 서란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기에 불가피하게 이 크지 않은 공간에
나는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옆방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이 전남편과 전남편의 현 여자친구니 무슨 상황인지 궁금해서 머리를 내밀고 상황을 살폈다.배인호가 차가운 얼굴로 옆방에서 걸어 나왔다. 구경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 봤다.나는 동정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자는 가끔 막무가내로 나올 때가 있는데 서란이 배인호보다 많이 어리니까 배인호가 양보해야 하는 것도 맞았다.“쾅!”옆방의 문이 닫혔다.“왜 웃어?”불똥이 갑자기 나한테 튀었다. 그는 내 쪽으로 걸어와 캐묻기 시작했다. 정교하고 짙은 눈썹에 냉기가 감돌았다.나는 바로 웃음을 거두고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기분 좋은 일이 생각나서요.”배인호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무슨 일인데 기분 좋아? 말해 봐. 나도 기분 전환 좀 하게.”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무슨 생각을 해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세희는 아직 샤워 중이었고 복도는 텅 비어있었다. 나와 배인호는 계속 대치 중이었고 아무도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사실 기분 좋은 일 없어요. 인호 씨가 잘못 본 거예요.”나도 더 이상 연기하지 않았다.“여자 친구 빨리 달래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커플들 싸움도 칼로 물 베기래요. 너무 따지지 마요.”“너랑 무슨 상관이야?”배인호가 갑자기 디스를 해왔다.나랑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 건 맞았다. 하지만 나를 귀찮게 굴고 있는 것도 배인호였다.나랑 상관없는 일이면 빨리 서류나 처리해야 되겠다고 생각했고 문을 닫으려 했다.배인호가 나를 불러세웠다.“너 근데 여기는 무슨 일이야? 그것도 마침 서란 옆방이네?”“이상해할 거 없잖아요. 걱정하지 마요. 여자 친구 미행하러 온 거 아니니까. 나 서란한테 관심 없어요.”내가 차갑게 대답했다.‘서란의 남자 친구로서 지금 샤인 코스메틱과 우리 회사가 같은 매점 업체를 경쟁하는 걸 모르는 건가?’그렇다면 둘 사이에 문제가 있어 보
“인호 씨, 아까 서란 만났어요.”나는 배인호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배인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활짝 웃던 냥이도 웃음을 거두었다. 냥이는 전처인 나보다 서란을 더 꺼리는 것 같았다.“나 이번에 대구에 출장 온 거 원앤 그룹이랑 협력하려고 온 거예요. 오기 전까지 원앤그룹 사람들 태도도 좋고 다 좋았는데 지금 안 만나주려 해요. 오히려 서란과 더 즐겁게 얘기하더라고요. 당신이랑 아무런 관련 없다고 하지 마요.”내가 직설적으로 말했다.배인호는 표정이 변하지 않았지만, 냥이의 눈이 살짝 커졌다. 조금 놀란 듯 보였다. 나는 냥이의 반응을 개의치 않고 배인호의 대답을 기다렸다.“나쁜 일이면 다 내가 한 거야? 넌 도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배인호가 화가 난 나머지 웃음을 터트렸고 나를 보는 눈빛도 더 날카로워졌다.“화낼 거 없어요. 내가 잘못 말한 거면 미안해요.”배인호의 표정으로 나는 그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서란은 그저 배인호로 나를 자극해서 내 부담을 키워줄 심산이었다.이렇게 말하고는 차에 오르려는데 배인호가 나를 불러세웠다.“급하게 갈 거 없어. 내가 의심되면 나랑 더 말해보면 되잖아.”냥이가 나랑 배인호를 번갈아 쳐다봤다. 마치 우리를 연구하고 고민하려는 것 같았다. 순간 냥이가 손을 뻗어 배인호를 잡았다.“왜 그렇게 무섭게 굴어요? 전에 못되게 굴었으니 의심받는 건 정상이잖아요!”배인호는 지금 짜증이 많이 나 있었고 냥이의 손을 뿌리치며 귀찮다는 듯 말했다.“너랑 무슨 상관이야! 끼어들지 마!”냥이가 멈칫하더니 난처한 기색을 드러냈다. 냥이는 시원시원한 성격이라 잘 난처해하지는 않았다. 전에 배인호와 잘 지내고 있었으니, 배인호한테 조금은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냥이는 빠르게 표정을 정리하고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지영 언니, 언니랑 같이 디스하려고 했는데 이분 너무 사나워서 어쩔 수 없네요!”나는 냥이를 향해 웃어 보였다.“괜찮아. 고마워.”배인호가 냥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