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호의 눈빛은 어두워졌지만, 나의 손을 놓아주진 않았다.나는 온 힘을 다해 그를 뿌리치고 차에 올라 병원으로 향했다.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엄마에게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떡하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잠시 혼란스러워 얼마 가지 못하고 차를 화단에 들이박았다.차 속도가 느려서 다행히 나는 핸들에 머리만 박았고 다치지는 않았다.“허지영, 너 고집부리지 마.”배인호는 빠르게 달려왔고 차 문을 열고 나를 잡고 차에서 내리게 했다. 그는 내가 많이 다쳤는지 살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그리고 나는 덜덜 떨며 배인호의 차에 올라 병원으로 향했다.가는 길에서 나는 정신이 없었다. 나의 기억 속에 부모님은 항상 건강하셨다. 요 몇 년 사이 엄마의 심장에 문제가 조금 생겼다. 외동딸로서 나는 언젠가 부모님이 안 계신 날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어젯밤 내가 배인호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민예솔도 난동을 부리지 않았을 것이고 기예은도 폭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엄마도 그렇게 흥분해서 심장병이 발작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모든 일의 내가 멍청한 짓을 한 결과였다!“배인호, 당신은 왜 날 못살게 굴어요?”나는 고개를 돌려 텅 빈 눈빛으로 배인호를 바라보았다.“난 널 못살게 군 적 없어. 그러지 않을 거야.”배인호는 핸들을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줬고 손 마디가 하얗게 변했다.나는 헛웃음이 나왔다.“난 이미 당신한테 10년이란 시간을 허비했어요. 그걸로는 부족해요? 예전에 정아랑 애들이 당신이 나의 기를 꺾는다고 해도 난 안 믿었는데 지금은 믿어요. 나의 모든 비극은 당신으로부터 시작되었어요.”배인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얇은 입술을 깨물었다. 옆모습은 완벽했지만, 침울한 기운이 느껴졌다.“만약 어젯밤에 내가 당신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엄마도 아무 일도 없었겠죠. 내가 멍청했어요. 당신한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을 했다니.”나는 스스로 비웃음을 날렸다. 이런 감정은 너무나 비참했다.환생은 그저 한 번의 기회일 뿐이다.
엄마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다음날 내가 병원으로 향했을 때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많은 것을 말했다. 결국 엄마가 한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시는 게 제일 좋은 결과였다.며칠 동안 나는 매일 병원과 회사만 왔다 갔다 했고 처음으로 사는 게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이 선생님 정말 그만두시려고요?”“잘 다니시다가 왜 갑자기 그만두세요? 너무 아쉬워요!”나는 엄마의 병실로 향하는 길에 간호사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나는 발걸음을 늦출 수밖에 없었다. 요 며칠 나는 이우범을 잘 만나지 못했다. 그는 엄마를 몇 번 보러 왔지만 모두 그의 출근 시간이었다.그가 정말로 그만둘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병실에 도착해서 나는 바로 이우범에게 전화를 걸었다.“우범 씨, 정말 그만두는 거예요?” 나는 참지 못하고 바로 물었다.“네, 지금 사표 처리하고 있어요. 이제부터 우리 그룹으로 출근할 거예요.”이우범은 부드럽게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요. 나 괜찮아요.”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이마를 짚었다. 전생에서도 이우범은 서란 때문에 의사를 포기하고 가문의 그룹을 이어받았다.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우범의 모습이 이미 병실 앞에 나타났다. 그는 이미 그만두었고 오늘 출근할 필요가 없었다. 베이지색 스웨터를 입고 있는 모습이 따뜻하고 편해 보였다.“어떻게 왔어요?”나는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당신 보려고요. 미안해요. 요 며칠 잘 챙겨주지 못해서.”이우범은 다가와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여요. 힘들어요?”확실히 많이 힘들었다. 아빠는 아직 퇴직하지 않으셨기에 회사의 일에 힘을 보태실 수도 없었고 모든 것을 내가 짊어져야 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 회사 일에 익숙하지 않았고 이사진들의 책임 전가에 머리가 아팠다.밤에는 잠을 잘 자지 못했고 낮에는 잘 먹지 못했다. 어렵게 찌운 살들도 바로 빠져버렸다.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네, 지금 회사 일에 빨리 적응하려고 하고 있어요. 엄마 건강도 안 좋으신데 나도 어서 책임지
회사의 원료 업체의 일이 해결되고 나니, 나의 기분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때 나의 핸드폰이 울렸고 이우범의 전화였다.아까 배인호하고 서 대표와 급하게 나오느라 그의 기분을 챙기지 못했다. 잠시 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어쨌든 나와 배인호의 관계는 특수했다.나는 전화를 받지 않고 병원으로 가서 엄마를 보고 회사로 가서 업무들을 처리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우범과 얘기를 나누어야겠다.하지만 나는 이우범이 엄마의 별실에 아직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왔어요?”그는 조용히 엄마의 침대 옆에 입구가 보이는 쪽에 앉아 있었고 내가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그는 몸을 일으켰고 목소리에는 별다른 기복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내가 아까 배인호와 함께 떠나는 행동 때문에 화를 낼 줄 알았다.“네, 회사에 일이 있었어요. 아까 그 서 대표하고요.”나는 간단하게 두 마디로 설명하고 물었다.“정말 일 그만둔 거예요? 왜요? 의사라는 직업을 좋아했잖아요. 애초에 집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혼자 자기 일을 하려고 한 거 아니에요? 많이 노력했을 텐데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어요?”병실에 흰 조명 아래서 이우범의 눈, 코, 입에 옅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까만 머리카락은 전처럼 단정하지 않았고 캐주얼하게 앞머리를 내려 이마를 절반 정도 가려 잘생긴 눈썹과 청량한 눈을 절반 가렸다.그는 낮게 중얼거렸다.“네, 당신네 집안하고 오랫동안 다퉜어요...”“네, 알아요. 나도...”나는 입을 열어 말했다. 하지만 바로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전생에서 이우범은 내게 이런 얘기를 해 주지 않았다. 전생에서 우리는 그저 협력관계였고 가끔 대화하는 게 다였다. 당시에 그는 배인호를 상대하기 위해 회사를 물려받았다.이우범은 영민한 사람이었고 그는 바로 이상한 점을 캐치해냈다.“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아까 내가 의사 직업을 좋아한다는 것도 집안의 동의를 얻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는 건 당신한테 얘기한 적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알았어요?”
이때 뒤에 서 계시던 아빠가 말씀하셨다.“간병인 몇 명 고용해서 엄마를 지키게 해. 어중이떠중이들이 다 찾아와서 이 사람 방해하게 하지 말고.”나도 그 생각을 했다. 나도 지금 회사 일 때문에 바쁘고 아빠도 출장을 떠나시기 전에 들러 엄마의 상황을 살피시려고 들렀는데, 방금 서란의 일로 아빠는 많이 언짢아하시며 계속 인상을 쓰고 있었다.우리 셋은 함께 병원을 떠났고 이 기사가 문 앞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떠나고 이우범은 나의 손을 잡고 그의 차로 데려갔다.“잘 먹여서 살 좀 찌워야겠어요.”이우범은 웃으며 말했다.“한 끼로 빠진 살이 다시 찔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휴.”나는 이우범을 따라가며 한숨을 쉬었다.우리는 전에 나눴던 대화들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고 결국 그는 병원을 관두고 나도 회사 일이 바빠져서 괜한 일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다.이런 식으로 모순을 무시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나의 말을 듣고 이우범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건 쉬워요. 이제부터 내가 매일 같이 밥 먹어 줄게요. 같이 못 먹으면 사람을 보내서 맛있는 음식을 배달해 주고,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했는지 감독할 거예요. 그럼, 바로 살이 포동포동 오를걸요.”나는 웃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아기처럼 챙김을 받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이우범의 잘생긴 이목구비를 보고 있자니 문득 그와 조금 커플처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배인호와 결혼하고 5년 동안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배인호가 나의 손을 잡고 어디로 가서 무얼 먹을지 고민하는 모습은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아마도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결국 우리는 한정식을 먹기로 했다. 이우범은 나에게 국물을 먹이고 싶어 했고 담백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이려고 했다. 나는 요즘 잘 쉬지 못하고 잘 먹지 못했기에 몸보신이 필요했고, 거절하지 않았다.“나 지금 회사 다니면서 일을 익히고 있어요. 비즈니스에 관해 당신 가르침이 필요할 거예요. 가르쳐
배인호는 당연히 자기 멋대로 하는 안하무인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나의 인생까지 그가 마음대로 휘두르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방구석에서 언제나 그를 기다려야 해고 그가 나를 사랑하면 바로 그를 반겨야 하는 걸까?“난 당신이 예전과 달리진 줄 알았어요.”나는 실망했다.“당신 눈에는 나의 증오와 불행이 자기 승부욕보다 중요하지 않나 봐요?”배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말 우스웠다. 우리 가족에는 심각한 문제인데 그는 나를 협박했다.“난 돌아가지 않아요. 인호 씨, 내가 더 비참해지길 바란다면 나만 괴롭혀요. 성인바이오 사건처럼 날 돕지 말고. 그럼 난 처참하게 무너져 줄 테니까. 그럼, 당신의 그 변태 같은 심리도 만족이 되겠네요.”나는 고개를 들고 아무 감정도 담지 않고 말했다.배인호는 이를 꽉 깨물었다.“변태 같은 심리? 넌 내가 널 놓지 못하는 게 변태 같다고 느끼는 거야? 방금 내 앞에서 이우범과 그런 짓을 하는 걸 보면서 내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해 봤어?”“당신 마음은 나한테 중요하지 않아요! 난 당신을 이미 놨고 당신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에요. 배인호 씨, 날 좀 존중해 줄 수 없어요? 내가 당신에게 어리석게 매달렸었다고 날 무시하는 게 익숙해졌어요?”나는 비참하게 물었다.나는 마치 인공위성처럼 배인호가 만들어 놓은 바운더리에서 아무런 자아도 없이 그의 주위를 맴돌았었다.하지만 그건 내가 좋아서 그런 거니 다른 사람을 탓할 수 없었다.배인호는 나의 말에 마음이 복잡한 듯 원래 어두웠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나의 손을 바라보았다.“손 놔. 문을 사이에 두고 얘기하고 싶지 않아.”나는 다치고 싶지 않아 손을 놓았다. 문이 열리자 우리는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눴다.“그때는 내가 잘 못했어. 천 번이라도 아니 만 번이라도 인정할게. 하지만 나에게도 너에게 만회할 기회를 줘.”배인호는 내가 순종적으로 문에서 손을
아빠는 지방 출장을 가셨기에 연락할 수가 없었다. 나는 먼저 정아에게 연락했다.“정아야, 너 어디야?”난 침대에 누워 혼미한 정신으로 물었다.“나 병원에 있어. 아야! 너무 아파! 노성민 너, 이 나쁜 놈아, 나 안 낳을 거야!”정아는 전화는 받았지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지금 병원에서 출산 준비를 하는 것일까?노성민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옆에서 말했다.“알았어. 알았어. 모두 내 잘못이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아프면 날 때려. 자, 여기 내 얼굴!”아직 출산예정일이 아니어서 정아가 아이를 놓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프던 몸이 갑자기 들떠 정신이 들었다.“정아야, 너 어느 병원이야?”“아... 나... 지영아 너 오지 마. 지금 여기 너무 많은 사람이 날 둘러싸고 있어. 민정이하고 세희한테도 말하지 않았어. 아파 죽을 것 같아 나...”정아는 신음하다가도 진통이 멈추면 빠르게 말했다.“너 요즘 너무 바쁘잖아. 네가 걱정할까 봐 다 낳고 알리려고 했어. 너 큰 선물이나 준비해 둬!”나는 머리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가려고 해도 운전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정아는 노씨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돌봐주고 있을 것이다.“그래, 나 지금 열 나서 약 먹고 괜찮아지면 바로 갈게!”나는 대답했다.“그래, 그래... 아파! 노성민 왜 네가 낳지 않는 거야!”정아는 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세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출장 중이었다. 민정이에게 전화해도 장유성의 부모님과 식사하고 있다고 했다.다들 중요한 일이라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우범에게 전화했다.잠시 연결음이 울리더니 전화를 받았다. 나는 힘없이 말했다.“우범 씨, 지금 시간 있어요?”“미안하지만 우범 씨 지금 샤워 중이에요.”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는 깜짝 놀라 바로 화면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우범이 틀림없는데 왜
나는 원래 배인호를 초대해 같이 식사할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배인호가 이미 젓가락을 든 이상 나도 말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배인호는 오늘 나를 도우러 온 건 사실이었고 마음을 담아 풍성한 요리까지 시켜주었다.나는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밥을 먹는 데에만 집중했고 최대한 배인호의 존재를 무시하려 했다. 배인호는 식사할 때 말을 별로 안 하는 편이기에 우리는 아주 조용한 분위기에서 밥을 먹었다.절반 정도 먹었는데 배인호의 핸드폰이 “딩동딩동” 울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누군가 그에게 여러 통의 문자를 한 듯싶었다.핸드폰을 확인한 그의 얼굴에서 짜증이 묻어났다. 아마도 서란이거나 기예은일 것이라고 나는 추측했다.“인호 씨, 바쁘면 일 보러 가요.”내가 이 기회를 틈타서 말했다.“바쁜 거 아니야. 먹자.”배인호가 새우를 하나 까서 내 접시에 올려주며 담담하게 말했다.나는 접시에 놓인 새하얀 새우를 보고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지금 나와 그의 사이는 이렇게 핑크빛이 돌 사이가 아니었다.내가 그 새우를 배인호에게 다시 집어 주자 배인호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내가 까준 게 싫어?”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정했다.“아니요. 그냥 새우가 별로 안 땡겨서요.”그는 내가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는지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새우를 먹어버렸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배인호의 핸드폰이 다시 울려왔다. 이번에는 전화를 걸어 온 것이었다. 나는 자기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이 향했고 “트러블메이커”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트러블메이커, 나는 갑자기 이 호칭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서란은 절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배인호가 휴대폰을 한번 힐끔 보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시선을 거두고 조용하게 밥을 먹었다.“내가 정리할게요.”배인호가 테이블을 정리하려 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몸이 아까보다는 많이 개운해진 걸 보니 열이 내린 듯했다.“내가 할게.”배인호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남은 음
그냥 이우범과 간단하게 식사하면서 오늘 복잡했던 기분을 좀 달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우범 씨, 여기서 밥 먹어요?”한 여자가 우리의 테이블 곁으로 걸어왔다. 나보다 나이가 어려 보였는데 갸름한 얼굴이 부드러운 아우라를 더 자아내게 했다.이 목소리는 오전에 이우범을 대신해 전화를 받은 그 여자의 목소리 같았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우범을 쳐다보았다.이우범은 먼저 나의 반응을 살피더니 내가 아무런 이상이 없자 시름을 놓는 듯 보였다. 그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네, 여자 친구랑 밥 먹고 있어요.”여자가 바로 나를 다시 스캔하더니 나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허지영 씨인가 보네요. 너무 미인이시다. 그러니까 우범 씨가 그렇게 좋아하지.”“안녕하세요.”나는 예의상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저는 도시아라고 해요. 오늘 오전에 우범 씨 찾으러 갔다가 전화 온 거 대신 받아줬는데 지영씨 전화였더라고요. 죄송해요. 용서해 주세요.”여자의 눈빛이 가식적이지 않고 진지해 보였다.이렇게 부드럽고 진지한 태도로 사과하자 나도 더 이상 의심하기가 그래서 머리만 끄덕였다.“괜찮아요. 우범 씨가 다 설명해 줬어요. 저는 우범 씨 믿어요.”도시아가 기쁘다는 듯 답했다.“그러면 다행이네요. 오해할까 봐 걱정했어요.”말하면서 그녀는 이우범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그 한 번의 눈길만으로 나는 그녀가 이우범을 향한 감정이 친구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눈빛을 잘 숨겼고 이우범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것처럼 보였다.도시아가 가고 나는 농담조로 물었다.“도시아 씨 우범 씨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아니에요.”이우범이 빠르게 부정했다. 내가 이 화제를 계속하는 게 싫은 듯한 눈치였다.나는 그것을 눈치챘고 머리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이번 식사는 기분 좋은 식사는 아니었다. 식사가 끝나고 나는 이우범과 인사하고는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간병인이 있어서 내가 그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