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해, 남준아!”오남미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통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약혼식 파토나서 힘든 네 마음 알겠어. 하지만 천도준 일은 내가 처리할 테니 넌 엄마나 잘 돌보고 있어. 절대 이 일을 엄마나 아빠한테 알리면 안 돼. 충격 받으실 거야.”말을 마친 그녀가 뒤돌아섰다.오남준이 짜증스럽게 물었다.“누나가 뭘 어떻게 처리한다고 그래? 설아한테 사기 쳐서 약혼식까지 파토낸 주제에!”하지만 오남미는 자기 연민에 빠져 그 말을 듣지 못했다.정태건설.천도준은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서천구 재개발 프로젝트는 지금 가장 중요한 단계에 들어섰다.비록 계약 문제와 자금 문제를 해결했지만 공사가 다 끝날 때까지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최대한 빠른 시간에 기초 공사를 마무리 짓고 분양을 시작해야 했다.의성이 서천구에 투자한 것은 하나의 도화선이라면 진짜 실적은 얼마나 많이 분양하고 실적을 내느냐에 있었다.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적을 내야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아버지에게 훌륭한 답안지를 제출할 수 있었다.이때, 핸드폰 화면이 깜빡이며 문자가 도착했다.문자를 확인한 천도준의 표정이 아련해졌다.고청하가 보낸 문자였다.[천도준, 나 1일 날 들어가. 너 줄 선물 있는데 마중 나올 거지?]1일?천도준은 서둘러 날짜를 확인했다. 지금 월말이라 며칠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3년 전, 그와 오남미의 결혼식 때 고청하가 들러리도 서주고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그게 아니더라도 친구가 귀국한다는데 마중을 안 나갈 수 없었다.[알았어.]답장을 보낸 뒤, 그는 다시 일에 몰두했다.하지만 다시 들린 문자 알림음에 핸드폰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임설아였다.이 여자는 자존심도 없는 걸까?[대표님, 오늘 시간 괜찮아요? 괜찮으면 집에 와서 같이 식사해요.]이렇게 대놓고 티를 내는데 천도준은 짜증이 치밀었다.[됐어. 난 내가 한 요리만 먹어.]은행.문자를 확인한 임설아의 표정에는 짜증이 가득했다.지금
일련의 검사가 끝나고 다행히 이난희의 건강에는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하지만 박유리와 장 박사는 그래도 불안했다.천도준이 저녁에 병원에 들렀을 때, 이난희와 박유리 모두 이 일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이난희는 아들이 안쓰러웠다.그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면서 더 이상 자신의 일 때문에 아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다.하지만 박유리는 천도준의 눈치를 살피며 여러 번 그 일에 대해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난희의 부탁을 떠올리고 입을 다물기로 했다.“도준이 너 요즘 많이 피곤해 보여.”이난희가 안타까운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그녀가 암 진단을 받고 수술실에 들어가고 오남미와 이혼하고, 이 모든 일이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발생했다.안 그래도 힘들 텐데 천도준은 혼자서 이 모든 일을 감당하며 열심히 일해서 치료비를 감당하고 있었다.“엄마, 저 괜찮아요.”천도준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다행히 나날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서 그의 심리적 부담감도 조금은 덜 수 있었다.최근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힘들기도 하지만 모든 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힘든 줄도 몰랐다.원하는 걸 가지려면 그 역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엄마 때문에 네가 고생이다. 내가 아니었으면 네가 이렇게까지 힘들게 일할 필요도 없었는데.”이난희가 고개를 숙이며 자책했다.천도준은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엄마,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엄마가 저를 이렇게 잘 키워줬으니까 제가 좋은 직장도 들어갈 수 있었던 거죠. 엄마가 저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다 아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엄마가 밤을 지새며 일하던 나날에 비하면 제가 지금 일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이난희는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하다가 지쳐서 건강이 나빠졌다.그것에 비하면 천도준은 자신이 고생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는 엄마의 헌신에 감사함과 동시에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가 지독하게 미웠다
이수용이 말했다.“회장님은 도련님이 가문으로 돌아오셔서 수장의 자리를 물려받기를 원하지만 오너 일가 중에 경영권을 욕심 내는 자가 한둘이 아니지요. 가문의 수장이 되어 경영권을 손에 넣으면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는 건데 누군들 욕심이 안 날까요.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 눈에는 도련님이 눈엣가시처럼 거슬리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설마 죽이기야 하겠어요?”천도준이 피식거리며 말했다.이수용은 대답 대신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천도준도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세간에 알려지지 않고도 막강한 재력을 가진 신비의 가문이라면 몰래 누군가의 존재를 이 세상에서 지우는 일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존.”이수용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예, 어르신.”롤스로이스의 운전석에 앉은 사내가 그 부름에 답했다.천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상대를 노려보았다. 전에 이수용의 운전기사는 이 사람이 아니었다.각진 얼굴에 진한 눈썹, 그리고 온몸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는 그가 평범한 운전기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도련님, 앞으로는 존이 도련님의 신변 안전을 지킬 겁니다.”이수용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존은 해외에서 전쟁까지 나갔던 일급 용병 출신입니다. 회장님은 해외로 출장을 나갔다가 존의 실력을 알아보고 집으로 데려오셨죠. 격투기, 사격, 정찰 기술 모든 면에서 출중한 인재입니다.”그 말을 들은 천도준은 처음으로 당황했다.용병은 영화에서만 나오는 존재인 줄 알았다.그런데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자신의 안전을 지키러 왔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온몸이 긴장되었다.이수용은 여전히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한숨만 내쉬었다.천도준이 의아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왜 그러십니까?”“도련님은 첫 시험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그러면서 오너 일가의 모두에게 노출이 되었지요. 전에 이 일을 설계할 때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제가 너무 성급했던 것 같아서 죄송스럽습니다.”이수용이 자책하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일이 이렇게
이수용과 헤어진 뒤, 천도준은 존을 데리고 월셋방으로 왔다.집안 환경을 둘러본 존이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많이 초라하죠?”천도준이 물었다.존은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말했다.“아닙니다. 도련님께서 고생이 많으셨네요.”천도준은 그 말에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는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선을 지키는 존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이수용의 말대로라면 존은 한동안 그의 옆에 머물게 될 것이다. 만약 그가 싫어하는 성격이라면 많이 곤란했을 것이다.“집에 머물 사람이 많아질 것 같아서 집을 하나 장만했어요. 다음 달이면 이사하게 될 겁니다.”천도준이 웃으며 말했다. 천문동 별장 가격이 비싼데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 단지를 설계할 때부터 국내 유명 디자이너가 주도했다. 입주하는 고객에게 최상의 만족감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다.사실 지금 당장 이사간다고 해도 안에 있을 게 다 있었기 때문에 몸만 들어가면 된다.존은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거주 환경을 그리 따지지 않는 사람이었다.천 회장의 밑으로 들어간 뒤로 그의 생활 환경도 눈에 띄게 비약했다.하지만 전장을 구르며 적의 피로 목을 축이던 경험이 있었기에 삶의 질보다는 생존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편이었다.아무리 최악의 환경에서도 그는 잘해낼 자신이 있었다.이수용이 다녀가고 며칠이 지났지만 딱히 눈에 띌만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천도준도 딱히 그것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다만 그의 하루 스케줄에 매일 아침 운동계획표가 더 생겨났을 뿐이었다.과거에는 일을 하고 엄마를 돌보느라 운동은 시간 날 때마다 했는데 매일 계획적으로 운동하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이수용이 말했던 엘리트 교육이라는 단어가 그의 승부욕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엘리트 교육을 안 받았다고 그들보다 능력이 떨어진다고?그런 평가는 절대 받고 싶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천도준은 사람들의 눈총과 비난을 받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 그가 어떤 걸 경험했는지는 그와 그의 엄마 이난희
골목이 어두워서 사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천도진은 며칠 전 이수용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사내에게서 진한 살기가 느껴졌다.그제야 그는 이수용이 왜 그렇게 걱정했는지 이해가 되었다.온몸에 소름이 돋던 찰나, 그 사내는 그의 앞으로 달려와서 그의 머리를 겨냥하고 발을 뻗었다.정말 죽일 생각이었어?천도준은 순식간에 동공이 확장되며 본능적으로 팔을 들었다.힘으로 싸우면 저 사내는 그와 같은 레벨이 아니었다.위기의 찰나, 천도준의 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더니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갑자기 나타난 검은 그림자는 어깨로 사내의 공격을 막아냈다.“당장 꺼져!”존이 사내의 오른 발목을 잡더니 힘껏 땅에 패대기쳤다.폭력에는 폭력으로 맞서야 하는 법, 사내는 착지한 후에 땅을 몇 바퀴 구르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존!”천도준은 자신의 앞을 든든히 지키고 선 존의 이름을 불렀다.존은 철옹성처럼 든든하게 그의 앞을 지키고 서서 맹수처럼 적을 응시하며 말했다.“천태영, 감히 이분이 누구라고 이딴 짓을 하는 거야? 죽고 싶어?”“존? 재밌네. 영감님이 저 자식을 애지중지한다는 소문이 가짜는 아니었어. 저 자식 하나 지킨다고 존을 다 보내고 말이야.”바닥에서 일어선 천태영이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존에게 한방 먹었지만 그의 상태는 아주 멀쩡해 보였다.그 모습에 당황한 건 오히려 천도준 쪽이었다.천태형은 체형이 그와 비슷했다.만약 존이 땅으로 패대기친 상대가 천도준이었다면 아마 지금쯤 일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천태양의 뒤로 가로등 불빛이 비추고 있어서 그제야 천도준은 상대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피부는 창백하지만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남자는 거만한 눈을 하고 천도준을 노려보고 있었다.건설 업계와 부동산 업계에서 많은 사람을 접촉했기에 천도준은 사내가 거칠고 야만적인 성격의 인간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천태영은 고개를 한껏 치켜들고 가소롭다는 듯이 존에게 말했다.“네 주제에 날 죽일 수는
“너 내가 누군지 알고 그딴 말을 지껄이는 거야?”천태영이 이를 갈며 물었다.가문의 젊은이들 중에 수장이 되고 싶지 않은 인물은 없었다.그러나 늙은 수장은 갑자기 지방으로 내려가더니 근본도 없는 미혼모 자식을 가문의 후계자로 내세우려 했다.태어날 때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란 그들이 천도준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을 리 만무했다.천도준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존을 돌아보았다.“존, 집에 가요.”천태영은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존이 옆에 있는 이상, 천도준을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었다.늙은 수장이 자신이 아끼는 경호원을 천도준의 옆에 보냈다는 건, 그만큼 눈앞의 이 자식이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했다.“엘리트와 근본 없는 미혼모 자식의 차이가 얼마나 큰 건지 나중에 알게 될 거야.”천태영이 이를 갈며 싸늘하게 말했다.집으로 돌아온 천도준은 그대로 소파에 쓰러졌다.“아까는 도와줘서 감사했어요.”그 말에 존이 고개를 저었다.“제 일입니다.”천도준은 이해한다는 듯이 웃었다.조금 전 존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천태영의 손에 죽었을 수도 있었다.이수용이 말한 것처럼 악마 같은 존재였다.“존, 아까 그 자식의 격투 기술을 직접 가르쳤다고 했죠?” “네.”천도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도 가르쳐줘요.”천태영의 등장은 그에게 위기감을 심어주었다.그들은 뼛속 깊이 일반인의 목숨은 개 목숨처럼 여기고 있었다.조금이라도 정상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위기감이었다.천도준은 아직 지켜야 할 사람이 있었다.그렇게 이어지는 며칠 동안 천도준은 아침 운동 시간에 존과 함께 공원으로 나가 운동을 하고 땀을 뻘뻘 흘린 뒤에 집으로 와서 씻고 회사로 출근하는 나날을 반복했다.모든 게 질서 있게 진행되고 있었다.이난희도 비교적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다.천태영은 그날 이후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마치 폭풍우처럼 잠깐 나타나서 충격을 주고 사라졌다가 다시 평화를 찾은 것처럼 보였다.그
창문을 통해 바라본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어 있었고 곧 큰 비가 내릴 것 같았다.고청하는 약간 서운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좀 있으면 비도 오겠는데….”그녀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천도준에게 문자를 보냈다.그리고 그에게서 답장이 올 때까지 공항에서 기다렸다.3년 만에 귀국하고 가장 먼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천도준이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이곳에서 그와 새로운 관계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그런데 이 일중독자가 일하다가 약속까지 까먹을 줄은 몰랐다.잠깐의 서운함을 뒤로 하고 고청하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하긴, 그런 모습에 반한 거긴 하지만.”천도준이 급하게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40분이 지나간 뒤였다.먹구름이 끼었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그가 흠뻑 젖어서 공항에 도착했을 때, 구석에서 외롭게 앉아 있는 여자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3년 만에 처음 만나는 거지만 고청하는 예전이랑 외모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예뻤고 조금 더 성숙한 분위기가 풍겼다.“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천도준은 미안한 얼굴로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며 사과했다.천도준을 보자마자 고청하의 예쁜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비에 흠뻑 젖은 천도준을 그대로 끌어안았다.“일중독자, 오랜만이야!”“야, 이거 놔. 너까지 젖겠어!”천도준이 다급히 말하며 그녀를 밀어냈다.고청하는 천도준을 놓아주고 짐짓 서운한 얼굴로 말했다.“오랜만에 만나서 좀 안아보자는데 튕기기는.”천도준은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를 흘겨보고는 그녀의 캐리어를 잡고 말했다.“가자. 내가 식당 예약했어. 많이 배고프지?”고청하는 배를 만지작거리며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누구 때문에 뱃가죽이 등에 붙는 줄 알았잖아.”천도준도 미소를 지으며 고청하와 함께 공항을 나왔다.“비가 이렇게 오는데 왜 우산도 안 가져왔어?”고청하가 물었다.“너무 급하게 오느라 깜빡했어.”천도준의 말에 고청하가 인상을 찡그렸다.“그러다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위너스 레스토랑.천도준이 처음 스테이크를 맛본 집이었다. 그때는 고청하가 밥을 산다고 그를 불러냈었다.대학교 때 그와 오남미, 그리고 고청하는 항상 붙어 다니는 가족 같은 친구 사이였고 종종 이곳에서 같이 외식을 즐기기도 했다.3년 전 고청하가 해외로 떠날 때도 이곳에서 셋이 작별 파티를 했었다.그래서 이 레스토랑은 그들에게 아주 큰 의미가 있었다.“그래도 기억하고 있었네?”고청하는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아련한 표정으로 간판을 바라보았다.“어떻게 잊겠어.”천도준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러자 고청하가 코를 살짝 찡그렸다.“그런데 너 너무 쪼잔한 거 아니야? 너 건설회사 부장까지 달았다며? 오랜만에 해외에서 귀국하는 친구에게 밥 사는데 고작 여기라고?”3년 간 그녀는 해외에 있었지만 천도준과 오남미의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전해 들었다.그래서 그와 오남미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문자를 보냈던 것이다.그녀는 대학을 금방 졸업하고 건설회사에서 쭉 승진하다가 부장의 자리까지 오른 천도준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아마 평민 출신에서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그럼 어디 가고 싶어? 얘기만 해.”천도준이 웃으며 말했다.“됐어, 그냥 여기서 먹자.”고청하가 입을 삐죽이며 먼저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사실 천도준의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가 비록 부장으로 초고속 승진하기는 했지만 윗분들 눈치 보는 월급쟁이에 불과했고 번 돈을 모두 어머니의 치료비에 썼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그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차에서 내린 그들은 둘 다 물에 젖은 생쥐 꼴이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둘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오히려 손님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저런 초라한 몰골을 하고 스테이크를 썰러 오는 사람은 흔하지 않았다.자리에 착석해서 메뉴를 주문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메뉴가 올라왔다.천도준과 고청하는 스테이크를 썰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하지만 아무도 오남미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은화는 분노했다. “그럼 우리 청하가 중간에 껴서 난처해하는 모습을 눈 뜨고 보고만 있겠단 말이에요? 아빠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 중요한 순간에 딸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어요?”“알았어.”고덕화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쨌든 동의한 셈이다. “그저 여기에서 며칠 더 묵었을 뿐이야. 천씨 가문쪽과의 협의를 또 지체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 돼.”고덕화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천씨 가문의 여세를 몰아 당신이 한 단계 더 높은 성과를 올리려고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하고요. 게다가 당신을 응원해요.”이은화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여보, 우리에겐 자식이라고는 청하 한 사람 밖에 없어요. 당신이 이미 이룬 성공은 다른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는 것이예요.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돼요. 청하의 행복이야말로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목표예요.”“하지만…”고덕화는 여전히 변명하고 싶었다.“저는 저희의 잘못된 생각으로 청하가 좋은 인연을 놓치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 천씨 가문을 떠나서, 천도준은 이미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고요. 만약 청하가 우리 때문에 헤어지면 아버지라는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겠어요?”이은화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당신 설마 우리 청하가 석유 재벌이나 실리콘 밸리의 거물들의 자식들을 마음에 들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고덕화는 잠시 멈칫하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바로 명쾌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하지. 모레 여전히 이곳에서 파티를 열어 천도준에게 사과를 하는 거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견례를 갖는 거지.”“좋아요. 이래야 좋은 아버지죠.”이은화는 부드럽게 웃었다. ……고덕화와 정강수가 회관 주차장으로 달려갔을 때, 천도준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저 멀리에서 롤스로이스 한 대가 회관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고덕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강수가 다급히 경호원에게 물어보니, 경호원은 천도준이 착잡한 표정으로 차량에 올라탔
그 말에 정강수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의 표정은 어딘가 복잡해보였다.정강수는 국화의 대가였다. 그는 도도하고 자신의 존엄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에게서 사과라는 단어를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하물며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사람한테 사과하라니?그저 멍하니 서 있는 정강수를 보고, 유 원장은 화가 났다.“너, 나랑 박씨 어르신을 믿어, 못 믿어?”박씨 어르신도 한숨을 쉬었다.“가, 어서 사과 해. 체면이 깎이는 것도 아닌데 뭐.”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 그것도 천씨 가문 가주가 아들을 위해 이미연에게 협박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천도준이 정강수의 사과를 받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순간, 정강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유 원장이 혼자 이러는 거면 무시해도 되겠지만, 박씨 어르신까지 이러니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가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일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정강수는 한숨을 쉰 후, 천천히 밖으로 걸어갔다.“엄마, 아빠. 제가 도준이를 잡으러 갈게요.”고청하는 감격에 겨워 밖으로 뛰쳐나갔다.오해가 풀렸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여자로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부모님의 마음에 드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정강수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졌다.안채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고덕화와 이은화는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오늘 밤,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갔다.기쁨에서 분노로, 다시 공포로 변했다. 두 사람은 그저 오랜 친구들을 불러 딸이 사랑하는 남자가 믿을만한 남자인지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큰 오해가 생길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조금 전 천도준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생각하면, 두 사람은 얼굴이 뜨거워졌다.고덕화는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흘겨보았다.“오래 알고 지낸 친구인데, 어떻게 두 사람은 아직도 나를 속일 수가 있지
정강수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했다.그들은 모두 오래된 절친한 친구고, 각자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들이어서 만약 진짜로 싸운다면 누구 하나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유 원장은 얼굴을 붉히며 욕설을 퍼부었다.“넌 정말 양심도 없는 놈이야. 내가 너랑 싸우는 것을 두려워할 것 같아? 너한테 맞으면 난 내가 직접 치료하면 되는데, 넌 누가 치료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난 절대 치료 못 시켜줘.”“너……”정강수는 얼굴을 붉혔다. 고덕화는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같은 편들끼리 왜 갑자기 싸움을 벌이는 거지? 그때, 박씨 어르신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유 원장과 똑같이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정강수를 바라보았다.“강수야. 이번 일은 네가 경솔했어. 유 원장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너 까지 왜……”정강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세 사람 중, 박씨 어르신이 제일 진중하고 침착한 편이었다. 아니었으면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두 사람 대체 왜 그래? 무슨 일이야?”고덕화가 다급히 물었다.이은화와 고덕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유 원장은 성격이 급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며 를 가리키며 정강수에게 소리를 질렀다.“다시 한번 저 그림을 자세히 봐봐. 그래도 천도준이 선물한 그림이 가짜라고 한다면 오늘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 말에 정강수는 마치 날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천도준을 대신해 억울함을 호소했다.‘내가 진짜 잘 못 본 걸까?’정강수는 다시 를 들고 신중하게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 자세히 살펴보았다.아까와 비교하면, 정강수는 확실히 침착했다.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어찌나 조용한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것 같았다. 고덕화 일행은 막막했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부끄럽기도 하고, 어딘
그의 한 마디에 방은 순식간에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해졌다.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느새 두 사람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정강수는 오히려 거만한 표정으로 천도준을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었다.순간, 고청하는 눈앞이 컴컴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갸냘픈 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왔다.부모님은 불같이 화를 낸다. 처음 부모님을 소개시켜드리는 자리는 이렇게 완전히 망해버렸다.그럼 앞으로 두 사람의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고청하는 힘겹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도준아……”그녀가 막 말을 내뱉은 순간, 천도준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미소는 봄바람처럼 따뜻했다.당백호의 는 이수용이 그에게 준 것이다. 그는 이수용이 고작 그림 한 점으로 수작을 부렸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박씨 어르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해도 절대 가짜일 리가 없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바로 정강수의 독단적인 태도였다. 그는 그림을 단 한 번만 보고 가짜라고 판단했다. 그건 아무리 전문가여도 너무 독단적이었다.그의 이런 독단적인 행동 때문에 기쁨과 환희가 차 넘쳐야 할 자리는 순식간에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고청하의 목소리를 듣고, 천도준은 웃으며 말했다.“청하야, 난 괜찮아. 난 이만 나가볼게.”이미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그가 계속 여기에 있는다면 고청하만 중간에서 곤란해질 뿐이었다.고청하는 그가 가장 힘들었을 시기에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렵게 얻은 이 진실된 감정을 각별히 소중하게 여겼다.하지만 지금, 난처해하는 고청하를 보고 있자니 천도준은 마음이 아파왔다.말을 마친 천도준은 얼굴에 미소를 띄고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도준아……”고청하는 그를 잡으려고 했다.하지만 고덕화가 그녀를 붙잡았다.“청하야. 아직도 모르겠어?”“아빠…… 아빠는 제가 무엇을 이해하기를 바라세요?”고청하는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청하야, 천도준은 이 도시에서 젊은 인재라고
쿵.그의 한 마디에 방 안의 몇 몇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했다.모두가 돈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이런 소장품에 대해서는 모두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서화 면에서는 정강수처럼 조예가 깊은 사람은 없었다.한 폭의 그림이 거의 50억에 달한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이 선물은 아주 귀한 것이었다.그 말에 천도준도 깜짝 놀랐다. 이수용은 너무 손이 컸었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선물로 50억을 쓰다니?잠시 후, 천도준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아저씨,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분들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50억 정도는 내놓을 수 있습니다.”“어린 나이에 말은 잘하네?”정강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점잖은 그의 얼굴에 흉악한 분노가 일었다. 고청하는 눈을 반짝였다. 천도준의 몸값을 생각했을 때, 50억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녀가 막 뭐라고 해명하려고 할 때, 정강수는 갑자기 냉소를 지으며 천도준에게 말을 걸었다.“방금 잘 못 들었어? 내가 말한 건 3년 전 시가야.”“잘 들었습니다.”천도준은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49억 2천 8백만원. 구체적인 가격을 어떻게 알았냐고?”정강수는 차가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당시 이 그림이 경매에 팔렸을 때, 내가 그 경매 현장에 있었지. 이 그림은 당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한 신비로운 구매자 손에 들어갔어. 게다가 이 그림은 3년 전에 사간 이후로 한 번도 세간에 나타난 적이 없었지. 나이가 많이 어린 것 같은데, 설마 당신이 그때 그 그림을 산 사람이라고 하진 않겠지?”그 말에 고청하는 몸을 움찔했다. 그녀의 두 눈은 순식간에 휘둥그레졌다.3년 전이면 천도준과 오남미가 결혼하던 해다.그때의 천도준이 어떻게 50억 짜리 그림을 살 수 있었을까?‘설마…… 진짜 가짜란 말이야?’순간, 고청하의 눈앞은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그녀의 마음은 순식간에 텅 빈 듯 공허해졌다.고덕화의 표정도 점점 굳어졌다.그는 정강수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국화의 대가이고, 이 방면에
그의 한 마디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덕화의 표정도 순식간에 굳어졌다. 고청하 어머니의 표정도 오싹하기 그지 없었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아저씨, 도준이는 가짜 그림을 선물할 사람이 아니에요.”고청하는 다급히 해명했다.이건 천도준이 그녀의 부모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다. 그녀의 가세로 보아, 고청하의 부모님은 천도준이 준 선물의 가치를 절대 따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물이 가짜라면 그건 의미가 달라진다.이건 가식적이고 무례한 일이 아닌가?“그래, 맞아. 한 번 더 자세히 봐. 함부로 말하지 말고.”유 원장도 고청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는 천도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었다. 천도준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가짜를 구입할 수 있단 말인가? 반드시 정강수가 잘못 본게 틀림없었다.“그래, 아까 그저 얼핏 봤잖아. 네가 잘못본 게 틀림없을 거야.”박씨 어르신이 말했다.“뭐?”정강수는 박씨 어르신을 노려보았다.그는 국화의 대가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그림 한 점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가치가 있었다.그는 수십 년 동안 서화에 빠져있었고 직접 본 서화는 부지기수였다.당백호의 는 정강수가 한 눈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당신……”박씨 어르신은 무의식적으로 천도준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정강수를 향해 말했다. “이 당나귀 같은 놈아. 오늘은 청하가 남자친구를 데리고 인사를 하러 온 날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이 어떻게 가짜 그림을 선물할 수 있겠는가? 무슨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만약 이번 일로 천도준이 대노한다면 천씨 가문의 명령하나 만으로 정강수는 그동안의 명성을 전부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왜 나를 탓하는 거야?”정강수는 매섭게 쏘아붙였다.“난 저 녀석이 여자친구 부모님에게 선물로 가짜 그림을 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야. 보잘것 없는 선물이라도 정은 깊다는 말도 있는데 값비싼 선물을 주지 못해
“걱정하지 마. 이따가 확실하게 단련시켜 줄 테니까.”박씨 어르신은 워낙 권위가 높은 사람인지라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옆에 있던 유 원장과 정강수도 고개를 끄덕였다.“걱정마시게나. 우린 오랜 벗이잖아. 우리를 초대했으니까 우리도 자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걸세.”“도대체 어느 잘난 놈이 청하 마음을 사로잡은 건지 똑똑히 봐둬야겠어.”고덕화는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함께 주먹을 맞잡았다.바로 그때, 고청하는 잔뜩 민망해하는 천도준의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왔다.천도준을 보자마자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동시에 아연실색했다. 그들은 깜짝 놀라 순식간에 동공이 움츠러들었다. ‘저…… 저 사람이 고덕화의 예비 사위라고? 세상에.’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권세도 높고 지위도 높은 사람들이었지만, 천도준을 보자마자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거센 파도가 일었다.이렇게 큰 인물을 감히 누가 누구를 테스트하고, 누가 누구를 단련시킨단 말인가?박씨 어르신은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이율 병원 원장인 유 원장은 천도준의 어머니가 그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그는 천도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장 의사를 통해 천도준에 관한 일을 들은 적이 있었다.“저 사람이 바로 네가 말한, 우리더러 잘 테스트해봐라던 그 사람이야?”유 원장이 말했다.옆에 있던 박씨 어르신은 의아한 표정으로 유 원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유 원장이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사실, 천도준은 방에 들어온 후에도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오늘 밤 고청하의 부모님을 만난 다는 사실도 미처 몰랐었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많은 거물급 인물들이 함께 있을 줄이야.박씨 어르신뿐만 아니라 유 원장도 있었다.그의 어머니가 이율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어머니를 돌봐느라 병원에 자주 들르곤 했다. 그럴 때에 유 원장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오직 그 점잖은 얼굴을 한 사람과만 초면이었다. 하지만 그는 박씨 어르신, 유 원장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 그 또한 만만한 인
죽림 정원.웃음 소리가 본연의 고즈넉함을 깨뜨렸다. 고청하는 의자에 앉아 자신의 아버지와 그의 몇 몇 오랜 벗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봤다.한 쪽의 대원들 외에, 국화의 대가, 의학의 권위자 등등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이 사람들은 국내에서 명성이 자자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위상이 높았다. 이 사람들은 모두 고청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들이었다. 이따가 천도준이 오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자네,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못 본 새에 이율 병원 원장으로 국제적으로 유명하더군.”중년 남자는 활짝 웃으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외국의 의학 잡지에 자네가 자주 등장하더군.”“하하하. 그만 칭찬하게나. 이게 다 검은 머리가 희도록 밤 새서 노력한 결과물이니……”유 원장이 웃으며 말했다.“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걸로 따지면 정강수가 제일 자격이 있지.”그 말에 점잖은 외모에 안경을 쓴 또 다른 중년 남자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국제적으로 유명하다니? 정말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친 건 내가 아니라 고씨 지. 석유 재벌과 실리콘밸리의 가물들과 어울려 놀잖아.”“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이번에 너희를 부른 건, 중요한 일이 있어서야.”“바로 사윗감을 테스트 하는 거지.”박씨 어르신이 진지하게 말했다.이 말에 유 원장과 정강수는 동시에 흥미를 느꼈다. 그들은 앞다투어 고덕화의 예비 사위가 누구인지 물었다.고덕화는 말없이 웃으며 나중에 소개하겠다고 말했다.“생각지도 못했어. 덕화가 이 도시에서 가문을 일으켰는데 사위도 이 도시에서 찾고, 어느 집 재주가 뛰어난 놈이 우리 조카딸을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게 한 거야?”유 원장은 참지 못하고 한 마디했다.“기다려보면 알아.”고덕화는 살짝 웃었다. 그러면서 고청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마침 사람들도 다 모였으니 이 녀석들이 나를 도와 그 녀석이 진짜 합격된 놈인지 아닌지 테스트할거야.”고청하는 두 손을 맞잡
세 개의 분양 아파트 실시간 데이터는 꾸준히 잘 유지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일주일 정도면 이번에 나온 매물들을 다 팔 수 있을 것 같았다.이건 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결과였다.그는 큰 주목을 받지 않는 선에서 가장 빠른 이익화를 실현하려고 했다.오후 5시, 천도준은 마영석에게 오늘 밤 축하연을 마련하라고 했다.하지만 그의 테이블로 배달된 초대장 하나가 그의 계획을 완전히 허사로 만들었다.초대장에 적힌 글자를 보고, 천도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기뻐하면서 조금 놀란 것 같았다.초대장에는 사인회관이라는 장소가 적혀 있었다.사인회관의 초대장이다. 입문 자격을 갖췄다는 뜻이었다.“누가 보낸 거지?”그는 울프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울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젊은 사람이야. 그저 초대장만 건네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어.”천도준은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렸다.이 초대장은 진짜 초대장이 맞았다. 사인회관의 명성이 워낙 강하다보니 아무도 감히 이 초대장을 위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초대장에는 주인의 이름이 빠져있었다.‘혹시 박씨 어르신인가?’천도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의 신분으로 이 초대장을 보낸다면 자신의 이름을 빼먹지 않을 것이다.“축하연은 오늘 너희끼리 해야겠어. 나는 약속 장소로 가봐야 해.”그는 초대장을 흔들며 마영석에게 말을 걸었다.만약 정말 박씨 어르신이 보낸 초대장이라면 상대방의 체면을 구길 수 없었다.간단한 초대장 한 장이라고는 하지만, 주건희, 주준용같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지금 상대방이 직접 그의 손에 가져다줬는데 그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건 멍청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사인회관은 여전히 독특한 신비로움과 장엄함을 자랑했다.작은 뜰.환한 등불이 비추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초대장이 없으면 함부로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진정한 사인회관의 단골손님만이, 전체 사인회관에서 이 대나무 숲의 작은 뜰에 출입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