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발걸음을 멈췄고, 심장이 아려 왔다. 그의 말투에선 슬픔이 느껴졌다… 그녀의 감정이 가라 앉기도 전에 그가 이어서 말했다. “남의 책상을 이렇게 더럽혀 놨으면 치우고 가야죠?” 그녀는 이를 꽉 깨물고 뒤돌아보지 않았다. “됐거든요! 알아서 치우세요!” 사무실 문이 세게 닫히자 경소경은 일부러 지었던 차가운 표정을 풀고 그녀의 온기가 남아있는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그제서야 답답한 마음이 살짝 해소됐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녀를 봤을 때, 그는 환각을 보는 줄 알았다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진짜로 그녀가 온 걸 알았다. 그녀는 그가 헤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잊을 수 없는 여자였기에 막상 만나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안 만나도 마음이 아팠는데, 만났더니 더 마음이 아팠다. 차에 돌아온 진몽요는 자기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진 걸 알았고 휴지를 꺼내서 눈을 닦았지만 눈물은 다시 차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기분을 억제할 수 없었고, 눈물은 더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은 각자의 성격 때문에 헤어지고 나서도 친구가 되거나 평화로운 사이로 지낼 수 없었고, 예전처럼 마주보고 웃을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감히 그가 다른 여자와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회사에 돌아온 후, 임립에게 문서를 줄 때 빨개진 그녀의 눈을 보자 임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소경이가 곤란하게 했어요?” 그녀는 쿨 하게 웃었다. “허허, 그 사람이요? 에이, 난 오늘 그 사람이 어떤 속옷을 입었는지까지 아는 사람인데 날 곤란하게 만들까 봐 쫄았을 거 같아요? 그 성격 모르는 것도 아니고.” 임립은 입술을 삐죽였다. “하여튼… 알겠어요, 가서 일 봐요.” 그녀는 돌아와서 자리에 앉은 후 컴퓨터 앞에서 멍을 때렸다. 머릿속은 온통 경소경의 모습으로 가득 찼고, 아까 그의 냉철한 태도만 머리에 맴돌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는 이랬다. 사귈 때는 서로 둘도 없는 사이지만, 헤어지고 나면 그 끈은 끊겼고 점차 서로에게
안야는 볼이 빨개지며 수줍은 웃음을지었다. “모르는 사람이에요…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인데, 다 같은 계열 사람이라 톡방에서 디자인 관련 얘기도 하고 그래요. 그 사람이 저한테 주는 느낌은 뭔가 기품 있고, 박학다식하고, 저보다 이쪽에서 일도 오래해서 선배나 마찬가지죠. 만나본 적은 없는데 저한테 주는 느낌이 좋아서 외모가 어떻든 상관없어요. 만나자고 약속 잡고 싶었는데 자꾸 시간 없다고 바쁘다고 해서 못 만났어요.” 여기까지 들은 진몽요는 상황을 이해했다. “두 사람은 서로가 누군지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고, 정식으로 사귀는 것도 아니고, 넌 짝사랑은 하는 거야 랜선연애를 하는 거야? 미쳤어? 어디 사람인지는 알아? 이름이 뭔 지는 알아? 나이나 키, 그런 기본적인 건 알아야 되지 않아?” 안야는 어리둥절했다. “몰라요… 그 사람 닉네임이 ‘묵’인 거 빼고는 이름 나이 키 그런 거 하나도 몰라요. 우연히 제도에 있는 거까진 알게 됐는데, 제도 본토 사람인지 까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호감정도만 있지 그 이상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 이상으로 발전하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으니까 말리지마세요.” 재미없는 얘기에 진몽요는 더 흥미를 느끼지 못 했다. “그래, 잘 되길 바랄게. 얼른 네 마음속에 백마탄 왕자님을 찾길 바래. 이제 퇴근까지 1시간도 안 남았으니까 나 좀 잘게. 부장님 오면 깨워줘, 혼나기 싫으니까…” 퇴근 후, 진몽요는 차를 타고 바로 목가네로 향했다. 기분이 안 좋을 땐 맛있는 걸 먹는 게 최고였고, 마침 온연네 식사가 딱 그녀의 입맛을 맞출 수 있었다. 유씨 아주머니와 임집사는 이제 그녀가 밥을 얻어먹으러 오는 게 이상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수저와 젓가락을 준비해주었다. 식탁 위. 온연의 느릿한 동작이 진몽요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너 밥 먹을 때 3일정도 굶은 사람처럼 좀 크게 먹을 수 없어? 그렇게 천천히 씹어 먹으면 맛이 다 빠질 때서야 삼키고, 이건 음식의 대한 모욕이야. 나처럼 크게 많이 먹어야지. 이래야 삼킬 때도 맛이
온연은 더 밝게 웃었다. “걱정 말고 일 해요, 난 괜찮아요. 잘 기다리고 있을게요.” 옆에서 듣고 있던 진몽요는 벙쪘고 이제서야 공짜 밥을 먹는 댓가로 두 사람의 다정한 대화까지 듣고 있어야 한 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목정침씨, 적당히 하시죠. 예전에는 에베레스트 산처럼 차갑더니, 사람이 완전 변했네요. 영혼을 뺏긴 거예요 아니면 이중인격이에요? 진지하게 의심하게 되네요.” 목정침의 목소리는 낮아졌다. “밥이나 먹고 가요.” 진몽요는 눈을 굴렸다. “알겠다, 그냥 연이한테만 잘해주는 거였네요. 그거 인격분열인데, 아이고 무서워라.” 온연은 냅킨으로 손을 닦고 핸드폰을 들어 목정침에게 말했다. “그만해요. 나 밥 먹고 있으니까 일단 끊을게요. 너무 과하게 일 하지 말고 잘 쉬어요.” 통화를 끊고 진몽요는 갑자기 축 쳐진 채 분위기를 바꿨다. “연아… 나 오늘 경소경 만났어.” 온연은 살짝 당황했다. “그래서? 너희…” 진몽요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게 끝이야. 나는 그래도 다시 만나면 어떨지 몇 번이나 상상했었는데, 헤어지고 나니까 진짜 남이라는 게 마음이 아파. 이미 다 잊은 건지 나를 보는 눈빛도 차갑고, 내가 문서에다가 서명 하나만 해달라고 했는데 2시간이나 기다리게 만들었어. 예전에는 나한테 특권도 주고 그랬는데 지금은… 이제 적응해야지. 마음이 아파도 적응되면 괜찮을 거야.” 분위기는 갑자기 조용해졌고 잠시 후 온연이 입을 열었다. “그때 헤어질 때 왜 그렇게 단호했어? 그 사람이 이순이랑 키스한 걸 직접 본 건 맞지만, 그냥 키스였잖아. 해명하겠다고 했는데 넌 기회도 안 줬고. 너가 배신을 싫어하는 건 아는데 넌 그렇게 그 사람을 좋아했으면서, 헤어지자고 하면 넌 그 다음엔 어떻게 견뎌?” 진몽요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어떻게든 버티는 거지. 너 내가 그때 무슨 생각 했는 줄 알아? 내가 싫은 건 그 키스가 아니라, 그 키스 뒤에 숨겨져 있는 사실이 날 더 힘들게 만들었어
그 날, 진몽요가 온연의 옆에 누워 자기전으로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나 그래도 그 사람이 그리워…” 어쩌면 마음에 계속 담아두고 있던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진몽요는 다시 예전처럼 아무 생각없이 털털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경소경한테는 더 미련이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안야와 함께 집을 얻기로 한 일도 안정됐고, 강령은 전폭 지지했다. 딸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고, 집에서 나갈 때 눈도 제대로 못 뜨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기에 사비를 보태서 진몽요에게 투룸의 보증금을 내주었고, 방세는 진몽요와 안야가 반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이사를 한 후, 진몽요는 갑자기 인생이 괜찮아지고 있다고 느꼈고 드디어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회사와 집은 고작 100미터 거리였다. 이사 첫 날, 그녀는 집에서 하루 종일 있었다. 안야는 부지런한 꿀벌이라서,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따듯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로 꾸몄다. 집에 들어가자 마자 온통 핑크빛으로 가득했고, 핑크색 벽지, 핑크색 소파, 핑크색 식탁보, 핑크색 러그, 누가 봐도 여자 집이었다. 예전에 그녀는 핑크색을 좋아하지 않았어서 공주병이라고 안야를 놀렸지만, 실제로 보니까 매우 만족스러웠다!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안야는 소파에 누워 일어나기 싫었다. “사장님 문 좀 열어 주세요. 배달시키셨어요?” 진몽요는 침대에서 내려와 문 앞으로 걸어갔다. “아닌데…” 문을 연 순간 그녀는 숨이 막혀왔다. “어머님…? 어떻게 오셨어요?” 하람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왔고, 뒤에 건장한 남자들이 따라 들어와 큰 냉장고와 침대용품을 내려놨다. 진몽요는 어리둥절하며 “그…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저희 집에 필요한 거 없는데…” 하람은 남자들을 시키면서 대답했다. “사돈이 너 이쪽으로 이사 왔다고 하시는데 내가 걱정돼서 침대용품 몇 개 샀어, 좀 편하게 자라고. 그리고 저 냉장고는, 내가 먹을 거 자주 챙겨올 거라서 편하게 넣어 놓으려고. 너가 소경
진몽요는 속으로 몰래 계산해봤더니 이정도면 거의 한 달치 월급에 가까웠다… 하지만 하람이 사 준 물건들은 이 한 끼 식사보다 훨씬 비싼 것들이었기에 그녀에게 이득이었다. “온연은 언제 출산한데? 임신기간에 나가지도 못 하고 힘들겠다.” 하람이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계산해보면 아마 5,6월 정도 일 거 같아요. 요즘 목정침이 출장 나가 있어서, 매일 영상통화로 감시하고 있더라고요. 엄청 잘 챙겨줘요. 이 아이는 무사히 낳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연이도 마음이 편할텐데. 목정침은 아마 돌아왔을 거예요. 요 며칠 제가 연이 보러 안 갔거든요.” 진몽요는 하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했다. 옆에 있던 안야는 하람과 안 친해서 대화에 끼지 못하고 어색하게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의 시선은 식당 문 앞에 고정되었고, 경소경이 어떤 여자와 함께 걸어 들어오고 있었으며 심지어 여자는 경소경에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확 변했고, 식탁 밑으로 진몽요를 발로 찼다. 진몽요는 안 그래도 별 생각이 없어서 눈비를 채지 못 했다. “왜 발로 차? 다리 길다고 자랑하는 거야?” 안야 “…” 하람은 안야의 이상한 반응에 그녀의 시선을 따라 문 앞을 보았고, 자신의 아들이 다른 여자와 있는 걸 보자 어두운 표정으로 다가갔다. “경소경, 배 채우러 왔어?” 경소경은 여기서 엄마를 마주칠 줄 몰랐고… 진몽요가 있을 줄도 몰랐다… 그는 눈썹을 찌푸렸다. “왜 미리 말 안 하셨어요?” 하람은 샤샤를 노려봤다. “너한테 다른 곳으로 가라고 말 했어야 됐니? 아무나 옆에 끼고 다니고 말이야, 얼른 와서 나랑 밥 먹어!” 샤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 경소경은 샤샤의 팔을 빼며 말했다. “오늘은 곤란하게 됐네요, 먼저 가 봐요.” 샤샤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네…” 진몽요는 이 상황에서도 태연한 척했다. 샤샤의 사진은 A가 보내줘서 이미 본 적이 있었다. 경소경이 하람에 의해 자리에
진몽요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머님, 그냥 저 사람 여자친구랑 같이 있게 두시지 뭐 하러 끌고 오셨어요? 그런데… 그 여자분 엄청 어려 보이던데, 아직 학생인가 봐요?” 경소경은 낮게 말했다. “성인이에요.” 그녀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오? 그래요? 얼굴만 보면 모르겠네요. 요즘 이상형이 바꼈나 봐요? 젊은애들로?” 경소경의 얼굴색은 변했고, 어른 앞에서 함부로 말할 수 없으니 그녀의 놀림을 그저 참았다. 하람은 오픈 마인드여서 진몽요와 함께 그를 놀렸다. “너 눈이 없어? 저 아가씨가 뭐가 예뻐? 말라서 뼈 밖에 없고, 얼굴도 그저 그렇고, 복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고만…” 경소경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네, 이정도 했으면 자리 좀 피해도 되죠? 앉아 계세요, 저는 주방에 좀 가 있게요. 여기서 잔소리 듣는 것보단 낫겠어요…” 그가 일어나자 마자 하람은 혐오하는 표정을 지었다. “좋은 건 못 알아보고, 너랑 헤어지고 나서 오히려 눈이 더 낮아졌어…” 진몽요는 고개를 숙이고 그저 웃었고, 웃음엔 씁쓸함이 보였다. 세 여자가 두려웠는지 경소경은 한참을 나오지 않았고 그가 나왔을 때 요리는 이미 다 나온 상태였다. 진몽요는 그를 보지 않고 밥을 먹었고, 음식을 첫 입 먹자마자 그가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비록 레스토랑 셰프들이 만든 요리들은 다 비슷한 맛이지만, 그가 했던 요리를 많이 먹어본 덕에 그녀는 바로 맛을 알 수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아무도 수다를 떨지 않았고 하람은 계속해서 그녀에게 요리를 집어주었다. 하필 4인석에 하람과 경소경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고, 안야는 옆에 앉았다. 앞에서 경소경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맛있어?” “맛있어요?” 하람과 경소경이 동시에 물었다. 진몽요는 고개를 들고 그들을 보며 “네 맛있어요…” 대답을 하고 그녀는 경소경이 허세를 부릴까 봐 한 마디 더 했다. “근데 아무리 맛있는 것도 계속 먹으면 질리죠.” 말에 함축된 의미를 알아들은 경소경은 표정이
진몽요는 대답하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왜 경소경이 직접 요리까지 하고 맛있냐고 물었는지 이해 되지 않았다… 식당에서 나온 후 경소경은 차에 타서 샤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에요?” 샤샤는 억울함과 기쁨이 섞인 목소리였다. “저… 근처 카페에 있어요. 저… 만나러 오시게요?” 그는 그녀에게 거기 있으라고 전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녀를 데리고 그는 바로 호텔로 향했다. 가는 길에 그녀는 그가 무슨 생각인지 몰랐지만 그의 표정을 보고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차에서 내린 후 경소경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예약한 스위트룸으로 향했고, 들어가자마자 그녀를 벽으로 밀쳤다. 격렬한 키스에 샤샤는 두려웠지만 기쁨이 더 컸다. 지금 경소경의 머릿속엔 진몽요의 말만 맴돌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자신이 질렸다는 건가? 그도 그녀가 아니면 안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더 동작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는 냉담한 표정으로 헝클어진 옷을 정리했다. “다음부터 향수 뿌리지 마요.” 샤샤의 표정은 살짝 굳었고 그가 향수 냄새를 싫어하는 줄 모르고 오늘 일부러 향수를 많이 뿌리고 나왔는데 해가 될 줄은 몰랐다. 그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은 나가버렸고 그녀는 침대 위에 앉아 고민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제는 이 남자한테 돈을 원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늘 그와의 다음 만남을 기대하며 그의 여자가 되길 바랐다. 그녀는 마담언니와 다른 여자들의 생각처럼 제일 특별하고 그의 곁에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는 여자가 되고 싶었다. 둘째 날. 하람은 ‘먹이기’ 방식을 가동했고, 진몽요가 좋아하는 모든 음식을 진몽요의 아파트로 가져다주었다. 고급 식재료부터 과일과 간식까지 냉장고 안에 꽉 찼다. 진몽요는 눈이 커진 채로 보고만 있었고 퇴근후의 피로는 이미 놀라서 사라져버렸다. “어머님…제 생각엔 경소경씨한테 어머님의 보살핌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제 집은 진짜 이 정도까지는 필요 없어요. 이러다가 내후년까지 먹겠는데요?” 하람은
진몽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하람을 배웅했다. 하람이 멀어지자 안야는 감탄했다. “저 분이 하마터면 미래의 시어머니가 될 뻔했네요. 진짜 좋으신 분 같아요. 경소경씨랑 헤어졌는데도 잘 해주시는 걸 보면.” 진몽요는 한숨을 쉬었다. “사실 나는 부담돼. 나는 저 호의를 받을 자격이 없어, 왜냐면 내가 갚을 수 없으니까. 내가 며느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겠지만 이제는… 못 하잖아… 제발 어느 정도 까지만 하셨으면 좋겠어. 계속 이렇게 챙겨 주시면 난 미쳐버릴 거 같아.” 몇 분 후, 하람에게 갑자기 전화가 와서 진몽요는 그녀가 물건을 두고 간 줄 알았다. “네 어머님, 뭐 두고 가셨어요?” 전화 너머 하람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아니… 나 넘어졌어… 허리 다친 거 같은데 발목도 삐어서 못 일어나고 있어… 여기 아파트 엘리베이터 입구…” 진몽요는 머리가 하얘졌고, 신발도 안 갈아 신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하람의 모습에 그녀는 마음이 아팠고, 정말 하람이 말한 것처럼 가볍게 넘어지지 않았다. 오른쪽 발에 신었던 구두는 벗겨졌고 발목이 빨갛게 부어오르는 게 보였다. 그녀는 다가가서 하람을 부축했고, 하람은 아파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되겠어… 허리가 너무 아파… 진짜 나이 들었나 봐, 젊었을 땐 아무리 넘어져도 괜찮았는데 말이야. 차에 기사님 있으니까 불러와줘. 그래도 남자니까 너 혼자 하는 거 보단 나을 거야.” 진몽요는 마음이 급해서 전화는 생각지도 못 한 채, 바로 하람의 차로 뛰어가서 기사를 불러왔다. 두 사람은 하람을 데리고 정형외과로 향했고, 더 심하게 다쳤더라면 그녀는 죄책감에 시달릴 뻔했다. 엑스레이 결과를 기다리면서 하람은 허리를 부여잡으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 대신 액세서리 좀 가지러 가줄 수 있어? 여기엔 기사님만 있어도 충분해.” 진몽요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기사님은 결과지 받으러 가랴 수납하러 가랴 뛰어다니느라 바빴고, 하람의 곁에는 누군가 있어야 했다. 고민하던 그녀는 경소경에게 전화를 걸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