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발걸음을 멈췄고, 심장이 아려 왔다. 그의 말투에선 슬픔이 느껴졌다… 그녀의 감정이 가라 앉기도 전에 그가 이어서 말했다. “남의 책상을 이렇게 더럽혀 놨으면 치우고 가야죠?” 그녀는 이를 꽉 깨물고 뒤돌아보지 않았다. “됐거든요! 알아서 치우세요!” 사무실 문이 세게 닫히자 경소경은 일부러 지었던 차가운 표정을 풀고 그녀의 온기가 남아있는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그제서야 답답한 마음이 살짝 해소됐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녀를 봤을 때, 그는 환각을 보는 줄 알았다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진짜로 그녀가 온 걸 알았다. 그녀는 그가 헤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잊을 수 없는 여자였기에 막상 만나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안 만나도 마음이 아팠는데, 만났더니 더 마음이 아팠다. 차에 돌아온 진몽요는 자기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진 걸 알았고 휴지를 꺼내서 눈을 닦았지만 눈물은 다시 차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기분을 억제할 수 없었고, 눈물은 더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은 각자의 성격 때문에 헤어지고 나서도 친구가 되거나 평화로운 사이로 지낼 수 없었고, 예전처럼 마주보고 웃을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감히 그가 다른 여자와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회사에 돌아온 후, 임립에게 문서를 줄 때 빨개진 그녀의 눈을 보자 임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소경이가 곤란하게 했어요?” 그녀는 쿨 하게 웃었다. “허허, 그 사람이요? 에이, 난 오늘 그 사람이 어떤 속옷을 입었는지까지 아는 사람인데 날 곤란하게 만들까 봐 쫄았을 거 같아요? 그 성격 모르는 것도 아니고.” 임립은 입술을 삐죽였다. “하여튼… 알겠어요, 가서 일 봐요.” 그녀는 돌아와서 자리에 앉은 후 컴퓨터 앞에서 멍을 때렸다. 머릿속은 온통 경소경의 모습으로 가득 찼고, 아까 그의 냉철한 태도만 머리에 맴돌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는 이랬다. 사귈 때는 서로 둘도 없는 사이지만, 헤어지고 나면 그 끈은 끊겼고 점차 서로에게
안야는 볼이 빨개지며 수줍은 웃음을지었다. “모르는 사람이에요…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인데, 다 같은 계열 사람이라 톡방에서 디자인 관련 얘기도 하고 그래요. 그 사람이 저한테 주는 느낌은 뭔가 기품 있고, 박학다식하고, 저보다 이쪽에서 일도 오래해서 선배나 마찬가지죠. 만나본 적은 없는데 저한테 주는 느낌이 좋아서 외모가 어떻든 상관없어요. 만나자고 약속 잡고 싶었는데 자꾸 시간 없다고 바쁘다고 해서 못 만났어요.” 여기까지 들은 진몽요는 상황을 이해했다. “두 사람은 서로가 누군지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고, 정식으로 사귀는 것도 아니고, 넌 짝사랑은 하는 거야 랜선연애를 하는 거야? 미쳤어? 어디 사람인지는 알아? 이름이 뭔 지는 알아? 나이나 키, 그런 기본적인 건 알아야 되지 않아?” 안야는 어리둥절했다. “몰라요… 그 사람 닉네임이 ‘묵’인 거 빼고는 이름 나이 키 그런 거 하나도 몰라요. 우연히 제도에 있는 거까진 알게 됐는데, 제도 본토 사람인지 까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호감정도만 있지 그 이상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 이상으로 발전하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으니까 말리지마세요.” 재미없는 얘기에 진몽요는 더 흥미를 느끼지 못 했다. “그래, 잘 되길 바랄게. 얼른 네 마음속에 백마탄 왕자님을 찾길 바래. 이제 퇴근까지 1시간도 안 남았으니까 나 좀 잘게. 부장님 오면 깨워줘, 혼나기 싫으니까…” 퇴근 후, 진몽요는 차를 타고 바로 목가네로 향했다. 기분이 안 좋을 땐 맛있는 걸 먹는 게 최고였고, 마침 온연네 식사가 딱 그녀의 입맛을 맞출 수 있었다. 유씨 아주머니와 임집사는 이제 그녀가 밥을 얻어먹으러 오는 게 이상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수저와 젓가락을 준비해주었다. 식탁 위. 온연의 느릿한 동작이 진몽요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너 밥 먹을 때 3일정도 굶은 사람처럼 좀 크게 먹을 수 없어? 그렇게 천천히 씹어 먹으면 맛이 다 빠질 때서야 삼키고, 이건 음식의 대한 모욕이야. 나처럼 크게 많이 먹어야지. 이래야 삼킬 때도 맛이
온연은 더 밝게 웃었다. “걱정 말고 일 해요, 난 괜찮아요. 잘 기다리고 있을게요.” 옆에서 듣고 있던 진몽요는 벙쪘고 이제서야 공짜 밥을 먹는 댓가로 두 사람의 다정한 대화까지 듣고 있어야 한 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목정침씨, 적당히 하시죠. 예전에는 에베레스트 산처럼 차갑더니, 사람이 완전 변했네요. 영혼을 뺏긴 거예요 아니면 이중인격이에요? 진지하게 의심하게 되네요.” 목정침의 목소리는 낮아졌다. “밥이나 먹고 가요.” 진몽요는 눈을 굴렸다. “알겠다, 그냥 연이한테만 잘해주는 거였네요. 그거 인격분열인데, 아이고 무서워라.” 온연은 냅킨으로 손을 닦고 핸드폰을 들어 목정침에게 말했다. “그만해요. 나 밥 먹고 있으니까 일단 끊을게요. 너무 과하게 일 하지 말고 잘 쉬어요.” 통화를 끊고 진몽요는 갑자기 축 쳐진 채 분위기를 바꿨다. “연아… 나 오늘 경소경 만났어.” 온연은 살짝 당황했다. “그래서? 너희…” 진몽요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게 끝이야. 나는 그래도 다시 만나면 어떨지 몇 번이나 상상했었는데, 헤어지고 나니까 진짜 남이라는 게 마음이 아파. 이미 다 잊은 건지 나를 보는 눈빛도 차갑고, 내가 문서에다가 서명 하나만 해달라고 했는데 2시간이나 기다리게 만들었어. 예전에는 나한테 특권도 주고 그랬는데 지금은… 이제 적응해야지. 마음이 아파도 적응되면 괜찮을 거야.” 분위기는 갑자기 조용해졌고 잠시 후 온연이 입을 열었다. “그때 헤어질 때 왜 그렇게 단호했어? 그 사람이 이순이랑 키스한 걸 직접 본 건 맞지만, 그냥 키스였잖아. 해명하겠다고 했는데 넌 기회도 안 줬고. 너가 배신을 싫어하는 건 아는데 넌 그렇게 그 사람을 좋아했으면서, 헤어지자고 하면 넌 그 다음엔 어떻게 견뎌?” 진몽요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어떻게든 버티는 거지. 너 내가 그때 무슨 생각 했는 줄 알아? 내가 싫은 건 그 키스가 아니라, 그 키스 뒤에 숨겨져 있는 사실이 날 더 힘들게 만들었어
그 날, 진몽요가 온연의 옆에 누워 자기전으로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나 그래도 그 사람이 그리워…” 어쩌면 마음에 계속 담아두고 있던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진몽요는 다시 예전처럼 아무 생각없이 털털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경소경한테는 더 미련이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안야와 함께 집을 얻기로 한 일도 안정됐고, 강령은 전폭 지지했다. 딸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고, 집에서 나갈 때 눈도 제대로 못 뜨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기에 사비를 보태서 진몽요에게 투룸의 보증금을 내주었고, 방세는 진몽요와 안야가 반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이사를 한 후, 진몽요는 갑자기 인생이 괜찮아지고 있다고 느꼈고 드디어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회사와 집은 고작 100미터 거리였다. 이사 첫 날, 그녀는 집에서 하루 종일 있었다. 안야는 부지런한 꿀벌이라서,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따듯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로 꾸몄다. 집에 들어가자 마자 온통 핑크빛으로 가득했고, 핑크색 벽지, 핑크색 소파, 핑크색 식탁보, 핑크색 러그, 누가 봐도 여자 집이었다. 예전에 그녀는 핑크색을 좋아하지 않았어서 공주병이라고 안야를 놀렸지만, 실제로 보니까 매우 만족스러웠다!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안야는 소파에 누워 일어나기 싫었다. “사장님 문 좀 열어 주세요. 배달시키셨어요?” 진몽요는 침대에서 내려와 문 앞으로 걸어갔다. “아닌데…” 문을 연 순간 그녀는 숨이 막혀왔다. “어머님…? 어떻게 오셨어요?” 하람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왔고, 뒤에 건장한 남자들이 따라 들어와 큰 냉장고와 침대용품을 내려놨다. 진몽요는 어리둥절하며 “그…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저희 집에 필요한 거 없는데…” 하람은 남자들을 시키면서 대답했다. “사돈이 너 이쪽으로 이사 왔다고 하시는데 내가 걱정돼서 침대용품 몇 개 샀어, 좀 편하게 자라고. 그리고 저 냉장고는, 내가 먹을 거 자주 챙겨올 거라서 편하게 넣어 놓으려고. 너가 소경
진몽요는 속으로 몰래 계산해봤더니 이정도면 거의 한 달치 월급에 가까웠다… 하지만 하람이 사 준 물건들은 이 한 끼 식사보다 훨씬 비싼 것들이었기에 그녀에게 이득이었다. “온연은 언제 출산한데? 임신기간에 나가지도 못 하고 힘들겠다.” 하람이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계산해보면 아마 5,6월 정도 일 거 같아요. 요즘 목정침이 출장 나가 있어서, 매일 영상통화로 감시하고 있더라고요. 엄청 잘 챙겨줘요. 이 아이는 무사히 낳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연이도 마음이 편할텐데. 목정침은 아마 돌아왔을 거예요. 요 며칠 제가 연이 보러 안 갔거든요.” 진몽요는 하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했다. 옆에 있던 안야는 하람과 안 친해서 대화에 끼지 못하고 어색하게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의 시선은 식당 문 앞에 고정되었고, 경소경이 어떤 여자와 함께 걸어 들어오고 있었으며 심지어 여자는 경소경에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확 변했고, 식탁 밑으로 진몽요를 발로 찼다. 진몽요는 안 그래도 별 생각이 없어서 눈비를 채지 못 했다. “왜 발로 차? 다리 길다고 자랑하는 거야?” 안야 “…” 하람은 안야의 이상한 반응에 그녀의 시선을 따라 문 앞을 보았고, 자신의 아들이 다른 여자와 있는 걸 보자 어두운 표정으로 다가갔다. “경소경, 배 채우러 왔어?” 경소경은 여기서 엄마를 마주칠 줄 몰랐고… 진몽요가 있을 줄도 몰랐다… 그는 눈썹을 찌푸렸다. “왜 미리 말 안 하셨어요?” 하람은 샤샤를 노려봤다. “너한테 다른 곳으로 가라고 말 했어야 됐니? 아무나 옆에 끼고 다니고 말이야, 얼른 와서 나랑 밥 먹어!” 샤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 경소경은 샤샤의 팔을 빼며 말했다. “오늘은 곤란하게 됐네요, 먼저 가 봐요.” 샤샤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네…” 진몽요는 이 상황에서도 태연한 척했다. 샤샤의 사진은 A가 보내줘서 이미 본 적이 있었다. 경소경이 하람에 의해 자리에
진몽요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머님, 그냥 저 사람 여자친구랑 같이 있게 두시지 뭐 하러 끌고 오셨어요? 그런데… 그 여자분 엄청 어려 보이던데, 아직 학생인가 봐요?” 경소경은 낮게 말했다. “성인이에요.” 그녀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오? 그래요? 얼굴만 보면 모르겠네요. 요즘 이상형이 바꼈나 봐요? 젊은애들로?” 경소경의 얼굴색은 변했고, 어른 앞에서 함부로 말할 수 없으니 그녀의 놀림을 그저 참았다. 하람은 오픈 마인드여서 진몽요와 함께 그를 놀렸다. “너 눈이 없어? 저 아가씨가 뭐가 예뻐? 말라서 뼈 밖에 없고, 얼굴도 그저 그렇고, 복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고만…” 경소경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네, 이정도 했으면 자리 좀 피해도 되죠? 앉아 계세요, 저는 주방에 좀 가 있게요. 여기서 잔소리 듣는 것보단 낫겠어요…” 그가 일어나자 마자 하람은 혐오하는 표정을 지었다. “좋은 건 못 알아보고, 너랑 헤어지고 나서 오히려 눈이 더 낮아졌어…” 진몽요는 고개를 숙이고 그저 웃었고, 웃음엔 씁쓸함이 보였다. 세 여자가 두려웠는지 경소경은 한참을 나오지 않았고 그가 나왔을 때 요리는 이미 다 나온 상태였다. 진몽요는 그를 보지 않고 밥을 먹었고, 음식을 첫 입 먹자마자 그가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비록 레스토랑 셰프들이 만든 요리들은 다 비슷한 맛이지만, 그가 했던 요리를 많이 먹어본 덕에 그녀는 바로 맛을 알 수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아무도 수다를 떨지 않았고 하람은 계속해서 그녀에게 요리를 집어주었다. 하필 4인석에 하람과 경소경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고, 안야는 옆에 앉았다. 앞에서 경소경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맛있어?” “맛있어요?” 하람과 경소경이 동시에 물었다. 진몽요는 고개를 들고 그들을 보며 “네 맛있어요…” 대답을 하고 그녀는 경소경이 허세를 부릴까 봐 한 마디 더 했다. “근데 아무리 맛있는 것도 계속 먹으면 질리죠.” 말에 함축된 의미를 알아들은 경소경은 표정이
진몽요는 대답하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왜 경소경이 직접 요리까지 하고 맛있냐고 물었는지 이해 되지 않았다… 식당에서 나온 후 경소경은 차에 타서 샤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에요?” 샤샤는 억울함과 기쁨이 섞인 목소리였다. “저… 근처 카페에 있어요. 저… 만나러 오시게요?” 그는 그녀에게 거기 있으라고 전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녀를 데리고 그는 바로 호텔로 향했다. 가는 길에 그녀는 그가 무슨 생각인지 몰랐지만 그의 표정을 보고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차에서 내린 후 경소경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예약한 스위트룸으로 향했고, 들어가자마자 그녀를 벽으로 밀쳤다. 격렬한 키스에 샤샤는 두려웠지만 기쁨이 더 컸다. 지금 경소경의 머릿속엔 진몽요의 말만 맴돌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자신이 질렸다는 건가? 그도 그녀가 아니면 안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더 동작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는 냉담한 표정으로 헝클어진 옷을 정리했다. “다음부터 향수 뿌리지 마요.” 샤샤의 표정은 살짝 굳었고 그가 향수 냄새를 싫어하는 줄 모르고 오늘 일부러 향수를 많이 뿌리고 나왔는데 해가 될 줄은 몰랐다. 그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은 나가버렸고 그녀는 침대 위에 앉아 고민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제는 이 남자한테 돈을 원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늘 그와의 다음 만남을 기대하며 그의 여자가 되길 바랐다. 그녀는 마담언니와 다른 여자들의 생각처럼 제일 특별하고 그의 곁에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는 여자가 되고 싶었다. 둘째 날. 하람은 ‘먹이기’ 방식을 가동했고, 진몽요가 좋아하는 모든 음식을 진몽요의 아파트로 가져다주었다. 고급 식재료부터 과일과 간식까지 냉장고 안에 꽉 찼다. 진몽요는 눈이 커진 채로 보고만 있었고 퇴근후의 피로는 이미 놀라서 사라져버렸다. “어머님…제 생각엔 경소경씨한테 어머님의 보살핌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제 집은 진짜 이 정도까지는 필요 없어요. 이러다가 내후년까지 먹겠는데요?” 하람은
진몽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하람을 배웅했다. 하람이 멀어지자 안야는 감탄했다. “저 분이 하마터면 미래의 시어머니가 될 뻔했네요. 진짜 좋으신 분 같아요. 경소경씨랑 헤어졌는데도 잘 해주시는 걸 보면.” 진몽요는 한숨을 쉬었다. “사실 나는 부담돼. 나는 저 호의를 받을 자격이 없어, 왜냐면 내가 갚을 수 없으니까. 내가 며느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겠지만 이제는… 못 하잖아… 제발 어느 정도 까지만 하셨으면 좋겠어. 계속 이렇게 챙겨 주시면 난 미쳐버릴 거 같아.” 몇 분 후, 하람에게 갑자기 전화가 와서 진몽요는 그녀가 물건을 두고 간 줄 알았다. “네 어머님, 뭐 두고 가셨어요?” 전화 너머 하람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아니… 나 넘어졌어… 허리 다친 거 같은데 발목도 삐어서 못 일어나고 있어… 여기 아파트 엘리베이터 입구…” 진몽요는 머리가 하얘졌고, 신발도 안 갈아 신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하람의 모습에 그녀는 마음이 아팠고, 정말 하람이 말한 것처럼 가볍게 넘어지지 않았다. 오른쪽 발에 신었던 구두는 벗겨졌고 발목이 빨갛게 부어오르는 게 보였다. 그녀는 다가가서 하람을 부축했고, 하람은 아파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되겠어… 허리가 너무 아파… 진짜 나이 들었나 봐, 젊었을 땐 아무리 넘어져도 괜찮았는데 말이야. 차에 기사님 있으니까 불러와줘. 그래도 남자니까 너 혼자 하는 거 보단 나을 거야.” 진몽요는 마음이 급해서 전화는 생각지도 못 한 채, 바로 하람의 차로 뛰어가서 기사를 불러왔다. 두 사람은 하람을 데리고 정형외과로 향했고, 더 심하게 다쳤더라면 그녀는 죄책감에 시달릴 뻔했다. 엑스레이 결과를 기다리면서 하람은 허리를 부여잡으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 대신 액세서리 좀 가지러 가줄 수 있어? 여기엔 기사님만 있어도 충분해.” 진몽요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기사님은 결과지 받으러 가랴 수납하러 가랴 뛰어다니느라 바빴고, 하람의 곁에는 누군가 있어야 했다. 고민하던 그녀는 경소경에게 전화를 걸었고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