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몽요는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는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그림자를 발견했다. 바로 백루루라는 그 여자였다. 그 29살의 해외에서 화가로 활동했던 여자가 회사까지 찾아온 것이다! A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몽요씨… 진정해요… 저 사람 회사까지 찾아왔는데, 대표님이 해명이라도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너무하잖아요…” 진몽요는 인내심이 없는 성격이라 지금까지 참은 것도 대단했다. 만약 이 여자가 오늘 회사에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상황을 두고 봤을테지만 이렇게 직접 찾아왔으니 그녀는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따라 나갔고, A는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그녀를 따라갔다. 1층 로비 휴게실, 멀리서 경소경이 그 여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진몽요는 깊게 숨을 들이 마시고선 앞으로 다가가 미소를 지었다. “경소경씨, 급하게 나오더니 데이트하러 온 거예요?” 그녀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지만 경소경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 표정이 굳었다. “왜 여기까지 따라왔어요? 헛소리 말고 올라가서 일 해요.” 그녀는 경소경의 말을 무시하고 백루루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이 사람 약혼녀예요.” 백루루는 저번에 몰에서 산 그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그 원피스는 여자를 더 우아해 보이 게 만들었다. 백루루는 웃으며 진몽요의 손을 잡았다. “안녕하세요, 백루루예요.” 진몽요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알아요.” 맞다, 그녀는 여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이제 더 모른 척했다간 이 사람은 그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갈 것 같았다. A는 소심해서 그녀의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 그냥 가죠…?” 그녀는 백루루의 손을 놓았다. “그냥 무슨 일인가 해서 나와 봤어요. 아무 일도 없으니까 올라가 볼게요. 두 분 얘기 잘 하세요.” 그녀는 웃음을 거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올라갔다. 그녀는 경소경이 백루루와 무슨 대화를 할지 궁금하지 않았고, 그저 경소경의 해명만 기다릴 뿐이었다. 10분도 안 돼
말을 하고 그녀는 바로 뒤돌아 나갔다. 이번에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그 눈물은 이미 집에서 혼자 기다린 날부터 말랐다. “내 애인이 아니라 우리 아빠랑 만났던 사람이에요!” 진몽요는 바로 발걸음을 멈췄고, 한 방 먹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어서 경소경을 돌아봤고,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신의 아빠에게 떠넘기는 건 너무 비도덕적인 행동이었다. 아빠한테 뒤집어 씌우는 건 비현실 적이었기에…. 그의 말은 진짜이지 않을까? 그녀는 믿었지만 의심했다. “아버님이랑 만났었다고요? 그런데 왜 당신 옆에 붙어있죠? 왜 맨날 호텔에 가서 저 여자를 찾냐고요? 5성급호텔에서 주는 조식 안 먹고, 맨날 당신한테 사다 달라고 하면 당신은 그걸 또 사다주고. 그 날 두 사람 쇼핑하는 거 내가 다 봤어요. 오늘 저 원피스 그 날 산 거잖아요. 그리고 탈의실 앞에서… 혹시 몰라요 둘이 키스하고 있었을지?” 경소경은 이 얘기를 하고싶지 않았다. 그 날 탈의실에서 백루루를 문으로 밀친 이유는 키스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때리고 싶은 데 참았던 것이었다. 그 여자가 제일 잘 하는 건 온화한 미소를 무기로 쓰는 것이었다. “몽요씨… 이 일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아요. 너무 역겨워요! 내가 이 여자 처리하기 전까지 우리 엄마가 절대 알아선 안돼요.” 진몽요는 아직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다 알았는데, 지금 나한테 장난쳐요? 예전에 일할 때 빼고는 나랑 쭉 같이 있었는데, 이젠 백루루랑만 있잖아요. 이건 해명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버님이 사귄 여자를 왜 당신이 처리해요? 이 일이 우리 사이의 신뢰와 감정에 큰 타격을 줬어요, 그래서 난 알아야겠어요! 당신이 말 안 하면 내가 아버님한테 가서 물을 거예요!” 그녀는 이런 식으로 협박하면 그가 완전히 털어놓을 것을 알았다. 그녀는 미치기 직전이었는데, 그는 아직도 숨길 생각뿐이었다. 경소경은 허탈하게 의자에 앉았다. “그래요, 어차피 이미 다 알았는데, 역겨워도… 그냥 다 알려줄게
경소경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당신이랑 나랑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거 같아서, 당신이랑 얘기해봤자 소용없을 거 같아요. 내가 이걸 알려주는 건 당신이 마음대로 생각할까 봐 그런 거예요. 이제 가서 일 봐요. 내가 해결할 거예요. 이 일 신경 쓰지 말아요, 내가 역겨운 거 당신한테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진몽요는 그를 노려봤다. “맞아요, 나 바보예요. 당신 혼자 역겨운 거 많이 느끼세요. 난 뭐 안 역겨웠는 줄 알아요? 내 남자 돈을 다른 여자가 막 쓴 다는 생각만 해도 역겨워요. 백루루가 내 딸이었으면 차라리 마음 편했겠죠.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건 당연한 도리니까요. 됐고, 난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까 똑똑한 당신이 해결해요. 대신 빨리요. 다시 내 기분 망치면, 그 여자 내가 죽일 거예요!” 주말에 진몽요는 경가네 공관에 가자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백루루가 나타났으니 경소경이 경성욱을 죽일 수도 있었고, 그녀는 막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 싫었다. 그녀는 아무런 핑계를 대고 온연네 집에 갔다. 그리고 몰래 서재로 들어가 목정침에게 물었다. “백루루 알아요?” 목정침은 그녀가 몰래 들어오자 눈썹을 찌푸렸다. “들어는 봤는데, 예술계 쪽에서 나름 알려진 이름이에요. 나도 그림은 배웠어서. 이건 왜 물어봐요?” 그가 아직 상황을 모르는 것 같아 진몽요는 더 묻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경소경을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까 경소경은 체면 때문에 그런 부끄러운 일을 제일 친한 형제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갑자기, 노부인이 들어왔다. “둘이 뭐해?” 진몽요는 당황해서 “뭐 안 했어요. 제가 손녀사위랑 얘기 좀 하는 것도 싫으세요? 불법도 아닌데?” 노부인은 분명 온연을 감싸고 있었다. “넌 온연 친구잖아, 이러면 안되지. 얘기할 게 뭐가 있어? 나가 나가, 정침이 일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진몽요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할머니, 설마 제가 저 사람한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희
온연은 설명했다. “할머니… 몽요는 약혼자가 있어요, 게다가 목정침의 제일 친한 친구예요. 그리고 몽요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 말은 삼가주세요. 아마 저희가 어떤 사이인지 잘 모르셔서 그러실 수 있는데, 몽요랑 저는 목숨까지 지켜준 사이에요. 걔가 없었으면 오늘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노부인의 생각은 그래도 변하지 않았다. “사람은 알아도 그 내면은 모르는 거야. 네 남자랑 단둘이 있는 거 자체가 잘못된 거지!” 온연은 노부인과 대화가 통하지 않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네네네. 얼른 정원에 나가셔서 바람 좀 쐬세요, 차도 한 잔 하시고. 그런 일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다가 몽요가 앞으로 무서워서 여기 못 오겠어요.” ...... 진몽요는 목가네에서 나온 뒤 안야와 A를 데리고 쇼핑을 가기로 했다. 지금은 온연이 외출할 수 없었지만, 나올 수 있었더라면 더 즐거웠을 것이다. 어차피 A는 이미 그녀의 신분을 알았으니 그녀도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 쇼핑몰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미친듯이 샀다. 또 다른 여자가 자신의 남자의 돈을 쓴다고 생각하니 상당히 불쾌해서, 그 사람이 다 쓸 바엔 자신이 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에 세 사람의 손은 가득차 있었고, 모두 진몽요가 구매한 물건들이었다. 안야는 무의식중에 진몽요의 핸드폰에 뜬 거래내역을 보자 놀라서 표정이 굳었다. “이렇게 많은데 이제 그만 사세요! 더 사다가 집 한 채 값 나오겠어요!” 진몽요의 기분은 아직도 통쾌하지 않았다. “걱정 마, 이 정도 돈은 제도에서 계약금도 안되, 얼마 안되는 돈이라고. 내가 기분이 안 좋은데 돈 좀 쓰면 안되나? 안야, 너 아직도 임립네 회사에서 출근하고 있지? 요즘은 무슨 일 없었어?” 안야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립님이 회사 사람들한테 인사를 시켜서 아무도 이제 저 못 괴롭혀요. 그리고 저한테 디자인 알려줄 사람도 따로 구해주셨어요.” 진몽요는 그 일만 생각하면 화가 났다. “앞으로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 너 손에
들어가자마자 A는 창가에 앉아 있는 백루루와 경소경을 보고 얼굴이 굳어버렸다. “사장님, 우리 그냥 다른데 가요.” 진몽요는 백루루를 흘깃 보고서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잡았다. “가긴 어딜 가? 내가 이렇게 멀쩡한데. 쟤네는 쟤네 밥 먹고, 우리는 우리 거 먹으면 돼. 괜찮아.” 안야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저 여자 누구에요?” 진몽요는 이를 꽉 깨물고 백루루를 노려보며 욕을 뱉었다. “저 불여시 같은 년! 저렇게 뻔뻔한사람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봐! 그냥 무시해.” A는 감탄했다. “이 상황에서도 밥이 넘어 가다니, 진짜 대단해요. 말이 나와서 묻는건데… 진짜 어색하지 않아요?” 진몽요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저 뻔뻔한 년도 안 어색한데, 내가 어색하게 느낄 게 뭐가 있어요?” 백루루는 진몽요의 불쾌한 눈빛을 받자 경소경에게 미소를 띄며 물었다. “그쪽 약혼녀 나한테 불만이 많은 가봐요.” 경소경은 담담하게 말했다. “저 사람 말고, 나도 당신한테 불만 있어요. 앞으로 돈 필요하면 바로 말해요. 난 당신이랑 있어 줄 시간 없어요. 내 시간 낭비할 자격도 없고요.” 백루루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늘 온화해보였다. “혼자 밥 먹으면 얼마나 지루해요. 난 혼자 있는 게 제일 싫어요. 나랑 같이 안 있어줘도 돼요. 그럼 앞으로 나 신경 안 써도 될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 경소경은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가 아이를 찾아서, 아이의 신분만 확인한다면 그녀를 맞춰주지 않아도 됐었다. 잠시 후, 백루루는 화장실에 갔고, 진몽요도 일어나 따라갔다. 화장실에서 마주치자 백루루는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고치고 있었다. “여기서 다 만나네요, 아가씨.” 진몽요는 차갑게 웃었다. “여기서 다 만나다니요? 그쪽이 제 남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마주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맛 괜찮죠? 밥이 넘어가죠? 뱉어낼 때 얼마나 힘들지 아직 모르시나 보네.” 백루루는 동작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봤다. “이미 먹
진몽요는 화병나서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백루루는 너무 고단수라서 그녀가 상대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렇게 뻔뻔하게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은 또 처음 봤고, 경소경이 여자를 그렇게 많이 만났는데도 왜 이 여자를 가지고 쩔쩔매는지 알 수 있었다. 너무 무서운 사람이다! 화장실에서 나온 백루루는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았다. “아까 약혼녀랑 얘기 좀 했어요. 나한테 화가 많이 난 거 같던데 오늘은 이쯤에서 놓아줄게요. 가서 같이 있어줘요.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볼게요.” 경소경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 여자를 보고서 망설이지 않고 진몽요의 테이블로 걸어왔다. 진몽요는 너무 화가 나서 온 몸이 떨리고 있었다. “저 망할년이 별장까지 원한다니, 내가 아주 그냥 거기에 묘지를 만들어 주겠어!” A와 안야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경소경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공관에 잠깐 다녀 올게요.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그가 다녀온다는 말에 진몽요는 황급히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당신… 진정해요. 섣불리 행동하지 말고 좀 참아요. 알겠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식당을 나갔다. 진몽요는 불안해졌다. 그녀는 경소경이 공관에 가서 어떻게 할지 감이 오지 않았고, 하람이 이 일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했다. 아마 엄청 화가 날 것이다. 비록 하람과 경성욱은 20년 넘게 별거했지만, 결국엔 이혼하지 않았고 지금은 화해를 한 상태다. 그럼 백루루와는 혼인중에 바람을 핀 것인데… 그 장면을 상상하자 그녀는 감히 따라갈 수 없었다. 이건 경가네 일이고, 그녀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으니 경성욱은 어쨌든 그녀 앞에서 무안할 것이다. ...... 경가네 공관. 경소경은 오자마자 바로 서재로 올라갔다. 하람이 밥을 먹고 낮잠자는 습관이 있는 걸 그는 알고 있어서 일부러 이 시간에 찾아왔다. 경성욱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그를 보자 미완성한 그림은 내려놨다. “소경아, 갑자기 무슨 일로 왔어? 몽요는?” 경소경은 두
“그래서, 진짜 그 여자랑 그런 사이여서 애까지 낳으셨어요?” 경소경은 거의 이를 꽉 깨물며 물었다. “뭐? 애가 있어? 그럴리가 없는데?” 경성욱의 표정은 신호등처럼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자기가 한 더러운 일도 모르세요? 그런데도 뻔뻔하게 돌아오다니, 그냥 차라리 외국에서 죽지 그러셨어요! 이 일 만약에 엄마가 알게 되면 두고 보세요!” 경소경은 소리를 친 뒤, 분노에 찬 모습으로 경가네 공관을 떠났다. 그는 이 일을 신경 쓰기 싫었고, 경성욱이 알아서 하겠다고 하니 그는 오히려 편했다. 경소경의 차가 나가는 소리를 듣고 경성욱은 허탈하게 의자에 앉았다. 잠시 고민하더니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백루루씨 연락처 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저녁 8시. 경성욱은 백루루와 양식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옛 사람을 오랜만에 보는 자리였지만 이미 그때의 느낌은 사라졌다. 백루루는 이제 당시에 경성욱이 가르치던 순수한 학생이 아니었다. 경성욱은 장소에 맞게 정장을 입었고, 전혀 반백 살 같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묵직하고 성숙한 중년남성의 느낌이 강했다. 자리에 앉자 백루루는 자연스럽게 주문을 했고, 경성욱것도 같이 주문했다. 그녀는 전혀 경성욱과 오랜만에 보는 것 같지 않았다. “경선생님, 여전히 잘 생기셨네요, 전혀 나이 들어 보이지 않으세요. 선생님 입맛은 안 바뀌셨으면 제가 잘 알아서… 제가 주문해도 괜찮죠?” 경성욱은 백루루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서 무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 입맛은 그대로라서. 내가 너랑 약속을 잡은 건 용건이 있어서야, 너도 알잖아. 밥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돌려 말하는 거 난 질색이야.” 백루루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하하… 경선생님, 이제 정말 가정으로 돌아가셨나 봐요. 저한테 이렇게 냉정하게 대하시고. 좀 섭섭하네요.” 경성욱은 참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만약 그가 교양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이미 앉아있지 못 했을 것이다. “백루루, 너랑 추억팔이 하려고 온 거 아니야!
그가 먹은 건 술이 아니었고, 술이라고 하더라도 한잔을 마시고 쓰러지는 건 불가능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다들 속으로 알고 있었고, 백루루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제가 이런 수단을 쓰지 않으면 어떻게 선생님이랑 만날 수 있겠어요? 늘 미지근한 태도에, 제가 이렇게 오랜 시간을 투자했는데 이젠 힘들어요. 결혼하셨든 말든 상관없어요. 어차피 그 결혼도 명예 때문이잖아요. 전 그런 거까진 필요 없어요.” 경성욱은 자신이 쓰러진 상태에서 절대로 백루루한테 아무짓도 안 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더욱 태연했다. “자중해.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어. 넌 아직 젊으니까 괜히 벌써부터 이름 더럽히지 마.” 백루루는 말없이 웃었다. 그 다음에,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자 백루루는 시스루 잠옷을 입고 방문을 열었고 문 밖에는 제자들이 서 있었다. 그 순간 경성욱은 자신이 이 여자손에 놀아났다는 걸 알았다. 그 날 이후로, 그는 그 도시를 떠났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백루루도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고, 찾지도 못 했고 찾을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재회한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처음부터 목적을 숨기지 않고 다가오는 여자한테 어떤 남자도 쉽게 그 함정에 빠지진 않겠지만, 한번 잘못 걸리면 벗어나기 쉽지 않다. 경성욱은 그 도리를 알았고, 정말 아무 일도 없었지만 백루루가 마음만 먹으면 과거에 그 바닥에서 돌던 소문이 가짜였어도 진짜가 될 수 있다. “나한테 바라는 게 뭐야?” 그는 이를 꽉 물며 물었다. 백루루를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아랑곳하지 않은 모습으로 말했다. “나랑… 우리의 아이를 키워주세요. 내가 원하는 거 다 주시고, 우리의 평화로운 관계를 약속해주세요. 경선생님, 제가 몇 년 동안 선생님을 얼마나 열심히 찾았는데요. 이렇게 어렵게 만났는데, 쉽게 도망가게 할 순 없죠…” 경성욱은 분해서 가슴이 절여왔다. “어디서 애가 생겼어? 절대 내 아이일리가 없어!” 백루루는 천천히 잔 안에 든 와인을 흔들며 “선생님 아이든 아니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