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몽요는 가게에서 싸우고 싶지 않았다. 장사에 방해라도 될가 걱정되었다. 진몽요는 백소가에게 돈을 건네주었다. "자, 여기." 백소가는 액수를 확인 하더니 그녀에게 반항했다. "겨우 이거밖에 안돼요? 저한테 장난 치시는 거에요? 액수가 안 맞잖아요." 진몽요는 백소가의 출결표를 꺼내들었다. "잘 봐, 처음에 일할때부터 말했지? 지각하면 월급에서 깐다고. 너 매일마다 지각했잖아. 그리고 너 여기서 일하는 동안 가게에 커피랑 디저트 계속 공짜로 먹었잖아. 그건 내가 선심써서 빼줄 게. 무슨 문제 있어? 오히려 네가 우리한테 돈을 줘야 할 것 같은데." 백소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차피 남아서 버릴 거 좀 먹으면 안돼요? 그게 그렇게 아까워요?" 이렇게 뻔뻔한 사람은 처음 본다. "네가 어디 남아서 버리는 걸 먹었니. 가게에서 제일 비싼걸로 골라서 먹어놓고는. 그게 그거랑 같아?" 자신에게 불리한 싸움이란 걸 백소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이지 않았고 노발대발하며 가게를 떠났다. 진몽요는 기분이 좋았다. 묵은 체증이 내려간듯 마음이 너무 편했다. 아직도 옆에 가만히 서있는 안야의 모습에 진몽요가 입을 열었다. "왜 그래?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백소가한테 한 말이야. 백소가가 워낙 일을 못해서 그래. 넌 이미 엄청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앞으로 보너스 많이 챙겨줄테니까 계속 지금처럼만 노력해줘." 안야는 입술을 깨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저기… 잡일 하는 사람 한명 더 뽑으신다고 하시던데… 대게 무슨 일을 하는지…" 진몽요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그냥 청소? 설거지 하고, 컵 씻고. 그냥 그런 허드렛일. 왜? 누구 아는 사람 있어?" 안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저기… 그거 제가 하면 안될가요? 저 궂은일도 잘해요!" 그녀의 대답이 진몽요를 깜짝 놀라게 했다. 배달 일도 힘든데 거기다 잡일까지 하겠다니. 사람
온연은 그렇게 멀리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녀는 지금의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평온한 생활을 즐기고 싶었다. "곧 크리스마스인데. 이벤트라도 해야하지 않을가? 세일이라든지? 거기다가 선물 같은거 좀 주고. 단골손님 잡아야지." 진몽요가 자기의 가슴을 툭툭 쳤다. "그건 나한테 맡겨! 걱정마. 내 전문이니까. 어느정도 세일하는것도 나쁘지 않지. 아 맞다. 이 얘기.. 너한테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온연은 그녀를 쳐다보았다. "응? 무슨 얘기?" 진몽요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녀가 겨우 입을 열었다. "화내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온연이 입을 삐죽거렸다. "지금 이렇게 사는거 엄청 좋은데 뭐. 나 요즘 멘탈 되게 좋거든. 화낼일 없어. 가게 적자났다는 얘기 빼고. 어서 말해." "목정침이랑 경소경이 우리 맞은켠 건물에 금융회사를 차렸데!" 진몽요가 아주 빠른 속도로 말을 끝냈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으로 온연의 눈치를 살폈다. "뭐라고? 넌 그거 어떻게 알았어?" 온연의 반응은 아주 컸다. 진몽요가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뉴스… 뉴스보고 알았지. 나도 어쩌다 본거야. 너한테 말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는데… 어차피 알게 될 일이라서 그냥 알려주는거야. 이렇게 가까운데 있는데. 얼마나 자주 만나겠어. 그렇게 자주 오진 않을것 같아. 솔직히 여기 엄청 후지잖아. 설마 회사 일도 뒤로 하고 여기로 올가. 네가 가게 옮기자고 할가봐 말 못하겠더라. 그럼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잖아. 너무 힘들어. 지금 가게도 겨우 안정된거잖아." 진몽요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미 이 가게에 정이 들어버렸던 그녀는 가게를 옮기고 싶지 않았다. 온연은 머리가 아팠다. 목씨 가문에는 사업이 이미 어마어마하게 있었다. 금융회사를 하나 더 차릴 필요가 없었을텐데. 왜 하필 지금 그것도 내 가게 맞은편 건물에?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유는 명확했다. 진몽요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가게를 옮기기엔 지금까지 이
설 연휴 기간, 가게는 휴업을 했다. 이순과 안야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온연과 진몽요는 둘이서 지낼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타지에서 보내는 첫번째 설이었다. 섣달 그믐날 저녁, 진몽요는 강령과 한시간째 통화하고 있는중이었다. 온연은 쓸쓸하게 티비에 나오는 설특선 영화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온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게 보통의 설 안부 문자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진함이 보냈다는 사실을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확인하고 나서야 알았다. 새해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200만원이 입금되었다. 그냥 용돈이라고, 그녀의 어린시절을 보상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별 생각이 없었다. 담담하게 답장을 보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문자를 받자 진함은 창가에 서서 미소를 지었다. 창밖에는 눈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보고싶은 사람은 저기 먼곳에 있다. 차가운 핸드폰 위로 띄워진 문자메시지에서 온기가 느껴지는것 같았다. 그녀가 올해 받은 제일 값지고 좋은 선물이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며 수신화면이 문자를 가려버렸다. 진함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이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로 강연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새해 복 많이 받아! 용돈 줘! 내가 국내 있진 않지만 그래도 용돈은 줘야 된다!" 진함은 잠시 머뭇거렸다. "알았어. 조금 이따 보내줄게." 그때 전화기너머로 불꽃놀이 소리가 들려왔다. 진함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 해외에 있는거 맞아? 해외에는 불꽃놀이 하는 문화가 없을텐데? 너 출국 안했지?" 강연연이 급히 대답했다. "당연히 했지! 아빠가 얻어와서 몰래 노는거야. 그러게 내가 하지 말랬는데… 그럼 나 먼저 끊을게! 돈 보내주는거 까먹지 말고!" 전화가 빠르게 끊겼다. 진함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넘쳤다. 강균성이 귀찮은 걸 얼마나 싫어하는데. 다른사람한테서 불꽃놀이를 얻어와서 논다고? 그럴리가 없다. 가능성
진몽요는 드디어 무언가를 알아챘다. "아… 누가 보낸건지 대충 알겠다. 그럼 나도 필요없어. 다시 돌려놓아야겠다." 설시간이라 그런지 시장에 장사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온연은 아침시장에서 장을 자주 봤다. 자주 가던 가게가 마침 열려 있었다. 그녀는 채소를 고른 후 돈을 지불했다. 그때 가게 주인이 갑자기 등뒤에서 검은색 비닐봉지를 꺼내들었다. "자, 여기. 설인데. 여자애 둘이서 타지에서 힘들텐데. 우리 아들이 보내준건데 집에 가져가서 먹어." 딱히 비싼 물건인것 같지는 않았다. 온연이 몇번 사양했지만 결국 주인의 선물을 받아들었다. 그녀는 돈을 지불하고 자리를 떠났다. 진몽요는 내내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살폈다. "이상하다? 우리가 가니까 바로 정리하고 집에 가는데?" 그 말에 온연도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모두 가게를 정리하고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그녀는 방금 받은 검은색 비닐봉지를 들여다 보았다. 그녀는 일의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값싼 비닐봉지안에 비싼 일등급 소고기가 들어있었다. 이 소고기는 국내에서 구하기 굉장히 어려웠다. 수입산이라 가격도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이런 귀한 고기를 아무한테나 선물로 준다고? 이 정도면 집이 중산층 정도는 된다는 소리인데… 근데 아침시장에 나와서 채소나 판다고? "내 생각엔 말이야… 경소경이 한짓 같아. 요리에 일가견이 있잖아. 걔네 가게에서 이 고기 먹어본적 있어…" 온연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진몽요는 아차 싶었다. "그럼 문 앞에 스카프도 경소경이 준건가? 경소경 혼자서 이짓을 했단 말이야? 목정침도 같이 오지 않았을가? 나 좀… 불안해… 집에 못 가겠어." 온연의 어깨가 축 처졌다. "목정침은 오지 않아. 적어도 지금은. 경소경이 왔다 간거라면 적어도 전화는 한번 해줘. 이 고기 엄청 비싸거든. 난 이 고기로 요리 못해. 경소경보고 와서 밥하라고 해." 뜻밖이었다. 진몽요는 온연이 이런 결정을 내릴줄은 상상도
온연은 가게에 달린 악플들을 열심히 관찰했다. 한참을 관찰하던 그녀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니야. 아무래도 이 악플들 누가 악의적으로 쓴것같아. 대부분은 음식이 어떻다고 악플 달지 않나? 근데 이건 가게 위생이 별로라고 썼잖아. 주방이 더럽다느니, 위생이 별로라니. 손님이 주방을 어떻게 보겠어? 이상하지 않아? 주방은 안야가 매일 열심히 청소하고 있고, 컵이나 접시도 매일 열심히 소독하는데… 장난이 아닌것 같아. 누가 일부러 이런 짓을 하고 있는게 분명해." 진몽요의 눈이 커졌다. "아무래도 백소가가 한 것 같아! 이거 봐봐. 제일 처음 달린 날짜. 백소가가 가게에서 쫓겨난날이랑 같은 날이잖아. 그후로 거의 매일 악플이 달리고 있어. 매일 3개에 6개 정도. 아마 백소가가 주위사람들까지 끌어들이면서 한 짓같아. 정말 너무한다!" 아직은 가게의 별점이 4점대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게에 지장을 줄 것이다. 온연이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가게의 이름으로 악플에 댓글을 달았다. '악플 다는거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럴 시간 있으면 자기개발이나 더 하세요.' 그녀는 일부러 댓글에 백소가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범인이 백소가가 아니라는 가능성도 베재할수 없었다. 악플에다 모두 댓글을 단 후 그녀는 가만히 기다렸다. 역시나, 20분 뒤에 백소가에게서 문자가 왔다. '당신네 가게! 꼭 망하게 만들어 버릴거에요! 월급 많이 준다고 사람 꼬셔놓고, 막상 들어가니까 이상한 이유로 자르기나 하고. 월급도 반토막내고! 내가 살아있는 한 매일매일 악플 달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진몽요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손으로는 백소가에게 답장을 하고 입으로는 백소가를 욕하고 있었다. "너 이 개새끼! 내가 그 가게 차리려고 얼마나 개고생했는데. 고작 너 같은 거 때문에 내가 고생해서 차린 가게가 더럽혀진다고? 그렇게 잘났으면 한번 만나든가! 뒤에서 더러운 짓 그만하고!" 온연의 감정은 진몽요보다 침착했다. "됐어
밥상 위, 진몽요는 머리를 수그린 채 밥 먹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동안 가게가 너무 바쁜 바람에 둘 다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다. 요리 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여기 와서 처음으로 밥 다운 밥을 먹어보는 것 같았다. 얼마나 먹었을까, 진몽요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온연과 경소경은 이제 먹기 시작했는데… 그녀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경소경이 당황했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맛이 없어요? 주방에 재료가 부족해서 있는대로 만들어본건데. 입맛에 안 맞으면 그만 먹어요. 다음에 제대로 해줄게요." 온연이 진몽요 대신 그에게 대답했다. "우리 몽요 이제 옛날 같지 않아요. 예전만큼 못 먹어요. 그러니까 놀리지 말아요." 경소경은 옛날처럼 진몽요를 놀리지 않았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가게에 사람이 4명밖에 없던데… 힘들지 않아요? 그러게 왜 사서 고생이에요? 이렇게 사는 게 진심으로 바라던 생활이에요? 제도에서 디자이너로 사는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왜 이렇게 자기를 못살게 굴어요? 무슨 꿈 때문이라고 하지 마요. 디저트 만드는게 꿈이라면 애초에 디자이너의 길도 걷지 않았겠죠. 너무 힘들면 다시 돌아가요." 온연이 웃어 보였다. "힘들긴 해도 보람 넘쳐요. 자유롭고요. 매일 이렇게 일하고 나면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그래서 다른 생각 할 새도 없어요. 그래서 좋아요. 돌아가서 뭘 하란 거예요? 전 이제 디자이너는 하고 싶지 않아요. 목씨 집안 사모님도 하고 싶지 않고요. 이혼하지 않은 이유는 그와 했던 약속 때문이에요. 다시는 이혼 얘기 꺼내지 않겠다고 약속했거든요. 재혼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해요. 흔쾌하게 이혼해줄 테니까. 경소경씨, 혹시나 목정침 편 들려거든 그 생각 멈춰요." 자신이 생각했던 범위를 넘어서는 그들의 대화에 진몽요는 옆에서 한마디도 못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색해 보이지 않기 위해 젓가락을 다시 들
솔직히 말하면 모두 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서로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어색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인지 더 재밌게 놀 수 있었다. 오늘 클럽의 불빛이 유난히도 어두웠다. 온연을 무대 위로 끌고 온 여자의 모습이 어느샌가 보이지 않았다. 주위에는 온통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사람뿐이었다. 커다란 무대에 사람들이 빈틈없이 꽉 들어찼다. 타인과의 신체접촉을 피할 수가 없었다. 무대 바닥은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따라 진동했다. 위에서 제대로 서있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진동에 따라 흔들어야만 겨우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온연은 진몽요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무대에서 내려가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쩐 일인지 그녀가 무대 중앙으로 밀려버렸다. 갑자기, 누군가가 등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변태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이런 장소에서 이런 일을 겪는 건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이니까! 그녀는 바로 상대방을 밀쳐버렸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였다. "연아, 나야…"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다정하고도 어두운 목소리였다. 마치 애정하는 물건을 다시 찾은 듯 행복함이 섞여 있는 목소리였다. 그녀의 몸이 얼어버렸다. 결국 그가 나타났다. 이런 곳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가면을 쓰고 있어 서로 알아볼 순 없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포옹이 그녀에게 미련을 남겼다.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고 신경 쓰는 사람도 없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을 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을 오롯이 느끼고 싶었다. 몇분 뒤, 노래가 멈췄다. 무대 위에 노래하는 사람이 올라오자 사람들은 뿔뿔이 자리로 돌아갔다. 목정침도 그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녀가 뒤돌아 그를 찾을 때 목정침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나타난 적 없었던 것처럼. 마치 그녀의 상상인 것처럼. 그가 진짜로 왔다 간 것일까?
온연의 얼굴이 눈물에 흠뻑 젖어버렸다. 그녀는 히스테리적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맑은 목소리에 슬픔과 아픔이 섞여 있었다. 적막한 어둠에서 메아리치는 그녀의 목소리가 진몽요의 심장을 아프게 했다. 온연이 그녀 앞에서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잠시 울먹거렸을 뿐이었는데... 진몽요는 이제야 알았다. 온연이 그동안 얼마나 버티고 살았는지. "미안해… 연아… 내가 괜한 얘기를 꺼냈나 봐. 그만 울어, 응? 우리 돌아가지 말자. 못 들은 거로 해줘. 내가 계속 옆에 있어 줄게!" … 이틀이나 쉬었을까, 온연은 가게를 다시 열기로 마음을 먹었다. 목정침이 술집에 나타난 일이 온연의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에 잡생각이 계속 들었다. 차라리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게 더 나을거라 생각했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줄거라고 생각했다. 과거도, 그 남자도 기억에서 지울 수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그리워진다. 그에 대한 감정이 그냥 단순한 가족의 감정인 줄 알았는데… 이제 알았다.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동안은 사랑이 뭔지 모르고 있었다. 그가 사랑이 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새해라 그런지 가게의 매출이 평소와 같지 않았다. 배달주문이 첫 주문으로 들어왔다. 아직 안야와 이순의 출근 시간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몽요한테 가게를 보라고 부탁하고는 배달을 하러 나갔다. 배달장소에 도착하자 그녀는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빠르게 걸어졌다. 수화기 너머로 짜증 섞인 여자 목소리가 전해졌다. "배달이죠? 도착하셨어요? 그럼 집 앞까지 배달해주세요. 8층이에요. 엘리베이터 없으니까 걸어서 올라오세요. 안 올라오시면 악플 달거에요!" 전화가 끊겼다. 온연이 아무리 성격이 좋다고 해도 이건 참을 수가 없었다. 4층 이하면 배달해주고 5층부터는 고객한테 직접 내려오라고 분명히 안야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