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몽요는 온연이 목씨 저택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나서야 전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전지, 너도 알고 있지? 내가 너 체면 차려주려고 네 청혼 받아준 거. 나 아직 결혼 생각 없어. 전에 말했었잖아." 전지는 놀라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는 듯 담담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손가락에 껴진 반지를 뺐다. "결혼에 확신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줄래? 그때 다시 얘기하자. 아직은 결혼 생각 없어." 그의 입꼬리가 휘어지더니 냉소가 내뿜어졌다. "옛날에는 네가 나한테 결혼하자고 매달렸는데… 이제는 그 반대네? 뭐가 널 이렇게 바꿔 놓은 건데? 나는 네가 점점 더 좋아지는데 너는 아닌 것 같아. 인정할게. 내 잘못이라는 거. 열심히 고쳐나갈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그래. 일단 결혼부터 하자. 나한테 있는 불만이나 거슬리는 점도 천천히 개선해나갈게. 난 지금 너랑 결혼하고 싶어." 그녀는 고개를 떨구며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해." 그는 엑셀을 끝까지 밟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 같았다. "미안하다는 소리 하지 마! 듣기 싫으니까! 한 달 뒤에 나랑 결혼하든가 아님 그냥 헤어지자. 그게 제일 깔끔하네. 몸이 불편하다는 것도 거짓말이지? 집에는 데려다줄게. 10분 뒤에 도착하니까 그동안 잘 생각해봐." 10분이란 시간은 그리 짧지 않았다. 전지는 차를 세운 뒤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결론은?" "지금은 결혼할 생각 없어." 전지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네 선택 존중해줄게. 너한테 빚진 거라고 생각하지 뭐. 옛날에 내가 나쁘게 굴었던거 그대로 돌려받았다고 생각할게. 우리 이제 서로 빚진 거 없지? 이제 그만 가." 그는 창문을 열어 담배를 피웠다.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진몽요는 한숨을 내쉬고는 아무 말 없이 차에서 내렸다. 전지는 여전히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담배를 들고있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진몽요를 궁지에 몰지 말걸…
온연은 그런 시끄러운 곳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녀는 진몽요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제안에 응했다. 온연은 목정침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목정침이 알면 분명 못 나가게 막을 것이다. 온연은 목정침이 퇴근하기 전에 준비를 다 하고 집 밖을 나섰다. 그녀는 목정침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 몽요랑 나가서 밥 먹어요. 좀 놀다 올 거라 늦게 들어올 거예요.' 그녀가 하도 집에 박혀있었던 탓에 답답해하는거라고 생각했던 목정침은 아무 생각 없이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알겠어.'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임집사는 그녀는 제로바 근처에 있는 술집에 내려주었다. 임집사가 멀리 사라지고 난 후, 온연은 제로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술집 대문을 열자마자 진한 향수 냄새가 코를 어지럽혔다. 개성 있는 인테리어와 휘황찬란한 홀이 클럽을 더 고급스럽게 보이게 했다. 홀을 지나 따뜻한 불빛이 비치는 복도를 들어서자 신세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은 많지 않았다. 디제이가 아직 출근을 안해서 그런지 그리 시끄럽지는 않았다. 진몽요는 그녀를 끌고 테이블을 하나 잡았다. "여기 주문할게요!" 직원은 무척이나 능숙하게 주문을 받아냈다. 진몽요가 통이 큰 걸 알아챘는지 그녀에게 비싼 술 몇 가지를 추천해주었다. 진몽요는 기분이 너무 더러웠다. 그녀는 직원이 추천해준 술 전부를 주문했다. 서비스로 올라온 메뉴만 해도 한가득이었다. "몽요야,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 이런 데서 취하는 건 너무 위험해. 특히 여자한테는 더." 온연은 진몽요가 정신이 없이 마실까 봐 겁이 났다. "뭘 그렇게 겁내? 술 오랜만에 마시는 건 맞긴 한데, 좀만 지나면 옛날 기량 돌아올 거야. 내 주량 몰라? 걱정하지 마. 아무리 취해도 넌 꼭 집에 데려다줄 테니까." 진몽요는 나만 믿으라며 어깨를 툭툭 치더니 주문한 술을 전부 열어버렸다. 진몽요가 자신의 어
남자의 얼굴색이 어두웠다. "얼마나 마신 거야?" 귀에 익은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얼어버렸다. 경소경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얼마 전에 봤던 뉴스가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담담한 척하며 그를 놀려댔다. "왜요? 또 취미 즐기러 오셨나? 많이 안 마셨어요. 연이가 저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먼저 갈게요. 혼자 노세요. 경소경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계단으로 끌고 갔다. "온연이랑 같이 왔다고요? 혼자가 아니라? 목정침이 알면 어쩌려고 단둘이서 왔어요?" 진몽요는 경소경을 밀쳐냈다. "맞아요. 단둘이서 왔어요. 연이가 이런데 어디 와봤겠어요? 목정침이랑 사는데? 인생의 낙도 못 즐기는데,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리고, 지금 저 가르치시는 거예요? 듣기 싫으니까 저리 비키세요!" 진몽요가 취한 걸 눈치챈 그는 더 이상 그녀와 실랑이를 벌이지 않았다. "그만 마시고 이제 그만 가요. 데려다줄 테니까." 진몽요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나 신경 쓰는 거에요? 상관없지 않나? 그리고 저 아직 갈 생각 없거든요!" 경소경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프러포즈 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데를 오는 거예요? 결혼하기 전에 마음껏 즐기자 뭐 그거에요? 아니면 너무 기뻐서 축하주 마시러 온 건가? 이렇게 노는데 전지가 뭐라 안 해요?" ‘전지’ 두 글자에 진몽요는 경소경의 멱살을 잡았다. "사람 속을 꼭 그렇게 긁어야 속이 시원해요? 우리 지금 헤어지기 일보 직전이거든요? 한 달 안에 결혼하자고 얼마나 보채는지…. 난 결혼 생각 없는데… 그리고 옛날 그 느낌도 없단 말이에요… 성급하게 결정하고 싶지 않아요." 그는 꼿꼿하게 서 있었다. 아무리 잡아당겨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옛날의 그 느낌이 없다는 말에 뭐에 홀린 듯이 입을 열었다. "망설여진다는게 뭘 의미하겠어요? 그냥 헤어져요.
온연은 진몽요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온연은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사람들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어서 안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다. 온연은 술을 한잔 더 들이키고는 몽요에게 말했다. "몽요야, 나 먼저 갈게. 무슨 일 생기면 꼭 연락해…" 목정침과 경호원들은 빠르게 자신들이 앉은 자리로 가까워졌다. 온연은 목정침이 화내기 전에 그의 품에 안겼다. "몽요랑 같이 밥 먹다가, 시간이 너무 이르길래 술 마시러 왔어요. 당신은 여기 어떻게 왔어요?" 목정침의 얼굴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알딸딸하게 취한 온연의 모습을 보자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감정을 겨우 가라앉혔다. "너 찾으러 왔어. 집에 가자." 온연은 목정침 몰래 진몽요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목정침과 클럽을 벗어났다. 그녀는 경소경이 술집에 있다는 사실과 밀고자가 경소경이라는 사실을 차에 탄 후에야 알게 되었다. "경소경이 말해서 내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계속 거기서 놀았겠네? 거기서 언제까지 있으려고 그랬어? 누가 그런데 가래? 여자가 그런 데서 술 마시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아? 내 말은 듣는 척도 안 하지?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 그녀는 자신에게 화를 내는 목정침에게 침착하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다신 안 갈게요. 가게 된다면 당신이랑 같이 갈게요. 됐죠?" 목정침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그녀에게 말했다. "다음은 없어! 나도 이제는 그런데 안 갈 거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던 그녀는 진락에게 차를 세워달라 부탁했다. "저 토하고 싶어요! 차 좀 세워주세요!" 진락이 황급히 차를 길가에 세웠다. 목정침은 한차례의 소격동이 지난 후에야 유유히 차에서 내려 그녀에게 종이와 물을 건네주었다. "진짜 도로에 버리고 가고 싶다!" 그녀는 입
휴대폰이 울렸다. 경소경의 전화였지만 그녀는 받을 생각이 없어 바로 끊어버렸다.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복잡해질대로 복잡해져있었다. 더 이상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2분정도 지나고, 뒤에서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경소경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마음이 찔린 그녀는 휴대폰을 천천히 가방안으로 넣었다. “휴..휴대폰 배터리가 닳아서요.” 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리며 말했다. “배터리가 나갔으면 전화를 받을 수 없거나 꺼져 있다고 안내음이 나와야 하는데, 왜 신호음이 가다가 끊긴거죠? 내가 바보로 보이나봐요?” 진몽요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쥐 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경소경은 더 이상 그녀가 왜 전화를 끊었는지에 대해 따져 묻지 않았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됐어요. 데려다 줄게요.” 그가 차 키를 꺼내자 그녀가 말했다. “술 마셨잖아요, 운전하면 안 되죠.” 그가 신기한듯 그녀는 쳐다보았다. “술 마신 거 어떻게 알았어요?” 그녀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눈빛이 이리저리 헤맸다. 절대로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보고싶지 않았다. 그가 키스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몰랐을 거다. 그의 입 안에 남아있던 알코올이 느껴졌다. 이런 곳에 오면 당연히 술을 마실 거라 생각했다. “이런데서 술 안 마시면 물만 마시게요?” 그녀가 민망해하는 걸 눈치챈건지 그가 대리운전을 불렀다.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조금 더 편할 것 같았다. 가는 길에, 두 사람은 눈을 감은 채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속이 안 좋은 듯 했다. 차가 진몽요의 집 아래 도착해서도 그녀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가 그녀를 툭툭 쳤다. “도착했어요.” 그녀는 비몽사몽 눈을 떠서 밖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집에 도착 한 걸 확인 한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경소경의 차가 출발하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걸음걸이가 너무나도 멀쩡했다. 아까
그녀는 의심을 품은 채 부엌으로 내려와 진몽요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그녀가 바에서 떠날 때 경소경도 있었으니 경소경이 진몽요를 신경 써줬을거라고 생각했다. 신호음이 한참 울리고 나서야 전화가 통했다. 진몽요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일이야? 너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온연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찍? 벌써 10시야. 나도 금방 깼어. 어제 경소경이 데려다줬어? 너 얼마나 마셨어?” 진몽요는 한동안 아무말도 못했다. 어제 경소경과 키스했다는 사실이 그제야 생각났다. 술이 모자랐는지 어제의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그녀가 대답이 없자 온연이 걱정되는 말투로 물었다. “왜 아무 말이 없어?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진몽요가 한숨을 쉬었다. “아니. 나중에 만나서 얘기할게. 오늘 전지랑 점심 먹기로 했거든. 걔랑 얘기 좀 해보려고. 그만 일어나서 씻고 준비해야겠다. 너가 전화 안 했으면 전지 바람 맞힐 뻔했네. 나중에 전화할게.” 전화가 끝나자마자 목정침으로부터 문자 한통이 왔다. 지금 그녀는 목정침의 이름만 봐도 깜짝깜짝 놀란다. 목정침이 그녀에게 일어났는지 물었다. 그녀는 어제 일에 대해서 묻고 싶었지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냥 일어났다고 대답만 했다. 문자에 답장하자마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제 일어났어?” 기분이 꽤나 좋은 듯한 목소리였다. 어제 클럽 간 것에 대해서 그리 화가 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그녀가 안도했다. “네. 지금 아침 먹고 있어요.” 그는 평소와 다르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싱거운 거로 먹어. 술 마셔서 속 안 좋잖아. 이따가 할 일 없으면 회사로 와. 어차피 집에만 있는거 심심하잖아.” 그녀가 대답하자 전화가 끊겼다. 그녀는 방금 용기 있게 물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했다. 그냥 어제 저녁에 무슨 일 없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왜 말을 못 꺼낸걸까? 안 물어보면 계속 신경 쓰일텐데…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그녀는 느긋하게
그는 그녀를 놀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당연히 했지. 안 했다고 생각했어? 너 디저트 좋아하는 거 같아서 시켜놨어. 이따 오면 먹어봐. 내가 먹어본 것 중에 제일 특별한 걸로 시켰으니까.” 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책상으로 가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가져오세요. 아메리카노 두 잔이랑 같이요.” 전화를 끊은 그는 아직도 발그레한 온연의 얼굴을 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설마 부끄러운 거 아니지? 우리 서로 안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부끄러워하는 건 좀 이상한 거 아닌가?” 그녀는 부정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빨갰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는 그녀가 거짓말하고 있다는걸 알았챘지만 모르는 척 했다. “아직 함께 할 날이 많이 남았는데… 매번 네가 고양이 앞에 쥐 마냥 기죽어 있는 건 싫어. 안 잡아먹으니까 긴장 풀어.” 잠시 후 엘리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디저트 왔습니다.” 목정침이 들어오라고 하자 앨리는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따뜻한 커피와 함께 예쁘게 포장된 디저트 상자를 온연 앞에 내려놓았다. 온연은 아기자기한 디저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보기만 해도 너무 특별해 보이는 디저트였다. 목정침이 칭찬할 정도면 맛은 보장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녀는 먼저 딸기 케이크를 한 입 먹어 보았다. 입 속에 들어가자 마자 살살 녹았다. 달지도 않고 느끼하지도 않은 게 지금까지 먹어본 디저트중에 단연 최고였다. “커피랑 같이 먹어.” 그가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커피를 한 모금 입안으로 넘겼다. 고소한 커피향이 디저트와 입안에서 섞이며 또 하나의 색다른 맛이 입안에서 펼쳐졌다. “맛있어요! 저는 평생을 연습해도 이런 맛은 못 낼거예요.” 그가 그녀가 만드는 디저트를 먹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눈 앞의 디저트와 비교하니 그녀가 만든 건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걸어오더니 녹색 디저트를 한 숟갈 떴다. 그는 포크를 그녀의 입가에 갖다 댔다. “이것도 먹어봐.” 그녀는 신
온연은 살짝 어이가 없었다. “그런 뜻으로 물어본 건 아니예요. 그냥 궁금해서. 자리는 항상 여기였나요?” 엘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건물 자체가 워낙 조용해서 자리는 별로 상관없어요. 대표님도 좋은 분이셔서 나름 잘해주세요. 일 할 때 옆에 누가 있는 걸 싫어하셔서. 근데 가끔은 제가 도와드려야 할일이 있어서 여기가 편해요.” 얘기만 들어도 그가 좋은 사람이 아닌게 느껴지는데… 그녀는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엘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달 급여는 얼마정도예요? 그 사람 비서 일 꽤나 힘들텐데.” 급여 문제는 사람들이 어딜가나 얘기하기 꺼려했다. 온연이 물어보자 엘리도 딱히 숨기지 않았다. “기본 600만원 정도예요. 연말에는 인센티브도 있고요. 그렇게 힘들지도 않아서 괜찮아요.” 온연은 엘리가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디자이너 일할때보다 월급이 더 많다니. 하긴 직업마다 급이 있으니까. 분명 최고급 디자이너들은 몸값도 엄청 나겠지? 사무실 안, 경소경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정침아, 전지한테 찍혔다 나.” 목청침은 예상한 결과라는 듯 그에게 대답했다. “왜? 너한테 해코지라도 했어?” 경소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아무 일 없었어. 내 생각엔 이렇게 있다가는 진몽요만 피해볼 게 뻔할것 같아. 빨리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차라리 우리가 아무것도 몰랐다면 좋을텐데. 진몽요 빼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건 너무한 거 같아. 너랑 전지의 평화도 일시적인 거잖아. 언제 깨질 지 모르고. 나중에 온연한테 사실을 다 말해버리면 결과적으로는 똑같으니까.” 목청침은 짜증나다는 듯 넥타이를 잡았다. “네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 근데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난 온연을 선택할 거야. 다른 방법은 없어. 내가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거 너도 알잖아. 난 진몽요한테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아. 우리는 그냥 진실을 알고 있을 뿐이잖아? 말을 하든 말든 그건 우리의 권리고. 진몽요랑 연결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