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는 기분이 나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병실을 나갔다. 환자에겐 이미 보호자가 있었고 그렇게 된다면 간호하는 일은 자기랑은 별 상관없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몇 분 뒤, 진몽요의 팔이 저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 소변이 안 나오면 카테터라도 꽂아요. 괜히 무리하지 말고...”그녀의 말에 경소경의 얼굴이 불그락푸르락했다. “당신 정말… 당신은 지금 이 상황이 부끄럽지도 않아요? 아무리 전에 아버지를 간호한 적이 있다고 해도… 그래도 딸인데 그건 좀 아니지 않아요? 어머니도 계시잖아요…”진몽요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우리 엄마요? 우리 엄마가 기댈만한 사람이었다면 우리 아빠가 그렇게 고생하지는 않았겠죠. 우리 엄마는 먹고 노는 것만 할 줄 알지, 다른 건 아무것도 몰라요. 아마 내가 쓰러져도 매일 울기만 할걸요? 아무리 부끄러워도 내가 할 수 밖에 없죠. 우리 아빠가 쓰러졌을 땐 이미 간병인 부를 돈도 없을 때였거든요. 근데 당신이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지 않아요? 아까 간호사는 잘만 부르더니… 간호하라고 불러놓고 이렇게 부끄러워하면 어떻게요? 내가 당신 취향이 아니라서 그런 거에요?”왜 진몽요한테만 그렇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지 경소경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직업이랑 상관있어서 그런 건가? 진몽요가 전문적인 간호사도 아니고… 경소경은 진몽요가 자신을 간호하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겨우 볼일을 끝낸 그는 우울감에 빠져있었다. 우울감에 그는 더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진몽요는 털털하게 화장실로 들어가 소변기를 씻었다. 그녀는 심지어 입으로 노랫소리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그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조용히 해!”화장실에서 진몽요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전해졌다. 그렇다. 그녀는 그를 비웃고 있었다. 경소경은 보름이라는 시간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고 진몽요는 그런 그를 보름이나 되는 시간 동안 보살폈다. 그를 보살피는 동안 진몽요는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결국 경소경도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였다. 예전에 부
그녀는 실망감을 느끼는 자신에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 내가 실망하고 있는 거지? 애초부터 희망을 가질 것이 아니라 예전과 같이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그녀는 생각했다.점심 식사 시간, 회사 입구 앞 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으로 향하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어 가며 눈에 띄는 그를 흘끔거리며 바라보았고, 그는 도시락통을 손에 쥔 목정침이었다.그가 누구인지 알 턱없는 회사의 신입 사원들은 그를 두고 누구의 애처가인지 추측하였고, 곧 온연의 자리로 향하는 목정침에 그를 흘끔거리던 이들은 우왕좌왕하다 이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하였다.“무슨 일로 오셨어요?”매우 놀란 듯한 온연이 그에게 질문했다.“밥 먹어.”그는 군말없이 도시락 뚜껑을 열고는 온연에게 젓가락을 쥐여주었고, 그가 가져온 국과 반찬들은 보기만 해도 입맛이 도는 듯하였다.그의 주시 아래 온연은 별 말없이 식사를 시작하였으나 곧 적지 않은 양을 남긴 채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그 모습에 목정침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어왔다.“유씨 아주머니께 부탁한 건데, 입에 안 맞아?”“아니요… 꽤 싱거운 듯 해서요. 그리고 굳이 회사까지 갖다 주실 필요 없어요, 식당에서 때우면 돼요.”온연은 매일같이 식사를 챙겨오는 그를 견디기 힘들 것이고, 그것이 그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일 뿐이라면 더욱 불필요한 짓이었다. 다른 이를 시켜 전달만 해도 충분히 칭찬받을 수 있을 것이다.“내가 하겠다는 게 아니고, 아주머니께서 부탁하셔서 온 것뿐이야. 옳고 그른 거 판단 잘 해.”목정침은 늘어진 도시락을 정리하며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말했다.그의 태도에 온연의 마음 속 초조했던 감정들이 다시금 차올랐고, 홍수라도 난 것처럼 이내 터뜨려버리고 말았다.“언제부터 그렇게 유씨 아주머니 말을 잘 들으셨어요? 목가네 주인은 당신이고, 어찌됐건 아주머니는 하인일 뿐이잖아요? 그렇게 남들 눈 신경 쓸 거 없어요. 전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잘
그날 밤, 망설이던 온연은 이내 목정침에게 문자를 전송하였다.‘바쁘세요? 듣자 하니 회사 일 때문에 외국에 가셨다 던데...’한밤 중에 그에게 문자를 보낸 것은 시차를 고려한 선택이었다. 온연의 배려가 없었더라면 둘의 관계에서 원활한 상호 작용은 없었을 수도 있다.약 5분이 지나고 목정침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내 일로 신경 쓸 필요 없어. 스스로 몸부터 잘 챙겨.’온연은 한참 동안 핸드폰 화면 위의 글자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으나 보면 볼수록 답답해지기만 했다. 기꺼이 물어보았으나 이런 그의 태도를 마주하니 물어보지 않는 것이 나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이튿날, 목정침의 해외지사에 관한 뉴스들은 계속하여 보도되었고 인터뷰를 통해 지사의 폐쇄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해외 지사 뿐만 아니라 국내의 목가 산업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의 명예에 손실을 초래한 것이다.목가 산하의 보석점에서 가짜 보석을 샀다든가, 세금 탈루 의혹이 불거지며 국내외로 의견들이 분분하였다.이 소식을 들은 온연은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목정침은 신이 아닌 사람이었다. 결국은 그 역시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것인데 돌연 이런 일이 생기다니, 과연 어떻게 수습할 것일까?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온연은 곧 동료들에게 둘러싸였고, 모두가 그녀에게 제각기 질문을 해댔다.“집에 무슨 일 있는 거예요? 들어보니까 가짜를 샀다고 하던데, 정말 가품이었어요? 회사 재정에 문제라도 생겼나요? 그렇게 돈이 많은데 탈세라니… 거짓이죠?”온연은 매우 거슬리는 눈치였다. 다른 이들이 목정침을 모독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아시는 것처럼 다 추측일 뿐이에요. 집안이며 사업이며 커다란 규모에 평판도 좋은데, 왜 굳이 그런 손해보는 짓을 했겠어요? 돈이 떨어졌다는 거야 말로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만약 정말 그 사람이 손을 써서 모조품을 비싼 값에 팔았다 해도 그건 명백히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짓인데, 그 사람은 절대 그렇게 못할 걸 저는 알아요
온연은 이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어딘가 기묘한 감정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목정침이었으나 그가 한창 바쁠까 두려워 우선 진몽요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로 하였다.진몽요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니 온연의 눈꺼풀은 점점 감겨왔고,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잠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희미하게 누군가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혼미한 정신이었으나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며 항상 경계심을 가졌었기에 온연은 놀라며 깰 수밖에 없었다.“누구야?!”방 안이 조명으로 인해 일순간 밝아졌다. 그 자리에 서있던 이는 목정침이였고, 매우 피곤한 듯 나른한 얼굴이었다.“나야, 다시 자도 돼. 난 먼저 씻으러 가볼 거야.”온연은 안도하며 숨을 폭 내쉬었고, 다시금 자세를 바로잡은 뒤 천천히 눈을 감았다.목정침은 그녀가 다시 누운 것을 확인하고서야 욕실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방금 상황은 그 역시 놀랐다. 분명 충분히 기척없이 들어왔다 생각했는데, 온연이 놀라며 깨어날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온연은 샤워실에서 들리는 물소리에 쉽게 잠이 들 수 없었다. 그가 오늘 밤 돌아올 것이라 생각도 못 했을 뿐더러 당분간은 해외에서 지낼 것 이라 알고있었기 때문이다.샤워 후 욕실에서 나온 목졍침은 눈을 뜨고있는 온연의 모습에 잠시 멍할 수밖에 없었다.“난 서재로 갈게, 그게 편할 테니까. 알아서 자도록 해.”온연은 피곤함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의 눈을 보았다. 곧 몸을 뒤척이며 자리를 옮겨 한사람이 누울 자리를 만든 온연이 말했다.“바쁜 건 내일 하고, 오늘은 우선 자요.”“아니야… 불편할 거야.”목정침은 서있던 그 자리에서 꿈쩍 않은 채 말했다. 온연의 부른 배를 보니 두려움이 생겼다. 혹시라도 잠을 자다 배를 건드릴까, 상상도 하기 싫었다. 게다가 온연 역시 자신이 조금이라도 뒤척이면 편히 잠들지 못 할 것이었다. 그의 뜻을 깨달은 온연이 무언가 핑계를 만들어냈다.“허리가 시큰거려서… 잘 수가 없어요.”그는
그녀가 내민 시계를 본 온연은 숨이 턱 막히며 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그 시계는 온연에게 매우 익숙하였다. 확실히 목정침이 평소에 차던 시계였다. 어젯밤 목정침이 돌아왔을 때, 그의 손목이 어딘가 허전 했었다. 그 말은… 그가 저택으로 돌아오기 전 강연연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온연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발견한 강연연은 자만하듯 시계를 온연의 앞에 내려놓았다.“정침 오빠 탓하지는 마. 요즘 스트레스도 심한데 네가 임신까지 했잖아, 얼마나 불편하겠어… 내가 아니였으면 다른 여자가 있었을 거야. 속상하겠지만 내가 네 의무를 대신해주는 거잖아? 고맙다는 말은 됐어~”온연은 시계를 집어 들고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더 할 말없으면 그만 가볼게.”이걸로 강연연은 목적을 모두 달성하였고, 그녀 역시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그래. 임립 오빠한테 내 안부도 좀 전해줘. 새 회사 아주 멋지다고, 잘되길 기원한다고.”온연은 곧바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가져온 시계를 바라보고있자니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곧 시계를 챙겨 넣은 온연은 일에 집중하기로 한다. 어쨌든 목정침의 물건이었기에 그에게 다시 돌려줘야만 했다.그날 저녁, 저택에 돌아오니 유씨 아주머니의 따뜻한 반찬들이 준비 되어있었다.“연아, 씻고 어서 밥 먹어. 저번에 도련님께서 네가 싱거워 했다고 알려주셔서 이번에는 고추를 좀 더 넣어봤어. 임산부가 신 걸 좋아하면 아들이고 매운 걸 좋아하면 딸이라 던데, 여자애 둘인가보다!”온연은 농담을 주고받을 기분이 아니었다. 가방 속 시계가 마치 시한폭탄처럼 느껴졌다.“아주머니, 목정침도 돌아와서 같이 식사하나요?”유씨 아주머니는 고개를 내저었다.“전화해봤는데, 같이 식사 못 하신대. 너 밥 챙기고 일찍이 자게 하라고 하시더라. 기다릴 필요 없어, 그래도 네가 여기 있으니까 늦게라도 꼭 들어오실 거야.”식사를 마친 후 온연은 탕위엔을 잠시동안 놀아준 뒤 바로 방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니 한결 편안 해졌으나
기분이 정말 괜찮았다. 온연은 탕위엔을 안아 올리며 대답했다.“어차피 늦은 거, 점심 먹은 뒤 오후에 출근 해야겠어요.”그 때, 그녀의 뒤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온연은 의식적으로 탕위엔을 내려 놓았다. 그가 목정침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고양이랑 오래 있지 말고. 먼저 출근할게, 나갈 일 있으면 임집사한테 바래다 달라고 해.”목정침의 걸음은 급했고, 양복 단추마저 이제야 급히 채우고 있었다. 아침의 금빛 햇살이 그에게 내리 쬐었고, 어딘가 신성한 느낌이 들어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였다.온연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주방으로 자리를 옮겼고, 유씨 아주머니를 찾아 먹을 것을 부탁하였다. 곧 배고파 쓰러질 것 같았다.강가네 별장.강연연은 오전 내내 주방에서 바삐 지냈다. 다른 이유는 없었고, 오후에 진함이 와 식사를 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강균성은 소파에 앉아 수심에 찬 얼굴을 한 채였다. 이혼 후, 그는 회사에 힘을 쓸 여력이 없었다. 결혼 후 몇 년간 진함의 도움을 받아 일을 처리 했었기에 그 혼자서는 거의 손을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결혼 전에는 집안에 큰 어른도 계셨고, 회사 역시 걱정할 것이 없었기에 그의 자존감은 하늘을 찔렀었다. 당연히 진함이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믿은 것이다. 이제 와 점점 깨닫게 되었다. 그는 그 세월 동안 무능력자가 되어있었고, 진함이 떠난 시점부터 고난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두 부녀는 서로 다른 속셈을 가진 채였다. 강균성은 그녀와의 이혼을 만회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강연연은 진함을 가장 잘 알았고, 그녀가 강가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잘 알았다. 강연연은 진함의 재산을 원할 뿐이었다.11시가 지났을 무렵, 진함은 이혼 후 처음으로 강가네 대문을 열었다. 강균성은 그녀를 의식하며 비싼 양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부터 발 끝까지 빈틈없이 치장하였다. 진함이 가장 좋아한다 말 했던 모습이었다. 수년 간을 제멋대로 하던 그가 이제서야 그녀의 의견을 들어준 셈이었다.
말을 마친 진함은 가방을 챙긴 뒤 그대로 그 곳을 나섰다. 밥을 같이 먹을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 집을 떠난지 꽤 오래 되었는데도 진함을 잘 찾지도 않던 그들이었기에 갑작스러운 초대는 역시 진함의 예상대로였다.강연연은 화가 극에 달한 듯 식탁을 세게 내리쳤다.“온연! 정말 가만두지 않을 거야!”강균성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전의 애교 많던 자신의 딸이 맞는가? 눈빛이 저렇게나 무서울 수가 없었다.…경가 공관, 하람이 경소경의 침대 끝에 앉아 사과를 깎아주며 불평스러운 투로 말했다.“너 말이야. 또 이렇게 맞고 몸 엉망 되면 어떡할래? 우리 집안 후계자도 아직 없는데. 언제쯤 조바심 안 나게 해줄 거니? 언제 결혼할 거야?”경소경이 머리가 지끈거려왔다.“엄마… 그 일은 그만 얘기하면 안 돼요? 내 인생 목표는 경가를 크게 키우는 거고, 제가 만족하기 전까지는 결혼 생각 없어요.”하람이 비웃 듯 대답했다.“우리는 목가네랑은 비교 못하지만 그래도 꽤 괜찮아. 제도에서 알아준다고. 네가 목가를 넘어서면 뭐 어떻게 할 거니? 가업을 이을 자손이 없는데, 한 평생을 일만 할 거야? 그만 농담하고. 내가 봤을 땐 너 하루이틀이면 다 나을 것 같으니까 내가 한 달은 줄게, 그때까지 며느리 못 데려오면 너 못 돌아올 줄 알아. 네 직급 내가 뺄 수 있다는 거 알지? 이렇게 하는 걸로 하자.” 그녀는 말한 대로 행동한다는 것을 경소경은 잘 알고 있었다. 그저 한숨을 쉬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그 때, 보모가 와 하림에게 작은 소리로 말을 걸어왔다.“부인, 진함이라는 분께서 도련님을 뵙고 싶어 하세요.”하람은 의문이 들었다.“진함? 누군데? 여자 이름 같은데… 만나는 사람이야?”경소경의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엄마! 허튼 소리 하지 마세요. 목정침네 장모님 이세요! 먼저 들어오시게 해요, 저는 침대에서 내려가기가 불편해서…”하람은 말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급히 손으로 입을 가렸다.“그래그래,
목정침은 오늘 직접 운전을 한다며 진락에게 휴가를 내주었다. 그 뜻은 무슨 일이 생기던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그의 차가 외진 도로에 다다르자 뒤따르던 승용차는 역시나 빠른 속도로 따라붙기 시작하였다. 목정침은 가속 페달을 바닥까지 밟았고, 그를 따라 검은 승용차 또한 지지 않는다는 듯 붙어와 앞뒤로 추격전을 벌이게 되었다.그 때, 앞에서 오던 은색 차량이 조명을 깜빡이며 다가왔고, 빠르게 달리던 목정침이 브레이크를 밟으며 방향을 틀었으나 그는 그제서야 누군가 차에 손을 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명확했다. 이곳에 올 때 까지만 해도 멀쩡했으니 누군가 건들인 것이 확실했다.곧 차는 도로 중앙 분리대와 부딪혔고, 그의 몸은 공중에 붕 떠 측면으로 땅과 맞닿았다.붉은 피가 이마에서부터 눈까지 흘러 들어가 세상이 모두 붉게 보였다. 그의 의식은 점점 흐려져갔다.희미하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고, 소리를 들으려 정신을 다잡았다. 값 비싼 검정 구두 한 켤레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으나,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으나 고개를 드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저를 쫓아오던 검정 승용차의 주인 일 것이다.“목정침, 너도 오늘 같은 날이 오는구나. 한 평생 편히 살아왔으니, 바뀔 때도 됐지.”…퇴근을 한 온연이 돌아왔을 때는 왜 인지 분위기가 침울해져있었다. 저택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의식해왔었기에 이런 어두운 분위기는 생길 일이 거의 없었다. 평소였으면 웃으며 식사를 챙겨주었을 유씨 아주머니조차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연아, 씻고 어서 밥 먹어...”온연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바로 아주머니에게 질문했다.“무슨 일이에요 아주머니? 임집사님도 그렇고 왜 그래요?”유씨 아주머니는 긴장 가득한 두 손을 치마에 슥슥 문지르며 대답했다.“도련님… 사고나셨어. 입찰에 가셨다가 회사로 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어, 차까지 망가질 정도로…”교통사고?!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