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는 기분이 나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병실을 나갔다. 환자에겐 이미 보호자가 있었고 그렇게 된다면 간호하는 일은 자기랑은 별 상관없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몇 분 뒤, 진몽요의 팔이 저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 소변이 안 나오면 카테터라도 꽂아요. 괜히 무리하지 말고...”그녀의 말에 경소경의 얼굴이 불그락푸르락했다. “당신 정말… 당신은 지금 이 상황이 부끄럽지도 않아요? 아무리 전에 아버지를 간호한 적이 있다고 해도… 그래도 딸인데 그건 좀 아니지 않아요? 어머니도 계시잖아요…”진몽요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우리 엄마요? 우리 엄마가 기댈만한 사람이었다면 우리 아빠가 그렇게 고생하지는 않았겠죠. 우리 엄마는 먹고 노는 것만 할 줄 알지, 다른 건 아무것도 몰라요. 아마 내가 쓰러져도 매일 울기만 할걸요? 아무리 부끄러워도 내가 할 수 밖에 없죠. 우리 아빠가 쓰러졌을 땐 이미 간병인 부를 돈도 없을 때였거든요. 근데 당신이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지 않아요? 아까 간호사는 잘만 부르더니… 간호하라고 불러놓고 이렇게 부끄러워하면 어떻게요? 내가 당신 취향이 아니라서 그런 거에요?”왜 진몽요한테만 그렇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지 경소경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직업이랑 상관있어서 그런 건가? 진몽요가 전문적인 간호사도 아니고… 경소경은 진몽요가 자신을 간호하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겨우 볼일을 끝낸 그는 우울감에 빠져있었다. 우울감에 그는 더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진몽요는 털털하게 화장실로 들어가 소변기를 씻었다. 그녀는 심지어 입으로 노랫소리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그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조용히 해!”화장실에서 진몽요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전해졌다. 그렇다. 그녀는 그를 비웃고 있었다. 경소경은 보름이라는 시간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고 진몽요는 그런 그를 보름이나 되는 시간 동안 보살폈다. 그를 보살피는 동안 진몽요는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결국 경소경도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였다. 예전에 부
그녀는 실망감을 느끼는 자신에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 내가 실망하고 있는 거지? 애초부터 희망을 가질 것이 아니라 예전과 같이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그녀는 생각했다.점심 식사 시간, 회사 입구 앞 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으로 향하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어 가며 눈에 띄는 그를 흘끔거리며 바라보았고, 그는 도시락통을 손에 쥔 목정침이었다.그가 누구인지 알 턱없는 회사의 신입 사원들은 그를 두고 누구의 애처가인지 추측하였고, 곧 온연의 자리로 향하는 목정침에 그를 흘끔거리던 이들은 우왕좌왕하다 이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하였다.“무슨 일로 오셨어요?”매우 놀란 듯한 온연이 그에게 질문했다.“밥 먹어.”그는 군말없이 도시락 뚜껑을 열고는 온연에게 젓가락을 쥐여주었고, 그가 가져온 국과 반찬들은 보기만 해도 입맛이 도는 듯하였다.그의 주시 아래 온연은 별 말없이 식사를 시작하였으나 곧 적지 않은 양을 남긴 채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그 모습에 목정침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어왔다.“유씨 아주머니께 부탁한 건데, 입에 안 맞아?”“아니요… 꽤 싱거운 듯 해서요. 그리고 굳이 회사까지 갖다 주실 필요 없어요, 식당에서 때우면 돼요.”온연은 매일같이 식사를 챙겨오는 그를 견디기 힘들 것이고, 그것이 그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일 뿐이라면 더욱 불필요한 짓이었다. 다른 이를 시켜 전달만 해도 충분히 칭찬받을 수 있을 것이다.“내가 하겠다는 게 아니고, 아주머니께서 부탁하셔서 온 것뿐이야. 옳고 그른 거 판단 잘 해.”목정침은 늘어진 도시락을 정리하며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말했다.그의 태도에 온연의 마음 속 초조했던 감정들이 다시금 차올랐고, 홍수라도 난 것처럼 이내 터뜨려버리고 말았다.“언제부터 그렇게 유씨 아주머니 말을 잘 들으셨어요? 목가네 주인은 당신이고, 어찌됐건 아주머니는 하인일 뿐이잖아요? 그렇게 남들 눈 신경 쓸 거 없어요. 전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잘
그날 밤, 망설이던 온연은 이내 목정침에게 문자를 전송하였다.‘바쁘세요? 듣자 하니 회사 일 때문에 외국에 가셨다 던데...’한밤 중에 그에게 문자를 보낸 것은 시차를 고려한 선택이었다. 온연의 배려가 없었더라면 둘의 관계에서 원활한 상호 작용은 없었을 수도 있다.약 5분이 지나고 목정침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내 일로 신경 쓸 필요 없어. 스스로 몸부터 잘 챙겨.’온연은 한참 동안 핸드폰 화면 위의 글자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으나 보면 볼수록 답답해지기만 했다. 기꺼이 물어보았으나 이런 그의 태도를 마주하니 물어보지 않는 것이 나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이튿날, 목정침의 해외지사에 관한 뉴스들은 계속하여 보도되었고 인터뷰를 통해 지사의 폐쇄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해외 지사 뿐만 아니라 국내의 목가 산업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의 명예에 손실을 초래한 것이다.목가 산하의 보석점에서 가짜 보석을 샀다든가, 세금 탈루 의혹이 불거지며 국내외로 의견들이 분분하였다.이 소식을 들은 온연은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목정침은 신이 아닌 사람이었다. 결국은 그 역시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것인데 돌연 이런 일이 생기다니, 과연 어떻게 수습할 것일까?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온연은 곧 동료들에게 둘러싸였고, 모두가 그녀에게 제각기 질문을 해댔다.“집에 무슨 일 있는 거예요? 들어보니까 가짜를 샀다고 하던데, 정말 가품이었어요? 회사 재정에 문제라도 생겼나요? 그렇게 돈이 많은데 탈세라니… 거짓이죠?”온연은 매우 거슬리는 눈치였다. 다른 이들이 목정침을 모독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아시는 것처럼 다 추측일 뿐이에요. 집안이며 사업이며 커다란 규모에 평판도 좋은데, 왜 굳이 그런 손해보는 짓을 했겠어요? 돈이 떨어졌다는 거야 말로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만약 정말 그 사람이 손을 써서 모조품을 비싼 값에 팔았다 해도 그건 명백히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짓인데, 그 사람은 절대 그렇게 못할 걸 저는 알아요
온연은 이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어딘가 기묘한 감정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목정침이었으나 그가 한창 바쁠까 두려워 우선 진몽요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로 하였다.진몽요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니 온연의 눈꺼풀은 점점 감겨왔고,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잠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희미하게 누군가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혼미한 정신이었으나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며 항상 경계심을 가졌었기에 온연은 놀라며 깰 수밖에 없었다.“누구야?!”방 안이 조명으로 인해 일순간 밝아졌다. 그 자리에 서있던 이는 목정침이였고, 매우 피곤한 듯 나른한 얼굴이었다.“나야, 다시 자도 돼. 난 먼저 씻으러 가볼 거야.”온연은 안도하며 숨을 폭 내쉬었고, 다시금 자세를 바로잡은 뒤 천천히 눈을 감았다.목정침은 그녀가 다시 누운 것을 확인하고서야 욕실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방금 상황은 그 역시 놀랐다. 분명 충분히 기척없이 들어왔다 생각했는데, 온연이 놀라며 깨어날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온연은 샤워실에서 들리는 물소리에 쉽게 잠이 들 수 없었다. 그가 오늘 밤 돌아올 것이라 생각도 못 했을 뿐더러 당분간은 해외에서 지낼 것 이라 알고있었기 때문이다.샤워 후 욕실에서 나온 목졍침은 눈을 뜨고있는 온연의 모습에 잠시 멍할 수밖에 없었다.“난 서재로 갈게, 그게 편할 테니까. 알아서 자도록 해.”온연은 피곤함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의 눈을 보았다. 곧 몸을 뒤척이며 자리를 옮겨 한사람이 누울 자리를 만든 온연이 말했다.“바쁜 건 내일 하고, 오늘은 우선 자요.”“아니야… 불편할 거야.”목정침은 서있던 그 자리에서 꿈쩍 않은 채 말했다. 온연의 부른 배를 보니 두려움이 생겼다. 혹시라도 잠을 자다 배를 건드릴까, 상상도 하기 싫었다. 게다가 온연 역시 자신이 조금이라도 뒤척이면 편히 잠들지 못 할 것이었다. 그의 뜻을 깨달은 온연이 무언가 핑계를 만들어냈다.“허리가 시큰거려서… 잘 수가 없어요.”그는
그녀가 내민 시계를 본 온연은 숨이 턱 막히며 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그 시계는 온연에게 매우 익숙하였다. 확실히 목정침이 평소에 차던 시계였다. 어젯밤 목정침이 돌아왔을 때, 그의 손목이 어딘가 허전 했었다. 그 말은… 그가 저택으로 돌아오기 전 강연연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온연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발견한 강연연은 자만하듯 시계를 온연의 앞에 내려놓았다.“정침 오빠 탓하지는 마. 요즘 스트레스도 심한데 네가 임신까지 했잖아, 얼마나 불편하겠어… 내가 아니였으면 다른 여자가 있었을 거야. 속상하겠지만 내가 네 의무를 대신해주는 거잖아? 고맙다는 말은 됐어~”온연은 시계를 집어 들고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더 할 말없으면 그만 가볼게.”이걸로 강연연은 목적을 모두 달성하였고, 그녀 역시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그래. 임립 오빠한테 내 안부도 좀 전해줘. 새 회사 아주 멋지다고, 잘되길 기원한다고.”온연은 곧바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가져온 시계를 바라보고있자니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곧 시계를 챙겨 넣은 온연은 일에 집중하기로 한다. 어쨌든 목정침의 물건이었기에 그에게 다시 돌려줘야만 했다.그날 저녁, 저택에 돌아오니 유씨 아주머니의 따뜻한 반찬들이 준비 되어있었다.“연아, 씻고 어서 밥 먹어. 저번에 도련님께서 네가 싱거워 했다고 알려주셔서 이번에는 고추를 좀 더 넣어봤어. 임산부가 신 걸 좋아하면 아들이고 매운 걸 좋아하면 딸이라 던데, 여자애 둘인가보다!”온연은 농담을 주고받을 기분이 아니었다. 가방 속 시계가 마치 시한폭탄처럼 느껴졌다.“아주머니, 목정침도 돌아와서 같이 식사하나요?”유씨 아주머니는 고개를 내저었다.“전화해봤는데, 같이 식사 못 하신대. 너 밥 챙기고 일찍이 자게 하라고 하시더라. 기다릴 필요 없어, 그래도 네가 여기 있으니까 늦게라도 꼭 들어오실 거야.”식사를 마친 후 온연은 탕위엔을 잠시동안 놀아준 뒤 바로 방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니 한결 편안 해졌으나
기분이 정말 괜찮았다. 온연은 탕위엔을 안아 올리며 대답했다.“어차피 늦은 거, 점심 먹은 뒤 오후에 출근 해야겠어요.”그 때, 그녀의 뒤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온연은 의식적으로 탕위엔을 내려 놓았다. 그가 목정침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고양이랑 오래 있지 말고. 먼저 출근할게, 나갈 일 있으면 임집사한테 바래다 달라고 해.”목정침의 걸음은 급했고, 양복 단추마저 이제야 급히 채우고 있었다. 아침의 금빛 햇살이 그에게 내리 쬐었고, 어딘가 신성한 느낌이 들어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였다.온연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주방으로 자리를 옮겼고, 유씨 아주머니를 찾아 먹을 것을 부탁하였다. 곧 배고파 쓰러질 것 같았다.강가네 별장.강연연은 오전 내내 주방에서 바삐 지냈다. 다른 이유는 없었고, 오후에 진함이 와 식사를 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강균성은 소파에 앉아 수심에 찬 얼굴을 한 채였다. 이혼 후, 그는 회사에 힘을 쓸 여력이 없었다. 결혼 후 몇 년간 진함의 도움을 받아 일을 처리 했었기에 그 혼자서는 거의 손을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결혼 전에는 집안에 큰 어른도 계셨고, 회사 역시 걱정할 것이 없었기에 그의 자존감은 하늘을 찔렀었다. 당연히 진함이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믿은 것이다. 이제 와 점점 깨닫게 되었다. 그는 그 세월 동안 무능력자가 되어있었고, 진함이 떠난 시점부터 고난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두 부녀는 서로 다른 속셈을 가진 채였다. 강균성은 그녀와의 이혼을 만회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강연연은 진함을 가장 잘 알았고, 그녀가 강가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잘 알았다. 강연연은 진함의 재산을 원할 뿐이었다.11시가 지났을 무렵, 진함은 이혼 후 처음으로 강가네 대문을 열었다. 강균성은 그녀를 의식하며 비싼 양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부터 발 끝까지 빈틈없이 치장하였다. 진함이 가장 좋아한다 말 했던 모습이었다. 수년 간을 제멋대로 하던 그가 이제서야 그녀의 의견을 들어준 셈이었다.
말을 마친 진함은 가방을 챙긴 뒤 그대로 그 곳을 나섰다. 밥을 같이 먹을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 집을 떠난지 꽤 오래 되었는데도 진함을 잘 찾지도 않던 그들이었기에 갑작스러운 초대는 역시 진함의 예상대로였다.강연연은 화가 극에 달한 듯 식탁을 세게 내리쳤다.“온연! 정말 가만두지 않을 거야!”강균성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전의 애교 많던 자신의 딸이 맞는가? 눈빛이 저렇게나 무서울 수가 없었다.…경가 공관, 하람이 경소경의 침대 끝에 앉아 사과를 깎아주며 불평스러운 투로 말했다.“너 말이야. 또 이렇게 맞고 몸 엉망 되면 어떡할래? 우리 집안 후계자도 아직 없는데. 언제쯤 조바심 안 나게 해줄 거니? 언제 결혼할 거야?”경소경이 머리가 지끈거려왔다.“엄마… 그 일은 그만 얘기하면 안 돼요? 내 인생 목표는 경가를 크게 키우는 거고, 제가 만족하기 전까지는 결혼 생각 없어요.”하람이 비웃 듯 대답했다.“우리는 목가네랑은 비교 못하지만 그래도 꽤 괜찮아. 제도에서 알아준다고. 네가 목가를 넘어서면 뭐 어떻게 할 거니? 가업을 이을 자손이 없는데, 한 평생을 일만 할 거야? 그만 농담하고. 내가 봤을 땐 너 하루이틀이면 다 나을 것 같으니까 내가 한 달은 줄게, 그때까지 며느리 못 데려오면 너 못 돌아올 줄 알아. 네 직급 내가 뺄 수 있다는 거 알지? 이렇게 하는 걸로 하자.” 그녀는 말한 대로 행동한다는 것을 경소경은 잘 알고 있었다. 그저 한숨을 쉬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그 때, 보모가 와 하림에게 작은 소리로 말을 걸어왔다.“부인, 진함이라는 분께서 도련님을 뵙고 싶어 하세요.”하람은 의문이 들었다.“진함? 누군데? 여자 이름 같은데… 만나는 사람이야?”경소경의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엄마! 허튼 소리 하지 마세요. 목정침네 장모님 이세요! 먼저 들어오시게 해요, 저는 침대에서 내려가기가 불편해서…”하람은 말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급히 손으로 입을 가렸다.“그래그래,
목정침은 오늘 직접 운전을 한다며 진락에게 휴가를 내주었다. 그 뜻은 무슨 일이 생기던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그의 차가 외진 도로에 다다르자 뒤따르던 승용차는 역시나 빠른 속도로 따라붙기 시작하였다. 목정침은 가속 페달을 바닥까지 밟았고, 그를 따라 검은 승용차 또한 지지 않는다는 듯 붙어와 앞뒤로 추격전을 벌이게 되었다.그 때, 앞에서 오던 은색 차량이 조명을 깜빡이며 다가왔고, 빠르게 달리던 목정침이 브레이크를 밟으며 방향을 틀었으나 그는 그제서야 누군가 차에 손을 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명확했다. 이곳에 올 때 까지만 해도 멀쩡했으니 누군가 건들인 것이 확실했다.곧 차는 도로 중앙 분리대와 부딪혔고, 그의 몸은 공중에 붕 떠 측면으로 땅과 맞닿았다.붉은 피가 이마에서부터 눈까지 흘러 들어가 세상이 모두 붉게 보였다. 그의 의식은 점점 흐려져갔다.희미하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고, 소리를 들으려 정신을 다잡았다. 값 비싼 검정 구두 한 켤레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으나,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으나 고개를 드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저를 쫓아오던 검정 승용차의 주인 일 것이다.“목정침, 너도 오늘 같은 날이 오는구나. 한 평생 편히 살아왔으니, 바뀔 때도 됐지.”…퇴근을 한 온연이 돌아왔을 때는 왜 인지 분위기가 침울해져있었다. 저택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의식해왔었기에 이런 어두운 분위기는 생길 일이 거의 없었다. 평소였으면 웃으며 식사를 챙겨주었을 유씨 아주머니조차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연아, 씻고 어서 밥 먹어...”온연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바로 아주머니에게 질문했다.“무슨 일이에요 아주머니? 임집사님도 그렇고 왜 그래요?”유씨 아주머니는 긴장 가득한 두 손을 치마에 슥슥 문지르며 대답했다.“도련님… 사고나셨어. 입찰에 가셨다가 회사로 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어, 차까지 망가질 정도로…”교통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