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연은 그녀에게 냉수 한 잔을 건네주었다. “자, 시원하게 물 좀 마셔. 맛있는 음식이 있는 자리에 어떻게 널 빼놓겠어. 너도 나 항상 챙겨주잖아.”진몽요는 부끄러운 듯 살짝 웃어 보였다. “넌 말도 참… 이러면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겠잖아. 맞다, 너 목정침이랑은 어떻게 됐어? 강연연이 회사에 못 들어가게 하려고 저번에 내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막았는데. 난 걔 같은 년이 제일 꼴 보기 싫더라. 정말 염치도 없지!” 온연의 가슴속에 감동이 물밀듯 몰려왔다. "나도 알아… 고마워 몽요야. 근데… 나랑 목정침 그냥 그래. 그 사람 요즘 우리 집에서 지내면서 탕위엔 돌보는 거 도와주고 있어. 계속 말다툼만 하는 것 같아. 아무래도 전생에 원수였나 봐. 성격도 안 맞고. 세대 차이가 너무 나서 그런 건지도 몰라. 내가 그 사람보다 열 살이나 어리잖아." 진몽요가 손을 휘적거렸다. "성격이 안 맞고 세대 차이가 난다는 게 무슨 말인데. 헛소리 그만해. 그럼 너보다 나이도 어린 강연연은 어떻게 벌써부터 네 남자 뺏을 생각하는 건데? 다 네 문제야. 넌 어떻게 해야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모르잖아. 그 남자가 사로잡을 만한 남자인지 아닌지 중요하긴 하다만. 그 사람, 너 대신 탕위엔 돌봐주는 것부터 이미 괜찮은 것 같은데. 그 사람이 누구야, 평범한 남자가 아니라 목정침이잖아. 고양이 하나 돌봐준다고 그 비좁은 아파트에서 사는 거 너 하나 보고 그런 거 아니야? 그 사람이 미친 건 아닐 거잖아." 어젯밤 자기 전에 했던 짓이 떠오르자 온연의 얼굴이 자기도 모르게 빨개졌다. 온연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몽요야, 너 옛날에 전지 좋아했을 때 엄청 가까이서 마주 보면 이상한 느낌 들지 않았어?" 진몽요는 자세히 생각해 보고는 말했다. "설마 지금 갑자기 두 눈이 마주쳐서 몸이 달아올라 키스하는 그런 얘기 하는 건 아니지? 그냥 찌릿찌릿한 느낌이지 뭐. 가슴에서 설레는 감정이 느껴질 거야.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거 말이야. 어떻게 해도
경소경은 눈썹을 들썩였다. "십 년 동안 일편단심이었는데 그걸로도 부족해요? 전 반년 이상 옆에 둔 여자가 없어요. 길어봤자 일 년이고요. 정침이 정도면 순애보 맞는데." 진몽요는 그의 생각에 동의할 생각이 없었다. "뭐가 십 년인데요? 그땐 연이 아직 어릴 때였잖아요. 결국 목정침도 바람피우지 않았나요? 일편단심은 무슨, 당신네들은 버리지만 않으면 일편단심이라고 생각하나 보죠? 순애보라는 건 몸과 마음이 같아야 하는 거예요.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고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불편함을 느꼈다. "미안해 연아… 내가 말을 잘못했어…" 온연은 전혀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괜찮아. 강연연이랑 그 사람 일 말하는 거 아니야? 그 일에 대해서 말하는 거 전혀 신경 안 써. 괜찮아. 진짜로." 그녀가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몽요와 경소경은 그 화제를 그만두었다. 다른 사람의 아픈 곳을 들먹이는 것에 흥미가 있는 사람은 없다. 밥을 다 먹은 후 경소경은 책임을 다해 온연을 아파트까지 데려다주려고 했다. 날씨가 더운 탓에 온연도 여기저기 돌아다닐 생각이 없었기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진몽요가 황급히 말했다. "그럼 나 가는 길에 태워주면 안 돼요? 좀 이따 빈해로에 갈 일이 있는데 마침 지나가는 길이라." 온연을 집에다 데려다준 후 경소경과 진몽요 두 사람만이 차에 남았다. 경소경은 곧은 시선으로 정면만 주시하며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 "빈해로에는 뭐 하러 가는데요?" 진몽요는 한숨을 쉬었다. "엄마가 선자리을 마련했어요. 안 가면 죽을 시늉까지 하더라고요. 그냥 편하게 살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한번 가 보죠 뭐. 똥차가 아니라 왕자님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아요? 전 당신이랑 달라요.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어요." 경소경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에게 팩폭을 했다. "데이트를 점심시간 이후에 잡는 사람은 짠돌이일 가능성이 커요. 첫 만남 부터 이렇게 성의가 없는데 무슨 왕자님을 만나
만나보자고? 벌써? 진몽요는 그의 말이 너무 성급하다 생각했다. "너무 성급하진 않나요? 천천히 알아가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주개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우리 모두 성인이고, 이젠 딱 보면 알 수 있지 않나요? 잘 맞을지, 아닐지? 오늘 밤에 약속 있어요? 같이 밥이라도 먹을래요?" 진몽요는 이번 선 자리에서 주도권을 뺏겼다. "그래요…" 갑자기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당황스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여보세요?" "너한테 온 편지가 있어. 경비실에 뒀으니까, 까먹지 말고 챙겨." 편지?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서영생이 떠올랐다. 이 일은 온연에게도 그녀에게도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그녀는 전화를 끊은 후 주개에게 말했다. "저 급한 일이 생겨서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저녁에 상황 보고 연락 드릴게요. 그럼 실례할게요!" 주개의 반응이 어떤지 확인할 새도 없이 진몽요는 급히 카페를 떠났다. 편지를 받은 그녀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역시 서영생이 보낸 편지가 맞았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택시를 잡아 온연에게 편지를 가져다주었다. 목정침이 공짜로 준 차는 벌써 강령이 가져가 버렸다. 그 차를 팔기에도 다시 돌려받기에도 너무 늦어버렸다. 진몽요는 숨을 헐떡이며 온연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편지, 서영생이 보낸 거야. 얼른 열어봐!" 온연은 그녀에게 물 한잔을 부어주며 느긋하게 편지를 열어보았다. 급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녀는 괜히 기대를 하고 싶지 않았다. 편지에는 여전히 얼마 되지 않은 내용이 쓰여있었다. '당신이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 난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거에요.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나에게도 지키고 싶은게 있어요. 이 일 더는 파헤치지 말아요. 당신한테 좋은 점이 하나도 없으니까. 그냥 당신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만 알아둬요. 이 편지는 내가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
온연은 그 남자가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괜찮다고 대답했다. "괜찮은데? 한번 만나봐. 네 마음 따르는 거지 뭐." 목정침은 그제야 진몽요도 이곳에 있다는 걸 알아챘다. 데이트를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갑자기 화장실에서 손님 몇 명이 황급히 뛰쳐나오더니 곧이어 직원 몇 명이 화장실로 뛰쳐들어갔다. 보아하니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진몽요는 주개가 아직 돌아오지 않을 걸 보자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자기가 화장실로 들어가기에는 좀 아닌 것 같아 목정침을 보며 말했다. "선배님, 저 대신 들어가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좀 봐주실래요? 주개가 한참 동안 안 나와서… 무슨 일 생긴 것 같은데." 목정침은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온연의 얼굴에 도무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냉랭한 얼굴로 화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인파를 뚫고 들어가자마자 눈에 보이는 바닥의 핏자국에 그는 당황했다. 경소경이 주개를 바닥에 눕혀놓고 거의 죽일 기세로 패고 있었다. 주개는 이미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목정침은 경소경이 어떤 이유로 그런 행동을 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그는 앞으로 걸어가 경소경을 잡아당겼다. "소경아, 그만해." 주개가 버둥거리며 바닥에서 일어나 경소경에게 삿대질을 했다. 경소경의 얼굴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겨우 이까짓 레스토랑 주인뿐이면서? 너 딱 기다려! 내가 네 레스토랑 꼭 망하게 한다!" 경소경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는 자신의 정장 외투를 한쪽에 벗어 던지고는 주개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목정침이 그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그냥 가게 내버려 둬. 여기서 소란 피우지 말고 나중에 얘기해." 주개는 허겁지겁 도망쳤다. 테이블을 지나칠 때 분명 진몽요를 봤음에도 모른 척하고 가버렸다. 주개의 처참한 얼굴에 진몽요는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온연이 목정침에게 물었다. "경소경이랑 얘기는 해봤어요? 왜 그런 거래요?" 목정침은 그녀에게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 남자 쓰레기니까 진몽요한테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해." 그녀는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눈치챘다. "일찍 좀 알려주지… 몽요한테 말해줄게요. 근데 왜 몽요한테 바로 알려주지 않았어요? 그게 더 나았을 텐데." 그는 마치 바보를 보는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흘겨보았다. "가끔은 바로 알려주는 게 더 바보 같은 짓이야. 뭐든 조금 돌려 얘기하는 게 더 나아." 밤 11시, 백수완 레스토랑은 이미 영업이 끝났다. 경소경은 차키를 들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차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뛰쳐나왔고 그 사이로 주개가 의기양양하게 차에서 내렸다. "새끼, 아까는 네 입맛대로 때리기만 했지?" 경소경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누가 말리지만 않았어도 넌 지금쯤 병원에 누워있었을 거야." 주개는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더니 바닥에 침을 뱉었다. "말해봐. 때린 이유가 뭐야? 딱히 봐줄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이유는 알고 싶네. 난 너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고작 레스토랑 사장 주제에 무슨 배짱으로 그런 건데?" 경소경이 냉소했다. "주먹질하는데 이유가 없는 스타일이라. 덤벼." 주개가 손짓하자 주위에 있던 열 몇 명의 사람들이 경소경에게로 달려들었다. 주개는 경소경을 봐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경소경이 싸움을 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일부러 전문 격투선수들로 골랐다. 경소경이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그 많은 인원을 상대하기에는 조금 버거웠다. 반 시간 뒤, 경소경은 결국 주개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쓰러트렸다. 하지만 경소경의 몸 상태는 그리 낙관적이지 못했다. 갈비뼈가 적어도 두 대 정도는 골절된 것 같았고 오른쪽 손목도 탈골되었다. 다행히도 아직 서 있을 수는 있었
진몽요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찼다. "잠시만요, 당신이… 경소경의 어머님? 어머님 안녕하세요. 제가 경소경이랑 아는 사이인 건 사실이에요. 제 회사 대표님이기도 하고, 제 친구 남편의 친구이기도 해요. 하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는 일이에요." 하람은 가방에서 글자가 빽빽하게 적힌 서류를 꺼냈다. "설명하기 귀찮으니 알아서 봐요. 내가 알게 된 모든 사실이에요." 진몽요는 조금 긴장이 되었다. 그녀는 서류를 받아들어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서류에는 사건의 기승전결이 자세하게 적혀있었다. 어제 경소경이 백수완 레스토랑에서 주개를 폭행한 사실부터 그 후에 일어난 모든 사실까지. 그녀의 마음이 착잡해졌다. 경소경이 나 때문에 주개를 때린 건가? 보복까지 당하고… "어머님, 죄송해요…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경소경이 주개를 때렸을 때는 무슨 일 때문에 그런 건지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지금 어느 병원에 있나요? 제가 한번 가볼까요?" "한번 가본다고? 보기만 하면 끝이에요? 소경이 파혼하게 만든 것도 당신이죠? 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굴어요? 내 아들이 좋다면 집안이고 뭐고 다 상관없으니까 부담감 느낄 필요 없어요. 오늘부터 병원에서 소경이 좀 보살펴 줘요. 두 사람이 잘 된다면 그쪽이 내 며느리가 되겠지만 만약 아니라면 위자료를 물어야 할 거예요." 하람의 직설적인 말에 진몽요는 그만 얼어버렸다. 진몽요에게도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일들이 있다. 진몽요는 해명하기를 포기했다. 지금 진몽요에겐 경소경이 어떤지 확인하는 게 더 급한 일이었다. 강령이 집에 없는 게 정말 다행이었다. 강령이 있었다면 오르지 못할 나무에 오르겠다고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하람이 직접 진몽요를 '압송' 했다. 병원에 가는 길 내내 진몽요는 편히 앉아있지 못했다. 하람은 그녀를 병원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하람에게는 진몽요랑 같이 병원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난 안 갈 테니까
간호사는 기분이 나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병실을 나갔다. 환자에겐 이미 보호자가 있었고 그렇게 된다면 간호하는 일은 자기랑은 별 상관없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몇 분 뒤, 진몽요의 팔이 저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 소변이 안 나오면 카테터라도 꽂아요. 괜히 무리하지 말고...”그녀의 말에 경소경의 얼굴이 불그락푸르락했다. “당신 정말… 당신은 지금 이 상황이 부끄럽지도 않아요? 아무리 전에 아버지를 간호한 적이 있다고 해도… 그래도 딸인데 그건 좀 아니지 않아요? 어머니도 계시잖아요…”진몽요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우리 엄마요? 우리 엄마가 기댈만한 사람이었다면 우리 아빠가 그렇게 고생하지는 않았겠죠. 우리 엄마는 먹고 노는 것만 할 줄 알지, 다른 건 아무것도 몰라요. 아마 내가 쓰러져도 매일 울기만 할걸요? 아무리 부끄러워도 내가 할 수 밖에 없죠. 우리 아빠가 쓰러졌을 땐 이미 간병인 부를 돈도 없을 때였거든요. 근데 당신이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지 않아요? 아까 간호사는 잘만 부르더니… 간호하라고 불러놓고 이렇게 부끄러워하면 어떻게요? 내가 당신 취향이 아니라서 그런 거에요?”왜 진몽요한테만 그렇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지 경소경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직업이랑 상관있어서 그런 건가? 진몽요가 전문적인 간호사도 아니고… 경소경은 진몽요가 자신을 간호하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겨우 볼일을 끝낸 그는 우울감에 빠져있었다. 우울감에 그는 더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진몽요는 털털하게 화장실로 들어가 소변기를 씻었다. 그녀는 심지어 입으로 노랫소리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그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조용히 해!”화장실에서 진몽요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전해졌다. 그렇다. 그녀는 그를 비웃고 있었다. 경소경은 보름이라는 시간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고 진몽요는 그런 그를 보름이나 되는 시간 동안 보살폈다. 그를 보살피는 동안 진몽요는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결국 경소경도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였다. 예전에 부
그녀는 실망감을 느끼는 자신에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 내가 실망하고 있는 거지? 애초부터 희망을 가질 것이 아니라 예전과 같이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그녀는 생각했다.점심 식사 시간, 회사 입구 앞 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으로 향하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어 가며 눈에 띄는 그를 흘끔거리며 바라보았고, 그는 도시락통을 손에 쥔 목정침이었다.그가 누구인지 알 턱없는 회사의 신입 사원들은 그를 두고 누구의 애처가인지 추측하였고, 곧 온연의 자리로 향하는 목정침에 그를 흘끔거리던 이들은 우왕좌왕하다 이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하였다.“무슨 일로 오셨어요?”매우 놀란 듯한 온연이 그에게 질문했다.“밥 먹어.”그는 군말없이 도시락 뚜껑을 열고는 온연에게 젓가락을 쥐여주었고, 그가 가져온 국과 반찬들은 보기만 해도 입맛이 도는 듯하였다.그의 주시 아래 온연은 별 말없이 식사를 시작하였으나 곧 적지 않은 양을 남긴 채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그 모습에 목정침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어왔다.“유씨 아주머니께 부탁한 건데, 입에 안 맞아?”“아니요… 꽤 싱거운 듯 해서요. 그리고 굳이 회사까지 갖다 주실 필요 없어요, 식당에서 때우면 돼요.”온연은 매일같이 식사를 챙겨오는 그를 견디기 힘들 것이고, 그것이 그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일 뿐이라면 더욱 불필요한 짓이었다. 다른 이를 시켜 전달만 해도 충분히 칭찬받을 수 있을 것이다.“내가 하겠다는 게 아니고, 아주머니께서 부탁하셔서 온 것뿐이야. 옳고 그른 거 판단 잘 해.”목정침은 늘어진 도시락을 정리하며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말했다.그의 태도에 온연의 마음 속 초조했던 감정들이 다시금 차올랐고, 홍수라도 난 것처럼 이내 터뜨려버리고 말았다.“언제부터 그렇게 유씨 아주머니 말을 잘 들으셨어요? 목가네 주인은 당신이고, 어찌됐건 아주머니는 하인일 뿐이잖아요? 그렇게 남들 눈 신경 쓸 거 없어요. 전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잘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