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씨 아주머니는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서영생.”온연은 순간 얼어붙었다.“서영생이요? 확실한거예요?”서영생, 여영생,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유씨 아주머니는 다리를 탁 치며 말했다.“나도 이제 누군지 생각났어. 분명 이 이름이 맞을거야. 비록 이미 십 몇 년이나 지났지만, 내가 다 까먹을 정도로 늙진 않았지. 서영생이였어, 생긴건 못생겼는데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였지, 말수도 별로 없고. 생각해보니까 그도 운이 좋았지, 원래 같이 비행기 타기로 한 거였는데 갑자기 장염이 걸렸다고 오전내내 화장실에서 못 나와서 할아버지가 휴가내라고 하셨지 뭐야.”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온연은 탐정한테 여영생이 요양원 들어올 때의 자료와 사진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유씨 아주머니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말했다.“전보다 많이 늙었다, 그래도 얼굴 보니까 딱 서영생이구만, 너무 늙어서 못 알아볼 뻔 했잖아.” 온연은 너무 신나서 손이 떨렸다.“아주머니 다시 잘 봐봐요, 확실한거에요?” 유씨 아주머니는 혹시 자기가 잘못 봤을까 싶어 임집사에게도 보여줬다. 임집사는 목씨 집안사람들을 다 정확히 기억해서 한 눈에 알아봤다.“맞네, 그때 그 할아버지 운전기사 서씨.” 이 대답을 듣고, 온연은 마음이 놓였다. 비록 아직 탐정이 여영생이 개명했는지에 대해서 아직 찾아내지 못했지만,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여영생이 온연을 속인 것 이다! 게다가 목씨 집안의 운전기사였다니, 그럼 내부사정은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고, 당시에 비행기에 올라타기 전에 갑자기 못탄게 좀 의문인데, 혹시 비행기가 사고 날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그녀는 당장 요양원으로 달려가 여영생에게 묻고 싶었지만, 시간이 늦었고 그가 몸이 안좋기도하니 내일 다시 가기로 했다. 한가지 더 이상한 점은, 여영생의 고급 요양원이다. 그는 운전기사 출신인데 어떻게 이런 고급 요양원에 살 수 있을까? 자식들이 출세한 게 아닌 이상 의심해봐야할 필요가 있다.
목청침과 강연연의 일에 대해서 온연은 진몽요에게 숨기고 있었는데, 더 이상 숨길 수없었다.“몽요야, 나 사실 이미 알고 있었어. 목청침이 강연연이랑 다신 연락 안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나도 이렇게 약속을 어길 줄 몰랐어. 일단 그 사람이 지금 출장 중이니까 갔다 오면 다시 물어볼 게, 그러니까 절대 너가 나서지마, 내가 해결할 수 있어. 약속해줘.” 진몽요는 벙찐채로 말했다.“뭐라고? 어쩐지 강연연이 너를 가만두지 않더라니. 집안일이 아니고 이것 때문이였어? 목청침도대단하네! 언니랑 결혼한 것도 모자라 이젠 동생까지, 이런 인간인 줄은 몰랐네. 이런 거 알면 세상 사람들이 퍽이나 걔 좋다고 하겠다. 역시 남자들은 똑같아.” 온연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 얼른 화제를 돌렸다.“저기…내가 문득 서씨가 우리 아빠랑 아는 사이일 거 라는 생각이 들어서 유씨 아주머니랑 임집사님께 물어봤더니, 진짜로 단서가 나왔지 뭐야. 서씨 이름이 서영생이래, 예전에 목청침 아빠의 운전기사였데. 그리고 내가 여영생의 사진까지 보여줬는데 이 사람이 서영생이라고 하더라고.우리가 속았어. 여영생이 서영생이야. 내일 퇴근하고 나랑 같이 요양원에 가자.” 온연은 진몽요의 화제를 돌리는 데에 성공했다.“사실이야? 괜히 발로 뛰어서 고생했네, 진작에 그 분들께 물어볼 걸 그랬어. 좋아, 우선 이 일이 더 중요하니까 청침이 일은 나중에 해결하자. 전화를 끊고 온연은 더 잠에 들 수 없었다. 목청침과 강연연이 같이 뭐하고 있는지를 모르니그녀는 누군가 심장을 쥐어짜는 것만 같았다. 예전엔 절대 이런 일은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치만 약속한 건 지켜야 하는거 아닌가? 긴 고민 끝에 그녀는 전화를 걸었다. 긴 통화연결음 끝에 목이 잠긴 채로 목청침의 목소리가들려왔다.“여보세요..”“어디야?” 온연은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렸다.목청침은 비몽사몽 한채로 대답했다.“출장왔지, 호텔이야, 이제 잠 들었는데.. 2틀후면 갈 꺼야, 왜 갑자기 이 새벽에 전화한 거야? 무슨일 있어?” 온
임집사는 목청침과 몇 마디 더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온연은 식탁에서 죽을 먹으며 좀 찜찜한 마음에 물었다.“아저씨, 걔가 또 뭐래요?” 임집사는 정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도련님이 기다리래.”“기다리라면 기다리는거지 누가 무서울 줄 알고?”온연은 말은 이렇게 해도 속으로는 내심 불안해했다. 오후에 퇴근하고 그녀는 진몽요와 함께 다시 요양원에 갔다. 여영생의 방 앞에 도착하자마자 문이 활짝 열려 있고 아주머니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안에 왜 사람이 없지?진몽요는 다급하게 물었다.“아주머니, 여기 살던 사람은요? 여영생은요?” 아주머니는 이들을 보더니 이내 말했다.“오늘 아침 일찍 가족들이 데리고 갔는데?” 온연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갔다고요? 어딜요?”아주머니는 고개를 저으면 말했다.“그건 나도 모르지. 듣자 하니 병원 옮긴다는 거 같던데. 여영생씨는 여기 3년이나 있었어, 암에 걸렸는데, 여기 막 들어왔을땐 수술하면 살 가능성이 있다고 했는데 가족들이 수술을 못하게 하나봐. 혹시라도 잘못될 까봐. 그래서 하루라도 더 살려고 여기 있었던거지. 지금은 뭐 수술하고 싶어져도 너무 늦어서 못할 꺼야.” 온연은 다리가 떨려 벽에 기대어 말했다.“아주머니.. 혹시 가족들 어떻게 생겼는지 보셨나요?” 아주머니는 여영생의 가족이 인상깊었는지 말했다.“젊은 청년이였어. 얼굴도 잘 생기고, 키도 크고, 올때마다 양복을 빼 입고 오는데 꽤 비싸 보이던데? 물건들도 항상 제일 좋은 걸로 가져오고, 이 방 보면 딱 알지, 뭐든 제일 좋은 걸로 해줬어. 여영생은 복도 많지, 아들이 효자라서. 게다가 얼굴도 훨씬 잘생겼잖아.” 이 사실은 온연이 알고 있던거랑 좀 달랐다, 여영생이 목씨 집을 떠날 땐 분명 미혼이었는데,갑자기 어디서 아들이 나타난거지? 아무리 계산해봐도 아들이 기껏해봐야 열 몇살일텐데… 그녀는 여영생이 여길 떠난 이유가 자신이 자주 방문해서 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피하고 싶었던 거겠지. 곧 생을 마감할 사
돈을 받은 탐정은 다시 열심히 수사에 나섰다. 통화를 끊은뒤, 진몽요는 온연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연아, 괜찮아, 이런 일이 한두번도 아니고, 여영생이 죽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찾아낼 수 있어. 그사람이 서씨인줄 알았으면 도망이라도 못 가게 했을 텐데 말이야. 이 사람도 진짜 너무하네,괜히 잘 지내고 있는 너한테 그런 편지를 보내놓고 이제와서 사라지다니. 자기는 곧 죽을지 모르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은 어쩌라는 거야?” 온연은 웃으며 말했다.“내가 찾을 수 있을꺼야, 그가 전에 목씨 집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으니, 그에 대한 정보는 내가 다손에 넣을 수 있어. 죽지만 않는다면, 내가 찾아 내야지.” 이때 갑자기 진몽요의 휴대폰이 울리자 그녀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아 짜증나, 엄마한테 알아서 배달 시켜 먹으라고 돈까지 줬는데 나한테 왜 또 전화하는거야..”라며 진몽요가 투덜거리며 휴대폰을 봤는데 엄마가 아니고 모르는 발신자였다. 온연은 혼이 빠져 요양원 문 밖으로 걸어가는데 진몽요가 불렀다.“연아! 네 애인!”온연은 화들짝 놀랐다.“뭐라고?”진몽요는 핸드폰을 가르키며 말했다.“목청침! 나한테까지 전화왔어!” 온연은 눈썹을 찡그렸다, 목청침이 자신을 찾기 위해 이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왜?” 목청침의 목소리가 들렸다.“왜냐고? 너야말로 뭐야? 어제 저녁이 갑자기 전화해선 맘대로 끊어버리고, 아침엔 휴대폰도 ㅇㄹ부러 꺼놓고. 내가 진몽요한테 전화하지 않았으면, 너 못 찾을까봐 전화했다. 나 지금 가는 길이야, 나 만나기 전에 어떻게 변명할지 미리 생각해 둬.”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들은 진몽요는 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변명해야 되는 사람은 너지 이 바보야! 난 너처럼 쓰레기 같은 남자는 또 처음 본다! 밖에서 다른 여자랑 연애할꺼면 좀 조용히 할 것이지, SNS에 다 퍼진 거 너도 봤지? 괜히 우리 연이만 불쌍해졌잖아.” 온연은 놀란 나머지 전화를
식당에 도착했는데 예약이 만석이라 자리가 없었다. 기대에 부풀어 있던 진몽요는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작정하고 많이 먹으려고 왔는데 자리가 없다는 게 말이 돼? 사장이 운영을 어떻게 하는 거야? 가게가 잘되면 자리를 더 만들던가 해야지! 진짜 영업을 못하네, 앞으로 더 잘될 수 있나 두고보자.” 온연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만약 진몽요가 이 식당의 사장이 경소경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적어도 저렇게 말하진 못할 것이다. “됐다, 우리 그냥 근처에서 대충 먹자, 밥 다 먹고 쇼핑하자, 넌 좀 늦게 들어가 그래야 청침이가 널 기다리지.” 진몽요는 어쩔 수 없이 나갔다. 백수완식당의 음식을 제일 좋아하는 그녀는 경소경 집에서 먹었던 그 음식의 맛을 당연히 잊을 수 없었다. 아직까지도 그의 음식이 어떻게 백수완식당 음식과 똑같은 맛이 나는지 의심중이다. 온연은 진몽요가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고선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온연은 두리번 거리다 창 가에 있는 중년 남성이 눈에 띄었다. 그는 딱 2가지 음식만 주문했도, 겉모습을 보니 돈이 그리 많아 보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주문한 음식도 비싸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바로 남성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저기..죄송한데 여기 자리가 없어서 혹시 같이 앉아도 될까요? 음식은 저희가 계산할 게요, 괜찮으신가요?” 이 남성은 고민도 하지 않고 알겠다고 대답했다.“그러세요, 저는 금방 먹고 나갈꺼라서. 계산은 안해주 셔도 돼요. 어차피 제가 나갈 때 그쪽 음식도 나올꺼 같아서.” 온연은 미소를 지으며 “감사합니다.” 중년남성을 살짝 웃어준 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온연의 시선이 식탁위에 있던 작은 케이크로 향했는데, 위에는 ‘생일 축하합니다’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케이크가 고급스러운 게 딱 봐도 백수완식당에서 만든 케이크였다. 그제서야 이 남자가 왜 여기서 식사중인지 이해가됐다. 혼자서 생일을 보내는 건 슬픈 일이니 차라리 이런 좋은 곳에 와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이 소리를 들은 목청침의 시선이 그녀들을 향했다, 온연은 목청침이 온다는 생각에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개를 숙인 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목청침이 걸어와 웃는 거 같기도 안 웃는 거 같기도 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너네 즐길 줄 아네, 소경이한테 부탁해서 직접 음식 좀 만들어 달라고 말해볼까?” 온연은 귀 뒤로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이틀 후에 온다고 한 거 아니었어요?” 그는 앞에 앉으며 말했다.“원래는 그랬지, 근데 너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어서 일찍 왔어, 그래서 이제 왜 그랬는지 말해볼래?” 진몽요는 핸드폰에 저장해둔 캡쳐본을 들이밀며 “너가 직접 봐!” 강연연이 SNS의 올린 피드를 보고선 목청침이”그냥 우연히 만난 거야, 사진은 걔가 찍은 거고, 난 그냥 거절을 안한거고. 그렇다고 올리라고 한 것도 아니야. 걔가 올릴 줄 누가 알았겠어? 그리고 걔랑 같이 밥도 안먹었어. 이게 나의 해명이야.” 진몽요는 어이없다는 말투로 말했다.“지금 누굴 속여? 강연연한테 전화해서 삼자대면 할까?” 온연은 진몽요가 혹시 선을 넘을 까봐 그녀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목청침이 망설임 없이 강연연에게 전화를 거는데 진몽요가 그의 손을 탁치며 ”또 핑계 대려고? 걔 번호도 안 지웠으면서, 이 거짓말쟁이야!” 목청침은 어리둥절 한 채 전화를 끊고 말했다.“진몽요, 일 크게 만들지마.” 진몽요는 기가차서 ”지금 이게 일 크게 만드는걸로 보여? 너랑 강연연이 맨날 일 벌리고, 그거 때문에 연이만 상처받는 건 생각안해? 이건 너네 집 일이니까 내가 더 이상 관여하진 않겠는데, 연이가 너랑 이혼하고 싶으면, 난 두손두발 다 들고 찬성이야. 바람 안 핀 사람은 있어도 한번 핀 사람은 없어, 절대 용서 못하지!” 목청침이 어두워진 표정으로 “나 그런 적 없어.” 라고 말했다.” 온연은 목청침이 이미 화낼 힘이 없는 모습을 보고선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꾸자
온연은 그 순간 웃을 수가 없었다. ”됐어됐어, 다음에 뭐 먹고 싶으면 바로 나한테 말해. 나 이제 들어가 봐야겠어, 늦게 들어가면 또 목청침한테 혼나.” 진몽요는 앞에 오는 택시를 잡고 “그래, 너 먼저 들어가.”......백수완 별장에서 목청침은 마음이 뒤숭숭한지 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옆에 있던 경소경이 어쩔 수 없이 창문을 열며 “말해봐, 무슨 일인데?” 목청침은 서류 가방에서 파일 하나를 꺼내며 “네가 봐봐, 누가 날 괴롭히네.” 경소경도 담배에 불을 붙이고, 파일을 훑어본 그는 욕을 참을 수 없었다.“젠장! 누가 이렇게 간이 커? 두 달 동안 계속 너가 협력하던 곳만 치면서 파트너들이 죄다 그 사람을 선택하게 만들고, 도대체 이 사람 누구야?” 목청침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내가 안 그래도 알아봤는데, 외국회사더라고, 오너도 외국사 람이야. 딱 봐도 상장회사인 거 같은데, 뒤에 누가 있는지 아무리 찾아도 안나와. 안 그래도 요즘 나 끌어내리려는 사람 많았는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준 사람은 이 사람이 처음이네. 너도 좀 알아봐 줘, 해외지사에 손실이 좀 커서 내가 갔다 와 봐야겠어.” 경소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립이한테는 따로 말 안 할게. 듣자하니 걔 회사도 둘째형한테 넘겨줘야 하는 게 확정된 모양이야, 이제 인수인계해줘야 되는 거 같더라고. 걔가 혼자 인맥으로 해결하려는 거 같아.” 목청침은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빠 그의 일은 신경 쓸 수 없었다.“그래, 피곤하다. 나 먼저 들어갈게, 뭐라도 알아내면 연락 줘.” ...... 이 시각 목 씨네 집, 온연은 목청침이 들어오는 소리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미 저녁 11시가 넘어서, 그녀는 도저히 싸울 기력이 없었다. 그는 역시나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바로 잠에 든 것 같았다. 온연은 조금 의아했다, 그도 피곤해서 트집 잡을 힘이 없었나? 잠시 후 갑자기 그가 다가와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 순간 강연연과의 사진이 생각난 온연은더
아침이 되자 목청침은 온데간데없었다. 온연은 여영생 일 때문에 힘이 쭉 빠져 있어서 그런지 아침 먹을 때 유씨 아주머니가 와서 물었다.“연아 너 또 도련님이랑 싸웠어? 어제 출장 갔다 와서 그런지 아침에 얼굴색이 영 안 좋던데, 너도 똑같네.” 온연은 고개를 저으며 “그이랑 안 싸웠어요, 저도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데 그이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 그러니 걱정마세요. 제가 오늘부터 야근해서 돼서, 탕원이 좀 부탁드릴게요.” 유씨 아주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안 싸웠으면 됐어. 탕원이는 나보다 잘 먹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집에 맛있는 거 있으면 다 하나씩 갖다 줬더니 뱃살이 거의 바닥까지 늘어지겠어.” 온연은 유씨 아주머니 덕에 마음이 놓였다. 밥을 다 먹고 회사로 향했는데, 딱 들어가니 분위기가 영 안 좋았다. 사람들이 다 산만하게 사무실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상하다 싶어 옆 사람에게 물었다. ”다들 왜 그래요?” 옆 사람은 “임대표님 집에서 누군가 왔나 봐요. 아까부터 계속 큰소리가 났는데 지금은 좀 잠잠해졌네요. 다들 무슨 일인지 모르는데, 한번 들어가 볼래요? 연이씨는 목씨 집안 아가씨니 아무도 뭐라고 못할 거예요. 듣자 하니 회사 오너가 또 바뀌나봐요. 임대표님 있을떄는 운영도 잘해서 저희도 편했는데, 또 사람이 바뀌니 저희도 불안하네요. 서류 가져다주는 척하고 한번 들어가 볼래요?” 온연은 이런 일에 총대 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임립이 노력해서 얻은 회사인걸 알기에, 회사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는걸 볼 수 없었다. 온연은 가방을 내려놓고 아무 서류 하나를 든 채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고 임립이 들어오라고 하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임립의 둘째 형이 있는 게 아니라 웬 백발의 노인이 임립의 자리에 앉아있었고, 정작 임립은 그 옆에 서 있었다. 이건 그녀가 상상한 장면이 아니었다. 노인은 임립의 아버지라고 하기엔 너무 늙었지만, 임립이 늦둥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