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기차가 멈춘 그 순간 온연은 바로 몸을 일으켜 가방을 메고 허겁지겁 기차에서 내렸다. 진몽요가 그런 그녀를 뒤따랐다. “야! 좀 천천히 가! 너 뱃속에 아이도 있잖아!”점심이 거의 다 된 시각. 두 사람은 주소에 따라 허름한 동네를 찾아왔다. 편지는 이곳에서 보낸 것이었다. 동네 전체가 쥐 죽은 듯이 고요했고 길가에는 발걸음을 옮기는 노인들 뿐이었다. 활력 넘치는 젊은 사람들은 보기 힘들었다.이곳은 경제가 너무 뒤떨어졌다. 젊은 사람들은 거의 주위 도시에서 출근을 하고 있었고 노인들만이 이곳에 남아있었다. 몇 번의 심문 끝에 그들은 드디어 ‘서씨’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사람이 살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가는 허름한 이층집이 눈앞에 보였다. 대문은 거의 가려져 있었고 문 앞에는 잡초가 한가득 자라있었다. 아마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것 같았다.온연의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편지의 상태로 보아 새로 쓴 편지는 아닌 것 같았다. 미리 써놓고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부친 건가?그때 옆집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진몽요가 앞으로 다가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혹시 여기 성이 서씨인 사람 살지 않나요? 여기 허름한 이층집에요....”할머님은 입을 삐죽거렸다. “갔어. 벌써 갔어. 이 집 삼 년 동안 비어 있었어. 저 집에 사는 사람 성이 서씨 인지 아닌지도 몰라.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으니까. 듣자 하니 불치병에 결렸다던데. 아마 죽었을 거야. 옛날에는 둘이서 애 하나 키우면서 살았는데 여자는 먼저 죽고 나중에는 애도 어디갔는지 몰라. 이젠 아예 사는 사람이 없어.”온연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할머님, 확실한 거예요? 얼마전에 여기서 저한테 편지도 보냈는데…”할머님은 조금 귀찮으셨는지 대꾸했다 “몰라몰라. 아무튼 몇 년 동안 이 집 드나든 사람은 없어.”그 말이 온연이게는 악몽처럼 느껴졌다. 손에 들린 편지 말
#온연은 서씨가 죽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편지를 보냈다는 거야?“연아, 일단 너무 깊게 생각 하지 마. 내가 도와줄 테니까, 우리 천천히 해결해보자. 편지는 받은 지 얼마 안 돼서 바로 너한테 준 거거든. 지금 이곳에서 제도까지 거리로 보면 편지가 도착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을 거야. 그니까 내 말은, 적어도 편지를 보낼 때 까지는 살아있었을 거라는 거지. 없는 주소를 써서 편지를 보낸 건, 지금 자기가 어디에 머무르는지 알려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거겠지? 에휴, 나도 이게 무슨 일인지 가늠이 안 된다. 어쨌든 그 서씨라는 사람, 분명 살아 있을 거야, 낙심하지 마. 첫번째 편지를 보내고, 그 후에 분명 두번째 편지도 보냈을 거야, 우린 기다리기만 하면 돼! 우리가 찾아오길 바랬기 때문에 운을 떼고는 아무 말도 않은 것 아니겠어?”진몽요는 억지로 온연을 위로하려다 도리어 현기증이 날 뻔하였다.“몽요, 걱정하지 마. 괜찮아. 이미 몇 년이나 기다려왔는 걸… 난 더 기다릴 수도 있어. 정말 괜찮아.”온연은 사진을 치우고는 억지로 웃음 지어 보였다. 진몽요와 같이 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하였다.그녀는 이번 일을 통해 그 해에 있던 일을 확실히 알아내고 싶었다. 만약 아버지가 그 해의 재난과 관련이 없고 오히려 피해자였다면 목정침에게 이를 설명한 후, 십여 년 간 짊어진 죄를 내려놓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야만 했다.하지만 더 이상 진전은 없을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그녀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만 했다. 배를 감추지 못한다면 목정침은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낳은 아이를 데리고는 목가를 떠나지 못 할 것이다. 이것은 그녀가 원한 결말이 아니었다!목가로 돌아오니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목가에 불빛이 밝지 않을 것을 보니, 목정침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듯하다.하루 종일 뛰어다닌 탓에 온연은 이미 움직이기조차 싫었다. 이내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샤워를 하고는 방으로 돌아
#진락은 그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조심스럽게 차를 몰며 저택으로 향하였다. 어느 약국을 지나던 찰나 목정침이 갑자기 말했다.“차 세워.”진락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고 차에서 내려 약국에 들어선 목정침이 직원에게 말했다.“위염에 효과 좋은 약 하나 주세요.”“위가 아프신 건가요 아님…? 어떤 증상이시죠? 드실 분이 성인인가요, 어린이인가요?”직원이 그에게 물어왔다. 목정침은 미간을 찡그리며 잠시동안 생각에 잠겼다.“식욕이 좋았다가 안 좋았다가 반복하고… 장기적으로 구역질도 계속 하고 안색도 좋지 않아요. 어른이 먹을 겁니다.”약을 받아 들고 냉랭한 얼굴로 돌아온 목정침에 진락은 더 이상 질문없이 가속페달을 밟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가에 도착하였고, 목정침은 곧바로 침실로 향하였다. 침대 위 사람을 보지도 않고는 침대 머리맡에 약을 내팽개치듯 던졌다.“약 먹어.”온연은 일순간 그가 왜 소란을 피우는지도 모른 채 몸을 일으켰다.“무슨 약이요?”그는 대답이 없었고 그저 뼈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으로 넥타이를 잡아 끌기만 하였다. 귀찮은 듯했다. 온연은 그가 던진 약을 가져와 확인을 해보았다.“저 괜찮아요, 약 안 먹어도 돼요.” 애초부터 위장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먹지 않아도 됨은 당연하였고, 이 약들은 대부분 임산부에게 금기시되는 약들이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었다. 유씨 아주머니가 목정침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을. 그랬기에 갑자기 돌아온 것도 모자라 자신에게 약을 챙겨준 것이었다. 목정침은 이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네 투정 받아주려고 일까지 중단하고 여기 온 줄 알아? 아프면 약을 먹어야 할 것 아니야!”온연은 어이가 없었다. 본인이 언제 투정을 부렸단 말인가? 몸이 좀 불편했고, 기운이 좀 없었을 뿐이다.“투정 부린 적 없어요… 저 정말 괜찮아요. 약 안 먹어도 돼요. 바쁘시면 그만 돌아가서 일 보셔도 돼요.”온연은 이게 무슨 일인지, 자신이 한 말에 자신도
#목정침은 잠시 멈칫하였으나,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스스로 말할 수 없는 건가? 그것마저 남이 전해줘야 하는 거야?”유씨 아주머니는 분한 듯했지만 끝내 입을 닫았다. 진락은 목정침이 또 다시 문을 나서려는 것을 확인하고는 급히 주차 된 차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으나 목정침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멈춰야만 했다.“내가 직접 운전 해.”목정침의 얼굴에는 ‘건들이지 마’ 라고 써 있는 듯하였다. 누구든 지금 그를 건드렸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진락, 내일 온연 데리고 병원에 가. 전반적으로 모두 검사 받고 나한테 검사서 제출해.”목정침은 그 말 만을 남겼고 곧 차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차가 목가를 떠나는 소리를 듣고 온연은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에 서 그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찌되었건 자신을 위해 약을 사온 것이었는데, 이런 불쾌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곧 온연은 핸드폰을 들어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죄송해요. 오늘 외출이 너무 힘들었어서 그랬어요. 저는 괜찮아요, 고마워요.’문자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하지만 그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이유 없이 무언의 기대감이 들었다. 온연은 그의 답장을 기다렸으나… 이전과 같이 아무런 답장도 받지 못했다.목정침은 떠난 그날 밤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온연이 일어났을 때 진락은 이미 아래층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부인, 도련님께서 오늘 병원에 가셔서 검사를 받아 보시라고 하셨습니다. 결과서까지 도련님께 제출하라고 ….” 하셨습니다.”온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저… 오늘 일이 있어서 못 가요. 나중에 시간 나면 제가 혼자 갈게요.”진락은 씁쓸한 얼굴로 대꾸했다.“사모님… 제가 너무 난처합니다.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일은 안 할 수가 없습니다……”목정침은 대외적으로는 온화한 이미지였으나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온연 역시 진락을 난처하게 하고싶지는 않았다.건강
#목정침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렇게 오래 휴식을 취했는데 빈혈이 더 심해지다니? 그는 곧바로 저택에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집사가 전화를 받았다.“원기 보충되는 채소들 사 놓으라고 주방에 전해.”임집사와 통화 후 목정침의 시선은 서류 작업으로 돌아갔다. 진락은 상황을 확인하고는 나지막이 말했다.“그럼,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목정침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때,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들겨왔다. 진락이 문을 열었고, 강연연을 마주하는 순간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진락은 아무 말 않고 그 자리에서 나왔다. 강연연이 사무실에 들어서며 그녀의 하이힐이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목정침이 눈썹이 찡그렸다.“여긴 왜 온 거지?”강연연이 억울한 표정을 내비쳤다.“정침 오빠, 오빠 요즘 바쁜 거 알아서 방해 안 하려고 했는데, 너무 보고 싶어서…… 회사 지나면서 들러봤어. 다른 방해는 안 할게, 오빠 일 해. 금방 갈게.” 목정침이 담담히 그녀를 흘끗 쳐다봤다.“할 말 있으면 바로 해.”강연연이 이를 들키자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다.“저번에 우리 엄마랑 같이 오빠네 집에서 얘기했던 회사 합작 일, 어떻게 생각해?”목정침은 그저 담담하게 대답했다.“이미 조사해 봤는데, 너희 회사는 내가 고려하고 있는 범위 내에 들지도 않아.”강연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진함과 함께 그를 찾아가 얘기한다면 높은 확률로 그가 승낙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반응일줄은 몰랐다.“정침 오빠… 우리 집은 목가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업계에서는 꽤 이름 있잖아… 내 체면 좀 생각해줘……”“난 이미 분명하게 말 한 것 같은데 그리고 네가 공사구분을 좀 확실히 했으면 좋겠는데... 만약 너네 집이 적당한 파트너였다면, 누구의 체면도 따질 필요 없었을 거야. 바빠, 그만 가봐.”강연연은 내키지 않았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도 못하였다. 번뜩 사무실 책상 모서리에 놓인 건강검진보고서에 눈길이 꽂혔다. 온연의 이
#진함은 강가네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온연 말고는 다른 희망이 없었다.그날 오후, 온연은 큰 가방을 든 채 백화점 앞에 서 차를 기다리는 중 이였다. 요 몇일 기온이 떨어지고 찬바람까지 이따금씩 불어 몸을 으슬으슬 춥게 하였다. 그녀가 산 것은 모두 속옷이었다. 불현듯 이전의 속옷들이 숨을 막혀오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어차피 얼마 안 돼 그 전의 옷들도 모두 못 입게 될 것이니 시간이 생긴 오늘 틈틈이 많이 사두었다.갑자기 그녀의 앞으로 빨간 스포츠카 한 대가 멈춰 섰다. 차 창이 내려가고 미소를 띄고 있는 진함과 마주치게 되었다. 기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고, 망설임 없이 싸늘한 표정으로 돌아섰다.“연아! 할 말이 있어서 그래, 몇 분만 시간 내 줄래?”진함이 온연의 뒤를 쫓아오며 간청하듯 말해왔다.“강부인, 무슨 일 있으시면 남편이나 그쪽 따님한테 얘기하세요. 제가 그쪽 때문에 시간 낭비할 이유 없어요.”“연아…… 이러지 마. 엄마가 정말 너한테 일이 있어서 온 거야. 몇 분만 시간 내주면 돼, 응?”온연의 침울한 목소리에 진함이 눈시울을 붉히며 대꾸했다. 온연은 그녀를 못 본 채 하였다. 눈 앞의 이 여자가 남편을 버리고 딸을 버린 것을 생각하면, 당장 욕설을 퍼붓지 못하는 게 원망스럽기만 하였다. 특히 스포츠카를 몰고 명품으로 치장한 진함의 모습에는 구역질이 올라왔다. 물질적 조건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온연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진함은 오히려 걸음을 늦추며 소리쳤다.“연아, 나 암에 걸렸어!”온연의 걸음이 일순간 멈추었다. 쇼핑백을 쥔 손이 하얗게 질려왔다.“당신이 암에 걸린 게 나랑 무슨 상관이죠? 마지막이라고 아쉬움이라도 달래고 싶으세요? 그건 당신 일이지, 나랑은 아무 관계없어요. 당신의 하찮은 모성애는 평가할 가치도 없어요!”진함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연아, 몇 분이면 돼. 여기 주차가 안되니까, 내 차에서 얘기 나누자. 어때? 널 낳아준 걸 생각해서……”온연
#온연은 비꼬는 듯 말하였다.“정말 이상하네요. 강연연도 아니고, 저한테 기대를 하시다니.”온연의 ‘좋은 어머니’는 자신이 목정침의 아내인 것을 알면서도 강연연이 내연녀라는 것을 묵인하였고, 심지어는 온연에게 떠나라고까지 하였었다. 구역질이 절로 났다. 진함은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연아, 네가 날 미워하는 거 알아. 목정침이랑 강연연이 사이가 좋을 때 나는 목정침이 결혼한 줄도 몰랐어. 내가 너한테 몹쓸 요구를 한 건 맞지만, 그 이상 목정침과의 밀접한 교제는 막았어. 요즘 연락 뜸해진 거 너도 눈치챘잖아? 이번 한 번만 도와주면 강연연이 너희 생활 방해하지 않게 한다는 거 보장할게. 그리고 나도… 네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게!”온연은 도리어 헛웃음이 나왔다.“지금 저한테 조건을 거시는 거예요? 당신을 돕기만 하면, 내 남편의 애인을 처리해주고, 당신 또한 내 눈 앞에 띄지 않겠다고? 언제 또 나와 내 아버지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줄 수 있죠? 강씨 성을 가진 그 남자가 당신에게 그렇게나 중요한가요? 남편이랑 딸을 버려 놓고도 이렇게나 염치가 없다니, 차 세워요!”진함이 갓길에 차를 세우자 온연은 잠시라도 더 머물고 싶지 않다는 듯 차에서 급히 내렸고, 그런 온연을 향해 진함이 말했다.“네가 어떻게 생각하던 난 상관없어, 어차피 나는 곧 죽을 테니까. 내가 죽으면 네가 좀 나아지겠지.”온연이 입술을 세게 깨물더니, 돌아보지도 않고는 자리를 떴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못살게 굴던 여자가 죽는다니… 온연은 엄청난 분노와 동시에 어디서부터 온 건지 알 수 동정심도 몰려왔다. 강가네.진함은 문에 들어서자마자 현관에 있는 비싼 남성 구두 한 켤레를 발견하였다. 그녀의 남편인 강균성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진함은 기쁨보다는 피곤함을 느꼈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부녀의 웃음소리는 무시한 채, 곧바로 위층의 침실로 향하였다.진함이 욕실에서 나왔을 때, 침대위에 둔 자신의 핸드백을 뒤적거리는 강균성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릴
#유리창 앞에 서 밖을 내다보는 내내 온연은 마음이 어수선하였다. 어느새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멀리서 가로등이 켜지는 것을 발견한 온연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옷깃을 여미며 아래층으로 향하였다. 몇 분 후, 목정침이 습한 기운을 머금고 저택에 들어섰고, 온연이 마른 수건을 들고는 다가섰다.“비 와서 날이 추워요, 어서 가서 샤워 먼저 하세요. 감기 걸리겠어요.”목정침은 수건을 받지 않았고,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위층으로 곧장 향하였다. 온연은 멋쩍어 하지도 않았다. 쇼파에 털썩 앉으며 팔걸이에 수건을 대충 걸쳐 놓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샤워를 마친 목정침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새카만 머리칼 끝으로 물방울들이 떨어졌다. 쇼파를 지나던 목정침이 방금 온연이 걸쳐 놓았던 수건을 집어 들고는 자신의 머리를 닦아내었다. 그의 이런 작은 행동이 온연에게는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되었고, 곧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강가네와의 합작, 왜 거절하신 거예요?”“이익보다 피해가 더 클 테니까. 그렇지 않다면, 네 생각은 어떻지?”목정침이 담담히 대답하였다. 온연은 입술을 달싹였으나 곧장 말하지 못하였고, 잠시 생각을 거친 후에 입을 열었다.“더 상의 해 보실 거죠?”머리카락을 닦아내던 목정침의 동작이 경직되었다. 불현듯 그녀를 올려다보는 눈에는 희롱이 섞인 듯했다.“강가네를 대신해서 사정하는 건가?”온연은 긴장하여 손을 살짝 말아 쥐었으나, 안색은 변하지 않은 채 말했다.“진함이 절 찾아왔었어요. 강가네와 합작을 허락하게 만들어 주기만 한다면 다시는 제 눈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낳아준 보답을 하라고요. 전 더 이상 그 여자와 엮이기 싫었어요.”목정침의 눈꼬리가 처졌다. 한줄기의 실망감이 스쳤다.“그것뿐이야?”온연의 시선이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는 듯 다른 곳을 향하였다. 이내 온연은 고백하기로 결정했다.“그리고… 강연연을 멀리 해주겠다고 했어요. 물론, 당신이 강연연과 함께 있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제 방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