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는 난감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목정침씨!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한 남자는 당신이 처음이에요! 그래서 이유를 알고싶어요, 잘못한 건 그 쪽 아닌가요? 사과도 제가 받았으니 협력은 이어갈 수 있는 거잖아요. 설마 제가 그쪽 사모님을 만났다고 해서 협력도 못하는 건가요?” 목정침은 숨을 들이마신 뒤 망설이다 말했다. “맞아요. 제 아내가 제 마지노선이거든요. 아무도 넘으면 안되는 선 같은 거죠. 제가 잘못해서 사과도 했으니 여기까지만 하죠. 비록 협력을 하기 전엔 제가 제시카씨를 좋게 봤지만 목가네 그룹은 협력할 수 있는 회사들이 많아서요. 여기서 계속 매달리시면 매력이 더 떨어져요.” 제시카는 화가 나서 웃었다. “진짜 제가 만나본 남자중에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분이네요. 제가 사모님을 찾아간 건 그때 오해를 해서 그랬고요, 오해를 안 했더라면 찾아갈 일도 없었겠죠. 논리적으로 보면 목 대표님 잘못이 맞기 때문에 억지로 저한테 잘못을 뒤집어 씌우실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요? 이번 협력건이 실패하면 양쪽의 손해가 다 클 텐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껴져서요. 남자가 일할 때는 좀 쿨해야지, 이런 거에 감정 낭비할 필요 없는 것 같은데요. 만약 필요하시다면 제가 사모님한테 사과할게요. 그럼 됐죠?” 목정침은 인상을 찌푸렸다. “맞는 말이시네요. 그런데 제 아내가 불편해해서요. 그 사람이 저희의 협력을 막진 않겠지만 이런 걸로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아요. 사과는 됐어요, 어차피 오해였잖아요. 해결됐으니 그럼 된 거죠. 협력은 그냥 없던 일로 하시죠.” 그리고 그는 떠났다. 제시카는 입술을 꽉 깨물으며 상황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가 멀리서 찾아왔는데 이렇게 매몰차게 거절을 당할 줄 몰랐다. 오해는 목정침의 잘못이고, 그가 사과도 했는데 왜 그녀는 마음이 편하지 못 한 걸까? 분명 잘못한 건 그녀가 아니지만, 정작 잘못한 사람이 그녀가 된 기분이었다. 그녀는 밤새 생각해서 이 남자를 갖진 못 해도, 협력은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메
제시카는 잠깐 불쾌한 눈빛을 보이며 자신은 길거리에서 파는 밀크티를 안 마실 거라고 생각했다. “목 대표님이 굉장히 사모님을 사랑하시더라고요. 저번에 제가 찾아간 건 오해 때문이었어요. 사모님한테 드리려던 귀걸이를 저한테 주셔서, 다른 뜻이 있으신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사과드리러 왔어요. 오해였고 이젠 다 풀렸는데, 제가 사모님을 찾아간 것 때문에 협력을 안 하려고 하셔서요. 아마 이 협력이 서로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잘 모르시겠지만, 제가 직접 찾아와서 사과를 드릴 정도예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협력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은데 그 결정권이 사모님한테 달린 것 같아요. 제가 어느 정도의 이익은 양보하겠습니다. 어떠세요?” 온연은 자신의 입장을 깨끗하게 정리했고, 그녀는 목정침의 단호함을 믿었다. 그리고 그녀는 제시카 같이 거만한 여자가 거슬렸다. “제시카씨 눈에는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처럼 보이나 봐요? 그럼 저는 그런 사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니 결정권은 그 사람한테 있겠죠. 저는 관여 못 해요. 그 사람이 안 하겠다면 안 하는 거지 저를 찾아오셔도 소용없어요. 다른 용건 없으시면 가볼게요. 맞다, 이 집 커피 잘 해요. 오늘 날씨도 좋으니 천천히 마시다 가세요.” 말을 한 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제시카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제시카는 두 사람 다 매정하다는 걸 알았다. 상의할 여지도 주지 않았고, 그녀가 온연을 찾아온 건 애초에 잘못이었다. 온연은 제시카가 다시 찾아온 걸 목정침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목정침이 제시카와의 협력을 거절한 일은 그녀에게 감동을 주었다. 평소에 티는 잘 안 내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이런 세심한 부분에서 나타냈다. 오늘은 토요일. 주말인데도 사람들은 추가 근무를 하러 나왔고, 오후쯤 사람들은 일찍 퇴근했다. 온연은 일찍 집어가서 육아를 하고싶지 않아 서양양을 데리고 쇼핑을 갔다. 점심 때 밥을 별로 안 먹어서 배고팠던 그녀는
두 사람은 과일코너에 와서 온연은 콩알이에게 사갈 과일을 생각하며 뭘 사야 할지 고민했다. 콩알이는 과일을 많이 먹어보지 못 했으니 알러지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건 피하는 게 좋았다. 이때 뒷문 쪽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힘겹게 과일상자를 옮기고 있었고, 뒷문은 보통 수화물을 옮기는 통로였다. 온연이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이였다. 온호. 지금은 겨울방학 시즌이였고, 온호도 곧 졸업이니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거겠지? 그녀는 바로 다가가서 인사를 하지 않고 그가 물건을 어느 정도 다 옮기자 다가갔다. “온호야, 여기서 뭐해?” 그녀를 보자 온호는 놀라서 살짝 눈을 피했다. “누나… 저 방학이라 할 일도 없고 그래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돈 좀 벌려고요. 사회생활도 미리 해볼 겸요.” 온연은 온호를 머리부터 발 끝까지 살폈고, 그는 힘들고 더러운 것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유니폼은 더러웠고, 겨울인데도 코 끝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너희 부모님 그래도 학비랑 생활비 정도는 대주실 수 있지 않아? 이거 해서 얼마나 버는데? 이거 엄청 힘들잖아.” 온호는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요, 저 혼자서 벌 수 있어요. 저도 곧 졸업이니까 나중에 인턴도 시작할 거구요.” 온호가 철든 모습을 보자 온연은 마음이 복잡했다. 목정침은 그때 그녀 몰래 그들에게 많은 돈을 주었는데 만약 온호의 아빠가 허투루 쓰지 않았다면 그의 가족들은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못난 아빠 때문에 아들이 더 고생을 많이 했다. 온호가 게으른 사람이 아닌 걸 알아서 온연은 갈등하다가 말했다. “졸업하기 전까지 생활비랑 학비는 내가 내줄게. 인턴 열심히 하고, 이정도 능력이면 앞으로 인생 잘 살 수 있을 거야. 곧 설인데, 밖에서 이러지 말고 얼른 들어가.” 온연은 거절했다. “아니요, 그거 얼마 안 들어요. 여기서 일하면서 벌 수 있어요. 방학때는 학비 좀 벌고, 학기 중에는 생활비 벌면 돼요. 누나, 정말 걱정 마세요. 마음만 받을게요.” 온연은 고개를
온연은 대충 온호가 인턴을 할 때까지 쓸 수 있는 돈을 짐작해서 주었고, 허투루 쓸까 봐 더 많이 주진 않았다. 온호는 받았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누나, 이 돈은 제가 일하면 꼭 갚을게요. 제가 한다면 정말 하거든요.” 온연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래, 너가 갚을 때까지 기다릴게. 집 가는 차비도 넣었어. 얼른 집으로 가서 명절 잘 보내고.” 온호가 떠나자 서양양이 물었다. “동생이에요?” 온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모 아들이에요. 할머니가 고모를 입양해서 피는 안 섞였는데 동생은 그 부모랑 다르게 괜찮아서요.” 과일을 사고 한 바퀴 돌다가 온연은 집으로 갔다. 콩알이는 이제 막 밥을 먹어서 컨디션이 좋아보였고 바닥에서 멈추지 않고 기어다녔다. 유씨 아주머니는 나이가 많아서 아이가 어디라도 다칠까 봐 쫒아 다녔지만 허리가 나갈 뻔했다. 온연은 이 장면을 보고 말했다. “아주머니 좀 쉬세요, 제가 볼게요. 그냥 기어다니게 냅두세요. 조금 부딪히는 건 괜찮아요. 한번 부딪혀 봐야 조심할 줄도 알겠죠. 크면서 힘든 일이 더 많을 텐데 경험해보지 못 하면 어떻게 알겠어요? 너무 과하게 보호하는 것도 안 좋은 것 같아요. 위험한 곳만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두세요.” 말은 이렇게 해도 그녀의 마음은 독하지 않았고 오히려 유씨 아주머니보다 더 조심스러웠다. 아이는 힘이 넘쳐나는듯 쉬지 않고 기어다녔고 그녀도 자신이 늙었나 싶을 정도로 온 몸이 힘들었다. 그녀가 잠시 앉아서 쉬고 있을 때, 아이는 윗층으로 기어 올라갔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쫓아갔다. 한 층을 올라 가는데 거의 20분이나 걸렸고, 손 발을 다 쓰면서 올라가니 숨을 헐떡이며 중간에 쉬었다가 다시 올라가고를 반복했다. 이제 콩알이는 예전과는 다르게 활발했다. 방 안으로 들어가면 손에 닿는 건 다 건드렸고 침대 앞에 있는 카펫으로도 재밌게 놀았다. 다 갖고 논 다음에는 다시 침대 위에서 놀고 싶다고 칭얼거렸고, 온연은 그가 중간에 잠들까 봐 아이를 그녀와 목정침의 침대
온연은 더 이상 못 보겠어서 말했다. “그렇게까지 해야겠어요? 만약 애가 우리 침대에 싼 거라고 말하면 침대 시트까지 바꿀 거예요?” 목정침은 굳었다. “유씨 아주머니, 이거 침대 시트 좀 갈아주세요.” 온연:“......” 결벽증 있는 남자의 민감함을 테스트하면 안된다는 사실이 이렇게 증명되었다. 더러운 게 연상됐는지 목정침은 저녁도 거의 안 먹고, 자기 전 아이를 안아주지도 않았다. 잘 때도 새로운 침대시트 냄새를 맡으며 이상한 냄새가 안 나자 그제서야 마음 편히 누웠다. 온연은 참지 못 하고 그를 노려봤다. “만약 애가 당신 몸 위에서 쌌으면 아예 신체부위까지 절단해버리지 그래요. 그래야 깨끗하잖아요. 자기 아들을 저렇게 싫어하다니, 참.” 목정침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난 내 몸 위에 쌀 기회 자체를 주지 않을 거야. 넌 엄마가 뭐하고 있었어? 애가 바지에 싸는 것도 모르고.” 온연은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말했다. “매번 그 타이밍을 알아차릴 수 있으면 기저귀가 왜 있겠어요? 과학적으로 아이들은 어리면 원래 똥 오줌을 못 가려요, 알아요? 말해도 모르겠죠. 당신은 이런 게 싫겠지만 난 전혀 아니에요.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 투덜거리지나 마요.”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녀를 보았다. “가끔은 너가 현모양처 같아. 그나저나 회사에 휴가 언제 낼 수 있어? 며칠 놀러 갔다 올까?” 온연이 물었다. “애랑 같이요?” 목정침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너무 일이 많아져. 애는 아직 어려니까 멀리 가도 안되고. 둘이서 가자.” 아이를 두고 며칠을 떠나야 된다고 생각하니 온연은 바로 거절했다. “그럼 됐어요. 어렵게 휴가 받아서 아이를 집에 두고 혼자 나가서 놀긴 싫어요. 가고 싶으면 당신 혼자 가요. 난 집에서 애랑 놀 거예요.” 여행은 이렇게 무마됐다. 아이가 생긴 뒤로는 멀리 나가는 것도 제한적이었다. 각 회사에서는 슬슬 연휴기간을 가졌고, 설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길에는 네온사인이 가득해 도시에는 생기가 넘쳤다. 진
그녀가 멍을 때릴 때 목정침은 진함에게 와인을 따라주었다. “어머님,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식탁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임집사와 유씨 아주머니 모두 조심스럽게 온연을 보았다.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온연은 급하게 잔을 들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다들 한잔 하시죠.” 그녀가 어색해서 일부러 그러는 걸 알았기에 모두가 협조했다. 그녀는 진함에게 한번도 엄마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고 목정침은 아직 그녀가 그 호칭을 떼지 못한 걸 알고 있었다… 진함은 어른스럽게 목정침과 대화를 나눴다. “정침아, 올해 회사는 어땠어?” 목정침이 대답했다.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나쁘지 않은 정도요.” 두 사람은 계속해서 사업 얘기를 나눴고 온연은 끼지 못 하니 옆에서 콩알이를 챙겼다. 식사 후, 가족들은 2층 테라스에서 불꽃놀이를 보았고, 하늘에 퍼지는 불꽃을 보며 아이가 잡아보려 하자 가족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저녁 10시. 이제 해산할 시간이었고 진함은 차를 타고 목가네를 떠날 예정이었다. 목정침은 갑자기 말했다. “어머님 가신데.” 온연은 목정침의 말이 진함이 이 도시를 떠난다는 말인 걸 알았고 강균성을 피하기 위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걸 의미했다. 참 사람의 인생이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여생을 다 어떠한 사람 때문에 피해를 봐야할 이유가 없지만 진함의 결정이 틀리진 않았으니 그녀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다 되어서 별 감정이 들지 않았다. “네.” 한편, 경가네 공관. 강령과 진몽요는 이곳에서 명절을 보낼 예정이었고, 두 사람은 같이 있으니 참 사이가 좋았다. 게다가 진몽요 뱃속에 아이가 있으니 올해는 작년보다 더 즐거웠다. 경소경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눌 때 서재에 숨어서 담배를 피다가 진몽요에게 잡혔다. 그는 황급히 담뱃불을 껐다. “나 그… 딱 두 모금 폈어요. 여기 있지 말아요. 냄새 맡으면 아이한테 안 좋아요.” 그는 진몽요가 화난 줄 알았는데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그의 소매위로 떨어진 재를 털어주었다.
예군작은 그녀의 답장을 받고 휠체어에 앉아 불꽃을 보았다. 같은 도시 같은 세상에서 그와 그녀가 보는 경치는 같았다. 분명 같을 것이다… 국청곡이 갑자기 안방으로 들어왔고 예군작은 얼른 핸드폰을 뒤집어 작은 책상 위에 올려놨다. 국청곡은 다 보고서도 모른 척했다. “할아버지가 저한테 빨간봉투 주셨어요. 당신 것도 있고요. 뱃속에 있는 아이 것도 생각해 주셨어요.” 예군작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갖고 있어요, 기념이잖아요. 난 졸려서 먼저 잘게요.” 국청곡은 그를 침대까지 부축한 뒤, 직접 그의 신발을 벗겨주었다. “그럼 먼저 자요, 난 할아버지랑 얘기 좀 더 하고 올게요.” 나가기 전 국청곡은 그가 책상위에 올려둔 핸드폰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그녀가 들어왔을 때 분면 진몽요와 문자하고 있었던 거겠지?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고, 그가 억지로 그녀에게 하는 행동들은 진몽요에겐 억지가 아니었다. 이렇게 기쁜 저녁이지만 모두가 다 행복한 건 아니었다. 안야와 아택은 다른 가족이 없었기에,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차가운 월세방에서 명절을 보냈다. 명절을 보내든 말든 혼자인 아택에겐 의미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안야는 달랐다. 예전엔 할아버지와 늘 둘이었는데, 올해는 아택도 있고 뱃속에 아이도 있었다. 오늘 저녁 그녀는 많은 요리들을 준비했고, 아택을 위해 술도 준비했다. 창밖에 불꽃을 보며 그녀는 왠지 마음에 희망이 가득 찼다. “예전에는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볼 시간도 없었는데, 명절 때 보는 불꽃이 원래 이렇게 아름다운 거였네요.” 아택은 그녀의 옆에 섰다. “불꽃이 뭐가 아름다워요?” 그녀는 그의 무심함에 웃었다. “하여간 남자들은 이런 걸 안 좋아해요.” 아택은 무언가 생각난 듯 뒤돌아 방으로 들어간 뒤 다시 나와서 집문서를 그녀에게 주었다. ”집 새로 샀어요. 명정 끝나면 이사 가요. 이제 여기 안 살 거예요.” 안야는 놀랐다. “언제 샀어요?” 그는 망설이다 답했다. “좀 됐어요. 지금은 예전
그녀는 용기내어 그의 방 앞으로 가 문을 두들겼다. “아택씨, 자요?” 안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문이 바로 열렸고 아택은 문 앞에 서서 그녀를 보며 “무슨 일이에요?”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다. 잠시 후 그녀는 용기내어 말했다. ”내 생각엔… 우리 한번 시작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요. 만약 진짜 아니다 싶으면 다시 헤어져도 되잖아요. 그땐 절대 매달리지 않을 게요. 내 생각엔, 우리가 이제 애도 있는데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잘될 수도 있잖아요? 아이도 화목한 가정을 갖을 수 있고요.” 아택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녀의 마음은 무거워져 그의 눈을 보지 못 했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섣불렀다는 생각에 후회했다. 만약 이 사람이 그럴 생각이 없다면? 만약 그녀가 그의 이상형이 아니라면? 그녀는 아이를 빌미로 그를 구속하는 거 아닐까? 그녀가 불안해할 때 아택이 담담하게 말했다. “늦었어요, 얼른 가서 쉬어요.” 그녀는 침묵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그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건가? 그래서 대답을 피한 거겠지? 잠시 후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그를 보며 웃었다. “못 들은 걸로 해줘요. 잘자요.” 그녀가 뒤돌아 가려고 할 때 아택이 입을 열었다. “잘 때 방에 히터틀고 자요. 가습기 키는 것도 잊지 말고요, 너무 건조하잖아요. 내일 아침에 뭐 먹을래요?” 그녀는 발걸음을 멈췄다. “나한테 그렇게 잘해줄 필요 없어요. 집 문서에도 내 이름 쓸 필요 없었고요. 아이도 내가 낳겠다고 한 거니까 책임감 갖지 말아요.” “나 졸려요.” 아택은 이 한 마디와 함께 문을 닫았다. 안야는 숨을 들이마셨고, 그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그는 분명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잘해주었다. 그 날 저녁 그녀는 잠에 들지 못 했다. 임신 후반부쯤 되니 온 몸이 아파왔고, 새벽에 자꾸 잠에서 깨는 바람에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래서 낮엔 늘 피곤했고 눈도 제대로 못 떴지만 저녁엔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