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예천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정해영도 그 말을 듣자 즉시 말했다.“뭐 하려는 거예요. 혹시 이혼하고 우리 가연이를 쫓아다니려는 게 아니죠?”“해영아!”예천우가 입을 열기도 전에 진가인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그래. 그만할게.”정해영도 진가인의 그런 모습에 놀라서 마음속으로 예천우를 더욱 미워했다.그녀는 오늘 밤에 아무 능력도 없고 단지 얼굴만 잘생긴 예천우를 망신을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예천우에게 그는 진가인과 전혀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오히려 예천우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괜찮아. 가인아, 어디서 보기로 했어? 이제 곧 6시가 다 되어가는데. 빨리 이동해야 하지 않겠어?”“제 기억엔 저녁 7시 30분에 왕해루에서 보기로 한 것 같아요.”진가인은 정해영을 힐끗 쳐다보면서 말했다.그러자 정해영은 고개를 끄덕이었다.“알았어. 그러면 지금 가자.”예천우가 말했다.예천우가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태도를 본 임완유는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예천우가 앞에 없어서 다행이지 있었다면 뺨이라도 몇 대 때릴 것이다.그가 지금 누구를 믿고 저렇게 오만방자하게 굴고 자신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지 궁금했다.‘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넌 방금 산에서 내려온 시골 사람일 뿐이야. 설령 능력이 좀 있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날 좋아하는 남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거야? 다른 사람은 됐고 공손 가문의 도련님인 공손진은 매번 저렇게 주동적으로 날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걸 봤으면서도... 어떻게 지금 나랑 이혼하려는 말이 나와? 그래 좋아. 이혼하면 했지. 후회하지 마!’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공손진의 전화가 왔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임 대표님, 아직도 바쁘세요?”공손진의 소리를 듣자마자 임완유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아차렸다.원래 그녀는 공손진이 초대한 만찬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예천우가 일단 자신을 그렇게 무시했고 공손진에게 확실히 설명해 줄 필
왕해루는 등불이 휘황찬란했다.입구 주차 구역에는 많은 고급 차가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식당은 보통이 아니었다. 여기서 손님을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은 일반 부자가 아니었다.이때 식당으로 20여 명의 남녀가 도착했다. 그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기한 듯 놀란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가장 선두에 선 남자의 화려한 옷차림과 당당한 외모를 보아서는 꽤 매력적이었다.그의 이름은 고유상이었고 이번 모임의 출자자였다.그의 곁에는 아주 예쁜 여자가 있었다.그 여자는 긴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옅은 메이크업 아래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두 사람의 뒤를 따라다니던 반장 주우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봤지. 이곳이 바로 우리 천해 시의 4대 명루 중 하나인 왕해루야. 이곳은 결코 보통 장소가 아니지. 간단하게 한 끼를 먹어도 거뜬히 200만 원이 넘는대. 예전에 너희는 한 번도 여기서 밥을 먹어보지 못했을 거야. 오늘 정말 유상 형님의 덕을 본 셈이지. 아니면 평생 기회가 없을 거야.”“그러네. 오늘 정말 유상 형님에게 고마워야 해. 형님이 아니면 난 감히 이곳에 오지도 못했을 거야.”“하하. 나도 그래. 이따가 들어가서 유상 오빠께 잘 감사드려야겠어.”“참. 반장. 넌 유상 형님과 무슨 사이야?”“우린 당연히 친한 사이지. 유상 형님께서 날 많이 돌봐준 덕에 지금 편하게 살 수 있는 거야. 유상 형님께 잘 대해드리면 너희들도 크게 성공할 거야.”“...”그러자 많은 사람이 너도나도 잇달아 고유상에게 아부했다. 많은 여자도 고유상의 곁에 있는 장미연을 보며 부러워했다.역시 선생님은 동작이 매우 빨랐다. 고유상의 집안이 부자가 되자 바로 기회를 잡았고 지금은 고유상의 여자 친구가 되었다.당시만 해도 학교에서 가장 순결하고 아름다웠고 누구의 고백도 들어주지 않았던 장 선생님이 결국에는 돈의 매력에 넘어갔다.그들은 당시 장 선생님은 고유상을 가장 싫어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특히 고유상이 자꾸 진가인을 괴롭혔기에 장 선생님은 불
바로 그때, 그는 한 사람을 보았다. 바로 양회장이 말하던 혹시 만나면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예천우였다.매니저는 몸이 약간 움찔했다. 예천우가 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예천우와 두 여자는 좀 늦게 도착했고 들어오자마자 정해영은 동창들이 전부 이곳에 모여 있는 걸 발견했다. 아마도 룸이 없는 모양이었다.그래서 그녀는 저도 모르게 앞으로 비집고 나가서 상황을 물었다.진가인도 따라오자 예천우도 뒤에 자연스럽게 나타났다.정해영이 물었다.“무슨 일이야?”“다른 사람이 우리가 예약한 룸을 차지했어. 그래서 우리더러 홀에 앉으래.”한 동창이 설명했다.고유상은 정말 조급해 났다. 그는 자기 체면이 깎이는 걸 용서할 수 없었다. 특이 오늘 자신의 위엄과 패기를 맘껏 뽐내고 싶었다. 그럴 마음이 없었다면 장미연을 사람들 앞에서 자기 여자 친구가 되어달라고 협박하지 않았을 것이다.원래는 장미연에게 학창 시절의 복수를 하고 지금 자기 능력을 자랑하고 동창들의 존경스러운 눈빛을 받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지금 체면이 깎일 대로 깎였다.“매니저님, 체면을 좀 챙겨주세요. 우리 고씨 가문은 천해 시에서도 꽤 많은 사업을 벌리고 있어요. 앞으로도 협력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게다가 저는 소씨 가문 사람들과 아주 가까운 사이예요.”고유상은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사실 매니저는 그의 말을 들을 겨를이 별로 없었다. 그의 시선은 오직 예천우만 주시하고 있었다. 예천우가 확실히 함께 온 두 여자와 말을 주고받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러자 매니저는 안색이 급변했고 재빨리 입을 열었다.“잠깐만요. 위층에 최고급 귀빈을 접대하기 위해 남겨둔 VVIP 룸이 하나 있는데 그곳으로 모실게요. 절 따라오세요.”매니저가 갑자기 이렇게 변하자 고유상은 어리둥절했다.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었다.하지만 고유상은 이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맙습니다. 매니저님.”그리고 그는 동창들을 데리고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룸 안의 호화로운 인테리어
“진가인, 옆에 남자는 누구야?”고유상은 원래 진가인을 찾고 싶었지만 졸업 후 연락이 끊겼다. 하지만 오늘 스스로 찾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고유상은 그녀의 곁에 있는 예천우를 발견했다.진가인은 멈칫 놀라서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때 예천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저의 이름은 예천우라고 해요. 진가인의 남자 친구죠!”그 말을 들은 고유상은 안색이 급변했다.오랜 시간 동안 진가인을 만나지 못했지만 고유상은 줄곧 그녀를 잊지 못했다. 오늘은 원래 동창들의 앞에서 자신을 한껏 뽐내려고 준비한 자리였는데 이곳에 진가인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고유상은 화를 가까스로 참고 웃으며 말했다.“가인아, 사실이 아니지? 아무리 눈이 멀었다고 해도 남자 보는 안목이 전혀 없으면 어떡해?”예천우는 이 말을 듣고 정말 유치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진가인은 예천우의 말을 듣고 속으로 은근히 기뻤고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고유상이 그렇게 심한 말을 하자 그녀는 바로 반박했다.“고유상, 말조심해. 천우 오빠는 보통 사람이 아니야. 나보다도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갖춘 남자야.”“허허. 가인아. 아무리 네 남자 친구의 체면을 세워주고 싶어도 그렇지. 너무 과한 게 아니야?”“이런 남자는 유상 오빠는 말할 필요도 없고 내가 천하 그룹에서 일하는 남자 친구와도 전혀 비교가 안 되지. 너무 쓰레기 같아.”그때 옆에 있던 요염하게 생긴 여자가 입을 열었다.그녀의 이름은 유미령. 비주얼이나 몸매는 아주 훌륭했다. 지난번에도 그녀가 임완유의 앞에서 천하 그룹에서 매니저로 근무하는 자기 남자 친구가 엄청 대단한 사람이라고 허풍을 떨었다.“미령아, 너도 그렇지. 어떻게 저런 쓰레기를 함부로 유상 형님이랑 비교할 수 있어. 그건 유상 형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옆에 있던 반장 주우진이 재빨리 말했다.정해영은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이 알던 반장도 예전에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지금 이렇게 변했을 줄은 몰랐다.하지만 그녀는 당연히 예천우
고유상은 자신의 행동이 전혀 창피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장미연, 모두에게 말해봐. 넌 내 노예라고.”그러자 장미연의 얼굴은 무척 난감했고 눈에는 굴욕적인 눈물로 가득찼다. 하지만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저는 유상 오빠의 노예 맞아요.”“장 선생님! 그런 말씀 하실 필요 없어요.”진가인은 급한 어조로 말했다.“혹시 무슨 어려움이라도 있으세요? 저한테 알려줘요. 우리가 도와드릴게요.”진가인은 자신한테 방법이 없더라도 못 하는 게 없는 천우 오빠라면 분명히 장 선생님을 구해줄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다.지난번 식당에서 일어난 일, 그리고 예전의 많은 일을 통해 그녀는 천우 오빠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장미연은 진가인을 바라보며 뭔가 말하려다 다시 꾹 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가인은 학창 시절에도 돈도 권력도 없었으니 지금 남자 친구도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게다가 자신은 2억 원이 넘는 돈이 필요한데 말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허허. 도와주고 싶어? 진가인, 큰돈을 벌었나 봐?”고유상이 담담하게 물었다.“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장 선생님, 돈 문제에요? 얼마면 돼요?”진가인이 즉시 물었다.“진가인,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 너 같은 가난한 사람이 거지 같은 남자 친구를 사귀었으니 너한테 말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만약 나처럼 천하 그룹의 매니저 남자 친구라도 있었으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를 텐데. 안타까워. 넌 정말 남자를 보는 눈이 없어.”유미령은 진가인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그와 동시에 또 한 번 자기 남자 친구의 신분을 입 밖에 꺼냈다. 오늘만 이미 8번째였다.아쉽게도 오늘 그녀의 남자 친구는 회사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반드시 가장 주목 받는 여자가 될 것이다.예천우는 유미령이 한 말이 듣기 싫었기에 눈살을 찌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남자 친구분이 그리 대단해요?”“물론이죠. 제 남자 친구는 천하 그룹 구매 부서의 매니저이죠.
모든 사람이 그를 믿지 않았다. 그를 믿는 건 오직 진가인 뿐이었다.그녀는 실력 있는 천우 오빠라면 전적으로 믿고 싶었다.많은 사람의 비웃는 시선을 본 예천우는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아주 좋아요. 당신 남자 친구는 당신 같은 여자 친구가 있어서 자랑스러울 거예요.”“물론이죠. 전 진가인처럼 아무것도 없는 쓰레기 같은 남자를 찾지 않아요.”사람들은 고유상이 돈 많은 것만 알고 있었고 게다가 오늘 모임은 그가 돈을 낸다고 했으니 모든 사람의 시선은 전부 고유상에게 쏠렸다.하지만 지금은 남자 친구 때문에 유미령이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자 그녀는 매우 흐뭇했다.예천우가 무슨 짓을 하든 그녀는 걱정하지 않았다.‘천하 그룹의 대표에게 전화한다고? 웃기고 있네. 대표님이 어떤 신분인데. 수많은 사람이 그분을 만나고 싶어 해도 만나지 못하는데. 그분에게 전화한다는 건 절대 불가능해.’예천우가 쉽게 실현할 수 있는 말을 했다면 그녀는 그래도 조금 걱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담 대표에게 전화한다고 했으니 정말 우스웠다.그 순간 예천우의 전화가 통했다.“천우 님!”담양은 회의 중이었으나 예천우의 전화를 보고 바로 회의를 중지시키고 전화를 받았다.회의 중이던 사람들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담양은 회사 룰을 칼 같게 지키는 사람이었고 게다가 그가 이렇게 다른 누구한테 공손하게 대하는 모습은 난생처음이었다. 그것도 전화 한 통뿐이었다.“천하 그룹에 홍무라는 매니저가 있어?”예천우가 입을 열었다.담양은 안색이 조금 변했다. 예천우의 차가운 말투를 봐서는 홍무가 무조건 예천우를 건드린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즉시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여러분은 홍무라는 분을 알아요?”오늘 회의에는 그룹의 모든 중, 고위급 직원들이 전부 참석했다. 홍무도 바로 회의실 맨 뒤에 앉아 담 대표의 회의 내용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자기 이름을 말하자 그는 떨리는 두 다리로 재빨리 일어나서 말했다.“저, 접니다!”담양은 홍무라는 사람이 있다
고유상의 말에 대해 정해영도 동의했다.하지만 진가인은 차가운 시선으로 고유상을 힐끗 쳐다보고는 말했다.“우선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지는 나의 일이기에 너희는 참견하지 마.”진가인의 이 말은 정해영에게도 들려주는 한마디였다.“그리고 저는 천우 오빠를 믿어. 무슨 말을 하든 다 믿어.”정해영은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가인아,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아직도 예천우를 믿어?”“물론이지! 그리고 해영아, 다시는 천우 오빠한테 뭐라 하지 마. 네가 계속 그렇게 나오면 우리는 이제 친구도 할 수 없을 거야.”정해영이 심하게 했던 말에 진가인은 단단히 화가 났던 모양이었다.정해영은 그 말을 듣고 멍해졌다. 진가인이 이 나쁜 남자 때문에 자신과의 우정도 마다하고 이렇게 심한 말을 하자 정해영도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입만 열면 죄다 헛소리인 남자 때문에 우리 우정을 버리려는 거야?”“천우 오빠는 헛소리 한 적이 없어.”진가인이 반박했다.“그래. 네가 저 남자를 믿는다고 했지. 그러면 내기하자. 내일까지 유미령의 남자 친구가 신고당했다면 난 저 사람이 말했던 모든 것을 믿을게. 그리고 다시는 너랑 저 남자가 함께 있는 걸 막지 않을게. 하지만 내일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이후에 영원히 저 사람을 만나지도 마. 내기할 수 있어?”정해영이 큰 소리로 말했다.그러자 진가인은 살짝 망설였다. 비록 예천우를 믿고 있었지만 어떤 일은 그리 빨리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그때 예천우가 말했다.“내기는 해도 되는데 시간은 좀 바꿔야 해요.”“쳇. 이미 신고도 했다면서요. 게다가 대표님께 직접 전화했다는 사람이 하루면 충분하지 않아요? 설마 지금 몇 달, 몇 년의 시간을 달라고 하는 거예요?”정해영이 쓴소리를 했다.“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제 말뜻은 굳이 내일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에요.”예천우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오늘 밤에 저 여자의 남자 친구는 끝장났어요.”“뭐라고요? 오늘 밤? 천우 씨, 정말 허풍을 떠는 재
안재관은 말만 몇 마디 하고 바로 떠났다. 떠날 때 다시 한번 예천우를 쳐다보았지만 하려던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예천우를 아는 체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천우는 사실 왕해루의 대표가 이런 일을 했던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VVIP 룸을 내준 것도 죄다 자신의 체면 때문이었다.하지만 고유상만 이 모든 게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에 지금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모두가 왕해루의 대표님이 고유상의 체면을 세워줬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유미령도 더 이상 잘난 척하지 않았다. 원래 그녀는 자기 남자 친구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했다.그것도 그럴 것이다. 지금의 천하 그룹은 업계에서 거의 독보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그 실력은 천해 시의 4대 명문 가족들과 비슷했다.“유상 형님.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오늘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듣자 하니 왕해루는 보통 사람이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더군요. 부자들만 올 수 있는 곳인데 심지어 왕해루의 대표까지 형님께 이렇게 공손하게 대하다니 정말 대단해요.”“그러게 말이야. 비록 나도 와본 적이 없지만 왕해루의 전설을 많이 들었어. 하지만 앞으로 유상 형님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전설이야.”많은 사람이 하나같이 자기 칭찬을 하는 모습을 본 고유상은 크게 만족했다. 이게 바로 그가 오늘 이 모임을 준비한 가장 큰 목적이었다.“진가인, 유상 형님에게 술 한잔 권하지 않고 뭐해. 유상 형님이 아니었다면 너 같은 사람은 한평생 이런 곳에 들어올 수 없다고. 이곳의 음식을 맛볼 기회는 더더욱 없어.”주우진은 지금 거의 고유상의 앞잡이였기에 그에게 잘 보여야 했다.사실 진가인은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녀는 계속하여 장미연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하지만 장미연은 의도적으로 그녀를 피했고 자리도 멀리 떨어져 앉았다.그래서 그녀도 장미연이 어떻게 된 일인지 몰랐다. 만약 정말 돈이 필요하다면 그녀는 분명 도울 수 있을 것이다.예천우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해도 자기
“그리고 너... 이신향, 네가 뭐 대단한 여자가되는 줄 알아? 내가 기회를 줬는데도 걷어찼으니... 이제부터는 나도 봐주는 거 없어.”조신우는 눈빛을 서늘하게 바꾸며 이어 말했다.“이선우, 이건 네 누나 탓이니까 괜히 날 원망하진 마. 선택은 둘 중 하나야. 40억을 준비하든가... 아니면 감방 갈 준비나 해.”이쯤 되자 그는 완전히 본색을 드러냈고 말 그대로 막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분노 때문에 정작 예천우가 어떤 사람인지 왜 그런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조신우의 말이 끝나자 방 안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았고 이재동을 비롯한 가족들 얼굴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특히 이재동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애원하듯 말했다.“조 도련님... 말씀이 좀 심하십니다. 이건 우리 잘못이 아니잖아요. 저희는 줄곧 도련님 편이었는데요.”“그래?”조신우는 입꼬리를 비틀며 차갑게 대꾸했다.“그럼 간단하지. 당장 저놈 끌어내. 저 예천우란 놈 지금 당장 꺼져주면 내가 조금은 봐주지.”그 말에 이재동은 주춤거리며 예천우를 바라봤지만 그보다 먼저 이신향이 목소리를 높였다.“아빠,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이재동은 딸의 질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결국 고개를 돌려 예천우를 바라보며 힘없이 말했다.“천우야, 그만 돌아가. 난 널 사위로 생각한 적 없어. 우리 신향이한텐 조 도련님이 훨씬 더 어울리는 짝이야.”그 말에 조신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이제 좀 상황 파악되냐? 누가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인지... 누가 진짜 남자인지. 어디서 싸구려 가짜 술이나 들고 와선 뭔가 될 줄 알았나 본데... 그런다고 네가 찌질이란 사실이 달라질 것 같아?”그는 속으로 확신하고 있었다.‘저 술을 어디서 주워왔든 아니면 맛이 그럴듯해서 속은 거든... 저 새끼는 결국 그냥 찌질한 놈이야.’그는 원래 몇 천만 원짜리 술이라도 꺼내서 겁줄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하지만 그때
예천우의 말이 끝나자 그제야 방 안 사람들 모두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기 시작했다.결국 술은 이성진 회장의 손에 들어갔지만 문제는 이 술은 조신우가 내놓은 것도 그가 사죄의 의미로 바친 것도 아니라는 점이었다.말하자면 조신우는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고 단지 무릎만 꿇고 멋쩍은 사과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이 장면을 바라보던 조혁진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이 자식이... 감히 신우한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냐. 대체 무슨 심보일까.’그는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따지고 들 상황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조신우가 이번 사고만 무사히 넘기면 그땐 따로 시간을 내서 따끔하게 손을 봐줄 생각이었다.이성진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상황을 파악하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재밌는 친구구먼. 이름이 뭐지?”예천우는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예천우입니다.”“그래. 이름 기억해 두지. 오늘 자네 덕 좀 봤네.” 이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이 술을 돈 주고 못 마시는 것도 아니지만 워낙 희귀한 술이다 보니 아무리 부자라도 마실 기회가 흔치 않았다.82년산 라피노 같은 와인은 평생 마셔도 마실 수 있는 술이겠지만 이런 국보급 백주는 한 병 마실 때마다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다.“회장님, 별말씀을요.”예천우는 여전히 담담한 어조였다.이성진은 더 말하지 않고 시선을 돌리다 테이블 위에 놓인 마오타이를 보고는 다시 한번 눈썹을 치켜세웠다.“오성 마오타이 58년산이라니... 자네 보통 친구는 아닌데?”“지인이 준 겁니다.”예천우가 가볍게 대답했다.“지인도 대단한 사람이구먼. 자네란 사람... 점점 더 궁금해지는군.”이성진은 감탄한 듯 웃으며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냈다.“이건 내 명함이네. 기회 되면 같이 한잔하지.”조혁진은 속으로 진저리를 쳤다.‘세상에... 술 한 병 때문에 회장님이 저 녀석한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시다니. 대체 저놈 주변에 어떤 인맥이 있는 거야?’그는 그 순간 조신우보고 예천우를 조심하라
“됐어. 난 사과받을 자격 없어.”이성진 회장이 싸늘하게 말하자 조신우는 완전히 얼어붙었다.그는 그저 백주 협회 회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막말을 퍼부은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인물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게다가 자기 삼촌인 조혁진조차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릴 정도였다.하지만 조신우가 몰랐던 건 애초에 조혁진이 이번 술자리의 자리에 함께하게 된 것도 운이 좋았을 뿐 그조차도 이 자리에 참여할 자격이 애매한 사람이었다.왜냐하면 오늘 자리는 강흥시의 유명 인사인 도 대표님이 이 지역 투자 건으로 방문하면서 직접 시장이 배석해 마련한 자리였기 때문이다.“뭘 멍하니 서 있어. 당장 무릎 꿇어!”조혁진의 얼굴은 이미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조신우를 꾸짖었다.조신우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그 누구보다 조혁진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고 그의 얼굴만 봐도 지금 자신이 얼마나 큰일을 벌였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특히 이신향 앞에서 무릎을 꿇는 건 자존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았다.조혁진은 이미 분노의 극에 달해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였다.그제야 조신우는 이를 악물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회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어두워 뵙지를 못했습니다.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그에 맞춰 조혁진도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이 회장님, 신우가 정말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제가 따로 시간을 내서 제대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조만간 반드시 직접 찾아뵙겠습니다.”“됐어.”이성진은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과하러 온다는 건 결국 선물이나 뇌물 같은 걸 들고 오겠다는 뜻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런 건 관심도 없었다.“오늘처럼 기분 상하게 하는 일도 드물었지만 그래도 이 술을 만난 덕분에 기분이 조금 풀렸어. 그 공으로 이번만은 눈 감고 넘어갈게.”그러고는 술병을 가볍게 들어 보이며 물었다.“이 술은 네 것이야
“실례합니다. 혹시 이 술이... 여러분 겁니까?”이성진 회장은 룸에 들어서자마자 묻지 않고는 못 참겠다는 듯 바로 입을 열었다.그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고급술을 들고 와서는 가짜라고 단정 짓고 그냥 버리려 한단 말인가.’방금 밖에서 스쳐 지나가던 종업원이 술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보고 이상한 향이 나서 따라가 봤더니 그게 바로 그 술이었다.이 말을 들은 모두가 순간 멈칫했다.하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이제동이었다. 그는 막 돌아와 후회로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 술병을 든 노인을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저, 저 술이... 다시 돌아왔다고?’그는 거의 튀어나올 듯한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네. 저희 겁니다. 그 술은 저희 거 맞아요.”이성진 회장은 단호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정말 어처구니가 없군요. 이게 진짜 명품 술인데... 어떻게 가짜라고 생각해서 버릴 수가 있습니까? 이건 그냥 낭비도 아니고 범죄 수준이에요!”이제동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고 사실 그도 진짜인지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저 노인의 말투를 보니 정말 진짜였던 모양이다.그런데 갑자기 조신우가 비죽 웃으며 끼어들었다.“이보세요, 노인네. 연기 참 잘하시네요? 도대체 예천우가 얼마를 쥐여줬길래 이렇게 연극까지 해주는 거죠?”“뭐라고?”이성진 회장의 눈이 번쩍 빛났고 그는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뒤엎을 기세였다.“연기 말이에요. 아주 실감 나는데요?”조신우는 비웃으며 예천우 쪽을 힐끔 쳐다봤다.“예천우, 솔직히 말해 봐. 이거 뭐 하자는 거야? 가짜 술 하나로 사람들 속이고 저 노인네까지 고용한 거야?”그 말에 이성진은 완전히 폭발 직전이었다.“헛소리 작작 하게나. 젊은이, 내가 지금까지 했던 말은 하나도 거짓 없고 모두 사실이야. 못 믿겠으면 백주 협회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 내 사진이랑 이력 다 나와 있을 거야.”그 말이 끝나자 조신우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화장실에 간다던 이제동이 다시 돌아왔다.하지만 얼굴엔 미묘한 실망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사실 그는 화장실에 간 게 아니었다.밖으로 나가 방금 나간 여종업원을 찾아다녔지만 아쉽게도 이미 늦은 뒤였다.그 술을 돌려받지 못한 것이다.‘하... 아까 그냥 진짜라고 말할걸. 괜히 허세 부리다 술까지 날려버렸네...’그는 깊은 후회를 씹어 삼키며 방 안으로 들어섰는데 탁자 위에 놓인 또 다른 술병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이건 뭐야?”“예천우가 또 꺼낸 거죠. 근데 딱 봐도 평범한 마오타이잖아요. 병에 페이톈 마크도 없고 제대로 된 것도 아니네요.” 조신우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고 예천우는 그런 그를 힐끗 보며 마치 바보 보듯 조용히 되받아쳤다.“페이톈 마크가 없으면 무조건 싸구려야?”“당연하지!” 조신우는 자신만만하게 외쳤고 예천우는 피식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페이톈이 나오기 전 마오타이가 뭔지 알아?”조신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는 원래 백주보단 와인을 선호했기에 이런 배경지식엔 무지했다.그때였다.이제동이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설마... 1958년산 오성 마오타이?”그 한마디에 방 안 분위기가 다시 술렁였다.조신우는 다시금 멈칫했고 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맨날 입에 페이톈만 달고 다니더니... 오성 마오타이는 들어본 적도 없나 보네요? 조씨 가문의 자제라는 분이 참...”“흥. 누가 알아. 그것도 가짜일 수 있잖아?” 조신우는 씩씩대며 말했다.“아저씨, 이번에도 한 번 맛 좀 봐주시겠어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 좀 해주시죠.”예천우도 미소를 띠며 맞받아쳤다.“맞아요. 진짜인지 확인해야죠. 가짜라면 또 쓰레기통 직행이니까요.”그 말에 이제동은 손끝이 살짝 떨렸다.그는 천천히 술병을 들어 포장과 마개를 살펴봤다.예전에 단 한 번 직접 본 적 있었고 아주 조금만 맛본 기억이 뇌리에 남아 있었다.‘설마... 정말 그 술이?’조심스레 병을 열고 한 잔을 따랐다.잔을
이제동은 처음엔 이 술이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둘러댈지 고민했지만 예천우가 정확히 이 술의 가치를 알고 있다는 걸 깨닫자 결국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예전에 용도에서 열린 경매에서 이 술 한 병이 무려 2억 넘게 낙찰됐어.”“뭐라고요? 2억이요?”방 안이 술렁였다.조신우는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말도 안 돼. 저런 평범한 놈이 어떻게 그런 술을 가질 수 있단 말이야?’ 그는 곧바로 외쳤다. “말도 안 돼요. 이거... 이거 분명 가짜예요. 가짜 술이 틀림없다고요!”그 말에 한지연과 이신향도 순간 흔들렸다.‘그러고 보니... 혹시 진짜 가짜 술이면 어쩌지?’예천우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조용히 말했다.“진짜인지 가짜인지야... 아저씨가 한 모금 드셔보시면 아실 겁니다.”“그... 그래. 마셔볼게.”이제동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술잔을 들어 한 잔을 따랐다.입에 가져간 뒤 천천히 음미하자 그 향과 맛이 그대로 온몸에 퍼졌고 마치 영혼 깊은 곳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이야... 이건... 진짜야.’말하지 않아도 그의 표정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특히 한지연은 남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그가 백주에 얼마나 진심인지 그 눈빛 하나로도 이미 확신할 수 있었다.‘진짜... 진짜인 건가?’하지만 조신우는 그 광경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이게 뭐야... 왜 저런 놈이 이런 술을 가지고 있냐고... 왜!’ 그는 억지로 말꼬리를 물었다. “아저씨... 어떠세요? 정말... 정말 이게 진짜 같나요?”그 말엔 은근한 압박이 실려 있었다. 지금 진짜라고 대답하면 조신우의 체면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그걸 눈치챈 이제동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곧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어. 맛은 괜찮은데 아주 뛰어나다기보다는 평범한 것 같네. 글쎄... 진짜는 아닌 거 같기도 하고...”그 말에 방 안 분위기가 살짝 멈칫했다.‘진짜...
“천우야, 아까 술 가지고 왔다며? 얼른 꺼내 봐. 네 아저씨가 술 하나는 진짜 좋아하셔.” 한지연이 살갑게 말했다.이제동은 뭔가 말하려다 말았지만 아내가 눈을 부릅뜨며 째려보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조신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그는 이제동도 자기 편이고 이 집 분위기도 다 자기 쪽이라 생각하니 완전히 이긴 기분이었다.‘좋아. 어디 보자. 저 자식이 들고 왔다는 술이 대체 얼마나 형편없는 건지 직접 보자고.’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가방에서 술 한 병을 꺼냈다.병에는 분주라고 적혀 있었고 얼핏 봐도 평범한 술은 아닌 듯한 깊이 있는 외관이었다.물론 마오타이 같은 유명 술은 아니었지만 병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묘하게 남달랐다.그 모습을 본 이제동은 순간 멈칫했다.평소 백주를 즐겨 마시는 그는 술꾼끼리 떠도는 이야기와 시장 정보를 꽤 알고 있었다.‘이거... 설마... 50년산 한정판 분주야?’그 이름만 들어도 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불리는 고급 백주였다.십몇 년 전 용도에서 열린 한 경매에서 단 한 병에 4억 원 넘게 낙찰됐던 그 술이었다.지금 시세로 치면 훨씬 더 높을지도 몰랐다.‘설마 진짜 그런 술일 리가... 아니겠지?’조신우는 병 라벨을 힐끔 보더니 툭 비웃으며 말했다.“봐. 내가 뭐랬어. 역시 마오타이도 아니잖아. 고작 집에서 들고 온 싸구려 술이겠지.”그러다 이제동이 술병을 유심히 바라보며 표정이 묘하게 변하자 슬쩍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그리 화내지 마세요. 어차피 그냥 술 아닙니까. 다음에 제가 제대로 된 마오타이 한 병 챙겨드릴게요. 진짜 좋은 걸로요.”조신우는 그 말에 은근히 힘을 실었다.지금 마오타이는 프리미엄이 붙어서 웬만하면 60만 원은 훌쩍 넘는 고급술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바로 그때 이신향이 뭔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 이제동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은 술병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목소리엔 믿기지 않는 떨림이 담겨 있었다. “이, 이게 설마... 50년
예천우가 잠시 말이 없자 한지연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물론 그녀 입장에선 아들을 위해 이신향이 조신우 같은 사람과 인연을 맺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천우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그녀는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서둘러 나섰다.“조신우 씨, 농담이죠? 여긴 그냥 평범한 식당인데 그런 최고급 술이 있을 리가 있나요.”하지만 조신우는 턱을 치켜들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그럼 딴 데 가시죠. 이딴 데선 도저히 못 먹겠네요.”그 말에는 노골적인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풋, 네가 나한테 밥 한번 사보겠다고? 한참 멀었어. 이 정도 식당에서 몇십만 원 쓰는 것만으로도 네 눈은 휘둥그레지겠지.’조신우는 속으로 그렇게 예천우를 조롱하고 있었다.그런데 예천우는 그를 슬쩍 쳐다볼 뿐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무심하게 말했다.“애초에 난 널 초대한 적도 없어.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그 말에 조신우의 얼굴빛이 확 어두워졌고 이제동은 깜짝 놀라 급히 끼어들었다.“천우야, 너 지금 무슨 말버릇이니. 조신우 씨가 어떤 분인데? 이런 분께 음식 대접하게 된 것만으로도 너에겐 큰 영광이야.”예천우는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고 그러자 이신향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아빠, 그런 말은 너무하시잖아요. 오늘은 천우 씨가 초대한 자리예요. 뭐가 나와도 그걸로 먹는 거죠. 손님이 무슨 메뉴까지 고르고 술까지 따져요?”그러고는 예천우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천우 씨, 제가 가서 식당에 무슨 술 있는지 보고 올게요. 적당한 거 가져다드리면 되죠.”하지만 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막았다.“괜찮아요. 제가 준비해 왔어요. 굳이 여기 술 안 써도 됩니다.”사실 그가 가져온 술은 모두 공간 반지 안에 들어 있었기에 언제든 꺼낼 수 있었지만 굳이 이목을 끌고 싶진 않아 자연스럽게 옆 가방에서 꺼내는 척을 했다.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잠시 멈칫했다.방금까지 분명 손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느새 술병이 나타난 것이다.하지만 누구
“흥, 그건 당연하지.”조신우는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쟤는 그냥 세상 물정 모르는 거죠.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알아서 무릎 꿇게 될걸요?”“그럼요. 조신우 씨,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죠.”이제동은 말하면서도 속으론 걱정이 가득했다.이신향이 갑자기 남자 친구를 데려왔다는 것도 머리가 아픈데 예천우가 무턱대고 나서서 조신우를 자극할까 봐 더 불안했다.특히나 예천우라는 사람은 뭘 좀 안다고 착각하는 무모함까지 있으니 더 위험했다.예천우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먼저 안으로 향했다.그런 모습에 이제동과 한지연은 눈살을 찌푸렸고 이신향은 난감한 마음에 얼른 뒤따랐다.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괜히 예천우에게 미안한 마음만 커졌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괜히 그가 모욕당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조신우도 마지못해 따라 들어왔고 일행은 함께 식당 안으로 향했다.내부는 화려한 인테리어 대신 전통적이고 소박한 농가 스타일로 꾸며져 있었는데 이런 분위기는 오히려 대도시 고위층들이 선호하는 콘셉트 중 하나였다.하지만 조신우는 들어서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내저으며 투덜댔다. “뭐야, 이런 촌스러운 데를? 딱 봐도 저질이네. 대도시에서 인당 2만 원도 안 되는 데면 분명 어디서 쿠폰이라도 긁어온 거겠지.”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오히려 잘 됐네. 이따가 제대로 면박 줄 수 있겠다.”사실 오늘 조신우는 아버지에게서 활동 자금으로 4억 원을 통 크게 받아온 상태였다.그 돈으로 오늘 제대로 부자의 삶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었다.이번 자리는 급하게 잡긴 했지만 예천우에겐 아무런 어려움도 아니었다.왜냐하면 이 동강루의 최대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바로 천상 그룹이었고 결국 이 식당도 그의 사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그러니 예약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사실 식당 대표는 그에게 가장 최고급 방을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예천우는 일부러 거절했다.너무 티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의 안내로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