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우가 살짝 놀라더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담양, 어떻게 된 거야, 이런 호칭을 밖에서는 자제했어야지....그는 일부 사람들이 아부하는 꼴을 보기 싫어서 이렇게 말했다.“그건 알 거 없어요. 그리고 오늘 일은 다른 사람은 몰랐으면 해요.”이신향이 멈칫하더니 물었다.“그럼 공로를 어떻게 천우 씨에게 돌리죠?”“전 공로 따위 필요 없습니다.”예천우는 고개를 흔들며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네. 그래요.”이신향은 전화를 끊은 후 갑자기 예전에 예천우가 외상매출금 60억을 단번에 해결했던 일이 생각났다.오늘 100억 짜리 계약을 성공시킨 공로도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이 그런 공로를 사칭해서 가로챘을 리가 없다.게다가 담 회장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에게 수금은 아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이 절대로 사칭해서 공로를 받았을 리가 없다.그렇다면, 수금은 그가 한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임 대표는 왜 자신이 한 것이라고 할까.그만하자. 임원들 일은 그녀가 알 바가 아니다.예천우가 말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면 그만이다.잠깐, 아직 중요한 일이 남았다. 이 계약서에 자사 사인과 도장을 찍어야 한다. 이신향은 서둘러 하문에게 전화했다.우선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하문은 듣더니 엄청 좋아했다. 그녀는 마침 임완유와 같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신향을 도와 이 시합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상의하고 있었는데 이신향 혼자서 해결해낼 줄이야.그것도 이런 거액의 계약을 말이다.하문은 이신향에게 바로 회사로 들어오라고 했다. 임 대표도 자신도 퇴근하지 않고 그녀를 기다리겠다고 했다.회사에 돌아온 후, 임완유와 하문은 혹시 무슨 차질이라도 생길 가봐 계약서를 꼼꼼히 훑어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바로 계약서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에게는 손해의 여지가 없는 문제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물었다.이신향은 우물쭈물하다가 결국에는 이실직고하고야 말았다. 이 계약은 예천우가 성사시킨 것이고 자신은 가서 사인만 받아온 것이며, 자세한 사
“예천우, 내가 다시 한 번 물을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임완유가 화내며 물었다.예천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사실대로 말해도 믿어주지 않으니 할 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이건, 담 회장이 나한테 빚이 있어 이걸로 갚은 거야.”이 말을 듣자 임완유는 바로 믿음이 갔다. 역시 빚이군. 그래서 바로 또 물었다.“너 언제 그분을 도와드렸어?”“바로 사 씨 가문이 사면초가였을 때. 내가 사 씨 가문과 충돌이 있었잖아, 담 회장은 그게 자신에게 도움이 됐다고 고마워했어. 감사의 의미로 나를 한 번 도와주기로 했거든.”예천우는 아무 말이나 지어냈다.“그래서 그 기회를 여기에 썼어?”임완유는 들을수록 화났다. 그 좋은 기회를 이렇게 낭비해버리다니...현재의 담양은 권세가 대단하다. 게다가 신비스러울 정도로 그를 잘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연줄을 대려고 해도 접촉이 불가능했다.원래는 엄청난 기회였는데!예천우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응, 마침 필요하니까 썼지. 안 쓰고 내버려두면 낭비 아냐?”임완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만하자. 그는 산에서 온 자연인이다. 그릇이 이것밖에 안 되는 것도 당연하다.“썼으면 됐어. 이번에는 정말 고마웠어.”“고맙긴, 나도 나 자신을 위해 일하는 건데. 인센티브 잊지 마.”예천우가 말했다.“걱정 마, 포상 확실히 할 테니까.”기회를 그렇게 낭비하다니, 하여간 안목이 짧은 건 알아줘야 돼.임완유는 서운해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궁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하문을 보며 입을 열었다.“천우 씨가 도와서 성사시킨 게 확실해요. 이 100억이 있으면 내일 2팀이 우승을 따낼 수 있겠어요.”“잘 됐네요. 이번 기회를 빌어 김선을 잘라내야겠어요.”하문이 이를 갈며 말했다.‘감히 내 사무실에 CCTV를 설치해? 이젠 내 머리 위까지 기어오르는구나.’“그리 쉽지 않을걸요?”임완유가 고개를 저었다.하문이 멈칫했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러했다. 어쨌든 김선이 업무능력에는 문제가 없었다.
뭐?예천우?그가 정말 계약 큰 거 하나 따냈다고?예전에 60억을 수금한 공로를 사칭해서 받았다고 하지 않았나?사람들의 눈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예천우가 그럴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의심할 거 없어요. 이 일은 제가 직접 다녀왔어요. 상대방도 인정했고요. 천우 씨가 달성한 실적이 맞아요. 그것도 아주 거액의 계약이에요.”이신향이 웃으며 말했다.“그, 그게 얼마인데요?”누군가 흥분하며 물었다. 이신향이 열 손가락을 내밀었다. “10억이요?”“아니, 10억이라도 부족한데요? 설마 100억?”“에이, 그럴 리가...”“그럴 리가 왜 없어요? 100억 맞아요!”이신향은 하룻밤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마음이 설렜다. 그들 영업팀에서 이런 거액의 실적을 달성한 게 얼마 만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정말 100억?맙소사!다들 하나같이 설레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예천우도 자연히 이 대화를 들었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팀장님, 벌써 발표해버리면 1팀에서 소식 듣고 해코지라도 하지 않을까요?”“설마, 지금 회의 시간이 바로 코앞인데 1팀에서 손을 쓰려고 해도 시간이 없을걸요.”이신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긴 그렇네요.”이신향의 소식 발표와 동시에 사람들은 무한한 희열에 잠겨 얼굴이 활짝 피었다. 시간은 일분일초 흘러 9시 반이 되었다. 임완유를 포함한 회사 임원들이 하나, 둘씩 회의실에 모이기 시작했다.회의실은 아주 넓었고 참석 인원도 적지 않았다. 상반기 실적 보고 회의 때도 임원들이 참석했었지만 이번만큼 성대하지는 않았다. 주요 원인은 1팀과 2팀의 내기이다. 이 내기는 김선의 계획하에 회사 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일단 지면 김선과 이신향 둘 중 한 명은 회사를 나가야 했다. 이 두 사람은 다 회사에서 알아주는 영업 인재이다.“신향 씨, 웃음꽃이 핀 걸 보니 승산이 있나 보네요?”김선은 이신향을 만나자 호호 웃으며 빈정댔다. “승산이 있는지 없는지는 좀 있으면 알게 되겠죠.”이신향이 미소
이신향은 저도 모르게 예천우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는 아주 침착하게 앉아있었다. 이 모든 것이 자신과 상관이 없다는 듯 태연했다. 하지만 사실 이번 내기에서는 그가 참여자이다.바로 그 이유로 김선이 예천우가 회의에 참석할 것을 요구했다.이때 김선이 입을 열었다.“임 대표님, 유 사장님, 그리고 임원 여러분, 실례하겠습니다. 저는 이 데이터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다들 갑작스러운 발언에 어리둥절해했다. 임완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눈치 챈것이다. 하지만 바로 원래대로 돌아와 담담하게 물었다.“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죠?”“저희 팀 실적 데이터가 잘못되었습니다. 60억의 매출액이 아직 실적 데이터에 업로드 안 되어있습니다.”김선은 말하면서 새로운 계약서 한 부를 꺼내서 갖다 내밀었다.이신향은 속이 쿵 하고 무너졌다. 머릿속에는 예천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너무 일찍 완성하면 상대방이 뒤에서 손을 쓸 거라고 했었다. 결국에는 예천우가 자신의 성화에 못 이겨 천하그룹을 찾아가라고 했던 것이다.그녀는 다시 한번 예천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평온한 기색이었다. 표정에서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그래도 속으로는 아쉽고 괴롭겠지...’다 자신의 탓이다. 잘난 척하고, 그를 믿지 못해서 이 비장의 카드를 폭로해버렸다. 이번에는 온전히 자신의 잘못이다.하문은 표정이 변하더니 계약서를 받아 한 번 훑어보고는 말했다. “여기에 우리 회사 도장이 안 찍혀있는 걸 보니 아직 입금 확인 안 되어있죠?”“맞습니다. 여기엔 확실히 우리 회사 도장이 찍혀있지 않지만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계약서에는 있습니다. 우리 쪽에서는 언제든 도장 찍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자금은 이미 입금되었습니다.”김선은 득의양양해서 말했다. “입금됐나요?”하문은 재무과장 조은을 바라보았다. 조은도 당혹스러워하며 물었다. “입금된 거 확실해요?”“그럼요, 다시 한번 확인해 보세요.”김선이 득의에 찬 얼굴로 말했다. 조은은 이 말을
“또 이러시네... 내가 사칭했다는 증거 있어요? 없으면 명예훼손이에요. 저한테 사과하세요.”예천우가 싸늘하게 말했다.“당신...”“명예훼손이 맞는지 아닌지 당신이 더 잘 알고 있겠죠. 근데 이건 당신과 더 따지고싶지도 않네요. 오늘은 시합 얘기나 해요.”이선이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시합 얘기, 좋아요. 그런데 우선 저한테 사과부터 하세요. 아니면 제가 사칭했다는 증거를 내놓으세요.”예천우가 차갑게 말했다.이선은 화가 났지만 이미 암시를 받은 터라 큰일을 망칠 수가 없었다. 도청한 일은 더더욱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할 수 없이 말했다.“그래요, 방금 한 말, 사과할게요.”“방금 한 말이 어떤 말인가요? 성의가 없네요.”예천우가 받아주지 않았다. “당신... 그래요. 말할게요! 내가 당신 명예훼손한 거에 대해 사과할게요. 죄송했어요!”김선은 할 수 없이 사과했다. “네, 잘 들었습니다. 이제야 사과답네요. 그럼 저도 김 팀장님의 무지함을 용서해야지요.”예천우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김선은 화가 잔뜩 나서 말했다. “사과도 했으니 이젠 내기 결과 얘기를 해야겠죠?”“그럼요, 저는 우리 2팀이 이기면 김 팀장님이 사직하고 팀장 자리에 물러나고, 저한테 1팀 팀장을 임명할 권리를 준다고 한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맞죠?”“맞아요, 천우 씨가 이기면 전 바로 팀장 자리를 내놓고 사직할 거예요. 하지만 천우씨가 지면 이신향 씨는 반드시 회사를 나가야 돼요. 그리고 천우 씨도 내 마음대로 처리할 거고요.”승산을 쥐고 있으니 김선은 말도 호기롭게 했다. 어쨌든 자신은 질 리가 없으니까.“너무하네요. 저까지 끌어들이다니. 그럼 왕신철 씨도 팀장님과 함께 회사를 나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예천우가 물었다. “좋을 대로 해요. 천우 씨가 원하면 그렇게 하죠.”김선은 왕신철의 의견은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다.“그렇다면 왕신철 씨도 추가하죠. 왕신철 씨,의견 없죠?”예천우가 물었다. 왕신철은 사실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임완유는 눈을 번쩍 뜨며 서둘러 예천우한테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몇몇 임원도 돌려서 보았다. 김선의 방식과 비슷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입금되었는가이다.예천우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김 팀장님, 어쨌든 팀장님과 이 팀장님 두 분 다 엘리트인데 회사에서 누구를 내보내더라도 회사 입장에서는 큰 손해일 거예요.”“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김선이 쌀쌀맞게 물었다.“제 말은,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비긴 걸로 해요. 그럼 누구도 회사를 나갈 일이 없고. 앞으로도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동료사이겠죠.”예천우가 미소 지으며 해석했다.다들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누구도 이 판국에 예천우가 이런 말을 꺼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임완유는 듣더니 속으로 피식했다. 예천우 이건 아마도 허장성세겠군.아마 이건 가짜 계약서이거나 입금이 안 된 계약서일 것이다.그녀만 이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다. 김선도 제일 먼저 이 생각을 했다. 자신이 재무팀에 있는 인맥을 통해 요 며칠 자금 거래내역을 뒤져보았으나 다른 돈은 입금되지 않았다.김선은 금세 감이 잡혔다. 그리고 호호 웃더니 말했다.“예천우 씨, 이런 겉만 번지르르한 말만 안 했어도 당신이 진짜 한 수 남겨둔 줄 알았잖아요. 이제 보니 모두를 속이자는 거네요.”“제가 누구를 속인다고 그래요?”“아닌가요? 가짜 계약서를 꺼내면 정말 내가 깜빡 속을 줄 알았어요?”“솔직히 제가 요 며칠 재무팀 입금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2팀은 그 100억 외에 다른 돈은 입금되지 않았죠.”김선은 득의에 찬 표정이었다.이 말을 듣더니 예천우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김 팀장님은 참으로 발이 넓으시네요. 재무팀에도 자신의 사람을 꽂아 넣다니.”“예천우 씨,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난 동료들과 사이가 좋아서 마침 들었을 뿐이에요. 그리고, 말 돌리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봐요. 그거 가짜 계약서 맞죠?”김선은 재빨리 말을 계약서에로 돌려놓았다. “당연히 가짜가 아닙니다. 저는
려성한의 지위를 흔드는 건 너무 어려웠다. 그렇다고 바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려성한이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거들었다. “그래요. 잡담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예천우 씨, 입금된 증거 있으면 빨리내놔봐요. 아니면 진 걸 인정하세요.”사람들의 지지를 받자 김선은 더 득의양양해졌다. 예천우를 보는 눈빛에도 승자의 오만함이 가득했다.왕신철도 흥분하며 자신이 이번에는 줄을 잘 섰다고 생각했다. 금방 이신향을 대신해 팀장 자리에 앉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들과는 반대로 임완유와 하문, 이신향은 절망한 나머지 다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때, 예천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좋아요. 다들 꼭 승부를 가려야겠다고 하시니, 나중에 인정사정 봐주면 안 됩니다. 이따 누군가는 꼭 회사를 나가야 돼요. 그럼 승부를 가려봅시다.”“조 과장님, 발표 부탁드릴게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재차 경악했다. 설마 정말 입금되었을까, 그리고 조 과장은 사전에 알았을 것이다. 아니면 왜 이런 말을 하겠는가.이 시각,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집중되었다. 조은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예전에 예천우가 자신에게 특별히 귀띔할 때, 그녀는 예천우가 사소한 일을 요란스레 처리한다고 생각했었다. 오늘이 되어서야 그녀는 이 결정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를 알았다.그녀는 살짝 웃더니 말했다. “확실히 60억의 자금이 3일 전에 회사 계좌에 입금되었습니다. 방금 전 데이터 정산 시 빠뜨렸나 봅니다.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이 말을 들은 김선과 그녀의 측근들은 전부 얼굴색이 변했다. 조은이 이렇게 말하니 십중팔구는 있다.역시, 확인 결과 정말 있다. 다만 조은이 일부러 숨긴 것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모두들 놀라 멍해졌다. 예천우는 처음부터 대책을 세워놓은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 모든 사람에게 숨기고 있었다. 하긴, 송금한 사람도 이 돈을 다른 사람이 아는지에 관심이 없었고 영수증을 요구한적도 없었다. 거기에다가 재무팀 담당자 조은의 협조가 있었으니 확실히 누구도 모르게
하문은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눈에 차지 않아 하던 굴러온 돌이 이런 재주가 있을 줄은 전해 생각지도 못했다. 이번에는 정말 그의 덕분이다.이 순간, 그녀는 임완유의 결정이 이해되는 것 같기도 했다.만약 그녀의 판단이 틀리지 않는다면 예천우는 아마 임완유가 려 씨 가문 사람들을 대처하려고 꽂은 사람일 것이다. 아니면 최근 일어난 일들이 설명이 안된다.그녀는 잘못 생각했다. 임완유는 예천우가 일을 배워서 이혼 후에도 먹고 살 수 있게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천우는 확실히 그럴 목적이었다.그러니 우연찮게 제대로 맞춘 것이다.하지만 김선은 자신의 최측근이니 려성한은 당연히 이렇게 쉽사리 넘어가지 못한다. 그가 바로 입을 열어 두둔하려는 찰나.예천우가 그의 표정을 포착하고 바로 앞질러 말했다.“좋아요, 이젠 결과가 명확해졌네요. 방금 저는 내기를 취소하려고 재삼 얘기했는데 김 팀장님은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죠.”“그리고 임원 여러분들도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드시 한 사람이 나가야 한다고 했죠. 이 팀장님 같은 엘리트 분이 회사를 나간다니 참 아쉽네요.”“하지만 일이 이미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되돌릴 수도 없네요. 임원분들도 말을 이미꺼냈으니 바꿀수도 없고요. 안 그래요?”“설마 아직도 체면 불구하고 김 팀장님과 왕신철 씨를 남게 하려는 분은 없겠죠?”예천우의 말에 다들 아무 말도 못했다. 누가 봐도 이건 그가 김선의 살 길을 전부 막아놓는 것이다.하지만 그가 이긴다 해도 적잖은 임원들의 심기를 건드릴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려성한 등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이제서야 그들 모두 예천우가 처음부터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말들이 김선의 팀장 자리를 노리고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임완유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예천우가 다른 건 몰라도 그 입은 참 잘 놀린다. 비록 우연히 한 건 했지만 확실히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냉큼 이 틈을 타서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여러 번이나 강조하던데, 이 자리에
예천우는 이번에 꽤 오랜 시간 동안 폐관 수련에 몰두했다. 그러는 사이 절정종에서 초대한 성종 대회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임완유는 성도로 출발할 준비를 마쳤지만 예천우가 폐관 중이어서 어제 떠나지 못했다. 예천우는 이를 알고는 바로 내일 함께 출발하자고 그녀와 약속했다. 마침 성종 본부가 동성시 근처에 있어 임완유의 성도 출근을 겸해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예천우는 남궁은서에게 부탁해 임완유가 회사에 도착했을 때 괜히 아래 직원들이 그녀를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조치해달라고 당부했다.남궁은서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이며 즉각 행동에 나섰다. 그녀는 회사의 고위 관리자들에게 직접 경고하며 임완유가 불편을 느끼게 할 경우 무조건 책임을 묻겠다고 엄중히 알렸다.다음 날 떠날 준비를 마친 예천우는 자신이 없는 동안 필요한 일들을 정리해 둔 뒤 양박군을 찾아갔다.양박군은 예천우를 다시 만나자 그가 예전보다 더 평범해 보였다고 느꼈지만 직감적으로 예천우가 한층 더 비범해졌음을 깨달았다.반면 당만수는 예천우의 변화를 정확히 감지하지 못했지만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도련님, 매번 도련님의 실력을 보고 놀랍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네요.”예천우는 웃으며 말했다.“당 장로님, 과찬입니다.”‘아마도 지금 나의 진짜 실력을 알게 되면 더 놀라실지도 모르겠네요.’당만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도련님과 양박군 같은 강자들과 함께 있으니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예천우는 웃으며 말했다.“당 장로님도 종사 절정의 경지에 도달하셨잖아요. 그건 엄청난 성취입니다.”당만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사실 공자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혼자 노력했더라면 몇 년이 걸릴지 몰랐을 겁니다.”그때 예천우는 옆에서 조용히 있던 독고살을 눈여겨보며 물었다.“독고살, 무슨 일이 있어? 표정이 조금 어두운 것 같은데.”경지를 돌파해서 그런지 예천우는 자신의 정신력이 크게 제고된 걸 느꼈다. 엄청나게 예민해진 감각 때
비록 예천우가 방금 육지 신선의 경지에 진입했을 뿐이지만 그의 기반과 잠재력은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초입 단계라고 해도 그의 힘과 내공은 이미 왕자 같은 존재감을 자아내고 있었다.육지 신선의 경지는 하, 중, 후급으로 나뉘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내공과 저축된 경험만으로 강약이 판가름 난다. 그런데도 성사리는 여전히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예천우는 성사리 안에 여전히 많은 힘이 남아 있음을 감지했고 이전 성종의 여러 대 종주 중 상당수가 육지 신선의 경지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잠시 고민하던 그는 성사리의 에너지를 다시 흡수해 보기로 했다. 다행히 이번에도 에너지가 그의 몸으로 흘러들어왔다. 강력한 에너지가 끝없이 체내로 밀려들었고 마침내 그는 흡수를 멈추기로 했다. 더 이상 큰 효과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그러자 성사리의 빛은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천우는 문득 떠올랐다. ‘성마결의 심법을 사용해 성사리의 에너지를 어머니의 체내로 전환해 주면 엄마도 육지 신선의 경지로 돌파할 수 있지 않을까?’그는 바로 행동에 나섰다.잠시 후, 예천우는 수련실에서 나와 어머니를 찾았다.“천우야, 어때?”남궁은서는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떨림이 담겨 있었다.조금 전 수련실에서 느껴진 강력한 기운은 그녀에게 아들이 해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성공했어요.”“정말이니? 너무 잘했어!”남궁은서는 감격스러워하며 아들을 끌어안았다.“여보, 봤어? 우리 아들이 해냈어. 천우가 해냈다고!”예천우는 어머니를 안으며 차분히 말했다.“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자들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그의 눈빛에는 차가운 빛이 깃들어 있었다.남궁은서는 아들의 결심에 고개를 끄덕였다.예천우는 곧이어 성사리의 힘을 어머니에게 전달하는 방안을 설명했다. 남궁은서는 그의 아이디어에 잠시 놀랐지만 아들을 믿고 시도해 보기로 했다
시간이 촉박했던 예천우는 임완유에게 자신이 곧 폐관 수련에 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한 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수련에 돌입했다.예천우는 먼저 성마결을 정밀히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미 수라심경을 수련했고 타고난 천재성과 기억력을 갖춘 그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마결의 핵심 원리를 빠르게 파악했다. 이후 그는 수련에 들어갔다.우선 수라심경의 미완성된 부분을 성마결로 보완하면서 자신의 기존 실력을 강화했다. 이어서 영혼과 정신력에 집중해 수련했고 예천우의 수련 속도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모든 준비를 마친 예천우는 성사리를 꺼내 성마결 심법을 사용해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사리를 작동하자마자 엄청난 에너지의 흐름이 폭발하듯 그의 몸으로 밀려들었다.그 에너지는 마치 그의 몸을 금세라도 폭발시킬 듯 강력했다. 예천우는 깜짝 놀라 서둘러 성마결 심법을 전개하며 에너지를 흡수하고 전환하기 시작했다. 진기가 끊임없이 그의 몸으로 흘러들어와 그의 육체와 정신을 에워쌌다.시간은 몇 시간 동안이나 흘렀고 그는 자신의 체내에 진기가 한계점까지 도달했음을 느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돌파하지 못했다.문득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황제심경 심법을 활용해 흡수한 진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하고 융합해 보기로 했다. 그는 이 방식을 사용해 몇 시간 동안 수련에 더 집중했다.결국 그의 노력은 결실을 보았다. 체내 모든 진기가 혼돈과도 같은 새로운 형태로 융합되었다.그리고 그 순간 굉음이 터졌다.“쾅!”예천우는 자신의 정신이 일순간 돌파되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온 세상이 그의 뇌리에 펼쳐져 전부 투영된 것 같았다. 그는 움직이지 않아도 주변 모든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의 정신력이 몸 밖으로 점점 확장되며 그 범위는 계속 넓어졌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거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밖에서 기다리던 남궁은서는 이 모든 것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 듯한 강렬한 시선을 감지하자 그녀는 문득 멈춰 섰
임완유를 방에 안정시키고 난 뒤 남궁은서는 예천우를 방으로 불러들였다. 그녀는 고풍스러운 책 한 권을 꺼내 그의 손에 건넸다.“이게 뭔가요?”예천우가 책을 받아 살펴보니 표지에 고풍스러운 글씨로 「성마결」이라는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이건 성종의 최상급 심법인 성마결이야. 지난번 네가 싸우는 걸 보니까 수라심경을 수련한 것 같더구나. 사실 수라심경은 성마결의 일부일 뿐이고 성마결만큼 완벽하고 고급스럽지 않아. 그래서 내가 특별히 이걸 가져왔어.”남궁은서가 설명했다.예천우는 책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안에 담긴 내용은 정말 대단했다. 자신이 수련했던 수라심경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완벽했으며 특히 영혼에 관한 수련법이 두드러졌다.그러다 문득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혹시 내가 돌파하지 못하는 이유가 영혼적인 측면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생각하면 할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그 순간 남궁은서는 다시 또 다른 상자를 꺼냈다. 상자는 은은한 고풍스러운 빛을 뿜었고 그 자체만으로도 비범한 보물임을 알 수 있었다.“이번에는 뭔가요?”예천우가 물었다.“성사리라는 물건이야.”“뭐라고요? 성종 역대 종주들의 정신과 수련의 힘이 모인 성사리요? 하지만 그건 이미 사라졌다고 하지 않았나요?”예천우는 믿기 힘들다는 듯 되물었다.성사리에 대한 전설은 그도 알고 있었다. 비록 모든 힘을 담지는 못했지만 역대 종주가 자기 힘의 십 분의 일을 남겨놓은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한 것이었다.그런데 이제 보니 성종 종주가 자신의 외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사람들은 성사리가 흡수되면 사라진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 성사리는 완전히 소진되지 않는 한 계속 존재할 수 있어. 다만 성마결을 극한까지 수련하고 종사 절정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사용할 수 있어.”남궁은서가 설명했다.“그럼 엄마는 내가 성마결을 수련하고 성사리를 흡수하길 바라는 거군요?”예천우가 물었다.“맞아.”남궁은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천우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이렇게 나올 것을 이미 예감했기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천상 그룹이요? 세계 100대 기업 중 하나인 그 천상 그룹 말인가요?”임완유는 처음에는 당연히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천상 그룹이라는 이름이 그녀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비록 천상 그룹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적은 없지만 천상 그룹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특히 천상 그룹 산하의 천상 투자 회사가 얼마나 막강한지는 소문으로도 알 정도였다.국내외 주요 대기업의 배경에도 이들의 투자가 있을 만큼 천상 그룹은 거물급 존재였다.더구나 사람들은 천상 그룹의 최대 주주가 신비로운 여성이라고만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설마 그분이 바로 나의 미래 시어머니였어...?’임완유는 이런 생각에 멍하니 굳어버렸다.“맞아. 너도 그 이름을 들어봤구나?”남궁은서가 물었다.“네. 하지만 정말 대단한 회사라고 소문으로만 들었어요.”임완유는 감탄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어머니, 혹시 그 천상 그룹의 최대 주주가 어머니셨던 건가요?”무영음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맞아. 하지만 이 모든 건 천우를 위해 준비한 거야. 그 애는 성격상 직접 나서서 관리하려고 하지 않거든. 네가 곁에서 도와준다면 더할 나위 없지.”“아니요. 안 돼요!”임완유는 당황하며 거절했다. 천상 그룹 최대 주주의 자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위상이었다.그녀가 이런 자산을 책임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천상 그룹의 규모는 그녀의 상상 범위를 넘어섰다.예천우는 그녀가 놀라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너무 걱정하지 마. 네 능력이라면 조금만 적응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어.”“그리고 우리 엄마가 너한테 맡긴다는 건 네가 손해를 보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야. 설령 다 날려버린다 해도 괜찮아. 내가 가진 자산도 어차피 네가 관리해 줘야 하거든.”“...” 임완유는 할 말을 잃었다.‘이
‘도련님이라고 부르다니... 설마 하녀야?’임완유와 유이안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완벽한 미인이 하녀라니. 선우서림도 임완유를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임완유가 이곳에 온 거 보니 아마 같이 살려는 거겠지?’ 그녀는 한동안 예천우와 더 가까워질 기회를 기다려 왔다. 예천우가 임국종의 후일을 다 마무리했으니 앞으로 자주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임완유가 이곳에 들어오면 그 기대는 물거품이 될 것이다.예천우는 둘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를 느끼고 바로 소개를 시작했다.“완유야, 이분은 선우서림 씨, 우리 엄마의 제자야.”임완유는 깜짝 놀라며 정중히 말했다.“서림 씨, 안녕하세요.”“굳이 그렇게 격식 차릴 필요 없어. 그냥 서림이라고 불러. 서림아, 이쪽은 완유야. 앞으로 새언니라고 부르면 돼.”예천우의 한 마디에 임완유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는 곧 그녀의 신분을 확실히 한 셈이었다.선우서림은 마음속으로 아주 억울했지만 남궁은서가 이미 임완유를 인정했기에 마지못해 말했다.“네. 형수님, 안녕하세요.”“그리고 여기는 완유의 사촌 동생 유이안이야.”예천우는 유이안도 가볍게 소개했다.예천우는 임완유와 유이안을 이끌고 집 안으로 들어가 그녀에게 방을 하나 배정했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 임완유는 계속 선우서림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가 자신에게 약간의 적대감을 가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그리고 임완유는 직감적으로 알았다.‘어쩌면 선우서림도 예천우를 좋아하고 있을 거야. 그렇기 때문에 나한테 적대감을 느끼는 것이겠지.’그래서 그녀는 예천우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천우야, 서림 씨는 여기서 계속 살고 있는 거야?”“아니. 서림이도 최근에 함께 왔어.”“함께?”“응, 아직 너한테 말 안 했는데 우리 어머니도 여기 계셔.”“뭐라고? 네 어머니? 그런데 그동안...” “내가 엄마를 찾았어.”예천우는 간단히 대답했다. 그는 이전에 임완유에게 자기 가족에 대한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지만 어머니인 남궁은서를 찾
유은수는 점점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우리 임씨 그룹의 현재 가치는 예전과는 많이 달라. 최소 수천억은 되고 현재 추세로 봐서 몇 년 안에 2조를 넘는 것도 문제없어.”“이 정도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왜 예천우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겠어? 예천우가 설령 수조 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우리에게 수백억을 줄 가능성은 없잖아. 게다가 예천우는 절대 수조 원의 자산도 없을 거야. 그러니까 예천우가 우리를 귀찮게 하는 일 없이 멀리 떨어지게 하는 게 최선이지.”임강은 유은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 하지만 선호는... 그 녀석은 참...”“괜찮아.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우리가 다 선호를 위해서 하는 거라는 걸 말이야.”유은수가 단호하게 말했다.“그렇지. 이제 선호도 점차 알게 되겠지.”차에 올라타고 난 뒤 임완유는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천우야, 우리 엄마가...”“말 안 해도 다 알아. 걱정하지 마. 네 엄마한테 손을 쓰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하지만 그 대신 내 도움도 기대하지 말라고 전해.”예천우가 말을 끊으며 차분히 말했다.임완유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쓴웃음을 지었다.“물론 그렇겠지. 제발 할아버지의 유산이라도 잘 지켜주면 좋겠어.”예천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담담히 말했다.“그건 아마도 어려울 거야.”임완유의 표정이 우울해지자 예천우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웃으며 말했다.“일단 돌아가서 좀 푹 쉬어. 몸을 좀 추스르고 나면 내 회사 몇 개를 너한테 줄게.”“회사?”임완유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응. 몇 군데 있어. 내가 직접 관여하지 않아서 상태를 잘 모르지만 네가 좀 정리해 주면 좋겠어.”“그 회사들은... 자산이 얼마나 되는 건데? 설마 몇조가 넘는 거 아니야?”임완유는 반신반의하며 물었다.“몇조?”예천우는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그거보다 훨씬 더 많아. 대충 계산해 봐도 200조는 넘을 거야.”수라전 자
“겨우 수천억짜리 자산은 내 손에선 용돈만도 못 돼. 돈은 나한테 그냥 숫자일 뿐이야. 내가 사랑하는 건 너... 바로 임완유라는 사람이야. 넌 어떤 걸로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지.”예천우의 말을 들으며 임완유는 다시 한번 감동했다. 만약 지금 장소만 적당했다면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했을지도 몰랐다.“언니, 형부! 두 분은 정말 너무하네요. 솔로인 제 생각은 하지 않나요? 너무 고통스러워요.”뒤에서 지켜보던 유이안이 웃으며 말했다.그녀는 예천우가 자신이 있는 걸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임완유만 바라보는 모습에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형부가 나한테 저런 말을 해준다면... 당장 죽어도 아깝지 않을 텐데.’임완유는 얼굴이 붉어지며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했다.짐을 다 챙긴 그들은 함께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거실을 지나면서 멀리서 유은수가 보였지만 임완유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문 쪽으로 향했다.그 모습을 본 유은수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가와 말했다.“완유야, 어찌 됐든 여기는 언제든 네 집이야. 돌아오고 싶을 때 언제든 돌아와도 돼.”임완유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순간 흔들렸지만 곧 조용히 말했다.“엄마, 만약 엄마가 변하기만 한다면 우린 여전히 한 가족일 수 있어요. 난 엄마를 존경하고 효도하고 싶어요.”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누구를 원망한다고 해서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유은수가 예전처럼 행동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하지만 유은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임완유가 다시 주식을 되찾으려는 속셈으로 착각하고 급히 말했다.“완유야, 엄마가 이렇게 한 건 네가 힘들까 봐 대신 회사를 관리해 주려는 거야.”“...”임완유는 쓰라린 마음으로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그러자 유은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완유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니겠지?’그녀는 걱정스럽게 말했다.“그래. 완유야, 네가 나한테 약속한 건 잊지 말아라.”“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도 엄마를 건드리지 않을 거예요.”임완
지난번 병원에서 예천우에게 뺨을 맞은 유은수는 이번에 그의 살벌한 분위기에 완전히 얼어붙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녀는 예천우가 자신이 주식을 빼앗은 사실을 이미 알았다고 확신했다.‘빌어먹을 년! 완유가 분명 날 대신 예천우에게 잘 말해 놓겠다고 약속했잖아. 예천우가 문제 삼지 않게 하겠다더니 약속을 어긴 거야? 내가 이런 년을 딸이라고 키웠어!’하지만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기에 그녀는 급히 변명하며 말했다.“천우야, 이건 오해야! 정말 내가 그런 게 아니고 이건 다 완유가 스스로...” “스스로요? 당신들은 이런 걸 스스로라고 하는 거예요? 완유를 생각해서 모르는 척하는 거였죠. 그렇지 않았으면 임씨 가문은 이미 없어졌다고요.”예천우는 냉랭하게 말을 내뱉고는 안으로 들어갔다.예천우가 사라지자 유은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투를 보니 자신을 당장 해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그 죽일 년이 그래도 나를 조금은 생각해 줬나 보네. 이래서 내가 키운 게 헛수고는 아니지.’임완유는 짐을 다 챙기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예천우를 보고 멍해졌다.“천우야, 무슨 일이야?”“네가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는데. 내가 안 오면 되겠냐?” 예천우는 다가가 그녀를 꽉 안아주며 속삭였다.그의 따뜻한 품에 안기자 임완유의 차가운 마음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할아버지의 죽음, 부모의 냉담함과 배신... 모든 것이 그녀를 끝없는 고통과 차가움 속에 밀어 넣었었다.그러나 예천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아끼고 지켜줬다. 자신이 오해하고 몰라줘도 그는 늘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이런 남자가 있다는 사실에 더 이상 슬퍼할 이유가 없다는 걸 느꼈다.“천우야, 고마워.”임완유는 고개를 들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나도 그래.”예천우도 부드럽게 대답했다.“짐 다 챙겼어?”“응.”“그럼 가자. 우리 집으로.”그의 말에 임완유는 잠시 멍해졌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