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은 당연히 비통해했다.그는 두 눈이 약간 벌겋게 달아오른 채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마치 하나의 석조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우문호는 들어와서 그의 그 모양을 보고 그와 유측비 사이가 매우 돈독하다고 느꼈다.우문호는 앞으로 다가가 앉으며 말했다. “큰형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기왕은 그제서야 머리를 천천히 돌렸다. 눈빛도 서서히 흐릿함에서 벗어났다. 그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목소리로 말했다. “왔느냐.”“네, 부황께서 저더러 가보라 해서요.”그는 수사하러 왔다고 말하지 못했다.기왕은 그래도 알고 있었다. 몸을 똑바로 하고 앉아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물어볼 것이 있으면 물어 보거라. 이미 왕부 중의 사람들에게 다 물어보았으리라 생각한다.”“큰 형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다 물어보았습니다.”우문호가 대답했다.기왕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그가 담담히 말했다. “그녀는 줄곧 몸이 안 좋아서 부중의 일을 관여할 겨를이 없었어. 그러니 그녀에게 물어봤자 소용이 없어. 그녀는 아무것도 몰라.”우문호도 머리를 끄덕였다.“측비 신변의 사람들하고 물어보니 측비가 일이 나기 전에 그녀 부친의 서신을 받았다 했습니다. 그 황폐한 곳에서 더는 참을 수 없으니, 큰형님에게 사정 좀 해달라고, 부황께 좀 봐달라 했다고요.”기왕은 마구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런 일이 있었지. 하지만 본왕은 응해주지 않았어. 그녀 부친은 벌을 받아 마땅했으니까. 본왕이 차마 부황에게 청을 들 수 없으니 다시는 그런 말을 꺼내지 말라고 야단을 쳤었어.” “큰형님이 그녀를 야단 쳤었어요?”기왕은 수심에 잠겨 양미간을 찌푸리며 조금 괴로운 듯 말했다. “본왕이 너무 심하게 말했었던 것 같아. 아니면 그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리가 없었을 텐데.”“큰형님이 생각하기에는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같습니까?”우문호가 물었다.기왕은 우문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면 뭐, 모살이라도 당했단 말이냐?
우문호는 돌아가면서 원경능과 이 일을 말했다.그 말을 듣고 원경능은 탄식하며 말했다. “저는 유 측비를 본적이 없어서 어떤 여인인지 몰라요. 하지만 한 여인이 아이를 가진 상황에서 호수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니, 아마 그녀는 기왕부에서의 생활이 죽기보다 못해서 그러지 않았나 싶어요.”“난 관아에서는 상세히 말 안 했는데, 실은 아마 기왕비가 그녀를 위협했을 거야. 그녀의 부친과 가족들의 생명을 담보로 위협했을 수 있어.”우문호가 말했다.원경능은 그를 보며 물었다.“그럼 이 사건은 그저 이러고 마는 거예요?” 우문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부중에서 발생한 인명사건인데다 또 스스로 호수에 뛰어들어 자결한 사건이야. 기왕비는 모든 일 처리가 온당한 사람이야. 필시 아주 주도면밀한 견해로 발뺌할 테지. 내일 관아에서 다시 가면 그때는 틀림없이 유 측비가 호수에 뛰어든 것을 보았다는 사람 한 두 명은 나타날 거야. 그저 미처 구하지 못했다고 하겠지. 그럼 이 일은 그냥 이렇게 넘어가고 마는 거야. 기왕이 측비를 위해 나서지 않는 이상 절대로 일의 진상이 밝혀지는 날은 오지 않을걸.”원경능이 보기에도 그럴 것 같았다.유측비가 정말로 자결한 거라면 그럼 누구의 책임도 추궁할 수 없었다.그녀는 마음속으로 그 여인 때문에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생명은 누구에게나 오직 한번뿐이다. 정말 부득이한 사정이 아니라면, 누가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고 싶겠는가?“참.”우문호는 갑자기 기왕비의 병이 생각났다. “오늘 보니 기왕비의 낯빛이 누런 게 말이 아니었어. 게다가 기침도 끊임없이 했고. 그녀가 병에 걸린 시간이 길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 엄중한 거야? 예전에 여섯째도 이렇게 심하진 않았어.”“이건 뭐라고 말하기 힘들어요. 저항력이라든지, 개개인의 차이 등 여러 요인들이 있거든요.”원경능이 말했다.“당신은 그녀의 병을 고쳐줄 거야?”우문호가 물었다.원경능은 웃으며 머리를 저었다. “자진하여 치료해주진
그렇지 않은가? 만약 아들을 낳았는데 요절했다면, 그거야말로 가슴에 못 박힐 일이 아닌가? 더구나 황실까지 연루될 수 있었다. 밖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황실이 이 몇 년간 아들도 태어나지 못했다느니, 태어난 아들도 하늘이 데려갔다느니, 이건 하늘이 우문씨 집안에 대해 징벌을 내리는 것이라는 둥 할게 뻔했다.기왕비가 병을 얻은 건 회왕을 돌봐주었기 때문이다. 측비가 병에 전염된 건 또 기왕비를 돌봐주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다 사이가 좋고 인정이 깊어서 생긴 일이다. 어디에서도 잘못을 찾을 수 없었다. 도리어 칭찬받을 일이었다.그녀가 누구를 탓할 수 있단 말인가?태후는 서글퍼서 말했다.“하늘도 우리 우문씨 집안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가 보구나!”우문호는 이 늙은이가 잠시 동안은 안정을 찾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 하지 않는가. 시간이 지나면 이 일도 천천히 잊혀질 것이었다.계속하여 몇 마디 더 위로하고 그녀에게 죽 반 그릇을 더 들게 했다.생각지도 않게 태후는 죽 반 그릇을 먹더니 그를 보며 말했다. “네가 한번 말해보거라. 너와 네 부인은 결혼한지 일년도 넘었는데, 왜 아직도 희소식이 없는 것이냐? 그녀의 배가 제구실을 못한다면 너도 이젠 측비를 맞아야 하지 않겠니. 지금 일곱째의 측비도 정해진 마당에 너도 빨리 서두르거라.”이 어르신의 마음은 여전히 우문호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늘 염두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손자 가운데서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건 바로 다섯째였다.자연히 현비가 그녀의 조카였기 때문이다. 친정이 이 몇 년간 도움이 되지 못하니 다섯째가 어서 빨리 한몫을 톡톡히 해내길 바랐다. 그래야 친정을 좀 이끌어 줄 수 있으니.다만 손자들도 다 친손자들인지라, 비록 다 똑같이 대해줄 수는 없어도, 다 잘되기를 바라왔었다. 그러기에 기왕의 측비 일도 이렇게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이다.우문호는 조모가 측비의 일을 말하는 것을 제일 두려워했다. 그는 체면을 무릅쓰고 원경능을 입에 올렸다.
우문호는 그걸 알 리가 없었다. 그가 괴로워하며 말했다.“당신은 달거리가 온 적도 없는데, 내가 황조모에게 당신이 가능하게 아이를 가졌다고 말한 거네. 이 일이 들통나면 안 되는데.”그런데 녹아가 말했다. “아니에요. 왕비, 어찌 달거리가 온 적 없나요? 왔었어요. 그저 왕비의 달거리가 좀 이상해서 때때로 두세 달에 한번 왔어요.”“왔었느냐?”원경능도 어리둥절했다.우문호는 그녀를 보며 의아해서 물었다.“당신 스스로도 왔었는지 안 왔었는지 모른다고?”원경능은 조금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조금밖에 안 왔는데, 달거리가 맞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았겠어요?”“뭐 이런 논법도 다 있어?”우문호는 원경능을 쳐다보며 물었다. “원씨, 당신 무슨 일을 나한테 감추고 있는 거 아니야?”“이런 일을 감출 필요가 있어요?”원경능은 화제를 돌렸다. “그 측비의 일은 그저 이렇게 끝인 거예요? 부황께서 아무 말도 안 해요?”“부황도 마음속으로 다 계산이 있을 거야.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우문호가 말했다. 그러자 원경능이 일어나며 말했다.“뭐 부황도 아무 말 안 하는데, 우리도 관계하지 맙시다.”그녀는 목청을 세우며 소리쳤다. “다보야, 우리 산책 나가자.”다보가 뛰쳐나왔다. 원경능은 녹아에게 분부했다. “나와 함께 산책하자꾸나.”녹아는 ‘네’ 한마디를 하며 원경능을 따라 정원으로 나섰다.우문호가 따라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원경능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참, 녹아야. 내 달거리 말이다... 나 세 달에 한번 오는 게 맞는 것이냐?”“왕비, 본인께서도 모르십니까?”녹아는 의아해서 물었다.“알지, 알고 있지.”원경능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왕야가 모르니깐. 난 사실 왕야를 속이려고 했었다. 그나저나 너희들은 한 달에 한 번 오는 것이냐?”그녀는 달거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듯 고의적으로 물었다.“네. 다 한 달에 한번 옵니다.”녹아가 대답했다.원경능은 원주인이 생리불순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휴, 하마터면 들통 날
문 앞을 나오자 원경능이 물었다. “어찌된 일이야? 네가 혼사일로 부친한테 대들었다는 말이 사실이야?원경병은 재수없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말도 말아요. 저에게 어떤 사람을 찾아줬는지 아세요? 하나같이 다 제 아버지 뻘이 되는 사람들이에요. 게다가 다 후처 자리고요.” 원경능은 경후 원팔륭이 투기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무엇이든 다 좋은 것과 바꿀 생각을 가득했다.특히나 그는 딸을 시집 보내는 게 이득을 제일 크게 얻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문턱이 높은 젊은 귀공자들은 자신처럼 이런 한물간 후야를 쳐다보지 않을게 뻔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뒹굴어봤자 시랑 자리밖에 차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치고 올라갈 수는 없지만, 언제나 내려올 수 있는 그런 위치였다.문턱이 낮은 집안은 그가 밑지는 것 같아 쳐다보지도 않았다. 자신은 어쨌든 후작이 아닌가.그러니 나이가 좀 많고, 관직이 안정되고 일정한 세력이 있는 집안을 찾을 수밖에. 부인이 죽은 사람도 괜찮았다. 원경능이 말했다. “네 혼사는 내가 한번 알아봐 줄게.”“네.”원경병도 한마디 응수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원경능은 왕부로 돌아온 후 정말 희씨 어멈에게 물었다.희씨 어멈은 워낙 입이 매서운 편이었다. “왕비가 찾은 사람을 당신 부친이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습니다. 당신 부친은 지금 딸을 팔아먹고 있는 겁니다. 이익이 안 맞으면 절대 동의 안 할겁니다. 그러니 왕비는 이 일에 신경 쓰지 마세요.”원경능은 진심으로 이 일에 마음을 쓰고 싶었다. 이 시대에 여인들이 시집가는 것은 평생의 일이었다. 적합하지 않아도 이혼 할 수도 없는 세월이었다.원주인 원경능의 일화가 좋은 예였다. 때문에 원경병의 이 일을 그녀는 마음에 담아 두었다.저녁에 우문호가 돌아오자 그녀는 물었다. “당신, 좀 겸손하고 사리 밝은 미혼 공자들을 알고 있어요?”우문호는 전신의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뭔 일을 벌이려고? 잊지마. 당신 이미 결
원경능은 그날 저녁 자시까지 기다렸지만 그때까지 우문호는 돌아오지 않았다.그녀는 침대에 오랫동안 누워 뒤척거렸지만 도저히 잠들 수 없었다. 녹아를 시켜 두 번이나 가보게 했으나 그때까지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무슨 큰 사건이라도 생긴 건가?보통 큰 사건이 있을 때만 이렇게 늦게까지 야근했다. 하지만 예전에는 서일을 시켜 소식을 전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아무 소식도 없는 것일까?밖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쿵쿵’ 울렸다. 그것은 원경능의 가슴마저 쿵쾅쿵쾅 뛰게 만들었다. 그녀는 즉시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사고가 생긴 것이다. 틀림없이 사고가 생긴 것이다.녹아가 달려 오며 황급하게 말했다. “왕비, 서일이 보고하러 왔습니다.”원경능은 온 몸이 피투성이인 서일이 뛰어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만 눈앞이 캄캄해지며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녹아가 그녀를 부축하며 급히 물었다. “왕비, 어찌 그러십니까?”“왕야는?”원경능이 마음을 다잡으며 힘겹게 물었다.서일은 얼굴의 땀을 닦으며 급히 말했다. “일이 생겼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왕야가 많은 돈을 잃고 화를 내며 다른 사람과 말다툼하고 있었는데 후에 고사가 왔습니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고사와 왕야가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두 사람은 취현거에서 뒤엉켜 싸우고 있습니다. 소인이 시도했지만 도저히 말리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왕비를 모시러 왔습니다. 이 일이 폐하께 전해지면 폐하는 필시 대노할 것입니다.”“마차를 준비하게!”자객의 습격을 당한 것이 아니라고 하니 원경능은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그가 도박에 싸움까지 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저번에도 고사와 한바탕 싸움을 한 적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사이가 좋을 때는 남색가들처럼 굴다가 나쁠 때에는 서로 죽기 살기로 싸워댔다.“자네 이 피는 어떻게 된 건가?”원경능이 서일에게 물었다. 기력이 왕성한 것을 보니 부상당한 것 같지는 않았다.서일이 말했다.”돼지 피 입니다. 취현거
마차는 왕부로 돌아왔다. 한바탕 구토를 한 원경능은 힘이 하나도 없었다.나른한 솜처럼 우문호의 품에 안겨 방으로 들어왔다. 고사는 풀이 죽어 그 뒤를 따랐다.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평소에 그토록 기세가 당당하던 초왕비가 이렇게 연약한 면이 있을 줄을. 만일 그녀가 정말 화병이라도 난다면 그는 이번 생에 원경병을 부인으로 맞을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했다.의원이 왔다.우문호는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조바심과 걱정을 가득 담아 말했다. “괜찮을 거야. 의원의 진료를 한번 받아봐.”원경능은 구역질을 한 뒤 너무 괴로워 그에게 화낼 겨를도 없었다. 그의 시퍼렇게 멍들고 부은 얼굴을 보니 마음도 아팠다. “당신은 가서 옷이나 갈아 입고 얼굴이나 씻어요. 술 냄새도 좀 없애봐요. 당신이 풍기는 그 술 냄새 때문에 괴로워 죽을 것 같아요.”우문호는 몇 발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알았어, 냄새를 안 풍길게. 의원이 당신을 다 진찰하고 나면 가서 옷을 갈아 입을 거야.”“나가요!”원경능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그가 서있는 자리는 마침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었다. 술 냄새가 풍겨오자 그녀는 또다시 구역질이 났다.우문호는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고사는 한 쪽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우문호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난 자네를 죽여버릴 것이야.”고사는 숙이지 않고 말했다. “모두 당신 탓입니다.”우문호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아직도 본왕이 잘못했다고 하는 거야? 본왕이 서일을 시켜 자네를 데려오게 한 건 그들이 편법을 써서 사람을 속인걸 철저히 조사하기 위함이었어. 헌데 자네는 뭐야, 세 마디도 하기 전에 손부터 댔잖아. 도대체 누가 잘못했다는 거야?”고사도 두 눈에 형형한 불꽃이 일었다. “그럼 제가 당신에게 좀 물어봅시다. 당신이 그들을 데리고 취현거에 간 용의는 뭡니까?”“투전하려고!”우문호가 냉랭하게 말했다. “왜, 투전하는 것도 자네의 미움을 살 일인가?”고사도
원경능은 몇 술 떴다. 하지만 죽에서 나는 마른 조개의 비린내를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위가 또 뒤집어지는 느낌이 들자 그녀는 손을 내 저으며 안색이 창백해진 채 침대에 누우며 말했다. “못 먹겠어요. 더 먹으면 또 토할 것 같아요.”우문호는 너무 마음이 아파 의원에게 화를 냈다. “도대체 무슨 병이길래 자네도 진단하지 못한단 말인가. 어찌 먹기만 하면 토하는 것인가? 빨리 방법을 생각해 내지 않고 뭐 하는가?”의원은 당황해 하며 말했다. “그래도 태의가 온 다음에 처방을 받으십시오. 이 늙은이는 감히 아무렇게나 처방을 내리지 못하겠습니다.”우문호는 그 말을 듣자 너무 급한 나머지 눈이 다 세모꼴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의원은 입술을 달싹이며 망설였다. 희씨 어멈이 말했다. “의원님은 먼저 돌아가요. 입을 굳게 다무셔야 할겁니다.” 의원이 말했다. “허면 이 늙은이는 먼저 물러 가겠습니다.”전씨 어멈이 그를 데리고 장방에 가서 진찰비를 내어 준 다음 그를 배웅해주었다.전씨 어멈이 문 어구에 와서 희씨 어멈을 불렀다.두 사람이 복도에 나오자 전씨 어멈이 입을 열었다. “의원의 진단이 혹시 틀릴 수도 있으니 이 일은 잠시 왕야께 말씀 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태의가 진단한 후 그때 다시 말합시다.”희씨 어멈도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네.”전씨 어멈이 탄식하며 말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다만 왕비가 자금탕을 마셨기에 아마 이삼 년은 임신이 어려울 겁니다.”“참, 나도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네. 자금탕은 누가 배합했나? 분량은 어땠는가?”“탕 대인이 배합한 겁니다. 분량도 정상적인 분량이었습니다. 하지만 후에 왕야가 해독탕을 주셨으니 아마 도움을 되었을 겁니다.”“해독탕은 크게 도움되지 않았을 거네. 자금탕을 마시자마자 해독탕을 마셨을 때에만 약 효과가 있네. 하지만 왕비는 궁에 있을 때 이미 몸이 많이 상했었네. 자금탕이 이미 폐부를 손상시켰던 게지.....”희씨 어멈은
이 문제에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왜냐하면 자신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당연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원씨가 임신한 뒤로부터 그의 눈과 마음에는 다른 것들을 담지 못했었다.현재 제왕이 물으니 우문호는 잠시 멍을 때렸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어디 그렇게 많은 왜가 있어, 놓으면 놓는 거지.'"다섯째 형님."제왕은 우문호가 머뭇거리자 조금 몸을 일으키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혹 아직도 명취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죠?"우문호는 그를 흘겨보았다."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네 다섯째 형수는 속이 매우 좁아.""형님 아직도 좋아하고 있는 겁니까?"우문호는 고개를 저었다."좋아하지 않아.""어떻게 했습니까? 이렇게 빨리 명취를 잊다니."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내가 뭘 했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한참 뒤에 우문호가 고개를 들었는데 빛이 반짝였다."너의 다섯째 형수가 있었기 때문이지.""그 말인즉, 다른 사람이 생기면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이건 아마 대체하는 방법인 듯 하군요. 다른 여인을 찾아야 되지요, 맞나요?"제왕이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우문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연구해본 적도 없는 걸.'허나 표면상으로는 적극적으로 말했다."맞아, 넌 동그란 얼굴의 계집애와 자주 있도록 시도해봐. 아마 곧 잊을 수 있을 거야."원영의를 말하니 제왕이 탄식하며 말했다."이번에 영의가 조태의를 데리고 돌아왔기 다행이지 아니면 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겁니다.""네 다섯째 형수가 보낸 거다."우문호는 원경능을 위해 공을 쟁취했다. 일곱째는 늘 원씨에게 편견이 있어 이 문제에 대해 우문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공을 쟁취하여야만 했다.그러나 제왕은 그 말을 흘려 보내고 홀로 중얼거렸다."사실, 동그란 얼굴도 괜찮아요. 자상하게 왕비를 소개해줄 것이라 했거든요."우문호가 불현듯 물었다."참, 오늘밤 돌아갈 거야?"제왕은 생각에 잠겼다."돌아갈 거예요. 동그란 얼굴이 있으니 절 괴롭히
우문호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부황...."부황께서 합의 이혼을 동의하시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또한 그 말투에 불쾌한 느낌이 상당했다."그대로 하면 되느니라."명원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저명취가 시집온 뒤로부터 사단이 끊인 적이 없었다. 작은 일은 저수부의 체면을 보아 눈 감아줄 수 있었다. 이렇게 방임했더니 결국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황실의 체면을 깎는 건 괜찮으나 사적으로 친황들의 사이를 이간질 하니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었다.애당초 그녀의 명성은 그렇지 않았다. 밖에서는 다들 그녀가 현명하고 정숙하며 대가의 풍격이 있다고 했다.그러나 오늘 저씨 노태부인의 그 말을 해 이미 화가 치밀었었다. 저씨 가문의 체면이 참으로 대단했다."부황."우문호가 정색하더니 재빨리 물었다."부황의 뜻은 일곱째의 요구를 동의한다는 겁니까?""동의하지 않을 수 있느냐? 무기를 휘두르기까지 하는데."명원제가 아비로써의 인내를 보여주었다."합의 이혼한 뒤 각자 재혼한다면 두 가문에게 모두 좋은 일이다."우문호는 매우 우러러보았다. 부황의 이 말은 참으로 가식적이었다. 너무 가식적이어서 전혀 가식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각별히 마음을 쓰는 것 같았다."이 일을 일주일 내에 해결하거라. 해결하지 못하면 곤장을 맞으러 와야 한다. 꺼지거라."명원제가 싸늘하게 말했다.우문호는 명을 받고 제왕을 찾으러 들어갔다. 두 형제는 서로를 부축하면서 출궁했다.그러나 명원제는 계속 상소문을 읽어야 했다. 군주로써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의자가 있는 이외에 뭐가 나은 것이 있던가?황제란 수명이 짧은 직업이었다.옆에서 묵을 갈던 목여공공이 기쁘게 말했다."제왕과 초왕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음을 보셨으니 폐하께서도 시름을 놓으실 수 있습니다."명원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는 떳떳하고 일곱째는 단순하다. 그렇기에 다행인 거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일찍부터 크게 다투었을 것이다. 다투지 않더라도 이후에는 암투를 벌일 것이지.
우문호가 위로했다."그만 소리 질러, 부황 앞에서도 네가 계속 신음소리를 낸다면 네가 겁쟁이라고 꾸짖으실 거야."제왕은 아픔에 말도 하지 못했다. 끙끙 신음소리와 함께 발을 질질 끌며 가고 있었다. 결국에는 실로 참을 수 없어 말했다."형님, 절 업어줘요.""상처가 앞에 있는데 내가 널 없으면 더 아프지 않을까?"우문호는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근심스러워졌다. '왜 이렇게 아픔을 참지 못한단 말인가? 예전에 원씨는 온몸에 부상을 입고 입궁하여서도 억지로 버텼었는데, 일곱째는 여인보다 못하는군.""다쳐서 아픈 것이 낫지 이렇게 상처가 찢기는 고통은 원하지 않습니다." 제왕은 걸음을 멈추고 무기력하게 손을 저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는데 입술에도 혈색이 보이지 않았다.우문호는 그를 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업고 나니 제왕이 또 "아아아"하고 소리를 질렀다.우문호가 물었다."되겠어?"제왕은 간신히 고개를 돌려 목여공공을 바라 보더니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아니면 나를 들고 가게."목여공공은 이미 성지를 전하러 출궁한 궁인에게 물어보았었다. 부상 정도가 그렇게 엄중하지 않다고 조태의가 말했다고 전했다. 가슴팍의 상처는 괜찮고 복부의 상처가 조금 깊다고 했다.그리하여 제왕의 이러한 모습을 본 목여공공은 근심을 금할 수 없어 물었다."태의가 확실하게 진찰한 게 맞습니까? 내장이 상한 건 아닙니까?"제왕은 숨을 들이쉬었다."내장이 상한 건 아니네."목여공공은 제왕의 이런 모습으로 실로 궁전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말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들고 갑시다."어깨 가마와 들것이 없으니 한 사람은 어깨를, 한 사람은 두 다리를 들고 갔다. 제왕의 머리는 떨어져 있었는데 입에 초롱 손잡이를 물로 있었다. 허나 자신이 걷는 것보다는 나았다.제왕은 칠흙같은 하늘을 바라 보았다. 등불의 빛은 궁중의 밤을 밝히기엔 부족했다. 그는 그저 딴 세상에 온 듯 하였다.왜 살아가다가 갑자기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음은 여전
황후는 완전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일곱째가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 죄명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죄명이 실증되고 정말 백관 앞에서 죄를 심의 받는다면 절로 미래를 망친 것이었다.그리하여 이 일의 진위를 막론하고 재빨리 답했다."합방을 하지 않았는데 어찌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 말이야 말로 전해진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태노부인도 바보가 아니었다. 저명취의 낯빛을 보고 태후가 말한 것이 진실임을 알고 있었다.다만 바보가 아닌 태노부인은 멍해졌다. '측비 때문이 아니라면 제왕은 왜 합의 이혼하려고 하려는 걸까? 설마, 그 원측비의 말이 진실이란 말인가? 명취와 초왕 사이가 애매하단 말인가?'태노부인의 얼굴은 당장에 어두워졌다. 다만 태후가 자리에 있는지라 무엇이라 말할 수 없어 일단 이 화를 가라앉혔다.그러나 태후는 태노부인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노부인, 한마디 묻겠네. 한 여인이 처로써 작은 일로 자결하고 또 낭군을 중상한 뒤 회개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군다면, 노부인의 부중에서는 어떻게 처단하는가?"태노부인은 실로 체면이 깎였으나 반박할 방법이 없었다. 제왕부부는 예전에 화목했었고 측비가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또한 합방도 하지 않았으니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린다고 억지를 부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태노부인은 그저 기가 죽어 말했다."태후마마, 제가 아둔했습니다. 명확하게 묻지 않고 입궁하여 태후마마와 황후를 귀찮게 했습니다. 다만 젊은 부부가 다투는 건 자주 있는 일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쉽게 처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합의 이혼이네."태후가 차가운 낯빛으로 곧 시정했다."황실의 체면이 중요하나 황실의 혈육도 잃을 수 없네. 제왕은 황제의 적자네. 부부가 작은 일로 모순이 생겨 무기를 휘두른다면 철로 만든 몸이라 하여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네."태후는 고개를 돌려 황후를 바라 보았다."너의 며느리고 또 너의 조카니 네가 알아서 이 일을 해결하
황후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안절부절하여 명원제를 흘깃 보았는데 명원제의 낯빛이 매우 어두웠다. 이에 황후는 원만하게 수습할 수 있는 말 몇 마디 하라고 태노부인에게 눈짓을 보냈다.그러나 태노부인이 싸늘하고도 딱딱하게 말했다."폐하, 황후마마, 제왕은 황실자손으로써 첩을 총애하고 처를 저버렸습니다. 비록 명취가 충동한 것은 잘못이나 모든 잘못이 명취에게 있는 건 아닙니다. 현재 제왕이 측비로 인해 합의 이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니 소문이 퍼진다면 실로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이에 황실과 저씨 가문의 체면이 깎일 겁니다. 폐하께서 성지를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제왕의 상처가 호전되면 백관들 앞에서 죄를 심의 받고 합의 이혼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태노부인의 이 말은 절대 사정의 의미가 아니라 몰아붙이는 느낌이었다.심지어 태노부인이 황실의 체면과 저씨 가문의 체면을 함께 논할 때 황후의 낯빛이 돌연 변했다. 크게 경악하더니 고개를 홱 돌려 명원제를 바라 보았다.아까만 해도 낯빛이 어둡던 명원제는 태노부인의 이 말을 듣고 도리어 화를 내지 않았다. 심지어 잔잔한 미소까지 머금으며 말했다."노부인, 조급해하지 말게. 이 일은 짐이 자세하게 물어볼 것이네. 노부인의 신체가 편찮다고 수부에게 들었으니 돌아가 푹 쉬게. 자손들은 자연히 자손들만의 복이 있을 것이니 노부인이 염려해서 되는 것이 아니네."말을 마친 명원제는 몸을 일으켜 떠났다. 나가기 전에 담담하게 저명취를 흘깃 보았다.태노부인은 기가 차 멍해졌다. 명원제가 위로의 말 한마디도 없이 이렇게 가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자신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었다.명원제는 나간 뒤 목여공공에게 분부했다."초왕과 제왕을 부르거라."목여공공은 잠시 머뭇거렸다."폐하, 제왕은 아직 부상 당한 몸입니다.""죽지 않을 거다."명원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만일 중상이라면 일찍이 부중에서 보고를 했을 것이었다."그리고 이 일을 태후께 아뢰거라. 태후께 한 번 들리라고 전하고."목여공공은 명을 받
다만 저명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눈을 감고 울고 있었는데 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제왕은 조태의와 원영의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번에 원영의는 매우 눈치가 빨랐다. 조태의를 이끌고 나가려는데 조태의가 약가루를 내려놓으며 시녀에게 분부했다."이건 지혈약이다. 상처부분에 뿌리고 살짝 동여맨다면 이틀 뒤 바로 괜찮아질 거다."시녀는 이미 놀라 손발이 나른해진 상태였다. 약가루를 건네 받고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제왕은 모든 사람들을 물리고 저명취의 곁에 앉아 물었다."왜 그러는데?"저명취는 고개를 돌리고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제왕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그러나 늘 흐리멍덩했던 머리가 이번에는 도리어 맑아졌다. 사실 원영의의 말들이 그를 정신차리게 했던 것이다.만일 명취가 정말 자신을 생각했다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은 째지게 가난한 사람도 아니었고 당당한 친왕이었다. 다른 것을 쟁취하지 않아도 그녀에게 평생의 부귀영화를 줄 수 있었다.누구도 그를 경쟁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도 한가하게 놀고 있는 왕야를 상대하지 않았다. 명취는 그렇게 총명하니 알고 있을 것이었다. 또한 자신은 저수부의 외손자였고 현재 황후의 적자였다.큰 형님이 태자로, 황제로 된다고 하여도 감히 자신에게 어쩌지 못할 것이다. 아니면 천하 사람들의 공론을 막을 수 없을 터였다.당연히, 좀 못나게 말한다면 큰 형님은 애초에 자신을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그리하니 명취는 정말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그렇다면 그가 한 모든 것들은 가치가 있을까? 그리하여 제왕은 마음이 아프지만 계속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렇게 끝내. 그대가 시집온 날부터 난 그대의 마음 속에 내가 없다는 걸 알았어. 난 자연히 다섯째 형님과 비할 바가 못되지. 나도 내 자신을 알아. 그대는 시종일관 다섯째 형님을 좋아했던 거야. 다만 다섯째 형님이 그대를 저버리자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시집온
탕양은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아사가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뭐가 산 것이라고요?""본왕의 아들 말이다!"우문호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아사는 머뭇거리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턍양을 바라 보았다. 탕양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왕야가 이미 미쳤다는 손짓을 했다.원경능은 기가 막혀 웃음을 터뜨렸다."됐어요, 됐어요, 식사나 해요.""우리 큰 언니는요?""돌아갔어."원경능이 답했다. 아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제왕에게 정말 화가 나요. 글쎄 큰 언니와 서일이 노닥거린다면서 큰 언니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겠어요? 큰 언니가 화를 참고 때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우문호는 기분이 매우 좋은지라 이 말을 듣고 아사를 흘겨봤다."이 계집아이 좀 봐, 일곱째가 매우 연약한 것처럼 말하네. 일곱째도 무술을 연마했었어.""설마요?"아사가 경악했다."그런데 왜 그렇게 연약하게 굴어요?"우문호는 어깨를 으쓱했다."연약하지 않아, 최소한 손으로 계란을 한 알 깰 수 있으니.""전 돌을 깰 수 있어요."아사가 답하니 우문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제왕이 정말 무술을 배운 적이 있나요?""배웠지, 황자로써 누가 배우지 않아도 되겠어? 마술과 궁술, 무술 모두 익혀야 하지. 일곱째도 배웠었는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후로는 배우지 않았어. 싸우는 것도 원하지 않고 말이야."아사는 의아해졌다."왜요?""무슨 자극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무술 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어."우문호가 말했다. 아사는 믿을 수 없었다."그렇게 많이 맞았는데 정말 무술을 익혔다면 왜 반격을 하지 않았겠어요?""일곱째는 여인을 때리지 않아."우문호가 답했다****여인을 때리지 않는 제왕은 제왕부로 돌아갔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는 곧장 저명취의 방으로 향했다.요 이틀간 저명취는 많이 울었는지라 눈이 계속 부어있었다. 제왕이 들어오는 것을 보아도 그저 담담히 눈길을 위로 들었다."성지가 내려진 건가요
제왕은 기가 막혔다."당신의 말투가 왜 아이를 달래는 것 같지? 본왕에게 정비를 소개하다니. 본왕의 혼사는 모후의 뜻을 따라야 해."원영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밝은 눈에 하얀 이, 옴폭 파인 보조개가 매력적이었다."조모께서 말씀하셨어요. 남자는 모두 애라 달래면 된다고요. 그리고 당신의 모후는...."제왕이 화를 냈다."당신의 모후이기도 하잖아!"원영의는 그제야 두 사람 사이가 생각난 듯 무미건조하게 코를 만졌다."전 정비가 아니라 모후라고 부르면 안돼요."제왕은 눈을 가늘게 떴다."당신 계속 본왕에게 합의 이혼하라고 하고 지금 또 이러한 말을 하는군. 당신 정비가 되고 싶은 거 아니야?"원영의가 물었다."정비가 되면 좋은 점이 뭔데요?""좋은 점이 많지."제왕은 잠시 생각했다."최소한 당신은 본왕과 명분이 정당한 부부로 되는 거지.""명분이 정당한 부부가 된다면 뭐가 좋아요?"원영의가 다시 물었다. 제왕은 그녀를 바라 보았다."당신은 부중에서 뜻대로 할 수 있어. 하인들도 모두 당신의 명을 따를 것이고."원영의가 반문했다."제가 지금 부중에서 뜻대로 살고 있지 않나요? 지금 하인들이 제 명을 따르지 않나요?""당신 본왕과 함께 여러 장소로 출석할 수 있지."원영의가 웃었다."지금은 제가 여러 장소에 출석할 수 없나요? "제왕은 그녀에게 눈을 부릅떴다."당신 지금 고의적으로 엇나가는 거야? 당신이 정비와 측비의 다른 점을 모를 리가 없잖아. 정비는 처고 측비는 첩이야, 명분부터 다르잖아.""처도 좋고 첩도 좋아요. 그러나 제가 저인 사실은 번함이 없어요."원영의는 손을 내저었다."전 당신의 처가 되기 싫어요 .좋기는 다른 사람을 찾으세요. 그리고 당신이 저명취와 합의 이혼하는가를 관심하는 것은 저와 직접적인 이해득실이 있어서예요. 누가 부중에 그러한 정실이 있기를 원하겠어요? 전 그녀를 보는 것조차 싫어요."말을 마치고는 곧 일어났다. 원영의가 떠나려 하자 우문경이 손을 잡았다."가자마, 본왕과 이야기나 좀
아사는 돌아간 뒤 부두에서 만아를 본 일을 원경능에게 알렸다.원경능은 이를 듣고 조금 마음이 시큰거렸다.이러한 시대에 여인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아는 남정네들과 함께 막노동을 하고 있으니 어디 얼굴을 드러내는 정도인가?다만 자신의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아사더러 만아에게 은 열 냥을 가져다 주라고 하였다.다음날 아침 아사가 돌아왔다. 만아가 안받으려고 하였는데 억지로 만아에게 넣어주고 달아났다고 전했다.원경능이 묵묵히 말했다."그 아이에게 주었으면 되었다.""왕비께서는 참 선량하십니다."아사가 칭찬했다. 원경능은 속으로 자신이 선량하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은 열 냥은 준 것도 사실 자신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원경능은 이 은 열 냥으로 자신을 홀가분하게 만들려고 했다.엄격하게 따진다면 그녀는 만아에게 빚진 것이 없었다.다만 원경능은 자신의 동정심이 점차 사라짐을 느꼈다. 원래의 원경능도 점차 모진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혹 자기 보호를 더 잘할 수 있을 수 있으나 결국 자신을 잃게 된 것이었다.우문호가 저녁에 돌아올 때 제왕을 데리고 함께 돌아왔다.그은 노기등등한 모습으로 초왕부에 도착하더니 바로 소월각으로 들어가 숨었다.원경능이 호기심에 물었다."왜요? 왜 구신이라도 본 듯이 숨어요? 누가 기분을 상하게 했기에 노기등등한 얼굴이에요?"우문호는 자리에 앉아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원경능은 자신 곁으로 끌어오고는 배를 어루만지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아들아, 기억하거라. 네가 이후에 만일 일곱째 삼촌처럼 못난 짓을 한다면 뺨을 갈겨 죽일 것이야."원경능은 그의 손을 두드리며 웃었다."무슨 아들이에요? 딸이면 안되나요? 제왕이 왜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어요?"우문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이 놈이 연속 이틀 동안 관아로 와 나를 찾았어. 공무가 가득한데 저놈 때문에 한 건도 해결하지 못했잖아. 이것 봐, 오늘밤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