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자신이 개발한 약물을 주사한 뒤 정신을 잃었고, 다시 눈을 떴을땐 이미 이곳에 와 있었다. 이 몸이 간직하고 있던 기억과 자신의 원래 기억이 머릿속에서 서서히 뒤엉켜 갔고, 그녀는 새로 주입되는 기억들을 곱씹기 시작했다. 경후(静候)의 적녀인 원경능은 오랫동안 초왕 우문호를 일방적으로 사모해왔다. 그녀가 만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공주부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계획을 세워 초왕이 자신을 범하였다고 모함한 뒤, 죽느니 사느니 소란을 피워댔다. 그 결과,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드디어 초왕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다만 초왕부로 시집온 지 일 년이 지났고, 그동안 온갖 술수를 다 부려봤음에도 불구하고 초왕은 그녀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학업과 연구에만 매진하던 그녀는 여태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몸 아래쪽으로부터 저릿하게 느껴지는 고통은 어젯밤에 벌어진 일을 알려주고 있었다. 천재 박사로부터 어느 이름 모를 왕조의 초왕비로 “승진”한 원경능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기는 커녕, 그저 자신의 연구 프로젝트를 이어갈수 없게 됐다는 점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다. 과학적으로는 설명할수 없는 타임슬립이라는 일이 자신한테 발생하였지만, 그녀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만약 현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무속인들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접근해서 연구해보는것도 나쁘지 않은 연구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다출혈로 인해 정신이 몽롱해졌다. 일단은 더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한 그녀는 침대로 돌아가 누었고 곧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얼마나 잤을까, 밖에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빨리 의원을 불러와!” 기씨 어멈의 다급하고도 처절한 고함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곧 이어 비릿한 피 냄새가 살짝 닫힌 나무 문틈 사이로 흘러들어왔다. 원경능은 방안의 가구들에 의지하며 휘청거리는 다리를 겨우 옮겨 밖으로 나가 보았다. 기씨 어멈과 한 시
Last Updated : 2023-06-2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