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예우림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하이힐을 밟고 다급히 현장을 떠나갔다. 엄진우는 그런 그녀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저 빙산녀, 가끔은 꽤 귀엽단 말이야.” 내일은 중요한 날이다. 집을 떠난 지 반년이 넘는 엄진우의 여동생인 엄혜우가 방학이라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엄혜우는 당시 아버지 살해의 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만약 제경의 권 세자가 아직도 엄혜우를 노리고 있다면 엄진우는 반드시 전력을 다해 엄혜우를 지켜야 한다. 다음 날 아침 엄진우는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흰 캐릭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소녀가 가늘고 하얀 다리를 움직여 성큼성큼 걸어왔는데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그녀의 모습은 청초하고 귀해 보였다. “혜우야!” 엄진우가 그녀를 불렀다. “오빠!” 엄혜우는 잔뜩 신나서 엄진우에게 손을 흔들었다. 엄진우는 그녀의 캐리어를 받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콤하게 웃었다. “키가 또 컸네? 대학교 생활은 어때? 먹는 건 괜찮았어?” 엄혜우는 혀를 내밀며 말했다. “그럼. 나 친구도 많이 사귀고 콘테스트에도 많이 참가했어. 특히 엄마랑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 엄진우는 오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돌아왔으니 집에서 푹 쉬어. 엄마 너 온다고 아침부터 시장에서 뭐 엄청 많이 사 들고 오셨더라. 지금 아마 부엌에서 바삐 보내고 계실걸?” “오예! 역시 엄마랑 오빠가 최고야!” 엄혜우는 환호하며 깡충깡충 뛰었다. 어릴 때부터 남매는 서로를 의지하며 사이좋게 자랐는데 엄진우는 그런 엄혜우와 하수희의 목숨을 자기 목숨보다 더 귀하게 생각했다. 엄진우는 엄혜우와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길에서 두 사람은 웃고 떠들며 엄혜우의 대학 생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 엄혜우는 갑자기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맞다, 오빠. 결혼했다며? 게다가 상대가 대표라고? 새언니 아주 예쁘다며?” “아, 뭐...” 예우림을 언급하자 엄진
기사의 미소는 순간 굳어졌다. “지금 내 돈 떼먹겠다는 거예요?” 엄진우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난 양아치한테는 양아치처럼 대하는 편이라.” 말을 끝낸 엄진우는 바로 엄혜우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기사도 차에서 내려 사나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 나 진짜. 좋게 좋게 말해줬더니 이거 아주 건방진 놈이네? 이 주변에 내 사람들 쫙 깔렸으니까 너 앞으로 집에서 나오지 마. 그러다 내 사람들에게 죽을 수도 있어.” 대학생인 엄혜우는 처음 보는 상황에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오빠, 됐어. 그 돈 내가 줄게. 그냥 액땜한 셈 치자.” 그녀는 가족들이 이런 사람에게 찍히는 걸 원하지 않았다. 지갑을 열어 현금을 꺼내려는 순간, 엄진우는 그녀의 손을 막았다. “돈 도로 넣어. 이런 자식한테 한 번 타협하면 다음에는 더 지랄발광을 해댈 거야.” 엄혜우는 워낙 생활비가 넉넉하지 않아 그저 먹고 사는 데만 넉넉할 뿐 비싼 화장품을 살 형편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아껴 먹으며 모은 돈을 이런 양아치에게 줄 수는 없었다. “이 새끼가!” 기사는 버럭 화를 냈다. “너 여기 꼼짝 말고 있어. 나 지금 당장 사람 부른다. 그때면 12만 원으로 끝나지 않아!” 엄진우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마음대로 하시던가.” 기사는 씩씩거리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얘들아, 나 지금 택시비도 안 주는 양아치 새끼 하나 만났거든? 당장 애들 불러서 이쪽으로 와. 제대로 혼 좀 내줘야겠어.” 그 말에 엄혜우는 잔뜩 겁에 질려 말했다. “오빠, 저 사람 진짜 같아. 빨리 신고부터 하자.” 엄진우는 여전히 시큰둥하게 말했다. “이런 일은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어. 이 오빠한테 맡기고 넌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돼.” 엄진우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콤하게 웃어 보였다. “내가 어렸을 때 널 지켰던 것처럼, 성인이 된 지금도 난 여전히 널 지켜줄 거야.” “오빠...” 엄혜우는 입을 삐죽 내밀고 눈시울을 붉혔다. 얼마 지나지 않
찰나의 순간 택시는 모두 해체되고 와장창 깨져버렸다. “내 차!” “개새끼가! 감히 우리 차를 부숴?” 순간 기사들은 눈에 핏대를 세운 채 버럭버럭 화를 내며 엄진우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너 이 새끼 대가리가 어떻게 됐어? 돈 내놓으라고 했지, 우리 차를 부수라고 했어?” “난 워낙 등가교환을 좋아해서 말이야. 돈을 원한다면 당신도 그만한 걸 내놓아야지.” 엄진우는 사악한 말과 미소에 엄혜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못 본 사이 그녀의 오빠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심지어 양아치 기사들보다 더욱 기세가 강했다. 기사는 이를 갈며 말했다. “이건 150만 원의 일이 아니야! 차 비용까지 전부 물어내! 적어도 몇천만 원은 내놔야 할 걸?” “150만 원만 줄 거야.” 엄진우는 또박또박 말했다. “몇천만 원을 부수고 고작 150만 원을 준다고?” 상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사납게 쏘아붙였다. “어디 한 번 해보겠다는 거야? 어디서 억지를 부려?!” 엄진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좋게 좋게 얘기할 때 안 들었잖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나도 억지 좀 부려보지 뭐.” 엄진우의 말에 사람들은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기사는 아예 얼굴이 일그러졌다. “헛소린 집어치우고! 오늘 돈 내놓지 않으면 넌 여기서 죽고 네 동생 년은 내가 술집에 팔아버린다!” 아악! 말이 끝나기 바쁘게 엄진우 상대의 멀쩡한 한쪽 귀를 뜯어버려 피가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기사는 너무 아파 무릎을 꿇은 채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내 가족을 모욕하면 내가 너 죽인다.” 엄진우의 얼굴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듯 살기가 가득했고 사람들은 간담이 서늘해져 저도 몰래 손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이 많은 택시를 부수다니. 정말 이런 놈과 붙었다간 누가 손해를 볼 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가서 흑곰 형님 모셔 와! 이 구역 보스인데 평소에도 늘 우리를 아끼셨으니 흑곰 형님에게 말하면 곧 사람을 데려와 이 새끼를 혼내줄 거야.”
흑곰이 제일 먼저 엄진우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신거렸다. “엄진우 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부하 관리를 제대로 못 한 잘못입니다. 제가 이 자식들 제대로 혼낼 테니 한 번만 봐주세요. 다시는 이런 잘못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엄진우는 흑곰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 “자식의 잘못은 아 부모의 잘못이지. 장 회장과 전화 통화나 해야겠어.” 그 말에 흑곰은 흠칫하더니 몸을 벌벌 떨며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은 채 자기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엄진우 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엄진우 님 앞에서 목숨을 끊겠습니다! 제발 장 회장님에게 알리지 말아주세요. 그러다 정말 제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흑곰은 끊임없이 자기 얼굴을 후려쳤고 어느새 입가에 피가 흥건하게 흘러나왔다. 놀라운 장면에 엄혜우는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렇게 대단한 인물이 우리 오빠 앞에 무릎을 꿇고 절로 뺨을 때린다고? 우리 오빠가 언제부터 저렇게 체면이 커진 거지? “혜우야, 들어가자.” 엄진우는 엄혜우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는데 순간 엄혜우는 안전감이 넘쳤다. 이때 엄혜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주변을 살피며 주저했다. “그냥 저렇게 내버려둘 거야?” “저런 새끼들을 상대해서 뭐 해?” 엄진우는 가볍게 말했다. 그들은 각자 자기 방식대로 자기에게 벌을 주었고 엄진우는 쿨하게 뒤돌아섰다. 그 모습에 엄혜우는 속으로 감탄했다. 집에 들어오니 하수희는 이미 한 상 떡하니 차려놓고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웃고 떠들며 밥을 먹었다. 하수희는 엄혜우가 없었을 때 집에서 발생했던 수많은 일들을 그녀에게 일일이 이야기 해주었다. 그리고 엄씨 가문의 인정을 받았다는 말에 엄혜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리가 4대 고대 무가의 엄씨 가문 사람이었다고?” 더 놀라운 건 아버지의 위패가 엄씨 가문 사당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이다. 여기까지 말한 하수희는 엄
청용은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아닙니다. 단서는 있습니다. 제 상처에서 마침 범인의 DNA를 채취하는 바람에 전 도시의 인구를 조사해 범인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전이 있어?” 그 말에 바로 전까지 낙담했던 엄진우는 이내 다시 흥분 조로 묻더니 다시 정중하게 명령을 내렸다. “이번에는 반드시 빨라야 해. 조 시장에게 연락해 정부의 도움을 요청해. 그리고 절대 경솔하게 행동해서 똑같은 수법으로 당하는 일은 없도록 해.” “네!” 청용은 엄진우의 명령을 받들고 바로 뒤돌아섰다. 이때 엄진우가 갑자기 그를 불러세웠다. “용아, 이거 받아.” 엄진우는 청용에게 주홍색 단약을 건네주었다. “혈독단인데 피부 외상이나 부러진 팔까지도 단기간에 회복할 수 있어. 이거 먹고 빨리 나아!” 청용은 순간 감격에 겨워 말했다. “명왕님, 이건 너무 귀한 거 아닙니까? 제가 감히 어떻게... 명왕님이 힘들게 제련한 이 혈독단은 해외에서도 거액 경매에 오른 희귀한 보물입니다.”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희귀한 보물은 개뿔. 그거 다 자본가들의 조작이야! 내 물건은 내가 주고 싶은 사람한테 줄 거니까 말 길게 하지 마! 군인인 네가 이걸 받을 자격이 없다면 이 세상에 이걸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그 말에 청용은 한쪽 무릎을 꿇고 입을 열었다. “용국과 명왕을 위해 목숨을 걸고 불길에 뛰어든다!” 엄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군영도 아닌데 왜 구호를 외치고 있어. 기억해. 넌 내 부하뿐만 아니라 함께 싸웠던 전우이기도 해!” 엄진우는 어깨로 청용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열심히 해. 나 실망시키지 말고.” 그러자 청용은 자신만만해서 말했다. “네! 반드시 뷔젠트의 근거지를 찾겠습니다!” “좋아! 네 승리를 기다린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엄진우는 동생 엄혜우를 돌보는 것 외에는 줄곧 회사에서 야근했다. 곧 지사가 설립되는 날이 다가왔다. 예우림은 특별히 번화한 상업 지역에 사무실을 얻었는데 작명은
엄진우는 안색이 변하더니 이내 고분고분해졌다. “소 비서님, 나 진짜 억울해요...” “쳇!” 엄진우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자 소지안은 눈을 뒤집으며 말했다. “역시 남자들이 하는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을 수 없어요!” 그녀는 화가 나서 엄진우의 허벅지를 꼬집은 후 몸을 일으키고 말했다. “예 대표님은 한꺼번에 6억을 투자할 만큼 우리에게 아주 큰 기대를 하고 있어요. 우리 비담 컴퍼니는 이제 시작인데 앞으로의 비전은 생각해 봤어요?” 비록 창업 자금으로 6억은 큰돈이 아니지만 지성그룹의 재무 정황으로 보았을 때 유동할 수 있는 자금이 고작 40억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 6억은 예우림의 최선이다. 만약 잘못되면 예우림은 이 6억을 날리게 되고 지성그룹의 정상적인 운영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엄진우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부대표의 지시에 따를게요.” 소지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진우 씨 이젠 예전의 평사원이 아니에요. 그러니 대충 넘어갈 생각하지 말고 빨리 말해요!” 그제야 엄진우도 숨김없이 말했다. “첫 번째로 시급한 과제는 사내외 건설과 부서 정비 그리고 새로운 규칙 제정과 파트너 육성이죠. 불야성 프로젝트에는 계약 업자와 공급업자 등이 필요하고 라이브 커머스는 상하류 산업체와의 협력 파트너가 필요해요. 이 일은 모두 소지안 부대표에게 맡길게요.” 엄진우의 유창한 말에 소지안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대표직에 오른 엄진우의 쩔쩔매는 모습을 볼 줄 알았던 소지안은 그의 이치에 꼭 들어맞는 말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모르는 일이 하나 있다. 북강에서의 7년 동안, 엄진우가 견지한 두 가지 일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독서였다. 그는 해외 간행물과 경제 잡지, 그리고 문학 명작 등을 읽었고 심지어 많은 부하가 각계각층의 큰 인물이 되었다. 7년 간의 침전으로 그의 시야는 심상치 않게 변해있었다. 그녀는 정색해서 말했다. “걱정 마세요. 새 규
그제야 엄진우는 정신을 차리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백 부장님 심정은 저도 이해한다만 현재 회사에서 충분한 예산을 내놓기 힘들어요. 하지만 저도 라방팀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기획을 마련했어요.” 백지연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엄 대표님, 돈이 들지 않는 기획은 없어요. 숏폼 투자에도 돈이 들어가고 라이스 쇼 호스트도 돈이 들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오프라인 공급망도 유지비가 들어가야 한다고요!” 엄진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사치품을 팔아야 하니 홍보가 중요하긴 하죠. 하지만 우리가 돈을 쓸 필요 없이 사람들이 알아서 우리에게 트래픽과 돈을 주고 싶어 하는 경로가 하나 있죠.” “그런 좋은 일도 있어요?” 백지연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빈정거리며 말했다. “엄 대표님, 듣자니 지성그룹 마케팅 부서 팀장이었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전자상거래에 대해 아직 잘 모르시죠? 현재 국내 여러 숏폼 플랫폼의 주요 수입은 트래픽 판매에서 발생하며 그 중 라이브 스트리밍은 가장 강력한 온라인 비즈니스 제품인데 트래픽 수요가 상당히 커요. 그런데 돈도 받지 않고 트래픽을 제공한다고요? 하늘에서 과연 떡이 떨어질까요?” 백지연의 말에 기타 임원들도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망언입니까?” “하하, 역시 엄진우는 아직 너무 어려.” “고작 몇 달 동안 마케팅 부서에 몸 담갔던 고졸 직원이라 제대로 된 경영교육을 받지 못한 티가 나네.” “저런 사람을 대표로 두고 우리가 두 달이나 버틸 수 있겠어요?” 그 말에 소지안은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들 입 똑바로 놀려. 그게 상사에 대한 태도야?” “괜찮아요.” 엄진우는 담담하게 그녀의 말을 막았다. 평사원이 갑자기 지사 대표로 승진해 하필이면 옛 지성그룹의 중간 관리진을 부하 직원으로 두게 되었으니 그들이 엄진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엄진우는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 “물론 그 말도 일리가 있지만 백 부장님이 하나 놓친 게 있어요. 자본시장은
“그래요. 회의 끝!” 엄진우는 담담하게 회사의 첫 번째 내부 위기를 해결했다. 소지안은 그런 엄진우가 더없이 대단해 보였다. “근데 다 어디서 배웠어요?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죠?” 엄진우는 소지안의 얼굴을 꼬집으며 가볍게 웃었다. “독서나 많이 해요. 지안 씨가 4년 동안 대학에서 배운걸, 난 도서관에서 여덟 시간이면 충분히 습득할 수 있어요.” 이 말을 끝으로 엄진우는 뒤돌아 나갔다. 소지안은 열받은 듯 두 볼이 볼록해져서 씩씩거렸다. “뭐야? 그러면 난 독서 안 한다는 거야? 나쁜 자식!” 고졸 주제에 재경 대학의 수재를 경멸하다니. 젠장! ... 다음 날 밤. 비즈니스 디너쇼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갑자기 잠옷을 입은 엄혜우가 나타나 엄진우를 꼭 끌어안고 낄낄 웃어댔다. “오빠, 어디가? 나도 같이 갈래. 나 맨날 집에만 있어서 심심해 죽겠단 말야.” 엄진우는 하는 수 없이 엄혜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부동산업계 디너쇼에 갈 거야. 너도 가고 싶어? 근데 거긴 재미없어.” 그러자 엄혜우는 달콤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아. 나도 갈 거야!” 엄진우는 그녀를 어찌할 도리가 없어 달콤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옷 갈아입고 같이 가자. 백팩은 안 돼. 어린애라고 놀려.” 엄혜우는 엄진우를 째려보며 말했다. “어린애는 개뿔!” 말을 끝낸 그녀는 이내 대학생 룩으로 갈아입었는데 화이트 크롭탑에 블랙진, 질끈 묶은 머리에 긴 다리. 정말 청순 그 자체였다. 엄진우는 속으로 감탄했다. 역시 여자들은 변화가 참 빠르다. 엄혜우도 어느새 아리따운 여자가 되었다. 이내 엄진우는 엄혜우를 데리고 시내의 한 호텔에 도착했다. 초대장을 내밀자 상대는 공손히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역시 비즈니스 포럼이라 그런지 정장 차림의 기업가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샴페인과 와인, 그리고 보스턴 랍스터,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등은 모두 무료로 제공되었다. “여기 대박이
남자는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이때, 서관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남자는 순간 멍해지더니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엄진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설마... 진짜일 리가 없겠지?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지는 것은 거친 욕설이었다. 한편 제경에는 피를 동반한 권력 변화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보수파는 이용진을 잡은 후 야망이 커져 이 기회에 급진파의 장로들을 모두 제거하려 했다. 급진파의 장로들은 이용진 사건에서 이미 한발 물러섰지만 보수파의 끝없는 욕심을 보고 더는 참기 어려웠다. 양측은 격렬한 충돌을 벌이다 큰 전쟁으로 번졌다. 결국 제경 전역을 봉쇄하고 계엄령을 내렸지만 양측의 교전으로 제경 내부는 화약 냄새가 자욱했다. 하지만 이 충돌은 전 국토로 확산되어 전국적인 전란의 위기를 몰고 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대장로가 깨어났다. 몇 년 전, 대장로는 북강 명왕을 해임한 후 깊은 잠에 빠졌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혼란스러운 제경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두 파벌을 본 그는 상황이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반쪽짜리 명왕령을 당장 엄진우에게 가져가고 제경으로 불러들여라! 그때의 일은 내가 친히 설명할 것이다.” 대장로는 수십 년을 함께한 심복을 불러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진우는 반쪽짜리 명왕령을 손에 쥐게 되었다. 수년 전 그날, 엄진우는 명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이 반쪽 명왕령을 회수당했다. 이 순간, 명왕령은 드디어 온전한 하나가 되었고 이는 명왕이 다시 자리에 올랐음을 알리는 것이다. 제경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알게 된 엄진우는 아무 말 없이 갑옷을 입고 무장했다. 전투의 기운은 살벌하게 하늘을 찔러댔다. 그는 급히 북강으로 향했다. 북강 잠룡곡. 그곳에는 50만 북강 군대가 수년간 매복해 있었다. “북강군이여, 명령을 받들라!” 긴 외침과 함께 전쟁의 신, 북강 명왕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50만 북강군은 흥분에 휩싸여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암은 용국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데 용국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암의 많은 재벌은 지난 100~200년 동안 용국에서 이민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현재 시암의 갑부 역시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 성이 서씨야?” 엄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뭐 좀 아는구나? 얼마면 되겠어? 가격부터 말해.” 남자는 손을 휘저으며 수표를 꺼냈고 엄진우의 얼굴은 순간 싸늘해졌다. “네 아버지 그까짓 재산으론 내 엉덩이를 닦기도 부족해. 그런데 어디서 감히 큰소리야? 당장 꺼져!” 엄진우는 이 재벌 2세가 그저 방탕한 자식일 뿐, 실지 가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인간이란 걸 바로 알아챘다. 단지 남을 괴롭히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저렴한 사람이니 더는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남자는 멍하니 엄진우를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미쳤어? 우리 아버지 시암 갑부라고! 그런데 그까짓 재산이라고?”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네 아버지 말이야! 서씨 가문 자산을 합쳐도 200조를 넘지 못해!” 엄진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아, 이 새끼 허세 장난 아니네? 너 200조가 어떤 개념인 줄 알기나 해? 현금으로 바꾸면 너 같은 건 몇천 번도 깔아 죽일 수 있어.”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됐고... 애송이, 당장 여기서 꺼지지 않는다면 시암에 있는 네 아버지가 당장 날아와 널 혼내줄 거야.” 엄진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남자를 쫓아냈다. “이 새끼 봐라? 감히 누구 앞에서 잘난 척이야? 너 돈에 깔려 죽고 싶어?” “말귀 못 알아듣는 놈이군, 당장 네 아버지를 불러줄게.” 엄진우는 휴대폰을 꺼내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서관림 알죠?” 엄진우가 물었다. “선생님, 서관림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요? 당장 연락드리라 알리겠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서관림의 아들이
그녀는 아들이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원수를 사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고 아들이 정말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아들이 그 수단들을 어디서 배웠는지,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숨 막히는 날들을 보냈는지 너무 걱정되었다. “집에 가서 얘기하자.” 엄진우는 하수희를 번쩍 안아 들고 회사를 떠났다. 가는 길에 엄진우는 가볍게 하수희의 머리를 쳤고, 곧 하수희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엄진우는 그녀의 일부 기억을 지워버렸다. 집에 돌아와 한참이 지나자 하수희도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진우야, 어쩐 일로 갑자기 돌아왔어?” 엄진우를 본 하수희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랐다. “나 일 때문에 먼 길 떠나기 전에 집에 좀 들러보려고. 근데 엄마는 왜 소파에서 자? 방에서 편히 자지.” 하수희는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다? 몸이 왜 이렇게 뻐근하지? “네 동생이랑 전화하다가 잠들었나 봐. 참 이상하네. 어떻게 말하다 말고 잠들었지?” 하수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손강호에게 납치된 기억은 전부 엄진우에 의해 지워졌다. 하수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예전 같지가 않아. 좀 쉬고 있어. 엄마가 곧 밥 해줄게.” 말을 마친 하수희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엄진우는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 소지안은 아주 신속하고 깔끔하게 회사를 정리했다. 엄진우가 부순 벽은 이미 수리되었고 회사 로비도 완벽하게 청소가 끝나 있었다. “손강호는 창고에 가뒀어. 어떻게 처리할지는 진우 씨가 결정해.” 엄진우가 오자 소지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손강호가 창고에서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회사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보내. 쉽게 죽으면 안 되지.” 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손강호가 제대로 남은 삶을 ‘즐길’ 수 있게, 엄진우는 돈을 들여서라도 그를 요양원에 보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 바로 연락해
“그래, 빠져나간 쥐새끼가 없다면 지금쯤 손씨 가문은 16세 이하의 어린애와 70세 이상의 노인을 빼고 다 시체가 되었을걸.” 엄진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무자비한 수단을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인가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그를 해치려고 할 것이다. 손강호의 안색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때 엄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궁민희였다. 엄진우는 전화를 연결하고 스피커폰을 켰다. “상황은 어때? 여기 손씨 가문의 장손이 들을 수 있게 상세하게 말해줘.” “손씨 가문 혈통 총 173명, 노인과 아이 52명을 제외한 나머지 100여 명은 이미 처단한 상탭니다.” 남궁민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풉! 손강호는 분노와 공포가 치솟아 피를 토해냈다. “말도 안 돼! 그럴 수 없어! 제경 손씨 가문이 어떻게!” 손강호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허겁지겁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옥에서 확인해.” 엄진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미친놈! 미친 새끼야!” 손강호는 넋을 잃고 절규했다. “난 단지 네 엄마를 납치했을 뿐 해치지 않았어. 하지만 넌 우리 가문 전부를 죽여버렸어. 넌 악마야! 이 개새끼야!!” “너 같은 쓰레기를 낳은 손씨 가문도 도긴개긴이야. 손씨 가문 사람이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우리 엄마의 땀 한 방울보다 하찮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이건 너한테 대한 내 보복일 뿐이야.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렸으면 이만한 각오는 했었어야지.” 엄진우는 손강호의 욕설도 무시하고 차갑게 말했다. 미리 후과를 생각하지 못한 손강호의 어리석음 때문에 손씨 가문은 이대로 전멸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죽어!” 손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폭 장치를 눌렀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하나같이 두려움에 빠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때, 불타는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지만 엄진우는 태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용진 말이야... 끌려가기 직전까지 왜 나랑 정면으로 맞
“그 손 놔!” 이때,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강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두 눈을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심지어 소지안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존재하다니! “나경 씨, 여긴 왜 내려왔어!” 소지안은 너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내려오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제가 어떻게 마음 놓고 숨어있어요.” 공나경의 몸은 가늘게 떨렸다.비록 마음속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나서기로 했다. 절대 소지안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좋아, 아주 좋아. 엄진우 아주 복이 많은 놈이군. 하지만 이젠 다 내 여자들이야. 용국을 떠나기 전에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손강호는 저도 몰래 침을 흘렸다. 그는 소지안을 놓고 다급히 공나경에게로 다가갔다. 공나경은 뒷걸음질 쳤지만 곧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하하, 아주 곱군!” 손강호는 두 팔을 벌리고 공나경에게로 달려들었다. 곧 공나경을 품에 안으려는데...쿵!회사 건물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더니 무너진 틈 사이로 엄진우가 빠르게 다가와 손강호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손강호는 저만치 날아가며 빨간 피를 뿜어댔다. “네가 어떻게?” 엄진우를 본 손강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긴, 엄진우가 이용진을 무너뜨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상대는 무려 용국 궁정의 장로인 이용진으로 엄진우의 가장 강력한 적수였다. 금방 승리를 거뒀으니 제경에서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어야 하는데... “널 빨리 죽이고 싶어서 말이야.” 엄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여태 손강호를 살려둔 이유는 손강호가 창해시에 있는 한 이용진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계속 고민하느라 손을 대지 못할 것이고 그 사이에 엄진우는 이용진을 무너뜨릴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용진이 무너졌으니 더는 손강호를 남겨둘 이유가 없기에 그는 빠르게 비행기를 타고 창해시로 돌아왔다. “아쉽지만 늦었어
엄진우가 탄 비행기는 곧 착륙했고 휴대폰을 켜자마자 엄혜우에게서 온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순간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큰일이 아니면 엄혜우가 이렇게 많은 전화를 할 리 없었다. 엄혜우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엄혜우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엄진우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는데 입을 떼기도 전에 엄혜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엄마가 납치당했어!” 순간 엄진우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고 주변의 공기마저 살기로 가득 찼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엄마는 무사할 거야.” 엄진우는 바로 전화를 끊고 남궁민희에게 연락했다. 남궁민희는 아직 제경에 있었는데 아직도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제경 손씨 가문 정보 가진 거 있어?” 엄진우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그는 하수희를 납치한 사람이 손강호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창해시에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용의자는 단 한 사람, 바로 손강호였다. 더군다나 이용진이 방금 체포된 상황에서 그의 어머니가 납치되었다면 손강호 이외에는 범인이 따로 없다. “있어요!” 화가 난 엄진우의 목소리에 남궁민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손씨 가문은 이씨 가문 라인이죠. 우리가 날려 보낸 몇천 명의 사람 중에는 손씨 가문 사람도 있었어요.” “16세 이하의 애들과 70세 이상의 노인을 제외하고 전부 처형해.” 엄진우의 얼굴은 사나운 기색으로 가득 찼다. 이것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엄진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북강의 지배자였고 천 리를 피로 물들인 적이 있었다. 그의 행동은 항상 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손강호 같은 패륜아를 길러낸 가문에 무고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노인과 어린아이를 살려둔 것만 해도 큰 자비였다. 만약 그가 여전히 북강을 통치하던 때였다면 손씨 가문의 개조차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네, 주인님.” 남궁민희는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손씨 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소지안이 걸어 나왔다. 손강호는 소지안의 미모에 놀라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전에 사진으로 본 적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아름다워 감탄한 것이다. “소 대표, 참 오래 걸리네.” 손강호는 소총을 들고 소지안에게 다가갔다. “날 찾은 이유가 뭐죠?” 소지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싸늘하게 물었다. 그녀는 이런 무법자들에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이 더욱 날뛸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소 대표가 한 번 맞춰보지, 그래?” 손강호는 소지안의 턱에 총구를 대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소지안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돈이 필요해요? 회사에 현금 20억이 있으니 당장 가져가도 좋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신고도 안 할 테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회사 계좌의 돈은 내가 당신에게 이체하려고 해도 그 돈을 가져갈 수 없어요.” 소지안이 침착하게 말했다. “소 대표 아주 대단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아쉽지만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손강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뭘 원하죠?” 소지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당신이야.” 말을 끝낸 손강호는 바로 손을 뻗어 소지안의 얼굴을 어루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소지안은 그의 손을 거칠게 밀어내며 두 눈을 부릅떴다. “내 몸에 손댄다면 당신은 이 창해시를 살아 나갈 수 없어요.” “소 대표 아주 강단 있네. 근데 그 우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설마 엄진우?” 손강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진우 씨를 노리고 왔네요.” 소지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 “역시 소 대표 정말 똑똑해. 어쩔 수 없어. 그 자식이 날 궁지로 몰았으니 나도 이럴 수밖에.” 손강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엄진우가 그를 궁지로 몬 건 사실이다. 창해시에서 그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엄진우는 그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쾅!굉음과 함께 문이 강제로 열리더니 손강호가 부하들을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당신들... 당신들 누구야?” 하수희는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고? 아줌마 납치하려고.” 손강호는 앞으로 세 걸음 다가와 하수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단숨에 부숴버렸다. “잘 묶어서 끌고 가!” 손강호는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졌다. 엄혜우는 깜짝 놀랐다. 방금 그 사람들 도대체 누구지? 다행히 엄혜우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바로 엄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엄진우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라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그쪽은 잘 진행되고 있어?” 손강호가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비담 컴퍼니 외벽에 이미 폭약을 설치했습니다. 터트리는 동시 건물 전체는 완전히 잿더미가 될 겁니다.” 손강호의 부하가 보고했다. “좋아, 곧 갈게.” 손강호는 그제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빠르게 비담 컴퍼니에 도착해 손에 배낭을 든 채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소 대표 만나러 왔어.” 예우림은 지금 제경에 있지만 손강호는 비담 컴퍼니의 부대표인 소지안도 엄진우의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예약은 하셨을까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강호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예약하지 않으셨다면 먼저 예약부터 하셔야 합니다. 일단 부대표님에게 보고드린 후 전화로 시간 알려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예약 표를 손강호에게 내밀었다. 손강호는 직원의 손을 내치며 들고 있던 배낭을 프런트 데스크에 던지며 지퍼를 확 열었다. “이걸로 예약할 수 있을까?” 배낭 안의 물건을 확인한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배낭 안에는 뇌관이 가득했다. 손강호는 배낭에서 소총을 꺼내 들더니 천장에 무차별로 사격을 퍼부었다. “다들 쪼그리고 앉아! 소리 지르는 것들은 바로 죽여버릴 거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
이용진은 공허하고 멍한 눈빛으로 뒤로 한 걸음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데려가!” 검찰청 고위 책임자가 명령을 내렸다. 곧 용국 궁정의 원로였던 이용진은 증인과 증거물과 함께 경찰정으로 연행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이씨 가문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 당신도 이젠 자유야.” 엄진우는 쓴웃음을 지은 채 한숨을 내쉬며 오동방에게 말했다. 오동방은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갑작스러운 자유에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왜? 인생의 목표를 못 찾겠어?” 엄진우가 장난스럽게 묻자 오동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3년 넘는 시간 동안 모든 포부와 열정이 사라져서 앞길이 막막하네요.” “그럼 내가 일자리 구해줘?” 엄진우가 가볍게 말했다.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죠!” 오동방은 눈빛을 반짝이며 재빨리 대답했다. “내 손에 제약회사가 하나 있는데, 원한다면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주지.” 엄진우는 단지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오동방은 진심으로 그와 함께하길 바랐다. 비록 오동방의 의술은 엄진우의 지도하에 발전한 것이지만 그가 이를 완벽히 소화하고 응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의학적 재능과 능력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다. 이런 인재가 합류한다면 회사는 반드시 더욱 강해질 것임이 분명했다. “좋아요! 전 무조건 선생님을 따를게요!” 오동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진우의 말을 수락했다. “예우림이 지금 안강제약 인수 절차 때문에 제경으로 갔으니 오늘 바로 가서 합류하면 돼. 절차가 끝나면 함께 창해시로 돌아와 바로 취임해도 좋아.” 엄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동방이 합류한 건 생각지 못한 수확이었다. “선생님은 같이 하지 않는 건가요?” 오동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좀 있으니 먼저 가 있어야겠어.” 엄진우는 살짝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창해시. 손강호의 부하들은 완전히 당황한 기색이다. “도련님, 이용진은 이미 몰락했습니다! 듣자니 엄진우라는 그놈이 한 짓이랍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