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아, 왜 여기 있는 거지?” 임유환은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 서인아는 임유환의 태도를 예상한 듯, 짜증을 내는 대신 온화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대답했다.“유환아, 방금 공항에 있을 때 네가 경찰차에 끌려가는 걸 봐서 기사님에게 따라가 달라고 했어.” "미안하지만 네 호의는 필요 없어.” 임유환은 서인아의 호의를 거부했고, 그의 태도는 매우 냉담했다. "하지만 오늘 나를 만나러 공항에 왔잖아, 아직 나한테 감정이 남아 있는 거 아니야?” 임유환의 차가운 태도에도 서인아의 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미안하지만 오해했네. 난 널 보러 간 게 아니었어.” 임유환이 침착하게 말했다."그건 상관없어, 네가 왔다는 게 중요하지.” 서인아는 그의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에도 여전히 온화한 눈을 하며 말했다. "휴.” 임유환은 이 말을 듣자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대꾸했다. "말 다 끝난 거지? 그럼 난 이만 갈게.” "잠깐만, 임유환!” 서인아가 임유환을 불러 세웠다. "아직 할 말이 많으니 일단 차에 타.” "괜찮아.” 임유환은 차갑게 거절했다."임유환, 네가 아직도 나를 미워한다는 걸 알아. 하지만 난 이번에 오롯이 널 보려고 S 시에 왔어, 나한테 만회할 기회를 주면 안 될까? 난 S 시에 길어야 보름밖에 안 있을 거고, 절대 널 오래 방해하지 않을 거야.” 서인아가 이 말을 할 때 임유환의 서늘한 눈동자 속에서 슬픔이 스쳐 지나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녀는 S 시에 오랫동안 머물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단지 보름의 시간이 있을 뿐이었다. 보름 후면, 그녀는……"서인아, 당신의 호의는 잘 받겠지만 난 정말 보상 같은 건 바라지 않아.” 이때, 임유환의 냉담한 한 마디가 그녀의 생각을 중단시켰다.서인아는 임유환의 싸늘한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의 새까만 눈동자에는 원래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이제는 무정함과 차가움밖에 보이지 않았다. 서인아의 마음이 아려왔고, 7년 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서인아, 할 말이 있으면 여기서 하면 안 될까?” 임유환은 서인아를 바라보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여긴 말하기 그러니 내 차에 타는 게 좋겠어. 7년 만에 보는데 넌 정말 많이 변했네.” 서인아가 부드럽게 말했지만, 임유환은 대답이 없었다.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고, 서인아는 입술을 깨물며 눈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임유환은 마침내 패배를 인정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좋아, 내가 차에 탈게.” 마침 그도 이 기회에 서인아와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싶었고, 더 이상 이 여자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 서인아가 그의 대답을 듣자 함박웃음을 지었고, 두 사람은 함께 차에 탔다. 두 사람은 차에 탔다.“장 기사님, 청운 별장으로 가주세요.” 서인아는 냉정을 되찾고 운전기사에게 말했다."네, 아가씨."운전기사는 엑셀을 밟고 청운 별장으로 향했다. "청운 별장에는 왜 가는 거지?” 임유환은 화들짝 놀랐다, 설마 그녀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알고 있는 건가? "내가 널 위해 별장을 하나 사뒀으니 앞으로 거기서 지내.” 서인아가 부드럽게 말했다."날 위해서 별장을 사뒀다고?” 임유환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되물었다. “응.” "마음은 고맙지만 난 당신의 보상이나 도움이 정말 필요하지 않아. 난 별장은 필요 없어.”임유환이 거절하며 말했다. "임유환, 이러지 마, 그냥 나에게 보상할 기회를 줘.” 서인아가 간청했다."난 정말 필요 없어, 당신은 나한테 빚진 게 없으니까. 정말 날 돕고 싶다면 앞으로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 줘. 그게 나한테 가장 큰 도움이 될 거니까.”임유환이 감정을 억누르며 차갑게 말했고, 그는 정말로 서인아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그는 서인아를 볼 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짜증이 밀려왔다. "유환아, 그렇게 말하지 마. 7년 전에 내가 너한테 큰 상처를 준 걸 나도 알아. 하지만……” "그만!” 임유환이 갑자기 큰 소리로 소리쳤고, 자신이 흥분했다는 걸 알아차린 그는
“허유나?”임유환이 서인아에게 물었다. “그 여자를 알아?”“전엔 몰랐지.”서인아는 차갑게 대답했다. “이제 알아.”“그래서?”“솔직히 당신이 아까워.”서인아는 아무 감정 없이 청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내뱉었다.S시에 오기 전부터 그녀는 허유나에 대해서 아주 철저하게 조사했다.그 여자는 임유환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바람을 피웠다. 그녀는 절대 허유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그러게, 나도 그렇게 생각해.”임유환은 차분하게 얘기했다.“그러니까, 당신 말 한마디면 그 여자 묻어버릴 수도 있어. 그 여자 약혼자인 장문호도 마찬가지고. 방금 이 일도 그 사람이 꾸민 짓이야.”서인아가 말했다.순간 차 안에 냉기가 감돌았다.수미와 기사는 소름이 돋을 것만 같았다.임유환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알았어. 그러면 유환아, 우리 둘 얘기 좀 하자.”서인아의 말투가 한껏 부드러워졌다.한기가 가셨다.“휴.”수미와 기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가씨의 카리스마는 보통이 아니었다.근데 이 남자는 대체 아가씨랑 무슨 사이기에 아가씨를 이렇게도 들었다 놨다 하는 걸까?“서인아, 우리 사이에 아직도 할 얘기가 남았을까?”임유환은 서인아의 기분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눈앞의 여자를 올려다봤다.눈빛엔 냉담한 기운만이 남아있었다.임유환의 눈을 본 서인아는 가슴이 무언가에 찔린 듯 아파졌다.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건 그녀도 이미 알고 있다.모든 아름다운 순간들은 7년 전에 멈춰있다. 그 찰나 같은 30일에 머물러있었다. 이번에 S시로 온 것도 임유환을 보기 위한 그녀의 마지막 노력이었다.앞으로 둘은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여기까지 생각하자 서인아의 도도한 눈동자에 얼핏 어두운 그늘이 졌다.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차분하게 얘기했다. “유환, 날 미워하는 거 알아. 하지만 난 널 진짜로 도와주고 싶어. 이번에 딱 보름 정도만 여기 머무를 거야.
차디찬 한마디.서인아의 심장에 대못을 박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차분했다.“유환아, 난......”“이제 그만해. 여기서 내릴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가봐야 돼.”임유환은 매몰차게 대답했다.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흔들리는 눈동자만이 그의 마음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평온하지 못하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서인아 역시 그녀의 감정을 최대한 억눌렀지만 주먹을 쥔 두 손이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차 안의 분위기가 삽시에 무거워졌다.이때, 임유환의 침착한 목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인아야, 기사님 보고 세우시라고 해줘. 여기서 내릴 거야.”서인아는 정신이 번쩍 들어 임유환을 올려다봤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고통이 서려있었다. “유환아, 정말 내가 보기 싫은 거야?”임유환이 멈칫했다.그는 서인아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쉽게 뱉을 줄 알았던 “응” 이 한 음절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그는 이 대답의 결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다시금 7년 전의 그 일을 떠올렸다.마음이 급속도로 차갑게 식었다. “응.”서인아의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질식하는 듯한 느낌이 뇌를 관통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임유환은 이런 서인아의 모습이 조금 안쓰러웠다.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그는 이 여자를 다시는 믿지 않을 것이다.차 안에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한참 뒤에 서인아가 정적을 깨고 말했다. “알았어.”“응.”임유환은 눈을 살짝 피하고 대충 대꾸했다.꼭, 둘 사이에 거리를 두려고 일부러 매몰차게 구는 것 같았다.“그래도 지금 당장 S시를 떠나진 않을 거야.”서인아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말했다.“맘대로 해.”임유환이 답했다.서인아는 또 말이 없었다.이 모든 걸 본 수미는 화가 나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이렇게 싹수 없게 굴다니, 괘씸한 놈.도대체 아가씨는 왜 이런 고약한 놈을 도와주려는 거야!“인아야, 차 세워줘. 나 내릴 거야.”임유환이 또 입을 열었다.서인
“위험해! 엎드려!”임유환이 크게 소리쳤다.수미는 갑작스러운 고함에 화들짝 놀라서 언짢은 티를 확 냈다. “갑자기 왜 이래요?”임유환은 설명할 시간도 없이 벌떡 일어나 서인아와 수미의 머리를 좌석 아래로 꽉 눌러놓았다.“뭐 하는 짓이에요?”우악스러운 행동에 수미는 발끈했다.펑!이때, 도로 위를 달리던 자동차의 앞 유리가 느닷없이 파열됐다!푹.총알은 기사의 이마 정중앙을 뚫고 새빨간 피를 튀기며 뒷좌석의 헤드레스트를 향해 날아갔다.펑.헤드레스트를 손쉽게 뚫은 총알은 자동차 전체를 관통했다. 임유환이 아니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뻔했다!총알이다!서인아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누군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꺄!”수미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머리가 새하얘졌다.임유환은 뚫린 좌석의 총알 구경을 보며 보통 일이 아님을 짐작했다.저격총에 쓰이는 대구경 탄환이다!어쩐지, 방탄유리까지 뚫어버리더라니!“움직이지 말고 엎드려 있어!”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임유환은 손바닥으로 좌석을 세게 짚고 조수석으로 훌쩍 넘어갔다.운전석의 장기사는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 판단한 임유환은 “죄송합니다.” 한 마디 하고 차 문을 열어 시체를 발로 퍽 차버렸다. 그리고 신속히 운전석으로 넘어가 시동을 걸고 엑셀을 확 밟았다.검은 리무진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슉!이때, 먼 산 정상에서 또 총알이 날아왔다.임유환은 날카롭게 노려봤다.진작에 준비하고 있던 그는 몸을 숙여 총알을 피했다.총알은 순식간에 좌석을 지나 격렬한 불꽃을 내며 차 뒤쪽까지 뚫었다.“꺅!”수미는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바들바들 떨면서 의자 아래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서인아는 임유환이 걱정되었지만 방금 임유환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혹시 자기가 짐이 될까 봐 가만히 엎드려있었다.그녀는 임유환의 실력을 믿었다.7년 전, 임유환은 혼자서 용병들 손에 죽을 번 했던 자신을 구해냈었다.당시에 임유
검은색 리무진이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임유환은 앞을 단단히 주시하면서 최대한 침착하려고 노력했다.팔에 힘줄이 튀어나오고 근육이 단단하게 팽창할 만큼 핸들을 꽉 움켜쥔 그는 오직 힘으로 차를 통제했다.끼익!자동차의 오른쪽 차체가 가드레일을 긁으면서 격렬한 불꽃이 튀었다. 동시에 힘의 반동을 받아 차가 다시 원래 궤도로 돌아왔다.펑!총알이 다른 한쪽 바퀴를 관통했다.임유환은 다급히 브레이크를 연속적으로 밟았다.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주행할 때 가장 안전하게 세울 수 있는 방법이었다.차가 멈췄다.산꼭대기 킬러와의 거리는 100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둘 다 차 안에 있어, 금방 다녀올게!”다급한 한 마디를 남긴 임유환은 차 문을 열고 문 뒤에 숨어 신속히 내렸다.슉!또 총알 하나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정확히 차의 앞 유리를 가격하며 파열의 흔적을 더 깊이 남겼다.만약 방탄유리와 특수 제작된 이 리무진이 아니었다면 유리며 연료탱크며 진작에 다 박살 났을 것이다.하지만 이 마지막 총알 때문에 범인의 위치가 완전히 탄로 나고 말았다.임유환은 총알과 공기가 마찰하면서 내는 불꽃을 보고 산 정상에서 1시 방향을 노려봤다.거기에, 40미터에 달하는 산꼭대기에 완벽히 위장한 남자가 산 아래의 검은 리무진을 겨누고 있었다.식물 틈에 숨은 남자는 절대 들킬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하지만 이내 임유환의 눈이 날카로운 살기로 번뜩거렸다.그는 곧바로 상대방의 위치를 파악했다.게다가 방탄유리에 찍힌 총알 구경을 보고 상대방이 쓰는 총이 12.7mm탄에 유효사거리가 1000미터가 넘는 배럿 대물 저격총이라는 것도 알아냈다.철은 물론 합금까지 뚫어버리는 어마어마한 총이었다.저 차가 아무리 특수 제작됐다 하지만 그래도 더 이상 버티는 건 무리였다.죽이려고 작정하고 온 놈이다!누군가, 서인아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임유환의 눈에 냉기가 서렸다.상대방도 이미 총구를 임유환에게 겨누고 있었다.서서히 방아쇠를 당기려던 그때.거의 트리거의 바닥이
남자는 겁에 질려 동공이 확장되었다.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는 임유환의 호수처럼 잔잔한 두 눈을 바라보았다.눈앞의 이 사람이 엄청난 고수란 걸 알고 있다.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오너가 내린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자신은 아마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맛보게 될 것이다.슉!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남자는 임유환의 심장을 향해 비수를 확 내리꽂았다.임유환은 거뜬하게 피하고 다리로 남자의 목을 쓸었다.“빨라!”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어쩔 수 없이 남자는 오른팔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쾅.엄청난 소리가 울렸다.콰득.곧이어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남자의 오른팔 전체가 순식간에 힘없이 늘어졌다.그는 아픔 때문에 식은땀을 흘렸다. 위장크림을 발랐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얼굴을 숨길 수 없었다.“말해, 누가 보냈냐고.”임유환은 여전히 평온하게 바라보기만 했다.하지만 그 눈동자에 슬슬 한기가 고이기 시작했다.“젠장!”남자는 어눌한 한국어로 작게 욕을 뱉고 허벅지에 꽂혀있는 총을 꺼내려 했다.하지만 이미 모든 걸 꿰뚫어 본 임유환이 손가락을 살짝 튕겨 남자의 왼팔에 은침을 쐈다.남자의 팔은 신경이 잘려나간 듯 감각이 없어지면서 축 처졌다.“뭐야?!”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임유환은 굳이 설명하지 않고 저승사자처럼 서서히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이제 두 번 남았어. 방금은 팔이고 이번엔 네 두 다리야.”“꿀꺽.”긴장감에 침을 삼킨 남자의 이마에 땀이 주륵 흘러내렸다.자기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무서운 인간인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서인아가 어떻게 이런 고수를 곁에 두고 있는 거지?“끝까지 말하지 않을 셈인가?”임유환은 눈썹을 치켜들었다. 얼굴이 점점 더 굳어갔다.“후우, 후우.”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곁눈질로 산 아래를 흘깃거리는 그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이걸 놓치지 않은 임유환의 인상이 찌푸려졌다.바로 이때.회색 밴 한 대가 도로에 갑자기 나
부릉!군용 트럭이 맹렬한 기세로 다가오다가 마지막에 회색 밴 옆에서 화려한 드리프트로 멈춰 섰다.운전석의 문이 열렸다.여자는 권총을 들고 날렵하게 뛰어내렸다.탕탕탕.그녀는 네 명의 남자들을 향해 연속 방아쇠를 당겼다.총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짙은 검은색의 눈동자에는 침착함과 날카로움이 서려있었다.밀리터리 민소매에 긴 바지, 질끈 묶은 머리는 그녀의 노련함을 더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윽......”네 명의 남성들이 총을 맞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수미는 그녀의 대단한 솜씨에 놀랐다.서인아도 눈앞의 군장한 여성을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서인아는 이 여자를 알고 있다. 대하의 가장 젊은 여자 장교로 유명한 중령 조명주였다. 조명주 역시 두 사람을 잘 알고 있다.연경 서씨 가문의 아가씨 서인아와 그녀의 비서 수미.이 귀한 아가씨께서 경호원도 없이 S시 같은 촌구석에 오실 줄이야.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놈들 중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이가 있다.“비서님, 먼저 차에 가 계세요. 아직 공범이 남아있어요.”조명주가 말했다. 수미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네!”겁에 질린 수미는 얼른 차에 들어갔다.조명주는 총을 들고 밴의 운전석에 다가갔다.문을 벌컥 열어젖힌 그녀는 운전석에 총구를 겨누고 소리쳤다. “꼼짝 마, 손들어!”하지만 차는 텅텅 비어있었다!조명주는 당황스러웠다.슉!이때 밴의 뒷좌석에서 사람이 튀어나와 조명주의 머리를 향해 발을 날렸다.바위도 깰 수 있을 정도의 괴력이었다!하지만 이 맹렬한 공격에 조명주는 추호도 허둥대지 않았다.그녀는 민첩하게 남자의 공격을 피하고 단번에 상대를 발로 쓸어뜨렸다. 넘어진 상대가 막 일어나려는 순간 손날로 목덜미를 내려쳤다.“윽.”남자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쓰러졌다.조명주의 입꼬리가 슬쩍 휘어지면서 약간의 자부심을 드러냈다.그녀는 총을 도로 넣었다.일부러 죽이지 않고 한 놈을 살려두었다.이들은 해외에서 건너온 고용병들이다. 일주일
임유환과 윤여진은 최서우의 병이 악화될까 염려하여 일부러 그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임씨 집안으로 향했다.임씨 집안으로 가는 차 안에서 윤여진은 사건의 자초지종에 대해 간략하게 전해 듣게 되었다.영상 속의 그 여자는 임유환의 시중을 들던 나비라는 이름의 메이드이고 그 메이드를 남자들에게 건네준 이가 임준호라는 사실까지 다 듣고 난 윤여진도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윤여진이 알고 있는 임준호는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는데 그런 분이 한 일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잔인한 행동에 15년 전 자신의 친아들을 직접 내쫓던 그때의 임준호가 떠올라 윤여진은 온몸이 오싹해났다.아마도 15년 전 그날부로 임준호가 완전히 변한 게 아닌가 싶었다.30분 뒤 그들은 임씨 집안에 도착했지만 워낙 깊은 밤이라 저택의 대문은 당연히 잠겨있었고 흑기군을 데리고 대문 앞에서 한참 동안 대기하고 있던 흑제가 임유환을 보고 인사를 건네왔다.“임 선생님.”“오셨어요?”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계 제일 갑부의 느닷없는 등장이 윤여진은 놀랍기만 했다.임유환을 대하는 흑제의 태도가 지나치게 깍듯해 그 둘의 사이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물을 때가 아니라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할 때라서 윤여진은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영상에서 봤던 모습을 떠올리며 윤여진이 다시 표정을 굳히자 아까부터 냉랭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임유환이 앞으로 나서더니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임준호, 당장 나와!”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저택 사람들 몇 명이 눈을 떴고 하인 두 명이 달려 나왔다.밖에 나와 상황을 살피던 하인 두 명은 익숙한 임유환의 얼굴에 깜짝 놀랐지만 그런 놀라움도 얼마 오래가진 못했다.하인들은 이내 비아냥거리며 임유환을 향해 말했다.“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임유환 도련님 아니세요?”입으로는 도련님이라 하고 있었지만 그 말투 속에 진하게 녹아나 있는 조롱은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을 정도였다.“무슨 도련님이야, 버려진 도련
임유환의 몸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이미 덜덜 떨리고 있었다.“주인님, 그건 저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이 영상도 그 경찰에 대해 조사할 때 경찰 시스템을 뒤지다 발견한 겁니다.”“경찰 시스템?”“그럼 이것도 정씨 집안에서 한 짓이란 말이야?”“그것까진 아직 모르겠는데... 제가 알아본 바로는 저 여자분은 주인님... 아버님께서 직접 저 남자들 손에 넘긴 거였습니다.”이 일이 임유환의 아버지와 관련되어있기도 했고 영상 속의 여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면 더 위험한 일에 휘말릴 것 같아 흑제는 대답을 망설였다.“아버지?”“네, 주인님.”흑제의 말에 당황하던 임유환은 재차 확인을 거친 후에 또다시 기운을 뿜어내며 당장이라도 임준호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임유환은 어떻게 자신이 직접 데려온 아이를 또 내다 버릴 수가 있는지 임준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당연히 제 한 목숨 부지하고자 행한 나약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겠지만 저 사람들 손에 끌려가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내어준 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인지 의문이 갔다.영상 속 사람들이 말하는 비밀 열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임유환은 나비가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임준호!”갑자기 소리 지르는 임유환 때문에 방 안에 있던 윤여진은 화들짝 놀랐다.“흑제.”“예, 주인님.”“지금 당장 흑기군 준비해서 나랑 임씨 집안으로 간다.”“예, 주인님.”지금 임유환은 약해빠진 임준호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있었다.그래서 직접 집으로 쳐들어가서 대체 나비를 누구에게 넘겨준 것인지, 나비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살아있다면 직접 얼굴을 봐야 했고 죽었다면 그 시체라도 봐야 진정될 것 같았다.임유환은 나비가 그 짐승 같은 놈들 손에 놀아나도록 두고 볼 수가 없었다.살아있다면 당장 데려다가 직접 치료를 해줄 것이고 죽었어도 데리고 와서 묻어줄 생각으로 눈이 빨갛게 충혈된 임유환은 차오르는 분노와
“나비?”아까는 얼굴이 제대로 안 보여서 몰랐는데 영상 속의 여자는 바로 임유환만 보면 도련님이라 부르며 해맑게 웃던 나비였다.그렇게 밝고 예쁘게 웃던 아이가 피범벅이 된 채 모진 고문을 견뎌내는 걸 보고 임유환은 낯빛이 창백해졌고 머리가 울려왔으면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서 쫓겨난 지도 15년이니 나비도 많이 커서 얼굴만 보면 못 알아봤겠지만 나비 문양의 반점 덕분에 한눈에 그녀의 알아볼 수 있었다.나비라는 아이는 5살의 어린 나이에 임씨 집안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름도 없어서 나비도 임유환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었다.나비는 어릴 때 강도들의 손에 부모님을 잃고 그들에게 이끌려 여기저기 팔려 다니던 이이였는데 그런 그녀를 불쌍하게 여긴 임준호가 큰돈을 들여 데리고 오는 바람에 임씨 집안에서 메이드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나비는 임유환을 보자마자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때릴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눈빛이 너무나도 슬퍼 보여서, 웅크린 몸을 떨고 있는 아이가 너무 애처로워 보여서 임유환은 아직까지도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 들어온 이상 더는 그 어떤 괴롭힘도 없을 거라고 다독여봐도 나비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었다.다른 메이드들을 시켜 깔끔히 씻기고 머리도 빗겨주고 깨끗한 옷까지 갈아입혀 주니 왼쪽 얼굴에 있는 나비 모양의 반점도 드러났다.임유환이 그 반점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비는 신분이 낮은 제가 얼굴에 난 반점으로 임유환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어 동굴 속에서 강도들에게 폭행당하던 것처럼 맞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반점을 가리며 몸을 떨었다.그에 임유환은 바로 나비의 손을 잡아주며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다고 천천히 타일러주었다.그리고는 나비의 긴장과 두려움을 해소해주기 위해 정원 산책까지 데리고 갔다.드넓은 정원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있었고 그것들이 함께 조화로운 향도 만들어내고 있었다.이런 아름다운 곳은 처음 보는 나비는 처음에는 몸이 굳어버리며 어색해했지만 이
“아!”남자의 행동과 함께 흘러나온 여자의 처절한 비명이 밀실을 가득 채웠다.화면을 뚫고도 전해지는 여자의 절망과 고통에 핸드폰을 들고 있던 임유환의 몸도 떨려왔고 마찬가지로 비명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윤여진도 임유환 쪽으로 다가오며 화면을 바라보았다.“어머!”사람한테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하는 영상 속 인간들 때문에 윤여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소리쳤다.너무 집중해서 본 나머지 옆에 윤여진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던 임유환이 다급하게 화면을 가리며 말했다.“여진아, 넌 보지 마.”“오빠, 이 사람들 누구예요?”“아직 모르겠어.”얼굴과 입술이 창백해진 윤여진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임유환은 한숨부터 쉬며 대답했다.“여진아, 네 방 화장실 좀 쓸게.”말을 마친 임유환은 화장실로 들어가서 다시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화면 속의 여자는 여전히 은침에 찔린 손을 들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온몸을 비틀려고 발버둥 치는 여자는 마치 불판 위에 올라간 미꾸라지 같기도 했다.하지만 검은 옷차림의 남자는 그런 여자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여전히 차가운 눈을 하고 두 번째 은침을 꺼내 들어 여자의 다른 손가락에 찔러넣었다.“아!”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고통에 여자는 순간 고개를 확 젖혀버렸고 이미 흑과 말라 굳어버린 핏자국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머리카락이 여자의 얼굴을 가렸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몰라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그냥 날 죽여줘요 제발...”“죽여주세요...”남자가 아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지만 여자는 울며불멸 죽기를 애원하고 있었다.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으면 죽는 걸 원하고 있을까 싶어 임유환은 비통하다 못해 화까지 나고 있었다.“말했잖아, 얘기하면 죽여준다고.”말을 마친 남자는 섬뜩하게 웃더니 나머지 손가락에도 하나하나 은침을 꽂아 넣었고 여자는 온몸에 경련이 일듯 몸을 떨어대다가 한계에 다다른 건지 다시 한번 기절했다.은침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열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피들은 빠르게 작은 웅덩이
“마음의 준비요?”의미심장한 흑제의 말에 임유환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영상인데 그래요?”“혼자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미 암호 걸어서 이메일 보내놨어요.”임유환이 영상을 보면 어떤 반응일지 알기에 흑제는 말을 내뱉기가 어려웠다.“알겠어요.”임유환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나서 빠르게 흑제가 보내온 이메일을 확인했다.이메일의 정체는 5분쯤 되는 영상이었는데 영상의 장소는 어두운 밀실같이 보였다.밀실 안에는 똑같은 옷차림을 한 남자가 다섯이나 있었는데 그들은 전부 눈 하나만 내놓고 있었다.임유환은 그들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핸드폰 화면으로만 들여다보고 있음에도 무시무시한 그들의 기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남자들의 발밑에는 거의 죽어가는 젊은 여자 하나가 누워있었다.남루한 옷차림의 여자는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몸에는 채찍에 맞느라 생긴 생채기들이 한가득이었다.생채기 주위의 살들은 진작에 터져나갔고 팔은 안에 있는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그리고 몸에 난 상처는 그뿐만이 아니라 담배로 인해 생긴 작은 화상 자국들도 빼곡했다.옛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 난 상처들은 이미 옷과 붙어버려 여자의 처참한 상태를 더욱 잘 보여주고 있었다.영상을 보고 있던 임유환도 서서히 여자가 불쌍해졌다.다섯 남자들은 대체 누구길래 여자한테 이토록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리고 여자는 또 누구인지 임유환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영상 하단에 떠 있는 시간을 보니 아직 5분 1밖에 진행되지 않은 영상에 임유환은 계속해서 화면을 들여다봤다.화면은 빠르게 전환됐고 여전히 같은 복장을 한 남자 다섯 명과 아까와 다를 게 없는 밀실이 나타났지만 아까 그 일로부터 며칠은 지난 듯 보였다.영상 속의 남자는 찬물을 들어 쓰러져있는 여자의 몸 위로 뿌렸고 여자는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고통 속에서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검은 복면을 쓴 남자 하나가 입을 열자 나머지 네 명도 여자를 차갑게 바라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검사할 거예요 오빠?”그때 귀를 간질거리는 윤여진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부끄러워하면서도 도발적인 말을 뱉어내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심장이 쿵쾅거렸다.“여진아, 나는...”오해를 풀어보려고 고개를 돌려 윤여진을 보던 임유환은 몸을 앞으로 숙인 탓에 훤히 드러난 검은색 슬립 아래의 몸매에 다시 말을 삼켜낼 수밖에 없었다.임유환을 포함한 모든 남자들은 시각 동물인지라 완벽한 몸매와 유독 눈에 띄는 풍만한 가슴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감정도 이내 임유환의 이성에 묻혀버렸다.“후...”임유환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여진아, 진짜 이제 그만해. 진짜 실수한다니까.”“오빠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나긋나긋하게 말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뜨거운 숨결 때문에 점점 본능이 들끓고 있었던 임유환은 이대로 있었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것만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런데 그 순간 윤여진이 임유환의 손을 덥석 잡아 오자 우유 크림처럼 부드러운 그 느낌에 임유환은 일어서려던 다리마저 굳어버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유환 오빠, 나 장난하는 거 아니라니까요.”윤여진은 여전히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하며 잡고 있던 임유환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그 모습에 임유환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고 이 손을 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그런데 마침 타이밍 좋게 울린 전화벨 소리에 둘 다 화들짝 놀랐고 임유환도 또 한 번 울리는 벨 소리에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윤여진도 겁먹은 고양이마냥 손을 빼내며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나... 전화 좀 받을게.”임유환이 어색하게 말하자 윤여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네.”아까의 대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부끄럼 타는 고양이 같은 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리던 임유환이 전화를 받았다.흑제에게서 온 전화라 조금 긴장한 채로 받았는데 역시나 전에 지시했던 일
가슴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지만 임유환은 애써 윤여진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장난치지 말라니까.”윤여진이 여전히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한 임유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말을 돌렸다.“아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고 했잖아, 그거 알려줄게.”“그 얘긴 나중에 하고, 오빠 아직 내 말에 대답 안 했잖아요.”“어... 그 얘기 먼저 하자, 불 끄면 졸려서 못 할 것 같아.”임유환은 기대에 찬 윤여진의 얼굴이 보였지만 어떻게든 이 숨 막히는 상황부터 끝내보고자 평소답지 않게 우겨댔다.그리고 사실 윤여진이 한 말이 장난인지 아닌지 제대로 분간도 가지 않아 아까부터 심장이 떨리고 있었다.장난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장난이 아니라면 아주 어색해질 것 같았다.“오빠, 왜 아까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리는 것 같죠?”그때 임유환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들을 보며 윤여진이 부드럽게 물어왔다.“그... 그래?”“긴장한 거예요 설마?”임유환에게 질문을 하며 코앞까지 다가온 윤여진 때문에 둘의 거리는 3㎝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정말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닿을 것같이 가까운 거리라서 임유환은 윤여진이 내뱉는 호흡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뜨거운 숨결과 함께 풍기는 향기에 임유환은 헛기침을 하며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여진아, 이제 진짜 그만해.”사람 둘은 족히 앉을 정도로 떨어져서야 임유환은 잔뜩 긴장했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장난 아니라니까요.”임유환이 저에게서 멀어지자 윤여진은 살짝 실망한 듯 보였지만 이내 연애 수첩 제1항을 떠올린 그녀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그래서 윤여진은 긴장한 듯 굳어있는 임유환을 보며 익살스레 웃어 보였다.“유환 오빠, 누가 그러는데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긴장을 한대요.”“오빠 설마 나 좋아하는 거예요?”윤여진이 이 질문을 할 때 임유환은 이게 장난이든 진심이든 간에 서둘러 이 화제가 지속되는 것부터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둘이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상해지는 방 안의
“어...”단도직입적인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은 뭐라 변명이라도 해야 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임유환의 생각이 불순한 건 맞지만 그게 오로지 임유환의 잘못은 아니었다.이미 성인이 된 그들은 15년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윤여진은 얼굴이며 몸매며 누가 봐도 예쁜 여자로 성장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도 멀쩡할 남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임유환 역시 남자였으니 검은색 레이스 속옷에 슬립까지 입고 제 눈앞을 돌아다니고 있는 윤여진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슬립 아래로 보일 듯 말 듯 한 윤곽이 아까부터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임유환은 지금 온 정신력을 다 쏟아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자신의 눈이 윤여진의 몸으로 향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임유환이기에 당연히 같이 자자는 그녀의 요구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모든 남자들의 워너비인 그 몸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밤을 조용히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오빠, 이상한 생각 한 거 맞죠?”한편 윤여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임유환을 보며 기쁨이 섞인 목소리로 장난스레 물었다.“어...”임유환은 이젠 정말 자신이 무슨 생각인지도 잘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정말 윤여진을 두고 이상한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그는 윤여진이 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그녀의 몸만 보면 저절로 뜨거워지는 가슴이 대신해서 부정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여진아, 사실... 나는...”다그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해명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 진심이 전달될지 몰라 말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임유환에게 윤여진은 여전히 15년 전 꼬맹이였고 임유환 또한 그때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그는 윤여진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오해하는 것도 원치 않았고 또 윤여진도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여전히 그때처럼 윤여진이 힘들 때 그녀에게 힘이 돼주는 든든한 오빠가 되고 싶었는데 이 마음을 전하기에 말 한마디
“아니야, 그냥 네가 아까 한 말 생각하고 있었어.”“그럼 오빠도 나랑 같이 있고 싶은 거예요?”다급히 해명하는 임유환에 시무룩해 있던 윤여진은 다시 밝게 웃으며 물었다.“그럼.”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그와 윤여진이 말한 같이 있는다는 서로 전혀 다른 뜻이었다.“그럼 오빠, 오늘 밤은 나랑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임유환의 팔을 감싸 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간드러지게 말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몸이 먼저 반응할 뻔한 걸 간신히 참고는 물었다.“여기서 너랑 같이 밤을 보내자고?”“네!”윤여진이 이런 부탁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임유환이기에 제 팔에 닿아오는 말랑거리는 그 느낌도 까맣게 잊은 채 놀랐다.그런 임유환의 반응을 보던 윤여진은 혹시라도 거절당할까 봐 다급하게 한마디 더 보탰다.“여기서 자는 건 처음이라 좀 무서워요, 워낙 낯설기도 하고...”“어...”윤여진의 부탁도 일리가 있어 보여 임유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오빠, 그냥 남아서 나랑 같이 자면 안 돼요?”윤여진은 임유환의 팔을 좌우로 흔들며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임유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가만히 있어도 예쁜 얼굴인데 애교까지 부리니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모습이 섞여 있어 웬만한 남자라면 다 윤여진한테 넘어갈 것 같았다.인내심과 자제력 하나는 자부하면서 살아왔던 임유환도 윤여진의 애교 공세에 3초도 못 버티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임유환은 저도 모르게 긍정의 대답을 해버렸다.정말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저를 향해 애원의 눈빛을 보내는 윤여진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역시, 오빠는 내 말 들어줄 줄 알았어요!”결국 제 말을 들어준 임유환에 윤여진의 촉촉한 눈망울에서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너랑 같이 있어 줄 수는 있는데, 난 바닥에서 잘 거야.”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는 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 돼버렸으니 임유환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 최선책을 찾으려고 노력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