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정우빈에게 향해 있다고...”혼자 장로의 말을 되뇌이는 임유환의 얼굴이 아까보다 가라앉은 듯했다.“이제 네 주제 파악이 좀 돼?”제 말에 타격을 받은 듯한 임유환의 모습에 장로의 눈이 반짝였다.“내가 해줄 말은 이것뿐이야. 그러니까 행동 알아서 해.”말을 마친 장로가 김우현을 데리고 떠나려 하는데 임유환이 또 그들을 붙잡았다.“잠깐.”“네가 알고 싶은 건 다 말해줬잖아. 뭘 더 어쩌겠다고 이러는 거야? 정말 서씨 집안이 우스워?!”자꾸 저를 못 가게 붙잡는 임유환에 화가 난 장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하하, 그래. 말을 다 하긴 했지.”장로의 말을 들은 임유환은 냉소를 흘리더니 장로의 검은 눈동자를 마주 보며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근데,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무슨 말이야 그게?”임유환의 말에 찔린 장로는 일부러 더 역정을 냈다.“아까 당신이 한 말들, 아주 그럴듯했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곧이곧대로 믿겠지. 근데 있잖아. 나는 당신보다 내가 알던 서인아를 더 믿어.”임유환은 한 자 한 자 끊어 말하며 장로의 속을 꿰뚫어 보듯 그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임유환이 아는 서인아는 절대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제 거짓말이 들통나자 장로는 눈언저리가 빠르게 뛰어오며 괜히 눈을 피했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못 믿겠다면, 그렇게 계속 본인 스스로를 속여야겠다면 나도 더 이상 해줄 말 없어.”“근데, 하나 확실한 건 넌 우리 아가씨 짝이 아니야. 우리 아가씨도 너 같은 보잘것없는 놈을 선택할 리가 없고.”“그래서 마음 접으라는 거야. 끝이 뻔한 사이잖아.”“그래?”임유환은 차가운 눈으로 팔 장로를 바라보았다.“내가 서인아 짝인지 아닌지를 왜 네가 판단하지? 너한테 그럴 자격은 없는 걸로 아는데. 그건 나랑 서인아 사이의 일이야.”“그리고 당신, 계속 그렇게 거짓말하면 내가 너희 둘 다 여기서 한 걸음도 못 나가게 할 거야. 나는 마음만
임유환이 속사포로 내뱉는 말들에 김우현의 눈은 점점 더 빨갛게 충혈됐고 팔 장로의 입가도 더 빨리 떨려왔다.임유환은 서씨 집안 장로인 저의 체면을 손수 구기고 있었다.감히 김우현 앞에서 저를 이렇게 능멸하다니.“그래, 네가 한 말들 잘 기억할게!”숨을 깊게 들이마신 장로는 분노로 가득한 얼굴을 한 채 말했다.“네가 정말 그 정도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충고 하나 할게. 정씨 집안의 힘은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이 강해.”“십일 뒤, 결혼식장에 네가 나타난다면 너는 우리 서씨 집안 뿐만 아니라 정씨 집안도 적으로 돌리게 될 거야.”“그걸 감당할 자신이 있으면 뭐, 맘대로 해.”말을 마친 장로가 김우현을 데리고 돌아섰다.이번에는 임유환이 잡지 않아 둘은 그렇게 자리를 떴고 임유환 얼굴에 가득했던 시린 어둠도 서서히 사라졌다.그리고 임유환은 고개를 들어 제 머리 위의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흰 구름이 떠다니는 새파란 하늘이었다.“후...”임유환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다시 천천히 뱉어냈다.서인아, 도대체 넌 무슨 생각인 거야?임유환은 서인아의 마음을 짐작할 수도 없었다.파티가 끝날 때는 그렇게 매정하게 돌아서 놓고 곧 결혼한다는 사실까지 숨겼으면서, 이번에는 왜 또 저를 걱정해서 사람까지 보내는 걸까.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유환 씨! 괜찮아요?”그때 조금 떨어진 수림 속에서 조명주의 초조한 외침이 들려왔다.“조 중령님?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요?”임유환이 깜짝 놀란 눈으로 허둥지둥 뛰어오는 조명주를 바라보았다.“걱정되니까요!”조명주는 그런 임유환을 흘겨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이상하네? 아까 분명 여기에서 낯선 기운이 흘러나왔거든요? 근데 지금은 또 안 보여요.”“낯선 기운이요?”“서씨 집안 장로 얘기하는 거예요?”“서씨 집안 장로가 왔었어요?!”임유환의 말을 듣던 조명주가 그제야 맞춰지는 퍼즐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아까
스물여덟의 원수는 대하 5천 년 역사를 통틀어도 손에 꼽히는 인재였다.정우빈의 사람 됨됨이는 별로였지만 조명주도 그의 실력만은 인정했다.만약 임유환이 지금 무존까지만 되어도 조명주는 진심을 다해 기뻐할 것이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조명주는 한숨을 내쉬었다.“조 중령님, 왜 한숨 쉬어요?”“진짜 유환 씨가 하는 말이 허풍이 아니라 다 진짜였으면 좋겠어요. 그럼 언젠가는 유환 씨가 정씨 집안을 상대로 싸울 수도 있을 텐데...”조명주가 한숨 쉰 이유를 들은 임유환은 감동받은 눈으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고마워요. 항상 이렇게 나 걱정해줘서.”“유환 씨는 참 긍정적이어서 좋은 것 같아요.”미소를 띤 임유환을 보고 조명주는 고개를 저었지만 임유환은 그것도 좋다고 웃어댔다.하지만 그저 웃을 뿐 다른 말은 더하지 않았다.“이제 우리도 가요.”“네.”조명주도 고개를 끄덕이며 임유환과 함께 자리를 떴다....거안 빌라.“흑제, 조 중령님 좀 데려다줘요.”“걱정 마세요, 유환 씨.”임유환이 웃으며 흑제에게 조명주를 부탁하자 흑제도 흔쾌히 수락했다.“그럼 전 먼저 갈게요. 데려다줘서 고마워요.”말을 마친 임유환은 차에서 내려 바로 302호로 향했다.그 시각, 윤서린은 더 이상 기다리고 있을 수 없어 임유환을 찾아가려 했지만 조무관이 막아 나서서 초조함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조무관 씨, 유환 씨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지금 나간 지 2시간이 넘어요!”윤서린은 초조할수록 조무관을 다그쳤다.“걱정 마세요 아가씨. 흑제 어르신과 함께 계시니 무사할 겁니다.”“후...”조무관의 대답에도 여전히 불안한지 윤서린이 심호흡을 길게 했다.아무리 흑제가 있다 해도 상대는 강씨 집안이 데려온 원수인데, 거기다 임유환이 강호명 손자인 강준석을 죽이기까지 했으니 강씨 집안에서는 분명 복수하려고 혈안이 되어있을 것이다.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텐데, 그 잔인한 장면을 생각하며 윤서린은 점점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불안함에 극에 달
“유환 씨? 유환 씨가 왔어?”거실에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방에 있던 김선도 허둥지둥 달려 나왔다.“아주머니!”“유환 씨!”임유환과 김선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임유환이 이렇게 살아 돌아오자 김선도 한시름 덜 수 있었다.그제야 김선도 꼭 껴안고 있는 임유환과 윤서린을 보고 낯부끄러운지 기침을 두어 번 했다.“무사하면 됐어요. 내가 방해를 했네...”“아, 그런 거 아니에요 아주머니.”임유환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고 윤서린도 깜짝 놀라 몸이 굳어져 버렸다.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윤서린은 빠르게 임유환에게서 떨어졌고 옆에 있는 조무관과 김선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너무 기뻐서 옆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저기... 임 선생님, 더 시키실 일 없으시면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여기서 들러리로 서 있고 싶진 않았던 조무관도 어색하게 기침을 하며 말했다.“아, 수고했어 오늘.”“아닙니다!”수고했다는 임유환 말에 조무관은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윤서린과 김선에게도 인사를 건넸다.“아가씨, 아주머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조심히 가요!”“네.”그렇게 조무관이 부하들을 이끌고 나가자 거실에는 순식간에 세 명만 남게 되었다.“유환 씨, 안 다쳤어요?”“안 다쳤어.”그제야 윤서린이 걱정스럽게 상태를 살피며 물어오자 임유환은 고개를 저으며 윤서린을 안심시켰다.“진짜요?”“응, 진짜.”“그럼... 강씨 집안은, 당신 어떻게 안 한대요?”“그 사람들은 이미 죽었어.”강씨 집안을 언급하자 따뜻했던 임유환 눈이 조금은 차가워졌다.“죽었다고요?”윤서린은 그 말에 숨을 들이마시며 놀란 눈으로 임유환을 바라봤다.“당신이 한 거예요?”“응.”“어떻게... 했어요?”고개를 끄덕이는 임유환에게 윤서린의 놀라움 가득한 눈동자가 닿았다.강씨 집안을 도와주는 게 무려 작전지역 원수인데 어떻게 이겼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흑제가 도와줬어.”“흑제 어르신이요?”흑제의 재력과 권력이라면 강씨 집안 정도는 손쉽게
“어...아마 2시간 전이었던 것 같아요.”윤서린은 기억을 되새기며 말했다.“2시간 전?”임유환은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2시간 전이면 마침 내가 강씨 집안과 정면충돌이 일어났을 때 아니야?'‘역시 김우현은 서인아가 보낸 사람이었구나...'“유환 씨... 제가 지금 다시 전화를 드려야 하나요?”윤서린이 물었다.그때까지만 해도 윤서린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임유환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려고 하던 때에, 강씨 집안 사람들이 사람을 데리고 쳐들어왔다...“그건 좀 있다가 얘기하고 내가 먼저 약 발라 줄게. 흉터라도 남으면 안 되지.”임유환은 숨을 가볍게 들이쉬며 말했다.지금, 제일 중요한 건 우선 윤서린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었다.서인아의 일은 잠시 놔둬도 되었다.임유환도 서인아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같은 시각 S그룹 마당 안의 분위기는 사람의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서인아의 얼굴에는 차가움이 가득했고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차가운 기운은 사람의 영혼을 얼어 부숴버릴 것만 같았다.몸에 중상을 입은 김우현은 지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깊이 숙인 채 아가씨의 눈을 감히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김우현의 옆에는 아까 그를 구해낸 팔 장로가 똑같이 창백한 얼굴을 하고 말을 꺼내기 무서워하고 있었다.적막하고 숨 막히는 분위기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모른다.어느 시각, 서인아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그녀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더 차가웠다.“김우현, 대답해 봐. 이번에 내가 널 S시로 보낸 목적이 뭐였지?”“그게...아가씨의 명을 받아 임 선생님을 지원하러...”김우현은 몸을 벌벌 떨었다.“근데 넌 어떻게 했지?”서인아는 계속해서 물었다.“저는...저는...”김우현은 한참 떨며 반나절 동안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아가씨의 뜻을 거역한 결과가 어떤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빨리 대답해!”서인아의 말투는 확 매서워졌고 차가움이 물씬 풍겨 나왔다. 옆에서 김우현운 서인아의 말에 영혼마저 바르르 떨었다.
“우...우빈 도련님이...그게....”김우현은 땀을 뻘뻘 흘리며 입술을 부들부들 떨면서 반나절 동안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뭐라고 말했냐니까!”서인아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우...우빈 도련님이...저...저 보고 임 선생님께...너는 두...두꺼비라고...아가씨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못 된다고...”“더 있어? 빨리 말해!”서인아의 분노는 한층 더 깊어 졌다.그녀의 아름다운 손은 지금 바들바들 떨고 있었고 손등에는 가늘고 퍼런 핏줄들이 올라와 있었다.“우빈 도련님이 또 말하기를...만약 임 선생님께서 내키지 않는다면...10일 뒤에 진행되는 우빈 도련님과 아가씨의 결혼식에 참석하라고...”김우현의 등에는 식은땀이 가득 흘러내렸다.그는 아가씨가 이렇게까지 큰 화를 낸 걸 본 적이 없었다!“그래서 유환 씨는 뭐라고 대답했어!”서인아는 너무 화난 채 몸을 바들바들 떨었고 그녀의 눈빛에 나타난 차가움은 마치 사람을 서리로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그...임 선생님께서는 저 보고 우빈 도련님께 결혼식에 참석할 거라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그리고 그때...그때가 되면 우빈 도련님과 아가씨의 결혼식은 아마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할 거라고...”“뭐라고!”서인아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서인아는 임유환의 성격이라면 그가 꼭 충동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이것이 바로 그녀가 지금까지 계속 임유환에게 진실을 숨겨왔던 이유였다!만약 임유환이 7년 전의 진실을 알게 된다면, 서인아가 처음부터 끝까지 임유환을 잊은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는 반드시 그녀를 위해 모든 대가를 아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 바보 멍청이! 왜 번마다 멍청한 짓을 해!'‘분명 나는 더 이상 유환 씨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건만! 그는 왜 그렇게 바보 같을까.'서인아의 눈가에는 순식간에 자욱한 물안개가 한층 씌워졌다.그러나 그녀는 재빨리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눈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김우현을 쳐다보며 몹시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명심해.
“네, 아가씨!”수미는 마음속으로 깜짝 놀랐다.서인아가 S시에 가서 누굴 만나려고 하는지 수미는 바로 알아차렸다.수미는 얼른 가서 짐을 정리하고 서인아와 함께 전세기를 타고 S시로 떠났다!...“서린아, 여기 아직도 아파?”침실에서 임유환은 윤서린에게 조심스럽게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윤서린의 팔과 등에 생긴 멍들을 보자 임유환은 마음이 아팠다.“안 아파요.”윤서린은 임유환을 등진 채 머리를 살며시 흔들었다.비록 상처가 아직도 따가웠지만, 임유환이 옆에 있으니, 윤서린은 그저 이 순간들이 마냥 행복했다.“바보 같은 계집애.”임유환은 윤서린이 아픔을 참고 있다는 걸 알아 손을 내밀어 상처 주변의 피부를 살며시 어루만졌다.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임유환의 마음속은 이미 얼기설기 엉켜 있었다.“쳇. 유환 씨야말로 바보예요.”윤서린은 코를 살짝 찡그렸다.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고 어찌 보면 귀여움 속에 어리둥절함이 조금 섞여 있었다.임유환은 깊게 한숨 들이쉬더니 재빨리 기분을 다스리고 특제 연고를 윤서린의 등에 있는 멍에 살며시 발라주었다.연고가 상처에 닿자마자 따가움이 느껴졌다.윤서린은 기다란 눈초리를 한껏 깜박였지만,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임유환은 소녀의 살짝 굳어버린 몸을 보고 윤서린이 아픔을 참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눈빛의 미안한 기색은 한층 더 짙어졌다.“미안해, 서린아. 다 내 탓이야...”“바보, 이건 유환 씨의 잘못이 아니에요. 유환 씨도 피해자잖아요.”윤서린은 부드럽게 말했다.“휴...”하지만 임유환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만약 내가 더 일찍 강씨 집안의 비열한 심보를 알아차렸더라면, 서린이도 나를 따라 이렇게 큰 고생을 겪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유환 씨, 난 유환 씨가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으면 해요!”임유환가 자책하고 있는 것을 느낀 윤서린은 갑자기 몸을 돌려 정색한 얼굴로 임유환을 바라보았다.“서린아, 나...”임유환은 살짝 울먹였다.“자. 인제 그만 자책하세요. 저 진짜 괜찮아
임유환은 깊게 한숨 들이쉬었다.그는 윤서린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파장을 최대한 억제하고 나서야 그녀의 치마에 있는 지퍼를 천천히 내렸다. 이런 일을 처음으로 하다 보니 임유환의 손은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그리고 그의 서투른 손놀림 때문에 지퍼를 내리는 과정에서 그의 손가락은 부주의로 윤서린의 등에 닿았다.그때마다 윤서린의 몸은 거문고의 현처럼 팽팽해졌다.두 사람은 모두 숨죽이고 있었다.드디어 임유환은 지퍼를 맨 밑까지 내렸다.지퍼가 다 열리자, 윤서린이 입고 있던 치마는 저절로 허리춤까지 흘러내렸다.순간, 등에 있던 몇 줄기의 멍은 임유환의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임유환은 눈시울을 붉히며 안쓰러움을 금치 못했다.“그 유환 씨...빨리...”이때 윤서린은 작은 목소리로 재촉했다.그녀의 목소리는 어찌 수줍던지 마치 물을 짜낼 수 있는 스펀지 같았다.임유환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윤서린의 반쯤 드러난 몸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아마도 처음으로 이성 앞에서 몸을 보여서인지 그녀의 몸에는 옅은 홍조가 한층 띠어져 있었다.그리고 그녀의 귓뿌리는 이미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알겠어!”임유환은 얼른 대답하고 나서 침대 끝에 있던 담요를 잡아 윤서린의 몸에 덮어줬다.그제야 윤서린의 심박수는 방금 전보다 조금 낮아졌고 마음속에는 일말의 담담한 안전감이 솟아올랐다.“이제부터 약을 바를 거야.”임유환은 가볍게 한마디 귀띔했다.“네.”윤서린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임유환은 연고를 들어 손끝에 조금 바른 후 윤서연의 상처에 조심스럽게 발랐다.손가락이 피부를 스쳤다.또 등이 좀 민감한 곳이다 보니 윤서린은 순간 감전된 듯 몸이 바짝 굳어졌다.윤서린의 반응을 눈치챈 임유환은 동작을 더 빨리할 수밖에 없었다.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들이 맺혀있었다.약을 바른 시간은 단지 1분밖에 안 되었다.그러나 이 1분은 두 사람에게 있어서 마치 한참이나 지난 것만 같았다.“휴...다 됐어!”약을 다 바르자 임유환은 순간